[홍승찬 교수의 클래식 이야기] 전설의 시대를 만든 거장의 신화. 에브게니 알렉산드로비치 므라빈스키[홍승찬 교수의 클래식 이야기] 전설의 시대를 만든 거장의 신화. 에브게니 알렉산드로비치 므라빈스키

Posted at 2017.09.20 15:23 | Posted in 이건음악회 Talk Talk/홍승찬교수의 클래식 톡톡


에브게니 알렉산드로비치 므라빈스키, 20세기가 낳은 위대한 거장들 가운데 가장 높은 반열에 있으면서도 스스로 삼가고 자중하여 내세우지 않고 드러나려 하지 않았던 은둔자이자 수도자였던 지휘자입니다. 그는 190364, 러시아의 상트 페테르부르크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자라고 공부했으며 그곳 오케스트라인 레닌드라드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오늘날의 상트 페테르스부르크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상임지휘자가 되어 평생을 떠나자 않고 그곳에만 50년을 바쳐 세계 최고의 오케스트를 만들었으며 1988119, 그곳에서 죽었고 또한 바로 그곳에 묻혔습니다. 그가 살았던 시대도 그랬지만, 오늘날 너나 없이 세속적인 욕망을 쫓아 현실과 타협하여 일탈조차 마다하지 않는 세태를 마주할 때마다 누구보다 고귀했던 그의 존재가 더욱 그리워지고 그가 남긴 향기의 여운이 점점 더 짙어갑니다.


 

출처 : 구글 이미지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나 물질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부족함이 없는 환경에서 자랐지만 혁명의 소용돌이 속에서 아버지를 잃었고 그가 누렸던 여유와 풍요 또한 한 순간에 사라지고 맙니다. 그로 말미암아 한 때는 마린스키 극장에서 허드렛일을 해야 했고 먼저 대학에서 생물학을 전공했지만 나중에 레닌그라드 음악원에 들어가 체르노프에게 작곡을, 그리고 가우크에게 지휘를 배웠습니다. 그는 원래 작곡가가 되기를 원했지만 창작의 자유를 허용하지 않는 소비에트 공산정권 치하에서는 의미가 없는 일이었기에 지휘자의 길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음악 뿐 아니라 예술 전반에 조예가 깊었던 그는 1923년부터 1931년까지 발레단에서 음악 코치로 일했습니다. 지휘자로는 1929년 처음으로 무대에 올라 1931년 레닌그라드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를 지휘하였고 이듬해부터 역시 레닌그라드에 있는 국립 크로프 오페라 발레극장의 부지휘자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1938년 모스크바에서 열린 소비에트 연방 지휘자 콩쿠르에서 우승하면서 주목을 받아 곧 바로 레닌그라트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음악감독으로 부임하였고 이후 세상을 떠나기 직전까지 50년 가까운 세월을 한 오케스트라와 함께 하는 전대미문의 기록을 남겼습니다. 취임 당시 수준 이하의 평가를 받았던 악단을 다듬고 또 단련하여 세계 정상으로 끌어올린 것도 놀라운 일이지만 그토록 긴 세월 동안 같은 자리를 지키면서 음악적으로나 인격적으로 늘 단원들의 한결같은 존경을 받았다는 사실이야말로 그 어떤 지휘자도 이루지 못한 므라빈스키만의 보람이자 자랑이 아닌가 싶습니다.

 

므라빈스키와 레닌그라드 필의 관현악 앨범

출처 : 곽근수의 음악이야기

 

영국의 BBC 방송이 만든 므라빈스키의 다큐멘터리 영상에는 그에 관한 감동적인 일화가 여럿 소개되어 있습니다. 그가 떠난 지 한참이 지났지만 그의 기일이면 생전에 그와 함께 했던 오케스트라 단원들이 그의 묘소를 찾아 서로의 추억을 떠올리며 업적을 기립니다. 그 가운데 은퇴한 한 여성 단원은 다음과 같이 말하며 눈시울을 붉힙니다. “처음 오케스트라에 들어왔을 때 나는 그저 남들보다 바이올린을 잘 켜는 연주자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므라빈스키와 함께 하는 시간을 지나면서 나는 진정한 음악가가 되어있었습니다.”

그리고 또 어느 단원은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언젠가 브루크너의 교향곡 7번을 연주하기로 했을 때, 거듭되는 연습과 리허설에 단원들은 지쳤지만 므라빈스키는 전혀 만족하지 않고 심지어 단원들의 악보를 집으로 가져가서 세세한 지시를 꼼꼼하게 적어서 다음날 다시 나누어주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또 여러 번의 리허설을 거친 다음 마지막 리허설에 이르렀을 때 단원들 모두가 느끼기를 너무나도 완벽한 연주였기에 스스로도 믿을 수가 없을 정도였고 마치 세상의 것이 아닌 듯한 음악이었다며 당시를 회상합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리허설이 끝나자 므라빈스키는 그날 연주를 취소했고 더욱 기가 막히는 일은 그가 말하기를 이처럼 완벽한 연주는 다시 있을 수가 없으므로 리허설만큼 연주회가 잘 될 리가 없다고 했다는 것입니다.

 

출처 : http://music.kyobobook.co.kr/ht/record/detail/4543638700219

 

러시아의 역사를 통털어 최고의 지휘자인만큼 러시아 작곡가들의 작품에 관한 한 그의 해석과 연주를 으뜸으로 치는 것은 당연한 일이겠지만 특별히 차이코프스키의 교향곡, 그리고 같은 시대를 살면서 서로 음악과 우정을 함께 나누었던 쇼스타코비치의 교향곡만큼은 이후로도 그 이상을 기대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쇼스타코비치가 남긴 15곡의 교향곡 가운데 5, 6, 8, 9, 10, 12번의 여섯 곡을 초연하였고 그 밖의 많은 곡들이 므라빈스키의 지휘봉 아래 세상에 첫 선을 보였습니다. 그가 생전에 가장 많이 연주한 곡은 차이코프스키의 교향곡 4번이었고 그 다음으로 자주 연주한 곡이 쇼스타코비치의 교향곡 5번이었습니다. 쇼스타코비치가 심혈을 기울인 오페라 므첸스크의 맥베드 부인이 스탈린의 눈에 거슬려 당국의 호된 비판을 받게 되자 모두가 그를 멀리했지만 므라빈스키만은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5번의 초연을 성공으로 이끌어 위기에서 그를 구했습니다. 그리고 쇼스타코비치가 다시 한 번 그의 교향곡 8번으로 사면초가에 빠졌을 때 므라빈스키만이 홀로 그를 지지하며 나섰다고 합니다. 이런 우여곡절을 겪으며 두 사람의 우정은 갈수록 깊어졌지만 한 차례 위기를 겪으며 잠시 흔들리기도 합니다. 쇼스타코비치가 교향곡 13번을 완성하여 초연을 부탁했지만 므라빈스키가 거절하면서 두 사람의 관계도 멀어진 것입니다. 므라빈스키가 생각하기에 그 곡은 전과 달리 지나치게 이념적이고 정치적이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물론 시간이 지나고 두 사람은 화해했지만 그만큼 소비에트 체제와 이념에 관한 한 므라빈스키의 부정적인 생각과 태도는 단호했습니다.

"이념은 악행에 정당성을 부여하고 악인에게 필연적인 확고함과 결단력을 제공한다." 소비에트 시절 체제의 핍박을 받았던 알렉산드르 솔제니친의 자전적 소설 "수용소 군도"에 나오는 말입니다. 소비에트 당국이 그를 축출하고자 탄핵을 결의하는 문서에 동료 예술가들의 서명을 강요했을 때도 지휘자 므라빈스키는 끝까지 거부했습니다. 솔제니친이 저술을 통해 저질렀다는 반국가적, 반사회적, 반체제적 행위에 대해 므라빈스키는 그의 책은 소비에트 안에서 출판이 금지되었기에 읽을 수가 없었고 따라서 그러한 사실을 알지 못한다며 끝까지 거부의 뜻을 굽히지 않았습니다.

 

출처 : http://kathyhong.tistory.com/archive/201402

 

지휘자의 역사를 통털어 20세기 전반은 토스카니니와 푸르트뱅글러의 시대였고 후반은 카라얀과 번스타인의 시대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푸르트뱅글러는 나치에 협력하였고 카라얀은 나치에 가담했습니다. 번스타인은 사회주의에 동조하였지만 문제가 되자 부인하며 애매한 태도를 취했습니다. 토스카니니만이 무솔리니와 히틀러에 무모하리만큼 용감하게 맞섰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가치와 신념이 달라서가 아니라 그들이 자신만이 지배하고 결정해야 하는 오케스트라와 음악의 영역을 침범했기 때문입니다. 므라빈스키는 평생을 소비에트 체제 속에서 살면서도 공산당에 입당하지 않았고 다만 50년을 한 오케스트라에 그의 모든 것을 바쳐 바닥에서 정상으로 올려놓았습니다. 오케스트라와 함께 하지 않을 때 그는 늘 시골의 오두막에 머무르며 밤이면 책을 읽고 낮이면 의자에 앉아 하염없이 자연을 바라보거나 그 속을 말없이 거닐었습니다. 그리고 꺾이지 않는 그의 뜻은 말 대신 음악에 담아 절절하게 쏟아냈습니다. 음악이 있었기에 신념을 굽히지 않았고 신념이 있었기에 음악에 모든 것을 바칠 수 있었습니다. 그야말로 진정한 음악가이자 예술가였습니다. 무엇보다 참으로 아름다운 한 인간이었습니다.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 그 사람다운 삶을 아름다운 음악으로 들려주는 아름다운 세상을 꿈꿉니다.

 

 

https://youtu.be/mqZ3UfpO4tA

차이코프스키 - 교향곡 6번 / 므라빈스키 유튜브 동영상

 

00:10 - I. Adagio. Allegro non troppo

17:44 - II. Allegro con grazia

25:50 - III. Allegro molto vivace

34:10 - IV. Finale. Adagio lamentoso. Andante

=======================================================

Leningrad Philharmonic Orchestra / Evgeny Mravinsky

레닌그라드 필하모니 교향악단 / 예프게니 므라빈스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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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승찬 교수의 클래식 이야기] 러시아 정교회의 역사와 전례음악[홍승찬 교수의 클래식 이야기] 러시아 정교회의 역사와 전례음악

Posted at 2017.09.14 18:20 | Posted in 이건음악회 Talk Talk/음악회 톡톡

28회 이건음악회의 연주자는 모스크바 스레텐스키 수도원 합창단입니다. 스레텐스키 수도원은 러시아 정교회 소속이며, 이들의 음악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러시아 정교회에 대한 이해가 필요합니다.  홍승찬교수님께서 이건음악회 팬 여러분들을 위해 러시아 정교호의 역사와 전례음악에 대한 글을 보내주셨습니다. ^^

홍승찬교수님의 글 참고 하시어 러시아 정교회를 이해하시는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러시아 정교회의 역사와 전례음악 (홍승찬 교수)

 

2017년은 루터가 카톨릭 교회의 반성과 혁신을 촉구하면서 시작된 종교개혁이 500주년을 맞이하는 해입니다. 그로 말미암아 소위 개신교 교회가 등장하기 전까지 기독교는 크게 로마 카톨릭 교회와 동방 정교회(Eastern Orthodox Church)로 양분되어 있었습니다. 초기 기독교가 온갖 박해와 시련을 지나 313년에 로마제국에서 공인을 받고 392년에 마침내 국교로 선포될 즈음에 제국 안에는 다섯 개의 교구, 5대 주교구가 자리 잡고 있었으니 예루살렘과 알렉산드리아, 안티오키아, 콘스탄티노플, 로마가 그들입니다. 그 가운데 예루살렘과 알렉산드리아, 안티오키아 주교구가 7세기 중엽 이후 이슬람의 정복으로 무너져버리자 로마와 콘스탄티노플이 남아 교회의 두 중심축을 형성하게 되었습니다.

동과 서로 갈라진 로마제국의 두 중심지였던 로마와 콘스탄티노플은 초기 기독교 역사에서도 중추적인 역할을 하며 공생과 경쟁의 묘한 관계를 이어갔습니다. 476년에 서로마제국이 멸망하고 그 빈자리를 채울 만한 절대 강자가 나타나지 않는 동안 로마교회는 정치 권력의 간섭 없이 독자적인 위상과 세력을 키워갈 수 있었기에 다른 교회에 대한 로마 교회의 우위를 주장하며 로마 교구의 주교를 교황이라 부르게 됩니다. 이에 반해 콘스탄티노플의 교회는 교리상 모든 교구가 동등하다는 입장이었지만 실제로는 동로마 제국, 즉 비잔틴 제국의 지배 하에 있었기에 제국의 황제는 콘스탄티노플 교회 뿐만 아니라 로마 교회까지도 자신의 통제하에 두려했습니다. 이렇듯 서로 다른 입장과 교리의 차이는 두 교회를 점점 더 멀어지게 만들었고 여기에 갈등과 분열을 일으키는 사건들이 잇따라 벌어지면서 1054년 두 교회는 서로가 서로를 파문하여 갈라서게 되었습니다.

 


로마교회와 결별한 이후 동유럽을 중심으로 교세를 넓혀 간 비잔틴 제국의 콘스탄티노플 교회는 교리와 예배의식, 조직 을 정비하며 점차 독자적인 성격을 확립해갔습니다. 콘스탄티노플 교회는 로마 교회에 대해 스스로의 정통성과 우위를 주장하기 위해 정교회라 일컬었고 그 지역의 방위를 앞세워 동방 정교회(Eastern Orthodox Church)라 부르거나 그 지역의 문화권을 가리켜 그리스 정교회라 부르게 됩니다. 9세기에 불가리아에 교회를 세운 정교회는 10세기에 이르러 키에프 공국의 러시아인들을 개종시켜 러시아 정교회의 발판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1453, 비잔틴 제국이 오스만 투르크의 침략으로 몰락하자 러시아의 황제가 비잔틴의 황제를 이어 정교회의 모든 교회를 대표하는 수장이 되었습니다.

 

 로마교회와는 달리 동방정교회는 황제교황주의체제였습니다. 이에 따라 동방정교회에서는 비잔틴제국의 황제가 교회의 수장이었고 그 아래에 총대주교가 있었습니다. 비잔틴제국의 멸망한 다음부터 그 자리는 러시아의 황제가 차지하게 되었고 이후 러시아 정교회가 모든 정교회를 대표하는 위상을 갖게 됩니다. 1721, 표트르 대제는 총주교제를 폐지하고 종무청을 설립하여 교회에 대한 황제의 권한을 더욱 강화했지만 러시아 혁명으로 공산 정권이 들어서자 황제교황주의는 더 이상 존속할 수 없게 되었고 이후로는 명목상 콘스탄티노플의 총대주교제가 정교회를 대표하는 역할을 하게 됩니다. 동방정교회는 로마가톨릭교회와는 달리 초기 기독교의 알렉산드리아 교구와 안티오크 교구를 포함한 13개의 독립적인 자치 정교회들로 이루어져 있고 콘스탄티노플 총대주교는 로마 교황처럼 실질적인 권한과 권위를 가지지 않습니다. 다만 교회에 관련된 공통의 문제와 관련하여 최종적인 판단과 결정은 교회공의회에서 이루어지며 특히 모든 교회의 대의원이 참여하는 대공의회는 최고의 권위와 권한을 행사하게 됩니다.

 

동방정교회의 전례는 크게 5가지 유형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비잔틴식 ·아르메니아식 ·(西)시리아식 ·()시리아식 ·알렉산드리아식이 그것입니다. 이 가운데 비잔틴식이 가장 대표적이며 그 음악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비잔틴전례음악의 중심에는 비잔틴성가가 자리잡고 있는데 이는 마치 그레고리오성가가 카톨릭교회음악의 근원인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비잔틴성가는 그리스어를 가사로 한 단선율의 성가로 대게 단조롭게 울리는 낮은 음을 더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시리아전례에 사용된 시리아성가는 비잔틴성가와 더불어 그레고리오성가의 탄생과 성장에 많은 영향을 미쳤습니다.

 

러시아정교회는 일찍부터 비잔틴성가를 러시아어로 부르며 거기에 그들 나름의 음악을 더했으며, 16세기부터는 서로 다른 여러 선율이 함께 어우러지는 다성음악을 성가에 사용하였습니다. 이런 일이 가능했던 것은 과거 로마카톨릭교회가 모든 국가와 민족들에게 라틴어 성서와 전례를 강요했던 것과는 달리 동방정교회는 처음부터 모국어 성서와 전례를 허용했기 때문입니다. 다 같이 비잔틴전례권에 속해있지만 불가리아, 세르비아, 루마니아 등의 발칸 국가들은 단선율의 비잔틴성가와 더불어 러시아의 다성음악도 함께 사용하고 있습니다.


^^ 러시아 정교회에 대한 이해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셨는지요? 스레텐스키 성당에서 합창단이 노래하는 영상 첨부드리면서 마무리 하겠습니다. 


스마트폰 보기 : https://youtu.be/5CVtZKPpK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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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8회 이건음악회 개최 안내 - 모스코 스레텐스키 수도원 합창단 공연 안내제28회 이건음악회 개최 안내 - 모스코 스레텐스키 수도원 합창단 공연 안내

Posted at 2017.07.12 13:47 | Posted in 이건음악회 Talk Talk/음악회 톡톡

2017년도 이제 반이 훌쩍~ 지나갔습니다. 이제 점점 이건음악회에 대한 이야기가 올라올 때 인 것 같습니다. 많은 분들이 문의 주시고, 기다리시기 때문에 이번 28회 이건음악회의 연주자와 일정 정보를 소개해드리겠습니다

 

28회 이건음악회 - 모스코바 스레텐스키 수도원 합창단 (Moscow Sretensky Monastery Chior)

  

이건음악회는 클래식 음악이 갖고 있는 아름다움을 전파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상업적인 공연이 아니기 때문에 부담 없이 여러 장르, 다양한 악기, 구성 등으로 음악회를 기획하고 있습니다.  

올 해에는 러시아를 대표하는 남성합창단인 모스코 스레텐스키 수도원 합창단을 초청하여 28회 이건음악회를 실시합니다.

러시아에는 많은 유명한 남성 합창단이 있습니다. 러시아 3대 남성 합창단이라는 볼쇼이 합창단, 돈코사크 합창단, 붉은 군대 합창단 등 세계적으로도 유명합니다. 볼쇼이 합창단은 꽤 자주 한국을 방문하는 합창단이기도 합니다

 

스레텐스키 수도원 합창단은 러시아 정교회 소속으로써 그 역사가 무려 620년이나 되는 전통있는 합창단입니다. 지난 2014년 소치 동계올림픽에서 세계적인 소프라노인 안나 네트렙코와 함께 러시아 대표로 국가를 불렀을 정도로 러시아 내에서는 최고의 합창단입니다. 또한 국가적 주요 행사 등에서도 자주 초청되는 국보급 합창단입니다

다만 상업적인 단체가 아니기 때문에 우리에게는 이름이 널리 알려져 있지는 않습니다. 스레텐스키 수도원 합창단을 모시는 것도 쉽지 않았는데요 5년에 걸친 논의 과정에서 이건의 사회공헌활동과 나눔 컨셉의 음악회, 클래식 음악을 나누기 위한 노력 등을 어필하여 계약이 성사될 수 있었습니다.  

어떤 단체가 실력으로 최고다 하는 것은 사실 의미가 없을 수 있습니다. 각 합창단의 특유한 매력이 있기 때문이죠. 이번 제28회 이건음악회를 통해서 모스코 스레텐스키 수도원 합창단의 매력에 푹~ 빠져보시기를 기원드립니다.

앞으로도 스레텐스키 수도원 합창단에 대한 소개 자료를 꾸준 업데이트 하도록 하겠습니다.

댓글로 여러분들의 28회 이건음악회에 대한 기대를 표현해주세요 ^^ 좋은 소식으로 보답드리겠습니다.

 

 

 

[일정안내]

2017 10 26일 목요일 - 부산 문화회관 대공연장

2017 10 27일 금요일 - 고양 아람누리 아람음악당

2017 10 28일 토요일 - 인천 종합문화예술회관 대공연장

2017 10 29일 일요일 -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2017 10 31일 화요일 - 광주 5.18기념문화센터

2017 11 01일 수요일 - 대구 수성아트피아

*공연 티켓 응모 이벤트 - 2017 9월 중 (이건음악회 블로그를 통해 공지 예정)

 

[공연 영상 보기 ]

 스마트폰 보기 : https://youtu.be/AiKqyg3AzOk

 

스마트폰 보기 : https://youtu.be/_xq8AOhCRd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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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권정미
    이건음악회 소식 계속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이번에도 정말 멋진 공연이 될거 같아 벌써 설레입니다.
    항상 좋은 음악회 준비해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3. 김미숙
    역시 이건의 선택은 남다릅니다.
    기대감에 벌써 행복해지네요.^^
    관계자 분들의 노고에 감사드립니다.
  4. 신창선
    무지 기대 됩니다. 손꼽아 기다리고 있습니다. 역시 올해도 실망시키지 않으시는 내용입니다. 아무쪼록 준비에 수고 많으셨고, 9월 응모 때 다시 인사 드리겠습니다...
  5. 양서빈
    올해는 광주에서도 공연을 해서 너무나 기대되네요. 꼭 참여하고 싶어요. 매년 멋진 공연 준비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6. 김지연
    드디어 음악회 소식이 ~~^^올해도 너무나 설레입니다~~
  7. 김인철
    늘 기다려지는 공연소식에 감사드립니다. 특히 이번에는 광주에서도 공연이 진행되기에 더욱 기대가 큽니다. 이건관계자분들께 감사드립니다. ^^
  8. 비밀댓글입니다
  9. 천병국
    지난 해 공연을 놓친 것이 너무도 아쉬웠는데, 이번에 미리 공연 소식을 접하게 되어 감사하네요. 늘 기대되는 이건음악회인만큼 이번 공연도 충분히 기다려지는건 저 뿐만 아닐 겁니다.^^ 항상 응원합니다!
  10. 권희범
    시몬디너스틴 피아노 독주 공연 관람 후
    매번 기회를 놓쳤는데 올해는 그렇지 않네요!
    다시 행운을 기대하면서 이건기업의 문화창달에 감사와 박수를 보냅니다.
  11. 유구무언
    누군가는 돈을 위해 노래하지만 누군가는 노래할수 있음을 감사함으로 노래를 하지요.
    기대가 됩니다
  12. 함용성
    2017년의 이건음악회도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네요. 모스코 스레텐스키 수도원 합창단, 낯선 이름이지만 다른 러시아 합창단과 같이 깊은 울림의 성가를 들려줄 것으로 기대됩니다. 그레고리안 찬트를 한 꼭지로 하면 더욱 좋을 듯 합니다. 그리고 그들이 들려 줄 아리랑은 또 어떤 감동을 안겨줄지 상상해 봅니다. 항상 감사드립니다.
  13. Sophia 💙
    이건의 메세나 덕분에 나의 감성이 살아 있음에 감사하는 시간입니다. 올 해도 감성 가득한 가을여행이 될 수 있는 행운이 오기를,,, 계속될 노블레스 오블리지로 메디치 가문 처럼 존경 받는 이건이 되어 주시기 바랍니다. 🤡
  14. 행복달
    안그래도 이때쯤이면 이건음악회 소식이 올라올텐데 하면서 들어와봤더니 역시나..
    이번에는 합창단 공연이군요. 조금 생소한 합창단이지만 이건의 선택이라면 올해도 기대해도 좋을것 같아요.
    해마다 너무나 멋진 공연, 감사합니다.
    올해도 대구에 오신다니 설레는 마음안고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15. 페르소나
    올해도 너무 기대됩니다^^
  16. 김은경
    악기연주가아닌 합창단공연도 엄청 기대됩니다
  17. 우지수
    올해도 대구에서 공연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무척 기대됩니다~^^♡
  18. 신희숙
    이건음악회, 기다려온 공연 ~~~ 이번엔 전통있는 남성합창단 공연이라 더욱 가슴두근거립니다.
  19. 김태석
    올해도 기대되고 멋진 공연 볼수 있도록 준비해주시고 기획해주셔서 감사합니다
  20. 김화영
    올해 공연도 정말 기대됩니다. 감사합니다!
  21. 최선희
    이건 음악회 많이 기대됩니다. 이렇게 오랜기간 동안 좋은 음악을 소개하고 제공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모스코바 스레텐스키 수도원 합창단의 아름다운 하모니를 기대해 보겠습니다. 앞으로도 무궁한 발전이 있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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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승찬 교수의 클래식 이야기] 러시아 음악의 향수, 소콜로프의 추억(러시아의 클라리네티스트 블라디미르 소콜로프)[홍승찬 교수의 클래식 이야기] 러시아 음악의 향수, 소콜로프의 추억(러시아의 클라리네티스트 블라디미르 소콜로프)

Posted at 2016.09.19 11:35 | Posted in 이건음악회 Talk Talk/클래식 톡톡



지난 세기 러시아의 무대예술은 세 번씩이나 세계를 놀라게 했습니다. 먼저 세기 초 러시아 혁명을 전후로 유럽과 미국으로 건너간 디아길레프의 러시아 발레단과 작곡가 스트라빈스키, 프로코피에프와 라흐마니노프가 발레와 음악의 역사를 새로 써내려갔습니다. 그리고 반세기가 지나 처음으로 세상 밖에 그 모습을 드러낸 철의 장막 안의 예술가들의 기량은 아득하게 높은 수준에 있어 경이로움 그 자체였습니다. 세기말이 다가올 무렵 결국 소비에트는 무너졌고 예술가들의 삶도 맥없이 허물어졌습니다. 살기 위해 그들은 다시 한 번 나라 밖으로 나서야 했지만 전과 달리 이번에는 환난과 고난 속에서도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예술가의 긍지와 예술을 향한 열정을 보여주었습니다.


작곡가 스트라빈스키


한국예술종합학교가 이 땅에 태어난 것도 바로 그 무렵이었습니다. 음악원이 문을 열면서부터 해외의 저명 음악인들을 교수로 초빙했고 그 가운데는 러시아의 클라리네티스트 블라디미르 소콜로프도 있었습니다. 공항에서 소콜로프 내외를 맞이해서 교수 아파트로 이동하던 중 해가 저물었기에 저녁식사를 대접하겠노라며 좋아하는 음식을 물었습니다. 그는 기다렸다는 듯이 스테이크라고 대답했고 주문한 음식이 나오자 내외가 함께 말 한 마디 없이 순식간에 접시를 비웠습니다. 그 모습을 보면서 러시아의 경제 사정이 어떤지를 실감할 수 있었고 말 못할 어려움을 겪고 있는 그들의 처지가 딱하기만 했습니다.

블라디미르 소콜로프는 뛰어난 러시아 음악가로 러시아에 명성을 안겨준 화려한 독주자중 한명이다. 소련 국립 교향악단에 견습생 시절 당대 명지휘자 니콜라이 아노소프에 의해 파격적으로 발탁되어 주목을 받기시작하였다. 1963년 소련 연방 콩쿨에서 우승한후 전-소련 방송 교향악단과 소련 국립교향악단의 독주자로 활동하며 소련의 대표 클라리네티스트로 자리하였다. 1984년 소련 공훈 예술가로 추대되었다. 


블라디미르 소콜로프(Vladimir Sokolov)


식당을 나서면서 그는 갑자기 가르치게 될 학생들을 내일이라도 당장 보고 싶다고 했습니다. 개학까지는 여러 날이 남았고 여독이 풀리고 시차에 적응하려면 시간이 필요하지 않겠냐고 했더니 그는 전혀 문제 없다며 오히려 학교가 문 여는 시간이 몇 시냐고 물었습니다. 그때까지 한 번도 그렇게 일찍 출근한 적이 없어 모른다고 했더니 그는 가능한 한 이른 시간에 학생들을 만나게 해달라는 부탁을 했고 아홉시에 연구실로 모이도록 연락하고 8시 반까지 데리러 오겠노라 약속했습니다. 다음날 약속 시간에 집으로 가 벨을 눌렀더니 기다렸다는 듯이 바로 문이 열렸습니다. 현관에는 낡았지만 깔끔한 양복에 나비넥타이를 한 소콜로프가 한 손에는 악기 가방을, 다른 손에는 악보 가방을 들고 서 있었습니다. 운전석 옆자리에 탄 그는 너덜해진 악보꾸러미를 가방에서 꺼내 다시 정리를 하면서 중간 중간 악보의 음표들을 소리 내어 읽었고 너무나 열중한 나머지 몸까지 흔들어대는 백발의 이국 신사를 지나가는 차에 탄 사람들은 모두 신기한 듯 쳐다보았습니다.


학교에 도착해서 마침내 학생들이 연구실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소콜로프의 표정이 갑자기 굳어지더니 내게 다가와 낮고 작은 목소리로 어떻게 악기를 공부하는 학생들이 악기를 두고 다닐 수 있는지를 물었습니다. 아차 싶은 마음에 당황하여 아마도 서로 처음 만나는 자리라 그럴거라고 궁색한 대답을 했더니 부드럽지만 단호한 표정으로 얼마든지 기다릴테니 각자 돌아가서 악기와 지금 연습하는 곡의 악보까지 챙겨서 다시 오라고 말하고는 이번에는 학교가 문닫는 시간을 물었습니다. 사실은 열두시로 알고 있었지만 얼떨결에 열시라고 말했고 그는 그 시간에 데리러 와주면 고맙겠다는 정중한 부탁을 했습니다. 약속한 열시에 노크를 하고 연구실 문을 열었고 거기에는 아침에 만난 학생들이 모두 붉게 상기된 얼굴에 얼이 빠진 표정으로 앉아 있었고 소콜로프만 아침보다 더 밝고 활기찬 모습으로 반갑게 나를 맞아주었습니다. 이제 그분은 이 세상에 없고 단지 함께 했던 짧은 시간만 추억으로 남아 희미해지고 있지만 그가 보여준 참 예술가이자 스승으로서의 모습만은 오늘도 흐트러지려는 나를 문득 일깨우는 가르침으로 남아있습니다.


그 일이 있고 얼마지 않아 우리 발레 스타들과 함께 블라디보스톡 공연을 갈 일이 있었습니다. 오랜 세월 수리를 못해 잿빛으로 색이 바래고 무대 바닥이 삐걱거리는 목조 극장을 가득 메운 남루한 옷차림의 관객들이 눈물을 흘리며 감격해 했고 그 추운 날씨에도 신문지에 싼 시든 꽃을 들고 밖에서 줄지어 기다리고 있다가 출연자들에게 하나씩 전하면서 어떤 장면의 어떤 부분이 어떻게, 또 얼마나 좋았는지 들려주었고 무릎을 굽히고 두 손을 가슴에 모아 진정 감사하다는 마음을 전했을 때 가슴이 뭉클하고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그리고 그 때 알았습니다. 이처럼 러시아 어디를 가든 세상 그 무엇보다 예술을 마음 속 깊이 사랑하고 그 누구보다 예술가들을 우러러 보는 사람들이 있었기에 우리를 그토록 놀라게 하고 우리의 마음을 마구 흔들어놓았던 위대한 러시아의 예술가들이 있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문득 지휘자 페도세예프가 페테르스부르크 방송 교향악단과 함께 첫 내한 연주회를 가졌을 때의 감동이 떠오릅니다. 소비에트가 무너지고 얼마지 않아서였습니다. 공연이 시작하기 전, 지휘자보다 나이가 더 지긋해 보이는 악장이 지휘자의 악보를 따로 챙겨 들고 나와 지휘대 위에 펼쳐놓는 모습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차이코프스키의 비창은 페도세예프의 손 끝을 따라 줄타기를 하는 듯 팽팽했습니다. 떨어질 듯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무너질 듯 무너지지 않았고 주저앉을 듯 주저앉지 않았습니다. 온 몸으로 흐느꼈지만 결코 소리내어 울지 않았습니다. 삶을 송두리째 흔드는 격변과 혼란 속에서도 페도세예프와 오케스트라는 그들의 음악과 본분을 잃지 않았고 음악가가 지켜야 할 긍지가 무엇인지 우리에게 일깨워주었습니다. 단원들은 악장을 따랐고 악장은 지휘자를 깎듯이 모셨습니다. 그리고 그들 모두는 한 마음으로 차이콥스키를 사랑했습니다. 음악에도 국경이 있다는 걸 그날 깨달았습니다. 차이콥스키는 그들의 삶이었습니다. 그리고 또 깨달았습니다. 아무리 세월이 흐르고 세상이 변한다고 해도 우리가 반드시 지키고 간직해야 할 그 무엇이 있다는 걸 말입니다. 그것이 사람마다의 본분이고 책임이며 지켜야 할 긍지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것이 우리가 살아가는 힘이고 살아가는 까닭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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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쾌하고 신나는 클래식 추천-1편] 클래식 메들리를 들어보시겠나요? 경쾌한 클래식, 신나는 클래식 음악을 듣고 추천해 드립니다. 신나는클래식모음으로 생각의 틀을 바꿔보세요.[유쾌하고 신나는 클래식 추천-1편] 클래식 메들리를 들어보시겠나요? 경쾌한 클래식, 신나는 클래식 음악을 듣고 추천해 드립니다. 신나는클래식모음으로 생각의 틀을 바꿔보세요.

Posted at 2014.05.28 23:37 | Posted in 이건음악회 Talk Talk/클래식 톡톡

 

인터넷을 돌아다니면서

클래식음악을 듣고 있을 때가 무척이나 많습니다.

배경음악으로 사용되는 클래식 음악이 많다는 것을 그 때 느끼게 되죠.

 

그럼 클래식 음악들이 모두 지루할까요?

그렇지만은 않더군요.

 

상당히 신나고 재미있는 클래식 음악들이 여기저기에 펼쳐져 있었습니다.

그래서 준비했습니다.

 

오늘은 신나는 클래식 음악 중 5곡을 여러분께 소개해 드릴까 합니다.

 

 

첫번째 곡은 림스키-코르사코프: 왕벌의 비행 - Hanspeter Gmur

 

 

 

 

림스키 코르샤코프(Nikolai Andreevich Rimskii-korsakov) 가 1900년에 작곡
오페라 '술탄황제의 이야기(The Tale of Tsar Saltan - Suite op. 57 )'중 제2막 제1장에서
연주되어 지며 많은 악기로도 편곡이 되었지만, 라흐마니노프가 편곡한것이 가장유명한데 후에 치프라가 자기의 피아노 기교를 과시하기 위해 다시 편곡을 한다. 하지만 치프라 역시 연주에 난해 한곳이 많아 자주 연주 하진 않게 된다.

 

 


그밖에도 바이올린, 플룻, 마림바로 편곡 되었다.

근래 들어 막심 므라비차(Maksim Mrvica)가 이곡을 연주하여 인기를 얻고있고
신이 내린 목소리 바비 맥퍼린(Bobby McFerrin)역시 이곡을 연주했다.

어쨌든 이곡은 클래식 중에서 가장 연주하기 어려운 곡중 하나이다.

 

림스키 코르사코프 - 왕벌의 비행 (클래식 동영상 카페)

 

 

이 곡은 러시아의 국민악파 음악가인 림스키 코르사코프가 1900년에 만든 오페라 <술탄황제 이야기>의 2막 1장에 나오는 관현악곡인데 적들이 왕벌의 기지를 습격하는 장면을 다양한 음을 사용하여 사실적으로 묘사하고 있는 곡입니다.

림스키 코르사코프가 바다를 건너 날아온 호박벌떼가 백조의 주위를 날아다니는 모습을 보고 이 곡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적들의 공격에 분주하게 움직이는 왕벌의 움직임을 음악으로 너무 잘 표현한 곡이죠.

 

 

 

두번째 곡. 생상: 동물의 사육제 - 피날레 - Jorg Faerber

 

동물의 사육제(경남피아노듀오협회)

 

 

베를린필 - 동물의 사육제 중 피날레

 

베를린 필 하모닉 오케스트라

사이먼 래틀 지휘

2005년 발트뷔네 콘서트 실황

 


 

 

 


세번째 곡. 차이코프스키: 호두까기 인형 - 러시아 춤 Wilhelm Rohr

 

러시아 최고 발레 공연인 마린스키 극장의 호두까기 인형 발레 공연

 

 

 

 

 

아코디언 2중주-호두까기 인형-러시아춤

 

 

 

 

제4곡 : 러시아의 춤(트레파크)
트레파크란 러시아 농민들이 즐겁게 추는 민속무용으로 아주 격렬한 춤이다. 이 곡에서는 제 2바이올린의 연주로 4번씩이나 되풀이되어 나온다.

 

 

 


네번째 곡. 글린카: 루슬란과 루드밀라 - 서곡 Sir Edward Downes

 

글린카 루슬란과 루드밀라 서곡

 

루슬란과 루드밀라 서곡 / 글린카
2013년 2월 21일 원주시립교향악단, 치악예술관
지휘 박영민

 

'루슬란과 루드밀라'에서는 러시아 민속음악의 특징이 곳곳에 사용되고 있습니다.

이 작품을 통해 글린카가 서유럽의 오페라를 많이 참고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의 두번째 오페라 작품인 '황제에게 바친 목숨'과 더불어 러시아의 국민 오페라로 손꼽히는

이 곡은 이후의 러시아의 작곡가들에게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마지막 다섯번째 곡. 로시니: 도둑까치 - 서곡 Henry Adolph
 

로시니 - 도둑까치 서곡(베를린필.아바도)

 

이 곡도 원래는 오페라의 서곡이지만

요즘은 오페라 자체가 연주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하네요

그래도 서곡은 인기가 좋지요

굉장히 경쾌한 곡이고

이 곡도 오페라 서곡답게 스토리가 있는 곡입니다

 

 

 

 


추천 음반

아바도의 연주를 추천!

 

Rossini - Ouverture La Gazza Ladra - Gustavo Dudamel - H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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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승찬 교수의 재미있는 클래식음악 이야기] 음악사의 돈키호테 무소르그스키[홍승찬 교수의 재미있는 클래식음악 이야기] 음악사의 돈키호테 무소르그스키

Posted at 2012.05.08 11:23 | Posted in 이건음악회 Talk Talk/홍승찬교수의 클래식 톡톡

 

 

홍승찬 교수의 클래식 음악(16)
음악사의 돈키호테 무소르그스키

 

 


서양의 음악사를 통털어 무소르그스키만큼 독특한 인물을 찾기도 쉽지 않을 것입니다. 제대로 작곡공부를 하지 않았으면서도 누구보다 독창적인 작품들을 남겼고 지주의 아들로 태어났으면서 민중들을 생각하고 농노들을 걱정했습니다. 누구보다 러시아를 사랑한 민족주의자면서도 조국 러시아에 대항한 그루지아의 영웅 샤미르를 칭송하는 칸타타 샤미르의 행진을 작곡하기도 했습니다.

무소르그스키

이처럼 그의 삶은 모순으로 헝클어진 실타래 같은 것이었습니다. 귀족가문의 지주와 농노의 딸 사이에서 태어난 출생부터가 그랬습니다. 그 비천한 어머니로부터 피아노를 배웠고 음악과는 너무나도 동떨어진 군인의 길을 걸으면서 또, 관직에 몸담고 있으면서 음악에 대한 열정을 불태웠습니다. 그가 죽기 직전에 그의 친구인 화가 레핀이 그린 초상화를 보면 아무렇게나 헝클어진 머리카락에다 술기운이 가시지 않아 콧등과 뺨까지 온통 붉은 빛을 띠고 있지만 강렬한 눈빛만큼은 무엇인가를 뚫어지게 응시하고 있습니다. 평생을 술독에 빠져 살았고 그 때문에 건강을 해쳐 죽음에까지 이르렀으나 그런 가운데서도 늘 사람들의 삶 속에 깊이 뿌리박은 진정한 예술을 꿈꾸고 추구했던 예술가입니다. 그 열망이 얼마나 강했던지 타협을 거부하며 주변 사람들과도 수없이 부딪히며 상처를 주고 받았고 결국은 스스로의 정신마저 온전하게 지켜내지 못했습니다.

칸타타(Cantata)란 성악곡의 하나로, 악기 반주가 동반되는 악곡의 형식이다.

무소르그스키라면 오늘날 발라키레프, , 림스키 코르사코프, 보로딘과 더불어 러시아 국민악파 5인조의 한 사람으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러시아 민족의 정신과 러시아 민중들의 삶을 음악에 고스란히 담으려는 생각은 5인조 누구에게서나 찾을 수 있는 공통점이지만 그 방법은 각자가 조금씩 달랐고 그 중에서도 무소르그스키의 생각이 유독 두드러졌습니다. 그는 음악을 통해 구체적인 장면이나 사건을 그대로 묘사하거나 서술하려 했는데, 말하자면 사실주의적인 음악을 추구했던 것입니다. 원래부터 구체적인 서술과 묘사의 대상이 있었던 문학과 미술은 낭만주의 이후 사실주의의 출현이 자연스러운 일이었지만 상대적으로 추상적일 수밖에 없는 음악은 사실주의가 불가능했습니다. 그런데 무소르그스키가 나타나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들고자 했던 것입니다. 이탈리아 오페라에서 19세기말 사실주의적인 경향, 베리즈모가 있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이야기와 대본이 있는 오페라에서 가능한 일이었고 그나마도 잠시의 움직임이었을 따름이었습니다.

밀리 알렉세예비치 발라키레프 러시아피아노 연주자이자 지휘자, 작곡가

아마도 무소르그스키가 이토록 용감할 수 있었던 것은 음악을 몰랐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어려서부터 피아노를 배우기는 했지만 전문가가 되기 위한 집중적이고 체계적인 교육은 아니었고, 더욱이 작곡공부라면 아무 것도 내세울 것이 없는 형편이었습니다. 그래서 그의 작품들 가운데는 미완성으로 남은 것이 많고 오늘날 대표작으로 꼽히는 것들 중에도 남의 손을 빌어 완성한 경우가 많습니다. 어쩌면 남들에 미치지 못한다는 생각에 자신만의 특별한 무엇인가를 찾았겠지요. 우리나라가 낳은 세계적인 비디오 아티스트 백남준이 어느 인터뷰에서 남들 다 잘하는 음악으로는 자신이 없어 남들 안하는 것을 열심히 찾다 보니 비디오 아트에 승부를 걸게 되었다는 고백을 해서 신선한 충격을 준 적이 있지만 모르긴 해도 무소르그스키의 심정이 이와 다르지 않았을 것입니다.

무소르그스키의 대표작이라면 단연 푸시킨의 원작을 오페라로 만든 보리스 고두노프와 피아노곡 전람회의 그림을 먼저 떠올리게 됩니다. 하지만 정작 그가 세상 사람들에게 외치고 싶었던 생각과 말들을 지금까지도 고스란히 담고 있는 것은 그의 노래들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 유명한 벼룩의 노래신학생같은 가곡들로 부패한 러시아의 정치와 종교를 풍자하고 비판했으며 트레파크농민의 자장가와 같은 노래들을 통해서는 고단하고 찌든 삶을 살고 있는 농민들의 모습을 그리고 있습니다.

 

누가 뭐라고 하던 내 맘대로 살겠다는 사람이었으니 평생 배짱이라도 편했을 것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가 않았습니다. 누구보다 상처받기 쉬운 영혼을 가졌으면서 억지를 부리고 강한 척하고 살았으니 그 마음고생이 오죽했으랴 싶기도 합니다. 그나마 술이라도 있었으니 커다란 위안이었을 것이고 음악 속에다 마음을 담을 수 있어 그 순간만큼은 행복했을 것입니다. 차라리 음악을 전혀 몰랐다면 세상 돌아가는 일에 그보다는 무딜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군인으로 조국에 충성하며 평범한 가정을 꾸리고 그럭저럭 살았겠지요. 아니 오히려 음악가가 되겠다고 처음부터 나섰더라면 세상 돌아가는 일에 신경 쓸 겨를도 없이 음악이 삶의 전부라고 생각하며 살았을지도 모릅니다. 그가 살았던 세상이 특별히 어지러웠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아랑곳하지 않고 꿋꿋하게, 혹은 뻔뻔스럽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지금이라고 그 때와 다르지는 않을 것입니다. 덜 떨어진 바보들이나 억울한 남의 일을 제 일이나 되는 것처럼 아파하고 힘들어 합니다. 그런데 이제 무소르그스키와 같은 돈키호테가 영 보이질 않습니다.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여워 말라는 푸시킨의 말을 곧이 곧대로 받아들였기 때문일까요? 사실은 너무 슬프고 노여워 견딜 수가 없다는 말인데 설마 그걸 잘못 알아들은 것은 아니겠지요. 무소르그스키의 피아노 모음곡 전람회의 그림가운데 한 곡 들으면서 이 시간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무소르그스키 : 모음곡 '전람회의 그림(Tableaux d`une exposition, 라벨 편곡)'. 프리츠 라이너(지휘), 시카고 교향악단(RCA LSC2201, 1957년 12월 시카고 심포니홀에서 녹음)

무소르그스키(Modest Petrovich Mussorgsky 1839-1881)는 러시아 민족주의(국민주의) 음악을 대표하는 ‘5인조’ 작곡가 중 한사람이다. 정규의 음악교육을 받지 않았음에도 독학으로 연마한 자신만의 독특한 화성과 대위법을 사용하여 담대하고 솔직한 실험적인 음악을 작곡, 드비시, 라벨 등 인상주의 작곡가는 물론 야나체크, 글라주노프, 프로코피에프, 스트라빈스키, 쇼스타코비치 등 근, 현대의 슬라브 작곡가들에게도 큰 영향을 미쳤다. 군인, 공무원 등 다양한 직업, 간질발작, 알코올 중독, 가난 등 질곡의 삶 가운데에서도 일생을 음악에 헌신하여 ‘민둥산의 하룻밤’(1867, 개작1872-74), 대작 오페라 ‘보리스 구도노프’(1868-69, 개작1871-72), ‘호반시나’(1873, 5막은 미완성), 피아노곡 ‘어린시절의 회상’(1865), 3개의 연가곡(1868-77), ‘벼룩의 노래’(1879) 등을 남겼다.

농노출신인 친할머니와 유모로부터 무소르그스키는 러시아 하층 사회의 생활을 이해하게 되며 이로부터 그는 하층민의 비애가 담겨있는 지극히 서민적이며 민속적인 주제를 독창적으로 음악에 담았다. ‘예술은 자기표현이라기 보다는 사람들과의 대화’라는 예술관과 휴머니즘에 바탕을 둔 그의 음악은 사실의 묘사나 인물의 성격, 심리 묘사가 뛰어나다. ‘전람회의 그림’도 사실적인 묘사와 독창적인 작곡기법(사실주의에 바탕을 둔 즉흥적 착상과 드라마틱한 연출)을 통해 그의 예술관과 민족주의적 실천의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전람회의 그림’이라는 표제가 붙은 이 작품은 원래 피아노 독주곡이다. 1922년 러시아 출신의 명 지휘자 세르게이 쿠세비츠키(Serge Koussevitzky 1874-1951, 1924-49년까지 보스톤 교향악단의 음악감독을 지냄)의 의뢰로 라벨이 관현악곡으로 편곡하여 널리 알려지면서 고금의 관현악곡은 물론 무소르그스키 작품 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것의 하나로 재탄생된 것이다.

‘전람회의 그림’은 무소르그스키의 절친한 친구이자 건축가-화가 빅토르 하르트만(1834-73)의 유작전에 전시된 10개의 스케치와 수채화를 직접 묘사한 모음곡(suite)이다. 1874년 작곡되었으나 그의 사후 5년 뒤인 1886년에 출판되었다. 곡의 배열도 대담하지만 작곡자 자신(관람자로서)을 곡중 하나의 관찰대상으로 보았기 때문에 간주곡 성격의 ‘프롬나드(promenade)’라는 독특한 연결 페시지(보행 주제)를 곡 중에 삽입한 것도 독창적이다. 1922년 라벨의 편곡이 가장 유명하며 스토코브스키, 아슈케나지, 헨리 우드, 호와스 등이 관현악 또는 관악으로 편곡했으나 이들은 라벨의 범주를 벗어나지 못한다.

라벨의 편곡을 회색톤의 원화에 컬러링하여 지나치게 프랑스적으로 변질되었다고 비평되기도 하지만 원곡이 주는 감동과 동질성을 유지하고 있으므로 원곡을 훼손한 것은 아니다. 라벨의 편곡은 원곡의 특징에 충실하며 관현악의 천재답게 그 묘를 살린 색채는 눈부신다.

 


 

글 : 홍승찬 교수
편집 : 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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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2.05.11 14:23 신고 [Edit/D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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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승찬 교수의 재미있는 클래식음악 이야기] 음악으로 마음을 나누었던 러시아의 거장들... 사회주의 체제하에서 클레식을 사랑했던 이들의 이야기.[홍승찬 교수의 재미있는 클래식음악 이야기] 음악으로 마음을 나누었던 러시아의 거장들... 사회주의 체제하에서 클레식을 사랑했던 이들의 이야기.

Posted at 2012.03.30 07:30 | Posted in 이건음악회 Talk Talk/홍승찬교수의 클래식 톡톡

 

 

 

홍승찬 교수의 클래식 음악(7)
음악으로 마음을 나누었던 러시아의 거장들

 

 

 

 

클래식 음악에서 20세기는 확실히 러시아 연주자들의 시대였습니다. 악기별로 최고의 연주자들을 나열하다 보면 둘 중의 하나가 러시아 출신이고 그들이 남긴 업적과 후광은 21세기에 들어선 지금도 길게 드리워져 있습니다. 얼마 전 세상을 떠난 로스트로포비치는 20세기 내내 첼로의 제왕이었고 유리 바슈메트는 지금도 여전히 비올라의 지존입니다.

 

 

비올라의 지존이라 불리는 유리 바슈메트

 

그런가 하면 바로 지난 연말 내한했던 세르게이 나카리아코프는 벌써부터 세인들을 경악시키면서 트럼펫의 역사를 새롭게 쓰고 있습니다. 이런 불가사의한 현상을 두고 혹자는 사회주의 소비에트 체제에서나 가능했던 소수 정예의 선발과 가혹한 훈련 때문이라고도 하지만 비단 그것 뿐만은 아닐 것입니다.

 

첼로의 제왕 로스트로포비치

 

이제는 우리 곁을 떠나고 없는 소비에트 시절의 거장들을 떠올려 보면 연주뿐만 아니라 다른 여러 가지 면에서 참으로 특별한 기억을 남긴 이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죽기 바로 전 우리나라를 다녀갔던 전설적인 피아니스트 스비아토슬라프 리히테르는 어떤 연주회에서든 악보를 펼쳐놓고 연주한 것으로 유명합니다. 더욱이 그 악보를 바로 위에서 비추는 한줄기 조명 말고는 무대나 객석 할 것 없이 일체의 빛을 차단해야 했습니다. 연주회장 밖에서의 유별난 점도 많았는데, 대표적인 것이 고소공포증이었습니다. 당연히 비행기 여행을 기피할 수밖에 없었고 그 때문에 해외로 연주여행을 나갈 때도 육로와 해로를 이용했다고 합니다. 땅덩어리가 넓은 러시아를 기차나 자동차로 벗어나려면 꼬박 며칠이 걸리기 마련이었는데, 오지를 여행을 하다가 날이 저물면 리히테르는 가장 가까운 마을에 숙소를 정하고 예정에도 없는 연주회를 열어 그곳 주민들을 초청하곤 했습니다. 물론 마땅한 연주회장이 없는 경우가 더 많았지만 피아노가 있고 사람들이 앉을 수 있는 자리만 있다면 촛불을 켜고서라도 피아노를 쳤습니다.

 

 

시골 피아노 연주회라... 이런 느낌 아니었을까요?

 

언젠가 시베리아의 어느 외진 곳을 지나다가 밤을 맞은 리히테르는 늘 하던 대로 그곳 주민들을 위한 조촐한 연주회를 열었습니다. 그 자리에는 그 누구보다 리히테르의 음악에 넋을 잃어버린 한 소년이 있었습니다. 그날의 감동을 잊지 못한 그 소년은 음악가의 길을 걷게 되고 훗날 세계적인 바리톤 가수로 명성을 떨치게 되는데 그가 바로 우리나라에도 다녀간 바 있는 드미트리 흐보로브스키입니다.

 

 

유별난 점이 많았던 피아니스트 스비아토슬라프 리히테르

 

그러고 보면 소비에트 시절, 러시아의 거장들 가운데는 이렇듯 고국산천의 방방곡곡을 다니며 연주회를 열었던 음악가들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물론 사회주의 체제하에서 당국의 방침과 지시를 따라 그렇게 하기도 했겠지만 여러 가지 정황을 고려할 때 상당수의 연주자들은 스스로가 원했던 것같고 심지어는 다른 활동을 줄이거나 없는 시간을 쪼개서 방문연주회에 힘을 쏟았던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20세기 중반 다비드 오이스트라흐와 쌍벽을 이루었던 또 한 사람의 바이올리니스트 레오니드 코간이 바로 그 대표적인 인물이 아닌가 싶습니다.

 

 

매니아들 사이에서 전설적인 인물! 레오니드 코간

 

매니어들 사이에서 코간은 확실히 오이스트라흐와는 대조적이면서 그와는 전혀 다른 매력을 가진 거장으로 추앙받고 있지만 일반적으로 그는 오이스트라가 군림하던 시대를 살았던 또 한 사람의 바이올리니스트일 뿐입니다. 바로 그 오이스트라흐가 심사위원을 맡았던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에서 우승을 하며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던 코간이었지만 내성적인 성격과 한 사람의 확실한 선전도구를 필요로 했던 소비에트의 정책으로 말미암아 늘 오이스트라흐의 그늘에 가려야 했습니다. 주로 국내 무대에서 활동을 하며 후학들을 양성하는 데 힘을 쏟았던 코간도 간간이 있었던 해외 연주회에서의 놀라운 성과와 반응이 알려지기 시작하면서 점점 더 주목을 받기 시작했고 마침내 그의 존재를 세상에 알렸던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의 심사위원으로 위촉되기도 했지만 58세의 아까운 나이로 세상을 떠나고 맙니다. 비인에서의 연주회를 끝낸 지 불과 며칠 후, 또 다시 러시아의 어느 곳인가로 연주여행을 떠나기 위해 홀로 기차에 몸을 실은 코간은 끝내 그 기차에서 내리지 못한 채 숨을 거두고 말았습니다.

 

음악이라는 것을 자신의 부귀영화를 위해 쓴 것이 아니라

나라를 위해서 그리고 평범한 사람들을 위해 쓴 러시아의 거장들...

이들이 있기에 러시아의 클래식 음악이 더욱 세계적으로 알려지지 않았나... 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글 : 홍승찬 교수
편집 : 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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