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승찬 교수의 클래식 음악 이야기] 연극, 발레, 춤[홍승찬 교수의 클래식 음악 이야기] 연극, 발레, 춤

Posted at 2018.05.16 14:29 | Posted in 이건음악회 Talk Talk/홍승찬교수의 클래식 톡톡

 

좋은 소설을 읽거나 잘 만든 연극을 보고나면 줄거리나 장면보다 등장인물이 오래도록 잊혀지지 않습니다. 한 사람의 성격과 처지로 말미암아 어쩔 수 없는 사건이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면서 또 다른 일이 벌어지고 그렇게 이야기와 삶이 펼쳐집니다.

"온 세상이 한갓 무대일 지니, 모든 남녀는 한낱 배우일 따름이다.(All the world's a stage, and all the men and women merely players.)" 셰익스피어의 희곡 '뜻대로 하세요(As you like it)'에 나오는 대사입니다.

 

출처 : https://www.pinterest.co.kr/pin/334110866077239435/?lp=true


베토벤은 죽음이 눈앞에 이르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연극(Comedia)이 끝났으니 친구들이여 박수를 쳐라!"고 외쳤다고 합니다. 운명에 맞서 자유와 불멸을 얻고자 그토록 치열한 삶을 살았던 그조차도 말입니다.

 

출처 : https://bit.ly/2KuZ0iT


연극(play)은 놀이(play)입니다. 한바탕 질펀하게 노는 겁니다. 연극 뿐만 아니라 우리가 하는 일이 다 그렇습니다. 아니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한 세월 잘 놀다 가면 그만입니다. 그렇게 사는 겁니다. 인생은 연극입니다.

 

도리스 데이의 노래 "케 세라 세라(Que sera sera)"의 후렴을 되뇌입니다. "Que sera, sera! Whatever will be, will be! The future's not ours to see! Que sera, sera!" 그렇습니다. 누구라서 미래를 알겠습니까. 때가 되면 어차피 알게 될 일입니다. 그러니 지금은 당장 나에게 주어진 역할에 최선을 다하며 기다릴 뿐입니다. 그게 바로 너나없는 우리네 인생입니다.

 

출처 : http://sanctionofstyle.com/que-sera-sera/


발레는 몸에 너무 잘 맞아서 아픈 옷이라고 말합니다. 슈투트가르트 발레의 수석무용수 강효정의 말입니다. 처음엔 몸에 꼭 달라붙고 끼어서 아프지만 나중엔 몸의 일부처럼 자연스럽게 느껴진다고 합니다. 아프지 않은 게 아니라 아픔마저 잊는 것이고 발레 없이는 살 수 없다는 겁니다.

 

발레는 투자 대비 확률이 가장 떨어지는 무모한 도전입니다. 성공에 절대 필요한 조건이 너무나 많고 다 갖추고도 피나는 훈련을 이겨내야 합니다. 자라면서 체형이 달라지거나 자칫 다치기라도 하면 돌이킬 수 없습니다. 혹시 성공한다 해도 무대에서 빛나는 시간이 너무나 짧습니다.

 

출처 : https://bit.ly/2Gl02Mf


발레의 묘미는 발끝에서 손가락 끝으로 이어지는 움직임에 있습니다. 하나 된 몸과 마음이 시선에 담기고 발끝의 움직임으로부터 손가락 끝으로 모아질 때 머리카락이 쭈뼛서는 전율을 느끼게 됩니다. 그 순간 생각이 멈추고 느낌도 무뎌져 딴 세상에 있는 기분이 듭니다.

 

감출 데가 없고 숨길 수도 없는 것이 춤입니다. 옷으로 온통 가려도 맨 몸뚱아리가 다 보이고 온갖 걸로 몽땅 둘러싸도 뿜어나오는 몸짓을 가둘 수가 없습니다. 말이 없이도 말을 걸어야 하니 꾸미지 말아야 합니다. 군더더기 하나 없어야 눈길을 사로잡을 수 있습니다.

 

출처 : https://bit.ly/2rIF9Fa


춤은 몸입니다. 그리고 몸의 움직입니다. 그걸로 다른 무엇을 보여주고 말고는 그 다음 생각할 일입니다. 몸짓 말고는 달리 길이 없고 그게 가장 낫다고 믿는다면 춤으로 해야 합니다. 말로 해도 될 것을 굳이 몸으로 하겠다면 그만한 까닭이 있어야 합니다. 춤은 몸짓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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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승찬 교수의 클래식 음악 이야기] 예술가란? 예술계의 3대 왕자병은 누구인가?[홍승찬 교수의 클래식 음악 이야기] 예술가란? 예술계의 3대 왕자병은 누구인가?

Posted at 2018.04.25 16:28 | Posted in 이건음악회 Talk Talk/홍승찬교수의 클래식 톡톡

 

예술계의 3대 왕자병이 있다고 합니다. 마에스트로와 발레리노, 그리고 테노르입니다. 지휘자는 늘 오케스트라가 따라오지 못해서 문제지 스스로는 누구보다 대가라고 생각합니다. 수 많은 발레리나들에 둘러싸여 그들을 들었다 놓았다 하는 발레리노는 눈에 보이는 게 없습니다. 테너는 세상 모든 여인들이 자신의 노래에 넋을 잃을거라 착각하며 우쭐댑니다.

 

출처 : 베토벤 바이러스


세상에는 잘난 예술가와 잘난 척하는 예술가가 있지만 못난 예술가는 없습니다. 못나 보이는 예술가가 있을 뿐입니다. 잘난 척해서 못나 보이기도 하고 못난 짓을 해서 못나 보이기도 합니다. 그러니 스스로자랑스러워야 하고 누구에게도 아쉬울 것이 없어야 합니다. 예술가는 모두가 다 잘났습니다.

정말 처세에 능한 예술가는 예술 말고 다른 건 전혀 모르는 척 합니다. 예술이 가장 큰 무기란 걸 잘 알기 때문입니다. 예술이 모자라니 다른 방법을 찾는겁니다. 처세의 기본은 언제 어디서나 "기브 앤 테이크"입니다. 더러는 불쌍한 척 도와달라는 처세도 있습니다. 최악의 처세는 잘난 척입니다.

아티스트들 가운데 누군가를 두고 그 사람이 어떠냐고 물으면 "참 좋은 사람이지"라는 대답을 듣는 경우가 있습니다. 실력이 별로란 얘기입니다. 성격 착하면서 예술가로 뛰어나긴 힘든 것 같습니다. 우선은 예민해서 그렇고 모진 데가 없으면 날마다 반복되는 길고 지루한 연습을 견딜 수가 없을 겁니다.

 

출처 : PIXABAY


남달리 뛰어난 예술가에게서 찾을 수 있는 가장 큰 특징은 집중력입니다. 때문에 같은 시간을 들여도 성취가 큽니다. 뭐든 빠지면 헤어나지 못합니다. 도박이나 사랑에 빠져 목숨거는 경우도 있습니다. 어딘가 빠져서 보는 세상은 우리가 아는 것과 다를 겁니다. 제 정신이 아닌 까닭입니다. 그래서 더 잘 보고 느끼는 겁니다.

위대한 예술가가 마지막 작품을 미처 끝내지 못하고 눈을 감으면 마치 있어서는 안되는 일인 것처럼 호들갑을 떱니다. 그러나 사람은 그 누구도 주어진 삶의 시간을 알지 못합니다. 그래서 날마다 뭔가를 잔뜩 벌여놓고는 마무리를 짓지 못합니다. 누구에게나 인생은 미완성입니다.

 

출처 : PIXABAY


위대한 예술가의 삶을 말하라고 하면 늘 '이러저러해서 성공했다'거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저런 업적을 남겼다'고들 합니다. 그리고 결국 그가 이룩한 놀라운 성취가 후대에도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는 말로 마무리를 하기 마련입니다. 이는 정작 알고자 하는 삶의 굴곡은 온 데 간 데 없고 예술만 덩그러니 남아 삶을 대신하는 셈이고 예술이 온통 삶의 이유며 목적이었기에 위대한 삶이었노라 말하는 것과 다름이 없습니다.

과연 그럴까요? 정말로 그랬을까요? 그 자신도 그렇다고 생각했을까요? 사람들이 그렇게 알아주길 바랬을까요? 사람들은 누구나 견디기 힘든 슬픔과 참을 수 없는 아픔을 겪기 마련입니다. 시간이 지나면 어떻게든 이겨내기 마련이라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는 걸 우리는 잘 압니다.

그래야 하니 그렇다는 말이고 그랬으면 하고 바라는 마음인 것이지요. 그래서 그저 그런 척하려니 남들보다 더 열심히 살면서 속으로만 힘겨워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후벼 판 가슴에 쌓여서 짓눌린 쓴 맛, 신 맛, 떫은 맛 나는 삶의 찌꺼기가 썩고 삭고 문드러져 곰삭은 맛이 제대로 들어야 참 예술로 거듭나는 겁니다.

 

출처 : PIXABAY


젊어서 귀가 먹어 들리지 않았던 베토벤은 만 천여 장이 넘는 필담을 메모로 남겼고 오늘날 우리는 그것들을 통해 그의 생각과 마음을 들여다보고 헤아릴 수 있습니다. 그리고 감히 짐작컨대 그렇듯 세상과의 단절이 있었기에 철저한 고독 속에서 온전한 자유를 얻었을 것이고 그로 말미암아 세상의 소리가 아닌 내면의 소리에 귀 울일 수 있었을 겁니다.

결핍이 곧 충만이요 충족이 곧 결여입니다. 내게 없는 것을 탓하기에 앞서 그 때문에 얻는 것을 찾아야 합니다. 번잡한 세상에서 벗어나 잠시 내면의 소리를 들어보세요. 그리고 그 소리에 마음을 열고 몸을 일으켜 손을 뻗고 발걸음을 옮겨야 합니다. 그것이 곧 내가 사는 까닭이기 때문입니다.

 

 

 

  1. 정성진
    내게 없는 것을 탓하기에 앞서 그 때문에 얻는 것을 찾아야 합니다.

    마음에 콕 박히는 말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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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승찬 교수의 클래식 음악 이야기] 오스트리아의 아름다운 휴양도시에서 펼쳐진 브레겐츠 오페라 축제[홍승찬 교수의 클래식 음악 이야기] 오스트리아의 아름다운 휴양도시에서 펼쳐진 브레겐츠 오페라 축제

Posted at 2018.04.24 13:31 | Posted in 이건음악회 Talk Talk/홍승찬교수의 클래식 톡톡

 

브레겐츠는 해마다 열리는 오페라 축제가 아니었다면 지금도 우리에게 생소한 이름이었을 것이다. 오스트리아와 독일은 물론 스위스까지 펼쳐진 드넓은 ‘보덴 제’(See는 독일어로 호수를 뜻한다)를 끼고 있는 오스트리아의 아름다운 휴양도시이지만 비슷한 조건의 마을이나 도시들은 너무나 많아 브레겐츠를 특별히 기억할 이유가 따로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마도 그들만의 특별한 무엇인가가 필요했을 것이고 그런 고민 끝에 세상에서 하나 뿐인 오페라 축제를 만들었을 것이다.


출처 : https://www.atlasofwonders.com/2013/04/floating-stage-bregenz-festival.html


1946년에 시작된 브레겐츠 페스티발은 호숫가에서 펼쳐지는 최초의 오페라 축제이다. 이후 비슷한 시도들이 뒤를 이었지만 브레겐츠가 가장 먼저였고 그 후로도 꾸준히 변화와 발전을 모색하여 그 누구도 따를 수 없는 규모와 명성을 자랑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호수에 큰 배를 띄워 갑판 위에서 공연을 하는 것이 축제의 시작이었지만 그것이 보덴 제를 찾는 관광객과 휴양객들에게 큰 호응을 얻자 1948년부터는 호수 위에 고정적인 무대를 세웠다. 그리고 1979년에 이르러 지금과 같은 첨단의 시설을 완성하였고 1980년에는 호숫가에 페스티벌 하우스를 따로 만들어서 해마다 7월 중순부터 한 달 동안 오페라 페스티발을 열고 있다.

 

 

출처 : https://www.atlasofwonders.com/2013/04/floating-stage-bregenz-festival.html


 

호사가들은 브레겐츠 페스티발을 두고 잘츠부르크 페스티발, 바이로이트 페스티발과 함께 세계 3대 음악축제라고 말하곤 하지만 솔직히 유서 깊은 유럽의 다른 축제들에 비해 브레겐츠 페스티발에 대한 이미지는 썩 좋은 편이 아니었다. 말하자면 기발한 아이디어로 휴양도시 브레겐츠에 관광객들을 끌어들이자는 의도가 너무나 분명했기 때문이었다. 심지어는 오락영화의 대명사라고 할 수 있는 ‘007 시리즈’에까지 등장하는 것을 보고 콘텐츠보다 마케팅이 앞서는 현대 쇼 비즈니스의 전형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리고 어느 여름 처음으로 브레겐츠를 방문하여 남들보다 일찍 페스티발이 열리는 호숫가 무대를 찾았을 때도 별다른 감흥을 느낄 수가 없었다. 호텔에 여장을 풀고 시내를 한 바퀴 돌아보았지만 크게 눈길을 끄는 곳이 없었고 호텔에서 소개한 어느 레스토랑에 들러 이른 저녁 식사를 마쳤지만 그다지 기억에 남을 만한 맛은 아니었다. 그래서 얼른 다시 호텔로 돌아와 정장으로 갈아입고는 일찌감치 페스티발이 열리는 공연장으로 향했던 것이다.

 

 

출처 : https://www.atlasofwonders.com/2013/04/floating-stage-bregenz-festival.html

 

그런데 별 다른 할 일이 없어 일찍 찾은 호반의 공연장에서 기대치 않은 경험이 기다리고 있었다 탁 트인 무대를 바라보는 넓은 객석에 홀로 앉아 커다란 무대와 어우러진 호수 너머 풍경을 바라보는 기분은 참으로 묘했다. 아무 것도 가릴 것이 없어 밖에서도 볼 수 있는 무대는 이미 공연 전의 기대와 호기심을 자아내는 대상은 아니었지만 마치 오래 전부터 그것에 있었던 기념비적인 조형물인 것처럼 호수 위에 떠서 유유히 하늘을 이고 있었다. 이윽고 해가 저물면서 관객들도 하나 둘씩 객석을 채우기 시작했고 호수 저편 린다우에서 다가온 배가 기슭에 닿아 한 무리의 사람들을 내려놓자 조금 전까지의 호젓하고 적막한 공기가 흩어지듯 사방으로 날리는 것 같았다. 저무는 해가 하늘과 호수를 점점 더 붉게 물들일 즈음 새하얀 조명이 들어오는 순간은 마치 위대했던 한 시대가 가고 다른 시대가 오는 듯한 착각에 빠질 만큼 환상적이었다. 이윽고 펼쳐진 오페라는 이미 수 없이 보았던 푸치니의 ‘토스카’가 아니었다. 익숙한 스토리와 귀에 익은 음악은 온 데 간 데 없이 그저 인간을 둘러싼 대자연에 바치는 외침이고 몸짓일 뿐이었다.

 

 

출처 : https://www.atlasofwonders.com/2013/04/floating-stage-bregenz-festival.html

 


베로나 야외극장에서 베르디의 ‘아이다’를 볼 때와는 또 다른 감동이 있었다. 그 때는 소리가 너무나 맑고 또렷해서 멀리서도 마치 바로 앞에서 보는 듯한 착각에 흠칫 놀랐었다. 베로나에서는 고대 로마의 위대한 역사와 그것이 이룩한 문명에 감탄했다면 베르겐츠에서는 인간이 도저히 어찌 할 도리가 없는 자연의 섭리와 그것에 맞서도 끝내 어우러지고 마는 인간의 운명에 저절로 빨려드는 기분이었다. 세상에 하나 뿐인 소리를 들려주었던 베로나와는 달리 베르겐츠는 세상에 하나 뿐인 장관을 보여주었다. 그들이 처음에 의도했던 그대로 세상에 하나 뿐인 가치를 만들어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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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승찬 교수의 클래식 음악 이야기] 소설, 시, 노래[홍승찬 교수의 클래식 음악 이야기] 소설, 시, 노래

Posted at 2018.04.19 13:01 | Posted in 이건음악회 Talk Talk/홍승찬교수의 클래식 톡톡


무라카미 하루키는 소설가를 일컬어 "불필요한 것을 일부러 필요로 하는 인종"이라 말했습니다. "소설 한 두편 쓰는 것은 어렵지 않지만 소설가로 먹고 사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이라면서도 "뭔가 써내는 것을 고통으로 느낀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고 말합니다.

 

출처 : http://www.pentabreed.com/sub/view/?idx=300


"바닷가에 시체가 밀려오면 파리가 가장 먼저 달려든다. 시인은 파리다." 이성복 시인의 말입니다. 시인 라포르그는 "현실의 삶은 비열한 것이지만 다행히도 그것이 시에서 나타날 때는 카네이션만큼이나 아름다운 것"이라 말했습니다.

 

"청계천 노점에서 막걸리 몇 잔에 얼큰해져

돌아오는 길

꼭 거쳐야 할 경유지인 것처럼 그 불빛을 찾아들어, 글만 쓰면 배가 고파진다고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주제에 글을 써야 하느냐고, --, 술주정 같은 푸념을 했을 때

그 서점의 여자는 묵은 책의 먼지를 털 듯 말했었다. 쓰고 싶은 사람에게 글을 쓰게 하세요--. 라고

그 말을 듣는 순간, 내 머리 속은 하얗게 비어 왔었고

눈앞이 아득히 흐려졌었다"

 

김신용의 시 "그 불빛"입니다.

 

출처 : 씨씨제로포토


시인도 아니고 소설가도 아니지만 알듯 말듯, 아는 듯 모르는 듯, 날이면 날마다 살려고 쓰면서도 죽자고 한숨 짓는 그 누군가의 넋두리인 것만 같습니다.

 

소설보다 시가 더 절실합니다. 이야기로 길게 풀어쓸 새도 없이 내지르는 외마디 비명입니다. 차마 말로 다 할 수 없어 삼키는 겁니다. 기쁘다 못해 울고 너무 슬퍼 웃는 겁니다. 그러니 밑도 끝도 없는 겁니다. 앞뒤를 가린들 무슨 소용일까요. 견디지 못해 나를 묻어버리는 겁니다.

 

음악보다, 시보다 노래가 먼저입니다. 음악 없는 노래는 있어도 노래 없는 음악은 없습니다. 시 없이 노래할 수 있지만 노래 아닌 시는 없습니다. 노래는 바람 같이 불고 물처럼 흐릅니다. 느낌이 스치고 마음이 가는 곳에 노래가 있습니다. 머리가 텅 비어서 생각이 사라집니다.

 

노래는 말 못하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되어야 하고 이름 모를 사람들의 이름이 되어야 합니다. 불러도 대답 없는 이름을 노래로 외쳐 일깨우고 차마 입술이 떨어지지 않아 속으로 삼킨 말들을 가락에 실어 흘려보내는 겁니다. 엉킨 삶을 풀어서 꿈을 짜는 겁니다.

 

 

출처 : https://www.youtube.com/watch?v=kCp2cO_TW0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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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승찬 교수의 클래식 음악 이야기] 나카토오와 리히테르의 인연[홍승찬 교수의 클래식 음악 이야기] 나카토오와 리히테르의 인연

Posted at 2018.03.20 07:30 | Posted in 이건음악회 Talk Talk/홍승찬교수의 클래식 톡톡



일본 굴지의 공연기획사 재팬아츠의 나카토오 회장을 초청하여 특강을 마련한 적이 있습니다한국예술종합학교 학생 전체를 대상으로 한 강연이었지만 일본의 공연예술산업과 예술경영의 현황이 주제였기에 특별히 예술경영전공 학생들의 참여와 관심이 컸습니다아마도 학생들은 이 강연을 통해 일본의 공연예술그리고 예술경영 현장을 한 눈에 들여다 볼 수 있는 정보와 데이터를 얻으려 했겠지만 나카토오 회장은 두 시간이 넘는 강연시간 내내 어떤 예술가와 어떻게 인연을 맺어 지금까지 그것을 어떻게 지속하고 있는가를 이야기했습니다.


Japan Arts 홈페이지 캡쳐 


그 가운데 특별히 기억에 남는 것은 20세기의 전설과도 같은 러시아의 피아니스트 리히테르와 나카토오 회장과의 인연입니다리히테르를 아는 누군가의 주선으로 두 사람이 함께 그 대가를 만날 수 있었지만 만나서 헤어질 때까지 그에게는 한 마디 말도 건네지 않았을 뿐더러 시선 한 번 주지 않았다고 했습니다속으로는 상당히 기분이 언짢았지만 전혀 내색하지 않았고 정중하고 깍듯하게 인사를 하고 돌아서는 순간 그와의 인연은 이것으로 끝이구나 생각했다고 합니다그런데 며칠 후 그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는 것입니다그렇게 다시 만났더니 전과 달리 먼저 웃으며 다가와 악수를 청했고 그 자리에서 전속 계약을 수락했다고 했습니다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리히테르는 그런 식으로 상대를 시험한 것이었고 그런 상황에서도 시종 여유와 평정을 잃지 않는 그를 평생 신뢰할 수 있는 동반자로 받아들였던 것입니다.

 

스뱌토슬라프 리흐테르 : 피아노 연주자


리히테르는 고소공포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그래서 절대 비행기를 타지 않았는데 일본공연을 갈 때면 늘 기차나 자동차를 타고 블라디보스톡으로 이동해서 그곳에서 요코하마까지는 배를 이용했다고 합니다한 번은 그가 직접 자동차를 운전해서 블라디보스톡으로 가던 중에 그만 그 자동차가 고장이 났습니다그런데 이 괴팍한 거장은 달리 손써 볼 생각도 않고 바로 일본으로 전화를 했습니다그리고는 나카토오 회장에게 사태의 해결을 요구했던 것입니다생각하기에 따라서는 말도 안 되는 억지일 수 있었지만 회장은 곧바로 리히테르가 있는 곳에서 가장 가까운 정비공장을 물색해서 수리를 끝낼 수 있도록 조치했습니다그런데 얼마지 않아 또 고장이 났다는 연락을 받았고 그러자 이번에는 그곳에서 가장 가까운 일본 자동차 대리점에 연락해서 숫제 새 자동차로 바꿔주었다고 합니다그리고 이런 정성으로 쌓은 신뢰 때문에 회사가 정작 어려움에 처했을 때 리히테르는 평소와는 비교도 되지 않은 적은 액수의 출연료를 자청하여 전보다 더 많은 무대에 기꺼이 서 주었고 그 덕에 회사도 결국 위기를 벗어날 수 있었다고 했습니다.

 

출처 : 위키피디아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머리 속으로는 우리의 현실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당시는 건국 이래 최대의 경제난국이라 일컬었던 IMF 사태가 벌어졌을 때였고 그로 말미암아 예정되었던 초청공연들이 무더기로 취소되었습니다이미 계약까지 마친 상태였지만 공연을 성사시키는 것보다는 계약서에 명시된 위약금을 무는 것이 이익이라는 얄팍한 계산 때문이었습니다물론 그런 가운데도 약속을 지키기 위해 손실을 감수하면서 예정된 공연을 강행한 사례도 없지는 않았습니다. 그런 공연 가운데 하나는 출연자 스스로가 약속된 출연료의 상당 액수를 포기하였는데 뜻밖에도 그 공연이 매진되어 기획사를 살렸다는 미담이 들리기도 했습니다아마 취소된 공연들도 주최 측이 성의를 다해 어려운 상황을 설명하고 설득했다면 출연자들로부터 양해와 양보를 얻어내고 더불어 신뢰도 얻고 수익까지 올렸을 지도 모릅니다이렇듯 약속을 지키지 않는 일이 많았기 때문에 우리나라를 찾은 해외의 유명 아티스트들 중에는 터무니없이 많은 액수를 요구하는가 하면 올 때마다 기획사를 바꾸기는 경우도 있다는 말도 들었습니다

 

특강이 끝나고 질문을 받는 순서가 되자 강연 내용과는 무관한 질문들이 쏟아졌습니다. 그리고 질문의 대부분 구체적인 수치들을 요구하는 것이었습니다예컨대 공연에서 얻은 전체 수입 가운데 티켓 판매가 차지하는 비중이 얼마냐혹은 해외 아티스트들을 초청할 때 구체적으로 어떤 조건을 제시하는가를 묻는 질문들이었습니다학생들은 나카토오 회장으로부터 흥행의 비법을 듣고 싶었습니다. 현실에 그대로 대입하면 입맛에 딱 맞는 해답이 나오는 마법과도 같은 공식을 원했던 것입니다

 

출처 : https://www.giggabpodcast.com/2017/09/05/multiple-bands-weather-issues-tip-jars-giggab-130/


질문을 받은 나카토오 회장의 태도가 인상적이었습니다자신의 회사와 관련된 구체적인 사례와 수치를 요구하는 질문이 있을 때마다 배석한 관계자를 불러 확인하거나 대신 답변하게 했습니다그리고 자신은 개별적인 공연기획에는 직접 관여하지 않는다는 말을 덧붙였습니다대신 각 팀 별로 구체적인 기획안이 모아지면 회의를 통해 가부를 결정하거나 조정을 거치게 되는데 그때 자신은 다만 조정자의 역할을 할 뿐이라고 했습니다각각의 공연은 철저하게 각 팀의 주도하에 이루어지며 재원이나 인력 등 여러 가지 필요한 제반 사항은 관리부서의 협조를 얻어 충당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난세를 평정하여 에도 시대를 열었던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세 등급으로 사람을 나누어 그 됨됨이를 따졌다고 합니다가장 낮은 단계에 있는 사람은 어떤 일에 임할 때 스스로가 앞장 서 그 능력을 다 소진하는 사람이고다른 사람의 힘을 빌어 일을 도모하는 사람이 그보다는 낫다고 했습니다하지만 가장 높은 수준에 있는 사람은 다른 사람의 힘 뿐만 아니라 지혜까지 활용한다고 했으니 이것이 바로 도쿠가와 이에야스 그 자신이었습니다. 그날 나카토오 회장의 모습을 보면서 문득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떠올랐습니다.


  

  1. 정성진
    서로를 믿을 수 있다는 것, 인생을 살면서 이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항상 느끼며 삽니다. 나는 누구를 신뢰할 수 있는가도 중요하지만, 나를 신뢰하는 사람이 몇명이나 있는지 되돌아 보니 참 부끄러울 따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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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승찬 교수의 클래식 음악 이야기] 문화란?[홍승찬 교수의 클래식 음악 이야기] 문화란?

Posted at 2018.02.27 07:30 | Posted in 이건음악회 Talk Talk/홍승찬교수의 클래식 톡톡

 

사람들은 흔히 이제 막 사회에 첫발을 내딛는 초년생에게 자신이 속한 어떤 곳에서든 없어선 안될 존재가 되라는 말을 덕담으로 합니다. 물론 처음에는 그래야겠지요. 그런 마음으로 일을 배워야겠지요. 그런데 우리는 나이가 들면 달라져야 한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 듯 싶습니다.

 

지금 있는 곳이 어디든, 언젠가는 반드시 떠나기 마련이라면 내가 없어도 남은 사람들이 아무런 불편이나 지장이 없도록 꼼꼼하게 챙기고 준비해야겠지요. 이렇듯 누구나 꼭 해야 할 일임에도 소흘하고 허술한 걸 보면 어떨 때는 몰라서가 아니라 알면서도 모른 척 하는 건지도 모릅니다. 밀려나기 싫어서, 휘두르고 싶어서 언제까지고 나만 할 수 있는 일을 움켜쥐고 놓지 않으려는 마음일 수도 있겠지요. 자식과 혈육에게는 뭐라도 남겨서 물려주려고 안간힘을 쓰면서 집 밖에서 몸 담고 있는 직장이나 다른 공동체를 떠날 때는 그렇지가 않은 경우가 더 많습니다.

 

출처 : https://www.lonelyplanet.com/bookings


물론 그 누구도 피붙이만큼 애틋할 리야 없겠고 살아서 떠나는 마음과 죽어서 떠나는 마음이 같을 수는 없겠지요. 그래도 사람과 사람이 만나 무언가를 함께 하는 마음이 이래서는 안됩니다. 그리고 아무리 부모 노릇, 가장 노릇이라고 해도 물질로 그 빈자리를 채울 수야 없는 노릇입니다. 그것 또한 미련이고 집착이니 버려야 할 욕심입니다. 혼자서만 다 짊어지려 하지 말고 각자의 삶과 일은 혼자서도 알아서 잘 꾸릴 수 있도록 다독이고 다그쳐야 합니다. 더불어 스스로가 늘 좋은 본보기가 되어 다른 이들이 저절로 따라 하도록 만들어야 합니다. 이런 마음가짐이 모두에게 고스란히 물려져 거듭 되풀이된다면 그 가운데 누구 하나 없다고 해서 아무도 흔들리거나 엇나가진 않을 겁니다.

 

이것이 바로 전통의 힘입니다. 몸담은 곳이 어디든 우리는 좋은 전통을 만들어 바로 세우려 힘을 써야 하며, 이미 그런 전통이 있다면 그걸 가꿔서 물려주려 노력해야 합니다. 이렇게 한 사회 공동체의 구성원들이 공유하게 되는 가치와 신념, 그로 말미암은 행위 모두를 일컬어 문화라고 하니 우리 모두는 누구나가 문화의 창조자이고 수호자인 셈입니다. 내가 없어도 잘 돌아가는 세상은 내가 아니라 문화가 만듭니다.

 

문화는 소통입니다. 말이 통하고 글이 통해 서로 느낌과 생각을 나누는 겁니다. 그래서 뜻이 하나로 모아져 함께 뭔가를 해내겠다는 게 문화이고 그렇게 만들어져 모두가 누리고 있는 것이 문명입니다. 문화는 혼자가 모두가 되는 것이고 모두가 하나를 품는 겁니다. 바람직한 문화가 삶의 보람이자 긍지가 되는 세상을 꿈꿉니다.

 

출처 : https://www.emaze.com/@AORFIIIZO/mirar-desde-la-comunicacin


음악이 좋고 예술이 좋으니 음악가와 예술가는 또 얼마나 좋은지 모릅니다. 그래서 한 때는 그들과 가까이 지내면서 참으로 많은 것들을 함께 하며 서로 나누기도 했습니다. 그러면서 그들의 생각과 삶을 더 잘 알게 되었고 그로 말미암아 음악과 예술을 더 깊이 알게 된 것도 사실입니다. 그런데 이제 더는 다가서지 않습니다. 떨어져서 지켜보며 걱정하고 응원합니다. 인연이 닿아 기회가 생기면 힘든 일을 돕고 좋은 일을 거들 따름입니다. 정말로 좋아하면 그래야 한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있는 듯 없는 듯 곁을 지켜야 오래 간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혼자서만 마음 속 깊이 품은 사랑이라야 식지 않고 늘 따뜻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술경영의 궁극적인 목표는 언젠가는 더 이상 따로 경영에 힘쓰지 않아도 예술 스스로 잘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경영이 없어도 되는 예술을 꿈꾸는 겁니다. 그렇다면 예술이 꿈꾸는 세상은 무엇일까요? 예술이 없어도 우리의 삶 그 자체가 충분히 아름다운 세상입니다.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의 생각과 말과 행동이 한 결 같이 맛깔나고 멋스러워 보고 듣고 만지며 느끼는 모든 것들이 다 아름다운 세상입니다.

 

출처 : http://www.theviveur.com/travel/tips-going-road-trip/


아마도 내가 존재하는 이유도 이와 다르지 않을 거라 생각합니다. 내가 속한 그 어느 곳이나 알고 지내는 모든 사람들이 내가 없더라도 그들 나름의 삶을 보란 듯이 잘 꾸려가는 것이겠지요. 있을 땐 마치 없는 것처럼 잘 섬기고 두루 보살피다가 때가 오면 멀찌감치 물러서서 지켜보는 겁니다. 잠시 허전하겠지만 누군가 곧 빈자리를 채우고 서로 애틋했던 마음은 문득 떠오르다 그리움으로 남는 겁니다. 나를 사른 불꽃은 어느덧 사라지고 온기만 가득 남기고 떠나는 겁니다.

 

참 좋은 것부터 훌훌 털어버려야 합니다. 정말 좋아하는 사람부터 훨훨 날아가게 내버려두어야 합니다. 애틋할수록 놓아야 합니다. 그래야 싫은 일들도 아무렇지 않고 미운 사람도 덤덤할 수 있습니다. 죽고 못살 만큼이나 살가운 것들도 다 떠나보낸 바에야 이런들 어떠하며 저런들 어떠하겠습니까. 너도 가고 나도 가는 걸 붙들면 누구를 붙들겠습니까. 부둥켜 안으려니 뭐라도 잡으려고 안간힘을 다합니다. 매달려서 떨어지지 않으려고 남의 가슴을 자꾸 후벼팝니다. 그만큼 새겼으면 덮어두고 묻어두어야 할 일을 자꾸 들추어서 들쑤십니다. 땅을 파고 씨를 뿌렸으면 다시 흙을 덮고 묻어야 싹이 납니다. 무엇이든 차면 기울고 누구든지 오면 가는 것이 만물의 이치고 우주의 섭리거늘 사람만 이를 벗어나려 허우적거립니다. 힘을 빼야 물에 떠서 헤엄을 칠 수 있고 마음을 비워야 삶이 가벼워 뜻을 펼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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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승찬 교수의 클래식 음악 이야기] 삶이란?[홍승찬 교수의 클래식 음악 이야기] 삶이란?

Posted at 2018.02.21 07:30 | Posted in 이건음악회 Talk Talk/홍승찬교수의 클래식 톡톡

사람들은 자꾸 젊게 살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몸은 물론이고 마음까지도 말입니다. 다들 그러니 이제 늙은이가 잘 보이지 않습니다. 없어서 그런 게 아니라 숨어서 보이지 않습니다. 젊음만 좋다고 하니 젊은 척이라도 해야 하는 모양입니다. 젊어서 젊게 살지 못해 나이 들어 뒤늦게 젊음을 찾는 이들도 있습니다. 이래저래 젊음만 쫓다 보니 아무도 늙은이가 해야 할 일을 하려 들지 않습니다. 찾은 것, 가진 것, 누린 것들을 나누고 베풀고 물려줘야 하거늘 아직도 더 얻고자 더 힘쓰고 더 다그쳐서 더 나아가려 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함으로써 나와 가족은 물론 나라와 지구까지도 두루 평안해지리라 믿습니다.

 

출처 : https://1boon.kakao.com/ppss/58998923e787d00001489f6b


사람 사는 세상도 자연의 생태계와 마찬가지로 각각의 구성원들이 나름의 자리를 지켜서 주어진 역할을 제대로 할 때 균형과 조화를 이루어 건강하게 공존하여 유지될 수 있습니다. 지금의 세태는 마치 초식 동물이 육식을 하겠다고 나서는 것과 다름이 없습니다. 고기의 육즙만 생각하다 보니 사냥의 처절함은 안중에도 없나 봅니다. 이처럼 모두가 고기만 먹으려 들면 육식동물만 득실거려 서로 물어뜯어야 한다는 사실조차 잊었나 봅니다. 사냥은 힘들고 번거로우니 남이 잡은 먹잇감만 가로채려는 약삭빠른 가짜 젊은이들이 판치는 세상입니다.

 

"나이를 먹는 것도 기술이 필요하다." 프랑스의 작가 앙드레 모루아의 말입니다. 기술이 그저 얻어질 리가 없지요. 날마다 갈고 닦아야 합니다. 나이 먹음에 익숙해져야 하고 나이에 따라 달라지는 역할과 처신에도 적응해야 합니다. 나이에 맞는 마음가짐과 몸가짐을 늘 생각하고 실천해야 합니다. 나이가 벼슬이 아닌 다음에야 자랑할 일도 아닙니다. 그렇다고 부끄러워서 숨겨야 할 일은 더더욱 아니지요. 언제나 그랬듯이 나의 참 모습을 찾아서 있는 그대로 담담하게 보여줄 수 있어야 합니다.

 

이제서야 망설이는 일이 많이 줄었습니다. 무슨 일을 벌이면 어떻게 될지 알아서 그런 게 아니라 어차피 알 수 없으니 그럴 필요가 없다는 걸 깨달은 겁니다. 어릴 땐 몰라서 답답했는데 나이 드니 정말로 그게 얼마나 좋은지 모르겠습니다. 한 때는 안답시고 온 데 다 끼어들며 참견하고 돌아다녔지만 지금은 한 눈 팔지 말고 그저 내 앞에 주어진 일만 하나씩 차근차근 힘 닿는 데까지 해야지 다짐합니다. 그것 말고 달리 할 일도 없는 데다가 그것만으로도 나날이 벅차고 힘겹기 때문입니다.

 

출처 : https://www.youtube.com/watch?v=-YhDA61r5WM


그럴 듯한 무언가를 찾는다며 알지도 못할 그 끝을 이리 재고 저리 따지느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세월이 얼마인지 모릅니다. 그러다 겉만 번지르르한 입발림에 솔깃해서 허튼 짓 하느라 허둥대던 나날도 하루 이틀이 아닙니다. 그래서 아쉽거나 안타깝다는 것이 아니라 그 때는 그럴 수 밖에 없었다는 것이고 지금이라고 크게 다를 리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자꾸 하다 보면 조금은 나아지겠지 믿으며 느긋한 마음을 가지게 됩니다. 서두르지 않지만 주저하지도 않습니다. 그저 잔잔하고 담담합니다. 언제까지나 이대로일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지금 이 순간만큼은 자유롭고 평화롭습니다. 그 다음은 그 누구도 알 수가 없으니 이 보다 더 좋을 수는 없습니다.

 

사노라면 늘 그땐 왜 미처 몰랐는지 아쉬워하기 마련입니다. 바로 엊그제 일도 그렇지만 한참을 지난 일이라고 다르지 않습니다. 나이가 들수록 옛일이 점점 또렷해지고 날이 갈수록 회한도 더더욱 깊어만 갑니다. 이제는 같은 일을 두번 다시 만날 수 없겠거니 짐작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누구나 옛일을 날마다 되새기지는 않습니다. 어쩌다 문득이면 몰라도 아픈 기억을 붙들어 하나하나 곱씹는 건 쉬운 일이 아닙니다. 흐뭇한 일이 아니라 안타까운 일이니 그렇고 내 잘못에서 비롯되었다면 더욱 더 그렇습니다. 깨달았으면 무엇이 어떻게 잘못되었는지를 찾아서 남기고 알려야 합니다. 스스로 되풀이하지 않으려는 마음이 먼저겠지만 누구라도 그런 일을 만나면 슬기롭게 풀어갈 수 있도록 어떻게든 도와야 하기 때문입니다. 사람만이 지난 시간을 되돌아봅니다. 잘못을 깨달아 고치려는 것도 사람뿐입니다. 그걸 오래 남기고 널리 알려서 문화가 되었고 문명으로 꽃피었습니다.

 

출처 : http://dasforyou.tistory.com/entry/%EC%9D%B8%EC%97%B0%EC%97%90%EB%8A%94-%EC%9A%B0%EC%97%B0%EC%9D%B4%EB%9E%80-%EC%97%86%EB%8B%A4


나이 들어 홀가분하다는 것은 어떻게든 짊어지려고 했던 그 많던 인연들을 하나씩 줄여서 점점 가벼워진다는 뜻입니다. 나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 인연을 지우는 것이 아니라 내가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지 않는 인연부터 내려놓습니다. 그렇게 멀어진 인연을 누군가 물으면 한때는 알았으나 지금은 잊었노라고 말해야겠지요. 잊고 싶어 그리 한 것이 아니라 잊어야겠기에 그리 했노라고 말할 겁니다. 나이 들어 철이 든다는 것은 내키지 않아도 해야 할 일은 미루지 않는 것입니다. 내일이 없어 오늘을 서두르는 조바심아 아니라 하나라도 덜어 가뿐 하려는 느긋함입니다.

 

영화 "인턴"에서 로버트 드 니로는 일흔이 넘은 나이에 시니어 인턴에 지원하면서 "음악가에게는 은퇴가 없어요. 음악이 사라지면 멈출 뿐이죠. 그런데 내 안엔 아직 음악이 남아 있어요."라고 말합니다. 남아 있는 그 음악이 고이면 어디로 흐를까요? "여행자의 책"을 쓴 폴 서루는 "관광객은 자신이 지금 어디 있는지를 모르지만 여행자는 어디로 갈지를 모른다."고 했습니다. 여행이 그런 것처럼 음악이 그렇고 인생 또한 다르지 않습니다. 이백이 이르기를 "달은 발이 없어도 구름 위를 거닐고 바람은 손이 없어도 나무 가지를 흔든다."고 했습니다. 내 안에 남은 음악이 나를 또 어디론가 이끌고 있습니다. 정처 없는 발걸음을 달에 얹고 바람에 실어 덧없는 세월에 흘려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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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승찬 교수의 클래식 음악 이야기] 예술경영이란?[홍승찬 교수의 클래식 음악 이야기] 예술경영이란?

Posted at 2018.02.20 07:30 | Posted in 이건음악회 Talk Talk/홍승찬교수의 클래식 톡톡

 

왜 사는지를 묻는 것이 철학이라면 왜 하느냐고 묻는 것이 경영입니다. 거듭 거듭 묻고 또 물어야 합니다. 그래야 누가 무엇을 언제 어디서 어떻게 할지를 알 수 있습니다. 까닭 모를 일에 덤벼드는 것은 경영이 아닙니다. 왜 하는지가 뚜렷해야 실패해도 쓰러지지 않습니다.

 

경영은 잘 꾸리자는 것이지 많이 벌자는 게 아닙니다. 많이 가지려면 그 만큼 더 끌어들여야 하니 끌어들인 만큼 더 부지런히 굴리고 돌려서 자꾸 털어내야 합니다. 구르는 돌엔 이끼가 끼지 않지만 고인 물은 썩기 마련입니다. 들어오고 나가고를 잘 챙기는 게 경영입니다. 길을 닦는겁니다.

 

출처 : http://news.korean.go.kr/index.jsp?control=page&part=list&category=23


경제학이 경영학을 깔보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것도 학문이냐면서 말입니다. 그런데 이치대로 계산대로 안 돌아가는 게 사람 사는 세상입니다. 그래서 경제학이 경영학에 밀렸습니다. 이제는 경영학으로도 안 풀리는 게 너무 많아졌습니다. 하여 문화와 감성을 들먹입니다. 철이 든 겁니다.

 

경제는 나누기고 예술은 더하기입니다. 경제는 현실이고 예술은 꿈입니다. 경제는 하나지만 예술은 여럿입니다. 빵 하나를 여럿이 나누는 것이 경제고 하나의 꿈에 다른 꿈을 더하는 게 예술입니다. 빵은 나누면 작아지지만 꿈을 더해도 무거워지진 않습니다. 그렇게 모두가 하나가 됩니다.

 

예술로 밥먹는 일은 참 고달픕니다. 값으로만 매기려 들고 거저 먹겠다고 덤벼드는 이들도 많습니다. 예술하는 사람보다 곁에서 거드는 사람이 더 서글픕니다. 실컷 따져서 바로잡으려 해도 예술가 스스로가 무너지면 할 말이 없습니다. 밥 안먹어도 살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출처 : https://brunch.co.kr/@lyju7479/139


예술경영이란 것이 박쥐노릇이라 생각했습니다. 쥐들 모인 곳에 가면 쥐인 척하고 새들 앞에서는 새라고 우겼습니다. 지금도 박쥐라는 생각엔 변함이 없지만 전과는 반대로 처신합니다. 쥐들에게는 날개를 펼쳐 보이고 새들에게는 이빨을 자랑합니다. 이제서야 스스로를 깨닫게 된겁니다.

 

예술경영은 스토리텔링입니다. 사람들이 제대로 받아들여 깨닫지 못하는 예술의 가치를 드러내고 일깨우는 일입니다. 예술가들의 느낌과 생각을 고스란히 살려서 사람들을 예술로 이끌어야 합니다. 스토리텔링은 숨은 것을 드러내고 죽은 것을 살립니다. 봄비요 가을햇살입니다.

 

한 때 스스로 아티스트였다가 나중에 매니저나 기획자가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누구보다 아티스트의 생각과 마음을 잘 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아티스트를 더 잘 챙겨줄 것 같은데 오히려 반대인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그 속을 너무 잘 아니까 자기 마음대로 휘두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출처 : https://www.superookie.com/contents/5902af3c8b129f268d0b362c


좋은 아티스트를 찾아서 하자는 대로 밀어주는게 좋은 기획자입니다. 자신의 생각과 다른 무엇을 하자 해도 그것이 그가 제일 잘하는 것이겠지 믿고 맡겨야 합니다. 결과가 그렇지 않다면 아티스트를 잘못 만난 때문입니다. 잘되면 아티스트 덕이고 아니면 기획자 탓입니다.

 

공연기획은 얼간이들이나 하는 바보짓입니다. 나로 말미암아 누군가 조금이라도 웃을 수 있다면 그 보다 더 기쁠 수가 없다는 멍청이들입니다. 애쓰고 힘들여 만든 무대에는 남을 올려 놓고 죄지은 사람처럼 마음졸이며 숨어 있다가 사람들이 좋다고 하면 자기가 더 좋아서 어쩔 줄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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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승찬 교수의 클래식 음악 이야기] 오스트리아 빈 필의 신년음악회[홍승찬 교수의 클래식 음악 이야기] 오스트리아 빈 필의 신년음악회

Posted at 2018.01.26 14:59 | Posted in 이건음악회 Talk Talk/홍승찬교수의 클래식 톡톡

 

우리나라 오케스트라 연주회에서 앙코르곡으로 가장 많이 연주되는 곡이 무엇일까요? 요한 슈트라우스 1세가 작곡한 라데츠키 행진곡입니다. 이 곡을 연주할 때면 음악이 흐르는 중간에 지휘자가 청중을 향해 돌아서서 지휘를 하고, 청중은 지휘자의 동작과 음악에 맞춰 박수를 치기 마련입니다. 아마 여러분도 연주회장에서 한번쯤 이런 경험을 하신 적이 있으실 지도 모르겠습니다.

 

출처 : https://www.youtube.com/watch?v=gFYnRqV4p4w


그렇다면 이 곡이 앙코르곡으로 널리 사랑받게 된 것은 언제부터일까요? 해마다 11일 정오에 빈 음악협회 대강당에서 열리는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신년음악회가 TV 전파를 타고 우리나라 안방에 소개되면서부터입니다. 빈 필은 신년음악회 때마다 이곡을 앙코르곡으로 연주합니다. 지휘자가 객석을 향해 지휘를 하고 청중들이 음악에 맞춰 박수를 치는 모습은 사실 빈 필에서 시작된 광경입니다. 이런 빈 필의 전통이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도 좋은 인상을 남겼던 것입니다.



하지만 라데츠키 행진곡이 만들어진 사연을 들여다보면, 우리도 빈 사람들처럼도 마냥 신나서 따라 하기에는 조금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습니다. 이 곡의 제목이 된 라데츠키는 오스트리아 영토였던 북부 이탈리아의 독립운동을 진압한 장군입니다. 18483, 부패한 메테르니히 전제정권을 타도하기 위해 시민혁명이 일어나자, 당시 정부의 편에 섰던 요한 슈트라우스는 정부군의 사기를 고취하기 위해 라데츠키의 이름을 붙여 이곡을 작곡했습니다. 이 때문에 그는 반혁명적인 작곡가로 낙인찍혀 한때 빈을 떠나 잠시 런던에서 살기도 했습니다. 오늘날에는 오스트리아 사람들의 씩씩한 기상을 드러내는 행진곡으로 사랑받고 있지만, 이탈리아 사람들에게는 달갑지 않은 곡임에 틀림없습니다. 일제강점기를 겪은 우리의 역사를 돌이켜 봐도 조금 찝찝한 마음이 드는 것은 사실입니다.

 

요한스트라우스(출처 :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Johann_Strauss_jr_anni_60.JPG)


사실 라데츠키 행진곡을 빼면 빈 필 신년음악회에서 자주 연주되는 곡들은 왈츠가 대부분입니다. 그렇다면 빈 필이, 아니 빈 사람들이 그토록 왈츠를 좋아하는 까닭은 무엇일까요? 8세기가 미뉴에트의 시대였다면 19세기는 왈츠의 시대였습니다. 왈츠는 오스트리아 농민들이 즐겨 추던 랜틀러에서 비롯되었다고 합니다.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에서 마리아와 대령이 무도회장 밖에서 추는 이 춤이 바로 랜틀러입니다. 왈츠의 유행은 마치 전염병처럼 온 유럽을 휩쓸었습니다. 왕족이나 귀족들 말고도 여유가 생긴 중산층과 시민계급이 무도회를 드나들었던 것도 이유였지만, 더 중요한 것은 남녀가 함께 추는 사교춤의 역사에서, 처음으로 본격적인 신체접촉이 가능했기 때문이라는 말도 있습니다. 또한 오스트리아의 재상 메테르니히가 의도적으로 왈츠의 열기를 고조시켰다는 설도 있습니다. 나폴레옹 이후 유럽의 질서를 재편하기 위해 오스트리아 빈에 모인 각국 대표들을 날마다 무도회에 초대해 왈츠에 빠져들게 함으로써, 자신이 의도한 대로 회의를 이끌어가려 했다는 겁니다.

 

출처 : http://www.dancearchives.net/2012/04/26/viennese-waltz-please-use-the-right-music-from-michael-herdlitzka/

 

미뉴에트가 그랬던 것처럼 왈츠 역시 춤곡으로 뿐만 아니라 기악곡으로 따로 작곡되어 오늘날까지 많은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쇼팽이 피아노 소품으로 작곡한 '강아지 왈츠'는 마치 장난을 치는 강아지의 재빠른 움직임을 묘사한 듯 경쾌합니다. 라벨이 작곡한 왈츠 "라 발스"는 장엄하면서도 풍자적인 느낌을 주는가 하면, 시벨리우스의 '슬픈 왈츠'처럼 흐느끼는 듯한 왈츠도 있습니다. 이처럼 왈츠는 너무나도 다양한 느낌과 감흥으로 오늘날까지도 우리들 가슴 속에 살아 숨 쉬고 있습니다.

 


왈츠로 몸살을 알았던 그 시절 유럽에서는 시골의 농부들조차 과년한 딸이 시집을 가지 못해 고민이라면 주저 없이 무도회를 열었습니다. 인근의 총각들을 다 불러들여 노처녀 딸과 만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하는 겁니다. 서로 길게 이야기를 나누지 않아도 손과 손을 맞잡고 음악이 이끄는 대로 춤을 추다보면 서로의 성격과 서로에 대한 마음을 느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여유 있는 집안에서 손님들을 부르는 자리라면 당연히 무도회가 빠질 수 없었습니다. 사람들을 초대해 먼저 다이닝룸에서 안주인이 마련한 만찬을 맛본 뒤, 식사가 끝나면 볼룸으로 자리를 옮겨 무도회를 벌였습니다. 사람들은 그렇게 너나없이 무도회를 즐겼습니다. 그러니 발레는 물론이고 오페라에서도 무도회 장면이 빠지지 않는 것입니다. 심지어 차이코프스키의 오페라 '예프게니 오네긴'에는 무도회 장면이 두 번이나 등장합니다.

사람들이 이토록 왈츠를 사랑했던 데에는 악보에 다 담을 수 없는 짜릿함도 한 몫 했습니다. 세 박자 가운데 두 번째 박자가 살짝 앞으로 당겨지는 느낌인데 한 번이라도 제대로 왈츠를 춰보면 몸으로 바로 그 느낌을 알 수 있을 겁니다. 하나, , , 이렇게 원을 그리면서 돌게 되면 당연히 시작은 당겨지고, 그 뒤는 쳐지기 마련이니 그렇게 흐르는 음악에 몸을 싣고 리듬을 타다 보면 나도 모르게 신이 나고 흥이 나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빈 필이 연주하는 왈츠의 리듬은 다른 나라, 다른 도시의 오케스트라의 그것과는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1941년 지휘자, 클레멘스 크라우스에 의해 시작되어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신년음악회는 빈에서 태어나 자랐거나, 빈에서 활동하고 널리 사랑받았던 작곡가들의 작품을 주로 연주합니다. 왈츠의 시대를 활짝 열어 '왈츠의 아버지'라 불리는 요한 슈트라우스 1세와, 그 아들들인 요한 슈트라우스 2, 요제프 슈트라우스, 에두아르트 슈트라우스, 그리고 요제프 라너와 칼 미하엘 치러 등의 작곡가들이 대표적이고 여기에 빈 필의 창립자였던 오토 니콜라이의 오페라 '윈저의 명랑한 아낙네들' 서곡이 포함되기도 합니다. 물론 그중에서도 가장 많이, 또 자주 그 작품이 연주되는 작곡가는 단연, '왈츠의 황제'로 불리는 요한 슈트라우스 2세입니다.

 

출처 : http://www.daeguoperahouse.org


그의 작품들 가운데서도 특히 왈츠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는 그의 아버지 요한 슈트라우스 1세가 작곡한 '라데츠키 행진곡'과 더불어 거의 해마다 거르지 않고 연주되는 곡입니다. 라데츠키 행진곡을 연주할 때 청중들이 박자에 맞춰 박수를 치는 것이 전통인 것처럼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 연주 직전, 지휘자와 빈 필 단원들이 청중들에게 새해인사를 건넨 다음 연주를 시작하는 것이 관례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많은 요한 슈트라우스의 주옥같은 왈츠 곡들 가운데 왜 하필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를 해마다 연주하는 것일까요? 1866, 오스트리아는 독일의 신흥강국, 프로이센과 전쟁을 치렀지만 치욕스럽게도 불과 7주 만에 대패하고 말았습니다. 한 때 프랑스와 더불어 유럽의 운명을 쥐락펴락 했던 오스트리아로서는 너무나도 충격적인 패배였기에 국민들의 수치심과 상실감 또한 클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렇듯 절망에 빠진 동포들의 상처를 달래고 사기를 북돋우고자 빈 남성합창단은 시민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고 있던 요한 슈트라우스 2세에게 작곡을 의뢰했고 그 결과, 합창으로 노래하는 왈츠,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가 탄생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기대와는 달리 18672월에 있었던 초연은 그다지 성공적이지 못했습니다. 그러자 같은 해 파리에서 열린 만국박람회에서 슈트라우스는 합창을 빼고 관현악으로만 연주하는 개정판을 선보였고 사람들의 반응은 열광적이었습니다. 그 때문에 이후로는 관현악으로 연주하는 개정판이 주로 연주되었고 날이 갈수록 그 호응과 명성은 높아만 갔습니다.

 


당시 이 곡의 인기가 얼마나 대단했던지 다음과 같은 일화가 전해지고 있습니다. 어느 날 요한 슈트라우스의 부인이 브람스를 만나 사인을 부탁하자 브람스는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의 몇 마디를 음표로 그린 다음, '불행하게도 브람스의 작품이 아님' 이란 말을 덧붙였다고 합니다. 이 곡은 브람스뿐 아니라 오스트리아 국민 모두의 마음에 깊이 새겨졌고, 오늘날에는 전 세계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이 곡은 빈 필의 신년음악회 중계를 통해 널리 알려졌지만 언제부터인가 새해벽두에 안방에서 TV로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를 들으며 벅차오르는 감동으로 한해를 시작하던 일상은 슬그머니 사라져버렸습니다. 방송이 온통 시청률과 그에 따른 광고수입에 매달리면서부터 빈 필의 신년음악회를 더 이상 볼 수가 없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빈 필의 신년음악회가 우리에게 안겨주는 위로와 희망의 메시지를 결코 잊을 수 없었던 누군가가 앞장 서 다른 방법을 찾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얼마 전부터 몇몇 영화상영관에 따로 빈 필의 신년음악회를 스크린으로 중계하기 시작하더니 지금은 전국으로 그 규모가 확산되고 있습니다.

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41년 시작된 빈 필의 신년음악회는, 윈치 않는 전쟁의 악몽으로 괴로워하던 오스트리아 국민들의 마음을 음악으로 위로해주었습니다. 그리고 전쟁이 끝나자 폐허 속에서 무너져 내린 사람들의 상처를 어루만지며 다시금 일어설 희망을 심어주었습니다. 신년음악회를 보고 있노라면 '음악이, 그리고 예술이 우리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이 바로 위로'라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됩니다. 새롭게 시작하는 올 한해 역시 여러분 모두 음악으로부터 위로를 받고, 또 음악으로 서로를 위로할 수 있기를 바라고 또 바랍니다.

 

출처 : http://classictong.com/artist/2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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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승찬 교수의 클래식 음악 이야기] 리더십이란?[홍승찬 교수의 클래식 음악 이야기] 리더십이란?

Posted at 2018.01.23 13:38 | Posted in 이건음악회 Talk Talk/홍승찬교수의 클래식 톡톡

 

뜻을 세워 무리를 일으켜야 합니다. 사람으로 무리를 이끌면 뜻이 무뎌집니다. 무리가 흩어져도 뜻은 지켜야 합니다. 내 무리로 다른 무리를 밀어내지 말고 좋은 뜻으로 나쁜 뜻에 맞서야 합니다. 뜻을 잃으면 사람도 떠납니다. 뜻으로 사람을 얻고 사람으로 뜻을 이루어야 합니다.

 

"세상을 다스리는 가장 좋은 방법은 자연스러움을 따르는 것이고 그 다음은 이익을 내세워 이끄는 것이며 가르쳐 깨우치는 것이 그 다음이라면 백성을 가지런히 바로잡는 것이 그 다음이다. 가장 못난 정치는 재물을 놓고 백성들과 다투는 것이다" 사마천의 말입니다.

 

출처 : https://www.flickr.com/photos/booknews/16242504362

노자가 이르기를 백성이 군주가 있음을 알고는 있으나 따로 마음에 둘 일이 없는 것이 최고의 리더쉽이라 했고 그 다음이 우러러 보며 높이 받드는 것이며 그보다 못한 것이 삼가 두려워 하는 것이라 했습니다. 그마저도 아니면 함부로 비난하고 모욕하겠지만 최악의 경우에는 서로 믿지 못하는 지경에 이른다 했으니 이쯤 되면 아무런 기대는 물론이고 원망조차 없을 터입니다.

 

리더가 되면 무엇보다 먼저 내 마음대로 되는 일이 아무 것도 없다는 걸 깨닫게 됩니다. 안되는 일을 되도록 만드는 게 리더의 능력입니다. 무작정 밀어붙여서가 아니라 설득해서 타협하고 때론 양보도 해야 합니다. 힘 있는 자가 힘을 쓰지 않아야 진짜 힘이 생깁니다.

 

이강숙 총장은 늘 "살인적인 인내"를 강조하셨습니다. 가끔은 농담삼아 "민주적인 절차를 밟아 독재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과정이 중요하다는 뜻이고 비전을 공유하여 하나로 나가려면 참고 설득하기를 거듭해야한다는 것입니다. 리더십의 첫째 덕목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기 마련입니다. 리더는 이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무엇보다 먼저 구성원 각각의 이익을 최대한 실현할 수 있는 비전을 앞세워야 합니다. 모두의 이익이 나의 이익과 다르지 않을 때 모두들 있는 힘을 다하기 마련입니다.

 

회사, 혹은 단체를 뜻하는 Company는 함께라는 뜻의 com과 빵을 일컫는 pan을 붙여 만든 말입니다 . 함께 빵을 먹는 곳이 회사며 내가 속한 공동체란 뜻입니다. 한마디로 같이 잘먹고 잘살자는 것입니다. 구성원의 이익이 조직의 가장 중요한 목적입니다.

 

출처 :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Hiddink_and_Borodyuk_Euro_2008.jpg


히딩크가 대표팀 감독으로 부임했을 때의 일입니다. 몇 일을 관찰만 하다 선수들을 모아놓고 처음 주문한 말은 밥먹을 때 다들 한자리에 모여 천천히 먹자는 것이었습니다. 출신학교와 선후배를 따지는 풍토부터 바꾸려 했던 겁니다. 소통과 화합을 무엇보다 중요하게 생각한 히딩크식 리더십입니다.

 

미식축구는 희생의 경기입니다. 공격팀은 모두가 몸을 던져 공을 가진 한 선수를 보호합니다. 리더의 역할을 하는 쿼터백은 중계자의 역할을 수행합니다. 공격이 시작되고 공을 넘겨받는 즉시 선수중 누구에겐가 그 공을 넘겨줘야합니다. 리더의 역할은 조정자이고 중계자입니다.

조정경기는 배에 탄 모두가 똑 같은 속도로 노를 젓지 않으면 앞으로 나가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가운데 가장 처지는 사람에게 나머지가 다 맞출 수 밖에 없습니다. 세계의 명문 대학들이 조정경기를 장려하는 까닭이 바로 그것입니다. 나 혼자 잘나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하는 리더십의 산교육입니다.

 

지휘자 로린 마젤은 오케스트라의 능력과 주어진 여건을 정확하게 판단하면 단원들에겐 그안에서 가능한 만큼만 요구를 합니다. 과정에서도 늘 유머와 칭찬을 잊지 않습니다. 당연히 원하는 결과를 얻게 될테니 지켜보는 청중까지 모두 만족하게 되는 겁니다. 현명한 리더십입니다.

 

은퇴한 여성 리더중의 한 분이 담배 태우시는 사연이 흥미롭습니다. 성격이 불같아서 담배갑에서 담배 꺼내고 라이터 찾아서 불붙이는 동안 화를 가라앉힌다고 합니다. 그렇잖으면 부하 직원 면전에서 무슨 험한 말을 터뜨릴 지 본인도 감당할 수 없답니다. 당연히 독신입니다.

 

높은 자리에 올라 많이 가진 사람들은 그로 말미암아 누리는 다른 사람들의 호감과 호의가 마치 그 자신의 인간적, 혹은 성적 매력에서 비롯된 것인 양 착각하기 쉽습니다. 높이 올라가 많이 가지고 나면 그 안에 스스로가 매몰되어 있는 그대로의 나를 잃어버립니다.

 

일사불란한 꿀벌들 중에도 5%는 따로 논다고 합니다. 이런 벌을 정찰벌이라 하지만 사실은 날라리 벌이라 하는 게 더 맞을지도 모릅니다. 입맛도 까다로워 혼자 멀리 날아가 별난 꽃을 찾는답니다. 가까운 꽃무리에서 더 이상 꿀을 찾지 못해 모두 굶주리고 있을 때 날라리 벌이 찾아낸 다른 꽃들이 나머지 벌들을 살린답니다.

 

출처 : https://pixabay.com/ko/


사람을 뽑는 일은 참 어렵습니다. 그러나 그만두게 하는 것보다 힘들지는 않습니다. 내보내야 할 때는 싫더라도 얼굴을 마주보고 말해야 합니다. 잘못이 있으니 그만두라는 말보단 어쩔 수 없는 사정이라 안타깝다는 말이 더 낫습니다. 밥 한 끼가 어려우면 차 한 잔이라도 나누며 따뜻한 말 한 마디를 건네야 합니다.

 

리더는 지켜보며 힘을 실어주는 자리입니다. 사람들이 잘 움직여 일이 제대로 꾸려지고 있는지를 꼼꼼히 살펴서 잘잘못을 찾아주고 더 나은 쪽으로 이끌어 주는 겁니다. 잘못을 고치도록 알려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신이 나서 열심히 하도록 길을 터서 보여주는 게 더 중요합니다.

 

폴란드엔 "흐느끼는 사람을 따르라"는 말이 있습니다. 쇼팽의 음악이 그렇습니다. 통곡이 아니라 흐느낌입니다. 설명과 설득이 아닙니다. 가슴으로 곧장 스며들어 마음을 흔들어 놓습니다. 힘이 빠져 넋 놓고 함께 흐느끼게 됩니다. 소통하려면 먼저 공감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게 바로 리더십입니다.

 

좋은 결단을 내리는 리더가 최고입니다. 그 다음이 나쁜 결정을 하는 리더라고 합니다. 최악의 경우는 결심을 하지 못하는 리더입니다. 미국 대통령 트루먼의 집무실에는 "여기서 패가 멈춘다"라고 적힌 명패가 있다고 합니다. 그러니 이제 과감하게 배팅을 해야 할 때라는 것입니다. 해야 할 모든 것들을 다른 누군가에게 미루더라도 결정 만큼은 아무도 대신 할 수 없는 리더의 몫입니다.

 

리더십은 처음과 끝입니다. 가운데는 아래 사람을 믿고 맡겨야 합니다. 뜻을 모아서 나아갈 바를 밝히고 그렇게 다들 어디론가 함께 움직이다 끝내 허물이 생긴다면 혼자 다 뒤집어쓰는 겁니다. 비전을 세워서 사람들을 이끌고 끝까지 그 책임을 지는 게 리더의 사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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