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승찬 교수'에 해당되는 글 36건

  1. [브레겐츠 오페라 축제] 대자연의 경관과 음악의 감동이 함께 어우러진 색다르고 뜻 깊은 여행을 생각하신다면 베르겐츠 오페라 페스티발을 추천합니다! (2) 2013.11.19
  2. ['음악의 성인'이라고 불리는 베토벤의 생애와 작품-베토벤 16번, 작품번호 135번] 베토벤이 마지막 작품의 마지막 악장에 남긴 고뇌와 번민 (3) 2013.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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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레겐츠 오페라 축제] 대자연의 경관과 음악의 감동이 함께 어우러진 색다르고 뜻 깊은 여행을 생각하신다면 베르겐츠 오페라 페스티발을 추천합니다![브레겐츠 오페라 축제] 대자연의 경관과 음악의 감동이 함께 어우러진 색다르고 뜻 깊은 여행을 생각하신다면 베르겐츠 오페라 페스티발을 추천합니다!

Posted at 2013.11.19 10:29 | Posted in 이건음악회 Talk Talk/홍승찬교수의 클래식 톡톡





홍승찬 교수의 클래식 음악(52)
[홍승찬 교수의 재미있는 클래식음악 이야기]

 

 


브레겐츠 오페라 축제

 


혹시 대자연의 경관과 음악의 감동이 함께 어우러진 색다르고 뜻 깊은 여행을 생각하신다면 베르겐츠 오페라 페스티발을 추천합니다. 해마다 여름이면 유럽 각지에서 수많은 음악 축제들이 열리고 있고 저마다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고 있지만 베르겐츠 페스티발은 비교적 뒤늦게 시작하여 최근에야 널리 알려진 축제입니다. 그리고 사실 오스트리아의 휴양도시 브레겐츠는 해마다 열리는 오페라 축제가 아니었다면 지금도 우리에게 생소한 이름이었을 것입니다. 오스트리아와 독일은 물론 스위스까지 펼쳐진 드넓은 보덴 제’(See는 독일어로 호수를 뜻한다)를 끼고 있는 오스트리아의 아름다운 휴양도시이지만 비슷한 조건의 마을이나 도시들은 너무나 많아 브레겐츠를 특별히 기억할 이유가 따로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아마도 그들만의 특별한 무엇인가가 필요했을 것이고 그런 고민 끝에 세상에서 하나 뿐인 오페라 축제를 만들었을 것입니다. 1946년에 시작된 브레겐츠 페스티발은 호숫가에서 펼쳐지는 최초의 오페라 축제입니다. 이후 비슷한 시도들이 뒤를 이었지만 브레겐츠가 가장 먼저였고 그 후로도 꾸준히 변화와 발전을 모색하여 그 누구도 따를 수 없는 규모와 명성을 자랑하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호수에 큰 배를 띄워 갑판 위에서 공연을 하는 것이 축제의 시작이었지만 그것이 보덴 제를 찾는 관광객과 휴양객들에게 큰 호응을 얻자 1948년부터는 호수 위에 고정적인 무대를 세웠습니다. 그리고 1979년에 이르러 지금과 같은 첨단의 시설을 완성하였고 1980년에는 호숫가에 페스티벌 하우스를 따로 만들어서 해마다 7월 중순부터 한 달 동안 오페라 페스티발을 열고 있습니다.






사실 여름마다 야외에서 펼쳐지는 음악축제라면 이탈리아의 베로나를 가장 먼저 떠올리게 됩니다. 로마시대에 지어진 원형극장에서 해마다 여름이면 오페라 축제가 열립니다. 그러나 베르겐츠에서 경험한 토스카는 베로나 야외극장에서 베르디의 아이다를 봤을 때와는 전혀 다른 감동이 있었습니다. 베로나에서는 2만명이 넘는 사람이 모인 드넓은 원형극장의 구석 자리에서도 마치 바로 앞에서 보는 듯 착각할 정도로 소리가 너무나 또렷하게 들려 흠칫 놀랐었습니다. 베로나에서는 지금까지도 생생하게 살아 숨쉬는 고대 로마의 위대한 역사와 그것이 이룩한 위대한 업적에 감탄했다면 베르겐츠에서는 인간이 도저히 어찌 할 도리가 없는 자연의 섭리와 그것에 맞서도 끝내 어우러지고 마는 인간의 운명에 저절로 빨려드는 기분이었습니다. 세상에 하나 뿐인 소리의 향연을 베풀었던 베로나와는 달리 베르겐츠는 세상에 하나 뿐인 장관을 펼쳐보였습니다. 그들이 처음에 의도했던 그대로 세상에 하나 뿐인 가치를 만들어낸 것입니다.





성급한 호사가들은 브레겐츠 페스티발을 두고 잘츠부르크 페스티발, 바이로이트 페스티발과 함께 세계 3대 음악축제라고 말하기도 하지만 솔직히 유서 깊은 유럽의 다른 축제들에 비해 브레겐츠 페스티발에 대한 이미지는 썩 좋은 편이 아니었습니다. 말하자면 기발한 아이디어로 휴양도시 브레겐츠에 관광객들을 끌어들이자는 의도가 너무나 분명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심지어는 오락영화의 대명사라고 할 수 있는 ‘007 시리즈에까지 등장하는 것을 보고 콘텐츠보다 마케팅이 앞서는 현대 쇼 비즈니스의 전형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여름 처음으로 브레겐츠를 방문하여 남들보다 일찍 페스티발이 열리는 호숫가 무대를 찾았을 때도 별다른 감흥을 느낄 수가 없었습니다. 호텔에 여장을 풀고 시내를 한 바퀴 돌아보았지만 크게 눈길을 끄는 곳이 없었고 호텔에서 소개한 어느 레스토랑에 들러 이른 저녁 식사를 마쳤지만 그다지 기억에 남을 만한 맛은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얼른 다시 호텔로 돌아와 정장으로 갈아입고는 일찌감치 페스티발이 열리는 공연장으로 향했습니다.





그런데 별 다른 할 일이 없어 일찍 찾은 호반의 공연장에서 기대치 않은 경험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탁 트인 무대를 바라보는 넓은 객석에 홀로 앉아 커다란 무대와 어우러진 호수 너머 풍경을 바라보는 기분은 참으로 묘했습니다. 아무 것도 가릴 것이 없어 밖에서도 볼 수 있는 무대는 이미 공연 전의 호기심과 흥분을 자아내는 대상은 아니었지만 마치 오래 전부터 그것에 있었던 기념비적인 조형물인 것처럼 호수 위에 떠서 유유히 하늘을 이고 있었습니다. 이윽고 해가 저물면서 관객들도 하나 둘씩 객석을 채우기 시작했고 호수 저편 린다우에서 다가온 배가 천천히 다가와 마침내 기슭에 이르러 한 무리의 사람들을 내려놓자 조금 전까지의 호젓하고 적막한 공기는 흩어지듯 사방으로 날리는 것 같았습니다





저무는 해가 파란 하늘과 푸른 호수를 점점 더 붉게 물들일 즈음 새하얀 조명이 차례로 들어오면서 검게 드리우는 어둠의 장막을 새하얀 빛이 걷어버리는 순간은 마치 위대했던 한 시대가 가고 다른 시대가 오는 듯한 착각에 빠질 만큼 환상적이었습니다. 이윽고 펼쳐진 오페라는 이미 수 없이 보았던 푸치니의 토스카가 아니었습니다. 익숙한 스토리와 귀에 익은 음악은 온 데 간 데 없이 그저 인간을 둘러싼 대자연에 바치는 외침이고 몸짓일 뿐이었습니다. 오페라가 막바지에 이르러 죽음을 앞둔 주인공 카바로도시가 연인 토스카에게 마지막 편지를 쓰면서 별은 빛나건만을 부를 때 그의 시선은 객석이 아니라 드넓은 창공에서 반짝이는 별을 쳐다보고 있었고 관객들의 시선 역시 같은 곳을 향하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무대와 객석은 대자연의 품안에서 하나가 되었고 그렇게 이루어진 일체감은 오래도록 여운으로 남아 가시지 않았습니다. 푸치니의 오페라 토스카가운데 주인공 카바로도시가 부르는 별은 빛나건만을 들으시며 이 시간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Puccini - 별은빛나건만(Tosca - Pavarotti)



 

글 : 홍승찬 교수
편집 : 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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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아.오랫만에. 잊고지내던음악.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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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의 성인'이라고 불리는 베토벤의 생애와 작품-베토벤 16번, 작품번호 135번] 베토벤이 마지막 작품의 마지막 악장에 남긴 고뇌와 번민['음악의 성인'이라고 불리는 베토벤의 생애와 작품-베토벤 16번, 작품번호 135번] 베토벤이 마지막 작품의 마지막 악장에 남긴 고뇌와 번민

Posted at 2013.10.11 10:28 | Posted in 이건음악회 Talk Talk/홍승찬교수의 클래식 톡톡

 

 

 

 

홍승찬 교수의 클래식 음악(51)
[홍승찬 교수의 재미있는 클래식음악 이야기]

 

 

 

음악의 성인으로까지 칭송받는 베토벤의 마지막 작품은 현악 4중주 16, 작품번호 135번입니다. 베토벤은 거의 모든 장르의 음악에서 불멸의 업적을 남겼지만 특히 교향곡과 피아노 소나타, 그리고 현악 4중주에서 그가 쌓은 업적은 그 이후 지금까지 아무도 범접하지 못한 성역입니다. 그런데 인류 역사를 통 털어 가장 위대한 작곡가로 일컬어지는 베토벤이 삶의 끝자락에 이르러 남은 힘을 다하여 작곡한 최후의 대작인 현악 4중주 16번 마지막 악장에는 뜻 모를 말이 적혀 지금까지 수많은 사람들의 호기심만 자극한 채 아직도 의문으로 남아 있습니다. ‘고통스럽고 힘들게 내린 결심(Der Schwergefasste Entschluss)'이란 말에 이어 꼭 그래야만 하나(Muss es sein)?'라는 물음을 던진 다음에 뜸을 들이다가 그래야만 한다(Es muss sein)'라는 답을 적어 넣었습니다.

 

Beethoven, String Quart No.16 Op.135

 

베토벤 현악 4중주 16번

Ludwig van Beethoven

1770-1827

Hagen Quartet

Lukas Hagen, 1st violin

Rainer Schmidt, 2nd violin

Veronika Hagen, viola

Clemens Hagen, cello

2000.01.26

 

Hagen Quartet - Beethoven, String Quartet No.16 in F major

 

베토벤의 현악 4중주 중 마지막 작품일 뿐만 아니라 모든 장르를 통틀어 작곡가의 최후 작품이다(이후 작곡된 곡은 ‘대 푸가’를 대신한 현악 4중주 13번의 마지막 악장뿐이다). 1826년 봄, 이 작품을 이미 구상하고 있었던 베토벤은 1826년 7월에 착수해서 10월에 완성했다. 그가 사망하기 5개월 전이다. 1826년 베토벤의 상황은 좋지 않았다. 7월에는 빗나간 조카 카를이 권총으로 자살하려다 미수에 그쳤다. 9월에는 동생 요한의 권유로 그나이젠도르프로 가서 작곡을 했다. 경치 좋은 곳에서 산책도 하며 지냈지만 갖가지 병은 베토벤의 건강을 좀먹고 있었다. 수종이 생기고 식욕이 감퇴된 베토벤은 우울하게 지낼 때가 많아졌다. 그러다 빈으로 돌아올 때 베토벤은 폐렴에 걸렸다. 이 병이 결국 사망으로 이어졌다. 1827년 3월 26일 세상을 떠난 베토벤의 사인은 간경변이었다.

 

여러 가지 추측들 가운데 심지어 가정부에게 지급할 급여를 놓고 고민한 흔적이라는 주장은 지나친 감이 없지 않지만 매사에 까다롭고 철저했던 베토벤의 삶을 깊이 들여다보면 충분히 그러고도 남으리라는 것을 이해하게 됩니다. 그리고 바로 그런 점에서 이것은 단편적인 하나의 사건이라기보다 그가 인생의 막바지에 이르러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스스로에게 다시 한 번 던지는 최후의 질문이고, 아울러 마지막으로 얻은 해답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말하자면 평생에 걸쳐 그가 행한 모든 일이 다 끝없는 고뇌의 산물이었다는 것이고 언제나 최선을 다한 결과였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바로 그 확실한 증거를 마지막 작품의 마지막 악장에 스스로의 독백으로 남긴 것입니다.

 

 

아닌 게 아니라 하나의 작품을 완성하기까지 베토벤만큼 많은 스케치를 거치면서 고치고 또 고쳐 쓴 작곡가는 달리 없었습니다. 때문에 그 어떤 작곡가보다 많은 스케치를 남겼고 그것들을 통해 작품의 완성에 이르기까지 어떤 고민을 하였고 무엇을 어떻게 얼마나 수정하고 다듬었는지를 낱낱이 확인할 수 있습니다. 더불어 이를 통해 고뇌의 시간이 얼마나 길고 힘들었는지도 충분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이전까지 대부분의 작곡가들은 왕족이나 귀족들에게 고용되어 일정한 급여를 받으면서 그들이 필요로 하는 작품을 원하는 만큼 요구하는 시간에 만들어야 했지만 베토벤은 유별난 성격과 타협을 모르는 고집으로 말미암아 그럴 수도 없었고 그럴 생각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결국 그는 스스로가 선택한 최초의 프리랜서 작곡가가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니 고정적인 월급을 받는 대신 작품을 출판하거나 연주회를 열어 돈을 벌어야 했고 개인교습으로 학생들을 가르치고 수업료를 받아 생계를 해결해야 했습니다.

 

 

베토벤을 주인공으로 다룬 영화

 

생계를 위해 피아노를 가르친 학생들 가운데는 귀족들의 자녀가 많았고 특히 젊은 여성이 많았습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그들과 사랑의 감정이 싹트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가 아무리 뛰어난 작곡가라고 해도 귀족과 평민이라는 신분의 벽을 뛰어넘을 수는 없었고 그것이 내성적이고 자존심이 강한 베토벤에게는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주었고 그 때문에 그는 평생을 독신으로 살았습니다. 음악에 대한 그의 열정이 그랬던 것처럼 여인을 향한 그의 사랑도 매 순간 반드시 그래야만 했던 필연이었던 것입니다. 결국 그에게 있어 독신은 스스로의 선택이 아니라 운명의 장난이었던 셈입니다. 그가 죽고 발견된 유품들 가운데는 누군가를 불멸의 연인이라 부르며 억누를 수 없는 운명적인 사랑을 정열적으로 고백하고 있는 편지 세 통이 발견되었고 이로 말미암아 그 이후 지금까지 줄곧 그 주인공이 누구인지를 두고 추측이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베토벤의 삶과 음악을 다룬 수많은 영화들 가운데 불멸의 연인이 바로 그 대표적인 경우로 영화에서는 동생의 부인이 그 주인공이라는 파격적인 주장을 펼치고 있습니다. 그 때문에 동생이 죽자 그의 아들, 즉 조카인 카를의 양육권에 그토록 집착했다는 것이지요. 말하자면 카를이 바로 베토벤 자신의 아들이었다는 것입니다.

 

 

베토벤의 유일한 조카 칼 반 베토벤(Karl van Beethoven)

 

거듭된 사랑의 상처 때문인지 베토벤이 열망했던 이상적인 여인상은 한결같이 구원의 여성이었습니다. 그래서 그가 남긴 유일한 오페라이지만 다른 어떤 작품들보다 애착을 가졌던 피델리오에서 주인공 레오노라는 생명을 잃을지도 모르는 위험을 무릅쓰고 옥중에 갇힌 남편을 구하고자 남장을 하고 적진으로 숨어드는 여장부입니다. 말하자면 진정 사랑한다면 사랑하는 이를 위해 목숨까지 내놓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고 그런 사랑을 저버리고 돌아선다는 것은 그 어떤 경우에도 있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에게 있어 사랑은 음악과 마찬가지로 언제나 완전하고 변하지 않는 불멸의 존재였던 것입니다.

 

Borodin Quartet - Beethoven, String Quartet No.16 in F major

Ruben Aharonian, 1st violin

Andrei Abramenkov, 2nd violin

Igor Naidin, viola

Valentin Berlinsky, cello

2004.07

 

1악장: 알레그레토

밝고 간결하다. 초기작과 같은 명료함으로 다가온다. 베토벤의 긴장감보다는 음악을 즐기는 모차르트의 모습이 숨겨져 있기도 하다. 단편적인 선율에 의한 흐름이나 악상을 유기적으로 통일시키는 것은 역시 베토벤의 솜씨이다. 베토벤이 창조해 온 현악 4중주의 정수가 함축돼 있다. 첼로가 엄격한 서주를 제시하면 바이올린이 짧게 대답한다. 제1주제는 3개의 악기로 각기 연주되며 새로운 선율은 제1바이올린에 나타난다. 제2주제는 제2, 제1바이올린으로 연주되고 제시부 뒤 발전부로 이어진다. 재현부와 코다를 거쳐 조용히 끝난다.

2악장: 비바체

여기서는 분명한 베토벤의 성격이 드러난다. 뚜렷이 지시하지는 않지만 스케르초에 해당되는 악장이다. 3/4박자임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의 현기증 나는 속도와 예민한 리듬으로 약동하는 듯한 해방감을 안겨준다. 중간부는 제1바이올린이 기본적인 모티프를 연주한다. 영원히 계속될 것만 같은 음형이 반복된다.

 

3악장: 렌토 아사이 칸탄테 에 트란퀼로

경쟁하듯 질주하던 스케르초 다음에 느긋하고 조용하게 슬픔을 노래한다. 환상적인 변주곡 형식으로 정신적인 깊이와 우아한 종교적 정화를 보여준다. 그러나 마냥 눈물을 자아내는 슬픔이 아니라 어쩐지 동경과 평화로운 정서를 드리우고 있다. 슬픔을 노래하는 거장의 고즈넉한 숨결이 살아 있다.

4악장: 알레그로 그라베

‘괴로워하다가 간신히 굳힌 결심’에 두 가지 동기가 나온다. 비올라와 첼로가 ‘그래야만 하나’하고 물으면 바이올린이 왠지 부드럽게 반응한다. 다시 비올라와 첼로가 질문한다. 몇 번의 질문에 바이올린은 점차 답변을 하기 시작한다. 알레그로로 들어오면 명확하게 ‘그래야만 한다’고 대답하는 피날레가 시작된다. 알레그로는 경쾌하고 밝고 튀는 분위기로 바뀐다.

 

 

 

현악 4중주 16번의 마지막 4악장은 알레그로 그라베, 빠르고 장엄하게입니다. 비올라와 첼로가 그래야만 하는가?’라고 물으면 바이올린이 부드럽지만 망설이는 듯 머뭇거립니다. 다시 비올라와 첼로가 질문을 거듭하자 바이올린의 태도도 점점 분명해지면서 마지막 부분에 이르러 빠르고 경쾌하게 그래야만 한다는 확고한 대답을 던지게 됩니다. 이렇듯 치열했던 베토벤의 삶은 마지막 숨을 거두는 순간에 또 한 번의 묘한 여운을 던지며 우리의 마음을 어지럽힙니다. 전하는 말에 따르면 그가 남긴 마지막 말은 박수를 쳐라, 희극은 끝났다.’였다고 합니다. 어쩌면 삶의 무대에서 끝까지 최선을 다한 한 광대의 고독한 독백으로 들리기도 하지만 어쩌면 스스로의 의지대로 자유롭게 살고 싶어 처절한 몸부림을 쳤지만 인간에게 지워진 운명이라는 굴레를 끝내 벗어 던지지 못한 한 인간의 절규로 들리기도 합니다. 그리고 또 죽음의 문턱을 넘으면서까지 포기할 수 없는 자유와 사랑, 음악과 예술에 대한 열망을 그토록 처연하게 외쳤는지도 모릅니다. 오늘날 너무나도 쉽게 무엇인가를 선택했다가 그보다 더 쉽게 포기하면서 그렇게 지나쳐 버린 인연과 사연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고 잊어버리는 우리 모두에게 베토벤의 삶과 음악은 너무나 무겁고 부담스러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그가 남긴 음악이 있고 그것을 만든 그의 삶이 있었기에 참을 수 없이 가벼워진 우리의 존재와 자아가 아직도 이 땅을 굳건히 딛고 서서 비바람을 무릅쓰며 먼 하늘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베토벤의 현악 4중주 16번 마지막 악장 들으시며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고 또 그 해답을 찾아보는 시간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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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너무 잘보고 갑니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서 이 곡을 접하고 찾아봤는데 너무 훌륭한 포스팅에 베토벤의 무거움이 전달되서 가슴이 아프네요.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는 저에게 많은 위로가 됩니다. 감사합니다.
  2. 김에송
    베토벤의 마지막 작곡이 이 곡인 줄은 몰랐는데..

    베토벤의 피아노소나타와 교향곡, 그리고 현악 4중주는 정말 대단한 것 같아요.

    듣고싶어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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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을 위한 클래식 음악 초대장] 베르디와 바그너의 마지막 메시지, 바보들의 행진. 베르디와 바그너의 탄생 200주년을 맞이하여...[당신을 위한 클래식 음악 초대장] 베르디와 바그너의 마지막 메시지, 바보들의 행진. 베르디와 바그너의 탄생 200주년을 맞이하여...

Posted at 2013.09.11 08:33 | Posted in 이건음악회 Talk Talk/홍승찬교수의 클래식 톡톡

 

 

 

 

 

홍승찬 교수의 클래식 음악(50)
[홍승찬 교수의 재미있는 클래식음악 이야기]

 

 

 

 

 

 

 

 

오페라 역사를 통털어 가장 위대한 작곡가를 꼽으라면 대부분 베르디와 바그너를 떠올리게 됩니다. 그런데 이 두 사람은 공교롭게도 같은 해에 태어났는데, 그 해가 바로 1813년입니다. 그러니 올해는 다름 아니라 두 작곡가의 탄생 200주년이 되는 해이고 그래서 지구촌 곳곳에서 이 뜻 깊은 해를 기리는 행사와 공연들이 줄을 잇고 있습니다. 바로 얼마 전 우리나라 국립오페라단 또한 베르디의 팔스타프를 무대에 올렸고 서울시립오페라단은 베르디의 아이다를 공연하기도 했지요. 5월에는 서울국제음악제에서 바그너의 연작 오페라 반지의 두 번째 작품인 발키레를 선보였는데요 이처럼 바그너의 음악극보다는 베르디의 오페라를 볼 수 있는 기회가 더 많을 것 같습니다.

 

 

베르디의 "아이다" 공연 모습

그것은 아무래도 바그너와 비교한다면 베르디의 작품이 좀 더 우리의 삶과 가까운 이야기를 귀에 쏙 들어오는 음악으로 펼쳐놓기 때문이겠지요. 그와 반대로 바그너는 인간의 구원과 세계의 질서와 같은 보다 근본적이고 철학적인 문제를 파고들었고 지나치게 음악, 특히 가수들의 노래에 의존하는 이탈리아 오페라의 한계를 뛰어넘어 무대 위의 모든 요소들이 어느 하나에 치우치지 않고 완벽하게 결합하여 일체를 이루는 ‘Musikdrama', 즉 음악극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주창하였습니다. 작품세계 뿐만 아니라 삶에 대한 그들의 태도 또한 전혀 달라서 베르디가 늘 겸손하고 신중하며 주변 사람들을 배려하고 존중하는 삶을 살았던 것과는 반대로 바그너는 그의 꿈을 실현하고 뜻을 펼치기 위해서는 그 어떤 수단과 방법도 가리지 않을 정도로 독선적이고 자기중심적이었습니다. 그래서 베르디는 말년에 사재를 털어 은퇴하고 오갈 데 없는 음악가들을 위한 양로원을 지었던 반면 바그너는 바이에른의 루드비히 2세를 설득하여 그 자신의 작품만을 무대에 올릴 수 있는 전용극장 바이로이트축전극장을 세웠습니다.

 

베르디의 "팔스타프" 공연 모습

 

이처럼 같은 시대를 살았지만 이렇듯 상반된 삶과 꿈을 가졌던 두 사람이기에 그들이 남긴 어느 하나도 서로 닮은 꼴을 찾을 수 없을 것 같지만 엉뚱하게도 삶의 끝자락에 이르러 마지막 남은 힘을 다해 완성한 최후의 걸작들에서 묘한 만남이 이루어지는 것을 발견하곤 소스라치게 놀라게 됩니다. 바그너의 마지막 작품은 파르지팔이고 베르디의 경우는 팔스타프입니다. 작품의 이름이 주인공의 이름이라는 것과 그것이 모두 네 음절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을 공통점 말고는 아무리 들여다봐도 이 둘의 공통점은 나타나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전 작품들 보다 차이점만 더 두드러질 뿐입니다.

 

 

 

바그너의 작품만을 무대에 올릴 수 있는 전용극장 "바이로이트축전극장"

 

바그너는 초지일관 이 혼란스럽고 부조리한 세상을 구원할 존재가 누구인지를 물어왔고 마지막 작품에서 답을 찾았습니다. 탄호이저에서는 한 여인의 숭고한 헌신과 희생으로부터 구원의 빛을 보았으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사랑하는 연인을 위한 것이었고 4부작 음악극 반지에서는 두려움을 모르는 인간의 영웅이 무너져 가는 신들의 세계를 구원하리라 믿었지만 영웅 지그프리트는 결국 의심과 배신으로 말미암아 뜻을 이루지 못합니다. 그러나 마지막 작품에서 주인공 파르지팔은 마법사 클링조르의 간계에 넘어가 치명적인 상처를 입은 성배기사단의 왕 암포르타스를 치유하고 세상을 구원하게 됩니다. 현자가 예언하기를 연민으로 깨달음을 얻은 순수한 바보만이 암포르타스를 살릴 것이라 했으니 파르지팔이 곧 그였던 것입니다.

 

뮤지컬 '아이다' 中 'Elaborate lives' - 차지연 & 김준현

 

바그너와는 달리 베르디는 삶의 막바지에 이르러 전작들과는 전혀 다른 시도를 하였고 그것은 어처구니없게도 평생 그가 쌓아온 고귀하고 진지한 이미지와는 어울리지도 않을 뿐더러 시대에도 뒤떨어진 오페라 부파였습니다. 그리고 그의 평생 처음으로 다른 그 누구도 의식하지 않고 스스로의 만족을 위한 작품이라고 했고 심지어는 계약서에다 마지막 리허설까지 갔다 하더라도 자신이 결정하면 공연하지 않아도 된다는 조항을 넣기까지 했습니다. 세익스피어의 윈저의 유쾌한 아낙네들헨리 4”를 바탕으로 보이토가 쓴 대본에 곡을 붙인 팔스타프는 매력이라고는 어느 한 구석도 없는 속물입니다. 게다가 스스로는 누구보다 잘났다고 착각하며 있는 대로 잘난 척을 떠는 혐오스런 인물이지요. 한 때는 잘 나가는 기사였는지 모르지만 이제는 나이가 들어 배는 나오고 머리는 벗겨진 데다가 돈도 없으면서 날마다 술독에 빠져 누군가를 등칠 생각에만 골몰하고 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윈저의 돈 많은 부인 둘을 유혹해서 돈까지 뜯어낼 궁리를 하지만 결국은 오히려 그들과 그 주변 사람들에게 골탕을 먹고 망신을 당하기에 이릅니다. 그 과정에서 팔스타프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가식과 헛된 욕심까지 다 드러나게 되면서 마지막에는 모두가 화해하며 함께 노래를 부릅니다. 처음에는 세상만사 다 장난이고 남자들은 모두 광대라고 놀리더니 마지막에 가서는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은 바보일 따름라고 외칩니다.

 

 

 

 

 

 

 

 

독일 남부 뮌헨시 뮌헨오페라단 앞에서 28일(현지시간) 야외공연이 펼쳐졌다. 배우들이 조명을 비춘 대형 인형과 함께 공연을 하고 있다. 두 거인 인형 사이에 나란히 줄에 매달린 출연배우들의 모습이 이채롭다. 마치 작은 인형들을 엮어 놓은 듯이 보인다.이날 행사는 유명작곡가인 리하르트 바그너와 주세페 베르디 탄생 200주년을 맞아 열렸다. - 출처 : 일간스포츠 -

 

 

그렇습니다. 바그너는 순수한 바보가 세상을 구한다고 했고 베르디는 아무리 머리를 쓰고 잘난 척을 해도 우리는 누구나가 다 바보라고 말합니다. 스스로 바보인 줄 알면 그것이 바로 깨달음이고 우리 모두가 다 그렇게 깨닫게 된다면 그것이 바로 구원일 것입니다. 그래서 아마도 돌아가신 성철 스님이 당신이 낳은 단 한 점의 혈육이 출가한다 했을 때 불필이라는 법명을 주셨겠지요. 필요하지 않은 존재가 되라는 말씀이야말로 바보가 되라는 말씀이 아닐까요. 사람은 젊어서 세상을 바꾸려고 하고 결혼해서는 배우자를 고치려고 든다지요. 그러다 자식을 낳으면 한풀이라도 하려는 듯이 그마저 못살게 군답니다. 그렇게 지쳐서 삶이 다 꺼져갈 즈음에야 나 스스로가 바뀌어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데 그 때는 이미 늦은 겁니다. 철들자 죽음인 것이지요. 하루에 한 번은 가던 길을 멈추고 하늘을 봐야겠지요. 하루에 한 번은 까닭 없이 웃어야지요. 그래도 한 번은 누군가를 칭찬하고 한 번은 모르는 사람에게 말을 걸어볼 참입니다. 왜냐고요? 자꾸 왜냐고 묻지 마세요. 그냥 바보라서 그러려니 생각하세요.

 

 

 

 

 

 

 

글 : 홍승찬 교수
편집 : 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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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고전, 인간을 말하다]자유를 꿈꾸는 고독한 속물, 베토벤[서양고전, 인간을 말하다]자유를 꿈꾸는 고독한 속물, 베토벤

Posted at 2013.05.08 09:50 | Posted in 직장인 톡톡/Smart 직장인


자유를 꿈꾸는 고독한 속물, 베토벤


서양고전, 인간을 말하다 3주차 강의는...


베토벤이었습니다.


타이틀은 자유를 꿈꾸는 고독한 속물,


베토벤





우리가 알고 있는 베토벤의 이미지는 아니지요?


저 역시도 그랬습니다.


베토벤하면 음악의 천재이지, 


속물...왠지 세속의 우리에게나 어울릴거 같은 표현...


강연자이신 홍승찬교수님(한국예술종합대학교 교수)의 의도가


잘 들어난 강연제목이 아닌가...싶습니다.


천재라 불리워진 베토벤의 생애를 음악이 아닌


인간으로써의 베토벤에 대한 이야기...


그 이야기를 잠시 여러분과 공유하고자 합니다.


강연은 종전의 서양고전 강연과 조금은 다른 방식이었습니다.


멋진 강연과 바이올린 소나타와 피아노 소나타가 들어있는...


좋은 음악회 한편을 멋지고 재밌고 감동이 있는 


설명을 들은 느낌이었습니다.




강연의 주요포인트를 짚어 드릴께요.


서두에 '피아니스트 김선욱'과의 베토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 것으로 


강연의 시작을 하셨습니다.


피아니스트 김선욱씨에게 교수님이 물어봤다고 합니다.


"소나타32곡중 어느것이 최고인가...?"


그의 대답은...오히려 "선생님은요?"


그 답을 찾을수 없다.


인생 역시 그러하다.


답을 찾을수 없다.


속물적인 베토벤...


열심히 산 흔적


그것이 바로 그의 음악인 것..


모든 곡이 최고의 작품이 된...


그 노력과 혼신의 힘...


그것은 베토벤의 인생의 고민에서 나온 것이다.


베토벤은 칸트와 헤겔과 같은 인물이다.


'바그너'는 이런 말을 했다고 합니다.


"업으로 음악을 하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베토벤이후에 교향곡은 쓸데없는 짓이다."


베토벤은 오페라를 만들지 못했다고 합니다.


왜 일까요??


그것은 강연을 통해 천천히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파트1


'운     명'


파트1의 제목은 '운명'


반 베토벤의 태생은


출생...반 베토벤...네달란드 태생으로


할아버지가 머리가 좋았다고 합니다.


포도주를 팔아서 부수입을 취할 정도로 여러가지고 


머리가 좋았다고 합니다.


시장의 흐름을 읽을줄 알았던 할아버지였죠.


할머니가 그것을 홀짝홀짝~~


할머니의 홀짝홀짝은 어떤 결과를 나았을까요?


음악의 흐름을 알고 독일로 이주하기로 합니다.


베토벤의 아버지...


아버지와는 반대로 알코홀릭에 무능한 사람이었습니다.


아마도 어머님의 영향은 아닐지...^^


아들의 재능을 알아본 베토벤의 아버지는


4세때부터 스파르타 음악교육 실시합니다.


아버지는 참 모진 아버지였습니다.


사기꾼, 베토벤을 음악 앵벌이를 시킬 정도였다고 하니...


그러한 힘든 시간이 베토벤에게 있어서 큰 원동력이 되는데요.


여기서 잠시 원동력에 대해서 언급을 하고 넘어 갈까요?


- 원 동 력 - 


그들의 재능과 열등감 원죄 낙인


'누구처럼 되야겠다' VS '누구처럼 되지 말아야겠다.'

 

과연 어느 것이 인간에게 더 큰 원동력을 제공할 것인가?


강연자 홍승찬교수님의 생각은 바로~~


'네가티브적 인간이 성공한다.'


인간은 자신의 컴플렉스를 극복하기 위한 인생을 사는 것은 아닐까...


저는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베토벤의 어머님은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요?


어머니는 바로 정신적 지주였습니다.


 그런 어머님의 급작스런 죽음으로 다시 한번 


베토벤의 인생의 무게감이 더해지게 됩니다.


바로...


모차르트 수하에서 공부를 할수 있는 기회를 놓게 됩니다.


어머님 사망후 소년가장의 역할을 해야하는 상황으로 내몰리게 됩니다. 


30대후반에 유서를 작성하고 죽으려고도 했습니다. 


역경과 콤플렉스...


출생이후 죽음까지 미친짓의 연속이었습니다.


그 대표적인 예 ‘운명’


C단조로 8개의 음으로 끝까지...


이리저리 돌려서 만든 음악..대단한 의지


실제 음악회에서는 듣기가 어렵다고 합니다.


왜??어렵다...??그리고 너무 유명하다..


그래서 조금만 실수하면 다 보인다.


심지어 초등학생에게마저도...


이러한 유머스런 이야기로 지루하지 않은 


베토벤 강연은 진행되었습니다.


어찌보면 '운명'은 작곡가의 입장에서는


경제적인 음악이 될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저런 음악을 왜 다른 작곡가는 못하는가?


베토벤에게 운명은 이러하다..


무언가 불길하다...늘 불길하다.


운명의 가혹함을 그 환경속에서도 희망을 찾는 메시지


끝내 승리를 거두리라~~


예전에 박세리 선수가 양말을 벗고 헤저드에서 그린위로 샷을 올리는


이미지와 묘하게 오버랩이 되지 않습니까??^^


(저는 그렇더라구요)




'운명'은 이렇게 탄생하게 된 것입니다.


단순한 음악적 영감으로 얻어진 그리고 완성된 음악이 아니라


베토벤의 인생이 고스란히 녹아들어가고 투영된 음악


그것이 '운명'인 것입니다.


전 앞으로 '베토벤의 운명'이 쉬이 들리지 않을거 같다...라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한 인간의 고뇌와 인생이 들어있는 음악...


좀 더 집중해서 그리고 진하게 듣게되고


더 깊고 넓은 감동을 느낄수 있겠구나...


왠지 제가 클래식에 한발 더 다가선 느낌이었습니다.


그럼 한번 운명을 들어보시면서 1부에 대한 글을 마칠까 합니다.





남은 2,3,4부도 기대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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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쉬운 오페라 아리아] 음치가 아니라면 누구나 쉽게 따라 부를 수 있는 오페라 아리아 도니제티의 오페라 “사랑의 묘약”[세상에서 가장 쉬운 오페라 아리아] 음치가 아니라면 누구나 쉽게 따라 부를 수 있는 오페라 아리아 도니제티의 오페라 “사랑의 묘약”

Posted at 2013.05.03 09:14 | Posted in 이건음악회 Talk Talk/홍승찬교수의 클래식 톡톡

 

 

 

 

 

 

 

홍승찬 교수의 클래식 음악(49)
[홍승찬 교수의 재미있는 클래식음악 이야기]

 

 

 

세상에서 가장 쉬운 오페라 아리아

 

 

 

도니제티

 

 

 

이제 곧 송년회 모임이 많아지는 연말. 분위기가 무르익으면 돌아가며 노래 한 곡조씩 하는 것이 피할 수 없는 운명이지만 늘 부르고 듣는 그 노래가 그 노래라 모두들 식상하기 마련입니다. 이 때 오페라 아리아 한 가락을 제대로 뽑을 수 있다면 사람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으며 그 모임의 주인공이 되는 것은 시간문제겠지요. 게다가 그 노래가 지루하거나 축 처지는 것이 아니라 밝고 가벼운 데다가 웃음까지 줄 수 있다면 이 보다 더 좋을 수는 없을 겁니다. 그런데 오페라 아리아라면 고도의 성악적 기교를 훈련받아야 하는 데다가 뜻도 모르고 발음도 어려운 외국어 가사까지 읊어야 하는 탓에 아무나 덤벼들 수 없다는 것이 우리가 아는 상식이지요. 그래서 오늘은 특별히 여러분에게 음치가 아니라면 누구나 쉽게 따라 부를 수 있는 오페라 아리아 한 곡을 소개할 생각입니다. 말하자면 세상에서 가장 쉽게 부를 수 있는 오페라 아리아인 셈이지요. 그 곡은 다름 아닌 도니제티의 오페라 사랑의 묘약에서 주인공 네모리노가 술에 취해 콧노래로 부르는 짧은 선율입니다.

 

 

Donizetti - 남몰래 흐르는 눈물 (사랑의묘약 / Pavarotti)

 

 

농장에서 일하는 주인공 네모리노는 농장주인인 아디나를 사랑하지만 수줍어서 차마 고백하지 못합니다. 아디나도 네모리노가 싫지 않지만 다가서지 못하는 그가 답답하기만 합니다. 마을에 군인들이 주둔하게 되고 그들의 지휘관인 벨코레가 아니다에게 구애를 하자 그때서야 다급해진 네모리노는 아디나에게 사랑을 고백하지만 아디나의 반응은 시큰둥합니다. 그 때 떠돌이 약장수 둘카마라가 마을에 들어와 사람들을 모아놓고는 만병통치약이라며 가짜약을 팔자 네모리노는 혹시 상대가 나를 사랑하게 되는 사랑의 묘약은 없는지 약장수에게 묻습니다. 둘카마라는 싸구려 포도주를 사랑의 묘약이라고 속여서 팔면서 하루가 지나야 약효가 나타난다고 말합니다. 도망갈 시간을 벌려는 속셈이지요. 싸꾸려 포도주를 잔뜩 마시고 기분이 좋아진 네모리노는 신이 나서 콧노래를 부르며 아디나에게 내일이면 모든 것이 달라질 것이라고 큰소리를 칩니다. 바로 이 때 부르는 콧노래가 바로 오늘 여러분에게 소개할 바로 세상에서 가장 쉬운 오페라 아리아입니다. 물론 가사도 없이 흥얼거리는 콧노래를 딱히 아리아라고 우길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굳이 아니라고 잡아 뗄 이유도 없습니다.

 

 

Gary Karr 오페라 아리아 10 도니제티 남 몰래 흐르는 눈물 사랑의 묘약 제2막

가에타노 도니제티(1797~1848)는, 19세기 전반에 도니젯티는 롯시니, 벨리니와 함께 이탈리아 오페라의 3거두의 한사람으로 활약한 작곡가입니다.

그는 50 여생을 통해 67편의 오페라를 썼는데, 그 중 몇 작품은 오늘에 와서 상연되고 있습니다.
1832년에 작곡된 오페라 “사랑의 묘약”은 도니젯티가 그의 나이 36세 때에 작곡한 것으로 “루치아”와 함께 그의 대표작으로 속합니다. 구슬픈 단조 가락과 전조의 묘미 덕분에 전곡 중 가장 인기가 높고, 베스트 아리아로 꼽힌 작품입니다.

내용은 이탈리아의 작은 마을에서 생긴 사랑 이야기입니다. 제 2막에서 부자가 된 네모리노가 아디나에게 사랑은 아직 변함이 없다고 말하자 아디나가 눈물을 흘리는데, 이를 본 네모리노가 부르는 사랑의 노래  “남몰래 흐르는 눈물”은 유명하여 많이 애창되고 있습니다.


 

 

 

 

Una furtiva lagrima negli occhi suoi spunto

One lonely tear steals down thy cheek,
Secretly here in the dark.
외로이 그대 빰에 흐르는 눈물,
어둠속에 남몰래 흐르네.

Quelle festose giovani invidiar sembro
Ah! but to me it seems to speak
It has much to tell...
아! 나에게만 무언가 말하는 듯 하네
할말이 아직 많이 남아있다고...

Che piu` cercando io vo?
Why then do you have to leave?
왜 그때 그대는 떠나지 않았나?

Che piu` cercando io vo?
Why then do I have to grieve?
왜 그때 난 그렇게 슬퍼했던가?

M'ama, si m'ama, lo vedo, lo vedo!
One lonely tear on thy cheek
Seems to say Don’t fly away...
외로이 그대 빰에 흐르는 눈물
떠나지 말라고 말하는 듯하네..

Un solo istante il palpiti del suo bel cor sentir
One lonely tear steals down thy cheek
Here as I kiss thee farewell,
외로이 그대 빰에 흐르는 눈물,
여기 나의 작별키스로 그대에게 남았네

i miei sospir confondere per poco a suoi sospir
Ah! but to me it seems to speak
It has much to tell...
아! 나에게만 무언가 말하는 듯 하네
할말이 아직 많이 남아있다고..

i palpiti, i palpiti sentir
O stay, my love, O stay my love, O stay!
아! 가지마오 내 사랑 가지마오 내사랑, 가지마오!

confondere i miei co' suoi sospir
Don’t fly away, O love, don’t fly away!
떠나가지마오, 그대 떠나가지 마오!

Cielo, si puo` morir di piu` non chiedo non chiedo
Give love a chance to survive,
O I beg thee to try to keep love alive! Ah!
사랑을 주오 살아남을 기회를,
아 나 그대에게 사랑이 꺼지지 않게 해주기를 비오! 아!

Cielo, si puo`si puo` morir di piu non chiedo
non chiedo
One lonely tear I can clearly see
외로운 눈물 한방울 난 또렷하게 볼수 있소

si puo` morir ... Ah si, morir... d'amor
Seems to reveal thy love for me!
나를 향한 그대의 사랑을 드러내는 것을 말이오!

 

 

갑자기 주둔지를 옮기라는 명령을 받은 벨코레가 황급히 청혼을 하자 아디나는 우쭐대는 네모리노를 골려주려는 생각으로 승낙을 합니다. 갑작스런 돌발상황에 다급해진 네모리노는 아디나에게 결혼날짜를 하루만 늦춰달라고 애원하지만 소용이 없습니다.

마을에선 아디나와 벨코레의 결혼을 축하하는 잔치가 벌어지고 둘카마라에게 달려간 네모리노는 당장 약효가 듣는 약을 달라고 하지만 이미 가진 돈을 약 사는 데 다 써버린 처지입니다. 이런 상황을 눈치 챈 벨코레는 귀찮은 연적을 치워버릴 생각으로 네모리에게 입대하면 당장 돈을 주겠다며 계약서를 내밀지요 달리 방법이 없는 네모리노는 입대 지원서를 쓰고 받은 돈으로 당장 약효가 듣는다는 가짜 약을 사서 단숨에 들이킵니다. 그 때 동네 처녀 자네타는 네모리노가 거액의 유산을 상속받게 되었다는 소문을 듣고 동네 처녀들에게 그 말을 퍼트립니다. 갑자기 동네 처녀들이 네모리노에게 달려들어 아양을 떨자 이 사실을 모르는 네모리노는 드디어 약효가 나타나는 줄 알고 무척이나 기뻐합니다.

 

 

  

 

 

멀리서 이를 지켜보며 수상하게 생각하던 아디나는 약장수 둘카마라를 졸라 그 동안의 사정을 듣고는 네모리노의 순수하고 맹목적인 사랑에 마음이 움직여 눈물을 흘립니다. 그 모습을 보고 부르는 네모리노의 그 유명한 아리가 바로 남몰래 흘리는 눈물이지요. "이제 아디나도 날 사랑하는 게 분명해. 저 눈물을 보면 알아. 아디나의 뛰는 가슴을 한 순간이라도 느껴볼 수만 있다면, 내 한숨을 그 숨결에 섞을 수만 있다면. 그때는 죽어도 좋아. 더는 바랄게 없어.” 벨코레에게 돈을 주고 입대 지원서를 되찾아 온 아디나는 네모리노에게 그 계약서를 돌려주며 서로의 사랑을 확인합니다. 그리고 마침내 떠돌이 약장수 둘카마라는 마을 사람 모두의 감사와 환호 속에 유유히 길을 떠납니다.

 

 

 

 

 

남몰래 흘리는 눈물은 마침내 사랑의 꿈이 이루어지는 순간의 벅찬 감격을 담은 노래지만 바로 전까지의 들뜨고 소란스러운 분위기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게 갑자기 바순의 낮게 가라앉은 선율이 서글프게 울리면서 엉뚱한 분위기로 이끌어 갑니다. 그래서 이 오페라의 대본을 쓴 펠리체 로마니는 이 장면에 이 아리아가 들어가면 극의 흥이 갑자기 깨진다며 도니체티를 말렸지만 작곡가는 끝내 고집을 꺾지 않았습니다. 로마니의 우려대로 1832년 밀라노 카노비아나 극장에서 이 오페라가 초연되었을 때 관객들은 이 아리아에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고 합니다. 한마디로 생뚱맞다는 것이었지요. 그러나 공연이 거듭될수록 관객들은 오페라와는 상관없이 점점 이 아리아의 아름다운 선율과 구슬픈 흐느낌에 마음을 빼앗겼고 마침내 사랑의 묘약을 대표하는 주제가일 뿐만 아니라 테너 아리아의 대명사로 자리매김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오늘 이 시간의 주제는 남몰래 흘리는 눈물이 아니라 네모리노의 콧노래입니다. 그리고 사실 그 콧노래야말로 오페라 역사상 누구보다 멍청하고 어리석은 주인공에게 그 무엇보다 잘 어울리는 주제가일 것입니다. 우리가 좋아하는 이야기 속에는 이렇듯 늘 남에게 속고 빼앗기면서도 아픈 줄도 모르고 좋아라 웃는 바보들이 나오기 마련입니다. 현실에선 언제나 똑똑하고 영악한 인간들이 득세할지라도 예술이 꿈꾸는 세상에서만큼은 그렇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겠지요. 그렇게 다친 마음을 위로받고 내일을 살아갈 힘을 얻는 것입니다. 엉터리 약장수에게 속아서 산 가짜 약을 진짜라고 굳게 믿고는 좋아서 어쩔 줄 몰라 부르는 콧노래를 우리 모두 함께 따라 부르며 바보로 사는 아름다운 마음을 진정으로 헤아렸으면 합니다.

 

 

 

 

글 : 홍승찬 교수
편집 : 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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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티지 와인처럼 깊고 그윽한 향을 지닌 첼리스트 양성원] 와인보다는 음악이 중요하지만 음악과도 바꿀 수 없는 것이 가족이다.[빈티지 와인처럼 깊고 그윽한 향을 지닌 첼리스트 양성원] 와인보다는 음악이 중요하지만 음악과도 바꿀 수 없는 것이 가족이다.

Posted at 2013.04.17 11:44 | Posted in 이건음악회 Talk Talk/홍승찬교수의 클래식 톡톡

 

 

 

 

 

 

홍승찬 교수의 클래식 음악(48)
[홍승찬 교수의 재미있는 클래식음악 이야기]

 

 

 

빈티지 와인처럼 깊고 그윽한 향을 지닌 첼리스트 양성원?

부부동반으로 만나기에 부담스러운 첼리스트 양성원?

 

 

도전과 열정의 첼리스트 양성원

 

 

요즈음 우리나라에서는 어린 연주자들, 특히 여성 연주자들이 두각을 나타내는 경우가 많은데 첼리스트만큼은 예외라는 생각이 듭니다. 일단 연배 순으로 다섯 손가락만 펴서 꼽아 본다면 정명화와 장한나 사이에 조영창과 양성식, 송영훈이 차례로 들어갈 수 있으니 남성이 여성보다 많고 또 그들의 나이 또한 각각 50대와 40, 30대를 대표하고 있습니다. 이들을 놓고 우열을 가리는 것은 어리석고 무의미한 일이지만 활동의 빈도만을 따진다면 양성원이 가장 두드러진 것이 사실입니다. 그만큼 꾸준하고 부지런하다는 것이지요. 연세대학교 교수이면서 현재 영국의 왕립음악원 객원교수로 나가 있는 첼리스트 양성원은 해마다 음반을 내는가 하면 국내외를 오가며 누구보다 왕성한 연주활동을 하고 있는 우리나라 첼로의 대표주자입니다. 우리나라 바이올린계의 대부라고 할 수 있는 양해협 선생의 아들이면서 현재 대구 가톨릭 대학 교수로 있는 바이올리니스트 양성식의 동생이기도 한 그는 어려서 프랑스에서 자라 그곳에서 공부했고 커서는 미국으로 건너 가 거장 야노스 슈타커에게 사사했습니다. 그리고 해외에서 두각을 나타내며 활동을 하던 중 때 마침 문을 연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로 국내에 들어와 지금껏 그 누구보다 많은 활동과 업적을 쌓아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첼리스트 양성원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드릴까 합니다.

 

 

 

 

첼리스트 양성원의 바흐 무반주 모음곡 동영상

 

첼리스트 양성원과 밥 먹는 일은 늘 즐겁습니다. 전화를 걸어서 상대편의 의견을 묻기는 하지만 결국은 그가 즐겨 찾는 식당으로 가서 그가 좋아하는 메뉴를 선택하고 거기에 딱 맞는 와인을 마시게 됩니다. 그러니 내가 먼저 무엇을 먹고 마실지 고민할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게다가 워낙 음식과 와인에 일가견이 있어 그의 선택은 언제나 감동입니다. 식사를 하면서 서로 주고받는 대화도 너무나 편안합니다. 심각한 이야기가 없기 때문입니다. 먹고 마시며 웃고 떠들 따름입니다. 그러다 음악 이야기를 나눌 때도 있고 간혹 이야기가 길어지면 서로 다른 입장이 드러날 때도 있지만 아무도 그걸 신경 쓰지 않습니다. 그는 그저 그의 말을 할 뿐이고 나는 그저 나의 말을 할 뿐이지 그것이 두 사람의 식사에 끼어들어 방해하지는 않습니다.

 

 

 

 

양성원과 함께 하는 연주회도 언제나 이런 식입니다. 기획하고 해설하는 입장에서 여러 가지 다른 의견을 내보기도 하지만 결국은 그가 원하는 곡들로 연주회를 만들게 됩니다. 그리고 그 결과 지금까지 다 한 번도 청중들의 기대와 호응을 저버린 적인 없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먼저 그의 의견을 물어 그가 하자는 대로 다 들어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한 번은 어느 특급호텔 개관을 축하하는 파티의 축하연주를 부탁받고 그에게 물었더니 느닷없이 베토벤의 소나타 전 악장을 다 연주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래도 이건 아니다 싶어 말리려다가 이번에도 그의 생각을 존중하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개관 축하연이 있던 날 해설자로 나서서는 하객들에게 이런 들뜬 분위기에서 이렇게 긴 곡을 들려 드리게 되어 송구스럽다는 말과 연주자의 고집을 꺾지 못해 죄송하다는 말을 하고 양해를 구했습니다. 그렇게 다들 한바탕 웃었지만 오직 양성원은 여느 때와 다름없이 진지한 자세로 열과 성을 다한 연주를 들려주었고 긴 시간 어쩔 수 없이 서서 들어야 했던 수많은 청중들은 예기치 않은 감동에 우뢰와 같은 박수와 환호를 멈추지 않았습니다.

 

 

 

융통성이라고는 하나도 없이 고지식한 양성원에게 식도락이 삶의 단 하나 뿐인 일탈이라면 일상에서 나머지 거의 모든 시간은 음악과 함께 하는 나날들입니다. 언젠가 그와 함께 하는 여름 캠프에서 하루의 일과가 모두 끝나고 참여한 다른 음악인들과 숙소에서 조촐한 술자리가 벌어졌을 때 그만 홀로 커다란 악기를 들고 나타났습니다. 그리고는 아무렇지도 않게 첼로를 품에 안은 채 오른손에는 술 잔을 들고 다른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는 동안 왼 손의 손가락들은 잠시도 쉬지 않고 첼로의 지판 위를 재빠르게 오르내리고 있었습니다. 누군가 이런 자리에서까지 그러냐고 핀잔 아닌 핀잔을 주었지만 그는 전혀 아랑곳하지 않았고 술자리가 끝날 때가지 악기를 내려놓지 않았습니다.

 

Dvorak - Songs My Mother Taught Me

어느 연주회가 끝날 무렵 청중들 앞에서 그에게 느닷없는 질문을 던진 적이 있습니다. 와인과 음식, 첼로와 음악, 그리고 가족들, 당신 삶에서 이 세 가지 말고는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는데 이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이냐고 말이지요. 그랬더니 음식보다는 음악이 중요하지만 음악과도 바꿀 수 없는 것이 가족이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래서 서울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연주회가 있어 양성원을 부르려면 가족과 함께 지낼 수 있는 숙소를 따로 마련해야 합니다. 다른 연주자들은 연주를 앞두면 일부러 가족과 떨어져 혼자 따로 지내기도 하는데 그는 오히려 어떤 경우에도 가족과 떨어지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쪽입니다. 심지어는 중요한 연주회에서 무대에 나서기까지 불과 5분이 남은 긴장된 순간에도 대기실에서 연주복을 입은 채로 아이들과 놀아주는 모습을 본 적도 있지요. 부인을 바로 보는 애틋한 눈길도 결혼식장에서나 지금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첼리스트 양성원 - Cello Suite No.3 In C Major, BMV1009

 

그런 까닭에 양성원은 절대로 부부동반해서 만나지 말아야 할 사람입니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첼리스트인 데다가 건장한 체격에 잘 생기기까지 했는데 부인과 자녀들을 자상하게 챙기는 모습이라니 생각만 해도 끔찍합니다. 게다가 프랑스와 미국에서 오래 살아서 우리말보다 영어를 더 잘하고 영어보다 프랑스어가 더 편할 정도니 혹시 정통 프랑스 식당에라도 가게 되서 유창한 프랑스어로 능숙하게 와인과 음식을 주문하는 모습이라도 본다면 여자라면 누구나 마음이 흔들리지 않을 수가 없겠지요. 그나마 너무나 다행인 것은 이렇게 사방팔방으로 잘난 남자가 도대체 꽉 막히고 고지식해서 가족과 음악, 그리고 음식과 와인 말고는 다른 어떤 것에도 관심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흐뭇한 것은 음악에 관한 한 그의 연주는 만날 때마다 들을 때마다 넓이가 더하고 깊이가 더해 점점 더 맛과 향이 짙어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어린 나이에 반짝하고 세상을 놀라게 했다가 제 풀에 꺾이고 마는 연주자들이 늘어가고 있는 세태에 지금보다는 내년을, 그리고 십년 후 이십 년 후를 틀림없이 기대할 수 있는 성실하고 미련한 연주자가 우리나라 대한민국에 있다는 사실에 오늘도 싱겁지만 흐뭇한 미소가 얼굴에 번집니다.

 

 

 

글 : 홍승찬 교수
편집 : 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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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좋은 연주자군요. 흥미있게 읽고 갑니다. 와인과 첼로, 참 잘 어울리네요 -
  2. 김에송
    와~ 멋있네요!

    저도 클래식을 좋아하지만 음식에 대해 아는것, 요리하는것, 먹는것 모두 좋아하는데

    저와 비슷한것 같아요 ㅎㅎ

    그렇지만 프랑스어와 영어를 잘 하는건 진짜 멋있네요..ㅠㅠ
  3. 김에송
    와~ 멋있네요!

    저도 클래식을 좋아하지만 음식에 대해 아는것, 요리하는것, 먹는것 모두 좋아하는데

    저와 비슷한것 같아요 ㅎㅎ

    그렇지만 프랑스어와 영어를 잘 하는건 진짜 멋있네요..ㅠㅠ
  4. 1968 년 대학 초년 과에서 사귄 친구 따라 무교동 르네상스에 들어가는 순간 감전이라도 된 듯 끌려버린 고전 음악....방과후 지속된 르네상스 감상...연주회,눈 뜨면 KBS FM 고전 음악 채널...아마 양성원 씨는 내가 음악회 까지 가는 열성이 뜸해지기 시작한 20 여 년 전 부터 국내에서 아주 가끔 연주회에 나오신 듯...아! 삼천포로 빠졌네...위 글 쓰신 분! 아직 젊어 겉 멋,허영심에서 못 벗어난 듯! 마지막 부분에서 빈 깡통 울리는 소리가 들리네...흙(먼지)에서 나서 흙(먼지)으로 돌아가는 허영의 시장에서 허허롭게 남은 여생을 보다 솔직하게 살다 가고픈 내겐 쪼매 부담스러운 귀절들이...어제 아트하우스 모모에서 본 '시간의 종말'에서 보고 들은 양성원 님에 대한 인상에 흠집이 날까 두렵구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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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웨스트사이드 스토리”가 전하는 2013년 신년 메시지] “로미오와 줄리엣”이라는 고전을 당시의 뉴욕으로 배경을 옮겨 새롭게 해석하는 시도 어떠세요?[뮤지컬 “웨스트사이드 스토리”가 전하는 2013년 신년 메시지] “로미오와 줄리엣”이라는 고전을 당시의 뉴욕으로 배경을 옮겨 새롭게 해석하는 시도 어떠세요?

Posted at 2013.02.18 09:33 | Posted in 이건음악회 Talk Talk/홍승찬교수의 클래식 톡톡

 

 

 

 

 

 

홍승찬 교수의 클래식 음악(44)
[홍승찬 교수의 재미있는 클래식음악 이야기]

 

 

뮤지컬 웨스트사이드 스토리가 전하는 2013년 신년 메시지

 

 

 

 

2012년의 시작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한해가 다 저물고 새해도 2달이 지나가려 합니다.

삶이 점점 더 팍팍해져서 그런지 뒤돌아볼 겨를도 없이 앞만 보고 달려왔나 봅니다. 지금으로부터 반세기 전 바다 건너 멀리서 벌어진 수많은 일들이 오늘날 우리네 삶을 송두리째 바꿔놓았는데도 잠시 바쁜 걸음을 멈추고 그 시절을 되새겨 볼 여유조차 없었나 봅니다. 50년 전인 1962, 헐리웃을 훌쩍 넘어 전 세계 젊은이들의 우상이었던 시대의 반항아 제임스 딘이 자동차 사고로 죽었고 세기의 연인 마릴린 먼로도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들은 갑작스런 죽음으로 오히려 더 많은 사랑을 받았고 그로 말미암아 바야흐로 대중예술의 시대를 열어놓았습니다. 같은 해 비틀즈는 2년간의 시행착오를 거쳐서 마침내 새로운 출발을 선언했습니다. 그리고 바로 그해 비틀즈와 함께 브리티쉬 록의 신화를 써내려간 롤링 스톤즈의 역사가 시작되었죠. 그리고 브로드웨이를 뿌리째 흔들어놓았던 뮤지컬 웨스트사이드 스토리가 드디어 1961년 영화로 만들어져서 미국 전역은 물론 지구촌 곳곳에 배급되어 아메리칸 드림의 충격을 전파하기 시작한 것도 바로 이듬해인 1962년부터였습니다.

 

 

 

 

 

웨스트사이드 스토리는 거의 모든 면에서 이전의 뮤지컬을 송두리째 뒤집어놓았습니다.로미오와 줄리엣이라는 고전을 당시의 뉴욕으로 배경을 옮겨 새롭게 해석하는 시도도 전에 없던 일이었고 주로 노래와 연기로 이끌어 가던 북 뮤지컬의 전통을 벗어나 춤을 가장 먼저 앞세운 것도 처음이었습니다. 이 작품을 처음으로 생각했고 안무와 연출까지 도맡았던 제롬 로빈스는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뿐만 아니라 왕과 나”, “피터팬”, “지붕 위의 바이올린과 같은 뮤지컬의 안무를 맡기도 했지만, 현대무용과 발레 안무가로도 그 못지않은 업적과 명성을 쌓은 인물입니다. 그 탁월한 능력으로 이미 1949년 미국 발레의 초석을 놓았던 조지 발란신이 그를 뉴욕시립발레단의 공동 예술감독으로 임명했을 정도였지요. 로빈스와 의기투합하여 대본을 맡았던 아서 로렌츠는 희곡과 뮤지컬 대본뿐만 아니라 연출자로 토니상을 수상했는가 하면 히치콕의 영화 터닝 포인트의 시나리오를 써서 골든 글로브 상을 받았을 만큼 발군이었고 작사를 맡은 스티븐 손드하임은 당시는 무명이었지만 이후 그의 작업이 바로 브로드웨이 뮤지컬의 역사라고 할 만큼 전설적인 인물입니다.

 

 

 

 

 

그러나 이 작품에 참여한 주도적 인물들 가운데 가장 큰 관심을 불러일으켰고 또 논란의 중심에 있었던 사람은 작곡을 맡은 레너드 번스타인이었습니다. 뉴욕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지휘자로서, 또 클래식 음악 작곡가로서 미국의 자존심을 대표하고 있는 그가 대중들을 위한 쇼비지니스의 세계에 뛰어든 셈이었으니까요. 말하자면 작업에 참여한 인물들 모두가 당대의 최고들이었지만 오히려 이 때문에 제작자들이 선뜻 나서지를 않았습니다. 그 면면들이 너무나도 개성이 강했고 작품의 성격 또한 전에 없이 실험적이었기에 제작비 부담이 컸고 또 그만큼 위험도 크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뮤지컬의 연극적인 요소가 강조되던 때에 춤을 앞세운 것도 부담스러웠지만, 레너드 번스타인이 추구하는 클래식 음악이 뮤지컬과는 전혀 맞지 않는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였던 것이지요. 결국 투자자를 얻지 못한 채 작업에 들어가야 했고 때문에 리허설에 들어가기 두 달 전에 제작자가 그만두는 사태까지 벌어졌지만 이때 손드하임이 유능한 젊은 제작자 해롤드 프린스를 영입함으로써 위기를 넘기게 됩니다. 우여곡절 끝에 막이 올라가자 이번에는 작품에 대한 서로 상반된 평가가 맞서면서 브로드웨이가 발칵 뒤집어집니다. 그러나 호평이든 혹평이든 이 작품이 이전에는 한 번도 없었던 완전히 새로운 시도임을 부인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지요. 춤으로 시작하여 춤으로 끝나는 것부터도 그렇고 뮤지컬이라면 지금도 헤피엔딩이 당연한 것임에도 비극적인 결말을 시도한 것도 논란을 피할 수 없는 부분이었습니다. 그것도 너무나 고전적인 로미오와 줄리엣을 가져다가 당시 미국 사회가 안고 있는 가장 민감한 갈등을 드러내고 비판했다는 것이 파격이고 충격이었던 것이지요. 게다가 손드하임은 거리의 젊은이들이 쓰는 언어를 그대로 가사에 사용함으로써 작품의 메시지를 더욱 생생하게 전달했고 번스타인의 음악이 그 가사에 영원한 생명을 불어넣었지요. 단순하고 아름다운 선율을 풍부한 오케스트라 사운드와 현대음악 기법에 녹여낸 번스타인의 음악이야말로 이후로도 비교될 만한 작업이 없을 정도로 압권이었습니다.

 

 

 

 

로미오와 줄리엣과는 달리 웨스트사이드 스토리는 지고지순한 남녀의 사랑에 앞서 사회적 갈등을 부각시킨 작품입니다. 이민의 역사가 거듭되어 온 미국, 특히 뉴욕에서는 늘 되풀이되어온 일이지만 당시는 푸에르토리코 이민자들이 빈민가를 형성하며 사회적인 갈등을 빚고 있었습니다. 줄리엣에 해당하는 마리아는 바로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며 미국으로 온 푸에르토리코 이민자의 딸로 옷 가게 점원으로 일합니다. 반면 로미오에 해당하는 토니는 폴란드계 이민자의 아들로 리프와 함께 제트파를 만든 장본인입니다. 서유럽 이주민들에 이어 미국으로 들어온 동유럽 이주민들이 이제 막 하층 계급을 형성하여 겨우 자리를 잡고 있을 무렵 푸에르토리코 이주민들이 밀려들어오면서 그들의 일자리를 위협하게 된 것입니다.

 

 

 

1961년 영화 버전을 Mark Seliger 에 의해 새롭게 만들고있습니다.

출처 : http://www.vanityfair.com/culture/features/2009/03/west-side-story-portfolio200903?slide=2#globalNav

 

 

폴란드계의 제트파는 푸에르토리코 출신의 샤크파와 구역을 놓고 서로 대립합니다. 제트파의 두목 리프는 샤크파의 세력이 점점 커지자 지금은 무리에서 빠진 토니가 다시 합류하기를 바랍니다. 체육관 댄스파티에서 제트파와 샤크파가 만나 긴장감은 고조되는데 그곳에서 토니는 제트파의 두목 베르나르도의 여동생 마리아를 만나 사랑에 빠집니다. 사소한 갈등 끝에 제트파와 샤크파가 결투를 벌이기로 한 날 마리아의 간청으로 이들의 싸움을 말리러 온 토니는 베르나르도가 친구인 리프를 죽이자 순간 싸움에 휩쓸려 베르나르도를 찌르고 맙니다. 토니가 오빠를 죽였다는 말을 들은 마리아는 크게 충격을 받고 슬픔에 빠지지만 사랑으로 그를 용서하고 함께 그곳을 떠나기로 합니다. 마리아의 마음을 전하러 제트파에 간 아니타는 제트파 일당에게 능욕을 당하자 분노로 이성을 잃고 토니에게 샤크파의 치노가 마리아를 죽였다는 거짓말을 합니다. 모든 희망이 사라진 토니는 거리로 뛰쳐나와 자신도 죽여달라며 치노를 찾는데 살아있는 마리아를 발견하고 다가서려는 순간 치노가 쏜 총에 맞아 마리아의 품에 안겨 숨을 거둡니다.

 

 

 

 

영화로 이 뮤지컬을 본 사람들은 마리아 역을 맡은 나탈리 우드가 토니의 시신을 안고 절규하는 마지막 모습을 잊지 못할 것입니다. 그리고 토니와 마리아가 함께 부르는 사랑의 이중창 투나잇 Tonight'과 마리아를 처음 본 순간 사랑을 느끼게 된 토니가 부르는 노래 마리아 Maria'도 너무나 아름답지요.

 

 

토니와 마리아가 함께부르는 "Tonight"

 

 

 

토니가 부르는 노래 "Maria"

 

 

그리고 댄스파티에서 푸에토리코 처녀들이 아메리칸 드림의 실상과 허상을 비꼬는 듯 주고 받는 아메리카 America'도 빼놓을 수 없는 명곡입니다. 그러나 사실 이 작품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가장 분명하게 담고 있는 노래는 바로 토니와 마리아가 함께 부르는 섬웨어 Somewhere'일 것입니다.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America"

 

 

There's a place for us

Somewhere a place for us

Peace and quiet and open air

Wait for us somewhere

There's a time for us

Someday a time for us

Time together with time spare

Time to learn, time to care

Someday!

Somewhere!

we'll find a new way of living

We'll find a way of forgiving

Somewhere...

There's a place for us

A time and place for us

Hold my hand and we're halfway there

Hold my hand I'll take you there

Somehow!

Someday!

Somewhere!

 

 

 

토니와 마리아가 함께 부르는 섬웨어 Somewhere'

 

 

 

우리를 위한 곳

어딘가 우리를 위한 곳이 있을거야

평화롭고 고요하고 활짝 열린 그곳이

어딘가에서 우리를 기다리겠지

우리를 위한 시간

언젠가는 우리를 위한 시간이 있을거야

우리가 함께 지내면서

서로를 이해하고 서로를 아껴줄 수 있는 시간이

언젠가!

어딘가에서!

우리는 새로운 삶의 방식을 찾고

용서하는 방법을 알게 될거야

어딘가에서는...

우리를 위한 곳

우리를 위한 시간

내 손을 잡으면 이미 그곳으로 가고 있을거야

내 손을 잡으면 내가 그곳으로 데려다 줄게

어떻게든!

언젠가는!

어딘가에는!

 

 

 

 

한 해가 저물고 새해가 밝았습니다. 모두들 해묵은 마음의 찌꺼기는 다 버리고 가벼운 마음으로 다가오는 2013년을 보내시기 바랍니다. 서로를 용서하고 위로하는 넉넉한 마음으로 모두가 함께 껴안을 수 있는 그런 한 해이기를 바랍니다. 언젠가 어딘가가 아니라 바로 지금 우리 마음에서 사랑과 평화를 찾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모두의 평화를 빕니다.

 

 

글 : 홍승찬 교수
편집 : 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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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잘보고 갑니다! 뮤지컬 안본지 오래됬는데..ㅎㅎ 생각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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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곡가 진은숙의 숨은 매력, 진정한 힘] 천재적인 능력? 누구보다 노력했던 그녀. 솔직하고 무모하기까지 한 그녀의 열정과 자신감을 들여다보자.[작곡가 진은숙의 숨은 매력, 진정한 힘] 천재적인 능력? 누구보다 노력했던 그녀. 솔직하고 무모하기까지 한 그녀의 열정과 자신감을 들여다보자.

Posted at 2013.02.05 16:41 | Posted in 이건음악회 Talk Talk/홍승찬교수의 클래식 톡톡

 

 

 

 

홍승찬 교수의 클래식 음악(43)
[홍승찬 교수의 재미있는 클래식음악 이야기]

 

 

 

작곡가 진은숙의 숨은 매력, 진정한 힘

 

지난 달 2, 작곡가 진은숙이 호암상을 받았습니다. 언제인지 정확하게 생각이 나지 않지만 호암상 수상자 후보를 추천하라기에 작곡가 진은숙을 추천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 때 수상하지 못해 아쉬웠기에 이번 수상소식이 더욱 반가웠습니다. 2004년 음악계의 노벨상이라는 그라베마이어 작곡상을 수상했을 때나 2005년 작곡가가 살아서 받을 수 있는 최고의 영예라고 하는 아르놀트 쇤베르크 음악상을 받았을 때도 이만큼 기쁘지는 않았습니다. 서울음대에 재학하던 시절에 벌써 국제 작곡 콩쿠르를 석권했고 이듬 해 독일로 유학간 이후 지금까지 꾸준히 세계무대에서 그 역량을 인정받으며 이런 저런 쾌거를 거두었지만 유독 우리나라에서는 그 만한 평가를 받지 못해 안타까웠기 때문입니다. 그러다 2007년 대원음악상의 작곡상을 수상했을 때도 무척이나 흐뭇했지만 대상이었으면 더 좋았을 걸 하는 아쉬움이 있었습니다. 이렇듯 그가 우리들 가운데 자리 잡고 인정받는 것에 의미를 부여하는 까닭은 그 무엇에도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그의 삶을 존중하고 동경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업적을 이루기까지 천부적인 재능과 노력이야 두 말할 필요도 없겠지만 오늘의 그를 있게 한 또 다른 힘이라면 솔직하고 무모하기까지 한 그의 열정과 자신감이 아닌가 싶습니다.

 

 

 

 

전공은 달랐지만 음악대학 4년을 함께 보내면서 가까이서 늘 그를 지켜보았고 또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그 때는 잘 몰라서 그런가 보다 하며 지나갔지만 이제 와 돌이켜 보면 학교 수업에서 배울 수 없는 많은 것들을 밥 먹고 술 마시며 나누었던 이런 저런 이야기로부터 얻었고 그렇게 수없이 많은 밤을 고민으로 지새웠습니다. 전공과 관련된 모든 수업에서 홀로 두드러졌던 그를 부러워하는 이들도 많았고 더러는 시기하는 이들도 있었습니다. 공포의 시창청음 시간, 선생님이 피아노로 치는 바흐의 첼로 모음곡 프렐류드를 딱 한 번 듣고 오선지에 고스란히 옮겨 적은 이는 진은숙 밖에 없었습니다. 남들은 2년을 꼬박 그 수업을 들었지만 그는 그날 이후 다시는 나타날 필요가 없었지요.

 

 

 

 

나중에야 알았지만 그의 이런 남다른 능력은 절대로 타고난 것만이 아니었습니다. 교회에 다니며 피아노를 알게 되었지만 어려운 집안 형편에 독학으로 공부할 수밖에 없었고 선생님의 권유로 작곡 공부를 시작한 다음에도 악보 살 돈이 없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늘 악보를 빌려다 베껴야 했고 유독 좋아했던 차이코프스키의 교향곡 비창은 수백 번이나 베끼고 또 베꼈습니다. 여고시절 음악 감상실을 홀로 차지하고 앉아서는 날마다 밤늦게까지 음악을 듣는 바람에 그곳을 관리하던 교감 선생님으로부터 열쇠를 넘겨받는 특혜 아닌 특혜를 누렸고 당시의 LP 음반은 잡음이 나서 더 이상 틀 수 없을 정도로 혹사당했다고 하지요.

 

 

 

 

피아노도 누구보다 뛰어나 피아노 전공 학생들보다 반주자로 더 인기가 많았습니다. 처음 보는 곡도 바로 반주가 가능했고 심지어 곡의 핵심을 파악하고 풀어서 가르치고 이끌기까지 했으니까요. 언젠가 연습실에서 독일 가곡에 대해 서로 이야기를 나누다가 그의 반주로 슈베르트의 가곡 몇 곡을 부른 적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서로 약속하기를 나중에 함께 슈베르트의 겨울 나그네로 독창회를 열자고 했었지요. 언젠가 우연히 그를 만나 그 때의 약속을 상기시켰지만 그는 전혀 기억하지 못했습니다. 예전에도 그랬듯이 지금도 여전히 솔직하고 담백했습니다. 그리고 바로 이런 모습이야말로 그의 진정한 매력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에게 있어 지난 일은 지나가면 그저 그만이지 애써 돌아볼 까닭이 없는 것이고 그의 시선은 항상 앞을 바라보며 다가올 무엇인가를 열심히 찾을 따름입니다. 그래서 그런 그의 눈에는 남들이 보지 못하는 무엇인가가 나타나고 보이는 것이지요.

 

 

 

 

언제나 그는 다른 사람들의 시선이나 오해는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의 생각을 거침없이 토로했고 또 행동으로 보여주었습니다. 누가 뭐래도 나는 나였고 너는 너였습니다. 싫으면 싫다고 했고 좋으면 좋다고 했지요. 남과 달라서 불편한 것도 없었고 나와 다른 남을 설득하거나 밀어내려 들지도 않았습니다. 그것이 누구에게는 잘난 척으로 여겨졌고 또 누구에게는 이기적이고 독단적으로 받아들여지기도 했지지요. 그래도 그는 늘 씩씩했습니다. 모습도 한결같았지요. 키가 작아 언제나 높은 구두를 신었고 긴 생머리를 휘날리며 고개를 꼿꼿이 치켜들고 곳곳을 활보하고 다녔습니다. 누구에게나 스스럼없이 말을 걸었고 어떤 만남이나 대화도 망설이거나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스스로 하고 싶은 일과 반드시 해야 할 일은 미친 듯이 열심히 했습니다.

 

 

 

 

그 때는 생각이 짧고 어리석었습니다. 그래서 그런 그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지요. 뛰어난 재능과 노력은 인정했지만 지나치게 솔직하고 너무나 자유로운 그의 생각과 말과 행동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이제 나이가 들고 조금이나마 철이 들고 보니 전에는 몰랐던 것을 깨닫게 됩니다. 다들 소통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면서 도대체 소통이 안 된다고 난리들입니다. 그런데 사실은 서로 달라서 그런 것이 아니라 서로에게 정직하지 못하고 스스로 자유롭지 못해서 서로가 다른 것을 이해하고 존중하지 못해서 그렇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지요. 우리가 그렇게 대단한 것처럼 떠받드는 문화라는 것도 결국은 소통의 결과입니다. 서로를 속속들이 알아서 다른 것은 존중하고 같은 것은 공유하는 것이지요. 예술을 문화의 상징이나 표상으로 여기는 것은 예술이야말로 존중과 공유의 절정이자 극치이기 때문입니다. 존중하고 공유하면 공감하여 감동하게 되는데 이것이야말로 예술이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바입니다. 그러니 정직하지 않고 자유롭지 못한 예술가가 어떻게 사람들과 소통하고 공감하여 감동을 줄 수 있단 말입니까.

 

 

 

오래 전에, 그것도 겨우 4년을 함께 학교 다닌 인연으로 누군가를 두고 이러쿵저러쿵 할 수 있는 것은 그 사람이 언제나 앞과 뒤가 전혀 다르지 않았고 스스로 늘 거리낌이 없었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그리고 꽤 많은 시간이 흐른 지금에 와서도 옛 모습을 생생하게 기억하는 것은 그 때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당당하고 자유롭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작곡가 진은숙을 누구보다 높이 평가합니다. 그 자신이 그런 것처럼 그의 작품도 거짓 없이 치열하며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정신으로 끊임없이 무엇인가를 찾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아마도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상임지휘자 사이먼 래틀은 차세대 세계 음악계를 이끌 다섯 명의 작곡가들 가운데 하나로 그를 꼽았을 것입니다. 그런 평가와 업적을 운운하기 이전에 그를 생각하면 그냥 기분이 좋습니다. 생각 같아선 지금이라도 당장 밥 한 끼 같이 하며 술잔을 권하고 싶지만 연락해서 따로 날을 잡고 싶지는 않습니다. 오다가다 서로 보게 되면 혹시나 모를까 일부러 그럴 일은 아닌 까닭이지요. 멀리서 지켜보는 것만으로 이렇게 뿌듯하고 흐뭇한데 그가 누리고 있는 자유를 손톱만큼도 건드리고 싶지 않은 까닭입니다.

 

 

 

 

글 : 홍승찬 교수
편집 : 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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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김에송
    작곡가 진은숙에 대해서는 많이 들어보았지만

    이렇게 자세하게 얘기를 듣기는 처음이네요.

    정말 대단하신 분이군요. 언젠가 진은숙작곡가님의 곡을 꼭 들어볼거에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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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라우디오 아바도, 카를로스 클라이버,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 이들의 공통점은? 춤을 추듯이 무대를 지휘하는 지휘자들...가장 예술적인 경지로 지휘를 끌어 올리다.클라우디오 아바도, 카를로스 클라이버,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 이들의 공통점은? 춤을 추듯이 무대를 지휘하는 지휘자들...가장 예술적인 경지로 지휘를 끌어 올리다.

Posted at 2013.01.07 08:36 | Posted in 이건음악회 Talk Talk/홍승찬교수의 클래식 톡톡

 

 

 

 

홍승찬 교수의 클래식 음악(41)
[홍승찬 교수의 재미있는 클래식음악 이야기]

 

 

 

많은 지휘자들의 지휘모습을 본 것은 아니지만, 제가 지금껏 본 바로 가장 에술적인 지휘동작을 보여준 이는 클라우디오 아바도였습니다.

 

 

 

 

 

음악의 흐름과 변화에 어쩌면 그렇게 적절히 부합하는 지휘동작을 만들어 내는지 경탄 그 자체였습니다. 마치 그의 섬세한 지휘동작 자체만으로 음악이 만들어지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였습니다. 의 지휘모습으로서 제가 본 것은, 베르디갈라로 꾸며진Silvesterkonzert 2000과 베르디의 레퀴엠실황공연 그리고 아르농쿠르지휘의 올해 빈신년음악회실황공연중계에 앞서 보여준, 왕년의 빈신년음악회 지휘자들의 특색있는 지휘모습들의 발췌부분이 다입니다만, 이것만으로도 그의 지휘동작의 특징을 파악하는데는 큰 무리가 없을 듯 합니다. 그 중 빈신년음악회의 발췌필름에서 보여지는 그의 모습이 가장 인상적이었는데(물론 인상적이었으까 발췌했겠지만요^^),

왈츠가 감미롭게 울려퍼지는 가운데, 만면에 웃음을 가득 띤 채, 마치 춤을 추는 듯 앞으로 나아가며, 왼팔을 액센트를 주어가며 들어올리는 지휘동작은 거의 환상(^^)이었습니다.

 

 

 

 

참고로 그 발췌필름에 나온 지휘자들 중 아바도말고 인상적인 지휘를 보여준 이는 카를로스 클라이버였습니다. 거의 쇼를 하듯(^^) 지휘를 하더군요. 늘씬한 몸매(?)멋진 검은 양복을 차려입고서, 지휘봉을 잡은 오른팔로써 위 아래로 커다란 원을 그리며 분위기를 잡은 후, 절정(?)의 순간에 지휘자뒤의 보호대(?)를 왼손으로 잡고, 오른팔에 쥐어진 지휘봉으로 허공을 향해 두 번 찌르더군요. 이 또한 음악의 흐름에 절묘하게 어울리는 지휘동작이었습니다. 저는 이 실황을 비디오로 녹화를 해두었는데, 이 두 지휘자의 지휘동작은 아마 수십번 본 듯 합니다(^^).

 

 

 

이러한 아바도나 클라이버의 예술적 지휘동작에 상반되는 모습을 보여주는 이는 엘리아후 인발입니다. BS-2에서 바그너의 마이스터징어 전주곡과 말러 교향곡 제5번을 그의 지휘로 방영한다는 예고를 보고, 예약녹화를 해 놓았는데, 녹화된 화면을 보면서 경악(^^)을 금치 못했습니다. 마이스터징어전주곡은 바그너의 수많은 오페라[악극]의 전주곡 중에서도 대단히 화려하고, 굴곡이 있으며, 장쾌한 폭발의 순간도 간직하고 있는 곡이서서 왠만한 지휘자들도 드라마틱하고 멋들어지게 지휘봉을 휘두를 수 있는 곡인데, 인발의 지휘법은 아주 간단했습니. 양팔을 좌우수평보다 약간 높게 들어올린 채, 규칙적으로 아래 위로 흔들기만 하더군요. 음악적 흐름과 변화에 전혀 상관없이. 조금 보다가 꺼버렸지요. 인발의 프랑크푸르트심포니는 아마 철저한 리허설이 필요하리라 봅니다. 지휘자의 지휘동작을 무시하고 앙상블을 만들어 내려면요(^^).

 

 

이스라엘 태생의 지휘자. 엘리아 후 인발

 

 

인상적인 지휘법의 소유자로서 빼놓을 수 없는 지휘자가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이지요. 얼마전 EBS에서 방영된 그의 베토벤심포니 5번과 7번의 연주를 보았는데, 파워넘치는 지휘동작이 매우 인상적이었습니. 그의 지휘동작의 특징은, 마치 자신의 밖에 있는 모든 것을 안으 긁어모으려는 듯한 지휘동작과 특이하게 지휘봉을 쥐는 모습이었습니다. 전자에 대해서는 오케스트라단원들의 개별역량을 총결집시켜 자신의 지휘동작을 통해 외부로 강하게 분출시키겠다는 의지의 발라고 해석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지휘봉의 끝을 손바닥에 밀착시켜 그 결과 지휘봉이 짧게 보이는 식의 그만의(확신은 할 수 없겠네) 지휘봉잡는 법은 전자의 동작을 효율적으로 하기위한 고육책(?)라고 봅니다. 제가 실제로 흉내내어 본 바로는 보통의 지휘봉잡는 법, 즉 엄지손가락과 검지손가락으로 지휘봉의 끝부분[둥근부분]을 잡는 방식보다는 카라얀식이 보다 원활하게 안으로 긁어 모으는 듯한 동작을 용이하게 할 수 있었습니다.

 

 

시대의 흐름을 읽은 선두자.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

 

 

음악의 상이함에 따라 180도 다른 지휘동작을 보여주는 이가 카를로마리아 줄리니입니다. 그가 연주회의 첫곡으로 모짜르트교향곡 제40번을 연주하는 것을 보고 느낀 것은, 참으로 재미없는, 단순한 지휘동작을 하는 지휘자이구나였습니다. 좌우의 팔을 수평에서 30도쯤 아래로 늘어뜨린 채 가볍게 음악에 맞추어 흔들어 주는 정도였습니. 그런데, 그 다음에 연주한 곡에서는 전혀 다른 양상을 보여줍니. 파야의 어느 곡이었다고 기억하는데, 카라얀 못지 않는 울트라파(^^), 얼굴에 힘줄이 돋을 정도로 역동적 지휘동작을 보여주는데, 절정의 부분에서는 아예 주먹을 불끈 쥐고 휘두르더군요. 이는 마지막곡인 베르디의 운명의 힘 서곡에서도 비슷한 패턴을 보여주었습니. 작품의 성격에 따라 지휘법도 달라야 한다는 것이 그의 지론인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줄리니를 보면서 자꾸 누구랑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누구인지 갈피를 못잡다가, 결국 미국의 민주당대통령후보였던 앨버트 고어가 그와 매우 흡사한 용모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마침내 발견하고야 말았습니다(^^).

 

 

장엄한 느림의 열정으로 대변되는 음악적으로나 인격적으로 가장 존경하는 지휘자

 

 

더운 여름에 가볍게 할 얘기가 뭐 없나 하던차에, 지휘자들의 지휘동작에 관하여 한 번 거론하여 보는 것도 재미있겠다 싶어서 써 보았습니다.

저는 별로 본 것이 없지만 번스타인과 뵘이 기억납니다. 번스타인은 여러분이 잘 알다시피 지휘대에서 뛰어 오르고 한다는데 그가 지휘한 베토벤 교향곡 5번과 6, 그리고 브람스 교향곡 제 2(모두 비엔나 필하모닉 연주)를 보았습니다. 모두 클라이막스에서 발을 굴리거나 팔을 크게 휘젓고 뛰어 오르더군요.5번 교향곡은 4악장 서두-그러니까 트럼본등의 금관악기들이 장 3도 화음을 울릴때-, 6번 교향곡은 4악장 폭풍우-팀파니의 연타가 시작될때-, 브람스 2번 교향곡은 투티가 포르테로 울릴때 그러더군요, 2번 교향곡은 코다부분이 더 가관이더군요. 땀을 뻘뻘 흘리면서 발을 굴리며 팔을 크게 휘젓는 모습이 아주 인상 깊었습니다.

근데 뵘은 별다른건 없어 보이던데 가끔 지휘봉을 희한하게 잡더군요. 제가 뵘의 추종자라 EBS에서 한 뵘 탄생 백주년 기념 다큐멘터리를 보았는데 그렇게 나오더군요.

 

 

 

전설의 명지휘자 카를로스 클라이버의 일대기를 다룬 'Carlos Kleiber - I am lost to the world'라는 제목의 DVD를 도서관에서 빌려다 봤습니다. 별로 길지도 않고, 그의 연주 장면이 많이 나오지도 않더군요. 그 주변 인물들이 클라이버를 추억하는데, 몇몇 회고담은 클라이버에게 그리 호의적이지조차 않았습니다. 그래서 흥미롭기도 했고, 조금은 실망스럽기도 했습니다.

하기사, 클라이버의 일대기를 다룬 영상물이 얼마나 풍부할 수 있으랴. 카라얀 정도라면 모를까, 평소에 실제 지휘보다 지휘를 취소한 횟수가 더 많은 사람, 리허설 때는 그 어떤 외부인의 관람도 금지한 사람, '이제 다시는 지휘 같은 거 안해'를 달고 다닌 사람에게, 그를 담은 비디오가 많을 리 만무할 것 입니다.

 

 

"Carlos Kleiber - I am lost to the world"

 

 

DVD는 정말이지 조악하기 짝이 없는 영상으로 시작합니다. 클라이버가 리허설 하는 장면으로 시작하는데요... 카메라가 그의 바로 앞 어딘가에 숨어 있는지, 그의 상반신이 꽉 차서 나오는데, 그는 카메라의 존재를 전혀 모르는 듯, 한껏 도취된 표정으로 음악을 만듭니다.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 정말로 그의 표정과 손짓과 몸짓으로 음악을 짜내는 것 같습니다. 거미가 거미줄 치듯, 그 몽환적인 표정과, 술취한 듯한 몸짓과, 연체동물의 유연성을 연상시키는 손짓으로, 음악을 지어내는 것 같습니다. 화질은 기함할 정도로 나쁘지만, 그 영상과 소리는 보는 이를 빨아들이기에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바이로이트 축제때, 트리스탄과 이졸데를 리허설 하는 장면이라고 합니다. 부엌에서 소리만 듣던 아내는 이게 무슨 음악이냐고 물었습니다. 트리스탄과 이졸데, 라고 했더니, , 이렇게 아름다운 곡이었어? 라고 저에게 묻더군요.도 똑같은 생각이었습니다.

각설하고, 드물게 카메라에 잡힌 클라이버의 리허설 장면은 대단히 변칙적이었습니다. 어떤 소리를 내달라는 주문과, 그에 대한 비유가, 연주자들이 과연 저 말을 이해할 수 있을까 싶게 생뚱맞은 경우가 많았습니다. 가령 똑같은 여성인데 앉은 자세를 바꾼다든지, 더 매력적으로 보이게 연주해 달라든지 할 때... 그런데, 그를 추억한 한 연주자의 말대로, "그런데, 그게 먹혔어요. 소리가 다르게 나는 거예요"였습니다.

 

 

 

그와 관련한 괴짜스러운 일화, 혹시 지어낸 얘기가 아닐까 싶게 황당한 에피소드는 더없이 많습니다. 그 중 가장 흔한 것중 하나는 카라얀이 - 혹은 다른 사람이었을 수도 있다 - 라고 했다는 말입니다. 비유하자면 클라이버는 쌀독에 쌀이 떨어져야만 지휘봉을 잡는다는 얘기... 그러나 이 DVD에 나온 한 사람은 그것을 다르게 말합니다. "클라이버는 결코 돈을 보고, 먹고 살기 위해 지휘한게 아닙니다. 그것을 전심전력해야 할 어떤 것, 자기의 모든 것을 걸어야 할 신성한 숙제로 봤습니다. 그랬기 때문에 모든 지휘가 그토록 힘들고 두려웠던 거지요."

부친 에리히 클라이버의 그늘로부터 벗어나려 한 그의 평생의 고투는, 심리학의 한 연구 과제로 써도 좋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깊고, 치열하고, 길어 보였습니다. 그가 연주로 넘어서고자 한 대상이 다름 아닌 아버지였다는 얘기도 나올 정도였으니까요. 그가 그 목표를 달성했다고 스스로 느꼈을지는 알 도리가 없습니다. 하지만 저 아버지가 조금만 더 아들을 이해하고, 지휘자가 되고자 한 그의 꿈을 허용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안타까움이 큽니다. 그랬더라면 우리도 훨씬 더 풍요로운 음악적 선물을 가질 수 있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이 듭니다.

 

 

 

집에 꽂힌 클라이버의 자취를 살펴 봅니다.

- 베토벤 5, 7(빈필)

- 베토벤 4(바이에른 방송교향악단)

- 베토벤 4, 7(로열콘서트헤보, DVD)

- 모차르트 36'린츠', 브람스 2(빈필, DVD)

- 브람스 4(빈필)

- 베토벤 코리올란 서곡/ 브람스 4(바이에른 방송교향악단, DVD)

- 빈필 신년음악회 89, 92(DVD)

- 드보르작 피아노협주곡 (리히터, 바이에른 방송교향악단)...

 

정말 몇 장 되지 않네요.. 레퍼토리의 폭은 더 좁습니다. 그래서 더 아쉽고, 그래서 더 강렬하게 느껴집니다.

클라이버가 타계했을 때, 영국의 논쟁적 음악평론가 노먼 르브레쉬트는 '지휘보다 지휘를 안해서 더 유명해진 지휘자'라는, 별로 친절하지 않은 - 아니 무례하고 싸가지 없는 - 부고 기사를 쓴 바가 있습니다 (클라이버 - 위대한 지휘자 아냐). 지휘자나 음악가에 대한 호오가 극단으로 갈리는 사람이어서 별로 신뢰하고 싶지는 않은 평론가였지만, 이 글을 보고서는 더욱 기분이 불쾌했었던 생각이 납니다.

그런데 올해 3월에, 크게 위안이 되는 기사를 하나 발견했습니다. 당대의 지휘자들이 뽑은 최고의 지휘자로 카를로스 클라이버가 꼽힌 것입니다. 클라이버가 결코 지휘를 안하거나 자주 취소해서 유명해진 지휘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이보다 더 정면으로 반박해준 증거도 달리 없을 것입니다. 르브레쉬트 씨에게 한 마디 돌려주고 싶습니다. 르브레쉬트 - "당신은 좋은 평론가 아냐."

 

 

 


독일의 베를린에서 태어났다. 부친은 당시 베를린 국립 오페라 극장의 음악 감독이었던 명지휘자 에리히 클라이버였다. 1935년 에리히가 푸르트벵글러의 '힌데미트 사건' 때에 푸르트벵글러를 지원하고 나치스에 항의하는 바람에 베를린을 떠나 카를로스(아들)와 함께 아르헨티나로 옮겼다. 부친은 아들이 음악가가 되는 일에 반대하였기 때문에 어려서부터 특별한 음악 교육은 시키지 않았으나, 1952년에 라프라타에서 데뷔하였다.

같은 해 부친과 함께 유럽에 되돌아갔고 부친의 권유로 스위스 연방공업대학에서 화학을 공부했지만, 1953년에 부친의 반대를 물리치고 뮌헨의 오페레타 극장인 겔트너 프라츠 극장의 무급 견습 지휘자가 되었다. 그리고 1954년 베를린 근교의 포츠담의 오페레타 극장의 지휘자로 영입되고, 여기서 본격적으로 지휘자로서 데뷔하였다. 1956년부터 1964년까지는 뒤셀도르프와 뒤스부르크를 본거지로 하는 라인 도이치 오페라의 지휘자로서 수많은 오페라의 경험을 쌓아 올려 차츰 지휘자로서 인정을 받게 되었다.

1964년부터 취리히 오페라 극장, 1966년부터 슈투트가르트의 뷔르템베르크 국립 오페라 극장의 지휘자로서 활약하였다. 이 슈투트가르트 시절에 카를로스 클라이버는 독일에서 뿐만 아니라 국제적으로 그 뛰어난 재능이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여기서는 특히 부친이 세계에서 초연한 바 있는 베르크의 [보체크]를 비롯하여 R. 슈트라우스, 바그너, 베르디, 비제, 베버의 오페라로 성공을 거두고, 1968년부터 뮌헨의 바이에른 국립 오페라 극장의 지휘 스태프의 한 사람으로 영입되었다.

뮌헨을 본거지로 하고 나서 그는 슈투트가르트 시절부터 평판이 높았던 베버의 [마탄의 사수](그의 데뷔 레코딩으로 선정되었다)R.슈트라우스의 [엘렉트라] [장미의 기사], 바그너의 [트리스탄과 이졸데], 비제의 [카르멘], 베르크의 [보체크] 등 뛰어난 연주에 의해 세계적으로 명성을 높였다. 1973년 드레스덴에서 녹음 한 최초의 레코드인 [마탄의 사수] 전곡(구라모폰)의 명연, 같은 해의 빈 국립 오페라 극장과 1974년 바이로이트 음악제 데뷔를 장식한 [트리스탄과 이졸데], 또한 같은 해에 런던의 코벤트가든 왕립 오페라 극장의 데뷔 공연인 R.슈트라우스의 [장미의 기사] 등의 대성공에 의해 현대의 가장 뛰어난 지휘자의 한 사람으로서 널리 인정되었다.

그 후에도 1976년의 밀라노 스칼라 오페라 극장의 오프닝을 장식한 베르디의 [오텔로], 스칼라 오페라 극장 개설 200주년 기념 공연의 [트리스탄과 이졸데](1978), 빈 국립 오페라 극장의 오프닝 연주를 한 [카르멘]과 시카고 교향악단을 지휘하여 미국 데뷔를 장식한 베토벤의 [교향곡 제5], 뮌헨과 스칼라 오페라 극장에서 베르디의 [라 트라비아타], 푸치니의 [라 보엠] , 카를로스 클라이버는 가는 곳마다 그리고 취급하는 작품의 모두가 청중을 매료하여 대성공을 거두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카를로스 클라이버는 아직 특정한 오페라 극장이나 오케스트라의 음악 감독 또는 상임 지휘에 취임한 일이 없다. 그의 역량과 명성을 생각하면 이상한 생각마저 드는데, 장래는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현시점에서의 그는 여러 가지 잡다한 일들이 수반되거나 활동이 다망한 지위로부터 일부러 피하고 있는 것처럼 생각된다. 또 연주회나 레코딩 등도 때로는 취소하는 일이 있다고 전해지는데, 그것도 일부에서 말하는 것처럼 그의 단순한 변덕이 아니며, 그의 연주에서 확실히 알 수 있는 바와 같이 철저한 완전주의자이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되는 것은 지나친 억측이 아닐 것이다.

하여간 그가 이제까지 녹음한 레코드의 양은 그의 명성에 비하면 아직도 적은 편이어서, 오페라에서는 [마탄의 사수], J.슈트라우스의 [박쥐], 베르디의 [라 트라비아타] 전곡(이상 그라모폰)이 있다. 리히테르와 협연한 드보르자크의 [피아노 협주곡](에인절), 빈 필하모니를 지휘한 베토벤의 [교향곡 제5] [교향곡 제7],슈베르트의 [교향곡 제3, 8], 브람스의 [교향곡 제4](이상 그라모폰)이 모두인데, 어느 것이나 극히 신선한 매력에 가득 찬 멋진 명연이다. 이러한 것들은 클라이버의 끝없는 저력으로서의 재능과 역량이 얼마나 무한한 것인가를 단적으로 말해 주는 것이라 하겠다.

오페라와 교향곡에서도 클라이버는 작품의 본질 및 그 근원적인 매력을 극히 강한 설득력으로 표현하고 있다. 이것은 매우 드문 재능이 아닐 수 없다. 특히 빈 필하모니와의 일련의 녹음에 있어서의 그의 유연하면서도 강인한 표현은 이제까지 아무도 해내지 못한 것이며, 이러한 것은 역시 [박쥐][라 트라비아타]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모두 클라이버의 추측할 수 없는 재능이 단적으로 나타난 명연이었다. 더욱 그는 최근 오스트리아의 국적을 취득했다고 한다.

명지휘자 에리히 클라이버를 아버지로 하여 베를린에서 태어났다. 에리히는 1935년 나찌스의 압력에 항의하여 할레 관현악단의 음악감독을 사임하고 전쟁 중에는 중남미로 본거지를 옮겼으나, 일가(一家)가 아르헨티나의 국적을 취득하게 되어 소년 칼도 카를로스라고 이름을 바꾸었다. 1950, 20세가 된 카를로스는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음악 공부를 시작했는데, 아버지의 맹렬한 반대로 일시 중단하고 쮜리히의 스위스 연방공업대학에 입학했다. 그러나 52년에는 뮌헨의 게르트너프라츠 극장에서 견습지휘자가 되었고, 54년에 포츠담의 오페레타 극장에서 지휘자로서 데뷔했다. 56년에는 뒤셀도르프의 독일 라인 가극장의 지휘자, 64년에는 쮜리히 가극장의 지휘자로 진출했다. 66년에는 시투트가르트의 베르텐베르크 국립극장과 계약을 맺어 여기서 많은 주목할만한 상연을 지휘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베버마탄의 사수, 바그너트리스탄과 이졸데, R.슈트라우스엘렉트라장미의 기사, 비제카르멘, 베르크보 쩩등이다. 현재 그는 어떤 가극장의 상임지휘자로도 취임하지 않는 방침으로 나가고 있는데, 이 수년간 베를린, 바이로이트, , 코벤트가든, 스칼라 등의 주요 가극장이나 콘서트 무대에서 활약을 계속하고 있다. 바이로이트 음악제에는 74년부터 76년까지 등장하여 트리스탄과 이졸데를 지휘했다. 또한 스칼라 극장에서는 7612월의 개막 상연의 오텔로, 78년 봄의 동 극장 200년 기념공연트리스탄과 이졸데를 지휘, 12빈 국립가극장의 오프닝에서도 카르멘을 지휘했다. 또한 이 해 1012일에는 시카고 교향악단에서 베토벤교향곡 제5을 지휘함으로써 미국 데뷔를 장식했다. 클라이버의 레코드는 그 경력과 명성에 비해 극히 적지만 그 모두가 개성적인 명연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명석한 연주와 훌륭한 리듬 다채로움과 자상함, 그리고 스코어의 심오한 해석 등은 언제나 신선한 감각을 작품에 부여하고 있다.

 

 


 

 

글 : 홍승찬 교수
편집 : 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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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김에송
    클라이버에 대해서는 워낙 유명한 지휘자라 알고는 잇었지만

    아버지와의 관계, 그리고 지휘를 한 날보다 취소한 날이 더 많다는 것은 몰랐네요 ㅋㅋ

    클래식은 알면알수록 재밌는것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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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영원한 겨울 나그네 피셔-디스카우] 독일 가곡의 전설이라 일컬어졌던 바리톤 디트리히 피셔-디스카우[우리들의 영원한 겨울 나그네 피셔-디스카우] 독일 가곡의 전설이라 일컬어졌던 바리톤 디트리히 피셔-디스카우

Posted at 2012.11.19 10:09 | Posted in 이건음악회 Talk Talk/홍승찬교수의 클래식 톡톡

 

 

 

홍승찬 교수의 클래식 음악(38)
[홍승찬 교수의 재미있는 클래식음악 이야기]

 

 

우리들의 영원한 겨울 나그네 피셔-디스카우

 

지난 518일 독일 가곡의 전설이라 일컬어졌던 바리톤 디트리히 피셔-디스카우가 86세를 일기로 영원히 우리 곁을 떠났습니다. 1951년 잘츠부르크 음악제에서 말러의 가곡 방황하는 젊은이의 노래를 불러 세계 음악계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던 그가 눈을 감은 날은 공교롭게도 말러가 세상을 떠난 날과 같아 혹자들은 말러의 영혼이 그를 불렀다는 말을 하기도 합니다. 말러 뿐만 아니라 지금까지 독일 가곡에 관한 한 그보다 더 넓은 레퍼토리를 소화한 성악가는 없었고 그보다 더 깊은 경지를 보여주었던 성악가도 없었습니다.

 

 

 

 

특히 슈베르트의 해석은 그 누구도 따를 수 없어 그 이전에는 물론 이후에도 아무도 넘볼 수 없는 업적을 쌓았습니다. 1964년 뉴욕의 카네기홀에서 그가 부른 슈베르트의 겨울 나그네를 듣고 정신을 잃고 쓰러진 여성들이 하나 둘이 아니었다고 하니 그의 노래가 가진 호소력이 얼마나 큰지 짐작이 가고도 남음이 있을 것입니다. 소프라노로서 독일 가곡의 최고로 평가받고 있는 엘리자베스 슈바르츠코프조차도 디스카우를 두고는 모든 것을 가지고 태어난 신과 같았다.“고 감탄하였습니다. 평생을 자중하며 절제했던 그 스스로도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너무나도 많은 것을 이루었다고 했을 정도이니 전설로 불리는 것도 당연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바리톤 디트리히 피셔-디스카우

출처 : 구글 이미지

 

 

그러나 그가 이렇듯 까마득한 업적을 이룬 것은 천부적인 재능보다 초인적인 노력에 힘입은 바가 훨씬 더 큽니다. 1925년 베를린에서 태어난 디스카우는 열여섯살부터 성악을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어려서부터 어머니로부터 피아노를 배웠고 고전문학자인 아버지가 아들의 재능을 발견하고 성악가의 길을 열어주었습니다. 2차 세계대전으로 말미암아 1943년 참전하게 된 그는 1945년 이탈리아에서 포로로 잡혀 수용소에 갇히는 신세가 되었지만 그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날마다 연습에 매달려 수용소 안에서 연주회를 열기까지 했습니다. 전쟁이 끝나고 1947년 베를린 음대에 들어가더니 얼마지 않아 다시 독일가곡으로 독창회를 가졌고 1948년 베를린 시립 오페라에 들어가 베르디의 돈 카를로의 로드리고 역을 맡아 오페라 무대에 데뷔했습니다. 그리고 그 이후부터 그의 믿을 수 없는 활약이 종횡무진 펼쳐집니다. 바이에른과 빈을 넘어 네델란드와 프랑스, 이탈리아를 거쳐 런던의 코벤트 가든과 뉴욕의 메트로폴리탄까지 무대를 넓혀 기존의 대표적인 오페라들은 물론 동시대 작곡가들의 신작 오페라까지 수많은 작품들을 섭렵하였습니다.

 

 

출처 : 구글 이미지

 

 

보통 성악가들은 오페라와 가곡, 혹은 종교음악 가운데 어느 하나에 주력하기 마련이고 그렇게 되면 나머지는 아무래도 뜸할 수밖에 없지요. 그런데 디스카우는 독일 가곡은 물론이고 오페라와 종교음악에 이르기까지 어느 하나도 다른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이 뛰어난 업적과 경지를 이루었습니다. 이렇듯 오페라 무대를 쉴 새 없이 누비는 동안에도 역사상 최초로 슈베르트 가곡 전곡을 녹음하였고 브람스와 독일레퀴엠과 바흐의 마태수난곡 등 대표적인 종교음악까지도 놓치지 않았습니다. 특히 1962년에는 2차 세계대전 때 나치 공습으로 파괴된 영국 런던의 코벤트리 성당 복원을 기념하여 초연된 벤저민 브리튼의 전쟁 레퀴엠에 독일을 대표하여 초청되는 뜻 깊은 일이 있었고 훗날 그는 "내 삶에서 가장 기념비적인 사건"이었노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신작과 초연에 대한 관심과 열의가 남달랐던 그는 1978년 오페라 무대를 떠나는 은퇴공연까지도 라이만의 신작 리어왕을 선택했습니다.

 

 

오페라 가수로 활동하던 디스카우

출처 : 구글 이미지

 

 

음악과 예술에 대한 디스카우의 끝없는 열정은 노래에만 머물지 않았습니다. 어려서부터 지휘에 관심이 있었던 그는 그토록 바쁜 일정 중에도 지휘공부를 게을리하지 않았고 1973년 마침내 오토 클렘페러를 대신하여 지휘봉을 잡는 기회를 가지게 됩니다. 그리고 성악가로서 은퇴를 선언한 1993년 이후 지휘자로서 무대에 서는 일이 많아졌습니다. 그림에도 재능이 있어 틈틈이 그린 그림들은 아마추어의 수준을 넘어섰고 저술에도 관심을 두어 19세기 독일 가곡에 대한 저서들을 출판하였습니다. 피아노 반주에도 일가견이 있어 반주자로 무대에 서기도 했는데 부인인 소프라노 율리아 바라디가 그의 어깨에 손을 얹고 노래하는 동안 돋보기를 쓰고 피아노를 치는 말년의 모습은 오래도록 사람들의 기억에 남을 것입니다. 이렇듯 너무나도 많은 분야에서 믿을 수 없을 만큼 엄청난 일들을 이루어냈으니 그의 삶에서 허투루 보낸 시간은 단 한 순간도 없었을 것입니다. 아닌게 아니라 그는 어느 인터뷰에서 연주회가 끝나고 동료들과 어울려 술자리를 가진 기억조차 없다고 했을 정도입니다.

 

 

자화상 옆에 선 피셔 디스카우

출처 : 구글 이미지

 

 

독일가곡에 관한 한 누구도 따를 수 없는 경지에 이르렀던 그였지만 무대에 오를 때마다 다른 성악가들이 부른 음반들을 전부 찾아서 듣고 또 들었다는 일화는 너무나도 유명하지요. 악보를 보기 전에 가사부터 한 음절씩 소리 내어 읽고 또 읽으며 그 뜻과 소리를 익혔을 뿐만 아니라 악보 또한 음표 하나 기호 하나 놓치지 않고 새기고 또 새겼습니다. 그렇게 정확하고 빈틈이 없으니 지휘자들마다 앞 다투어 그를 불렀고 작곡가들 또한 누구나 그에게 작품을 맡겨 무대에 올리려고 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평생을 함께 했던 반주자 제랄드 무어는 물론 외르크 데무스와 다니엘 바렌보임, 알프레드 브렌델과 스비아토슬라프 리히테르까지 당대의 최고 피아니스트들이 기꺼이 그의 반주자로 무대에 섰던 것이지요. 리히테르는 "가사에 대한 그의 태도가 까다로워서 결코 연습하기가 쉽지 않았다"고 했고, 바렌보임은 "그와 작업하면서 언어와 음악을 결합시키는 방법과 단어의 의미와 발음에 이르기까지 많은 걸 배웠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음악도 음악이지만 가사의 해석과 전달에 대한 남다른 노력과 업적으로 말미암아 그는 독일어의 품격을 한 단계 끌어올렸다는 극찬을 받기도 했으며 20세기 프랑스의 구조주의 철학자이자 비평가인 롤랑 바르트는 가사의 전달과 표현에 있어 그를 최고라고 일컫기도 했습니다.

 

 

 

슈베르트의 겨울 나그네

 

 

은퇴를 앞두고 무대에 올랐던 피셔-디스카우의 노년의 모습은 너무나도 감동적이었습니다. 언제나처럼 짧게 자른 단정한 머리칼은 어느덧 서리가 내려 백발이 되었지만 눈빛만큼은 전과 다름없이 맑고 깊었습니다. 30년도 넘었을 것 같이 낡고 빛바랜 연주복이 하나도 초라해 보이지 않을 만큼 절도 있고 기품 있는 인격은 움직임 하나 눈빛 하나로도 속속들이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가 부르는 노래는 시를 넘어 영혼의 맑고 깊은 울림이었습니다. 무엇인가를 소유하고자 날마다 허덕이는 우리와는 달리 스스로의 존재를 일깨우려 평생을 바친 수도자의 모습이었습니다. 살아 있는 동안 그가 수십 번도 더 불렀을 겨울 나그네처럼 그렇게 오래도록 우리 가슴 속에 살아 있을 것입니다.

 

 

 

글 : 홍승찬 교수
편집 : 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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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김에송
    방금 이 글을 읽으면서 클렘페러에 대해 검색해 보았는데

    디트리히 피셔-디스카우와 뭔가 많은 연관이있는것같네요...

    많이는 아닌가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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