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승찬 교수의 클래식 음악 이야기] 소설, 시, 노래[홍승찬 교수의 클래식 음악 이야기] 소설, 시, 노래

Posted at 2018.04.19 13:01 | Posted in 이건음악회 Talk Talk/홍승찬교수의 클래식 톡톡


무라카미 하루키는 소설가를 일컬어 "불필요한 것을 일부러 필요로 하는 인종"이라 말했습니다. "소설 한 두편 쓰는 것은 어렵지 않지만 소설가로 먹고 사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이라면서도 "뭔가 써내는 것을 고통으로 느낀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고 말합니다.

 

출처 : http://www.pentabreed.com/sub/view/?idx=300


"바닷가에 시체가 밀려오면 파리가 가장 먼저 달려든다. 시인은 파리다." 이성복 시인의 말입니다. 시인 라포르그는 "현실의 삶은 비열한 것이지만 다행히도 그것이 시에서 나타날 때는 카네이션만큼이나 아름다운 것"이라 말했습니다.

 

"청계천 노점에서 막걸리 몇 잔에 얼큰해져

돌아오는 길

꼭 거쳐야 할 경유지인 것처럼 그 불빛을 찾아들어, 글만 쓰면 배가 고파진다고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주제에 글을 써야 하느냐고, --, 술주정 같은 푸념을 했을 때

그 서점의 여자는 묵은 책의 먼지를 털 듯 말했었다. 쓰고 싶은 사람에게 글을 쓰게 하세요--. 라고

그 말을 듣는 순간, 내 머리 속은 하얗게 비어 왔었고

눈앞이 아득히 흐려졌었다"

 

김신용의 시 "그 불빛"입니다.

 

출처 : 씨씨제로포토


시인도 아니고 소설가도 아니지만 알듯 말듯, 아는 듯 모르는 듯, 날이면 날마다 살려고 쓰면서도 죽자고 한숨 짓는 그 누군가의 넋두리인 것만 같습니다.

 

소설보다 시가 더 절실합니다. 이야기로 길게 풀어쓸 새도 없이 내지르는 외마디 비명입니다. 차마 말로 다 할 수 없어 삼키는 겁니다. 기쁘다 못해 울고 너무 슬퍼 웃는 겁니다. 그러니 밑도 끝도 없는 겁니다. 앞뒤를 가린들 무슨 소용일까요. 견디지 못해 나를 묻어버리는 겁니다.

 

음악보다, 시보다 노래가 먼저입니다. 음악 없는 노래는 있어도 노래 없는 음악은 없습니다. 시 없이 노래할 수 있지만 노래 아닌 시는 없습니다. 노래는 바람 같이 불고 물처럼 흐릅니다. 느낌이 스치고 마음이 가는 곳에 노래가 있습니다. 머리가 텅 비어서 생각이 사라집니다.

 

노래는 말 못하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되어야 하고 이름 모를 사람들의 이름이 되어야 합니다. 불러도 대답 없는 이름을 노래로 외쳐 일깨우고 차마 입술이 떨어지지 않아 속으로 삼킨 말들을 가락에 실어 흘려보내는 겁니다. 엉킨 삶을 풀어서 꿈을 짜는 겁니다.

 

 

출처 : https://www.youtube.com/watch?v=kCp2cO_TW0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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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승찬 교수의 클래식 음악 이야기] 나카토오와 리히테르의 인연[홍승찬 교수의 클래식 음악 이야기] 나카토오와 리히테르의 인연

Posted at 2018.03.20 07:30 | Posted in 이건음악회 Talk Talk/홍승찬교수의 클래식 톡톡



일본 굴지의 공연기획사 재팬아츠의 나카토오 회장을 초청하여 특강을 마련한 적이 있습니다한국예술종합학교 학생 전체를 대상으로 한 강연이었지만 일본의 공연예술산업과 예술경영의 현황이 주제였기에 특별히 예술경영전공 학생들의 참여와 관심이 컸습니다아마도 학생들은 이 강연을 통해 일본의 공연예술그리고 예술경영 현장을 한 눈에 들여다 볼 수 있는 정보와 데이터를 얻으려 했겠지만 나카토오 회장은 두 시간이 넘는 강연시간 내내 어떤 예술가와 어떻게 인연을 맺어 지금까지 그것을 어떻게 지속하고 있는가를 이야기했습니다.


Japan Arts 홈페이지 캡쳐 


그 가운데 특별히 기억에 남는 것은 20세기의 전설과도 같은 러시아의 피아니스트 리히테르와 나카토오 회장과의 인연입니다리히테르를 아는 누군가의 주선으로 두 사람이 함께 그 대가를 만날 수 있었지만 만나서 헤어질 때까지 그에게는 한 마디 말도 건네지 않았을 뿐더러 시선 한 번 주지 않았다고 했습니다속으로는 상당히 기분이 언짢았지만 전혀 내색하지 않았고 정중하고 깍듯하게 인사를 하고 돌아서는 순간 그와의 인연은 이것으로 끝이구나 생각했다고 합니다그런데 며칠 후 그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는 것입니다그렇게 다시 만났더니 전과 달리 먼저 웃으며 다가와 악수를 청했고 그 자리에서 전속 계약을 수락했다고 했습니다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리히테르는 그런 식으로 상대를 시험한 것이었고 그런 상황에서도 시종 여유와 평정을 잃지 않는 그를 평생 신뢰할 수 있는 동반자로 받아들였던 것입니다.

 

스뱌토슬라프 리흐테르 : 피아노 연주자


리히테르는 고소공포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그래서 절대 비행기를 타지 않았는데 일본공연을 갈 때면 늘 기차나 자동차를 타고 블라디보스톡으로 이동해서 그곳에서 요코하마까지는 배를 이용했다고 합니다한 번은 그가 직접 자동차를 운전해서 블라디보스톡으로 가던 중에 그만 그 자동차가 고장이 났습니다그런데 이 괴팍한 거장은 달리 손써 볼 생각도 않고 바로 일본으로 전화를 했습니다그리고는 나카토오 회장에게 사태의 해결을 요구했던 것입니다생각하기에 따라서는 말도 안 되는 억지일 수 있었지만 회장은 곧바로 리히테르가 있는 곳에서 가장 가까운 정비공장을 물색해서 수리를 끝낼 수 있도록 조치했습니다그런데 얼마지 않아 또 고장이 났다는 연락을 받았고 그러자 이번에는 그곳에서 가장 가까운 일본 자동차 대리점에 연락해서 숫제 새 자동차로 바꿔주었다고 합니다그리고 이런 정성으로 쌓은 신뢰 때문에 회사가 정작 어려움에 처했을 때 리히테르는 평소와는 비교도 되지 않은 적은 액수의 출연료를 자청하여 전보다 더 많은 무대에 기꺼이 서 주었고 그 덕에 회사도 결국 위기를 벗어날 수 있었다고 했습니다.

 

출처 : 위키피디아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머리 속으로는 우리의 현실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당시는 건국 이래 최대의 경제난국이라 일컬었던 IMF 사태가 벌어졌을 때였고 그로 말미암아 예정되었던 초청공연들이 무더기로 취소되었습니다이미 계약까지 마친 상태였지만 공연을 성사시키는 것보다는 계약서에 명시된 위약금을 무는 것이 이익이라는 얄팍한 계산 때문이었습니다물론 그런 가운데도 약속을 지키기 위해 손실을 감수하면서 예정된 공연을 강행한 사례도 없지는 않았습니다. 그런 공연 가운데 하나는 출연자 스스로가 약속된 출연료의 상당 액수를 포기하였는데 뜻밖에도 그 공연이 매진되어 기획사를 살렸다는 미담이 들리기도 했습니다아마 취소된 공연들도 주최 측이 성의를 다해 어려운 상황을 설명하고 설득했다면 출연자들로부터 양해와 양보를 얻어내고 더불어 신뢰도 얻고 수익까지 올렸을 지도 모릅니다이렇듯 약속을 지키지 않는 일이 많았기 때문에 우리나라를 찾은 해외의 유명 아티스트들 중에는 터무니없이 많은 액수를 요구하는가 하면 올 때마다 기획사를 바꾸기는 경우도 있다는 말도 들었습니다

 

특강이 끝나고 질문을 받는 순서가 되자 강연 내용과는 무관한 질문들이 쏟아졌습니다. 그리고 질문의 대부분 구체적인 수치들을 요구하는 것이었습니다예컨대 공연에서 얻은 전체 수입 가운데 티켓 판매가 차지하는 비중이 얼마냐혹은 해외 아티스트들을 초청할 때 구체적으로 어떤 조건을 제시하는가를 묻는 질문들이었습니다학생들은 나카토오 회장으로부터 흥행의 비법을 듣고 싶었습니다. 현실에 그대로 대입하면 입맛에 딱 맞는 해답이 나오는 마법과도 같은 공식을 원했던 것입니다

 

출처 : https://www.giggabpodcast.com/2017/09/05/multiple-bands-weather-issues-tip-jars-giggab-130/


질문을 받은 나카토오 회장의 태도가 인상적이었습니다자신의 회사와 관련된 구체적인 사례와 수치를 요구하는 질문이 있을 때마다 배석한 관계자를 불러 확인하거나 대신 답변하게 했습니다그리고 자신은 개별적인 공연기획에는 직접 관여하지 않는다는 말을 덧붙였습니다대신 각 팀 별로 구체적인 기획안이 모아지면 회의를 통해 가부를 결정하거나 조정을 거치게 되는데 그때 자신은 다만 조정자의 역할을 할 뿐이라고 했습니다각각의 공연은 철저하게 각 팀의 주도하에 이루어지며 재원이나 인력 등 여러 가지 필요한 제반 사항은 관리부서의 협조를 얻어 충당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난세를 평정하여 에도 시대를 열었던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세 등급으로 사람을 나누어 그 됨됨이를 따졌다고 합니다가장 낮은 단계에 있는 사람은 어떤 일에 임할 때 스스로가 앞장 서 그 능력을 다 소진하는 사람이고다른 사람의 힘을 빌어 일을 도모하는 사람이 그보다는 낫다고 했습니다하지만 가장 높은 수준에 있는 사람은 다른 사람의 힘 뿐만 아니라 지혜까지 활용한다고 했으니 이것이 바로 도쿠가와 이에야스 그 자신이었습니다. 그날 나카토오 회장의 모습을 보면서 문득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떠올랐습니다.


  

  1. 정성진
    서로를 믿을 수 있다는 것, 인생을 살면서 이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항상 느끼며 삽니다. 나는 누구를 신뢰할 수 있는가도 중요하지만, 나를 신뢰하는 사람이 몇명이나 있는지 되돌아 보니 참 부끄러울 따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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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승찬 교수의 클래식 음악 이야기] 문화란?[홍승찬 교수의 클래식 음악 이야기] 문화란?

Posted at 2018.02.27 07:30 | Posted in 이건음악회 Talk Talk/홍승찬교수의 클래식 톡톡

 

사람들은 흔히 이제 막 사회에 첫발을 내딛는 초년생에게 자신이 속한 어떤 곳에서든 없어선 안될 존재가 되라는 말을 덕담으로 합니다. 물론 처음에는 그래야겠지요. 그런 마음으로 일을 배워야겠지요. 그런데 우리는 나이가 들면 달라져야 한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 듯 싶습니다.

 

지금 있는 곳이 어디든, 언젠가는 반드시 떠나기 마련이라면 내가 없어도 남은 사람들이 아무런 불편이나 지장이 없도록 꼼꼼하게 챙기고 준비해야겠지요. 이렇듯 누구나 꼭 해야 할 일임에도 소흘하고 허술한 걸 보면 어떨 때는 몰라서가 아니라 알면서도 모른 척 하는 건지도 모릅니다. 밀려나기 싫어서, 휘두르고 싶어서 언제까지고 나만 할 수 있는 일을 움켜쥐고 놓지 않으려는 마음일 수도 있겠지요. 자식과 혈육에게는 뭐라도 남겨서 물려주려고 안간힘을 쓰면서 집 밖에서 몸 담고 있는 직장이나 다른 공동체를 떠날 때는 그렇지가 않은 경우가 더 많습니다.

 

출처 : https://www.lonelyplanet.com/bookings


물론 그 누구도 피붙이만큼 애틋할 리야 없겠고 살아서 떠나는 마음과 죽어서 떠나는 마음이 같을 수는 없겠지요. 그래도 사람과 사람이 만나 무언가를 함께 하는 마음이 이래서는 안됩니다. 그리고 아무리 부모 노릇, 가장 노릇이라고 해도 물질로 그 빈자리를 채울 수야 없는 노릇입니다. 그것 또한 미련이고 집착이니 버려야 할 욕심입니다. 혼자서만 다 짊어지려 하지 말고 각자의 삶과 일은 혼자서도 알아서 잘 꾸릴 수 있도록 다독이고 다그쳐야 합니다. 더불어 스스로가 늘 좋은 본보기가 되어 다른 이들이 저절로 따라 하도록 만들어야 합니다. 이런 마음가짐이 모두에게 고스란히 물려져 거듭 되풀이된다면 그 가운데 누구 하나 없다고 해서 아무도 흔들리거나 엇나가진 않을 겁니다.

 

이것이 바로 전통의 힘입니다. 몸담은 곳이 어디든 우리는 좋은 전통을 만들어 바로 세우려 힘을 써야 하며, 이미 그런 전통이 있다면 그걸 가꿔서 물려주려 노력해야 합니다. 이렇게 한 사회 공동체의 구성원들이 공유하게 되는 가치와 신념, 그로 말미암은 행위 모두를 일컬어 문화라고 하니 우리 모두는 누구나가 문화의 창조자이고 수호자인 셈입니다. 내가 없어도 잘 돌아가는 세상은 내가 아니라 문화가 만듭니다.

 

문화는 소통입니다. 말이 통하고 글이 통해 서로 느낌과 생각을 나누는 겁니다. 그래서 뜻이 하나로 모아져 함께 뭔가를 해내겠다는 게 문화이고 그렇게 만들어져 모두가 누리고 있는 것이 문명입니다. 문화는 혼자가 모두가 되는 것이고 모두가 하나를 품는 겁니다. 바람직한 문화가 삶의 보람이자 긍지가 되는 세상을 꿈꿉니다.

 

출처 : https://www.emaze.com/@AORFIIIZO/mirar-desde-la-comunicacin


음악이 좋고 예술이 좋으니 음악가와 예술가는 또 얼마나 좋은지 모릅니다. 그래서 한 때는 그들과 가까이 지내면서 참으로 많은 것들을 함께 하며 서로 나누기도 했습니다. 그러면서 그들의 생각과 삶을 더 잘 알게 되었고 그로 말미암아 음악과 예술을 더 깊이 알게 된 것도 사실입니다. 그런데 이제 더는 다가서지 않습니다. 떨어져서 지켜보며 걱정하고 응원합니다. 인연이 닿아 기회가 생기면 힘든 일을 돕고 좋은 일을 거들 따름입니다. 정말로 좋아하면 그래야 한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있는 듯 없는 듯 곁을 지켜야 오래 간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혼자서만 마음 속 깊이 품은 사랑이라야 식지 않고 늘 따뜻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술경영의 궁극적인 목표는 언젠가는 더 이상 따로 경영에 힘쓰지 않아도 예술 스스로 잘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경영이 없어도 되는 예술을 꿈꾸는 겁니다. 그렇다면 예술이 꿈꾸는 세상은 무엇일까요? 예술이 없어도 우리의 삶 그 자체가 충분히 아름다운 세상입니다.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의 생각과 말과 행동이 한 결 같이 맛깔나고 멋스러워 보고 듣고 만지며 느끼는 모든 것들이 다 아름다운 세상입니다.

 

출처 : http://www.theviveur.com/travel/tips-going-road-trip/


아마도 내가 존재하는 이유도 이와 다르지 않을 거라 생각합니다. 내가 속한 그 어느 곳이나 알고 지내는 모든 사람들이 내가 없더라도 그들 나름의 삶을 보란 듯이 잘 꾸려가는 것이겠지요. 있을 땐 마치 없는 것처럼 잘 섬기고 두루 보살피다가 때가 오면 멀찌감치 물러서서 지켜보는 겁니다. 잠시 허전하겠지만 누군가 곧 빈자리를 채우고 서로 애틋했던 마음은 문득 떠오르다 그리움으로 남는 겁니다. 나를 사른 불꽃은 어느덧 사라지고 온기만 가득 남기고 떠나는 겁니다.

 

참 좋은 것부터 훌훌 털어버려야 합니다. 정말 좋아하는 사람부터 훨훨 날아가게 내버려두어야 합니다. 애틋할수록 놓아야 합니다. 그래야 싫은 일들도 아무렇지 않고 미운 사람도 덤덤할 수 있습니다. 죽고 못살 만큼이나 살가운 것들도 다 떠나보낸 바에야 이런들 어떠하며 저런들 어떠하겠습니까. 너도 가고 나도 가는 걸 붙들면 누구를 붙들겠습니까. 부둥켜 안으려니 뭐라도 잡으려고 안간힘을 다합니다. 매달려서 떨어지지 않으려고 남의 가슴을 자꾸 후벼팝니다. 그만큼 새겼으면 덮어두고 묻어두어야 할 일을 자꾸 들추어서 들쑤십니다. 땅을 파고 씨를 뿌렸으면 다시 흙을 덮고 묻어야 싹이 납니다. 무엇이든 차면 기울고 누구든지 오면 가는 것이 만물의 이치고 우주의 섭리거늘 사람만 이를 벗어나려 허우적거립니다. 힘을 빼야 물에 떠서 헤엄을 칠 수 있고 마음을 비워야 삶이 가벼워 뜻을 펼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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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승찬 교수의 클래식 음악 이야기] 삶이란?[홍승찬 교수의 클래식 음악 이야기] 삶이란?

Posted at 2018.02.21 07:30 | Posted in 이건음악회 Talk Talk/홍승찬교수의 클래식 톡톡

사람들은 자꾸 젊게 살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몸은 물론이고 마음까지도 말입니다. 다들 그러니 이제 늙은이가 잘 보이지 않습니다. 없어서 그런 게 아니라 숨어서 보이지 않습니다. 젊음만 좋다고 하니 젊은 척이라도 해야 하는 모양입니다. 젊어서 젊게 살지 못해 나이 들어 뒤늦게 젊음을 찾는 이들도 있습니다. 이래저래 젊음만 쫓다 보니 아무도 늙은이가 해야 할 일을 하려 들지 않습니다. 찾은 것, 가진 것, 누린 것들을 나누고 베풀고 물려줘야 하거늘 아직도 더 얻고자 더 힘쓰고 더 다그쳐서 더 나아가려 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함으로써 나와 가족은 물론 나라와 지구까지도 두루 평안해지리라 믿습니다.

 

출처 : https://1boon.kakao.com/ppss/58998923e787d00001489f6b


사람 사는 세상도 자연의 생태계와 마찬가지로 각각의 구성원들이 나름의 자리를 지켜서 주어진 역할을 제대로 할 때 균형과 조화를 이루어 건강하게 공존하여 유지될 수 있습니다. 지금의 세태는 마치 초식 동물이 육식을 하겠다고 나서는 것과 다름이 없습니다. 고기의 육즙만 생각하다 보니 사냥의 처절함은 안중에도 없나 봅니다. 이처럼 모두가 고기만 먹으려 들면 육식동물만 득실거려 서로 물어뜯어야 한다는 사실조차 잊었나 봅니다. 사냥은 힘들고 번거로우니 남이 잡은 먹잇감만 가로채려는 약삭빠른 가짜 젊은이들이 판치는 세상입니다.

 

"나이를 먹는 것도 기술이 필요하다." 프랑스의 작가 앙드레 모루아의 말입니다. 기술이 그저 얻어질 리가 없지요. 날마다 갈고 닦아야 합니다. 나이 먹음에 익숙해져야 하고 나이에 따라 달라지는 역할과 처신에도 적응해야 합니다. 나이에 맞는 마음가짐과 몸가짐을 늘 생각하고 실천해야 합니다. 나이가 벼슬이 아닌 다음에야 자랑할 일도 아닙니다. 그렇다고 부끄러워서 숨겨야 할 일은 더더욱 아니지요. 언제나 그랬듯이 나의 참 모습을 찾아서 있는 그대로 담담하게 보여줄 수 있어야 합니다.

 

이제서야 망설이는 일이 많이 줄었습니다. 무슨 일을 벌이면 어떻게 될지 알아서 그런 게 아니라 어차피 알 수 없으니 그럴 필요가 없다는 걸 깨달은 겁니다. 어릴 땐 몰라서 답답했는데 나이 드니 정말로 그게 얼마나 좋은지 모르겠습니다. 한 때는 안답시고 온 데 다 끼어들며 참견하고 돌아다녔지만 지금은 한 눈 팔지 말고 그저 내 앞에 주어진 일만 하나씩 차근차근 힘 닿는 데까지 해야지 다짐합니다. 그것 말고 달리 할 일도 없는 데다가 그것만으로도 나날이 벅차고 힘겹기 때문입니다.

 

출처 : https://www.youtube.com/watch?v=-YhDA61r5WM


그럴 듯한 무언가를 찾는다며 알지도 못할 그 끝을 이리 재고 저리 따지느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세월이 얼마인지 모릅니다. 그러다 겉만 번지르르한 입발림에 솔깃해서 허튼 짓 하느라 허둥대던 나날도 하루 이틀이 아닙니다. 그래서 아쉽거나 안타깝다는 것이 아니라 그 때는 그럴 수 밖에 없었다는 것이고 지금이라고 크게 다를 리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자꾸 하다 보면 조금은 나아지겠지 믿으며 느긋한 마음을 가지게 됩니다. 서두르지 않지만 주저하지도 않습니다. 그저 잔잔하고 담담합니다. 언제까지나 이대로일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지금 이 순간만큼은 자유롭고 평화롭습니다. 그 다음은 그 누구도 알 수가 없으니 이 보다 더 좋을 수는 없습니다.

 

사노라면 늘 그땐 왜 미처 몰랐는지 아쉬워하기 마련입니다. 바로 엊그제 일도 그렇지만 한참을 지난 일이라고 다르지 않습니다. 나이가 들수록 옛일이 점점 또렷해지고 날이 갈수록 회한도 더더욱 깊어만 갑니다. 이제는 같은 일을 두번 다시 만날 수 없겠거니 짐작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누구나 옛일을 날마다 되새기지는 않습니다. 어쩌다 문득이면 몰라도 아픈 기억을 붙들어 하나하나 곱씹는 건 쉬운 일이 아닙니다. 흐뭇한 일이 아니라 안타까운 일이니 그렇고 내 잘못에서 비롯되었다면 더욱 더 그렇습니다. 깨달았으면 무엇이 어떻게 잘못되었는지를 찾아서 남기고 알려야 합니다. 스스로 되풀이하지 않으려는 마음이 먼저겠지만 누구라도 그런 일을 만나면 슬기롭게 풀어갈 수 있도록 어떻게든 도와야 하기 때문입니다. 사람만이 지난 시간을 되돌아봅니다. 잘못을 깨달아 고치려는 것도 사람뿐입니다. 그걸 오래 남기고 널리 알려서 문화가 되었고 문명으로 꽃피었습니다.

 

출처 : http://dasforyou.tistory.com/entry/%EC%9D%B8%EC%97%B0%EC%97%90%EB%8A%94-%EC%9A%B0%EC%97%B0%EC%9D%B4%EB%9E%80-%EC%97%86%EB%8B%A4


나이 들어 홀가분하다는 것은 어떻게든 짊어지려고 했던 그 많던 인연들을 하나씩 줄여서 점점 가벼워진다는 뜻입니다. 나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 인연을 지우는 것이 아니라 내가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지 않는 인연부터 내려놓습니다. 그렇게 멀어진 인연을 누군가 물으면 한때는 알았으나 지금은 잊었노라고 말해야겠지요. 잊고 싶어 그리 한 것이 아니라 잊어야겠기에 그리 했노라고 말할 겁니다. 나이 들어 철이 든다는 것은 내키지 않아도 해야 할 일은 미루지 않는 것입니다. 내일이 없어 오늘을 서두르는 조바심아 아니라 하나라도 덜어 가뿐 하려는 느긋함입니다.

 

영화 "인턴"에서 로버트 드 니로는 일흔이 넘은 나이에 시니어 인턴에 지원하면서 "음악가에게는 은퇴가 없어요. 음악이 사라지면 멈출 뿐이죠. 그런데 내 안엔 아직 음악이 남아 있어요."라고 말합니다. 남아 있는 그 음악이 고이면 어디로 흐를까요? "여행자의 책"을 쓴 폴 서루는 "관광객은 자신이 지금 어디 있는지를 모르지만 여행자는 어디로 갈지를 모른다."고 했습니다. 여행이 그런 것처럼 음악이 그렇고 인생 또한 다르지 않습니다. 이백이 이르기를 "달은 발이 없어도 구름 위를 거닐고 바람은 손이 없어도 나무 가지를 흔든다."고 했습니다. 내 안에 남은 음악이 나를 또 어디론가 이끌고 있습니다. 정처 없는 발걸음을 달에 얹고 바람에 실어 덧없는 세월에 흘려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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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승찬 교수의 클래식 음악 이야기] 예술경영이란?[홍승찬 교수의 클래식 음악 이야기] 예술경영이란?

Posted at 2018.02.20 07:30 | Posted in 이건음악회 Talk Talk/홍승찬교수의 클래식 톡톡

 

왜 사는지를 묻는 것이 철학이라면 왜 하느냐고 묻는 것이 경영입니다. 거듭 거듭 묻고 또 물어야 합니다. 그래야 누가 무엇을 언제 어디서 어떻게 할지를 알 수 있습니다. 까닭 모를 일에 덤벼드는 것은 경영이 아닙니다. 왜 하는지가 뚜렷해야 실패해도 쓰러지지 않습니다.

 

경영은 잘 꾸리자는 것이지 많이 벌자는 게 아닙니다. 많이 가지려면 그 만큼 더 끌어들여야 하니 끌어들인 만큼 더 부지런히 굴리고 돌려서 자꾸 털어내야 합니다. 구르는 돌엔 이끼가 끼지 않지만 고인 물은 썩기 마련입니다. 들어오고 나가고를 잘 챙기는 게 경영입니다. 길을 닦는겁니다.

 

출처 : http://news.korean.go.kr/index.jsp?control=page&part=list&category=23


경제학이 경영학을 깔보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것도 학문이냐면서 말입니다. 그런데 이치대로 계산대로 안 돌아가는 게 사람 사는 세상입니다. 그래서 경제학이 경영학에 밀렸습니다. 이제는 경영학으로도 안 풀리는 게 너무 많아졌습니다. 하여 문화와 감성을 들먹입니다. 철이 든 겁니다.

 

경제는 나누기고 예술은 더하기입니다. 경제는 현실이고 예술은 꿈입니다. 경제는 하나지만 예술은 여럿입니다. 빵 하나를 여럿이 나누는 것이 경제고 하나의 꿈에 다른 꿈을 더하는 게 예술입니다. 빵은 나누면 작아지지만 꿈을 더해도 무거워지진 않습니다. 그렇게 모두가 하나가 됩니다.

 

예술로 밥먹는 일은 참 고달픕니다. 값으로만 매기려 들고 거저 먹겠다고 덤벼드는 이들도 많습니다. 예술하는 사람보다 곁에서 거드는 사람이 더 서글픕니다. 실컷 따져서 바로잡으려 해도 예술가 스스로가 무너지면 할 말이 없습니다. 밥 안먹어도 살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출처 : https://brunch.co.kr/@lyju7479/139


예술경영이란 것이 박쥐노릇이라 생각했습니다. 쥐들 모인 곳에 가면 쥐인 척하고 새들 앞에서는 새라고 우겼습니다. 지금도 박쥐라는 생각엔 변함이 없지만 전과는 반대로 처신합니다. 쥐들에게는 날개를 펼쳐 보이고 새들에게는 이빨을 자랑합니다. 이제서야 스스로를 깨닫게 된겁니다.

 

예술경영은 스토리텔링입니다. 사람들이 제대로 받아들여 깨닫지 못하는 예술의 가치를 드러내고 일깨우는 일입니다. 예술가들의 느낌과 생각을 고스란히 살려서 사람들을 예술로 이끌어야 합니다. 스토리텔링은 숨은 것을 드러내고 죽은 것을 살립니다. 봄비요 가을햇살입니다.

 

한 때 스스로 아티스트였다가 나중에 매니저나 기획자가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누구보다 아티스트의 생각과 마음을 잘 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아티스트를 더 잘 챙겨줄 것 같은데 오히려 반대인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그 속을 너무 잘 아니까 자기 마음대로 휘두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출처 : https://www.superookie.com/contents/5902af3c8b129f268d0b362c


좋은 아티스트를 찾아서 하자는 대로 밀어주는게 좋은 기획자입니다. 자신의 생각과 다른 무엇을 하자 해도 그것이 그가 제일 잘하는 것이겠지 믿고 맡겨야 합니다. 결과가 그렇지 않다면 아티스트를 잘못 만난 때문입니다. 잘되면 아티스트 덕이고 아니면 기획자 탓입니다.

 

공연기획은 얼간이들이나 하는 바보짓입니다. 나로 말미암아 누군가 조금이라도 웃을 수 있다면 그 보다 더 기쁠 수가 없다는 멍청이들입니다. 애쓰고 힘들여 만든 무대에는 남을 올려 놓고 죄지은 사람처럼 마음졸이며 숨어 있다가 사람들이 좋다고 하면 자기가 더 좋아서 어쩔 줄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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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승찬 교수의 클래식 음악 이야기] 오스트리아 빈 필의 신년음악회[홍승찬 교수의 클래식 음악 이야기] 오스트리아 빈 필의 신년음악회

Posted at 2018.01.26 14:59 | Posted in 이건음악회 Talk Talk/홍승찬교수의 클래식 톡톡

 

우리나라 오케스트라 연주회에서 앙코르곡으로 가장 많이 연주되는 곡이 무엇일까요? 요한 슈트라우스 1세가 작곡한 라데츠키 행진곡입니다. 이 곡을 연주할 때면 음악이 흐르는 중간에 지휘자가 청중을 향해 돌아서서 지휘를 하고, 청중은 지휘자의 동작과 음악에 맞춰 박수를 치기 마련입니다. 아마 여러분도 연주회장에서 한번쯤 이런 경험을 하신 적이 있으실 지도 모르겠습니다.

 

출처 : https://www.youtube.com/watch?v=gFYnRqV4p4w


그렇다면 이 곡이 앙코르곡으로 널리 사랑받게 된 것은 언제부터일까요? 해마다 11일 정오에 빈 음악협회 대강당에서 열리는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신년음악회가 TV 전파를 타고 우리나라 안방에 소개되면서부터입니다. 빈 필은 신년음악회 때마다 이곡을 앙코르곡으로 연주합니다. 지휘자가 객석을 향해 지휘를 하고 청중들이 음악에 맞춰 박수를 치는 모습은 사실 빈 필에서 시작된 광경입니다. 이런 빈 필의 전통이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도 좋은 인상을 남겼던 것입니다.



하지만 라데츠키 행진곡이 만들어진 사연을 들여다보면, 우리도 빈 사람들처럼도 마냥 신나서 따라 하기에는 조금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습니다. 이 곡의 제목이 된 라데츠키는 오스트리아 영토였던 북부 이탈리아의 독립운동을 진압한 장군입니다. 18483, 부패한 메테르니히 전제정권을 타도하기 위해 시민혁명이 일어나자, 당시 정부의 편에 섰던 요한 슈트라우스는 정부군의 사기를 고취하기 위해 라데츠키의 이름을 붙여 이곡을 작곡했습니다. 이 때문에 그는 반혁명적인 작곡가로 낙인찍혀 한때 빈을 떠나 잠시 런던에서 살기도 했습니다. 오늘날에는 오스트리아 사람들의 씩씩한 기상을 드러내는 행진곡으로 사랑받고 있지만, 이탈리아 사람들에게는 달갑지 않은 곡임에 틀림없습니다. 일제강점기를 겪은 우리의 역사를 돌이켜 봐도 조금 찝찝한 마음이 드는 것은 사실입니다.

 

요한스트라우스(출처 :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Johann_Strauss_jr_anni_60.JPG)


사실 라데츠키 행진곡을 빼면 빈 필 신년음악회에서 자주 연주되는 곡들은 왈츠가 대부분입니다. 그렇다면 빈 필이, 아니 빈 사람들이 그토록 왈츠를 좋아하는 까닭은 무엇일까요? 8세기가 미뉴에트의 시대였다면 19세기는 왈츠의 시대였습니다. 왈츠는 오스트리아 농민들이 즐겨 추던 랜틀러에서 비롯되었다고 합니다.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에서 마리아와 대령이 무도회장 밖에서 추는 이 춤이 바로 랜틀러입니다. 왈츠의 유행은 마치 전염병처럼 온 유럽을 휩쓸었습니다. 왕족이나 귀족들 말고도 여유가 생긴 중산층과 시민계급이 무도회를 드나들었던 것도 이유였지만, 더 중요한 것은 남녀가 함께 추는 사교춤의 역사에서, 처음으로 본격적인 신체접촉이 가능했기 때문이라는 말도 있습니다. 또한 오스트리아의 재상 메테르니히가 의도적으로 왈츠의 열기를 고조시켰다는 설도 있습니다. 나폴레옹 이후 유럽의 질서를 재편하기 위해 오스트리아 빈에 모인 각국 대표들을 날마다 무도회에 초대해 왈츠에 빠져들게 함으로써, 자신이 의도한 대로 회의를 이끌어가려 했다는 겁니다.

 

출처 : http://www.dancearchives.net/2012/04/26/viennese-waltz-please-use-the-right-music-from-michael-herdlitzka/

 

미뉴에트가 그랬던 것처럼 왈츠 역시 춤곡으로 뿐만 아니라 기악곡으로 따로 작곡되어 오늘날까지 많은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쇼팽이 피아노 소품으로 작곡한 '강아지 왈츠'는 마치 장난을 치는 강아지의 재빠른 움직임을 묘사한 듯 경쾌합니다. 라벨이 작곡한 왈츠 "라 발스"는 장엄하면서도 풍자적인 느낌을 주는가 하면, 시벨리우스의 '슬픈 왈츠'처럼 흐느끼는 듯한 왈츠도 있습니다. 이처럼 왈츠는 너무나도 다양한 느낌과 감흥으로 오늘날까지도 우리들 가슴 속에 살아 숨 쉬고 있습니다.

 


왈츠로 몸살을 알았던 그 시절 유럽에서는 시골의 농부들조차 과년한 딸이 시집을 가지 못해 고민이라면 주저 없이 무도회를 열었습니다. 인근의 총각들을 다 불러들여 노처녀 딸과 만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하는 겁니다. 서로 길게 이야기를 나누지 않아도 손과 손을 맞잡고 음악이 이끄는 대로 춤을 추다보면 서로의 성격과 서로에 대한 마음을 느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여유 있는 집안에서 손님들을 부르는 자리라면 당연히 무도회가 빠질 수 없었습니다. 사람들을 초대해 먼저 다이닝룸에서 안주인이 마련한 만찬을 맛본 뒤, 식사가 끝나면 볼룸으로 자리를 옮겨 무도회를 벌였습니다. 사람들은 그렇게 너나없이 무도회를 즐겼습니다. 그러니 발레는 물론이고 오페라에서도 무도회 장면이 빠지지 않는 것입니다. 심지어 차이코프스키의 오페라 '예프게니 오네긴'에는 무도회 장면이 두 번이나 등장합니다.

사람들이 이토록 왈츠를 사랑했던 데에는 악보에 다 담을 수 없는 짜릿함도 한 몫 했습니다. 세 박자 가운데 두 번째 박자가 살짝 앞으로 당겨지는 느낌인데 한 번이라도 제대로 왈츠를 춰보면 몸으로 바로 그 느낌을 알 수 있을 겁니다. 하나, , , 이렇게 원을 그리면서 돌게 되면 당연히 시작은 당겨지고, 그 뒤는 쳐지기 마련이니 그렇게 흐르는 음악에 몸을 싣고 리듬을 타다 보면 나도 모르게 신이 나고 흥이 나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빈 필이 연주하는 왈츠의 리듬은 다른 나라, 다른 도시의 오케스트라의 그것과는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1941년 지휘자, 클레멘스 크라우스에 의해 시작되어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신년음악회는 빈에서 태어나 자랐거나, 빈에서 활동하고 널리 사랑받았던 작곡가들의 작품을 주로 연주합니다. 왈츠의 시대를 활짝 열어 '왈츠의 아버지'라 불리는 요한 슈트라우스 1세와, 그 아들들인 요한 슈트라우스 2, 요제프 슈트라우스, 에두아르트 슈트라우스, 그리고 요제프 라너와 칼 미하엘 치러 등의 작곡가들이 대표적이고 여기에 빈 필의 창립자였던 오토 니콜라이의 오페라 '윈저의 명랑한 아낙네들' 서곡이 포함되기도 합니다. 물론 그중에서도 가장 많이, 또 자주 그 작품이 연주되는 작곡가는 단연, '왈츠의 황제'로 불리는 요한 슈트라우스 2세입니다.

 

출처 : http://www.daeguoperahouse.org


그의 작품들 가운데서도 특히 왈츠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는 그의 아버지 요한 슈트라우스 1세가 작곡한 '라데츠키 행진곡'과 더불어 거의 해마다 거르지 않고 연주되는 곡입니다. 라데츠키 행진곡을 연주할 때 청중들이 박자에 맞춰 박수를 치는 것이 전통인 것처럼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 연주 직전, 지휘자와 빈 필 단원들이 청중들에게 새해인사를 건넨 다음 연주를 시작하는 것이 관례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많은 요한 슈트라우스의 주옥같은 왈츠 곡들 가운데 왜 하필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를 해마다 연주하는 것일까요? 1866, 오스트리아는 독일의 신흥강국, 프로이센과 전쟁을 치렀지만 치욕스럽게도 불과 7주 만에 대패하고 말았습니다. 한 때 프랑스와 더불어 유럽의 운명을 쥐락펴락 했던 오스트리아로서는 너무나도 충격적인 패배였기에 국민들의 수치심과 상실감 또한 클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렇듯 절망에 빠진 동포들의 상처를 달래고 사기를 북돋우고자 빈 남성합창단은 시민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고 있던 요한 슈트라우스 2세에게 작곡을 의뢰했고 그 결과, 합창으로 노래하는 왈츠,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가 탄생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기대와는 달리 18672월에 있었던 초연은 그다지 성공적이지 못했습니다. 그러자 같은 해 파리에서 열린 만국박람회에서 슈트라우스는 합창을 빼고 관현악으로만 연주하는 개정판을 선보였고 사람들의 반응은 열광적이었습니다. 그 때문에 이후로는 관현악으로 연주하는 개정판이 주로 연주되었고 날이 갈수록 그 호응과 명성은 높아만 갔습니다.

 


당시 이 곡의 인기가 얼마나 대단했던지 다음과 같은 일화가 전해지고 있습니다. 어느 날 요한 슈트라우스의 부인이 브람스를 만나 사인을 부탁하자 브람스는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의 몇 마디를 음표로 그린 다음, '불행하게도 브람스의 작품이 아님' 이란 말을 덧붙였다고 합니다. 이 곡은 브람스뿐 아니라 오스트리아 국민 모두의 마음에 깊이 새겨졌고, 오늘날에는 전 세계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이 곡은 빈 필의 신년음악회 중계를 통해 널리 알려졌지만 언제부터인가 새해벽두에 안방에서 TV로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를 들으며 벅차오르는 감동으로 한해를 시작하던 일상은 슬그머니 사라져버렸습니다. 방송이 온통 시청률과 그에 따른 광고수입에 매달리면서부터 빈 필의 신년음악회를 더 이상 볼 수가 없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빈 필의 신년음악회가 우리에게 안겨주는 위로와 희망의 메시지를 결코 잊을 수 없었던 누군가가 앞장 서 다른 방법을 찾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얼마 전부터 몇몇 영화상영관에 따로 빈 필의 신년음악회를 스크린으로 중계하기 시작하더니 지금은 전국으로 그 규모가 확산되고 있습니다.

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41년 시작된 빈 필의 신년음악회는, 윈치 않는 전쟁의 악몽으로 괴로워하던 오스트리아 국민들의 마음을 음악으로 위로해주었습니다. 그리고 전쟁이 끝나자 폐허 속에서 무너져 내린 사람들의 상처를 어루만지며 다시금 일어설 희망을 심어주었습니다. 신년음악회를 보고 있노라면 '음악이, 그리고 예술이 우리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이 바로 위로'라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됩니다. 새롭게 시작하는 올 한해 역시 여러분 모두 음악으로부터 위로를 받고, 또 음악으로 서로를 위로할 수 있기를 바라고 또 바랍니다.

 

출처 : http://classictong.com/artist/2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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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승찬 교수의 클래식 음악 이야기] 리더십이란?[홍승찬 교수의 클래식 음악 이야기] 리더십이란?

Posted at 2018.01.23 13:38 | Posted in 이건음악회 Talk Talk/홍승찬교수의 클래식 톡톡

 

뜻을 세워 무리를 일으켜야 합니다. 사람으로 무리를 이끌면 뜻이 무뎌집니다. 무리가 흩어져도 뜻은 지켜야 합니다. 내 무리로 다른 무리를 밀어내지 말고 좋은 뜻으로 나쁜 뜻에 맞서야 합니다. 뜻을 잃으면 사람도 떠납니다. 뜻으로 사람을 얻고 사람으로 뜻을 이루어야 합니다.

 

"세상을 다스리는 가장 좋은 방법은 자연스러움을 따르는 것이고 그 다음은 이익을 내세워 이끄는 것이며 가르쳐 깨우치는 것이 그 다음이라면 백성을 가지런히 바로잡는 것이 그 다음이다. 가장 못난 정치는 재물을 놓고 백성들과 다투는 것이다" 사마천의 말입니다.

 

출처 : https://www.flickr.com/photos/booknews/16242504362

노자가 이르기를 백성이 군주가 있음을 알고는 있으나 따로 마음에 둘 일이 없는 것이 최고의 리더쉽이라 했고 그 다음이 우러러 보며 높이 받드는 것이며 그보다 못한 것이 삼가 두려워 하는 것이라 했습니다. 그마저도 아니면 함부로 비난하고 모욕하겠지만 최악의 경우에는 서로 믿지 못하는 지경에 이른다 했으니 이쯤 되면 아무런 기대는 물론이고 원망조차 없을 터입니다.

 

리더가 되면 무엇보다 먼저 내 마음대로 되는 일이 아무 것도 없다는 걸 깨닫게 됩니다. 안되는 일을 되도록 만드는 게 리더의 능력입니다. 무작정 밀어붙여서가 아니라 설득해서 타협하고 때론 양보도 해야 합니다. 힘 있는 자가 힘을 쓰지 않아야 진짜 힘이 생깁니다.

 

이강숙 총장은 늘 "살인적인 인내"를 강조하셨습니다. 가끔은 농담삼아 "민주적인 절차를 밟아 독재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과정이 중요하다는 뜻이고 비전을 공유하여 하나로 나가려면 참고 설득하기를 거듭해야한다는 것입니다. 리더십의 첫째 덕목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기 마련입니다. 리더는 이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무엇보다 먼저 구성원 각각의 이익을 최대한 실현할 수 있는 비전을 앞세워야 합니다. 모두의 이익이 나의 이익과 다르지 않을 때 모두들 있는 힘을 다하기 마련입니다.

 

회사, 혹은 단체를 뜻하는 Company는 함께라는 뜻의 com과 빵을 일컫는 pan을 붙여 만든 말입니다 . 함께 빵을 먹는 곳이 회사며 내가 속한 공동체란 뜻입니다. 한마디로 같이 잘먹고 잘살자는 것입니다. 구성원의 이익이 조직의 가장 중요한 목적입니다.

 

출처 :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Hiddink_and_Borodyuk_Euro_2008.jpg


히딩크가 대표팀 감독으로 부임했을 때의 일입니다. 몇 일을 관찰만 하다 선수들을 모아놓고 처음 주문한 말은 밥먹을 때 다들 한자리에 모여 천천히 먹자는 것이었습니다. 출신학교와 선후배를 따지는 풍토부터 바꾸려 했던 겁니다. 소통과 화합을 무엇보다 중요하게 생각한 히딩크식 리더십입니다.

 

미식축구는 희생의 경기입니다. 공격팀은 모두가 몸을 던져 공을 가진 한 선수를 보호합니다. 리더의 역할을 하는 쿼터백은 중계자의 역할을 수행합니다. 공격이 시작되고 공을 넘겨받는 즉시 선수중 누구에겐가 그 공을 넘겨줘야합니다. 리더의 역할은 조정자이고 중계자입니다.

조정경기는 배에 탄 모두가 똑 같은 속도로 노를 젓지 않으면 앞으로 나가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가운데 가장 처지는 사람에게 나머지가 다 맞출 수 밖에 없습니다. 세계의 명문 대학들이 조정경기를 장려하는 까닭이 바로 그것입니다. 나 혼자 잘나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하는 리더십의 산교육입니다.

 

지휘자 로린 마젤은 오케스트라의 능력과 주어진 여건을 정확하게 판단하면 단원들에겐 그안에서 가능한 만큼만 요구를 합니다. 과정에서도 늘 유머와 칭찬을 잊지 않습니다. 당연히 원하는 결과를 얻게 될테니 지켜보는 청중까지 모두 만족하게 되는 겁니다. 현명한 리더십입니다.

 

은퇴한 여성 리더중의 한 분이 담배 태우시는 사연이 흥미롭습니다. 성격이 불같아서 담배갑에서 담배 꺼내고 라이터 찾아서 불붙이는 동안 화를 가라앉힌다고 합니다. 그렇잖으면 부하 직원 면전에서 무슨 험한 말을 터뜨릴 지 본인도 감당할 수 없답니다. 당연히 독신입니다.

 

높은 자리에 올라 많이 가진 사람들은 그로 말미암아 누리는 다른 사람들의 호감과 호의가 마치 그 자신의 인간적, 혹은 성적 매력에서 비롯된 것인 양 착각하기 쉽습니다. 높이 올라가 많이 가지고 나면 그 안에 스스로가 매몰되어 있는 그대로의 나를 잃어버립니다.

 

일사불란한 꿀벌들 중에도 5%는 따로 논다고 합니다. 이런 벌을 정찰벌이라 하지만 사실은 날라리 벌이라 하는 게 더 맞을지도 모릅니다. 입맛도 까다로워 혼자 멀리 날아가 별난 꽃을 찾는답니다. 가까운 꽃무리에서 더 이상 꿀을 찾지 못해 모두 굶주리고 있을 때 날라리 벌이 찾아낸 다른 꽃들이 나머지 벌들을 살린답니다.

 

출처 : https://pixabay.com/ko/


사람을 뽑는 일은 참 어렵습니다. 그러나 그만두게 하는 것보다 힘들지는 않습니다. 내보내야 할 때는 싫더라도 얼굴을 마주보고 말해야 합니다. 잘못이 있으니 그만두라는 말보단 어쩔 수 없는 사정이라 안타깝다는 말이 더 낫습니다. 밥 한 끼가 어려우면 차 한 잔이라도 나누며 따뜻한 말 한 마디를 건네야 합니다.

 

리더는 지켜보며 힘을 실어주는 자리입니다. 사람들이 잘 움직여 일이 제대로 꾸려지고 있는지를 꼼꼼히 살펴서 잘잘못을 찾아주고 더 나은 쪽으로 이끌어 주는 겁니다. 잘못을 고치도록 알려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신이 나서 열심히 하도록 길을 터서 보여주는 게 더 중요합니다.

 

폴란드엔 "흐느끼는 사람을 따르라"는 말이 있습니다. 쇼팽의 음악이 그렇습니다. 통곡이 아니라 흐느낌입니다. 설명과 설득이 아닙니다. 가슴으로 곧장 스며들어 마음을 흔들어 놓습니다. 힘이 빠져 넋 놓고 함께 흐느끼게 됩니다. 소통하려면 먼저 공감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게 바로 리더십입니다.

 

좋은 결단을 내리는 리더가 최고입니다. 그 다음이 나쁜 결정을 하는 리더라고 합니다. 최악의 경우는 결심을 하지 못하는 리더입니다. 미국 대통령 트루먼의 집무실에는 "여기서 패가 멈춘다"라고 적힌 명패가 있다고 합니다. 그러니 이제 과감하게 배팅을 해야 할 때라는 것입니다. 해야 할 모든 것들을 다른 누군가에게 미루더라도 결정 만큼은 아무도 대신 할 수 없는 리더의 몫입니다.

 

리더십은 처음과 끝입니다. 가운데는 아래 사람을 믿고 맡겨야 합니다. 뜻을 모아서 나아갈 바를 밝히고 그렇게 다들 어디론가 함께 움직이다 끝내 허물이 생긴다면 혼자 다 뒤집어쓰는 겁니다. 비전을 세워서 사람들을 이끌고 끝까지 그 책임을 지는 게 리더의 사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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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승찬 교수의 클래식 음악 이야기] 독일은 왜 음악강국이며 문화 선진국인가[홍승찬 교수의 클래식 음악 이야기] 독일은 왜 음악강국이며 문화 선진국인가

Posted at 2018.01.13 16:19 | Posted in 이건음악회 Talk Talk/홍승찬교수의 클래식 톡톡


"이건음악회"를 함께 하고 있습니다. 이건음악회는 주식회사 이건산업과 이건창호가 해마다 열고 있습니다. 세계 최고의 역량을 가졌지만 국내에 미처 소개될 기회가 없었거나 잘 알려지지 않은 연주자들을 초청해서 서울과 부산, 인천을 비롯한 주요 도시들을 순회하며 펼치는 연주회 시리즈입니다. 연주회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옆에서 거들고, 또 연주회마다 해설을 맡아 연주자들과 함께 했던 시간들이 모두 뜻깊고 소중하지만 그 가운데 2012년에 있었던 23회 음악회는 특별히 더 깊고 짙은 감동으로 남아 있습니다.

 

그해는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금관악기 연주자 12명으로 이루어진 "베를린 필 브라스 앙상블"을 초청했습니다. 대게는 음악회를 시작하기 전, 이건의 박영주 회장이 초대하는 환영만찬이 있기 마련인데 그해는 왠일인지 독일 대사 관저에서 독일 대사가 주최하는 만찬에 오라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어떻게 된 일이냐고 물었더니 여느해처럼 이건 쪽에서 만찬을 준비하면서 독일대사를 초청했는데 오히려 그쪽에서 만찬을 열어 초대하고 싶다는 의사를 간곡히 전했다는 겁니다. 말하자면 그게 독일 정부를 대신하는 그들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이니 맡은 바 책임과 의무를 다해도록 도와 달라는 뜻이었습니다.

 



성북동 산자락에 턱하니 걸터앉은 독일대사 관저는 자리부터 예사롭지 않았습니다. 서울에 이런 곳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주변에 우거진 수풀 하며 집 아래로 탁 터진 풍광이 넋을 잃을 정도로 아찔했습니다. 고즈넉한 집채는 그 둘레와 너무나도 잘 어우러져 있었고 무엇보다 그 모든 것을 품으려는 듯 가지런한 정원이 너무나 아름다웠습니다.

 

독일대사관 입구(출처 : http://m.blog.daum.net/jgkim21/14829717?categoryId=713430)


그날의 무대가 바로 그 정원이었습니다. 일찍 도착했더니 먼저 온 사람들이 정원에 서서 서로 인사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그중에는 오스트리아 대사도 있었는데 마치 이웃집에 마실들른 동네 사람처럼 수수한 차림에 넉넉한 몸가짐이었습니다. 독일 대사가 문밖으로 나와 모두를 반갑고 따뜻하게 맞아주었고 오스트리아 대사와는 마치 어린 시절부터 친구인 것처럼 스스럼 없는 농담을 주고받았습니다. 그리고 그는 정원 구석구석을 안내하며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를 설명해주었습니다. 그의 몸짓과 표정, 그리고 말투에는 그가 깃든 보금자리에 대한 애정과 자부심이 가득했고 어느 한 순간도 상대에 대한 존중 배려를 잊지 않았습니다.

 

정원을 다 돌아보고 집안으로 들어서자 그는 벽마다 걸려있는 그림을 히나 하나 빠짐없이 설명했습니다. 모두 이 시대를 대표할 만한 독일 화가들의 작품이었지만 더러 이제 막 주목받기 시작한 신진 작가들의 그림도 있었습니다. 그는 오히려 그런 작품을 소개할 때 더 많은 시간과 공을 들였고 그 모습은 마치 숙련된 영업사원이나 세련된 홍보사원을 보는 듯 능수능란했지만 시종일관 유머와 미소를 잃지 않는 여유를 보여주었습니다.

 

출처(https://m.blog.naver.com/PostList.nhn?blogId=teodora0)

그래서 알게 되었습니다. 대사 관저가 살려고 지은 집이 아니라 보여주려고 만든 집이라는 것을 말입니다. 그러니 겉만 번지르르 하게 짓지 말고 속속들이 자랑할 만한 것들로 꽉 채우고 잘 꾸며서 날마다 사람들을 불러 제대로, 또 부지런히 보여주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니 대사라는 직업이 참으로 힘들겠구나 짐작할 수 있었고 다른 나라에 가서 자신의 나라를 대표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렵고 또 중요한 일인지를 새삼 깨달았습니다. 그러려면 참으로 많은 것들을 속속들이 다 알아야 하겠구나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걸 다른 나라 말로 저렇게 쉽고 정확하게 전달하려면 또 얼마나 많은 땀과 수고가 있었을지 놀라울 뿐이었습니다.

 

출처(https://m.blog.naver.com/PostList.nhn?blogId=teodora0)

그러나 정작 이날의 감동은 다른 곳에 있었습니다. 집안 곳곳에 서두르다 미처 숨기지 못한 듯 쌓아둔 이삿짐이 눈에 띄었고 아무도 차마 그 정체를 물어보지 못하고 있을 때 마침내 그가 입을 열었습니다. 예정대로라면 지금 쯤 벌써 한국을 떠나 다른 나라에 부임했어야 하는데 갑자기 그 일정을 늦추었다고 했습니다. 베를린 필 브라스 앙상블이 한국에 온다는 소식을 듣고는 곧바로 독일 정부에 요청하여 이임 시기를 연기했지만 그게 겨우 며칠 뿐이라 어쩔 수 없이 미리 이삿짐을 싸두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그는 적지않게 수고스럽고 번거로울 수 밖에 없는 이 일이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담담했고 오히려 그의 표정에서는 미리 알았더라면 이 귀한 손님들을 보다 잘 준비해서 맞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마저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 자리에 초대받아 이 말을 들은 모두가 감동했지만 누구보다 가슴이 뭉클했던 이들은 다름 아닌 베를린 필 브라스 앙상블 연주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은 그들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음악으로 감사하는 마음을 전하고자 했고 그렇게 또 예기치 않았던 음악의 감동이 정원 가득 울려퍼졌습니다.


 

그날 그들이 뜨거운 마음으로 기꺼이 연주했던 음악이 누구의 무슨 곡인지 하나도 기억나지 않습니다. 그저 가슴이 벅차올라 눈시울이 붉어졌던 그 느낌만은 아직도 고스란히 살아있습니다. 그날 독일대사관에 걸려 있던 그림들은 물론 그림을 그렸다는 화가들의 이름도 전혀 생각나지 않습니다. 다만 그림 앞에서서 차근차근, 또박또박 설명을 하던 독일대사의 따뜻하고 부드러운 음성만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물론 그 많은 사람들 가운데 독일 대사의 얼굴과 이름만은 결코 잊을 수가 없습니다. 그의 이름은 한스 울리히 자이트 Hans Ulrich Seidt 입니다.

 

  1. 정성진
    아~ 브라스앙상블. 서로간에 악기의 소리조차 맞추기 어렵다는 금관악기들의 속삭임을 다음 이건음악회때 CD를 구입해 들어봐야 겠네요! 자기나라의 오케스트라 단원을 맞이하기 위해 이임을 늦추는 대사! 언젠가는 우리나라 대사들중에도 나오리라는 희망을 품어봅니다! 항상 마음에 남는 글 감사합니다.
  2. 비밀댓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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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8회 이건음악회 CD 제작 완료! - 스레텐스키 수도원 합창단을 추억하다제28회 이건음악회 CD 제작 완료! - 스레텐스키 수도원 합창단을 추억하다

Posted at 2017.12.22 16:22 | Posted in 이건음악회 Talk Talk/음악회 톡톡

  제28회 이건음악회 - 모스크바 스레텐스키 수도원 합창단의 공연이 끝나고 한 달이 좀 더 넘었습니다. 이건음악회가 끝나고 러시아로 돌아간 합창단은 2일 쉬고 바로 크램린궁에서 공연이 있었다고 합니다. 역시 대단한 합창단이네요!

  이건음악회와 멋진 팬들 그리고 좋은 공연장, 따뜻한 날씨(우리의 11월 날씨는 그들에게는 봄 날씨 정도였지요!) 맛있는 음식 등, 한국에 대한 좋은 기억을 가지고 갈 수 있어서 대단히 좋았다고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하고 갔습니다.  이건의 스텝들을 러시아로 데려가지 못하는 아쉬움도 전했고요.

  남성 24명이 반주 없이 노래를 한다는 사실을 어렴풋이 알고 오셨지만, 아카펠라로 미세하게 작은 소리부터 귀가 아플 정도의 큰 소리, 땅을 뚫을 것 같은 저음에서 마음을 울리는 고음까지... 그리고 지휘자의 절도있는 움직임... 많은 것들에 깊은 감명을 받으신 분들이 많았습니다.  아리랑을 노래할 때에는 많은 공연장 이곳 저곳에서 눈물을 훔치시는 분들도 많이 보았습니다. 감동적인 공연을 보여준 모스크바 스레텐스키 수도원 합창단에 다시 한번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그들은 떠났고, 우리는 남았습니다. 남겨진 우리가 그들의 목소리와 공연을 추억 할 수 있는 방법은 공연 실황CD 밖에 없겠지요. 국내 최고의 톤마이스터(소리 장인) 최진선생님께서 CD 제작 작업에 참여하셔서 보다 좋은 음반을 만들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해주셨습니다. 

  예술의전당에서 낮, 저녁 2회 공연 녹음을 통해 만들어지며, 실황 녹음이기 때문에 공식 음반과 비교하면 만족스럽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함께 하셨던 공연의 감동을 다시 느끼시기에는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음악회 후기 이벤트 기간에 응모해주신 많은 분들께 CD를 배송해드렸습니다. 큰 선물은 아니지만, 작은 감동을 나눌 수 있으면 좋겠다 생각하여 크리스마스 전에 보내드리는 것을 목표로 배송하였습니다. 보내주신 주소지로 등기 배달하였으니 확인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CD 받으신 분들은 감상 후기도 댓글 부탁드립니다. 준비 했던 이건의 스탭들에게 큰 도움이 됩니다. 


  CD 디자인은 아래와 같습니다. 

이번 28회 음악회 CD의 커버는 흰색입니다. 

비닐 포장을 뜯으면 위와 같은 형태가 나옵니다. 역대 음악회 포스터들도 보이고, 북렛이 삽입되어 있는 것이 보이네요.

 한번 더 펼치면, 3단으로 가운데와 우측에는 씨디가 숨겨져 있는 것이 살짝 보입니다. 

씨디는 자체의 모습의 위 사진과 동일 합니다. 


  28회 이건음악회 CD는 2장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실제 공연과 비슷하게, CD1에는 1부 프로그램이, CD2에는 2부와 앙콜이 들어가 있습니다.  CD를 들으면, 좋은 시간 보내시길 기원드립니다. 저도 음악을 들으며 추억하니 즐거웠던 기억들이 많이 떠오릅니다. 소중한 시간 보내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1. 강문규
    며칠전 집으로 배달된 cd를 당장 들어 보고 싶었으나 계속되는 송년회 모임 때문에 알콜에 젖은 상태로는 공연 당시의 감동을 제대로 느낄 수 없을 것 같아 참고 있다가 주말 아침 커피 한잔과 같이 눈을 감고 합창단의 모습을 떠 올리며 감상했습니다.
    혹시나 하며 기다리던 우편물을 개봉하자 깔끔한 케이스 안에는 흔히 시중에서 볼 수 없는 cd와 booklet, 시각적 구성은 많은 정성이 들어가 있음이 느껴졌습니다. 앙콜편 공연을 들으며 그날의 감동과 함께 성탄절 연휴를 따뜻하게 시작하기되어 행복합니다. 1부 공연은 참았다가 성탄절 아침에 들으려고 합니다. 이건 음악회 관계자님들께 진심 감사드리며 새해에도 건승하시고 복 많이 받으세요.
  2. 천병국
    이번 공연 신청이 잘못되어(물론 제 실수지만) 공연을 보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시디로라도 이건음악회의 순간을 공유하고 싶어 뒤 늦게나마 시디를 신청드립니다. 혹시라도 정말 혹시라도 보내주실 수 있으시다면 정말 감사드리겠습니다.ㅠㅠ 신청으로 이메일로 일단 해 보겠습니다.
  3. 정성진
    정성이 가득 가득 듬뿍 담긴 공연실황 음반 방금 받았습니다.
    설명까지 속지로 넣어주시고... 감동입니다.
    이건의 번창을 늘 기원하면서, 또한 음악회 업무를 담당하시는 여러분들~! 고맙습니다.
  4. Sophia 💜
    이건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품격#정성#고급#감동#완벽 등 입니다.

    Think Different
    뭐가 달라도 다릅니다.
    보내 주신 선물 정말 고맙습니다.
    운전할 때 마다
    그 날의 감성을 떠올리며 감상합니다.

    이건의 빛나는 선물에 보답하는 건
    열심히 살면서
    내년 음악회에
    또 참석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빛나는 그 날을 기다리며~~~ ❤️
  5. 하늘아지
    예술의 전당에서 집사람과 함께 잘 들었습니다.
    당일 녹음한다고 음악 끝나고 박수는 조금 늦게 쳐 달라는 부탁때문에 박수 소리가 작았었죠.

    죄송한데, CD신청을 깜빡했습니다.
    지금이라도 추가 신청을 할 수 있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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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안녕하세요. 이근영선생님. eagonblog@gmail.com으로 받으실 곳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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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01.15 13:34 신고 [Edit/Del]
      김정염선생님 안녕하세요. 음악회 cd 이벤트는 공연의 감동과 후기를 남기시면 추첨을 통해 음악회 CD를 배송해드리는 이벤트입니다. 공연 후기가 약했던 것은 아닐까요? ^^ 멋진 후기로 재도전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11. 비밀댓글입니다
    • 2018.01.15 13:35 신고 [Edit/Del]
      안녕하세요? 최영진선생님. 1차 배송 때 발송을 드린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12월 중순) 혹시 주변 우편물 확인 다시 한번 부탁드립니다. 만약 찾으실 수 없다면 주소와 연락처를 다시 eagonblog@gmail.com 으로 보내주세요! 감사합니다.
  12. 비밀댓글입니다
  13. 신창선
    미쳐 신청을 못했는데 늦게라도 cd를 받을수는 없을까요? 꼭 부탁 드립니다...
    주소는 서울시 강남구 역삼2동 역삼e편한세상 107동 1301호 입니다. 신창선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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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승찬 교수의 클래식 음악 이야기] 불굴의 의지로 절망을 이겨낸 음악사의 위대한 걸작[홍승찬 교수의 클래식 음악 이야기] 불굴의 의지로 절망을 이겨낸 음악사의 위대한 걸작

Posted at 2017.12.15 16:06 | Posted in 이건음악회 Talk Talk/홍승찬교수의 클래식 톡톡


사람이 사람에게 저지르는 일들 가운데 전쟁보다 더 비참한 일은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 끔찍한 일을 겪고도 주저앉거나 쓰러지지 않고 꿋꿋하게 견디고 일어섰는가 하면 그 과정에서 참으로 놀라운 결실과 위대한 업적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음악가들 또한 예외가 아니었으며 그 가운데 작곡가 모리스 라벨과 피아니스트 파울 비트겐슈타인의 이야기도 빼놓을 수가 없습니다.


출처 : 모리스 라벨 - 나무위키


라벨이라면 드뷔시와 더불어 프랑스 인상주의 악파를 대표하는 작곡가로 우리에게 널리 알려져 있지만 비트겐슈타인을 잘 아는 시람들은 그다지 많지 않을 겁니다. 비트겐슈타인이라면 오히려 20세기 분석철학의 대가로 알고 있는 경우가 훨씬 더 많을 텐데 사실 피아니스트 파울 비트겐슈타인은 철학자 루드비히 비트겐슈타인의 형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의 집안은 오스트리아 제국에서 손꼽히는 부호였을 뿐만 아니라 예술가의 후원에도 누구보다 앞장섰던 명문가였습니다친가쪽은 유태계였지만 개신교로 개종했고 외가는 대대로 카톨릭 집안이었으며 아버지 카를은 철강 업계의 거물이었고 어머니 레오폴디네는 피아니스트이자 예술 후원자였습니다


출처 : 루트비히 요제프 요한 비트겐슈타인 - 나무위키


브람스와 클라라 슈만, 말러와 리하르트 슈트라우스는 물론 브루노 발터에 이르기까지 당대의 음악가들이 그의 집안을 드나들었고 덕분에 피아노에 재능을 보였던 어린 파울은  이들과 나란히 앉아 피아노를 연주하는 기회가 많았습니다. 그의 부모는 쇤베르크와 카잘스 등 음악가를 주로 후원했지만 미술에도 관심이 많아 클림트가 그의 여동생 마르가리테의 초상화를 그렸는가 하면 막내동생 루드비히는 부모에게 받은 유산을 예술가 후원금으로 내놓아 작가 라이너 마리아 릴케가 그 혜택을 받기도 했습니다.

1887511일 비인에서 태어난 파울 비트겐슈타인은 폴란드의 거장 테오도르 레세트츠키에게 피아노를 배웠고 1913년에 성공적인 데뷔 연주회를 치르며 사람들의 주목을 받았지만 이듬해 발발한 제 1차 세계대전은 전도유망한 이 젊은 피아니스트의 장래를 무참히 짓밟았습니다. 기병대 소위로 입대한 그는 폴란드에서 정찰 임무를 수행하다 부상을 당하는 바람에 오른팔을 절단하는 수술을 받아야 했던 것입니다. 전투에서의 공로로 훈장까지 받았지만 깨져버린 그의 꿈과 그로 말미암은 마음의 상처는 결코 아물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출처 : http://www.bfmi.at/documentary_all_in_one_hand_the_pianist_paul_wittgenstein.html

파울 비트겐슈타인


그러나 비트겐슈타인의 초인적인 의지와 불굴의 집념은  최악의 상황에서 그를 다시 일으켜세웠습니다. 오스트리아의 패배로 시베리아의 포로수용소에 갇힌 그는 고민을 거듭한 끝에 왼손만으로 피아니스트의 길을 계속 걷기로 마음을 굳혔고 끊임없이 나무 상자를 손가락으로 두드리며 감각을 잃지 않으려 안간힘을 다했습니다. 마침 포로들의 처우를 감시하던 중립국 덴마크 외교관이 이런 그의 모습을 보고 크게 감동하여 수용소에 있으면서 피아노 연습을 계속 할 수 있도록 배려하였습니다.




전쟁이 끝나고 비인으로 돌아간 비트겐슈타인은 가장 먼저 그의 스승 요제프 라보르와 함께 기존의 피아노 작품을 왼손만으로 칠 수 있도록 편곡하는 작업에 매달렸습니다. 그렇게 만든 곡으로 연주회를 열어 점점 알려지고 호응을 받게 되자 그는 유명 작곡가들에게 왼손만으로 연주할 수 있는 곡을 위촉하기 시작했습니다. 벤자민 브리튼과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파울 힌데미트와 에리히 볼프강 코른골트 등이 그를 위해 작품을 썼고 세르게이 프로코피에프와 모리스 라벨은 왼손을 위한 피아노 협주곡을 작곡했는데 이 가운데 특히 라벨의 협주곡이 가장 두드러졌고 비트겐슈타인의 이름 또한 이 곡으로 말미암아 널리, 또 오래도록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게 되었습니다

 

출처 : https://crosseyedpianist.com/tag/paul-wittgenstein/

Paul Wittgenstein


라벨의 협주곡이 오늘날까지도 깊은 공감을 얻으며 널리 사랑받는 까닭은 아무래도 그 스스로 비트겐슈타인과 마찬가지로 제 1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경험이 있어 다른 누구보다 그의 느낌과 생각에 가까이 다가갈 수 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몸이 약해 가까스로 입대한 라벨은 비록 총을 들고 전투에 나서진 않았지만 운전병으로 전장을 누비며 부상병을 후송하는 임무를 수행하였기에 생사의 갈림길에서 신음하고 절규하는 수많은 이들의 고통과 공포를 누구보다 가까이서 지켜보았습니다. 그 이전의 어떤 전쟁과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참혹했던 1차 세계대전의 참상을 몸소 체험한 충격 때문인지 종전 이후 라벨이 내놓은 작품들은 이전과는 확연히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출처 : https://www.icareifyoulisten.com/2013/03/french-composers-names-maurice-ravel/

모리스 라벨


187537일 스페인과 인접한 프랑스의 소도시 시부르(Ciboure)에서 태어난 모리스 라벨의 아버지는 철도 기사로 프랑스계 스위스인이었고 어머니는 바스크 혈통의 스페인계였습니다. 태어나자 마자 파리로 이사를 가서 줄곧 그곳에서 자라고 공부했던 라벨은 상당한 수준의 음악애호가였던 아버지의 뜻을 따라 작곡가가 되기 위해 어려서부터 피아노와 화성을 배웠습니다. 열네살에  파리 음악원 피아노 전공 예비과정에 들어가 본격적인 공부를 시작하였고 2년 후에는 정규과정에 들어가 피아노와 화성을 배웠으며 포레에게서 작곡을 사사하였습니다. 재학 당시 작곡한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로 벌써부터 악단의 주목을 받았고 피아노곡 "물의 유희"와 현악 사중주곡으로 일찌감치 그 이름을 드높였습니다.

비록 프랑스의 작곡가 지망생이면 누구나 동경하는 "로마대상"에 여러 차례 응모하여 우승하는 데는 실패했지만 오히려 그 결과가 부당하다는 여론이 크게 일어나 음악원 원장이 사임하는 사태에까지 이르게 되면서 라벨의 명성과 위상은 더욱 더 확고해졌습니다. 전쟁이 발발하기 직전 디아길레프가 위촉한 발레곡 "다프니스와 클로에"를 발표하여 그것이 그의 정점인가 싶었지만 피아노 모음곡 "쿠프랭의 무덤"과 관현악곡 "라 발스", 그리고 라벨의 상징과도 같은 "볼레로"는 물론 최후의 역작이라 할 수 있는 "왼손을 위한 피아노 협주곡""피아노 협주곡"이 모두 전장에서 돌아와서 죽기 전까지 내놓은 그의 대표작들입니다.


출처 : http://totallyhistory.com/maurice-ravel/


전쟁의 경험과 기억이 라벨에게 어떤 영향을 얼마나 미쳤는지를 가늠할 순 없지만 그 이전의 작품들과 이후의 작품들을 비교해 보면 확실하게 달라진 것은 틀림이 없습니다. 어떻게든 감정의 개입을 자제하여 정교하고 치밀하게 짠 틀 속에 가지런히 두려는 의지는 전과 다름 없지만 촘촘한 틀 사이로 뭔가 터질듯이 삐져 나오는 싶더니 더러는 그 속이 휑하니 비어서 가슴이 시리고 허전합니다. 그러더니 끝내 그 틀마저 비틀어서 쥐어짜는 듯한 아픔이 살갗으로 스며들어 온몸이 오그라듭니다.

이런 느낌은 달랑 한 악장으로 이루어졌지만 왼손을 위한 피아노 협주곡에서 가장 잘 드러납니다. 콘트라베이스에 실린 콘트라바순의 소리는 마치 심해를 미끌어지듯  헤엄치는 고래의 울음인 듯 끝없이 가라앉아 너무나 깊고 어두운가 하면 찢어질 듯 날카로운 비명과 조각난 기억과 감정이 여기저기 흩어져 아스라이 사라지기도 합니다. 그리고 마침내 피아노의 카덴차가 나타나 흐느끼다 참지 못하고 울음을 터뜨리고 맙니다


Joseph-Maurice Ravel - Bolero


라벨은, 또 비트겐슈타인은 그렇게 전쟁의 상처를 어루만지며 삶의 고통을 견디고 이겨냈던 겁니다. "가장 어렵고도 본질적인 것은 삶을 사랑하는 것이다. 고난 중에도 삶을 사랑해야 한다. 왜냐하면 삶은 모든 것이며 또한 신이기 때문이며, 삶을 사랑하는 것은 신을 사랑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톨스토이의 말입니다. 그래서 단테는 "신곡"에서 살아서 지옥을 건넌 자만이 죽어서 천국에 들 수 있다고 했던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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