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승찬 교수의 클래식 음악 이야기] 독일은 왜 음악강국이며 문화 선진국인가[홍승찬 교수의 클래식 음악 이야기] 독일은 왜 음악강국이며 문화 선진국인가

Posted at 2018.01.13 16:19 | Posted in 이건음악회 Talk Talk/홍승찬교수의 클래식 톡톡


"이건음악회"를 함께 하고 있습니다. 이건음악회는 주식회사 이건산업과 이건창호가 해마다 열고 있습니다. 세계 최고의 역량을 가졌지만 국내에 미처 소개될 기회가 없었거나 잘 알려지지 않은 연주자들을 초청해서 서울과 부산, 인천을 비롯한 주요 도시들을 순회하며 펼치는 연주회 시리즈입니다. 연주회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옆에서 거들고, 또 연주회마다 해설을 맡아 연주자들과 함께 했던 시간들이 모두 뜻깊고 소중하지만 그 가운데 2012년에 있었던 23회 음악회는 특별히 더 깊고 짙은 감동으로 남아 있습니다.

 

그해는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금관악기 연주자 12명으로 이루어진 "베를린 필 브라스 앙상블"을 초청했습니다. 대게는 음악회를 시작하기 전, 이건의 박영주 회장이 초대하는 환영만찬이 있기 마련인데 그해는 왠일인지 독일 대사 관저에서 독일 대사가 주최하는 만찬에 오라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어떻게 된 일이냐고 물었더니 여느해처럼 이건 쪽에서 만찬을 준비하면서 독일대사를 초청했는데 오히려 그쪽에서 만찬을 열어 초대하고 싶다는 의사를 간곡히 전했다는 겁니다. 말하자면 그게 독일 정부를 대신하는 그들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이니 맡은 바 책임과 의무를 다해도록 도와 달라는 뜻이었습니다.

 



성북동 산자락에 턱하니 걸터앉은 독일대사 관저는 자리부터 예사롭지 않았습니다. 서울에 이런 곳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주변에 우거진 수풀 하며 집 아래로 탁 터진 풍광이 넋을 잃을 정도로 아찔했습니다. 고즈넉한 집채는 그 둘레와 너무나도 잘 어우러져 있었고 무엇보다 그 모든 것을 품으려는 듯 가지런한 정원이 너무나 아름다웠습니다.

 

독일대사관 입구(출처 : http://m.blog.daum.net/jgkim21/14829717?categoryId=713430)


그날의 무대가 바로 그 정원이었습니다. 일찍 도착했더니 먼저 온 사람들이 정원에 서서 서로 인사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그중에는 오스트리아 대사도 있었는데 마치 이웃집에 마실들른 동네 사람처럼 수수한 차림에 넉넉한 몸가짐이었습니다. 독일 대사가 문밖으로 나와 모두를 반갑고 따뜻하게 맞아주었고 오스트리아 대사와는 마치 어린 시절부터 친구인 것처럼 스스럼 없는 농담을 주고받았습니다. 그리고 그는 정원 구석구석을 안내하며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를 설명해주었습니다. 그의 몸짓과 표정, 그리고 말투에는 그가 깃든 보금자리에 대한 애정과 자부심이 가득했고 어느 한 순간도 상대에 대한 존중 배려를 잊지 않았습니다.

 

정원을 다 돌아보고 집안으로 들어서자 그는 벽마다 걸려있는 그림을 히나 하나 빠짐없이 설명했습니다. 모두 이 시대를 대표할 만한 독일 화가들의 작품이었지만 더러 이제 막 주목받기 시작한 신진 작가들의 그림도 있었습니다. 그는 오히려 그런 작품을 소개할 때 더 많은 시간과 공을 들였고 그 모습은 마치 숙련된 영업사원이나 세련된 홍보사원을 보는 듯 능수능란했지만 시종일관 유머와 미소를 잃지 않는 여유를 보여주었습니다.

 

출처(https://m.blog.naver.com/PostList.nhn?blogId=teodora0)

그래서 알게 되었습니다. 대사 관저가 살려고 지은 집이 아니라 보여주려고 만든 집이라는 것을 말입니다. 그러니 겉만 번지르르 하게 짓지 말고 속속들이 자랑할 만한 것들로 꽉 채우고 잘 꾸며서 날마다 사람들을 불러 제대로, 또 부지런히 보여주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니 대사라는 직업이 참으로 힘들겠구나 짐작할 수 있었고 다른 나라에 가서 자신의 나라를 대표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렵고 또 중요한 일인지를 새삼 깨달았습니다. 그러려면 참으로 많은 것들을 속속들이 다 알아야 하겠구나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걸 다른 나라 말로 저렇게 쉽고 정확하게 전달하려면 또 얼마나 많은 땀과 수고가 있었을지 놀라울 뿐이었습니다.

 

출처(https://m.blog.naver.com/PostList.nhn?blogId=teodora0)

그러나 정작 이날의 감동은 다른 곳에 있었습니다. 집안 곳곳에 서두르다 미처 숨기지 못한 듯 쌓아둔 이삿짐이 눈에 띄었고 아무도 차마 그 정체를 물어보지 못하고 있을 때 마침내 그가 입을 열었습니다. 예정대로라면 지금 쯤 벌써 한국을 떠나 다른 나라에 부임했어야 하는데 갑자기 그 일정을 늦추었다고 했습니다. 베를린 필 브라스 앙상블이 한국에 온다는 소식을 듣고는 곧바로 독일 정부에 요청하여 이임 시기를 연기했지만 그게 겨우 며칠 뿐이라 어쩔 수 없이 미리 이삿짐을 싸두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그는 적지않게 수고스럽고 번거로울 수 밖에 없는 이 일이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담담했고 오히려 그의 표정에서는 미리 알았더라면 이 귀한 손님들을 보다 잘 준비해서 맞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마저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 자리에 초대받아 이 말을 들은 모두가 감동했지만 누구보다 가슴이 뭉클했던 이들은 다름 아닌 베를린 필 브라스 앙상블 연주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은 그들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음악으로 감사하는 마음을 전하고자 했고 그렇게 또 예기치 않았던 음악의 감동이 정원 가득 울려퍼졌습니다.


 

그날 그들이 뜨거운 마음으로 기꺼이 연주했던 음악이 누구의 무슨 곡인지 하나도 기억나지 않습니다. 그저 가슴이 벅차올라 눈시울이 붉어졌던 그 느낌만은 아직도 고스란히 살아있습니다. 그날 독일대사관에 걸려 있던 그림들은 물론 그림을 그렸다는 화가들의 이름도 전혀 생각나지 않습니다. 다만 그림 앞에서서 차근차근, 또박또박 설명을 하던 독일대사의 따뜻하고 부드러운 음성만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물론 그 많은 사람들 가운데 독일 대사의 얼굴과 이름만은 결코 잊을 수가 없습니다. 그의 이름은 한스 울리히 자이트 Hans Ulrich Seidt 입니다.

 

  1. 정성진
    아~ 브라스앙상블. 서로간에 악기의 소리조차 맞추기 어렵다는 금관악기들의 속삭임을 다음 이건음악회때 CD를 구입해 들어봐야 겠네요! 자기나라의 오케스트라 단원을 맞이하기 위해 이임을 늦추는 대사! 언젠가는 우리나라 대사들중에도 나오리라는 희망을 품어봅니다! 항상 마음에 남는 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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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8회 이건음악회 CD 제작 완료! - 스레텐스키 수도원 합창단을 추억하다제28회 이건음악회 CD 제작 완료! - 스레텐스키 수도원 합창단을 추억하다

Posted at 2017.12.22 16:22 | Posted in 이건음악회 Talk Talk/음악회 톡톡

  제28회 이건음악회 - 모스크바 스레텐스키 수도원 합창단의 공연이 끝나고 한 달이 좀 더 넘었습니다. 이건음악회가 끝나고 러시아로 돌아간 합창단은 2일 쉬고 바로 크램린궁에서 공연이 있었다고 합니다. 역시 대단한 합창단이네요!

  이건음악회와 멋진 팬들 그리고 좋은 공연장, 따뜻한 날씨(우리의 11월 날씨는 그들에게는 봄 날씨 정도였지요!) 맛있는 음식 등, 한국에 대한 좋은 기억을 가지고 갈 수 있어서 대단히 좋았다고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하고 갔습니다.  이건의 스텝들을 러시아로 데려가지 못하는 아쉬움도 전했고요.

  남성 24명이 반주 없이 노래를 한다는 사실을 어렴풋이 알고 오셨지만, 아카펠라로 미세하게 작은 소리부터 귀가 아플 정도의 큰 소리, 땅을 뚫을 것 같은 저음에서 마음을 울리는 고음까지... 그리고 지휘자의 절도있는 움직임... 많은 것들에 깊은 감명을 받으신 분들이 많았습니다.  아리랑을 노래할 때에는 많은 공연장 이곳 저곳에서 눈물을 훔치시는 분들도 많이 보았습니다. 감동적인 공연을 보여준 모스크바 스레텐스키 수도원 합창단에 다시 한번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그들은 떠났고, 우리는 남았습니다. 남겨진 우리가 그들의 목소리와 공연을 추억 할 수 있는 방법은 공연 실황CD 밖에 없겠지요. 국내 최고의 톤마이스터(소리 장인) 최진선생님께서 CD 제작 작업에 참여하셔서 보다 좋은 음반을 만들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해주셨습니다. 

  예술의전당에서 낮, 저녁 2회 공연 녹음을 통해 만들어지며, 실황 녹음이기 때문에 공식 음반과 비교하면 만족스럽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함께 하셨던 공연의 감동을 다시 느끼시기에는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음악회 후기 이벤트 기간에 응모해주신 많은 분들께 CD를 배송해드렸습니다. 큰 선물은 아니지만, 작은 감동을 나눌 수 있으면 좋겠다 생각하여 크리스마스 전에 보내드리는 것을 목표로 배송하였습니다. 보내주신 주소지로 등기 배달하였으니 확인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CD 받으신 분들은 감상 후기도 댓글 부탁드립니다. 준비 했던 이건의 스탭들에게 큰 도움이 됩니다. 


  CD 디자인은 아래와 같습니다. 

이번 28회 음악회 CD의 커버는 흰색입니다. 

비닐 포장을 뜯으면 위와 같은 형태가 나옵니다. 역대 음악회 포스터들도 보이고, 북렛이 삽입되어 있는 것이 보이네요.

 한번 더 펼치면, 3단으로 가운데와 우측에는 씨디가 숨겨져 있는 것이 살짝 보입니다. 

씨디는 자체의 모습의 위 사진과 동일 합니다. 


  28회 이건음악회 CD는 2장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실제 공연과 비슷하게, CD1에는 1부 프로그램이, CD2에는 2부와 앙콜이 들어가 있습니다.  CD를 들으면, 좋은 시간 보내시길 기원드립니다. 저도 음악을 들으며 추억하니 즐거웠던 기억들이 많이 떠오릅니다. 소중한 시간 보내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1. 강문규
    며칠전 집으로 배달된 cd를 당장 들어 보고 싶었으나 계속되는 송년회 모임 때문에 알콜에 젖은 상태로는 공연 당시의 감동을 제대로 느낄 수 없을 것 같아 참고 있다가 주말 아침 커피 한잔과 같이 눈을 감고 합창단의 모습을 떠 올리며 감상했습니다.
    혹시나 하며 기다리던 우편물을 개봉하자 깔끔한 케이스 안에는 흔히 시중에서 볼 수 없는 cd와 booklet, 시각적 구성은 많은 정성이 들어가 있음이 느껴졌습니다. 앙콜편 공연을 들으며 그날의 감동과 함께 성탄절 연휴를 따뜻하게 시작하기되어 행복합니다. 1부 공연은 참았다가 성탄절 아침에 들으려고 합니다. 이건 음악회 관계자님들께 진심 감사드리며 새해에도 건승하시고 복 많이 받으세요.
  2. 천병국
    이번 공연 신청이 잘못되어(물론 제 실수지만) 공연을 보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시디로라도 이건음악회의 순간을 공유하고 싶어 뒤 늦게나마 시디를 신청드립니다. 혹시라도 정말 혹시라도 보내주실 수 있으시다면 정말 감사드리겠습니다.ㅠㅠ 신청으로 이메일로 일단 해 보겠습니다.
  3. 정성진
    정성이 가득 가득 듬뿍 담긴 공연실황 음반 방금 받았습니다.
    설명까지 속지로 넣어주시고... 감동입니다.
    이건의 번창을 늘 기원하면서, 또한 음악회 업무를 담당하시는 여러분들~! 고맙습니다.
  4. Sophia 💜
    이건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품격#정성#고급#감동#완벽 등 입니다.

    Think Different
    뭐가 달라도 다릅니다.
    보내 주신 선물 정말 고맙습니다.
    운전할 때 마다
    그 날의 감성을 떠올리며 감상합니다.

    이건의 빛나는 선물에 보답하는 건
    열심히 살면서
    내년 음악회에
    또 참석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빛나는 그 날을 기다리며~~~ ❤️
  5. 하늘아지
    예술의 전당에서 집사람과 함께 잘 들었습니다.
    당일 녹음한다고 음악 끝나고 박수는 조금 늦게 쳐 달라는 부탁때문에 박수 소리가 작았었죠.

    죄송한데, CD신청을 깜빡했습니다.
    지금이라도 추가 신청을 할 수 있는지요?
  6. 비밀댓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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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비밀댓글입니다
  9. 안녕하세요. 이근영선생님. eagonblog@gmail.com으로 받으실 곳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10. 비밀댓글입니다
    • 2018.01.15 13:34 신고 [Edit/Del]
      김정염선생님 안녕하세요. 음악회 cd 이벤트는 공연의 감동과 후기를 남기시면 추첨을 통해 음악회 CD를 배송해드리는 이벤트입니다. 공연 후기가 약했던 것은 아닐까요? ^^ 멋진 후기로 재도전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11. 비밀댓글입니다
    • 2018.01.15 13:35 신고 [Edit/Del]
      안녕하세요? 최영진선생님. 1차 배송 때 발송을 드린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12월 중순) 혹시 주변 우편물 확인 다시 한번 부탁드립니다. 만약 찾으실 수 없다면 주소와 연락처를 다시 eagonblog@gmail.com 으로 보내주세요! 감사합니다.
  12. 비밀댓글입니다
  13. 신창선
    미쳐 신청을 못했는데 늦게라도 cd를 받을수는 없을까요? 꼭 부탁 드립니다...
    주소는 서울시 강남구 역삼2동 역삼e편한세상 107동 1301호 입니다. 신창선 드림
  14. 비밀댓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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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승찬 교수의 클래식 음악 이야기] 불굴의 의지로 절망을 이겨낸 음악사의 위대한 걸작[홍승찬 교수의 클래식 음악 이야기] 불굴의 의지로 절망을 이겨낸 음악사의 위대한 걸작

Posted at 2017.12.15 16:06 | Posted in 이건음악회 Talk Talk/홍승찬교수의 클래식 톡톡


사람이 사람에게 저지르는 일들 가운데 전쟁보다 더 비참한 일은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 끔찍한 일을 겪고도 주저앉거나 쓰러지지 않고 꿋꿋하게 견디고 일어섰는가 하면 그 과정에서 참으로 놀라운 결실과 위대한 업적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음악가들 또한 예외가 아니었으며 그 가운데 작곡가 모리스 라벨과 피아니스트 파울 비트겐슈타인의 이야기도 빼놓을 수가 없습니다.


출처 : 모리스 라벨 - 나무위키


라벨이라면 드뷔시와 더불어 프랑스 인상주의 악파를 대표하는 작곡가로 우리에게 널리 알려져 있지만 비트겐슈타인을 잘 아는 시람들은 그다지 많지 않을 겁니다. 비트겐슈타인이라면 오히려 20세기 분석철학의 대가로 알고 있는 경우가 훨씬 더 많을 텐데 사실 피아니스트 파울 비트겐슈타인은 철학자 루드비히 비트겐슈타인의 형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의 집안은 오스트리아 제국에서 손꼽히는 부호였을 뿐만 아니라 예술가의 후원에도 누구보다 앞장섰던 명문가였습니다친가쪽은 유태계였지만 개신교로 개종했고 외가는 대대로 카톨릭 집안이었으며 아버지 카를은 철강 업계의 거물이었고 어머니 레오폴디네는 피아니스트이자 예술 후원자였습니다


출처 : 루트비히 요제프 요한 비트겐슈타인 - 나무위키


브람스와 클라라 슈만, 말러와 리하르트 슈트라우스는 물론 브루노 발터에 이르기까지 당대의 음악가들이 그의 집안을 드나들었고 덕분에 피아노에 재능을 보였던 어린 파울은  이들과 나란히 앉아 피아노를 연주하는 기회가 많았습니다. 그의 부모는 쇤베르크와 카잘스 등 음악가를 주로 후원했지만 미술에도 관심이 많아 클림트가 그의 여동생 마르가리테의 초상화를 그렸는가 하면 막내동생 루드비히는 부모에게 받은 유산을 예술가 후원금으로 내놓아 작가 라이너 마리아 릴케가 그 혜택을 받기도 했습니다.

1887511일 비인에서 태어난 파울 비트겐슈타인은 폴란드의 거장 테오도르 레세트츠키에게 피아노를 배웠고 1913년에 성공적인 데뷔 연주회를 치르며 사람들의 주목을 받았지만 이듬해 발발한 제 1차 세계대전은 전도유망한 이 젊은 피아니스트의 장래를 무참히 짓밟았습니다. 기병대 소위로 입대한 그는 폴란드에서 정찰 임무를 수행하다 부상을 당하는 바람에 오른팔을 절단하는 수술을 받아야 했던 것입니다. 전투에서의 공로로 훈장까지 받았지만 깨져버린 그의 꿈과 그로 말미암은 마음의 상처는 결코 아물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출처 : http://www.bfmi.at/documentary_all_in_one_hand_the_pianist_paul_wittgenstein.html

파울 비트겐슈타인


그러나 비트겐슈타인의 초인적인 의지와 불굴의 집념은  최악의 상황에서 그를 다시 일으켜세웠습니다. 오스트리아의 패배로 시베리아의 포로수용소에 갇힌 그는 고민을 거듭한 끝에 왼손만으로 피아니스트의 길을 계속 걷기로 마음을 굳혔고 끊임없이 나무 상자를 손가락으로 두드리며 감각을 잃지 않으려 안간힘을 다했습니다. 마침 포로들의 처우를 감시하던 중립국 덴마크 외교관이 이런 그의 모습을 보고 크게 감동하여 수용소에 있으면서 피아노 연습을 계속 할 수 있도록 배려하였습니다.




전쟁이 끝나고 비인으로 돌아간 비트겐슈타인은 가장 먼저 그의 스승 요제프 라보르와 함께 기존의 피아노 작품을 왼손만으로 칠 수 있도록 편곡하는 작업에 매달렸습니다. 그렇게 만든 곡으로 연주회를 열어 점점 알려지고 호응을 받게 되자 그는 유명 작곡가들에게 왼손만으로 연주할 수 있는 곡을 위촉하기 시작했습니다. 벤자민 브리튼과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파울 힌데미트와 에리히 볼프강 코른골트 등이 그를 위해 작품을 썼고 세르게이 프로코피에프와 모리스 라벨은 왼손을 위한 피아노 협주곡을 작곡했는데 이 가운데 특히 라벨의 협주곡이 가장 두드러졌고 비트겐슈타인의 이름 또한 이 곡으로 말미암아 널리, 또 오래도록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게 되었습니다

 

출처 : https://crosseyedpianist.com/tag/paul-wittgenstein/

Paul Wittgenstein


라벨의 협주곡이 오늘날까지도 깊은 공감을 얻으며 널리 사랑받는 까닭은 아무래도 그 스스로 비트겐슈타인과 마찬가지로 제 1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경험이 있어 다른 누구보다 그의 느낌과 생각에 가까이 다가갈 수 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몸이 약해 가까스로 입대한 라벨은 비록 총을 들고 전투에 나서진 않았지만 운전병으로 전장을 누비며 부상병을 후송하는 임무를 수행하였기에 생사의 갈림길에서 신음하고 절규하는 수많은 이들의 고통과 공포를 누구보다 가까이서 지켜보았습니다. 그 이전의 어떤 전쟁과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참혹했던 1차 세계대전의 참상을 몸소 체험한 충격 때문인지 종전 이후 라벨이 내놓은 작품들은 이전과는 확연히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출처 : https://www.icareifyoulisten.com/2013/03/french-composers-names-maurice-ravel/

모리스 라벨


187537일 스페인과 인접한 프랑스의 소도시 시부르(Ciboure)에서 태어난 모리스 라벨의 아버지는 철도 기사로 프랑스계 스위스인이었고 어머니는 바스크 혈통의 스페인계였습니다. 태어나자 마자 파리로 이사를 가서 줄곧 그곳에서 자라고 공부했던 라벨은 상당한 수준의 음악애호가였던 아버지의 뜻을 따라 작곡가가 되기 위해 어려서부터 피아노와 화성을 배웠습니다. 열네살에  파리 음악원 피아노 전공 예비과정에 들어가 본격적인 공부를 시작하였고 2년 후에는 정규과정에 들어가 피아노와 화성을 배웠으며 포레에게서 작곡을 사사하였습니다. 재학 당시 작곡한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로 벌써부터 악단의 주목을 받았고 피아노곡 "물의 유희"와 현악 사중주곡으로 일찌감치 그 이름을 드높였습니다.

비록 프랑스의 작곡가 지망생이면 누구나 동경하는 "로마대상"에 여러 차례 응모하여 우승하는 데는 실패했지만 오히려 그 결과가 부당하다는 여론이 크게 일어나 음악원 원장이 사임하는 사태에까지 이르게 되면서 라벨의 명성과 위상은 더욱 더 확고해졌습니다. 전쟁이 발발하기 직전 디아길레프가 위촉한 발레곡 "다프니스와 클로에"를 발표하여 그것이 그의 정점인가 싶었지만 피아노 모음곡 "쿠프랭의 무덤"과 관현악곡 "라 발스", 그리고 라벨의 상징과도 같은 "볼레로"는 물론 최후의 역작이라 할 수 있는 "왼손을 위한 피아노 협주곡""피아노 협주곡"이 모두 전장에서 돌아와서 죽기 전까지 내놓은 그의 대표작들입니다.


출처 : http://totallyhistory.com/maurice-ravel/


전쟁의 경험과 기억이 라벨에게 어떤 영향을 얼마나 미쳤는지를 가늠할 순 없지만 그 이전의 작품들과 이후의 작품들을 비교해 보면 확실하게 달라진 것은 틀림이 없습니다. 어떻게든 감정의 개입을 자제하여 정교하고 치밀하게 짠 틀 속에 가지런히 두려는 의지는 전과 다름 없지만 촘촘한 틀 사이로 뭔가 터질듯이 삐져 나오는 싶더니 더러는 그 속이 휑하니 비어서 가슴이 시리고 허전합니다. 그러더니 끝내 그 틀마저 비틀어서 쥐어짜는 듯한 아픔이 살갗으로 스며들어 온몸이 오그라듭니다.

이런 느낌은 달랑 한 악장으로 이루어졌지만 왼손을 위한 피아노 협주곡에서 가장 잘 드러납니다. 콘트라베이스에 실린 콘트라바순의 소리는 마치 심해를 미끌어지듯  헤엄치는 고래의 울음인 듯 끝없이 가라앉아 너무나 깊고 어두운가 하면 찢어질 듯 날카로운 비명과 조각난 기억과 감정이 여기저기 흩어져 아스라이 사라지기도 합니다. 그리고 마침내 피아노의 카덴차가 나타나 흐느끼다 참지 못하고 울음을 터뜨리고 맙니다


Joseph-Maurice Ravel - Bolero


라벨은, 또 비트겐슈타인은 그렇게 전쟁의 상처를 어루만지며 삶의 고통을 견디고 이겨냈던 겁니다. "가장 어렵고도 본질적인 것은 삶을 사랑하는 것이다. 고난 중에도 삶을 사랑해야 한다. 왜냐하면 삶은 모든 것이며 또한 신이기 때문이며, 삶을 사랑하는 것은 신을 사랑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톨스토이의 말입니다. 그래서 단테는 "신곡"에서 살아서 지옥을 건넌 자만이 죽어서 천국에 들 수 있다고 했던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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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승찬 교수의 클래식 음악 이야기] 다름을 존중하고 공존하고자 했던 바로크 음악의 정신[홍승찬 교수의 클래식 음악 이야기] 다름을 존중하고 공존하고자 했던 바로크 음악의 정신

Posted at 2017.12.08 10:16 | Posted in 이건음악회 Talk Talk/홍승찬교수의 클래식 톡톡


르네상스 시대 이후 새로운 예술의 흐름을 일컫는 "바로크"는 일그러진 진주라는 뜻의 포르투갈아에서 비롯되었다고 합니다. 잘못된 추론을 뜻하는 라틴어나 속임수를 뜻하는 이탈리아어에서 비롯되었다는 말도 있지만 그 어느 것이든 썩 좋은 뜻이 아님은 틀림없습니다. 원래는 그 시대 사람들이 당대의 건축물을 일컸던 말이 점점 같은 시대의 모든 예술을 아우르는 용어로 자리잡은 것입니다. 오늘날의 관점에서 보면 음악에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말이 아닌가 싶지만 당시 사람들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말 그대로 뭔가 이상하고 어색하게 느꼈던 것입니다. 그것은 마치 20세기에 새로운 음악이 나타났을 때 현대음악이라 부르며 낯설고 어렵게만 생각하던 것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17세기 사람들은 이전까지 음악이라면 주로 노래를 하거나 춤을 출 때 함께 하는 것으로 알았는데 악기로 연주하는 음악을 그저 가만히 앉아서 들어야 하는 것이 어색했던 모양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느렸다가 빨라지고 큰 소리가 갑자기 작아지는가 하면 다 함께 연주하는 부분과 몇몇이 따로 연주하는 부분, 여러 가락이 서로 얽혀서 들리는 음악과 한 선율만 뚜렷하게 들리는 음악을 나란히 이어놓는 것이 이상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사실은 이것이 바로 바르크 시대의 기악을 대표하는 협주곡, 즉 콘체르토 양식의 전형적이 모습입니다. 콘체르토는 경쟁하다, 대립하다는 뜻의 라틴어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이처럼 바로크 협주곡은 서로 대조적인 부분들을 교대로 등장시켜 음악의 흐름을 만드는 음악입니다. 처음엔 합주 협주곡, 즉 콘체르토 그로소라고 하여 악단의 모든 악기가 연주하는 부분과 그 가운데 몇몇 악기들만 따로 연주하는 부분이 번갈아가며 나타나는 모양새였지만 이후에 하나의 악기와 악단 전체가 서로 맞서는 솔로 콘체르토, 즉 독주 협주곡이 나타나기 시작하면서 무게의 중심이 점점 후자로 기울어지게 됩니다. 이러한 협주곡의 변천에 있어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 사람이 안토니오 비발디였고 그를 모방하고 연구하여 바로크 협주곡을 완성의 단계로 이끈 이가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입니다.

 

출처 : https://earlymusicmuse.com/baroquemusic/


안토니오 비발디는 1678년 이탈리아의 베네치아에서 태어나 일생의 대부분을 그곳에서 살았습니다. 대대로 뛰어난 바이올린 연주자를 배출한 집안에서 태어나 체계적인 음악교육을 받았지만 어려서 수도원에 들어갔고 커서는 성직자가 되었습니다. 사제가 되었으나 병약하여 미사를 집전하기조차 어려웠고 그 때문에 베테치아의 소녀들을 위한 고아원인 오스페달레 델라 피에타의 바이올린 교사로 부임하였고 나중에는 합주장, 합창장을 거쳐 원장의 직무를 수행하게 됩니다. 당시 고아원은 일요일마다 자선음악회를 열어 그 수익금으로 부족한 재원을 충당했기 때문에 비발디는 원생들로 이루어진 합주단과 합창단을 연습시켜야 했고 그들이 연주할 음악을 작곡해야 했는데 그가 남긴 500여곡에 이르는 협주곡들은 그로 말미암아 만들어진 것들입니다. 이처럼 누구보다 많은 협주곡을 작곡하기도 했지만 협주곡 양식을 다루는 비발디의 뛰어난 솜씨는 처음부터 두드러지게 돋보였습니다



특히 그 많은 협주곡 가운데 처음으로 출판한 "조화의 영감"12곡은 다양한 악기구성과 조합, 음악을 펼치는 여러가지 전개방식을 시도하고 있어 바로크 협주곡의 모범과도 같은 작품입니다. 그 가운데 1, 7, 10번은 네 대의 바이올린과 첼로를 앞세운 곡이고 4번은 네 대의 바이올린, 8번은 두 대의 바이올린을 위한 곡이며 2번과 11번은 두 대의 바이올린과 첼로, 그리고 나머지는 모두 독주 바이올린을 위한 곡들입니다. 또한 8번처럼 바이올린의 현란한 기교를 적절하게 펼쳐야 하는 곡이 있는가 하면 그다지 어렵지 않으면서 상큼하고 밝은 느낌이 두드러지는 10번이 있고, 6번의 경우는 바이올린을 배우는 사람이 처음으로 협주곡에 도전할 때 많이 선택할 정도로 쉽지만 아기자기한 곡입니다. "조화의 영감"은 당대는 물론 후대에까지 널리 영향을 미쳤습니다. 특히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는 이 중의 여섯 곡을 건반악기를 위한 협주곡으로 편곡했을 정도로 이 작품을 높이 평가하여 기꺼이 스스로의 음악 속에 받아들여 발전시켰고 그로 말미암아 바로크 협주곡 양식의 궁극에 도달할 수 있었습니다.

 

출처 : https://www.youtube.com/watch?v=OoFb_iMKu5s


음악사의 바로크 시대에 벌어진 양상은 마치 춘추전국 시대의 군웅할거를 보는 듯합니다. 나라마다 도시마다 뛰어난 음악가들이 있었고 그들의 음악은 남다른 모습으로 나름의 소리를 들려주었습니다. 때문에 같은 악기를 다르게 부르는 일도 있었는데 피아노의 전신 악기인 쳄발로가 그랬습니다. 이탈리아어로 쳄발로, 독일에서는 하프시코드, 프랑스 사람들은 클라브생이라 불렀던 겁니다. 먼저 이탈리아의 여러 지역과 도시들이 그렇게 경쟁하며 서로를 닮아갔고 그 때문에 나날이 변화하고 성장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따라서 보고 배웠던 프랑스와 독일이 또한 같으면서 다르기도 한 그들만의 음악을 만들어갔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그 물결은 헨델과 같은 작곡가와 더불어 섬나라 영국까지 들어가게 됩니다. 바로크라면 우리는 바흐와 헨델, 비발디를 떠올리지만 이들은 모두 바로크 시대의 끝자락에 걸친 인물들입니다. 말하자면 한 시대를 마무리하고 다음 시대를 열어준 셈이고 그 모든 것을 아우르는 마지막 대업을 완성한 이가 바로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입니다. 때문에 그가 세상을 떠난 1750년은 150년 바로크 시대의 마지막 해로 삼기도 합니다. 어떤 면에서 이 놀라운 그의 업적 또한 중국의 역사에 비견하자면 최초의 통일왕조를 세운 진시황을 떠올리게 됩니다. 그러나 힘으로 상대를 제압하여 말살한 시황제와는 달리 그는 스스로를 낮추어 상대를 받아들이고 배우면서 그 모든 것을 하나로 모아 후대에 남겼습니다.

 

출처 : https://www.youtube.com/watch?v=12EZZlr9DCY


비단 바흐뿐만 아니라 바로크 시대의 뛰어난 음악가들은 누구나 그랬습니다. 그래서 오늘날 우리가 누리고 있는 클래식 음악의 위대한 유산이 가능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나와 다른 남을 존중하고 받아들여 그것으로 전보다 나은 나를 새롭게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만든 음악 안에서도 전혀 다른 것들이 나란히 번갈아가며 나타나게 하여 서로가 겨루면서도 균형과 조화를 이루도록 하였습니다. 그것이 바로 바로크 협주곡의 원리이자 바로크 음악의 가치, 바로크 시대의 정신입니다. 비발디의 조화의 영감” 10번의 1악장 들으면서 누구나 나와 다른 차이를 차별하지 않고 서로를 존중하고 배려하여 모두가 균형과 조화를 이루며 평화를 누리는 세상을 꿈꾸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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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 필하모닉 친구들 만나다 - 이건음악회를 거처간 베를린 필하모닉 단원들의 리허설 사진과 영상 보기베를린 필하모닉 친구들 만나다 - 이건음악회를 거처간 베를린 필하모닉 단원들의 리허설 사진과 영상 보기

Posted at 2017.12.01 15:00 | Posted in 이건음악회 Talk Talk/음악회 톡톡

베를린 필하모닉 단원들과 19일 밤 즐거운 미팅과 식사를 마치고 헤어졌습니다. 다음 날 공연에 꼭 오라는 초청을 받고..(물론 티켓은 못 받았습니다. 아쉽게 ㅠㅠ) 고민하다 수락을 했습니다. 나중에 또 어떻게 인연이 만들어질지 모르는 일이니까요.

20일 월요일, 리허설 시간에 맞춰 공연장을 방문했습니다. 어제 콘서트에 없었거나 못봤던 멤버들과 인사를 다시 나누고 리허설에 입장을 했습니다. 저 말고도 미리 약속된 어린 친구들도 있었고 관계자들도 꽤 있네요. 사진 찍으시는 분들도 있는데 신경쓰지 않고 리허설을 매우 활발하게 진행합니다.

최근 카메라를 바꿨는데 마침 공연장이나 회의 때 쓸 수 있는 무음 기능이 있어 무음으로 사진을 촬영 합니다. 상업적 목적이 아님을 미리 관계자들에게 밝히고 감상하며 몇 장 찍었습니다. 

단독 공개!!!

 

사이먼 래틀경은 정말 열정적으로 지휘를 하네요. 저 흰 곱슬 머리가 휘날리는 모습이 엄청 멋집니다. 사람을 빨아드리는 매력이 있는 헤어스타일이네요. 단원들과 적극적으로 소통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없었는데 리허설 마지막 쯤에는 티셔드 뒷쪽이 땀에 젖어 있더라구요.

 

 

리허설에서는 전체 곡을 연주하지는 않고 연주 중간 중간에 중요한 부분이나 실수할 수 있는 부분들을 점검하면서 흘러갔습니다. 아마도 베를린에서 무수히 많은 연습을 하고 왔기에 한국에서는 점검 하는 정도만 하겠지요. 어찌됐건 정말 멋진 리허설이었습니다.

멀리서 보아도, 이건음악회 때 방문했던 연주자들 모습이 쏙쏙 보입니다. 금관, 목관, 현악 파트 모두에 있는 이건음악회 멤버들의 모습을 감상하는 재미도 솔솔하네요.

 

 

베를린 필하모닉 리허설 영상 입니다.

 

[리허설 영상1]

 

[리허설 영상2]

 

'역시나 베를린 필하모닉' 생각을 하며 리허설 관람을 마쳤습니다.

단원들과의 약속데로 본 공연은 저도 관람을 했네요. 시각적 청각적 즐거움으로 가득했던 공연! 저는 그냥 즐겁고 신기하고 멋졌다는 말로 마치겠습니다. (전문 리뷰는 공연 전문 블로그를 참고~)

 

마지막 사진은 공연 종료 후, 사이먼 래틀경의 인사로 마무리할 때 공연장 입구에서 찍었습니다. 절대 공연 중에 찍으시면 안됩니다. 비상업적 용도로 미리 양해를 구하고 찍었습니다. 참고만 부탁드립니다.

리허설 복장하고는 완전히 틀리지요? 비싼 티켓값을 보상하고도 남는 멋진 공연이었습니다!

 

공연이 끝나고... 또 다른 저녁 식사를 했습니다. 한결 같이 좋아해준 베를린 필하모닉 맴버들에게 감사합니다. 다음 공연의 구체적인 스케쥴은 모르겠지만... 또.. 한국 오면 전화할꺼라고... 무서운 멘트로 인사를 하고 헤어졌습니다. 바로 다음 일정이 일본 공연이었습니다.

일본에 도착해서...잘도착했고 즐거웠다는 인사를 건내준 매너 있고 친근한 친구들! 참 고맙네요. 이건음악회라는 인연으로 알게된 세계적인 연주자들과의 인연. 이건음악회 아니면 접하기 힘들었을 것 같습니다. 뿌듯하고 행복합니다. ^^

 

이건음악회에서 다시 베를린 필하모닉 연주를 듣고 싶다는 생각이 강하게 드네요.

다시.. 한번 초청할까요? ^^

 

 

베를린 필하모닉 친구들 만나다 - 이건음악회를 거처간 베를린 필하모닉 단원 만난 이야기베를린 필하모닉 친구들 만나다 - 이건음악회를 거처간 베를린 필하모닉 단원 만난 이야기

Posted at 2017.11.30 22:12 | Posted in 이건음악회 Talk Talk/음악회 톡톡

지난 11월 19일 베를린 필하모닉과 사이먼 래틀의 한국 공연이 있었습니다. 많은 분들이 이 공연을 손꼽아 기다린 것은 아마도, 첫 째가 베를린 필하모닉이라는 이유이고, 둘째가 바로 사이먼 래틀이 베를린 필하모닉과 연주하는 마지막 한국 공연이기 때문이었 던 것 같습니다. 세번째는 아마도 조성진씨 협연을 보기 위해였겠지요. (원래는 피아니스트 랑랑이었으나 부상으로 인해 조성진으로 교체되었다고 합니다.)

공연의 티켓 가격은 좋은 자리가 45만원, 37만원 등 엄청난 가격에 거래되고 있었지요.  예술의전당 3층 꼭대기도 가격이 7만원인데 저렴한 좌석은 모두 매진이 되었습니다.  진짜 엄청난 인기를 체감할 수 있었습니다.

이 비싼 베를린 필하모닉 공연을 무료로 관람 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던 이건창호, 이건산업은 정말 대단한 회사군요!라고 깨알같은 자화자찬 해봅니다. ^^;;

사실, 23회 베를린 필하모닉 브라스 앙상블 12명, 25회 베를린 필하모닉 윈드퀸텟 5명, 26회 베를린 필하모닉 카메라타 5명(출연자는 모두 7쳄발로 연주자 1명, 가보 타르코비 중복이라 제외) 등, 모두 합하면 총 22명이나 되는 베를린 필하모닉 멤버들이 이건음악회를 통해 한국은 팬들을 만나 멋진 공연을 펼친 바 있습니다.

중국 공연 중에, 튜바 플레이어인 알렉산더로부터 연락이 왔습니다. 23회 이건음악회에서 브라스 앙상블 멤버로 한국에 왔을 때 많이 친해졌던 친구입니다. 베를린 필하모닉은 5년만에 한국 방문이나, 2015년 겨울 빈-베를린 앙상블 공연 차 한국 방문 때에도 연락이 왔었지요! 공연 끝나고 맥주 한자는 연락이었습니다. '맥주 보다 공연 티켓을 주고 공연 보러 오라고 하지...'라는 생각이 들었으나 -_-;; 공연 티켓 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라... 부담 되는 것 같아 콘서트 끝나고 맥주 한잔 하기로 하였습니다.

생각을 좀 더 해보니 총 80~90 명의 멤버 중에 거의 1/4을 알기 때문에(음악회 담당한지 10년이 다 되어 가네요...) 다른 친구들에게도 인사를 하고 싶어졌습니다. 공연 전에 가서 다른 친구들도 보고 싶어 리허설 이후에 백스테이지에서 보기로 약속을 하였습니다.

리허설 끝난 후 만난 베를린 필하모닉 친구들! Long time no see!를 연발하며 격하게 반겨 줍니다. 사실 제 이름이 어렵기 때문에 해외 연주자들이 오면 그냥 저를 NO.1 넘버원이라고 부르라고 합니다. 연락을 위한 전화기를 한대 씩 주는데 그 전화기에 단축번호 1번을 제 번호로 저장해서 전화기를 줍니다. 그 때 설명하죠. 넘버원을 계속 누르면 나한테 연결된다. 내가 바로 넘버원이니 넘버원으로 불러달라..는 것을 영어로 설명하죠. 그럼 해외 연주자들은 대부분 좋아합니다.

 

여기 저기 넘버원을 찾는 소리가 들립니다. 내심 흐믓해지네요~ 이건음악회를 위해 방문한 연주자들은 내부 방침이 극진하게 모시는 것이기 때문에 열과 성으로 모십니다. 최고의 콘서트를 위해 다른 모든 것은 저와 이건 스텝들이 챙기고 연주자들은 연주에만 집중하게 되죠. 그래서 연주자들은 좋은 기억을 가지고 돌아가게 되고 친구가 됩니다.

 

가장 격하게 반겨줬던 더블베이스 야누스 위드직! 카메라를 굉장히 좋아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26회 때 왔었는데 소니에서 니콘으로 카메라를 바꿨네요. 저한테 막 자랑하고, 제 카메라를 막 탐냈습니다. (그 사이에 저는 캐논에서 소니 A9으로 변경 ^^)

반가운 친구들과의 시간도 쑥쑥~ 지나가고 공연 시간이 다가옵니다. 공연 티켓이 없어 ㅠㅠ 공연은 백스테이지와 예술의전당 로비에서 TV로 보았습니다. 역시나 베를린 필하모닉 입니다. 사이몬 래틀경의 멋진 지휘도 공연을 보는 맛을 더합니다. 피아니스트 조성진의 무대도 역시나 멋집니다. 콘서트를 직접 보지 않은 관계로 자세한 것은 생략합니다. 저는 그냥 친구들 보러 간 것 이니까요 ^^;;

인터미션 시간에도 많은 단원들과 만났습니다. 호른 연주자 사라 윌리스, 퍼거스, 클라리넷 연주자 월터 세이파스, 오보에 안드레아스,  플룻 마이클 하셀, 트럼펫 가보 타르코비, 기욤 젤, 타마스 발렌짜이, 첼로 스테판 콘츠, 비올라 볼프강 울프, 제2바이올린 로마노 토마시니 등등 먼저 와서 인사해주니 주변 사람들이 저를 음악가나 엄청난 기획사에서 나온 줄 아네요. 어깨에 힘도 들어가고 ㅎㅎ 기분도 좋았습니다.  모두들 반가워하고 이건음악회 출연했던 기억들을 이야기 하며 짧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다들 이건음악회가 너무 좋았다는 이야기를 하네요. 담당자로서 기분이 엄청 좋습니다.

인터미션 종료 후, 공연 종료 후, 호텔에서 악기를 놔두고 모였습니다.  근처 식당으로 가서 맥주와 간단한 식사를 했습니다.

멤버는 좌측부터 로마노, 가보, 알렉산더, 사라 윌리스, 안나 메린, 안드레 쇼츠(신입 트럼펫 연주자), 그리고 이건 스텝들

 

언제나 쾌활하고 말이 많고 즐거운 가보 타르코비! 이 날도 음악적인 이야기를 하며 로마노와 엄청난 논쟁을 했습니다. 결과는 가보의 승리 ^^; 왼쪽에 알렉산더는 2년만에 보는데 살이 많이 빠졌네요. 애플 제품을 엄청 좋아해요. 애플워치도 찼네요 ^^

 

19일은 사실 친구들을 만나는데 의미가 있었어요. 그런데 베를린 필하모닉 멤버들이 오랜만인데 공연을 관람하지 않은 것에 내심 서운해 하더라구요. 그래서 20일에 꼭 관람했으면 좋겠다고.. -_-;;; 사실 저도 내심 원했습니다. 그래서 20일에도 만나기로 하고 헤어졌습니다.

 

20일에는 리허설을 일부 오픈한다고 리허설 공연에 초청도 받았습니다. 베를린 필하모닉 공연을 리허설에서 바로 앞에서 본 이야기는 다음 편으로 넘기겠습니다 ^^

사이먼 래틀경을 코 앞에서 봤지요!! ^^

 

[참고 - 베를린 필하모닉 투어 일정]


※ 2017년 베를린 필하모닉 & 사이먼 래틀 아시아 투어 일정
2017.11.10-11 홍콩 @홍콩문화센터
2017.11.12 중국 광저우 @광저우 오페라 하우스
2017.11.13 중국 우한 @우한 친타이 콘서트홀
2017.11.16-17 중국 상하이 @상하이 오리엔탈 아트 센터
2017.11.19-20 대한민국 서울 @예술의전당
2017.11.23 일본 카와사키 @무자 카와사키 심포니 홀
2017.11.24-25 일본 도쿄 @산토리 홀

 

※ 베를린 필하모닉 역대 상임지휘자
루트비히 폰 브레너 Ludwig von Brenner (1882-1887)
한스 폰 뷜로 Hans von Bulow (1887-1892)
아르투루 니키슈 Arthur Nikisch (1895-1922)
빌헬름 푸르트벵글러 Wilhelm Furtwangler (1922-1934)
레오 보르하르트 Leo Borchard (1945)
세르주 첼리비다케 Sergiu Celibidache (1945-1952)
빌헬름 푸르트벵글러 Wilhelm Furtwangler (1952-1954)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 Herbert von Karajan (1954-1989)
클라우디오 아바도 Claudio Abbado (1989-2002)
사이먼 래틀 경Sir Simon Rattle (2002-2018) 
키릴 페트렌코 Kirill Petrenko (201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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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승찬 교수의 클래식 음악 이야기] 오케스트라의 콘서트홀은 연주자의 악기와 같다[홍승찬 교수의 클래식 음악 이야기] 오케스트라의 콘서트홀은 연주자의 악기와 같다

Posted at 2017.11.23 09:51 | Posted in 이건음악회 Talk Talk/홍승찬교수의 클래식 톡톡



연주자에게 악기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아무리 실력이 뛰어나도 악기가 나쁘면 좋은 소리가 나지 않아 좋은 음악을 들려줄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좋은 악기를 사려고 가진 돈을 다 쓰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빚을 내서 평생을 갚느라 허덕이는 경우도 많습니다.


출처 : https://nmbx.newmusicusa.org/whats-a-musician-worth/


연주자에게 악기만큼 중요한 것이 공연장입니다. 악기의 울림이 아무리 좋아도 그걸 공연장이 그대로 받아서 제대로 청중에게 전하지 못한다면 아무 소용이 없기 때문입니다. 공연장의 울림이 좋고 나쁘고의 차이는 혼자 연주할 때보다 여럿이 함께 연주할 때, 특히 여러 종류의 악기들이 어우러져 연주할 때 더 잘 드러나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오케스트라에게 있어 전용 콘서트홀은 악기보다 더 중요할 수도 있습니다.


출처 : https://en.wikipedia.org/wiki/London_Symphony_Orchestra


연주자가 좋은 악기를 사기 위해 집을 팔고 빚을 내는 것을 이해한다면 오케스트라가 좋은 콘서트홀을 갖기 위해 있는 힘을 다하고 목소리를 높이는 것 또한 당연하게 받아들여야 합니다. 콘서트홀을 가질 형편이 못되면 빌려 쓰는 것도 생각할 수 있지만 그 안에 늘 머물면서 필요할 때면 언제나 연습하고 연주할 수 있는 조건이 아니라면 콘서트홀의 조건에 적응한 최상의 음향을 만들고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출처 : http://tch15.medici.tv/en/concert_halls/mariinsky-3


공연장을 짓는 데 막대한 비용이 드는 까닭에 지금까지 우리나라 대다수 지방자치 단체들은 연주회 뿐만 아니라 오페라와 발레, 연극과 무용 뿐만 아니라 뮤지컬 공연까지 가능한 다목적 공연장을 만들어서 운영해왔습니다. 그런데 그 대부분이 공연의 어느 장르에도 딱 들어맞지 않아 공연의 완성도가 떨어질 뿐만 아니라 공연을 만들 수 있는 여건도 갖추지 못해 제대로 가동되고 활용되지 못하는 실정입니다. 말하자면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으려다 한 마리도 잡지 못하는 처지가 된 것입니다. 이에 몇몇 지방자치 단체들이 먼저 나서서 특정 장르에 적합한 공연장을 새로 짓거나 짓고자 노력중인데 그 가운데 대표적인 경우가 대구시민회관입니다. 오래 전 다목적 공연장으로 지어 낡고 낙후된 공연장을 연주회 전용 콘서트홀로 리모델링한 경우입니다. 오케스트라 연주에 적합한 음향조건을 갖춘 까닭에 이곳에 상주하여 전용홀로 쓰고 있는 대구시립교향악단의 역량이 나날이 발전하고 있는가 하면 시민들의 관심과 호응도 날마다 늘어나 연주회 마다 연일 매진을 이어가고 있다고 합니다.


출처 : http://www.daegucity.net/bbs/board.php?bo_table=B85&wr_id=1


대구가 이렇다면 다른 지자체라고 안될 까닭이 없고 서울이라면 더더욱 서둘러야 할 때가 아닌가 싶습니다. 이제 막 세계 무대의 문턱에 올라서려는 순간, 어느 때보다 어려운 시련을 겪고 있는 서울시향이 지금의 위기를 슬기롭게 극복하고 재도약의 발판으로 삼을 수 있는 계기가 전용 콘서트홀 건립이 아닌가 싶습니다. 오늘이 아니라도 언젠가는 반드시 해야 할 일이라면 비전이 필요하고 희망이 절실한 지금이야말로 놓치지 말아야 할 바로 그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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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승찬 교수의 클래식 음악 이야기] 재즈 음악의 탄생(뉴올리언스와 루이암스트롱...)[홍승찬 교수의 클래식 음악 이야기] 재즈 음악의 탄생(뉴올리언스와 루이암스트롱...)

Posted at 2017.11.21 13:39 | Posted in 이건음악회 Talk Talk/홍승찬교수의 클래식 톡톡


루이 왕의 땅이라는 뜻의 루이지애나의 항구도시 뉴올리언즈는 새로운 오를레앙이라는 이름이 말해주고 있는 것처럼 프랑스 이민자들의 도시입니다. 이곳에 남부 농장으로 팔려갈 흑인 노예들이 들어오면서 흑인 인구의 비중이 급격히 늘어났고 자연스럽게 프랑스의 혈통과 흑인의 피가 섞이게 되었습니다. 크리올이라 불린 이들은 음악적인 재능이 뛰어나 악사로 생계를 꾸리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들이 재즈 음악 역사의 첫 장을 열게 됩니다

 

출처 : http://www.lifeinus.com/Travel/168/


이 세상에서의 삶이 말할 수 없이 고달팠던 흑인들은 노예 시절부터 늘 조물주의 부르심을 받아 요단강을 건너가는 그 순간을 기다리며 살았습니다. 그러니 장례식이 다른 어떤 의식들보다 중요할 수밖에 없었고 그로 말미암아 그들 나름의 독특하고 성대한 장례식 문화가 자리잡게 되었습니다. 그런 장례식의 볼거리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밴드를 앞세운 장례식 행렬로, 뉴올리언즈를 배경으로 한 헐리우드 영화에도 자주 등장합니다. 흑인들의 장례 행렬을 이끄는 밴드라면 당시 흑인들의 교회음악인 흑인영가를 연주했을 것입니다. 악보도 없을뿐더러 그것을 읽을 줄도 모르는 그들 사이에서는 트럼펫보다 좀 더 크고 부드러운 소리가 나는 코넷이 먼저 첫 소절을 연주하면 나머지 악기들이 적당히 알아서 따라가는 것이 나름의 방식이었습니다. 그런데 무더운 날씨에 묘지까지 이어지는 긴 장례식 행렬의 앞에 서서 무거운 악기를 연주하며 걸어가야 하는 악사들에게 느리고 단조로운 음악을 되풀이하는 일은 참으로 고역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던 중에 아마도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축 처지는 음악의 리듬을 살짝 비틀고 밋밋한 가락에도 곁가지를 솜씨 있게 덧붙이면서 처음과는 전혀 다른 흥겨운 음악으로 탈바꿈했을 것이고 그것이 사람들의 호응을 얻으면서 점점 더 많이, 또 널리 퍼져나가게 되었던 것입니다

 

출처 : https://www.jazzartsgroup.org/new-orleans-the-birthplace-of-jazz-by-byron-stripling/


이것이 바로 재즈 음악의 시작이었습니다. 재즈의 바탕이 된 음악이라면 흑인영가와 더불어 블루스와 랙타임을 들 수 있습니다. 랙타임은 선술집에서 주로 흑인 연주자들이 피아노로 연주하던 단조로운 2박자의 음악으로 우리 귀에 익숙한 영화 "스팅"의 주제 음악이 바로 그것입니다. 랙타임 연주자들은 센 박자 다음에 여린 박자가 나오기 마련인 원래 순서의 앞뒤를 바꾸는 싱코페이션, 즉 엇박자를 연주함으로써 리듬에 변화를 주었는데 이런 식의 변주가 재즈 음악에 영향을 주었습니다. 블루스는 백인들의 온갖 멸시를 견디며 고달픈 나날을 살아야 했던 흑인들의 탄식과 푸념을 담은 신세타령과도 같은 음악입니다




날마다 힘겨운 노동을 견디기 위해 햇살 따가운 들판에 서서 누군가 먼저 부르면 모두가 함께 따라 부르던 노동요의 가락은 저도 모르게 그들 입안에서 맴돌았을 겁니다. 고된 하루 일을 겨우 끝내고 오두막으로 돌아오면 몸은 지칠 대로 지쳐 가누기조차 힘든데 문득 울적하고 답답한 마음에 설움이라도 복받치면 입안에 맴돌던 가락에 한숨과 넋두리를 실어 흐느끼듯 읊조렸을 것이고 그것이 결국 블루스가 되었습니다. 블루스의 음계는 7개의 음으로 이루어진 서양 음악의 장음계에서 세번째와 일곱번째 음을 반음씩 내린 것으로 이 또한 재즈 음악에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이렇듯 전부터 있었던 흑인 음악의 여러 장르들을 받아들여 점점 그 모양새를 갖추게 된 재즈 음악은 주제로 선택하여 먼저 들려주는 기존 음악의 골격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 범위 안에서 즉흥적으로 변형시켜 연주하는 음악을 일컫게 됩니다. 뉴올리언즈 흑인들의 장례 행렬을 이끄는 밴드의 음악에서 시작된 재즈 음악은 점점 뉴올리언즈 사람들의 삶의 구석구석을 파고들더니 결국은 미시시피 강을 따라 미국 전역으로 퍼져나갔고 대서양을 건너 유럽과 전 세계로 널리 전파되었습니다.  

 


재즈 음악의 역사에서 처음으로 그 이름을 떨친 거장은 루이 암스트롱입니다. 당대에 그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뛰어난 트럼펫 연주자였으며 음악의 가락을 가사 없이 입으로 따라 부르는 스캣송을 널리 퍼뜨려 재즈 보컬의 전형으로 만든 장본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밴드의 악사들이 함께 연주하는 방식을 벗어나 하나의 악기가 따로 그 솜씨를 마음껏 펼치는 새로운 재즈의 연주방식을 처음으로 시도한 선구자이기도 합니다. 그는 뉴올리언즈에서 태어나고 자라, 그곳에서 활동하며 실력과 명성을 닦았습니다. 가정을 팽개친 아버지 대신 어머니와 함께 살았지만 살림은 말할 수 없이 궁핍했고 집안에는 늘 남자들이 드나들었습니다. 그 가운데 한 남자의 총을 들고 거리로 나선 소년 루이는 새해 첫날을 맞이하는 들뜬 분위기에 휩싸여 허공에다 마구 총을 쏘았고 그 때문에 소년원에 들어가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에게 소년원은 삶의 피난처이자 탈출구였습니다. 그곳 밴드에서 처음으로 코넷을 배울 수 있었고 그로 말미암아 음악가의 길에 접어들게 된 것입니다. 소년원을 나선 그는 살기 위해 무슨 일이든 닥치는 대로 해야 하는 절박한 형편임에도 악기만은 절대로 손에서 놓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코넷에서 트럼펫으로 악기를 바꾸면서 점점 더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고 마침내 음악가로 생계를 꾸려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출처 : https://www.amazon.com/Louis-Armstrong/e/B000APTKDS


이후 그의 삶은 재즈의 역사와 함께 흘러갑니다. 미시시피강을 오르내리는 증기선에의 밴드도 재즈 음악을 연주하였고 그렇게 강줄기를 따라 미시시피강 유역의 여러 도시에 전파되기 시작한 재즈 음악은 드디어 시카고에 상륙하였습니다. 그리고 뉴욕으로 전해지는가 싶더니 순식간에 바다 건너 유럽으로 건너갔고 파리와 베를린 같은 대도시들도 재즈의 열기에 몸살을 앓게 됩니다. 고향을 떠난 루이 암스트롱은 시카고에서는 킹 올리버 밴드와 호흡을 맞추었고 뉴욕에서는 프레처 헨더슨 악단에서 활동하였습니다. 그리고 재즈 음악에 대한 관심과 호응이 팽창하면서 활동 무대도 점점 넓어져 그의 음악은 라디오의 전파를 타고 전국 방방곡곡에 널리 알려졌고 음반과 영화를 통해 전 세계에 그 이름을 떨치면서 이후의 어떤 재즈 음악가도 이루지 못한 부와 명성을 누렸습니다.

 



지금껏 아무도 명확하게 밝혀내지 못했지만 재즈 음악의 탄생 시기는 대략 1900년 경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4반세기도 채 지나기 전에 재즈 음악은 미국 전역은 물론 전 세계로 퍼져나가 지구촌 사람들의 영혼을 흔들어놓고 맙니다. 그리고 마침내 흑인들만의 음악이 아닌 모든 인종을 아우르는 음악이 되었고 감히 어울릴 것 같지도 않은 클래식 음악의 영역에까지 그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이처럼 이전의 그 어떤 음악도 이루지 못한 기적과도 같은 일이 가능했던 까닭을 짐작해 보면 아마도 그 음악에 너무나도 고난한 삶의 흔적과 상처들이 고스란히 담겨 있어서가 아닌가 생각하게 됩니다. 그리고 용광로와도 같은 뉴올리언즈의 뜨거운 열기 속에서 너무나도 다른 여러 인종과 문화와 가치들이 하나로 녹아들어 음악으로 다시 태어났기에 오날날까지도 꺼지지 않는 불씨로 살아남아 새로 태어나는 세계의 거의 모든 음악에 그 영항을 미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1. 그림
    정말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늘 좋은 포스트에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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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승찬 교수의 클래식 이야기] 잃어버린 낭만에 대하여[홍승찬 교수의 클래식 이야기] 잃어버린 낭만에 대하여

Posted at 2017.11.17 08:00 | Posted in 이건음악회 Talk Talk/홍승찬교수의 클래식 톡톡


살면서 가끔씩은 사람은 도대체 무엇으로 사는지를 생각하기 마련인데 그럴 때마다 떠오르는 영화 속의 명장면들이 있습니다. 그것은 쇼생크 탈출인생은 아름다워에 나오는 장면들로 먼저 영화 쇼생크 탈출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젊은 은행가 앤디 듀프레인은 아내와 아내의 정부를 살해했다는 누명을 쓰고 종신형을 받아 쇼생크 감옥에 갇힙니다. 간수들의 부당한 처사와 다른 죄수들의 폭력까지도 꿋꿋이 견디며 힘겹게 버티던 어느 날, 간수 한 사람을 도와 세금을 덜 내도록 한 것이 알려지면서 교도소장과 다른 간수들의 세금 감면은 물론 교도소장이 죄수들에게 일을 시켜 착취한 돈을 세탁하고 관리하는 일까지 맡게 되어 그들의 신임을 얻게 됩니다

 

출처 : http://www.imdb.com/title/tt0111161/


그런데 그는 그렇게 얻은 여유와 혜택을 활용해 동료 죄수들이 조금이라도 더 인간다운 삶을 누릴 수 있도록 힘을 씁니다. 여기저기 편지를 써서 도서관을 꾸미고 책을 기증받는가 하면 새로 들어온 젊은 죄수를 가르쳐 검정고시에 합격시킴으로써 이를 지켜본 죄수들 모두에게 보람과 긍지를 안기기도 합니다그러던 어느 날, 간수의 방에서 뜻밖에도 모차르트의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을 녹음한 음반을 발견한 앤디는 그 음반을 틀고 마이크를 연결해 스피커를 통해 교도소 전체에 음악이 흐르도록 합니다. 순간 교도소 안의 모든 사람들은 마치 시간이 멈춘 듯 하던 일을 멈추고 그 자리에 꼼짝 않고 서서 음악에 귀를 기울입니다. 이제껏 그 안의 누구도 들어본 적이 없는 그 노래는 백작부인과 수잔나가 부르는 "편지의 이중창"입니다. 백작이 자신의 집사 피가로의 약혼녀인 수잔나를 유혹하려 들자 수잔나와 백작부인이 백작을 골려주려고 몰래 만나자는 거짓 편지를 쓰면서 함께 부르는 노래입니다


Mozart - The Marriage of Figaro (모짜르트 '피가로의 결혼)

 

그러나 그들에게 그 내용이나 가사는 알 수도 없을 뿐더러 중요하지도 않습니다. 하늘에서 울려 퍼지는 아름다운 음악은 마치 천사의 목소리를 듣는 듯 맑고 깨끗하여 그들 마음의 모든 찌꺼기를 단번에 씻어내는 듯 그저 놀라울 뿐입니다. 그때 들리는 흑인 죄수 레드의 독백이 그들 모두의 마음을 대신하고 있습니다. “나는 지금도 그때 두 이탈리아 여자들이 무엇을 노래했는지 모른다. 사실 알고 싶지도 않았다. 때로는 말하지 않는 것이 최선인 경우도 있는 법이다. 노래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다웠다. 그래서 가슴이 아팠다. 이렇게 비천한 곳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높고 먼 곳으로부터 새 한 마리가 날아와 우리가 갇혀 있는 삭막한 새장의 담벽을 무너뜨리는 것 같았다. 그 짧은 순간, 쇼생크에 있는 우리 모두는 자유를 느꼈다.” 

 

출처 : http://www.imdb.com/title/tt0111161/


하지만 앤디에게 그 댓가는 혹독했습니다허락 없이 음악을 틀었고 음악을 멈추라는 간수들의 독촉에도 모르는 척 문을 잠그고 열어주지 않은 벌로 흠씬 두들겨 맞고 2주 동안 독방 신세를 지게 됩니다. 창백하고 초췌한 몰골로 독방에서 나온 앤디에게 동료들은 그 안에서 어떻게 지냈냐고 묻습니다. 앤디는 모차르트의 음악을 들었다고 대답합니다. 그들이 놀라서 녹음기를 가져갔냐고 다시 묻자 그는 자신의 머리와 가슴을 가리키며 "여기에 있어. 그것이 음악의 아름다움이야. 누구도 빼앗아갈 수 없지.”라고 웃으면서 말합니다.

 

출처 : 구글 이미지


이번에는 이탈리아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의 이야기입니다. 2차 세계대전의 전운이 감돌던 1930년대말의 이탈리아의 작은 마을에 약간은 모자란 듯 얼치기지만 늘 즐겁고 낙천적인 귀도가 삽니다. 감히 넘볼 수 없는 집안에 약혼자까지 있는 아름다운 선생님도라를 사랑하여 순수한 마음과 지극한 정성만으로 마음을 얻고 함께 도망까지 가야 하는 우여곡절 끝에 결국 결혼에 이르러 아들 조슈아를 낳고 행복하게 삽니다그러나 그것도 잠시나치가 이탈리아를 점령하면서 유태인인 귀도와 아들 조슈아는 수용소로 끌려가고, 유태인이 아니 도라도 고집을 부려 그들을 따라나섭니다. 그런 절박한 상황에서도 귀도는 어린 아들을 안심시키려고 그들 모두는 게임을 위해 특별히 선발된 사람이라며 누구든 주어진 어려움을 다 이겨내 1,000점을 먼저 따는 사람이 진짜 탱크를 상으로 받게 된다는 거짓말을 합니다.  

 

출처 : http://kimsigyun.com/?p=687


그러던 어느 날, 귀도는 독일군 장교 숙소에서 열리는 파티에 불려가 시중을 들게 됩니다. 음식을 나르며 분주하게 움직이는 중에 축음기를 발견한 그는 건너편 여자 수용소에 있을 아내를 생각하여 소리가 그쪽을 향하도록 축음기를 돌려놓고 음반에 바늘을 올려놓습니다. 그러자 오펜바흐의 오페라  "호프만의 이야기"에 나오는 '뱃노래'가 흘러나옵니다어둡고 추운 수용소의 침상에 힘없이 누워 있던 도라는 어디선가 들려오는 음악 소리를 듣고는 홀린듯이 천천히 창가로 다가가고 어느덧 그녀의 눈에는 눈물이 가득 고입니다.


호프만의 이야기'중 '뱃노래'-오펜 바흐(영화 '인생은 아름다워)


오펜바흐는 19세기 파리에서 활약한 오페레타 작곡가입니다. "지옥의 오르페오", "아름다운 핼렌"과 같은 작품들이 인기를 끌며 명성과 부를 누렸지만 오페라가 아니라 그보다 가볍고 통속적인 오페레타로 성공했다는 자격지심에 반드시 오페라를 써서 인정받겠다는 일념으로 작곡한 야심작이 바로 "호프만의 이야기"입니다.옛 연인이며 오페라 가수인 스텔라의 초대를 받고 뉘른베르크의 한 술집에 나타난 호프만은 스텔라를 기다리는 동안 그곳에 모인 학생들에게 지금까지 경험했던 세 번의 사랑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그 가운데 마지막 이야기가 3막에 펼쳐지는데 베네치아가 무대입니다줄리에타의 유혹에 넘어간 호프만은 결투 끝에 줄리에타의 연인 쉴레밀을 죽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줄리에타를 뒤에서 움직인 악당 다페르투로의 음모였음이 밝혀지고 달빛 흐르는 밤, 줄리에타는 다페르투토라와 함께 곤돌라를 타고 그가 보는 앞에서 사라집니다. '뱃노래'는 줄리에타가 호프만의 친구인 니콜라우스와 함께 곤돌라를 타고 부르는 이중창으로 여기서 니콜라우스는 남자지만 오페라에서는 메조소프라노가 남장을 하고 그 역할을 맡습니다. 혹시나 그들이 처한 참혹한 현실을 아들이 눈치챌까봐 귀도는 날마다 기지를 발휘해서 동분서주 합니다


출처 : http://bach1685.tistory.com/105


마침내 독일이 패망하자 귀도는 먼저 조슈아를 숨겨두고 아내 도라를 구하려다가 독일군에게 붙잡혀 총살을 당하지만 끌려가면서도 숨어서 지켜보는 아들을 생각해 짐짓 즐거운 일인 양 윙크를 하면서 태연하게 걸어갑니다. 조슈아는 날이 밝을 때까지만 들키지 않으면 게임에서 이긴다는 귀도의 말을 정말로 믿고 나무 궤짝에 꼼짝 않고 숨어 있다가 다음날 밖으로 나와 주변을 살피는데 그 앞으로 거짓말처럼 연합군의 탱크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나타납니다.

 

출처 : https://m.blog.naver.com/PostList.nhn?blogId=ji-na


한때는 거리마다 음악이 넘쳐 홍수처럼 범람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관공서에서는 새마을 노래를 틀었고 동네 가게에서는 유행가가 흘러나왔습니다. 골목길을 리어카로 돌아다니는 행상들까지 음악을 앞세워 나 여기 있다며 외쳤습니다. 확성기로 울려퍼지는 행진곡을 들으며 운동장을 가로질러 등교를 했고 쉬는 시간과 점심 시간에는 교실 스피커에서도 잔잔하게 음악이 흘렀습니다. 하도 들으니 저절로 다 외웠지만 그때는 무슨 곡인지도 모르고 따라 불렀습니다. 그러다 나중에야 그 곡이 조셉 수자의 행진곡이라는 것을 알았고 요한 슈트라우스의 왈츠라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지금 이랬다가는 소음 공해에다 저작권 침해라며 난리도 아닐겁니다. 누구나 스마트폰과 이어폰만 있으면 지구상의 무슨 음악이든 골라 들을 수 있는 세상입니다. 그런데도 가끔은 그때가 몹시 그립습니다.어느덧 거리의 캐롤마저도 사라진지 오래입니다. 전에는 여기저기 크리스마스 캐롤이 들리기 시작하면 이제 한 해가 저무는구나 싶어 묘한 감상에 빠져들곤 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12월도 그저 열두달 가운데 하나일 뿐이고 매듭지어야 할 이런저런 일로 마음이 무겁고 몸이 지치는 나날들입니다. 이럴 때일수록 혼자 듣는 음악 말고 함께 듣는 음악이 그립습니다. 때로는 시간을 내서 공연장을 찾지 않아도 함께 들을 수 있는 음악도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바쁘게 길을 걷다가도 어디선가 마음을 움직이는 음악이 들리면 문득 걸음을 멈추고 잠시나마 날개를 펴고 하늘 높이 날아오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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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승찬 교수의 클래식 이야기] 이루지 못한 금호문화재단 이사장 (고)박성용 회장의 꿈[홍승찬 교수의 클래식 이야기] 이루지 못한 금호문화재단 이사장 (고)박성용 회장의 꿈

Posted at 2017.11.16 09:04 | Posted in 이건음악회 Talk Talk/홍승찬교수의 클래식 톡톡


오래 전 브리태니커 사전을 우리말로 옮기는 작업에 참여하면서 최소한 그 사전을 만든 사회와 문화권에서는 예술의 후원자들을 예술가들만큼이나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만큼 많은 예술 후원자들의 이름과 업적이 사전 안에 수록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나라에서라면 어떤 이가 여기에 해당될까 생각해보지만 그다지 많은 사람이 떠오르지는 않습니다. 음악 분야로 좁혀 보면 그 숫자는 더 줄어들고 그 가운데 가장 먼저 떠오르는 분이 박성용 회장입니다. 금호그룹의 회장으로 있으면서 금호현악사중주단을 창단하여 지원했고 무엇보다 금호문화재단과 금호아트홀을 통해 우리의 음악영재들을 발굴하고 후원하는 일에 열과 성을 다하였습니다. 오늘 이 시간에는 박성용 회장의 잘 알려진 삶과 업적이 아니라 그 분을 직접 만나서 보고 들은 것들을 여러분에게 소개하고자 합니다.

 

고 박성용 회장(출처 - http://www.ohmynews.com)


한국예술종합학교가 문을 열고 얼마지 않아 발전재단을 따로 만들었습니다. 금호그룹의 박성용 회장은 재단의 이사로 추대되었고 당시 사무국장이었던 저와의 인연은 그때부터였습니다. 늘 재단 회의에서만 뵙다가 금호그룹 회장실을 처음 방문했을 때의 기억은 지금도 생생합니다. 우선 회장실이라면 당연히 꼭대기 층에 있을 줄 알았는데 낮은 층에 자리 잡고 있어 의아했습니다. 비서실을 찾았더니 한 사람의 비서가 회장실뿐만 아니라 부회장실까지 다 담당하고 있어 당황했고 회장실로 들어섰더니 너무나 단촐하고 소박한 집기를 보고 또 한 번 놀랐습니다.


출처 : http://www.kartsfund.kr/


그 다음 만남은 어느 어색한 회의에서였습니다. 우리나라가 처음으로 수출 천억불을 달성했다고 해서 그 업적을 널리 알리고 자랑하는 문화행사를 만들자는 자리였습니다. 주무 장관과 관계 기관 종사자, 그리고 재계의 몇몇 분들이 참석하였고 그 가운데 박성용 회장도 있었습니다. 회의라기보다 정부의 의지와 행사의 내용을 전달하고 협조를 구하는 모임이었기에 다들 별 다른 의견을 피력하지 않았고 주로 질문을 하고 대답을 듣는 모양새였습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화제가 자연스럽게 국가 경제와 기업 경영으로 모아지자 다들 한마디씩 거들면서 덕담을 나누었습니다. 마침내 박성용 회장에게 순서가 돌아가자 그는 돌연 정부의 경제 정책을 조목조목 짚어가며 비판하기 시작했습니다. 순간 참석한 사람들의 얼굴에는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했지만 박 회장 스스로는 전혀 개의치 않는 눈치였습니다. 심지어 자신이 앉은 식탁 위에 흩어진 빵부스러기를 손바닥으로 긁어 모아 입안에 털어 넣는 행동까지도 전혀 스스럼이 없었습니다. 그 후로도 몇 번 초대를 받아 함께 식사한 적이 있지만 참 잘 먹었다 싶은 기억은 별로 남아 있지 않습니다. 점심은 주로 광화문 회사 근처의 평범한 이탈리아 음식점이었고 그는 늘 똑 같은 파스타를 주문했기에 초대 받은 입장에서 선택의 여지가 별로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는 늘 그랬듯이 식탁 위에 떨어진 빵 부스러기를 입안에 털어 넣었고 그때마다 단 한 번도 주변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았습니다.이렇게 몇 번의 만남이 이어졌지만 그에게서 단 한 번도 대기업 회장이라는 직함에 어울린다 싶은 화려함이나 위압감을 느낀 적이 없었습니다. 오히려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검소하고 소탈한가 하면 고지식하기까지 한 성격이 마치 학자를 보는 듯싶었습니다


그래서 어느 날 만난 자리에서 '경영자보다는 교수가 더 어울릴 것 같다'는 말을 꺼냈더니 금방 손사래를 치며 '짧지만 공직자로도 일해보고 다른 일도 해봤지만 대학에서 교수로 있었을 때가 가장 힘들었다'고 했습니다. 이어서 말하길 '한 시간 강의를 준비하려면 일주일을 꼬박 연구실에 틀어박혀 준비를 해야 했다''그 때는 정말 잠잘 시간도 없었다'며 고개를 흔들었습니다


출처 : http://www.dailian.co.kr/news/view/36120


어느 해인가 금호문화재단이 선정하는 "금호음악인상" 심사위원으로 참여했을 때의 일입니다. 열띤 토론으로 예정된 시간을 훌쩍 넘겨서야 겨우 수상자를 결정할 수 있었고 바깥은 이미 해가 져서 어두워진 다음이었습니다. 그런데 담당자가 전하길 그때까지 박성용 회장이 퇴근하지 않고 초조하게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박 회장의 관심과 열의에 감탄을 했고 어느 심사위원은 '진즉에 말하지 그랬느냐''그랬으면 좀 더 일찍 끝냈을 텐데'라는 말을 덧붙이기도 했습니다. 심사가 모두 끝났다는 보고를 받은 다음에야 그 자리에 잠시 들린 박 회장은 마치 자신이 상을 받는 것처럼 들떠서 어쩔 줄을 몰라 했고 그 자리에서 바로 담당자에게 심사비가 적으니 더 올리라고 지시를 했습니다. 그리고 심사위원들에게 저녁식사까지 대접하겠다고 했지만 따라 나서면 어느 식당을 갈지, 가면 무슨 음식을 먹게 될지를 너무나도 잘 일고 있었기에 사양했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출처 : http://www.dailian.co.kr/news/view/36120


마지막 식사 초대는 너무나도 뜻밖이었습니다. 한 동안 보지 못했고 딱히 만나야 할 일도 없는데 함께 저녁 하자는 전갈이 왔고 그렇게 불려 간 자리는 전혀 생각지도 못한 고급 식당이었습니다. 이 분이 어쩐 일인가 싶기도 하고 또 한 편으로는 혹시나 어려운 부탁이 있는 건 아닌지 걱정하고 있는 동안 이야기는 전혀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었습니다. 얼마지 않아 미국에 다녀 올 텐데 돌아오면 온갖 꽃과 나무를 다 가꾸는 식물원을 하겠다는 뜻을 밝혔고 이미 그 계획을 실현하기 위한 구체적인 준비가 진행 중이라는 말이었습니다. 지금까지 알고 있었던 그분의 관심은 오직 음악이었고 그중에서도 특별히 재능 있는 어린 음악도를 발굴하여 그 성장을 돕는 일을 무엇보다 큰 기쁨으로 여기는 분이었는데 느닷없이 식물원을 만드는 데 남은 여생을 바치겠다니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분명한 것은 전에 음악 이야기를 나눌 때만큼이나 신이 나서 눈빛이 반짝이는 걸 보면 틀림없이 뜻한 바 그대로 이루리라는 사실이었습니다. 그래도 채 실감이 나지 않아 멍하니 앉아 있는데 그는 식물이 왜 좋은지 속마음을 살짝 비추었습니다. 사람은 마음을 다해 아끼고 보살펴도 그걸 몰라주거나 뜻대로 되지 않는 경우가 많은데 식물은 언제나 정성을 들이는 만큼 크게 잘 자라서 보답을 한다는 말을 했습니다




그렇게 헤어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 느닷없이 부고가 날아들었습니다. 그제서야 미국으로 간다는 일이 암수술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오늘과 다른 내일을 꿈꾸며 그 꿈을 이루려는 뜻을 꺾지 않았던 것입니다. 한 때는 그를 보며 학자나 교수가 어울릴 것 같다고 생각했지만 이제는 그보다 더 잘 맞는 일이 무엇인지 알 것 같습니다. 가끔씩 그를 떠올릴 때면 언제나 밀짚모자를 쓰고 손에는 호미를 들고 모습입니다. 목에 두른 수건으로 이마에 맺힌 땀을 닦으면서 환하게 웃는 모습입니다.


  1. 정성진
    저 역시 Mecenat하면 떠오르는 분이 박성용회장님입니다. 이탈리아의 메디치가문 처럼 기억되어야 할 분인데 널리 알려지지 않은듯 해 안타깝기도 합니다. 음악영재 발굴부터 명품 고악기 무상임대등의 사업을 통해 세계속으로 달려나간 우리 음악인들을 보면 자랑스럽기까지 합니다. 고인의 뜻이 현재까지도 계속 이어지고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릅니다! 더 많은 기업들이 '금호'나 '이건'처럼 국민들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사업에 눈길을 돌리고 실천하면 얼마나 좋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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