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음악회 Talk Talk/클래식 톡톡'에 해당되는 글 87건

  1. 앙상블 유니송 창단 20주년 기념음악회 - 피호영교수님의 협연으로 더욱 빛난 앙상블 유니송 20주년 콘서트 간단 리뷰 2017.07.31
  2. [홍승찬 교수의 클래식 음악 이야기] 구레츠키 교향곡 3번 “슬픔의 노래” 2017.03.23
  3. [홍승찬 교수의 클래식 음악 이야기] 지휘자는 무엇으로 우리의 마음을 움직이는가? 이탈리아의 지휘자 카를로 마리아 줄리니와 아키야마 고지 감독 2017.03.21
  4. [홍승찬 교수의 클래식 음악 이야기] 하이페츠. 음악은 무엇으로 우리의 마음을 움직이는가 2017.03.20
  5. [홍승찬 교수의 클래식 음악 이야기] 나의 아버지, 테너 홍춘선 (8) 2017.02.06
  6. 바이올리니스트 민유경 공연 안내 Violinist Yookyung Min 바이올린 독주회 2016.12.09
  7. [홍승찬 교수의 클래식 음악 이야기] 메디치 가문에서 시작된 오페라와 발레의 역사. 프랑스와 이탈리아가 함께한 오페라. 2016.11.10
  8. [홍승찬 교수의 클래식 이야기] 러시아 음악의 향수, 소콜로프의 추억(러시아의 클라리네티스트 블라디미르 소콜로프) 2016.09.19
  9. [한불수교 130주년 기념 콘서트] 양성원의 프랑스 낭만음악 클래식 티켓 무료 배부 이벤트.(서울 예술의 전당 IBK 챔버홀) (2) 2016.08.30
  10. [한불수교 130주년 기념 콘서트] 양성원의 프랑스 낭만음악 클래식 티켓 무료 배부 이벤트.(영화의 전당 하늘연극장) (8) 2016.08.19

앙상블 유니송 창단 20주년 기념음악회 - 피호영교수님의 협연으로 더욱 빛난 앙상블 유니송 20주년 콘서트 간단 리뷰앙상블 유니송 창단 20주년 기념음악회 - 피호영교수님의 협연으로 더욱 빛난 앙상블 유니송 20주년 콘서트 간단 리뷰

Posted at 2017.07.31 19:23 | Posted in 이건음악회 Talk Talk/클래식 톡톡

201627회 이건음악회 인연으로 피호영 교수님 초대를 받아 앙상블 유니송 창단 20주년 기념 초청 연주회에 다녀왔습니다. 27회 이건음악회에서 연주하셨던 분들이 많이 나온다는 소식을 듣고 기쁜 마음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일단! 앙상블 유니송에 대한 간단한 소개 및 프로그램 소개 부터 해드리겠습니다.



[앙상블 유니송 프로필]
 
1997, 세계 최고의 명문 프랑스 파리 국립고등음악원 출신의 음악인들이 시작한 앙상블 유니송은 프랑스 파리 오디토리움 생 제르맹 데 프레에서의  창단 연주회를 시작으로 리옹 살 몰리에르, 파리 쌀 꼬르토, 파리 봉 파르퇴르 성당, 파리 생 에스프리 성당, 파리 미국인 교회, 불론뉴 쌀 파비옹, 앙드레 나바라 음악원, 프랑스 크레뛔이 오디토리움 등 프랑스 전국의 유명 연주홀에서 초청 및 기획 연주로 많은 호평을 받아온 음악 단체입니다.

특히 2004년에는 파리 13구 시청의 초청으로 연주한 앙상블 유니송에 대해 당시 블리시코 시장은 `우리 장소에서 유니송을 초청하게 되어 너무 기쁘다. 유니송은 이름처럼 음악으로 모두를 하나로 만드는 감동의 음악 앙상블` 이라고 극찬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2010, 유니송은 한국에서의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합니다. 멤버들도 프랑스 국립음악원 출신들을 더하게 되어 실내악과 오케스트라를 겸비한 프로그램으로 예술의전당 IBK챔버홀, 세종 체임버홀, 금호아트홀, 삼성전자 인재개발원 콘서트홀 등에서 연주회를 가지며 성신여대 피호영, 서울대 최우정, 연세대 신동일, 중앙대 지진경 교수 및 세계 정상급 오케스트라인 프랑스 국립 오케스트라 박지환, 뻬이 드라 로와르 국립오케스트라 박지윤, 로렌 국립오케스트라 고병우, 프랑스 깐느 오케스트라 허민석, 프랑스 마르세이유 오케스트라 김다민, 런던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이지현, 리옹 국립오케스트라 이승은, 암스테르담 오케스트라 이재원 등 국내외 정상급의 연주자들이 모여 구성된 최고 수준의 앙상블을 선보이는 음악단체입니다. 올해로 창단 20주년을 맞은 앙상블 유니송은 프랑스 플랜 국제 음악 페스티벌과 파리 생 메리 성당 연주회의 초청 공연이 예정되어 있는 등 한국을 대표하는 음악단체로 그 어느 때보다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지휘자 Jacques Gandard

자크 강다르는 5살에 바이올린을 시작했다. 이후 다수의 음악콩쿨에서 수많은 상을 받은 그는 파리 국립고등음악원에 진학하여 바이올린, 파이 음악의 분석, 조화, 대위법, 푸가와 오케스트레이션에 대해 공부하였다. 이후 여러 대가들의 마스터클래스에 참가하며 지휘법을 배우게 된다. 2001년에 젊고 유능한 신진 예술가들을 모아 카메라타 알라 Francese오케스트라를 설립하게 되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프랑스와 유럽에서 떠오르는 단체로 주목받게 되었고, 이탈리아, 스위스, 벨기에, 독일, 스페인, 인도, 한국 등 세계를 돌며 공연을 선보이게 된다. 지휘자로서의 그의 레퍼토리는 바로크 시대부터 현재까지의 교향곡, 오페라, 오라토리오 등 전 장르에 이르며 전 세계의 음악가와 청중들로부터 뛰어나 지휘로 극찬을 받고 있다. 또한 정기적으로 세계 콩쿠르의 우승자를 초청하여 공연을 진행하고 있다. 그의 끊임없는 음악에 대한 열정은 지휘뿐만 아니라 작곡가이자 편곡가로도 활동하게 만들었으며 특히나 그의 영화음악은 뛰어난 작품성을 가진 것으로 평가된다.

협연 피호영

약관 13세의 나이에 서울시향과 파가니니 협주곡을 협연하여 주목을 받기 시작한 피호영은 이화, 경향 콩쿠르, 한국일보 콩쿠르, 중앙 콩쿠르를 차례로 석권하면서 어린 나이부터 바이올린계의 차세대 선두주자로 나섰다. 서울예고와 서울대학교 음악대학을 실기수석으로 졸업하면서 프랑스 정부 국비장학생으로 도불하여 세계적인 바이올리니스트 겸 교수인 미셀 오클레에게 사사, 파리 국립 고등음악원을 수석 졸업하였고 파리 에꼴 노르말 음악원 실내악 과정 또한 수석으로 졸업하였다. 세계적인 교수인 이고르 오짐의 부름을 받아 스위스 베른 국립음악원을 졸업하고 스위스 베른 심포니와 협연하였다. 성신여대 음대학장을 역임하였으며 중앙일보 선정 올해의 음악가, 한국 실연자 협회 클래식 부문 대상을 수상하였고, 일찍이 5.16 민종상 음악부분 수상자로 선정되는 영예를 안기도 하였다. 현재 앙상블 유니송 음악감동, 코리안 심포니 오케스트라 이사와 DMZ 국제음악제 조직위원, 성신여대 교수로 활동하고 있다.

협연 Frederic Moreau

자신만의 해석과 카리스마 그리고 놀라운 기교로 청중을 사로잡는 음악가, 프레데릭 모로는 전세계의 프레스티지 콘서트홀과 수많은 페스티벌 등에서 개최되는 100여 개 이상의 콘서트에 매년 솔리스트로 초대되어, 현존하는 프랑스 동세대 아티스트들 중 가장 왕성한 활동을 보이는 바이올리니스트다. 18세 때, 국제콩쿠르에서 수상함으로써 독주자로서의 경력을 시작했다. 그는 바이올린과 실내 관현악 부문에서 만장일치로 1등상을 수상했으며,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파리 국립고등음악원에서 석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그느 쟝 푸르니에, 미셸 오클레르, 레지스 파스키에, 티보르 바르가, 예후디 메뉴힌과 같은 유명한 거장들에게서 바이올린을 사사받았다. 음악 디렉터와 일렉트릭 아티스트로도 활동하며 바로크 음악에서부터 현대음악까지를 초월한 연주 활동을 하고 있다. 세계 곳곳에서 마스터클래스와 순회 연주회를 진행하며 음악에 대한 사랑을 전파하고 있다.



[프로그램]

 M.Ravel

`Introduction and Allegro` for Harp, Flute, Clarinet and String Quartet.

Hp 피여나 / 1st Vn 피호영 / 2nd Vn 이상희 /  Va Erwan Richard / Vc 장하얀 / Cl 안종현

Fl 이은준

 

J.Brahms

Piano Quartet No.3 in C Minor, Op.60

Pf 이은지 /  Vn 고병우 /  Va Erwan Richard /  Vc 이숙정

 

J.S. Bach

Concerto for two Violins and Strings in D Minor, BWV 1043

1st Vn 피호영 / 2nd Fredric Moreau

 

J. Suk

`Serenade` for String Orchestra in E flat major, Op. 6



이렇게 공연 시작! 기대반 졸지말아야된다는 걱정반으로 공연장에 착석 하였습니다.

(참고로 저는 이건 직원이지만 클래식자도 모르는 클래식 초짜 입니다^^)

공연이 시작되면서 걱정했던것과 다르게 100분동안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몰입하여 흥미진진하게 하프, 바이올린, 첼로, 피아노, 소리에 매료되어 공연을 관람 하였습니다. (Good Good)

특히 살면서 처음 실제로 들어보는 하프 소리는 너무너무 신기하고 매력적 이였습니다.



연주회가 끝나고

홍승찬 교수님, 장하얀님, 피호영 교수님, 장린님, 류경주님 과 사진도 촬칵촬칵!! 연주가 끝나고 힘드실텐데 웃으면서 흔쾌히 촬영까지 해주시는 센스!! 역시 팬이에요~~ㅋㅋㅋ (지난 27회 이건음악회 때, 그리고 2017년에 있었던 독주회를 보며 완전 팬이 됐습니다. 멋지세요 피호영 교수님!)


다음에도 꼭 초대해주시면 꼭 가겠습니다.!! 혹시 티켓이 더 들어온다면, 이건음악회 팬 여러분들과 함께 공유도 하겠습니다.  참 멋진 공연 준비해주신 앙상블 유니송, 피호영교수님 외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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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승찬 교수의 클래식 음악 이야기] 구레츠키 교향곡 3번 “슬픔의 노래”[홍승찬 교수의 클래식 음악 이야기] 구레츠키 교향곡 3번 “슬픔의 노래”

Posted at 2017.03.23 08:30 | Posted in 이건음악회 Talk Talk/클래식 톡톡



현대음악은 말 그대로 우리가 살고 있는 동시대에 만들어진 음악일 따름입니다. 그런데 대게는 20세기 이후 지금까지 수많은 작곡가들이 모색하여 시도하고 있는 새롭고 실험적인 음악들을 떠올리기 마련입니다. 베토벤 바이러스에서 등장해서 유명해진 존 케이지의 “433란 곡은 아시다시피 433초간 아무런 연주도 하지 않는 곡입니다



악기에서 나는 소리만이 음악이 아니라 청중들의 수군거리는 소리는 물론 침묵의 순간 흐르는 시간 그 자체도 음악이라는 것입니다. 그런가 하면 어떤 곡에서는 악기를 부수거나 완전히 해체하는 것이 음악이 되기도 합니다. 이처럼 너무나 실험적이고 전위적인 것을 현대음악이라고 생각하는 탓에 클래식 음악을 좋아하는 이들조차 현대음악에는 별로 관심이 없거나 심지어 거부감을 가지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 때문에 연주회를 통해 들을 기회가 많지 않을 뿐더러 음반으로 만들어지는 일은 더더욱 드뭅니다. 그런데 1991년 이런 통념과 편견을 깨는 역사적인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폴란드의 대표적인 현대음악 작곡가 헨릭 구레츠키(Henryk Gorecki)의 교향곡 3번을 녹음한 음반이 빌보드 차트 클래식 음악 분야에서 31주 연속 1위를 차지하는 놀라운 기록을 세운 것입니다. 이 음반은 순식간에 100만장이 넘는 판매고를 올리면서 현대음악으로선 도저히 상상도 할 수 없는 관심과 호응을 이끌어냈습니다.





폴란드를 대표하는 현대음악 작곡가인 구레츠키는 단순하면서 보편적인 설득력을 가질 수 있는 음악을 추구했고 이 작품 또한 그의 생각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습니다. “슬픔의 노래라는 부제가 붙은 이 곡은 오래 전부터 폴란드에 전해 내려오고 있는 카톨릭 교회의 성가와 민요의 가사와 선율을 그대로 가져다 쓰고 있습니다. 그리고 교향곡이라고 하지만 3개의 악장 모두 소프라노가 부르는 노래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런데 그 가사의 단어와 구절을 찬찬히 읽다 보면 이 작품의 매력은 음악보다 오히려 가사에 담긴 내용에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게 됩니다. 그리고 얼핏 구레츠키가 추구한 보편적인 설득력이 슬픔이라는 정서에 모아지면서 이것이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인 것이 아닌가 하는 짐작을 하게 됩니다.


Henryk Górecki


 

1악장의 가사는 폴란드의 수도원에 전해지고 있는 성십자가 탄식 기도문을 그대로 옮긴 것입니다.

 

나의 아들,

내 몸에서 태어난 사랑하는 아들아

너의 상처를 나에게 나누어 다오.

언제나 내 마음 속에 너를 품고 있었던,

진심으로 너를 돌보았던 어미에게

너의 목소리라도 들려주어 기쁘게 해다오.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어가는 모습을 지켜봐야 하는 어머니 마리아의 기막힌 심정이 절절히 녹아 있는 곡이죠. 세상의 어머니들이라면 가슴이 먹먹하게 듣게 되는 곡입니다.

 



다음 2악장은 2차 세계대전의 악명 높은 수용소 아우슈비츠에 갇혔던 18세의 유태인 소녀가 가스실로 끌려가기 전에 남아 있는 어머니를 위로하기 위해 벽에 쓴 낙서를 가사로 삼고 있습니다.

 

비록 내가 먼저 떠나가지만 엄마 울지 마세요.

고결하신 성처녀 아베 마리아여 저를 도와주소서.

 

죽음의 수용소 아우슈비츠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카토비체에서 공부를 하고 그곳 국립음악학교에서 학생을 가르쳤던 구레츠키는 아마도 이 역사의 비극적인 현장에서 커다란 충격과 슬픔을 느꼈던 것 같습니다.

 




마지막 악장은 폴란드의 또 다른 역사의 비극을 고스란히 담고 있습니다. 독일과 러시아, 오스트리아와 같은 강대국들로부터 끊임없이 침략을 당했던 폴란드는 숱한 전쟁에서 헤아릴 수도 없이 많은 젊은 목숨들이 희생당한 나라이기도 합니다. 3악장에선 전쟁에서 아들을 잃은 어머니의 절절한 슬픔을 들려주고 있습니다.

 

어디로 갔는가 내 사랑하는 아들은?

전란이 일어났을 때 내 아들은 잔인한 적에게 죽임을 당했겠지

, 너 몸쓸 인간아 가장 성스러운 신의 이름으로 나에게 말해다오,

왜 내 아들을 죽였는지

이제 다시는 아들의 보살핌을 받을 수 없으니

내가 울고 울어 내 늙은 눈에서 흐르는 눈물이 강을 만들어도

그들은 내 아들을 살리지 못하리라

 


그렇습니다. 국경을 넘고 인종을 초월해서 모든 인간의 마을을 움직이는 감정은 슬픔입니다. 그리고 그 슬픔 가운데 가장 으뜸이라면 누가 뭐래도 자식을 잃은 어머니의 슬픔일 것입니다. 그래서 이토록 많은 사람들이 이처럼 공감하여 마음을 주었던 것입니다.




작곡가 구레츠키는 어느 인터뷰에서 슬픔은 형벌이자 동시에 축복이라고 했습니다. 슬픔은 오리가 인생을 살아가며 결코 피할 수 없는 것이며 인생의 일부로서 숙명적으로 받아들여야 할 존재가 아닌가 합니다. 지나간 슬픔들, 그리고 앞으로 부딪혀야 할 또 많은 아픔과 슬픔들을 구레츠키의 슬픔의 노래로 그랬듯이 우리 또한 이겨내고 극복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한 걸음 더 나아가면 축복으로 받아들여지리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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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승찬 교수의 클래식 음악 이야기] 지휘자는 무엇으로 우리의 마음을 움직이는가? 이탈리아의 지휘자 카를로 마리아 줄리니와 아키야마 고지 감독[홍승찬 교수의 클래식 음악 이야기] 지휘자는 무엇으로 우리의 마음을 움직이는가? 이탈리아의 지휘자 카를로 마리아 줄리니와 아키야마 고지 감독

Posted at 2017.03.21 08:30 | Posted in 이건음악회 Talk Talk/클래식 톡톡



2014년 일본 프로야구의 최후의 승자를 가리기 위한 재팬 시리즈의 패권은 퍼시픽 리그의 소프트뱅크 호크스에게 돌아갔습니다. 그런데 재팬 시리즈를 석권하자마자 우승팀 소프트뱅크 호크스의 아키야마 고지 감독의 사임 소식이 들려 사람들을 놀라게 했고 그 까닭이 투병중인 아내의 병간호 때문이라는 사실이 널리 알려지면서 일본 열도는 물론 지구촌 곳곳에 잔잔한 감동이 멀리 퍼져 긴 여운을 남겼습니다. 선수들이 전하는 바로는 일본시리즈를 앞둔 선수단 회식 자리에서도 조금도 힘들거나 흔들리는 내색 없이 승패의 책임은 내가 질테니 여러분은 스스로 어필하는 무대가 되길 바란다는 말로 선수들을 감싸고 격려했다고 합니다.




이 소식을 들으니 문득 40년 전에 있었던 비슷한 일이 떠오르면서 공동체를 이끄는 리더의 남다른 마음가짐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됩니다. 1984, LA 필의 음악감독이었던 이탈리아의 지휘자 카를로 마리아 줄리니 역시 아키야마 고지와 같은 이유를 들어 전격적으로 사임을 발표했습니다. 뇌출혈로 쓰러진 아내를 돌봐야 하기에 더 이상 음악감독직을 수행할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당시 그는 단원들 앞에서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지금까지는 아내가 나를 돌봐주었습니다. 이제는 내가 아내를 돌봐야 할 때가 되었습니다. 그동안 고마웠습니다.” 지휘자로서 이제 막 정상에 올라 전성기를 구가할 수 있었던 시기였기에 그의 이러한 결정은 당시에도 충격이었지만 그보다 더 뭉클한 감동은 그로부터 11년이 더 지난 1995, 부인이 세상을 떠날 때가지 밀라노 근교에 살면서 간병에 전념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LA 필의 감독이었던 당시 줄리니가 부지휘자로 발탁하여 기회를 주고 길을 열어주었던 이가 바로 정명훈이었고 이후로도 그가 세상을 떠나기까지 정명훈은 중요한 순간마다 그를 찾아 의견을 구했다고 합니다.


카를로 마리아 줄리니


줄리니 덕에 빛을 본 지휘자라면 베르나르트 하이팅크도 빼놓을 수가 없습니다. 1956년 암스테르담 콘서트헤보우 오케스트라와 케루비니의 레퀴엠을 연주하기로 예정되어있었던 줄리니가 갑작스런 병을 얻어 지휘를 할 수 없게 되었을 때 하이팅크가 그를 대신하여 지휘대에 올랐고 그 때의 성공으로 말미암아 그 다음 해에는 네델란드 방송 오케스트라의 상임지휘자가 되었고 1961년 마침내 암스테르담 콘서트헤보우 오케스트라의 상임지휘자로 발탁될 수 있었습니다. 이후 그가 상임지휘자로 재직하는 동안 암스테르담 콘서트헤보우 오케스트라는 여러 가지 어려움을 겪는 동안에도 흔들리지 않는 성장을 거듭하였고 그 결과 그가 물러나고 한참이 지난 2008년 드디어 세계적인 음악잡지 그라모폰이 세계적인 음악평론가들의 투표로 선정한 세계 최고 교향악단 톱20”에서 베를린 필과 빈 필을 젖히고 당당히 1위를 차지하였고 지금까지도 그 위치가 흔들리지 않고 있습니다.


베르나르트 하이팅크



Cherubini - Requiem in C minor


이렇듯 그가 암스테르담 콘서트헤보우 오케스트라의 오늘이 있기까지 기여를 한 여러 가지 역할을 살펴보면 당장은 음악적인 능력에서의 공헌이 두드러지겠지만 조금만 더 들여다 보면 그 못지않게 단원들을 존중하고 그들에 대한 책임을 다한 결과였음을 깨닫게 됩니다. 한 때 오케스트라가 재정적인 어려움을 겪으면서 단원들의 수를 줄여 그 위기를 극복하려 했을 때 하이팅크는 그들보다 훨씬 많은 보수를 받는 자신부터 먼저 해고하라며 단호하게 맞서서 단원들을 지켜냈습니다.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


카라얀이 죽고 그 뒤를 이어 누가 베를린 필에 입성하게 될 지를 두고 세상의 이목이 집중되면서 수 많은 지휘자들이 거론되었습니다. 한다하는 지휘자들의 이름이 다 오르내리다 결국 클라우디오 아바도가 선택되었지만 세상에 알려진 것과는 달리 베를린 필 단원들이 뜻을 모아 그들의 새로운 리더로 영입하려 했던 지휘자는 다름 아닌 베르나르트 하이팅크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정작 하이팅커가 지휘자라면 누구도 뿌리치지 못할 이 달콤한 제안을 정중하게 거절했다는 것입니다. 자신은 이미 나이가 너무 많으니 더 젊고 의욕적인 지휘자를 선택하는 것이 좋겠다는 조언까지 덧붙였다고 합니다. 이 사실은 공식적으로 알려진 내용은 아니지만 당시 그 과정에 참여했던 베를린 필 단원에게 직접 들은 것이고 그 자리에 다른 단원들도 함께 있었으니 아마도 틀림이 없을 것입니다. 물론 음악적인 능력에 대한 믿음이 있어서 그렇게 뜻을 모았겠지만 무엇보다 그들 모두가 신뢰하여 의지할 만한 인품이 그들의 마음을 움직였으리라 짐작이 갑니다.


사이먼 래틀


이제 얼마 후면 베를린 필은 지금의 상임지휘자 사이먼 래틀을 보내고 새로운 수장을 맞이해야 합니다. 몇몇 단원들의 말에 따르면 래틀은 소통을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고 합니다. 언제나 방문을 열어두고 있어 누구라도 미리 약속하지 않더라도 그와 대화를 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새로운 상임지휘자로 거론되는 인물 가운데 다니엘 바렌보임에게 자꾸 마음이 기웁니다. 아르헨티나에서 태어나 이스라엘에서 자란 그는 중동전쟁이 한참일 때 비행기로 날아가 포화 속에서의 연주도 마다하지 않았을 만큼 조국을 사랑하였습니다. 그러나 옳은 일을 위해서라면 조국에 맞서는 일도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유태인을 학살했던 히틀러가 그 누구보다 좋아했기에 이스라엘에서는 연주가 금지되었던 바그너의 음악을 온갖 반대와 협박까지 무릅쓰고 처음으로 조국 땅에서 연주한 것도 그였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 부당한 박해를 가하자 그에 대한 저항으로 팔레스타인 국적을 취득하기까지 했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두 나라 뿐만 아니라 중동 모든 나라의 화해와 평화를 위해, 더 나아가 세계의 평화를 염원하는 마음으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그리고 중동 여러 나라의 청소년들로 구성된 서동시집 오케스트라를 만들어 이끌어가고 있습니다.


다니엘 바렌보임


아키야마 고지 감독의 사임 소식에 이어서 또 한 사람의 일본 야구인의 소식이 마음을 움직입니다. 지난 시즌 서른여덟이라는 나이에 뉴욕 양키즈의 선발 투수들 가운데 가장 돋보이는 활약을 했던 구로다 히로키가 느닷없이 친정팀인 히로시마 카프스로 돌아오기로 했다는 것입니다. 양키즈는 벌써부터 히로키를 잡아두려고 설득을 했고 샌디에고 파드레즈는 198억원이라는 파격적인 연봉을 제시했지만 모두 거절하고 36억원을 제시한 히로시마 카프스와 계약했습니다. 그런데 198억원을 마다하고 36억원을 선택한 까닭이 정말 흐뭇하고 뭉클합니다. 2007년 더 큰 가능성에 도전하기 위해 그가 줄곧 몸담았던 히로시마 카프스를 떠나 LA 다저스로 갈 때 그는 그를 응원했던 팬들에게 힘이 남아 있을 때 히로시마로 다시 돌아오겠다는 약속을 했고 그래서 그 약속을 지키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의리의 남자´ 구로다, 日시리즈 마치고 은퇴


스포츠와 음악, 야구와 오케스트라, 같은 듯 같지 않고 다른 듯 다르지 않은 세계입니다. 같다면 그 어느 것이나 사람들이 모여 무엇인가를 이루고자 뜻을 모으고 있는 힘을 다하는 일이고 그것을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들려줌으로써 마치 그것이 스스로의 일인 듯 마음을 움직여 사로잡고 흔드는 일입니다. 사람들의 마음에 깊숙이 와 닿아 감동이 되고 위로가 되려면 이끄는 사람부터 그러고자 하는 마음을 한결같고 굳게 지켜서 그를 따르는 다른 이들의 믿음을 얻어 모두가 하나가 될 때 지켜보는 다른 사람들에게 또한 고스란히 그것이 전달되어 마음을 움직일 수 있을 것입니다. 이렇듯 세상을 움직이는 이치는 단순하기 짝이 없는데 단지 그것을 마음에 새겨 지키려는 이가 없어 이리도 어지러운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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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승찬 교수의 클래식 음악 이야기] 하이페츠. 음악은 무엇으로 우리의 마음을 움직이는가[홍승찬 교수의 클래식 음악 이야기] 하이페츠. 음악은 무엇으로 우리의 마음을 움직이는가

Posted at 2017.03.20 08:30 | Posted in 이건음악회 Talk Talk/클래식 톡톡



어느 여름날 토요일 오후였습니다. 몸담고 있는 학교의 학생들과 함께 경상남도 한 농촌의 마을회관으로 내려가 음악회를 열었습니다. 예술의 혜택을 제대로 누리지 못하는 곳에 사는 사람들을 위해서 예술 하는 사람들이 직접 찾아가 공연을 보여주고 들려주자는 뜻이었습니다. 그리고 함께 하는 학생들이 이런 경험을 통해 예술이 무엇이며, 또 무엇이어야 하는지를 몸소 깨닫게 하려는 뜻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리허설을 마치고 공연을 막 시작하려는 순간 전혀 예상하지 못한 뜻밖의 일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청중이라고는 일곱 명이 전부였고 그나마도 코흘리개 다섯에 할머니 두 분이었습니다. 사정을 알아보니 농번기라 휴일도 없이 모두 일하러 나갔고 일손을 거들지 못해 어린 손주라도 돌보겠다며 집에 남은 할머니 두 분이 마실을 나선 참이었습니다. 말하자면 그쪽 형편을 헤아려 찾아간다는 것이 전혀 사정도 모르고 헛발질을 한 셈이었으니 처음부터 잘못 계획한 일이었던 것입니다. 덕분에 서른 명이 넘는 출연진에 일곱 명의 청중이라는 어이없는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맥이 빠져 공연을 못하겠다는 학생들에게 공연의 성패는 청중의 수가 아니라 감동의 크기라고 말하며 여기 있는 한 사람마다 잊다 못할 추억을 남기고 가자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무대 옆에 따로 의자를 놓고는 공연이 진행되는 순서마다 어린이 한 명씩을 차례로 불러 그 의자에 앉히고 이름을 물었습니다. 그리고 그 이름을 크게 부르며 이제 연주할 곡을 잘 듣고 기억하라며 이 순간만큼은 세상에 오직 너만을 위한 곡이기 때문이라고 말해주었습니다. 시간이 갈수록 일곱 명의 청중은 머리를 무엇에 맞은 것처럼 넋이 나간 표정이었고 공연이 끝나고도 쉽게 자리를 뜨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남은 사람들도 그랬겠지만 그들을 두고 떠나는 학생들이 더 뭉클하고 뿌듯한 모습이었습니다.

 

관객들이 이것 뿐????


돌아오는 길에 문득 생각이 났습니다. 오래 전 그 누군가는 단 한 사람의 청중을 앞에 놓고서도 연주를 했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그 누군가는 다름 아닌 전설의 바이올리니스트 야사 하이페츠였습니다. 그날 연주회는 전장의 군인들을 위한 위문공연이었습니다. 그것도 비가 쏟아져 진창이 되어버린 야외에서의 연주였습니다. 이런 날씨에 아무도 오지 않을 테니 하지 말자는 말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죽을 만큼 아프지 않은 이상 연주를 하겠다."며 고집을 부렸습니다. 관객이라고는 객석 저 멀리 우산을 쓴 병사 한 사람이 전부였지만 그는 여느 때와 다름 없이 최선을 다한 연주를 했습니다. 그리고 세월이 한참 흐르고 난 뒤 그는 당시를 회상하며 "지금껏 했던 연주들 가운데 최고였다."고 말했습니다.




19세기가 파가니니의 시대였다면 20세기는 누가 뭐래도 하이페츠의 시대였습니다. 하이페츠에 한발 앞서 세상을 놀라게 했던 크라이슬러조차도 어린 하이페츠의 연주를 듣고는 함께 있던 사람들에게 "우리는 이제 바이올린을 연주할 필요가 없어졌다." 고 말할 정도였습니다. 상트페테르부르크 음악원에서 그를 가르쳤던 거장 레오폴트 아우어는 자신이 가르치는 제자들 가운데 뛰어난 이들의 이름을 언급하면서 하이페츠의 이름을 뺀 까닭을 묻자 "하이페츠는 신의 제자"이기 때문이라는 말을 남기기도 습니다.1901, 러시아의 빌니우스에서 태어나 세 살부터 아버지에게 바이올린을 배운 하이페츠는 일리아 말킨을 거쳐 러시아 최고의 바이올리니스트 레오폴트 아우어의 제자가 되었지만 여덟 살에 벌써 상트페테르부르크 음악원을 졸업했고 열 살에는 이미 유럽을 누비며 세상에서 가장 뛰어난 연주자가 되어 있었습니다




1917년 미국으로 건너가 1972년 어깨를 다쳐 어쩔 수 없이 악기를 놓을 때까지 평생을 정상의 자리를 지키며 어디서든 최고의 찬사를 누렸습니다. 그런 그였지만 어느 한 순간도 흐트러지지 않았고 어떤 연주에서도 빈틈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늘 차갑다는 말을 들어야 했지만 사실 그의 가슴은 누구보다 뜨거웠고 그래서 어려운 형편의 제자들을 아무도 모르게 도왔는가 하면 자선 공연이나 위문 공연이라면 언제든 주저하지 않고 나섰습니다. 1923년 일본 공연을 불과 몇 주 앞두고 관동대지진이 일어나자 폐허가 된 일본을 방문하여 무너진 건물들 사이에서 예정에 없던 자선 연주회를 열었는가 하면 2차 세계대전 중에는 전선의 병사들을 위한 위문 공연에 앞장섰고 연주회 도중 폭격을 받아 대피하는 위험을 겪고도 뜻을 굽히지 않았습니다. 어디에서 무엇을 하든 그는 늘 무표정한 모습이었지만 위문공연 당시 병사들과 어울려 함께 찍은 사진에서만큼은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환하게 웃는 모습이었습니다.

 

Jascha Heifetz plays Tchaikovsky Violin Concerto: 1st mov.



제가 좋아하는 김사인 시인의 시 조용한 일입니다. 이제 곧 가을입니다. 여러분도 늘 음악이 이처럼 철 이른 낙엽이었으면 합니다. 슬며시 곁에 내려서는 있는 듯 없는 듯 그렇게 그냥 머물렀으면 좋겠습니다.

 

 

조용한 일

김사인

 

 

이도 저도 마땅치 않은 저녁

 

철이른 낙엽 하나 슬며시 곁에 내린다

 

 

그냥 있어볼 길밖에 없는 내 곁에

 

저도 말없이 그냥 있는다

 

 

고맙다

 

실은 이런 것이 고마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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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승찬 교수의 클래식 음악 이야기] 나의 아버지, 테너 홍춘선[홍승찬 교수의 클래식 음악 이야기] 나의 아버지, 테너 홍춘선

Posted at 2017.02.06 10:50 | Posted in 이건음악회 Talk Talk/클래식 톡톡



어려서 살던 집엔 대문 옆에 화장실이 따로 하나 더 있었습니다. 중학교 3학년, 홀로 새벽에 일어나 화장실 창문을 열고 담배 연기를 뿜으며 짜릿한 일탈을 만끽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누군가 화장실 문을 연거푸 노크하더니 다급하지만 나지막한 목소리로 속삭였습니다. "엄마 깼다." 아버지였습니다. 벌써부터 알고 계셨지만 모르는 척 하셨던 겁니다. 그날 이후로 담배를 끊었습니다.

 

 

입시를 앞둔 고 3 무렵도 마냥 느긋하기만 했습니다. 일요일 점심을 먹고 잠들어서는 해질 때까지 일어나지 못했습니다. 잠결에 누군가 방문을 열고 들어와서 한참을 지켜보며 서 있는 걸 느낄 수 있었습니다. 부시시 눈을 비비며 일어나 앉았더니 아버지였습니다. 안방으로 건너오라 하시기에 정말이지 이번에는 그냥 넘어가지 않으시겠구나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휙 돌아서서 나가시면서 뜻밖에도 "명화극장 한다."는 말씀을 여운처럼 남기셨습니다. '명화극장'은 일요일 저녁마다 해외 명화를 보여주는 TV 프로그램이었습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서울에서 혼자 살 때의 일입니다. 일요일이라 모처럼 늦잠을 자는데 전화벨 소리에 단잠을 깼습니다. "점심 먹자." 아버지였습니다. 도착해서 전화할 테니 내려오라고 하셨습니다. 대구에서 두시간 반만에 운전을 해서 도착하신 아버지는 골목 골목을 돌고 돌아 어느 허름한 설렁탕집으로 들어가시더니 앉자마자 뜬금 없는 질문을 던지셨습니다. "니 사람들이 '로미오와 줄리엣'을 보고 와 그리 좋아하는지 아나?" 어이가 없어 멍하니 있었더니 "임마, 그건 세상에 없는 일이라서 그런기다." 라고 하셨습니다. 장남이 서른이 되도록 결혼할 기미가 보이지 않으니 마냥 기다릴 수가 없으셨던 모양입니다. 아들이 어려서부터 소설과 영화에 푹 빠져 있었으니 혹시 낭만적이고 이상적인 사랑을 꿈꾸느라 연애를 못하는 건 아닌지 걱정이셨던 겁니다. 듣고 있는 아들의 표정을 보니 그건 아니라는 판단이 서자 그렇다면 설마 결혼을 놓고 계산을 하느라 짝을 찾지 못하는가 싶어 언성을 높이셨습니다. "니 요즘 젊은 놈들이 얼마나 한심한지 아나? 마누라가 아니라 원더우먼을 찾으니 그기 어디 있나? 날 편안하게 해주는 여자가 좋거든 집구석에 들어가면 바깥 일은 입도 뻥긋하지 마라. 출세가 좋고 돈이 좋아서 그걸 거들어주길 바라면 마누라가 아를 안놓던지, 빨래를 안하던지, 밥을 안한다고 해도 암 말도 하믄 안된다. 간혹 그 두 가지를 다 잘하는 여자가 있긴 있더라. 그런데 임마, 그기 니하고 무슨 상관이고?"

 

홍승찬 교수

 

70년대초 장충동에 국립극장이 들어서면서 아버지는 대구에서 서울을 이웃집 드나들 듯 다니셨습니다. 대구 효성여대(지금의 대구 카톨릭 대학교) 음대 학장이면서 국립 오페라단 주역이셨던 아버지는 오전에 수업이 끝나면 오후에 차를 운전해서 국립극장으로 가서 오페라 무대에 서셨고 밤늦게 다시 차를 운전해서 대구로 내려가는 강행군을 날마다 되풀이하셨습니다. 그런 악조건에도 남들이 꺼리는 초연을 주로 도맡으셨고 그렇게 십년이 넘도록 우리나라 오페라 공연의 역사를 새로 쓰셨습니다. 그런 가운데 몸담은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 뿐만 아니라 행정 책임자로서 또한 믿을 수 없는 성과와 업적을 쌓으셨습니다. 단과대학 음악학부에서 예술대학으로, 다시 음악대학으로 확대 개편하는 과정의 책임을 맡아 이끄셨는가 하면 학교 안에 여학생들만으로 이루어진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오케스트라를 만들고 직접 지휘자로 나서서 서울을 비롯한 전국 주요 도시를 오가며 연주회를 열었습니다.

 

출처 : http://gall.dcinside.com/board/view/?id=cu&no=22016

 

날마다 오케스트라 연습이 밤늦게까지 이어지자 집에 가는 차편이 문제였습니다. 그런데 학교 버스를 운전하는 기사들이 자발적으로 학생들의 귀가를 돕겠다고 나섰고 학생들 하나하나 집앞까지 다 가서 내려주었습니다. 아버지는 명절에도 집에 없으셨습니다. 그때마다 늘 집에 있던 승합차에 고기와 떡, 막걸리를 싣고 학교로 가셨습니다. 남들 쉬는 날에도 학교에 나와 궂은 일을 해야 하는 직원들을 다 불러서 가져간 음식과 술을 나누고 선물을 돌렸습니다. 학교에서 일하는 누구라도 딱한 처지에 놓이게 되면 결코 외면하지 않으셨습니다. 고향을 떠난지 오래지만 지금도 일 때문에 가끔 대구에 내려갑니다. 언젠가 동대구역에 내려 택시를 탔더니 기사분이 자꾸 백미러로 저를 쳐다보기에 기분이 언짢았습니다. 그런데 그분이 조심스럽게 "혹시 홍학장님 자제분 되십니까?" 하고 묻는 것이었습니다. 그렇다고 대답했더니 개인택시 하기 전에 효성여대에서 운전기사로 일했었다며 큰 딸 대학 등록금이 없어 못보낼 형편이었는데 아버지 도움으로 졸업까지 시켰다고 했습니다. 그리고는 한사코 택시비를 받지 않겠다면서 이렇게라도 마음의 짐을 조금이나마 덜게 해달라고 사정했습니다.

 

 

이렇듯 열 사람이 해도 모자랄 일을 홀로 다 감당하셨기에 무쇠같은 체력도 소용이 없었습니다. 워낙 말씀이 없으셔서 짐작할 따름이지만 몸이 아니라 마음을 다쳐 더 힘드셨을 겁니다. 사람들이 다 그 마음 같을 순 없었을 텐데 이미 모든 걸 꿰뚫어보시고도 안타까움과 미련을 끝내 떨쳐버리지 못하셨던 겁니다. 서른 다섯, 처음 교수가 되어서 아버지께 달려갔습니다. 소파에 앉아 저녁신문을 보고 계시기에 임명장을 내밀었더니 힐끗 보시고는 다시 신문을 펼치면서 말씀하셨습니다. "난 그 나이에 학장 했다."돌아가시기 전 마지막 대화는 병원 침대맡이었습니다. 마침 혼자 병실을 지키고 있는데 고통으로 일그러진 아버지의 얼굴이 너무나 가슴 아팠습니다. 이제 정말 얼마 안 남으셨구나 싶어 얼른 다가가 귓가에 대고 말했습니다. "아버지! 혹시 꼭 보고 싶은 분 한 분만 말씀하세요. 제가 경찰청이든 어디든 다 쑤시고 뒤져서 모셔 올게요!" 잠시 일그러진 얼굴이 펴지면서 벌어진 입가에 미소가 번졌습니다. 이제서야 드디어 아버지가 마음 속에 간직한 누군가를 알게 되는구나 생각하고 있는데 미소짓던 얼굴이 무표정하게 바뀌더니 짧게 단 한 마디를 남기고 돌아누우셨습니다. "없다."그것이 아버지와의 마지막 대화였습니다.

 

 

돌아가신 그 해 겨울은 유난히도 추웠습니다. 출근하는 길, 꼬리를 물고 선 차 속에서 서리 낀 창밖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문득 아버지가 떠올랐습니다. 꽁꽁 얼어붙은 땅속에서 얼마나 추우실까 생각하니 어느덧 눈물이 흘러 시야를 가렸습니다. 갓길에 차를 세우고 눈물을 닦으려는데 끝내 설움이 복받쳐 통곡을 하고 말았습니다. 집으로 갈 땐 뭐라도 손에 들고 가게 됩니다. 끼니가 될 만한 것이 아니면 군것질 거리라도 꼭 챙깁니다. 밤에 살찌는데 왜 이런 걸 가져오느냐 는 핀잔을 들으면서도 말입니다. 돌아가신 아버지도 그러셨습니다. 선술집에 안주로 나오는 갖가지 구이 종류를 따로 챙겨오셨습니다. 밤늦게 잠든 우리를 깨워서 입에 넣어주셨습니다. 잠이 덜 깨서 눈을 감은 채 입만 벌리고 받아먹었습니다. 술 냄새와 담배 냄새에 고기가 불에 그을린 연기 냄새까지 뒤섞인 아버지의 체취가 코 끝을 찔렀습니다. 눈을 떠서 볼이라도 비비지 못한 것이 두고두고 마음에 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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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홍경희
    이건음악회에서 홍교수님의 진솔하고 인간적인 멘트가 인상 깊었는데,
    그 뒤에 아주 훌륭한 아버지가 계셨군요 노래도 잘 들었습니다 ^^
  2. 고은희
    동화같은 따뜻한 이야기네요. 아버지와의 좋은 추억을 많이 공유하고 있는 선생님이 부럽기도 합니다.
  3. 윤현준
    따뜻한 글 감사합니다!
  4. 효성여고
    1977년 효성여고 2학년때.
    홍춘선 교수님을뵈었습니다.
    학교 강당에서 전교생에게 음악선생님의 반주에 맞춰 노래를 불러 주셨죠. 그때의 그노래 중에 '오 솔레미오' 마이크 없이도 큰 강당을 가득채우던
    아름다웠던 노래의 감동은 경이로움과 충격이었고, 효성여대 오케스트라를 데려오셔서 슈베르트의 미완성교향곡을 설명까지 해주시며 들려주셨죠.
    그 시절로서는 참으로 귀한 경험이었습니다.
    클래식 음악에 눈을 뜨게 해 준 분이었습니다.
  5. 효성여대 피아노과 81학번학번
    뵙고싶은 교수님. 훌륭하신 선생님. 참 교육자이신 교수님 소식에 잠시 눈시울이 붉어지네요~그 옛날교수님과 수업하던 생각이나 흐뭇함에 미소가 지어지네요. 수업하시랴 오케스트라에 합창지도에... 정말 몸이 열개라도 모자라실 만큼 많은 활동하시며 손수 전체 음대를 이끌어 가시며 활동하시든 모습이 지금도 생각납니다. 그 많은 학생 이끌고 경주로 연주여행 간 생각이 나네요.연주 뒷풀이로 호텔나이트로 학생들 모두 데리고 가셔서 우린 생애 처음 스트립쇼를 보며 그 놀라움을... 지금도 그때를 잊을수가 없네요.지방 여대에서 피아노밖에 모르고 교복입고 다니던 학창시절... 그래도 누구하나 위험해 질까봐 학생들 뒤에서 챙겨주시던 모습이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에 남아있어요. 그 중 제일은 교수님이 부르시던 오페라곡.독일가곡들은 지금도 잊을수가 없어요. 그 큰 몸집에서 그렇게 아름다운 테너의 목소리를 우린 가까이서 듣고 공부하였으니 참 행복하였네요.이렇게 소식 접할수 있어 감사합니다.홍춘선교수님 당신은 참 멋지고 아름다우신 분이싶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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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올리니스트 민유경 공연 안내 Violinist Yookyung Min 바이올린 독주회바이올리니스트 민유경 공연 안내 Violinist Yookyung Min 바이올린 독주회

Posted at 2016.12.09 13:59 | Posted in 이건음악회 Talk Talk/클래식 톡톡

27회 이건음악회에서 멋진 연주를 들려주셨던 바이올리니스트 민유경선생님께서 독주회를 하신다는 소식입니다. 이건음악회 팬여러분들과 소식 공유합니다.  12/10 예술의전당 IBK 쳄버홀 / 12/07 광주 유스퀘어 문화관 금호아트홀입니다. 아래 내용 참고하셔서 관람 해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


멋진 공연 기대합니다. 



Violinist Yookyung Min 민유경


민유경은 특유의 맑고 청아한 음색, 화려한 기교에 더해진 기품있는 서정성으로 폭넓은 레퍼토리를 소화하고 있는 국내 톱 솔리스트 중 하나이다. 감수성 풍만한 연주로 다른 예술가들에게도 영감을 주는 이 시대의 뮤즈로, 작고한 시인이자 평론가 김영태는 그녀에게 두 편의 시를 헌정하기도 했다.

 

예원학교를 거쳐, 서울예고와 서울대학교 기악과에 수석 입학했고, 1학년 재학 중 스승인 김남윤 교수를 따라 한국예술종합학교에 재입학한 후 3년 만에 조기 졸업하여 화제를 모았던 그는 한국예술종합학교 재학 중이던 1995, 영국의 Yehudi Menuhin 국제콩쿨에서 3위에 입상하면서 다시 한번 음악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순수 국내파 음악학도, 특히 이름도 알려지지 않은 신생학교 학생으로서의 국제무대 정식 데뷔로 당시 음악계의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그 후 도미하여 The Juilliard School 에서 석사를, Manhattan School of Music에서 영예로운 휘태커 기금의 수혜자로 오케스트라 부문 최고연주자 과정을 수료했다. 그 뒤 뉴욕주립대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국내에서는 한국일보 콩쿨 1, 중앙일보 콩쿨 1, KBS 신인음악 콩쿨 대상 등 주요 대회를 두루 석권하였고, 해외에서는 Corpus Cristi Young Artist 콩쿨 1, Manhattan Sibelius 콩쿨 1, 특히 Washington 국제 콩쿨에서는 현악부문 1위 및 청중상 등 3개의 특별상을 휩쓸었다.

 

김남윤, 배익환, 이성주, 정준수, 글렌 딕테로, 도널드 와일러스타인, ()미첼 스턴을 사사했다. KBS 교향악단, 서울시향, 부천시향, 수원시향, 성남시향, 울산시향, 충남교향악단, 청주시향, 뉴서울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서울대 오케스트라, 코리안 심포니, 강남 심포니, 한국예술종합학교 오케스트라, Tutti Ensemble 뿐만 아니라 영국 St. John Square 오케스트라, Manhattan Chamber Sinfonia, 우크라이나 Kharkov Philharmonic, Sofia Soloists Chamber Orchestra 등과 함께 국내외에서 활발한 연주활동을 펼쳐왔다. 또한 일본 쿠사츠 음악축제, 예술의전당 초청시리즈, 뉴욕 St. John Cathedral, 뉴욕 Carnegie Hall, KBS 콘서트, 이강숙 초청시리즈, 워싱턴 Philips Collection, 금호아트홀, 금요콘서트 시리즈, 호암아트홀, 안익태 기념음악회, 대구 유니버시아드 개막 축하 공연, 서울 뮤직 페스티벌, 예술의전당 브런치 콘서트, 모짜르트 협주곡 전곡 연주 시리즈, 한국-카자흐스탄 수교음악회 등에 초청되어 연주하였으며, 슈베르트 전곡 연주, ‘로맨틱 에코시리즈 3, 브람스 전곡 연주등을 성황리에 마쳤다. 음반으로 KBS가 제작한 한국의 연주가 시리즈’, '크리스마스 환타지', ‘Day by day'가 있다.

 

현재 성신여대에서 교수로 재직중이며 화음챔버, SCS의 멤버로 활동중이다. 1712 죠셉 과르네리 바이올린으로 연주하고 있다.

 

Pianist / 정재원

 

-서울대 콩쿨 우승, 중앙콩쿨, 동아콩쿨입상, 미국 Joanna Hodges 국제콩쿨 1,

오스트리아 Mozart 국제콩쿨 2(2002), Grieg 국제콩쿨 1(2003), 영국 리즈콩쿨, 벨기에 퀸엘리자베스 콩쿨 Semifinal상 수상, 이탈리아 Busoni 국제콩쿨 부조니최고해석상 수상(2011)

-서울대 오케스트라, 인천시향, 원주시향, 부천시향, 서울바로크앙상블, Mozarteum Orchestra Salzburg, Orchestre Royal de Chambre de Wallonie 등과 협연, 이탈리아 부조니 페스티발, 노르웨이 그리그 페스티발, 핀란드 Suolahti 페스티발 등에 초청 연주

-서울대 재학 중 도오하여 잘츠부르크 모차르테움 국립음대 학사, 석사 최우수졸업

-이탈리아 이몰라피아노아카데미 (Diplom), 하노버국립음대 최고연주자과정(Konzertexamen) 졸업

-2011년 스타인웨이 영아티스트, 2013년 인천문화재단 신진예술가로 선정

-현재 성신여자대학교 음악대학 교수

 




P R O G R A M

 

Wolfgang Amadeus Mozart (1756~1791)

I.

Sonata for Piano and Violin in D Major, KV. 306

Sonata for Piano and Violin in G Major, KV. 379

6 Variations for Piano and Violin in g minor, KV 360 on "Hélas, j'ai perdu mon amant"

Sonata for Piano and Violin in C Major, KV. 303

Sonata for Piano and Violin in F Major, KV 547

 

II.

Sonata for Piano And Violin in F Major, KV. 376

Sonata for Piano and Violin in B♭ Major, KV. 378

Sonata for Piano and Violin in e minor, KV. 304

Sonata for Piano and Violin in A Major, KV. 526

 

III.

Sonata for Piano and Violin in E♭ Major, KV. 302

Sonata for Piano and Violin in E♭ Major, KV. 481

Sonata for Piano And Violin In F Major, KV. 377

Sonata for Piano And Violin in B♭ Major, KV. 454

 

IV.

Sonata for Violin and Piano in E♭ Major, KV. 380

Sonata for Violin and Piano in A Major, KV. 305

Sonata for Violin and Piano in G Major, KV. 301

12 Variations for Piano and Violin in G Major, KV359 on "La bergere Celimene"

Sonata for Violin and Piano in C Major, KV. 2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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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승찬 교수의 클래식 음악 이야기] 메디치 가문에서 시작된 오페라와 발레의 역사. 프랑스와 이탈리아가 함께한 오페라.[홍승찬 교수의 클래식 음악 이야기] 메디치 가문에서 시작된 오페라와 발레의 역사. 프랑스와 이탈리아가 함께한 오페라.

Posted at 2016.11.10 11:54 | Posted in 이건음악회 Talk Talk/클래식 톡톡



메디치 가문이라면 지금도 재력가의 대명사로 불릴 만큼 막대한 부를 축적했을 뿐만 아니라 대대로 피렌체를 지배하면서 예술가들특히 보티첼리와 라파엘로미켈란젤로와 같은 르네상스 시대의 대표적인 미술가들을 후원하였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입니다지금도 메디치의 본산이었던 우피치 궁은 박물관으로 바뀌어 메디치 가문이 소장했던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대표적인 미술품들을 고스란히 간직한 채 사람들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이곳에 전시된 소장품들을 다 돌아보려면 하루가 모자라고 이틀도 부족할 만큼 방대할 뿐만 아니라 그 대부분이 르네상스 시대를 대표하는 걸작이라는 것이 놀라울 따름입니다. 그런데 그보다 더 놀라운 사실은 이 모두가 메디치라는 한 가문이 의뢰하고 소장한 미술품이란 것입니다.



이처럼 메디치라면 주로 회화나 조각과 같은 미술이나 건축의 애호가이자 후원자로 알려져 있지만 다른 예술 장르나 학문을 포함한 문화 전반에 걸쳐 두루 영향을 미쳤습니다. 그 가운데 특히 오페라와 발레의 경우 그 탄생부터가 메디치 가문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데 그것이 모두 프랑스 왕실과의 혼인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이 흥미롭습니다. 오페라가 피렌체에서 탄생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바르디 백작의 사랑방에 모였던 당대의 학자들과 예술가들이 문헌 속의 기록으로만 남은 그리스의 비극을 재현하고자 서로 협력하여 새롭게 만든 것이 오페라라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지만 현존하는 최초의 오페라가 메디치 가문의 후광을 업고 탄생했다는 사실은 그다지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1600 10프랑스 왕 앙리 4세는 메디치 가문의 딸 마리아 데 메디치를 신부로 맞아 결혼식을 올렸고 피렌체에서는 이를 축하하고 널리 알리기 위한 대규모 축제가 벌어졌습니다. 축제의 볼거리로 오페라를 만들기로 했고 여기에는 당시 피렌체를 대표할 만한 세 작곡가가 동원되었습니다. 결혼식이 거행된 다음날인 10 6일에는 에밀리오 데 카발리에리가 작곡한 ‘쥬노네와 미네르바의 경쟁이 팔라치오 베키오에서 벌어진 향연 가운데 공연되었고 다음날에는 피티 궁전에서 야코포 페리의 ‘에우리디체가 무대에 올랐습니다. 그리고 10 9줄리오 카치니의 ‘체팔로의 납치가 우피치 궁에서 그 모습을 드러내면서 피렌체 시민 모두가 오페라라는 새로운 공연예술을 알게 되었고 그 소문이 이탈리아 전역을 넘어 프랑스와 유럽으로 전파되었습니다.



발레의 종주국이라면 프랑스를 떠올리겠지만 그 원형을 수출한 나라는 이탈리아였습니다. 누구나 짐작하는 것과는 달리 발레의 탄생이 오페라보다 앞섰고 이 또한 메디치 가문과 프랑스 왕실의 결혼으로 말미암은 것입니다. 메디치 가문의 딸 카테리나가 프랑스의 왕실로 시집가면서 가져간 무수한 혼수품들 가운데 발레의 씨앗도 포함되었던 것입니다후에 카테리나의 남편은 앙리 2세가 되었고 아들인 앙리 3세의 치세에 기록으로 남은 최초의 발레를 만들도록 지시한 이가 바로 카테리나, 즉 카트린느였습니다.



앙리 3세의 모후였던 카트린느가 며느리인 왕후 루이즈의 여동생 마르게리트 드 로랭과 조아유 공작의 결혼식 피로연을 위해 만들었던 최초의 발레는 춤과 음악그리고 노래와 시낭송까지 결합한 형태였습니다. 그녀가 시집올 때 데려온 시종 중에 음악과 춤에 정통했던 발다사리오 다 벨지오조소 (프랑스 이름으로는 Bathasar de Beaujoyeulx)에게 공연을 맡겼습니다. 오늘날 라인의 코믹 발레(원제는 Ballet Comique de la Royne)로 불리고 있는 이 작품은 그리스 신화의 키르케 이야기를 소재로 삼았고 결국은 결국 지혜의 여신 아테나가 키르케를 물리치고 여왕 루이즈에게 찬사를 바치는 것으로 막을 내리게 됩니다



당연한 상상이겠지만 프랑스 궁중에서 싹튼 발레라는 새로운 예술은 당시 결혼식 피로연에서 공연되었던 오페라와 크게 다르지 않은 모습이었을 것입니다. 오늘날의 장르 구분으로 보자면 문학과 연극음악과 무용이 한 데 어우러졌던 것이 고대 그리스의 비극이었고 그것을 새롭게 재현하겠다는 것이 오페라였다면 그 안에 당연히 무용이 중요한 요소로 자리 잡고 있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후 이탈리아의 오페라가 노래와 음악 중심으로 발전해갔다면 프랑스의 발레는 노래 대신 시와 춤을 택했고 결국에는 춤으로 모든 것을 표현하고자 했던 것입니다. 영화 “왕의 춤을 보면 루이 14세가 출연하는 발레 공연에서 라신이 자신의 시를 스스로 낭송하는 모습이 재현되고 있습니다. 그 장면에서 왕은 온 몸에 황금 칠을 하고 태양의 신 아폴로를 춤추고 있고 라신은 그런 아폴로즉 프랑스의 국왕 을 찬양하는 시를 읊조리고 있어 태양 왕이라는 루이 14세의 별칭이 어떤 연유로 비롯되었는지를 짐작케 합니다.



루이 14세는 열세 살부터 몸이 불어 춤을 출 수 없을 때까지 수많은 발레에 직접 출연했습니다. 더불어 직업 무용수를 양성하기 위해 1661년 왕립 무용학교를 설립하였고 이 전통이 오늘날 파리 오페라극장의 발레단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작곡가 륄리를 교장에 임명했고 보샹으로 하여금 무용수들을 가르치고 훈련시키도록 했습니다. 보샹은 오늘날까지 발레의 기본동작으로 강조되고 있는 ‘다섯 가지 다리의 포지시옹을 창안하였고 륄리는 처음으로 여성을 발레 무대에 출연시켰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마임이 고안되어 시의 낭송 없이 발레의 동작만으로 이야기를 끌어나갈 수 있게 되면서 독립적인 무대예술로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인류의 역사를 뒤돌아보면 어느 국가나 민족이 크게 부흥하여 그 주위를 평정하고 위세를 떨쳤을 때안으로는 학문이나 예술을 크게 장려했을 뿐만 아니라 특히 지도적 위치에 있는 개인들이 앞장서서 학문과 예술의 융성을 도모코자 가진 능력과 재력을 희사했던 경우가 비일비재합니다르네상스 시대를 주도했던 피렌체에서는 메디치 가문과 바르디 백작 등이 예술과 학문을 장려하는 데 앞장섰는가 하면 이를 본받고자 했던 프랑스 왕실, 특히 부르봉 왕가의 전성기를 열었던 루이 14세 또한 주변에 당대 최고의 예술가들을 거느리면서 그들의 창작활동을 크게 장려했습니다



우리에게도 이에 못지 않게 자랑할 만한 위인들이 많았지만 우리 스스로 기억하여 본받으려 하지 않아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비교적 가까운 조선시대만 해도 박연을 총애하여 아악을 집대성케 했던 세종대왕이 있었고 판소리에 관한 한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다 바쳐 그 기틀을 만들고 다졌던 신재효의 역할과 기여 또한 바르디와 메디치에 결코 뒤지지 않았습니다. 더불어 궁중예식과 그에 필요한 춤의 양식인 정재를 창제하고 정리하여 후대에 남긴 소명세자의 공헌이야말로 발레를 체계화한 루이 14세에 견줄만한 치적임에 틀림없습니다. 21세기 대한민국의 르네상스를 이끌어가고 뒷받침할 우리의 메디치를 애타게 기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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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승찬 교수의 클래식 이야기] 러시아 음악의 향수, 소콜로프의 추억(러시아의 클라리네티스트 블라디미르 소콜로프)[홍승찬 교수의 클래식 이야기] 러시아 음악의 향수, 소콜로프의 추억(러시아의 클라리네티스트 블라디미르 소콜로프)

Posted at 2016.09.19 11:35 | Posted in 이건음악회 Talk Talk/클래식 톡톡



지난 세기 러시아의 무대예술은 세 번씩이나 세계를 놀라게 했습니다. 먼저 세기 초 러시아 혁명을 전후로 유럽과 미국으로 건너간 디아길레프의 러시아 발레단과 작곡가 스트라빈스키, 프로코피에프와 라흐마니노프가 발레와 음악의 역사를 새로 써내려갔습니다. 그리고 반세기가 지나 처음으로 세상 밖에 그 모습을 드러낸 철의 장막 안의 예술가들의 기량은 아득하게 높은 수준에 있어 경이로움 그 자체였습니다. 세기말이 다가올 무렵 결국 소비에트는 무너졌고 예술가들의 삶도 맥없이 허물어졌습니다. 살기 위해 그들은 다시 한 번 나라 밖으로 나서야 했지만 전과 달리 이번에는 환난과 고난 속에서도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예술가의 긍지와 예술을 향한 열정을 보여주었습니다.


작곡가 스트라빈스키


한국예술종합학교가 이 땅에 태어난 것도 바로 그 무렵이었습니다. 음악원이 문을 열면서부터 해외의 저명 음악인들을 교수로 초빙했고 그 가운데는 러시아의 클라리네티스트 블라디미르 소콜로프도 있었습니다. 공항에서 소콜로프 내외를 맞이해서 교수 아파트로 이동하던 중 해가 저물었기에 저녁식사를 대접하겠노라며 좋아하는 음식을 물었습니다. 그는 기다렸다는 듯이 스테이크라고 대답했고 주문한 음식이 나오자 내외가 함께 말 한 마디 없이 순식간에 접시를 비웠습니다. 그 모습을 보면서 러시아의 경제 사정이 어떤지를 실감할 수 있었고 말 못할 어려움을 겪고 있는 그들의 처지가 딱하기만 했습니다.

블라디미르 소콜로프는 뛰어난 러시아 음악가로 러시아에 명성을 안겨준 화려한 독주자중 한명이다. 소련 국립 교향악단에 견습생 시절 당대 명지휘자 니콜라이 아노소프에 의해 파격적으로 발탁되어 주목을 받기시작하였다. 1963년 소련 연방 콩쿨에서 우승한후 전-소련 방송 교향악단과 소련 국립교향악단의 독주자로 활동하며 소련의 대표 클라리네티스트로 자리하였다. 1984년 소련 공훈 예술가로 추대되었다. 


블라디미르 소콜로프(Vladimir Sokolov)


식당을 나서면서 그는 갑자기 가르치게 될 학생들을 내일이라도 당장 보고 싶다고 했습니다. 개학까지는 여러 날이 남았고 여독이 풀리고 시차에 적응하려면 시간이 필요하지 않겠냐고 했더니 그는 전혀 문제 없다며 오히려 학교가 문 여는 시간이 몇 시냐고 물었습니다. 그때까지 한 번도 그렇게 일찍 출근한 적이 없어 모른다고 했더니 그는 가능한 한 이른 시간에 학생들을 만나게 해달라는 부탁을 했고 아홉시에 연구실로 모이도록 연락하고 8시 반까지 데리러 오겠노라 약속했습니다. 다음날 약속 시간에 집으로 가 벨을 눌렀더니 기다렸다는 듯이 바로 문이 열렸습니다. 현관에는 낡았지만 깔끔한 양복에 나비넥타이를 한 소콜로프가 한 손에는 악기 가방을, 다른 손에는 악보 가방을 들고 서 있었습니다. 운전석 옆자리에 탄 그는 너덜해진 악보꾸러미를 가방에서 꺼내 다시 정리를 하면서 중간 중간 악보의 음표들을 소리 내어 읽었고 너무나 열중한 나머지 몸까지 흔들어대는 백발의 이국 신사를 지나가는 차에 탄 사람들은 모두 신기한 듯 쳐다보았습니다.


학교에 도착해서 마침내 학생들이 연구실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소콜로프의 표정이 갑자기 굳어지더니 내게 다가와 낮고 작은 목소리로 어떻게 악기를 공부하는 학생들이 악기를 두고 다닐 수 있는지를 물었습니다. 아차 싶은 마음에 당황하여 아마도 서로 처음 만나는 자리라 그럴거라고 궁색한 대답을 했더니 부드럽지만 단호한 표정으로 얼마든지 기다릴테니 각자 돌아가서 악기와 지금 연습하는 곡의 악보까지 챙겨서 다시 오라고 말하고는 이번에는 학교가 문닫는 시간을 물었습니다. 사실은 열두시로 알고 있었지만 얼떨결에 열시라고 말했고 그는 그 시간에 데리러 와주면 고맙겠다는 정중한 부탁을 했습니다. 약속한 열시에 노크를 하고 연구실 문을 열었고 거기에는 아침에 만난 학생들이 모두 붉게 상기된 얼굴에 얼이 빠진 표정으로 앉아 있었고 소콜로프만 아침보다 더 밝고 활기찬 모습으로 반갑게 나를 맞아주었습니다. 이제 그분은 이 세상에 없고 단지 함께 했던 짧은 시간만 추억으로 남아 희미해지고 있지만 그가 보여준 참 예술가이자 스승으로서의 모습만은 오늘도 흐트러지려는 나를 문득 일깨우는 가르침으로 남아있습니다.


그 일이 있고 얼마지 않아 우리 발레 스타들과 함께 블라디보스톡 공연을 갈 일이 있었습니다. 오랜 세월 수리를 못해 잿빛으로 색이 바래고 무대 바닥이 삐걱거리는 목조 극장을 가득 메운 남루한 옷차림의 관객들이 눈물을 흘리며 감격해 했고 그 추운 날씨에도 신문지에 싼 시든 꽃을 들고 밖에서 줄지어 기다리고 있다가 출연자들에게 하나씩 전하면서 어떤 장면의 어떤 부분이 어떻게, 또 얼마나 좋았는지 들려주었고 무릎을 굽히고 두 손을 가슴에 모아 진정 감사하다는 마음을 전했을 때 가슴이 뭉클하고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그리고 그 때 알았습니다. 이처럼 러시아 어디를 가든 세상 그 무엇보다 예술을 마음 속 깊이 사랑하고 그 누구보다 예술가들을 우러러 보는 사람들이 있었기에 우리를 그토록 놀라게 하고 우리의 마음을 마구 흔들어놓았던 위대한 러시아의 예술가들이 있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문득 지휘자 페도세예프가 페테르스부르크 방송 교향악단과 함께 첫 내한 연주회를 가졌을 때의 감동이 떠오릅니다. 소비에트가 무너지고 얼마지 않아서였습니다. 공연이 시작하기 전, 지휘자보다 나이가 더 지긋해 보이는 악장이 지휘자의 악보를 따로 챙겨 들고 나와 지휘대 위에 펼쳐놓는 모습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차이코프스키의 비창은 페도세예프의 손 끝을 따라 줄타기를 하는 듯 팽팽했습니다. 떨어질 듯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무너질 듯 무너지지 않았고 주저앉을 듯 주저앉지 않았습니다. 온 몸으로 흐느꼈지만 결코 소리내어 울지 않았습니다. 삶을 송두리째 흔드는 격변과 혼란 속에서도 페도세예프와 오케스트라는 그들의 음악과 본분을 잃지 않았고 음악가가 지켜야 할 긍지가 무엇인지 우리에게 일깨워주었습니다. 단원들은 악장을 따랐고 악장은 지휘자를 깎듯이 모셨습니다. 그리고 그들 모두는 한 마음으로 차이콥스키를 사랑했습니다. 음악에도 국경이 있다는 걸 그날 깨달았습니다. 차이콥스키는 그들의 삶이었습니다. 그리고 또 깨달았습니다. 아무리 세월이 흐르고 세상이 변한다고 해도 우리가 반드시 지키고 간직해야 할 그 무엇이 있다는 걸 말입니다. 그것이 사람마다의 본분이고 책임이며 지켜야 할 긍지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것이 우리가 살아가는 힘이고 살아가는 까닭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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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불수교 130주년 기념 콘서트] 양성원의 프랑스 낭만음악 클래식 티켓 무료 배부 이벤트.(서울 예술의 전당 IBK 챔버홀)[한불수교 130주년 기념 콘서트] 양성원의 프랑스 낭만음악 클래식 티켓 무료 배부 이벤트.(서울 예술의 전당 IBK 챔버홀)

Posted at 2016.08.30 07:36 | Posted in 이건음악회 Talk Talk/클래식 톡톡



[한불수교 130주년 기념 콘서트] 양성원의 프랑스 낭만음악 클래식 티켓 무료 배부 이벤트.(서울 예술의 전당 IBK 챔버홀)

(2차. 서울 예술의 전당 IBK 챔버홀) 


안녕하세요. 오늘도 무료 클래식 티켓 배부 이벤트를 가지고 왔습니다. 

이건음악회가 10월에 하는데... 그 때까지 기다리기 어려우셨던 분들! 

그리고 이전 부산 공연 이벤트로 마음 조렸던 분들을 위해!

서울 예술의 전당에서 한/불 연주자가 함께하는 실내악 페스티벌 음악회를 개최합니다.

잠깐 가을바람 맞이하고 오시기 바랍니다.



서울 예술의 전당에서 열리는 이번 콘서트는 양성원과 함께 프랑스 낭만음악을 즐길 수 있는 시간이 될 것 입니다. 

이벤트 장소와 기간은 아래와 같습니다. 


이번 2차 이벤트는 서울 예술의 전당에서 이루어집니다. 

이벤트 기간은 8월 24일(수요일)~9월 1일(목요일) 오후 6시까지 신청하신 분들에 한해서 입니다. 

이벤트 참여를 원하시는 분들은 아래 "이벤트 참여하기"하기 버튼 또는 아래 링크를 눌러주세요.


이벤트 참여하기


총 3일간 서울 예술의 전당에서 만나 보실 수 있는 이번 클래식 음악축제는 


9월 3일 - 15명 

9월 4일 - 15명 

9월 5일 - 15명 


총 45명의 방문객들에게 클래식 음악의 선물을 드리려고 합니다. 

가을의 시작! 클래식과 함께 하시면 어떨까요? 


이번 이벤트는 1인2매를 증정하는 이벤트입니다. 

연인이 있거나 부모님과 함께 가시고 싶으신분들!! 신청하세요! 

프랑스 낭만음악이 어떤 일정으로 이루어지는지 어떤 내용의 음악을 듣고싶으신지는 아래에 자세히 소개했습니다.




자신이 듣고 싶은 시간과 날짜를 선택해서 이벤트 참여해주세요. 

최대한 많은 분들을 공정하게 선택해서 문자로 티켓을 발송해 드리겠습니다. 

그럼 여러분의 적극적이고 많은 참여 부탁드립니다. 

즐거운 하루, 즐거운 주말, 즐거운 가을~ 시작 잘 잘 하시기 바랍니다. 


[이벤트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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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비밀댓글입니다
  2. 조은영
    공연 당첨되어 잘 보고 왔습니다. ^^ 특별히 저희 어머니를 처음 예술의 전당에 모시고 간 계기가 되었어요. 특별한 시간을 만들어주셔서 깊이 감사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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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불수교 130주년 기념 콘서트] 양성원의 프랑스 낭만음악 클래식 티켓 무료 배부 이벤트.(영화의 전당 하늘연극장)[한불수교 130주년 기념 콘서트] 양성원의 프랑스 낭만음악 클래식 티켓 무료 배부 이벤트.(영화의 전당 하늘연극장)

Posted at 2016.08.19 17:21 | Posted in 이건음악회 Talk Talk/클래식 톡톡


[한불수교 130주년 기념 콘서트] 양성원의 프랑스 낭만음악 클래식 티켓 무료 배부 이벤트.

(1차. 부산 영화의 전당 하늘연극장)



안녕하세요.

오늘은 무료 클래식 티켓 배부 이벤트를 가지고 왔습니다.


이건음악회가 10월에 하는데...

그 때까지 기다리기 어려우셨던 분들!

잠깐 다녀오시면 어떠신가요?


게다가 이 이벤트는 1차 이벤트 입니다.

2차 이벤트도 있다는 이야기죠~



영화의전당에서 열리는 이번 콘서트는

양성원과 함께 프랑스 낭만음악을 즐길 수 있는 시간이 될 것 입니다.

일단 이벤트 장소와 기간이 궁금하시죠.


아래와 같습니다.


이번 1차 이벤트는 부산에서 이루어집니다.

이벤트 기간은 8월 17일(수요일)~8월 24일(수요일) 오후 6시까지 신청하신 분들에 한해서 입니다.

이벤트 참여를 원하시는 분들은 아래 "이벤트 클릭"하기 버튼 또는 아래 링크를 눌러주세요.


[이벤트 클릭]


총 3일간 부산 영화의 전당에서 들을 수 있는 이번 클래식 음악축제는

29일 - 70명

30일 - 70명

31일 - 70명


총 210명의 많은 인원들에게 클래식 음악의 선물을 드리려고 합니다.

여름의 끝자락~ 클래식과 함께 하시면 어떨까요?


이번 이벤트는 1인2매를 증정하는 이벤트입니다.

연인이 있거나 부모님과 함께 가시고 싶으신분들!! 

신청하세요!


프랑스 낭만음악이 어떤 일정으로 이루어지는지

어떤 내용의 음악을 듣고싶으신지는 아래에 자세히 소개했습니다.




자신이 듣고 싶은 시간과

날짜를 선택해서 이벤트 참여해주세요.


최대한 많은 분들을 공정하게 선택해서 문자로 티켓을 발송해 드리겠습니다.


그럼 여러분의 적극적이고 많은 참여 부탁드립니다.

즐거운 하루, 즐거운 주말, 즐거운 여름~ 마무리 잘 하시기 바랍니다.


[이벤트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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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김지연
    기대기대합니다~^^
  2. 권도일
    기대하고 있는데 아직 문자는 없네요 -.-; 탈락일까요? ㅠ.ㅠ
  3. 권도일
    확인했습니다. ... 고맙습니다. 행복한 시간이 되겠습니다. (_._)
  4. 비밀댓글입니다
  5. 비밀댓글입니다
  6. 스칼렛
    늦었네요 ㅡㅡ 어휴 아쉬워라 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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