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승찬 교수의 클래식 이야기] 러시아 정교회의 역사와 음악[홍승찬 교수의 클래식 이야기] 러시아 정교회의 역사와 음악

Posted at 2018.08.20 11:53 | Posted in 이건음악회 Talk Talk/홍승찬교수의 클래식 톡톡


러시아 정교회의 역사와 음악

 

2017년은 러시아 혁명 백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그해 제정 러시아에서 일어난 볼세비키 혁명으로 인류 최초의 공산주의 국가 소비에트 연방, 즉 소련이 탄생하였습니다. 그리고 이어진 두 차례의 세계대전이 끝나자 세계는 미국을 앞세운 서방의 자유 진영과 소련이 주도한 동쪽의 공산 진영으로 나뉘어 서로 대치하는 동서 냉전 시대로 접어들었습니다.

 

출처 : http://www.vsesovetnik.ru/archives/19425


소비에트 연방이 해체되고 공산주의를 추종하는 국가들도 씨가 말라버린 지금 국제 사회에서 러시아의 위상과 역할은 크게 줄어들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역사를 돌이켜 볼 때 언젠가는 다시 세계 역사의 중심에 서는 날이 올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우리는 잘 모르거나 그다지 주목하지 않는 사실이지만 오백년 전에도 러시아는 기독교가 지배한 유럽의 절반을 대표하는 나라였습니다. 그때도 유럽은 동과 서로 나뉘어 있었고 냉전 시대에 그랬던 것처럼 러시아는 동쪽의 중심이었습니다. 서쪽의 로마 카톨릭과 갈라선 비잔틴 교회, 즉 동방 정교회는 동로마 제국의 수도 콘스탄티노플에 그 중심을 두었으나 동로마 제국이 오스만 투르크에게 무너지자 그 본거지를 모스크바로 옮기고 러시아의 군주를 그 수호자로 삼았고 그때부터 러시아의 왕은 황제라 칭하게 되었습니다.

 

출처 : http://entoytwnika1.blogspot.com/2014/09/blog-post_16.html


로마 제국의 붕괴 이후 유럽 여러 나라의 군주들 가운데 황제의 칭호를 가졌던 나라는 딱 두 나라 뿐이었습니다. 서로마가 무너진 후 이민족들의 침입을 막아 로마 카톨릭 교회를 수호한 공로로 로마의 대주교, 즉 교황으로부터 신성로마제국의 황제로 봉해진 동프랑크 왕국의 왕이 그 첫 번째이고, 모스크바로 근거를 옮긴 동방 정교회의 대주교로부터 로마 황제의 후계자로 인정받은 러시아의 왕이 두 번째입니다. 동 프랑크는 독일의 전신입니다. 독일이 오랜 동안 여러 제후국으로 나뉘어 있었을 때는 제후들의 선거로 황제를 선출하였습니다. 그러다 오스트리아의 지배를 받으면서 합스부르크 왕가가 신성로마제국의 황제를 세습하게 됩니다. 러시아의 황제는 로마노프 왕조가 대대로 세습하였습니다. 그런 까닭에 독일어로 황제를 뜻하는 "카이저"와 러시아어의 "차르"라는 말이 모두 로마 제국의 황제를 일컫는 "카이사르"에서 비롯되었고 카이사르는 바로 로마제국의 초석을 다진 카이사르, 즉 시저의 이름에서 비롯되었습니다.

 

(동프랑크 왕국 : 843년 – 918년)

출처 : https://bit.ly/2OOMGw6


초기 기독교가 온갖 박해와 시련을 지나 313년에 로마제국에서 공인을 받고 392년에 마침내 국교로 선포될 즈음에 제국 안에는 다섯 개의 교구, 5대 주교구가 자리 잡고 있었으니 예루살렘과 알렉산드리아, 안티오키아, 콘스탄티노플, 로마가 그들입니다. 그 가운데 예루살렘과 알렉산드리아, 안티오키아 주교구가 7세기 중엽 이후 이슬람의 정복으로 무너져버리자 로마와 콘스탄티노플이 남아 교회의 두 중심축을 형성하게 되었습니다. 동과 서로 갈라진 로마제국의 두 중심지였던 로마와 콘스탄티노플은 초기 기독교 역사에서도 중추적인 역할을 하며 공생과 경쟁의 묘한 관계를 이어갔습니다. 476년에 서로마제국이 멸망하고 그 빈자리를 채울 만한 절대 강자가 나타나지 않는 동안 로마교회는 정치권력의 간섭 없이 독자적인 위상과 세력을 키워갈 수 있었기에 다른 교회에 대한 로마 교회의 우위를 주장하며 로마 교구의 주교를 교황이라 부르게 됩니다. 이에 반해 콘스탄티노플의 교회는 교리상 모든 교구가 동등하다는 입장이었지만 실제로는 동로마 제국, 즉 비잔틴 제국의 지배하에 있었기에 제국의 황제는 콘스탄티노플 교회뿐만 아니라 로마 교회까지도 자신의 통제 하에 두려했습니다. 이렇듯 서로 다른 입장과 교리의 차이는 두 교회를 점점 더 멀어지게 만들었고 여기에 갈등과 분열을 일으키는 사건들이 잇따라 벌어지면서 1054년 두 교회는 서로가 서로를 파문하여 갈라서게 되었습니다.

 

출처 : http://explorethemed.com/fallrome.asp?c=1


러시아 정교회는 일찍부터 비잔틴 정교회의 성가를 러시아어로 부르며 그들 나름의 음악을 더했으며, 특히 16세기 이후부터는 서로 다른 선율이 함께 어우러지는 다성음악을 성가에 사용하였습니다. 이런 일이 가능했던 것은 과거 로마카톨릭교회가 모든 국가와 민족들에게 라틴어 성서와 전례를 강요했던 것과는 달리 동방정교회는 처음부터 모국어 성서와 전례를 허용했기 때문입니다.

 

러시아 정교회는 표트르 대제에 이르러 큰 변화와 희생을 치르게 됩니다. 1721, 표트르 대제는 총주교제를 폐지하고 종무청을 설립하여 교회에 대한 황제의 권한을 더욱 강화했습니다. 무소르그스키의 오페라 "호반시치나"는 표트르 대제의 대대적인 개혁 정책에 직면한 토착 귀족과 종교 지도자들의 저항과 몰락을 그리고 있습니다. 마지막 4막에서 표트르의 군대에 쫓겨 막다른 길에 다다른 정교회의 성직자 도시페이와 추종자들은 곧 닥칠 최후를 예감하고 모두 함께 여기, 이 거룩한 장소에서라는 성가를 부릅니다.

 

M. Mussorgsky, Dawn on the Moskva River, Introduction to the Opera "Khovanshchina"


러시아 정교회의 성가는 오페라에서 뿐만 아니라 러시아 작곡가들의 여러 작품들 속에 생생하게 살아 숨쉬고 있습니다. 무소르그스키와 더불어 19세기 러시아 국민악파의 대표적인 작곡가로 꼽히는 림스키-코르사코프는 젊은 시절 황실 교회 성가대의 부감독으로 일하면서 러시아 정교회의 미사에서 강한 인상과 영감을 받아 "부활절 서곡"을 작곡하였습니다. 그는 오래 전부터 전해오는 성가집에서 몇 개의 성가를 골라 그 선율을 바탕으로 이 곡을 만들었습니다. 교회의 종소리가 울려퍼지는 가운데 금관악기들이 러시아 성가의 장엄한 선율을 연주하는 마지막 부분은 그 소리만으로도 충분히 감동적입니다.

 

러시아 정교회의 성가를 사용한 곡들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작품을 꼽으라면 아마도 차이코프스키의 "1812년 서곡"일 것입니다. 이 곡은 1882년에 있었던 모스크바 산업예술박람회의 개막 축하연에 연주하기 위해 위촉된 작품으로 나폴레옹 침략전쟁 당시 프랑스군을 물리친 보로디노 전투에서의 승리를 오케스트라의 음악으로 그려내고 있습니다. 모두 세 부분으로 이루어진 이 곡의 첫 부분은 비올라와 첼로가 연주하는 러시아 정교회의 성가 "주여, 당신의 백성을 구하소서"로 시작하는데 평화로운 러시아의 광활한 대지에 감도는 전운을 느낄 수 있습니다. 두 번째는 러시아군과 프랑스군의 전투를 묘사한 부분으로 프랑스의 국가 "라 마르세예즈"와 러시아의 민요 선율이 뒤섞여 치열했던 격전이 눈앞에 펼쳐지는 듯합니다.

 

Tchaikovsky - 1812 Overture (Full with Cannons)


마지막 부분에 이르면 끝까지 버티던 프랑스군이 대포 소리와 함께 서서히 퇴각하면서 첫 부분에 등장했던 성가의 선율이 교회의 종소리와 함께 금관으로 다시 한 번 힘차게 연주됩니다. 종소리가 멈추면 러시아군의 개선 행진이 있고, 축포를 터뜨리며 종소리가 울리는 가운데 제정 시대 러시아의 국가인 신이시여 차르를 보호하소서를 연주하며 대단원의 막을 내리게 됩니다.

 

출처 : http://cossacksmusic.ru/bozhe-czarya-xrani.html


지금은 제정 시대도 아니고 불과 삼십년도 지나지 않은 냉전 시대도 이미 오래 전의 일처럼 느껴지지만 러시아의 역사 속에서 러시아 사람들의 고난과 영광을 늘 함께 했던 러시아 정교회의 정신과 음악은 그들의 위대한 유산이자 자랑이며 긍지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비단 종교가 아니고 정치적인 이념은 더더욱 아니더라도 위기의 순간, 한 나라와 공동체를 하나로 묶을 수 있는 가치와 신념이 진정 무엇인지를 고민하게 하는 요즈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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