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승찬 교수의 클래식 음악 이야기] 죽음에 앞서 깨달은 사랑의 참 뜻, 푸치니의 “투란도트”[홍승찬 교수의 클래식 음악 이야기] 죽음에 앞서 깨달은 사랑의 참 뜻, 푸치니의 “투란도트”

Posted at 2017.05.09 07:30 | Posted in 이건음악회 Talk Talk/홍승찬교수의 클래식 톡톡


 

오늘날 세계 주요 오페라 극장에서 공연하는 오페라들 가운데 절반 이상은 아마도 1800년대 이후 백여년 동안 이탈리아에서 만들어진 오페라일 것입니다. 롯시니에서 시작된 19세기 이탈리아 오페라의 르네상스는 벨리니와 도니제티를 거쳐 베르디에 이르러 그 절정에 이르렀고 푸치니가 그 마지막을 화려하게 장식했습니다. 그런 푸치니의 마지막 오페라가 "투란도트"였고 이 작품을 끝으로 이탈리아 오페라는 다시 긴 겨울잠에 들어가 지금까지도 깨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 작품을 쓰면서 그는 '이전에 작곡한 오페라들은 다 버려도 좋다'고 했을 정도로 애착을 가졌고 또 심혈을 기울였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끝내 완성하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나 그 나머지 작업은 다른 사람의 손을 빌려야 했습니다. "투란도트"는 푸치니의 이전 작품들과는 사뭇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대중적이고 통속적인 이야기에 감상적이고 진부한 음악이라는 전문가들의 비난을 의식했던지 현실에서 동떨어진 옛 이야기를 소재로 삼았는가 하면 공이나 실로폰과 같은 이국적인 악기와 불협화음에 원시적인 리듬까지 과감하게 사용하였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여성을 앞세웠던 전작들과는 달리 남자 주인공이 이야기를 이끌어가고 있습니다.

 

출처 : http://www.nyculturebeat.com/index.php?mid=Music&document_srl=3396918&search_target=tag&search_keyword=%EB%A9%94%ED%8A%B8%EC%98%A4%ED%8E%98%EB%9D%BC

 

 

중국의 아름다운 공주 투란도트는 할머니가 적군에게 유린당한 과거의 악몽을 떨치지 못해 남성을 혐오하고 결혼을 기피합니다. 그럼에도 구혼자들이 줄을 잇자 세 가지 수수께끼를 내서 그 답을 맞추면 결혼을 하고 아니면 목숨을 내놓아야 하는 조건을 내걸었고, 많은 이들이 도전하였으나 모두 실패하여 목숨을 잃고 맙니다. 이때 나라를 잃고 떠돌던 타타르의 왕자 티무르가 나타나 공주의 수수께끼를 풀었지만 얼음같은 공주의 마음은 왕자의 사랑을 거부합니다. 그러자 왕자는 다음날까지 공주가 자신의 이름을 알아내면 목숨을 내놓고 아니면 결혼해야 한다는 제안을 합니다. 궁지에 몰린 공주는 수소문 끝에 왕자의 시녀인 류를 잡아들여 모진 문초로 왕자의 이름을 알아내려 하지만 왕자를 몰래 짝사랑했던 류는 스스로 목숨을 끊어 왕자를 지킵니다. 왕자의 용기와 류의 사랑에 감복한 공주는 결국 마음을 열어 왕자를 받아들이고 마침내 두 사람은 결혼에 이르게 됩니다.

 

출처 : https://kr.pinterest.com/pin/407364728772437860/

 

 

이 대강의 줄거리는 중동에서 전해오는 "투란도흐트 Turandokht" 이야기에서 비롯된 것으로 루이 14세 때의 작가 들라크루아가 페르시아의 옛 이야기들을 모아서 펴낸 "천일일화"에 수록한 것을 베네치아의 극작가 카를로 고치가 희곡으로 만들었습니다. 이것을 독일의 프리드리히 실러가 다시 각색한 것이 이탈리아어로 번역되어 푸치니의 손에 들어갔던 것입니다. 원래의 이야기는 왕자가 수수께끼를 풀면 바로 공주와 결혼하는 것이었으나 푸치니의 고집으로 하룻밤의 시간이 더해지면서 거기에 류의 희생이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이를 두고 사람들은 밋밋하고 뻔한 줄거리를 보완하는 한편, 전작들에서 줄곧 이어져 사람들에게 너무나 익숙한 푸치니 오페라의 특징을 그대로 유지하려는 의도로 해석하기도 합니다.

 

 

 

아닌게 아니라 "토스카""라보엠", "나비부인"과 같은 푸치니의 대표작들은 한결같이 사랑에 모든 것을 걸지만 끝내 목숨을 잃는 여인들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습니다. 푸치니 자신의 여성편력 때문인지 오페라 역사를 통 털어 푸치니만큼 다양한 성격의 여성들을 작품 속에 다루면서 그만큼 감성적으로 또 섬세하게 그 심리를 잘 드러내어 전달한 이는 따로 없었습니다. 작품을 쓸 때마다 푸치니는 늘 누군가와 열애중이어서 그 상대의 성격이 작품 속 여주인공으로 그려지는 경우가 많았기에 "투란도트"의 초연을 지켜 본 청중들이라면 누구나 가엾은 류의 모습에서 바로 일년 전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푸치니 스캔들의 불쌍한 희생양을 떠올릴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푸치니의 부인 엘비라는 하녀 도리아 만프레디와 남편 사이의 불륜을 의심하여 못견딘 나머지 도리아에게 심한 욕설을 퍼붓고 집에서 내쫓았는가 하면 교회에까지 고발하고 망신을 주었습니다. 사람들의 따돌림을 견디다 못한 도리아는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가족들의 요청으로 부검을 한 결과 도리아가 처녀였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비난의 화살은 엘비라에게 쏟아졌습니다. 엘비라는 무고죄로 고소되어 유죄 판결을 받았으나 푸치니가 유족에게 금전적인 보상을 하여 처벌만은 면하게 됩니다. 이 일이 있고 얼마지 않아 "투란도트"를 보게 된 관객들이 왕자의 시녀 류에게서 푸치니의 하녀 도리아를 떠올리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두 인물 사이에는 너무나 다른 면면이 있어 그후로도 그 부분에 대한 의혹은 끊이지 않았습니다. 도리아와 푸치니는 서로 사랑하는 사이가 아니었는데 푸치니가 과연 그의 작품 속에 구태여 연인이 아닌 다른 인물을 투영하려 했을까 하는 의문이 있었고 투영한 게 사실이라면 그 까닭이 무엇인지에 대한 의문이 꼬리를 물었습니다. 죄책감 때문이라는 추측이 있고 도리아의 짝사랑, 혹은 두 사람 사이의 정신적인 사랑을 까닭으로 짐작하는 이들도 있었지만 그 어느 것도 분명하게 밝혀지진 않았습니다.

 

 

2008년 이탈리아의 파울로 벤베누토 감독이 영화 "푸치니의 여인"을 발표하면서 세상은 다시 한번 도리이의 비극에 주목하게 되었고 그 동안 감춰졌던 사건의 전모가 밝혀지면서 풀리지 않았던 의혹도 말끔하게 해소되었습니다. 벤베누토의 말에 따르면 영화 스탭 중의 한 사람이 푸치니가 살던 토레 델 라고의 집 근처의 식당에 들렀다가 푸치니의 사생아라는 사람이 그 식당에 자주 들렀다는 말을 들었고 결국 그의 자취를 추적하다 그의 딸, 즉 푸치니의 손녀인 나디아라는 여인을 만나게 되었다고 합니다. 나디아로부터 건네받은 40여통의 편지는 모두 푸치니가 나디아의 할머니 줄리아 만프레디에게 보낸 편지였고 그 편지를 몰래 전한 사람이 바로 줄리아의 사촌동생이자 푸치니의 하녀였던 도리아였던 것입니다. 줄리아는 푸치니가 살던 집과 호수를 사이에 두고 멀리 보이는 선술집을 혼자 꾸려갈 만큼 억척스러우면서도 늘 밝고 푸근한 여성이었다고 합니다. 줄리아와 사랑에 빠졌을 때 푸치니는 오페라 "서부의 아가씨"를 작곡하고 있었고 오페라에서 선술집을 운영하는 씩씩한 여주인공 미니는 당연히 줄리아를 모델로 삼아 만든 인물이었습니다. 그들 사이에서 남몰래 편지 심부름을 하던 도리아는 그들 사이의 비밀을 혼자 가슴 속에 묻은 채 스스로 목숨을 끊었던 것입니다.

 

 

 

푸치니는 이 착하고 가엾은 하녀의 어이없는 죽음에 커다란 충격을 받아 그 죄책감을 떨칠 수가 없었고 어떻게든 그 넋을 위로하고자 마지막 오페라의 주인공으로 무대에 세웠던 것입니다. 참으로 묘한 것은 푸치니의 운명 또한 여기까지였다는 사실입니다. 왕자의 비밀을 지키기 위해 류가 목숨을 끊는 장면까지 작곡을 한 다음 아들과 함께 벨기에까지 가서 진찰을 받은 결과 후두암 판정을 받고 수술을 받았으나 불과 며칠 후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대지휘자 토스카니니가 프랑코 알파노에게 마무리 작업을 맡겨 예정보다 1년 늦게 초연을 했지만 그 첫 공연에서 토스카니니는 류가 죽는 장면을 끝으로 음악을 멈추고는 객석을 향해 "친애하는 푸치니 선생은 여기까지 쓰시고 돌아가셨습니다."라는 말을 남기고는 그 자리를 떠났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이 오페라에서 정작 푸치니가 보여주고 싶었던 것은 왕자와 공주가 결혼해서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다는 결말이 아니었습니다. 서로의 뜨거운 사랑이 아니라 혼자만의 쓸쓸한 사랑일지라도 그 사랑을 위해서라면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주저 없이 기꺼이 바치고 흔적도 없이 사라질 수 있는 참 사랑의 희생과 헌신이었습니다. 어쩌면 스스로 그토록 많은 사랑을 했으면서도 이처럼 고귀한 사랑에는 결코 단 한번도 이르지 못했기에 더더욱 큰 아쉬움을 이렇게라도 토로하려 했는지 모르는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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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역설적인 음악 ‘허밍 코러스’] 오페라 “나비부인”과 한마디의 대사. “명예롭게 살 수 없다면 명예롭게 죽으리라” 지치고 힘들 때마다 듣는 이노래.[세상에서 가장 역설적인 음악 ‘허밍 코러스’] 오페라 “나비부인”과 한마디의 대사. “명예롭게 살 수 없다면 명예롭게 죽으리라” 지치고 힘들 때마다 듣는 이노래.

Posted at 2013.03.18 07:30 | Posted in 이건음악회 Talk Talk/홍승찬교수의 클래식 톡톡

 

 

 

 

 

 

홍승찬 교수의 클래식 음악(46)
[홍승찬 교수의 재미있는 클래식음악 이야기]

 

 

세상에서 가장 역설적인 음악 허밍 코러스

 

 

 

 

 

오페라 나비부인은 이탈리아 오페라 작곡가 지아코모 푸치니의 대표작입니다. 푸치니는 베르디와 함께 19세기말 이탈리아 오페라의 황금기를 대표하는 양대 거장으로 꼽히는 인물이지요. 비단 이탈리아에서 뿐만 아니라 오늘날 전 세계의 오페라 극장들에서 가장 많이 공연되고 있는 작품들을 꼽으라면 아마도 이 두 작곡가의 작품들이 가장 많을 것입니다. 베르디의 오페라가 선이 굵은 편이라면 푸치니의 오페라는 매우 섬세하고 사실적입니다. 그래서 푸치니를 베리스모”, 즉 사실주의 오페라의 선구자로 일컫기도 합니다. 더불어 그는 여성의 미묘한 심리를 드러내는 데 있어서만큼은 역사상 그 어떤 작곡가와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최고의 역량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의 작품들 가운데는 유독 여주인공의 이름을 제목으로 앞세운 작품들이 많습니다. “토스카마농 레스코”, “투란도트는 물론 오늘 소개할 나비부인도 마찬가지입니다.

 

 

 

오페라 '나비부인'중 '어떤 개인날'-푸치니_르네 플레밍

작곡/푸치니
곡명/오페라 '나비부인'중 '어떤 개인날'
연주/바이올링-르네 플레밍

 

여주인공의 이름은 초초상이지만 별명이 나비부인이입니다. 19세기 일본의 나가사키가 이야기의 배경이고 초초상은 몰락한 사무라이 집안의 딸로 자라나 게이샤가 된 여인이지요. 여인이라고는 하지만 이제 겨우 열다섯 살의 소녀입니다. 현실은 암울하지만 언제라도 그곳을 벗어나 새로운 삶을 펼치려는 꿈을 가지고 있지요. 그래서 뚜쟁이의 꼬임에 빠져 나가사키 항구에 정박 중인 미 해군 군함의 젊은 장교 핀커톤과 결혼하려고 합니다. 말이 결혼이지 사실은 계약결혼으로 현지처가 되는 것입니다. 초초상은 알고도 그러는지, 아니면 정말로 모르는지 그런 현실과는 전혀 동떨어진 생각을 합니다. 핀커톤을 따라 미국으로 건너가 그곳에서 평생 핀커톤의 아내로 살게 될 것이라고 믿습니다. 아니 그렇게 믿으려고 안간힘을 쓴다는 말이 정확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것 말고는 아무런 희망이 없기 때문이지요.

 

 

 

 

비극은 이렇게 시작됩니다. 모두 2막으로 이루어진 이 작품의 1막은 결혼식 장면입니다. 남자와 여자는 처음부터 전혀 생각이 다르지만 서로 그런 사실을 외면합니다. 그저 젊은 혈기와 호기심에 들뜬 핀커톤에게 결혼식은 그저 형식적인 절차에 불과할 뿐 어서 빨리 잠자리에 들어가기만을 기다립니다. 그와는 반대로 초초상에게 이 결혼은 생판 모르는 한 남자에게 자신의 인생을 몽땅 맡기려는 일생일대의 중요한 순간입니다. 그래서 끊임없이 말을 걸어서 남자의 마음을 확인하려고 듭니다. 겉으로는 마치 두 사람이 사랑의 이중창을 부르는 것 같지만 사실은 서로 전혀 다른 속마음을 드러낼 뿐입니다. 오페라 역사상 가장 아름답지만 가장 어울리지 않는 사랑의 이중창입니다.

 

 

 

 

 

나비부인 아리아 - 어떤 개인 날 / Mika Mori

Mika Mori - Un bel dì vedremo - Madama Butterfly

 

 

그렇게 결혼을 하고 한 세월을 잘 보낸 핀커톤은 홀로 본국으로 돌아갔습니다. 물론 다시 돌아오겠다는 거짓말을 남겼겠지요. 그런데 초초상은 그 말을 철석같이 믿습니다. 핀커톤이 간 다음 그의 아들까지 낳은 처지니 또 다른 선택은 생각할 수도 없었을 것입니다. 2막은 기다림에 지친 나비부인이 기도를 하다가 항구가 보이는 집 앞의 언덕으로 올라가 그 유명한 아리아 어떤 개인 날을 부르는 것으로 시작됩니다. 날마다 머리 속으로 생각하고 또 생각하는 재회의 순간을 노래하지요. 어떤 개인 날, 핀커톤이 탄 배가 항구로 들어오면 당장 뛰어 내려가고 싶은 마음을 꾹 참고 곱게 단장을 하고 집에서 기다리겠다고 다짐을 합니다. 미국 영사 샤플리스는 친구인 핀커톤의 결혼 소식을 담은 편지를 전하려고 왔으나 차마 말을 꺼내지 못하고 돌아섭니다. 이제 남은 돈도 없어 다시 유곽으로 나가 웃음과 노래를 팔아야 할 처지가 되자 그 낌새를 알아차린 뚜쟁이가 다시 나타납니다.

 

 

오페라 나비부인 "어느 개인날"

 

 

 전부터 초초상을 아꼈던 나이 많은 부호의 소실로 들어가라는 것이지요. 그러나 밉살스러운 뚜쟁이를 쫓아내는 한바탕 소란이 벌어지고 난 다음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집니다. 드디어 저 멀리 뱃고동 소리가 들이고 기다리던 미국 군함 에이브라함 링컨호가 보이기 시작한 것입니다. 기뻐서 어쩔 줄 모르는 초초상은 하녀 스즈키와 함께 정원에 있는 꽃을 몽땅 따다가 집안 구석 구석을 꾸미고 결혼식에 입었던 예복을 곱게 차려 입고 몸치장과 화장을 한 다음 아들과 하녀와 나란히 앉아서 기다립니다. 바깥에서 보이지 않게 문을 닫고는 안에서 바깥을 볼 수 있도록 손가락으로 세 개의 작은 구멍을 냅니다. 이제 무대에 아무도 보이지 않게 된 그 순간 조명이 서서히 어두워지면서 너무나 조용하고 차분하게 흐르는 음악이 허밍 코러스입니다.

 

 

합창 - 허밍 코러스

coro a bocca chiusa  da"Madama Butterfly" by Giacomo Puccini

 

허밍이라는 것은 입을 다물고 콧소리로만 부르는 노래를 말하지요. 그러니 당연히 가사가 있을 수가 없습니다. 날이 저물고 다시 동이 트지만 핀커톤은 끝내 나타나지 않습니다. 문으로 가려서 보이지는 않지만 기다리는 초초상의 가슴은 까맣게 타들어갔을 것입니다. 차라리 막연히 기다리던 긴 세월은 견딜 만 했겠지만 이제 곧 나타나리라 기대하며 마음 졸였던 그 짧은 시간은 너무나도 길고 참기 힘든 악몽이었겠지요. 그 고통스러운 시간의 흐름을 허밍 코러스가 담담하게 채워갑니다. 가사도 없고 화음도 없이 그저 하나의 선율로 끊어질 듯 끊어지지 않고 이어집니다. 오페라에서 가장 중요하고 결정적인 순간이라면 호소하거나 절규하는 듯한 주인공의 아리아로 장식하기 마련이지만 오페라 나비부인은 가사도 없고 굴곡도 없이 밋밋한 합창으로 풀어갑니다. 한마디로 기가 막히고 어이가 없는 역설입니다.

 

 

 

 

지아코모 푸치니가 작곡한 오페라. 1막-> 2막 1장 -> 2막 2장 순으로 내용이 진행된다. 3막 오페라 라고 오인하는 사람도 있으나, 2막이 두 부분으로 나뉘었을 뿐, 실제로는 2막짜리 오페라가 맞다.


오페라에서 특히 어느 개인 날이라는 노래가 유명하다.


일본을 배경으로 삼은 것이 특징.[2] 오페라 역사상 최초로 동북아시아를 배경으로 삼은 오페라라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는 얘기가 있으나 실제론 4막9장 발레 '코레아의 신부(Die Braut von Korea·1897)가 최초의 동북아시아 배경 오페라다.

 

 

나비부인과 핑커튼 - 조금만 사랑해주세요 / Angela Gheorghiu & Roberto Alagna

 

 

이제 한 가닥 남은 마지막 희망도 다 꺼져버렸습니다. 그 다음에 벌어질 일은 너무나도 뻔합니다. 핀커톤은 미국에서 결혼한 아내와 함께 초초상이 낳은 자신의 혈육을 데리러 온 것입니다. 초초상은 순순히 가혹한 운명을 받아들이고 마지막 이별의 순서를 밟아갑니다. 어린 아들을 안고 작별 인사를 하고는 스스로 목숨을 끊습니다. 아버지가 물려준 그 칼에는 명예롭게 살 수 없다면 명예롭게 죽으리라는 글이 새겨져 있습니다.

 

 

 

푸치니는 이 오페라에서 기존의 상식과 틀을 다 뒤집어버리는 모험을 시도합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한 장소에서 모든 일이 벌어지고 있어 무대의 전환이 없을 뿐만 아니라 발레나 무용도 등장하지 않습니다. 열다섯 어린 나이로 설정된 주인공에게는 가혹하리만치 많은 비중이 주어져 있어 마치 모노드라마를 보는 듯합니다. 한 마디로 엄청난 체력과 기량을 요구하는 역할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니 설정에 맞는 작고 가녀린 외모는 기대할 수조차 없습니다. 게다가 결혼식을 올린 남녀 주인공이 서로 딴 마음으로 노래하는 사랑의 이중창이라니 이것이야말로 코메디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이 작품에서 다른 무엇보다 상상을 초월한 파격을 꼽으라면 바로 허밍 코러스입니다. 주인공의 심정이 하늘 위에서 땅 끝으로 참담하게 무너져 내리는 결정적인 순간, 등장인물들이 모두 사라지고 없는 캄캄한 무대 위에 아무런 움직임도 없이 콧노래로 읊조리는 가녀린 선율만 구슬프게 들립니다. 처음에는 너무나 뜻밖이라 멍해지는 느낌이지만 사실은 그래서 더 극적이고 감동적인 순간입니다.

 

 

 

그래서 지치고 힘들 때마다 넋을 놓고 이 음악을 듣고 또 듣습니다. 그렇게 속절없이 시간은 흐르는데 억장이 무너져 기가 막힌 초초상의 심정을 짐작하고 헤아려봅니다. 우리가 호들갑을 떨면서 기뻐하고 슬퍼하는 모든 일들이 결국은 이렇듯 허무하다는 걸 어렴풋이 깨닫게 됩니다.

 

글 : 홍승찬 교수
편집 : 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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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홍교수님 안녕하신지요? 교수님의 클래식 이야기 늘 듣고 보고 있습니다...

    넘 수고 많으시네요..... 감사합니다. 허트리오
  2. 김에송
    나비부인의 허밍 코러스...

    꼭 들어봐야겠어요 ^^
  3. 좋아요

    선곡좋네요~ 저도 힘들때 인생노래 하나 추천드려요~

    김토봉 - 수놓아지길 들어보세요 정말 따뜻하고 삶에 위로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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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얻고자 노래를 불렀고 사랑을 얻고자 노래를 버린 마리아 칼라스] 세계 최고의 소프라노. 불멸의 디바 마리아 칼라스[사랑을 얻고자 노래를 불렀고 사랑을 얻고자 노래를 버린 마리아 칼라스] 세계 최고의 소프라노. 불멸의 디바 마리아 칼라스

Posted at 2012.10.01 07:30 | Posted in 이건음악회 Talk Talk/홍승찬교수의 클래식 톡톡

 

 

 

 

 

 

홍승찬 교수의 클래식 음악(35)
[홍승찬 교수의 재미있는 클래식음악 이야기]

사랑을 얻고자 노래를 불렀고 사랑을 얻고자 노래를 버린 마리아 칼라스

 

 

 

불멸의 디바 마리아 칼라스

 

 

 

 

 

누군가 저에게 역사상 최고의 지휘자 한 사람을 말하라면 선뜻 대답할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최고의 피아니시스트가 누구인지 한 사람만 꼽으라고 해도 역시 말문이 막힐 것입니다. 어떻게 그 많은 거장들 가운데 오직 하나만을 골라 최고라고 하겠습니까? 그러나 최고의 소프라노 가수가 누구냐고 묻는다면 주저없이 마리아 칼라스를 꼽을 것입니다. 칼라스는 이전의 어떤 소프라노 가수와도 다르고 이후의 그 누구도 따를 수 없는 경지를 이루었습니다. 그래서 오페라 연출가이자 영화감독인 프랑코 제피렐리는 마리아 칼라스를 추억하며 음악에서 BBefore Christ가 아니라 Before Callas를 뜻한다고 했습니다. 전에는 같은 소프라노라고 해도 소리가 무겁고 어둡거나, 아니면 가볍고 밝은지에 따라 맡을 수 있는 오페라의 배역이 달랐지만 칼라스는 그 어느 것도 가리지 않고 다 소화할 수 있었고 심지어 메조 소프라노가 부르는 영역까지도 섭렵했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칼라스가 보여준 가장 큰 차이는 연기력이었고 노래와 연기를 하나로 결합시키는 놀라운 힘이었습니다. 그리하여 칼라스 이전의 오페라 가수들은 단지 노래를 부를 뿐이었다면 칼라스에 이르러 드디어 노래를 연기하는 소프라노의 탄생을 맞이하게 된 것입니다. 사람들은 칼라스만 들어서는 그 진정한 매력을 알 수 없다고 합니다. 다른 가수들의 노래를 먼저 듣고 칼라스가 부르는 같은 노래를 들어야 그 참 맛을 제대로 느낄 수 있다고 하지요. 그 만큼 그는 다른 누구와도 전혀 달랐고 그로 말미암아 어떤 소프라노도 가지 못했던 길을 홀로 걸어갔습니다.

 

 


 

그녀는 1938년 15살 때 아테네 가극장에서 데뷔하면서부터 스타가 되었다. 1952년 영국의 코벤트가든 왕립가극장에서 벨리니의 오페라 <노르마>의 주역을 맡아 대성공을 거두어 그녀의 황금 시대를 열었다. 아래에 소개하는 공연 장면은 1959년 파리에서 가진 베르디의 오페라 <일 트로바토레>의 4악장 가운데 한 장면이다.





 

 

 

그러나 역사를 바꾸어 놓은 이 불세출의 소프라노의 어린 시절은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것과 너무나도 달랐습니다. 마리아 칼라스는 1923122일 미국 뉴욕에서 그리스 이주민의 딸로 태어났습니다. 아들을 잃고 그 슬픔에서 벗어나고자 또 다시 아들을 원했던 부모의 간절한 소망을 저버렸기에 그 실망은 고스란히 죄 없이 태어난 새 생명에게로 돌아갔습니다. 또래보다 유난히 덩치가 크고 뚱뚱한데다가 지독한 근시로 두꺼운 안경까지 끼고 있었던 마리아는 늘 천덕꾸러기에다 외톨이었고 어머니의 사랑은 언제나 예쁘고 날씬한 언니의 차지였습니다. 덩치에 어울리게 목소리도 컸던 마리아가 오직 하나 사람들의 관심을 끌 수 있었던 것은 노래였습니다. 그걸 알게 되면서 칼라스는 다른 누구도 아닌 오직 어머니의 사랑을 얻고자 노래를 부르고 또 불렀습니다. 부유한 집에서 태어나 무대에서의 삶을 꿈꾸었으나 부모의 반대로 이루지 못했던 어머니는 뒤늦게 어린 딸의 재능을 발견하고 기대를 갖게 됩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그것은 딸의 행복을 위해서가 아니라 딸의 성공을 통한 대리만족이었습니다.

 

 

 

 

마리아 칼라스 (Maria Callas, 1923. 12. 2 ~ 1977. 9. 16.)

 

아버지의 약국이 경영난으로 문을 닫게 되자 이혼한 어머니는 두 딸을 데리고 그리스로 돌아갔고 마리아는 아테네 국립 음악원에 입학하여 성악을 공부하게 됩니다. 거기서 스페인의 성악가 엘비라 데 이달고를 만나 성악의 기초를 닦고 실력을 쌓아가지만 그리스의 정국이 혼란으로 치닫게 되자 1945년 아버지가 있는 미국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그해 겨울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의 오디션에 응모했지만 탈락하는 아픔을 겪게 되고 겨우 힘들게 맺은 출연계약마저 기획사가 도산하는 바람에 물거품이 되어버립니다. 그러나 같은 기획사 소속의 베이스 가수 레메니의 소개로 1947년 베로나의 아레나에서 라 지오콘다에 출연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어 유럽으로 돌아왔고 그것이 마리아 칼라스의 공식적인 데뷔 무대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바로 그 무렵 이탈리아의 부유한 사업가 지오반니 바티스타 메네기니를 만나게 되는데 그것이 칼라스의 인생에서 가장 큰 행운이었습니다. 진정으로 칼라스를 사랑했던 그는 스스로 매니저를 자처하면서 그의 모든 것을 칼라스에게 바쳤습니다. 두 사람은 동거를 거쳐 마침내 결혼에 이르렀고 메네기니의 헌신적인 사랑으로 말미암아 칼라스는 노래에만 전념하게 되어 역사상 최고의 소프라노로 등극하게 됩니다.

 

 

영원한 불멸의 디바 - 2007년, 스크린에 부활하다!


역사상 최고의 디바로 꼽히는 마리아 칼라스(화니 아르당 분)가 그녀의 공연 기획자 친구인 래리(제레미 아이언스 분)의 설득으로 은둔 생활을 접고 오페라 '카르멘'을 영화로 만들게 된다는 흥미로운 가상 이야기를 다루는 음악드라마.

 

 

 

라트라비아타, 슬픈 비극의 마지막 장면을 노래하는 마리아(1953년)

 

 

 

지난 날이여 안녕!을 노래하는 마리아(1953년 라 스칼라)

 

1956년 라 스칼라 - 라 트라비아타의 명연주(실황녹음)

 

 

 

Ah, perfido! - 1976년 3월 파리 엘리제 궁 극장에서 마지막 연주(실황)

 

 

 

영원히 살아 있는 마리아의 노래와 말을 들어보자!

1) Norma (studio, 1949)

2) Il Trovatore (Mexico City, 1950)
3) Puritani (Mexico City, 1951)
4) Macbeth (Milan, 1952)
5) La Traviata (studio, 1953)
6) Lucia di Lammermoor (Milan, 1954)
7) Andrea Chénier (Milan, 1955)
8) La Vestale (Milan, 1956)
9) Anna Bolena (Milan, 1957)
10) Medea (Dallas, 1958)
11) Il Pirata (New York, 1959)
12) Poliuto (Milan, 1960)
13) Samson et Dalila (studio, 1961)
14) Tosca (studio, 1965)

 

 

 

베로나에서 데뷔한 이후 대역으로 나선 벨리니의 오페라 청교도에서 엘비라를 열연하여 오페라의 여신이란 극찬을 받았고 마침내 세계 최고의 오페라 극장이라는 라 스칼라에서 베르디의 아이다를 불러 정상에 우뚝 섰습니다. 칼라스는 당대의 프리마 돈나 레나타 테발디를 대신하는 절호의 기회를 놓치지 않았고 이후 스칼라 극장과 멀어지게 된 테발디와는 늘 라이벌 관계로 일컬어지게 되었습니다. 테발디를 넘어 자신의 시대를 활짝 연 칼라스는 코벤트 가든과 메트로폴리탄을 비롯한 세계 정상의 오페라 극장을 하나씩 정복하면서 전성기를 구가합니다. 그리고 어느날 90킬로그램이 넘었던 체중을 28킬로그램이나 줄여서 사람들을 놀라게 했고 지나친 감량에도 불구하고 소리의 힘을 잃지 않아 또 다시 사람들을 놀라게 했습니다. 이렇듯 남달리 강한 의지를 가졌지만 동시에 지나치게 감정의 기복이 심했던 칼라스는 사소한 문제로 사람들과 부딪혀 쓸 데 없는 불화와 말썽을 일으키기도 하고 심지어는 돌연 출연을 취소하여 비난과 빈축을 사기고 했지만 그 때마다 메네기니가 나서 사태를 수습하고 전화위복의 계기를 마련했습니다.

 

 

 

 

그러나 메네기니의 이러한 헌신적인 사랑도 칼라스의 비극적인 운명을 바꿔놓지 못했습니다. 역사상 그 누구도 누리지 못했던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을 때 그리스의 선박왕 오나시스가 칼라스에게 접근했고 사랑에 눈이 먼 칼라스는 메네기니는 물론 오페라와 노래까지도 던져 버렸죠. 메네기니가 칼라스에게 그랬던 것처럼 칼라스 또한 자신의 모든 것을 오나시스에게 걸었지만 희대의 카사노바였던 오나시스의 관심은 이미 케네디 대통령의 부인인 재클린에게 가 있었고 케네디가 비명에 세상을 떠나자 끈질기고 노골적인 구애 끝에 마침내 세기의 결혼식을 올리게 됩니다. 재클린과 신혼여행을 가서도 칼라스에게 전화를 걸 만큼 비열했던 오나시스를 포기하지 못했던 칼라스는 자기에게 돌아와 달라고 애원했습니다. 그토록 원하던 아이를 가졌으나 오나시스의 변심으로 유산을 하였고 그 충격으로 자살까지 시도하였습니다. 겨우 몸과 마음을 추스려 영화 메데아에 출연하였고 줄리어드 음악원에서 학생들을 가르쳤지만 이미 허물어져버린 심신은 돌이킬 수가 없었습니다. 딸의 치료비를 마련하겠다는 당대의 테너 주세페 디 스테파노의 간절한 청을 거절하지 못하고 함께 나선 세계 순회공연은 칼라스를 아끼는 많은 사람들을 안타깝게 만들 만큼 초라하였습니다. 결국 이 무대를 끝으로 더 이상의 기력을 잃은 칼라스는 파리에서 은둔 생활을 하던 끝에 1977916일 약물과용과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테너 주세페 디 스테파노에게 기자들이 칼라스와 테발디를 비교해 달라고 하자 그는 칼라스는 여자이지만 테발디는 아니다라는 대답을 했다고 합니다. 어려서 소아마비를 앓았던 테발디는 딸을 업고 하루도 빠짐없이 먼 길을 치료받으러 다녔던 어머니의 극진한 사랑으로 이를 극복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태어나면서부터 미운 오리새끼였던 칼라스는 어머니의 사랑에 목말라 노래로 그 사랑을 얻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어쩐 일인지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란 테발디의 노래와 연기는 너무나 절제되어 있어 고상하기만 할 뿐입니다. 그와는 반대로 사랑에 굶주렸던 칼라스의 노래는 구구절절 사랑으로 넘쳐납니다. 이미 가진 사람은 절실하지가 않겠지요. 그래서 아마도 궁핍이 예술을 낳는다고 하는 것이겠지요. 가지지 못해 너무나 안타까운 마음이 애닲은 노래를 낳았을 겁니다. 그러고 보니 칼라스만이 부를 수 있다는 벨리니의 노르마는 배신당한 사랑의 아픔을 노래하고 있고 역시 누구도 따를 수 없다는 도니제티의 람메르무어의 루치아도 이루지 못한 사랑의 절망으로 미쳐버린 여인의 심정을 노래하고 있군요. 푸치니의 오페라 토스카가운데 토스카가 부르는 아리아 노래에 살고 사랑에 살고를 들으며 노래와 사랑이 삶의 전부였기에 사랑으로 노래를 부르고 노래로 사랑을 얻으려고 했던 한 여인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마리아 칼라스의 아베마리아

 

 

 

글 : 홍승찬 교수
편집 : 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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