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승찬 교수의 클래식 음악 이야기] 죽음에 앞서 깨달은 사랑의 참 뜻, 푸치니의 “투란도트”[홍승찬 교수의 클래식 음악 이야기] 죽음에 앞서 깨달은 사랑의 참 뜻, 푸치니의 “투란도트”

Posted at 2017.05.09 07:30 | Posted in 이건음악회 Talk Talk/홍승찬교수의 클래식 톡톡


 

오늘날 세계 주요 오페라 극장에서 공연하는 오페라들 가운데 절반 이상은 아마도 1800년대 이후 백여년 동안 이탈리아에서 만들어진 오페라일 것입니다. 롯시니에서 시작된 19세기 이탈리아 오페라의 르네상스는 벨리니와 도니제티를 거쳐 베르디에 이르러 그 절정에 이르렀고 푸치니가 그 마지막을 화려하게 장식했습니다. 그런 푸치니의 마지막 오페라가 "투란도트"였고 이 작품을 끝으로 이탈리아 오페라는 다시 긴 겨울잠에 들어가 지금까지도 깨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 작품을 쓰면서 그는 '이전에 작곡한 오페라들은 다 버려도 좋다'고 했을 정도로 애착을 가졌고 또 심혈을 기울였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끝내 완성하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나 그 나머지 작업은 다른 사람의 손을 빌려야 했습니다. "투란도트"는 푸치니의 이전 작품들과는 사뭇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대중적이고 통속적인 이야기에 감상적이고 진부한 음악이라는 전문가들의 비난을 의식했던지 현실에서 동떨어진 옛 이야기를 소재로 삼았는가 하면 공이나 실로폰과 같은 이국적인 악기와 불협화음에 원시적인 리듬까지 과감하게 사용하였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여성을 앞세웠던 전작들과는 달리 남자 주인공이 이야기를 이끌어가고 있습니다.

 

출처 : http://www.nyculturebeat.com/index.php?mid=Music&document_srl=3396918&search_target=tag&search_keyword=%EB%A9%94%ED%8A%B8%EC%98%A4%ED%8E%98%EB%9D%BC

 

 

중국의 아름다운 공주 투란도트는 할머니가 적군에게 유린당한 과거의 악몽을 떨치지 못해 남성을 혐오하고 결혼을 기피합니다. 그럼에도 구혼자들이 줄을 잇자 세 가지 수수께끼를 내서 그 답을 맞추면 결혼을 하고 아니면 목숨을 내놓아야 하는 조건을 내걸었고, 많은 이들이 도전하였으나 모두 실패하여 목숨을 잃고 맙니다. 이때 나라를 잃고 떠돌던 타타르의 왕자 티무르가 나타나 공주의 수수께끼를 풀었지만 얼음같은 공주의 마음은 왕자의 사랑을 거부합니다. 그러자 왕자는 다음날까지 공주가 자신의 이름을 알아내면 목숨을 내놓고 아니면 결혼해야 한다는 제안을 합니다. 궁지에 몰린 공주는 수소문 끝에 왕자의 시녀인 류를 잡아들여 모진 문초로 왕자의 이름을 알아내려 하지만 왕자를 몰래 짝사랑했던 류는 스스로 목숨을 끊어 왕자를 지킵니다. 왕자의 용기와 류의 사랑에 감복한 공주는 결국 마음을 열어 왕자를 받아들이고 마침내 두 사람은 결혼에 이르게 됩니다.

 

출처 : https://kr.pinterest.com/pin/407364728772437860/

 

 

이 대강의 줄거리는 중동에서 전해오는 "투란도흐트 Turandokht" 이야기에서 비롯된 것으로 루이 14세 때의 작가 들라크루아가 페르시아의 옛 이야기들을 모아서 펴낸 "천일일화"에 수록한 것을 베네치아의 극작가 카를로 고치가 희곡으로 만들었습니다. 이것을 독일의 프리드리히 실러가 다시 각색한 것이 이탈리아어로 번역되어 푸치니의 손에 들어갔던 것입니다. 원래의 이야기는 왕자가 수수께끼를 풀면 바로 공주와 결혼하는 것이었으나 푸치니의 고집으로 하룻밤의 시간이 더해지면서 거기에 류의 희생이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이를 두고 사람들은 밋밋하고 뻔한 줄거리를 보완하는 한편, 전작들에서 줄곧 이어져 사람들에게 너무나 익숙한 푸치니 오페라의 특징을 그대로 유지하려는 의도로 해석하기도 합니다.

 

 

 

아닌게 아니라 "토스카""라보엠", "나비부인"과 같은 푸치니의 대표작들은 한결같이 사랑에 모든 것을 걸지만 끝내 목숨을 잃는 여인들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습니다. 푸치니 자신의 여성편력 때문인지 오페라 역사를 통 털어 푸치니만큼 다양한 성격의 여성들을 작품 속에 다루면서 그만큼 감성적으로 또 섬세하게 그 심리를 잘 드러내어 전달한 이는 따로 없었습니다. 작품을 쓸 때마다 푸치니는 늘 누군가와 열애중이어서 그 상대의 성격이 작품 속 여주인공으로 그려지는 경우가 많았기에 "투란도트"의 초연을 지켜 본 청중들이라면 누구나 가엾은 류의 모습에서 바로 일년 전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푸치니 스캔들의 불쌍한 희생양을 떠올릴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푸치니의 부인 엘비라는 하녀 도리아 만프레디와 남편 사이의 불륜을 의심하여 못견딘 나머지 도리아에게 심한 욕설을 퍼붓고 집에서 내쫓았는가 하면 교회에까지 고발하고 망신을 주었습니다. 사람들의 따돌림을 견디다 못한 도리아는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가족들의 요청으로 부검을 한 결과 도리아가 처녀였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비난의 화살은 엘비라에게 쏟아졌습니다. 엘비라는 무고죄로 고소되어 유죄 판결을 받았으나 푸치니가 유족에게 금전적인 보상을 하여 처벌만은 면하게 됩니다. 이 일이 있고 얼마지 않아 "투란도트"를 보게 된 관객들이 왕자의 시녀 류에게서 푸치니의 하녀 도리아를 떠올리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두 인물 사이에는 너무나 다른 면면이 있어 그후로도 그 부분에 대한 의혹은 끊이지 않았습니다. 도리아와 푸치니는 서로 사랑하는 사이가 아니었는데 푸치니가 과연 그의 작품 속에 구태여 연인이 아닌 다른 인물을 투영하려 했을까 하는 의문이 있었고 투영한 게 사실이라면 그 까닭이 무엇인지에 대한 의문이 꼬리를 물었습니다. 죄책감 때문이라는 추측이 있고 도리아의 짝사랑, 혹은 두 사람 사이의 정신적인 사랑을 까닭으로 짐작하는 이들도 있었지만 그 어느 것도 분명하게 밝혀지진 않았습니다.

 

 

2008년 이탈리아의 파울로 벤베누토 감독이 영화 "푸치니의 여인"을 발표하면서 세상은 다시 한번 도리이의 비극에 주목하게 되었고 그 동안 감춰졌던 사건의 전모가 밝혀지면서 풀리지 않았던 의혹도 말끔하게 해소되었습니다. 벤베누토의 말에 따르면 영화 스탭 중의 한 사람이 푸치니가 살던 토레 델 라고의 집 근처의 식당에 들렀다가 푸치니의 사생아라는 사람이 그 식당에 자주 들렀다는 말을 들었고 결국 그의 자취를 추적하다 그의 딸, 즉 푸치니의 손녀인 나디아라는 여인을 만나게 되었다고 합니다. 나디아로부터 건네받은 40여통의 편지는 모두 푸치니가 나디아의 할머니 줄리아 만프레디에게 보낸 편지였고 그 편지를 몰래 전한 사람이 바로 줄리아의 사촌동생이자 푸치니의 하녀였던 도리아였던 것입니다. 줄리아는 푸치니가 살던 집과 호수를 사이에 두고 멀리 보이는 선술집을 혼자 꾸려갈 만큼 억척스러우면서도 늘 밝고 푸근한 여성이었다고 합니다. 줄리아와 사랑에 빠졌을 때 푸치니는 오페라 "서부의 아가씨"를 작곡하고 있었고 오페라에서 선술집을 운영하는 씩씩한 여주인공 미니는 당연히 줄리아를 모델로 삼아 만든 인물이었습니다. 그들 사이에서 남몰래 편지 심부름을 하던 도리아는 그들 사이의 비밀을 혼자 가슴 속에 묻은 채 스스로 목숨을 끊었던 것입니다.

 

 

 

푸치니는 이 착하고 가엾은 하녀의 어이없는 죽음에 커다란 충격을 받아 그 죄책감을 떨칠 수가 없었고 어떻게든 그 넋을 위로하고자 마지막 오페라의 주인공으로 무대에 세웠던 것입니다. 참으로 묘한 것은 푸치니의 운명 또한 여기까지였다는 사실입니다. 왕자의 비밀을 지키기 위해 류가 목숨을 끊는 장면까지 작곡을 한 다음 아들과 함께 벨기에까지 가서 진찰을 받은 결과 후두암 판정을 받고 수술을 받았으나 불과 며칠 후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대지휘자 토스카니니가 프랑코 알파노에게 마무리 작업을 맡겨 예정보다 1년 늦게 초연을 했지만 그 첫 공연에서 토스카니니는 류가 죽는 장면을 끝으로 음악을 멈추고는 객석을 향해 "친애하는 푸치니 선생은 여기까지 쓰시고 돌아가셨습니다."라는 말을 남기고는 그 자리를 떠났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이 오페라에서 정작 푸치니가 보여주고 싶었던 것은 왕자와 공주가 결혼해서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다는 결말이 아니었습니다. 서로의 뜨거운 사랑이 아니라 혼자만의 쓸쓸한 사랑일지라도 그 사랑을 위해서라면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주저 없이 기꺼이 바치고 흔적도 없이 사라질 수 있는 참 사랑의 희생과 헌신이었습니다. 어쩌면 스스로 그토록 많은 사랑을 했으면서도 이처럼 고귀한 사랑에는 결코 단 한번도 이르지 못했기에 더더욱 큰 아쉬움을 이렇게라도 토로하려 했는지 모르는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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