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승찬 교수의 클래식 음악 이야기] 음유시인이 들려주는 집시 여인의 슬픈 이야기(베르디의 일 트로바토레, 리골레토, 라 트라비아타 그리고 밥 딜런)[홍승찬 교수의 클래식 음악 이야기] 음유시인이 들려주는 집시 여인의 슬픈 이야기(베르디의 일 트로바토레, 리골레토, 라 트라비아타 그리고 밥 딜런)

Posted at 2017.04.21 07:30 | Posted in 이건음악회 Talk Talk/홍승찬교수의 클래식 톡톡


 

"일 트로바토레"(1853)"리골레토"(1851)"라 트라비아타"(1853) 사이에 베르디가 작곡한 오페라로 이들 세 작품은 오늘날 베르디의 오페라들 가운데 가장 많이, 또 자주 무대에 오르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이들 오페라의 이야기는 모두 빗나간 부정 때문에 벌어지는 비극을 다루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리골레토는 외동딸 질다를 짓밟은 만토바 백작에게 복수하려다 결국은 자신의 딸을 죽게 만듭니다. "라 트라비아타"에서 제르몽 남작은 서로 사랑하는 비올레타와 그의 아들 알프레도를 헤어지게 만들어 결국은 비올레타의 죽음을 재촉하고 맙니다. "일 트로바토레"에서 루나 백작과 만리코의 아버지는 어린 아들이 아픈 까닭이 집시 여인의 주문 때문일지도 모른다는 의심만으로 힘 없는 노파를 화형에 처합니다. 아마도 그 무렵 베르디가 이런 이야기에 한결같이 이끌렸던 것은 그토록 그에게 헌신하고 희생했던 주세피나 스트레포니와의 결혼을, 그런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아는 그의 아버지가 심하게 반대했기 때문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출처 : 문화뱅크(http://www.imwbk.com/bd/bbs/board.php?bo_table=gallery&wr_id=30&page=5)

 

이 오페라는 스페인의 작가 안토니오 가르시아 구티에레스(1813-1884)1836년에 발표한 [엘 트로바도르]를 바탕으로 만들었는데 트로바토레(이탈리아어), 트로바도르(스페인어)는 프랑스의 트루바두르, 트루베르와 마찬가지로 모두 중세시대의 "음유시인"을 뜻하는 말입니다. 같은 시대 독일에는 "민네징거"라 불렸던 음유시인들이 있었는데 바그너의 오페라 "탄호이저"가 바로 그들의 이야기로 등장인물 대부분은 역사 속에 실존했던 인물들입니다.

 

음유 시인이라고 함은 이런 느낌??

출처 : http://kairiseimach.lofter.com/

 

십자군 전쟁 이후 나타나기 시작한 음유시인들은 대부분 멀리 떠나 오랜 전쟁에 참전했던 탓에 생존의 기반을 잃고 돌아갈 곳이 없어진 기사들이었습니다. 이들은 이곳 저곳의 궁정을 떠돌며 전투의 무용담과 이국에서의 모험담, 그리고 사랑의 이야기를 노래에 실어 들려주었고 그 때문에 기사가 아니라 음유시인으로 불렸던 것입니다. 이 오페라에서 음유시인, 트로바토레는 주인공 만리코입니다. 집시 여인 아주체나의 아들인 그는 그를 따르는 무리들을 이끌고 루나 백작에 맞서고 있지만 내세울 혈통도 없고 받쳐주는 기반도 없는 떠돌이 기사입니다.

 

"일 트로바토레"에 나오는 이름들은 모두 가공의 인물들이지만 이야기가 펼쳐지는 시대와 장소는 모두 역사적인 사건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때는 1411년으로 스페인이 아직 하나의 국가로 통일되기 이전, 우르헬과 카스티야 두 가문이 아라곤 왕국의 왕위계승을 놓고 전쟁을 벌였고 오페라의 주인공 만리코와 루나 백작이 각각의 진영에 가담하고 있습니다.

정적이면서 이 두 사람은 레오노라라는 한 여인을 사이에 둔 연적이기도 합니다. 이 오페라의 이야기는 이 세 사람의 삼각 관계에서 벌어지는 사랑과 갈등, 희생과 파멸을 다룬 비극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겉으로 드러난 이야기일 뿐 그 속에 감춰진 또 다른 사연이 이들의 운명을 막다른 길로 몰고 갑니다. 그리고 그 운명의 열쇠는 또 한 사람의 등장인물인 집시 여인 아주체나가 쥐고 있습니다.

 

출처 : http://star.ohmynews.com/NWS_Web/OhmyStar/at_pg_m.aspx?CNTN_CD=A0002266629#cb

 

막이 오르면 캄캄한 밤, 루나 백작의 성을 지키는 경비병들에게 백작의 심복인 페란도가 이 집안에 얽힌 옛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루나 백작에게는 가르시아라는 남동생이 있었는데, 먹을 것을 훔치러 몰래 집에 들어온 집시 노파가 아기였던 그 동생을 한참이나 들여다 보다 사람들에게 들켜 도망 간 뒤로 시름시름 앓기 시작했답니다. 루나 백작의 아버지는 그것이 집시의 저주 때문이라며 그 노파를 붙잡아 화형에 처했는데, 그날 밤 아기가 없어지고 불에 탄 아기의 백골만 발견되었다는 겁니다.

아기가 없어지던 그날 밤에 있었던 일은 2막에서 듣게 됩니다. 새벽에 집시들이 숲 속 대장간에 장작불을 피워놓고 망치로 모루를 두드리며 대장간의 합창을 부르는데, 불꽃을 바라보던 아주체나는 무엇인가에 홀려 넋이 나간 듯 만리코에게 그 때의 일을 들려줍니다. 화형을 당한 집시 노파가 바로 그녀의 어머니였고 복수를 위해 루나 백작의 동생을 죽이려 했으나 실수로 자신의 아들을 불 속에 던져 버렸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만리코에게 루나 백작을 죽여 어미의 복수를 해달라며 애원합니다. 이 말을 들은 만리코는 어쩌면 자신이 아주체나의 아들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합니다.

이 일의 전모는 오페라의 마지막 가서야 밝혀지게 됩니다. 레오노라와의 결혼식을 앞둔 만리코는 아주체나가 루나에게 붙잡혔다는 소식을 듣고 구하러 나섰지만 그 또한 루나의 포로가 됩니다. 루나를 찾아간 레오노라는 연인을 살려주는 조건으로 루나의 사랑을 받아들이기로 하지만 몰래 독약을 마시고 서서히 죽어갑니다. 레오노라에게 속았다는 것을 알게 된 루나는 분을 참지 못해 만리코를 처형하는데, 그때 잠에서 깨어난 아주체나가 루나에게 만리코가 그의 동생임을 밝히고 "어머니! 드디어 복수가 이루어졌어요!" 라고 외칩니다.

 

라벨라오페라단 2013 베르디 일트로바토레

 

그렇다면 이 이야기는 결국 아주체나의 복수극이었고 그녀가 뜻한 바대로 복수를 이루었으니 아주체나의 승리로 끝난 것일까요? 이 모든 비극의 가장 큰 희생자는 누구일까요? 사랑을 위해 스스로 목숨을 버린 레오노라일까요? 혈육에게 죽임을 당한 만리코일까요? 아니면 사랑하는 여인을 두 번이나 연적에게 빼앗기고 제 손으로 동생을 죽인 루나일까요? 그들의 고통이 아무리 크다 한들 어머니의 억울한 죽음을 겪고 제 손으로 자식을 죽였으며, 원수의 자식을 제 자식인 양 애지중지 키워서 원수의 손에 죽게 만든 것보다 더한 고통이 있을까요?

 

오페라의 역사를 통털어 이 보다 더 비극적인 이야기를 찾기는 쉽지가 않습니다. 게다가 음악이 또한 절절하게 가슴을 파고 듭니다. 사람들은 만리코의 아리아 "타오르는 저 불길을 보라"와 레오노라의 아리아 "사랑은 장밋빛 날개를 타고"를 좋아하지만 무엇보다 가슴을 저미는 장면이라면 루나의 감옥에 함께 갇히게 된 만리코와 아추체나가 함께 부르는 이중창이 아닌가 싶습니다. 어두운 지하 감방에서 아주체나는 자신도 어머니처럼 불길 속에 죽을 것이라는 두려움에 떨고 있습니다. 만리코가 어머니를 마치 아기를 달래듯이 위로하고 두 사람은 집시 마을에서 행복하게 지내던 시절을 회상하며 그리워합니다. 아주체나는 어쩌면 태어나서 처음으로 느껴보는 안도감에 저도 모르게 스르르 잠이 듭니다. 합창 또한 이 오페라의 큰 매력으로 "대장간의 합창"이 유명하지만 모든 것이 파멸로 치닫는 마지막에 이르러 저 멀리 수도원에서 들리는 "미제레레"가 안개처럼 긴 여운으로 남습니다.

 

Verdi (베르디) - Chidel Gita (오페라 '일 트로바토레' 중 대장간의 합창) 

 

"미제레레"는 불쌍히 여겨 자비를 주십사 간구하는 기도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너나없이 가여운 존재입니다. 그러니 서로가 서로를 가엾게 여겨야 합니다. 오페라를 보며 저렇게 끔찍하고 어처구니 없는 일이 있을까 싶지만 과거에도 있었고 앞으로도 얼마든지 있을 수 있는 일입니다. "우리는 모두 타인의 고통 속에서 태어나 자신의 고통 속에서 죽어간다." 빅토리아 시대의 영국 시인 프란시스 톰프슨의 말입니다. 타인의 고통인 줄 알았던 것이 하나 둘씩 나의 고통으로 다가옵니다. 남이 만들어 내가 겪는 고통인가 했더니 세상 모든 고통이 나로 말미암은 것이었습니다.

 

우리시대의 음유시인 밥 딜런

 

음유시인이라니 까마득히 오래 전이구나 싶지만 지금도 우리가 겪는 답답하고 기막힌 일들을 시로 읊고 노래로 불러 공감하고 위로하는 음류시인이 어딘가에는 늘 있기 마련입니다. 올해 노벨 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된 밥 딜런도 한때 우리 시대의 음류시인이라 불렸습니다. 그가 부른 노래 "Blowing in the wind"의 마지막 후렴을 자꾸 입속으로 중얼거리게 됩니다. "The answer, my friend, is blowing in the wind! The answer is blowing in the wind!" 바람이 대답인지, 대답이 바람인지... 그렇습니다. 바람이 대답이고, 대답이 곧 바람입니다.

 

Blowing In The Wind (Live On TV, March 19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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