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페라'에 해당되는 글 18건

  1. [홍승찬 교수의 클래식 이야기] 전설의 시대를 만든 거장의 신화. 에브게니 알렉산드로비치 므라빈스키 2017.09.20
  2. [홍승찬 교수의 클래식 음악 이야기] 작은 것 부터 실천하는 세상에서 가장 쉬운 리더쉽 2017.08.02
  3. [홍승찬 교수의 클래식 음악 이야기] 오페라 “돈 카를로”와 영화 “사도세자” 베르디의 오페라 아이다까지 2017.05.07
  4. [홍승찬 교수의 클래식 음악 이야기] 메디치 가문에서 시작된 오페라와 발레의 역사. 프랑스와 이탈리아가 함께한 오페라. 2016.11.10
  5. [홍승찬 교수의 클래식 이야기] 삶의 반전, 삶을 휴식과도 같은 인터메초 이야기. 연극이나 오페라를 공연할 때 막과 막 사이에 가벼운 여흥. 2015.09.22
  6. [다카라츠카의 창시자 고바야시 이치조] 일본을 대표하는 무대예술 양식. 일본식 오페라 가부키에 대비되는 일본식 뮤지컬 다카라츠카 2015.02.27
  7. [브레겐츠 오페라 축제] 대자연의 경관과 음악의 감동이 함께 어우러진 색다르고 뜻 깊은 여행을 생각하신다면 베르겐츠 오페라 페스티발을 추천합니다! (2) 2013.11.19
  8. ['음악의 성인'이라고 불리는 베토벤의 생애와 작품-베토벤 16번, 작품번호 135번] 베토벤이 마지막 작품의 마지막 악장에 남긴 고뇌와 번민 (3) 2013.10.11
  9. [당신을 위한 클래식 음악 초대장] 베르디와 바그너의 마지막 메시지, 바보들의 행진. 베르디와 바그너의 탄생 200주년을 맞이하여... (17) 2013.09.11
  10. [세상에서 가장 쉬운 오페라 아리아] 음치가 아니라면 누구나 쉽게 따라 부를 수 있는 오페라 아리아 도니제티의 오페라 “사랑의 묘약” 2013.05.03

[홍승찬 교수의 클래식 이야기] 전설의 시대를 만든 거장의 신화. 에브게니 알렉산드로비치 므라빈스키[홍승찬 교수의 클래식 이야기] 전설의 시대를 만든 거장의 신화. 에브게니 알렉산드로비치 므라빈스키

Posted at 2017.09.20 15:23 | Posted in 이건음악회 Talk Talk/홍승찬교수의 클래식 톡톡


에브게니 알렉산드로비치 므라빈스키, 20세기가 낳은 위대한 거장들 가운데 가장 높은 반열에 있으면서도 스스로 삼가고 자중하여 내세우지 않고 드러나려 하지 않았던 은둔자이자 수도자였던 지휘자입니다. 그는 190364, 러시아의 상트 페테르부르크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자라고 공부했으며 그곳 오케스트라인 레닌드라드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오늘날의 상트 페테르스부르크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상임지휘자가 되어 평생을 떠나자 않고 그곳에만 50년을 바쳐 세계 최고의 오케스트를 만들었으며 1988119, 그곳에서 죽었고 또한 바로 그곳에 묻혔습니다. 그가 살았던 시대도 그랬지만, 오늘날 너나 없이 세속적인 욕망을 쫓아 현실과 타협하여 일탈조차 마다하지 않는 세태를 마주할 때마다 누구보다 고귀했던 그의 존재가 더욱 그리워지고 그가 남긴 향기의 여운이 점점 더 짙어갑니다.


 

출처 : 구글 이미지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나 물질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부족함이 없는 환경에서 자랐지만 혁명의 소용돌이 속에서 아버지를 잃었고 그가 누렸던 여유와 풍요 또한 한 순간에 사라지고 맙니다. 그로 말미암아 한 때는 마린스키 극장에서 허드렛일을 해야 했고 먼저 대학에서 생물학을 전공했지만 나중에 레닌그라드 음악원에 들어가 체르노프에게 작곡을, 그리고 가우크에게 지휘를 배웠습니다. 그는 원래 작곡가가 되기를 원했지만 창작의 자유를 허용하지 않는 소비에트 공산정권 치하에서는 의미가 없는 일이었기에 지휘자의 길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음악 뿐 아니라 예술 전반에 조예가 깊었던 그는 1923년부터 1931년까지 발레단에서 음악 코치로 일했습니다. 지휘자로는 1929년 처음으로 무대에 올라 1931년 레닌그라드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를 지휘하였고 이듬해부터 역시 레닌그라드에 있는 국립 크로프 오페라 발레극장의 부지휘자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1938년 모스크바에서 열린 소비에트 연방 지휘자 콩쿠르에서 우승하면서 주목을 받아 곧 바로 레닌그라트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음악감독으로 부임하였고 이후 세상을 떠나기 직전까지 50년 가까운 세월을 한 오케스트라와 함께 하는 전대미문의 기록을 남겼습니다. 취임 당시 수준 이하의 평가를 받았던 악단을 다듬고 또 단련하여 세계 정상으로 끌어올린 것도 놀라운 일이지만 그토록 긴 세월 동안 같은 자리를 지키면서 음악적으로나 인격적으로 늘 단원들의 한결같은 존경을 받았다는 사실이야말로 그 어떤 지휘자도 이루지 못한 므라빈스키만의 보람이자 자랑이 아닌가 싶습니다.

 

므라빈스키와 레닌그라드 필의 관현악 앨범

출처 : 곽근수의 음악이야기

 

영국의 BBC 방송이 만든 므라빈스키의 다큐멘터리 영상에는 그에 관한 감동적인 일화가 여럿 소개되어 있습니다. 그가 떠난 지 한참이 지났지만 그의 기일이면 생전에 그와 함께 했던 오케스트라 단원들이 그의 묘소를 찾아 서로의 추억을 떠올리며 업적을 기립니다. 그 가운데 은퇴한 한 여성 단원은 다음과 같이 말하며 눈시울을 붉힙니다. “처음 오케스트라에 들어왔을 때 나는 그저 남들보다 바이올린을 잘 켜는 연주자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므라빈스키와 함께 하는 시간을 지나면서 나는 진정한 음악가가 되어있었습니다.”

그리고 또 어느 단원은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언젠가 브루크너의 교향곡 7번을 연주하기로 했을 때, 거듭되는 연습과 리허설에 단원들은 지쳤지만 므라빈스키는 전혀 만족하지 않고 심지어 단원들의 악보를 집으로 가져가서 세세한 지시를 꼼꼼하게 적어서 다음날 다시 나누어주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또 여러 번의 리허설을 거친 다음 마지막 리허설에 이르렀을 때 단원들 모두가 느끼기를 너무나도 완벽한 연주였기에 스스로도 믿을 수가 없을 정도였고 마치 세상의 것이 아닌 듯한 음악이었다며 당시를 회상합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리허설이 끝나자 므라빈스키는 그날 연주를 취소했고 더욱 기가 막히는 일은 그가 말하기를 이처럼 완벽한 연주는 다시 있을 수가 없으므로 리허설만큼 연주회가 잘 될 리가 없다고 했다는 것입니다.

 

출처 : http://music.kyobobook.co.kr/ht/record/detail/4543638700219

 

러시아의 역사를 통털어 최고의 지휘자인만큼 러시아 작곡가들의 작품에 관한 한 그의 해석과 연주를 으뜸으로 치는 것은 당연한 일이겠지만 특별히 차이코프스키의 교향곡, 그리고 같은 시대를 살면서 서로 음악과 우정을 함께 나누었던 쇼스타코비치의 교향곡만큼은 이후로도 그 이상을 기대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쇼스타코비치가 남긴 15곡의 교향곡 가운데 5, 6, 8, 9, 10, 12번의 여섯 곡을 초연하였고 그 밖의 많은 곡들이 므라빈스키의 지휘봉 아래 세상에 첫 선을 보였습니다. 그가 생전에 가장 많이 연주한 곡은 차이코프스키의 교향곡 4번이었고 그 다음으로 자주 연주한 곡이 쇼스타코비치의 교향곡 5번이었습니다. 쇼스타코비치가 심혈을 기울인 오페라 므첸스크의 맥베드 부인이 스탈린의 눈에 거슬려 당국의 호된 비판을 받게 되자 모두가 그를 멀리했지만 므라빈스키만은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5번의 초연을 성공으로 이끌어 위기에서 그를 구했습니다. 그리고 쇼스타코비치가 다시 한 번 그의 교향곡 8번으로 사면초가에 빠졌을 때 므라빈스키만이 홀로 그를 지지하며 나섰다고 합니다. 이런 우여곡절을 겪으며 두 사람의 우정은 갈수록 깊어졌지만 한 차례 위기를 겪으며 잠시 흔들리기도 합니다. 쇼스타코비치가 교향곡 13번을 완성하여 초연을 부탁했지만 므라빈스키가 거절하면서 두 사람의 관계도 멀어진 것입니다. 므라빈스키가 생각하기에 그 곡은 전과 달리 지나치게 이념적이고 정치적이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물론 시간이 지나고 두 사람은 화해했지만 그만큼 소비에트 체제와 이념에 관한 한 므라빈스키의 부정적인 생각과 태도는 단호했습니다.

"이념은 악행에 정당성을 부여하고 악인에게 필연적인 확고함과 결단력을 제공한다." 소비에트 시절 체제의 핍박을 받았던 알렉산드르 솔제니친의 자전적 소설 "수용소 군도"에 나오는 말입니다. 소비에트 당국이 그를 축출하고자 탄핵을 결의하는 문서에 동료 예술가들의 서명을 강요했을 때도 지휘자 므라빈스키는 끝까지 거부했습니다. 솔제니친이 저술을 통해 저질렀다는 반국가적, 반사회적, 반체제적 행위에 대해 므라빈스키는 그의 책은 소비에트 안에서 출판이 금지되었기에 읽을 수가 없었고 따라서 그러한 사실을 알지 못한다며 끝까지 거부의 뜻을 굽히지 않았습니다.

 

출처 : http://kathyhong.tistory.com/archive/201402

 

지휘자의 역사를 통털어 20세기 전반은 토스카니니와 푸르트뱅글러의 시대였고 후반은 카라얀과 번스타인의 시대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푸르트뱅글러는 나치에 협력하였고 카라얀은 나치에 가담했습니다. 번스타인은 사회주의에 동조하였지만 문제가 되자 부인하며 애매한 태도를 취했습니다. 토스카니니만이 무솔리니와 히틀러에 무모하리만큼 용감하게 맞섰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가치와 신념이 달라서가 아니라 그들이 자신만이 지배하고 결정해야 하는 오케스트라와 음악의 영역을 침범했기 때문입니다. 므라빈스키는 평생을 소비에트 체제 속에서 살면서도 공산당에 입당하지 않았고 다만 50년을 한 오케스트라에 그의 모든 것을 바쳐 바닥에서 정상으로 올려놓았습니다. 오케스트라와 함께 하지 않을 때 그는 늘 시골의 오두막에 머무르며 밤이면 책을 읽고 낮이면 의자에 앉아 하염없이 자연을 바라보거나 그 속을 말없이 거닐었습니다. 그리고 꺾이지 않는 그의 뜻은 말 대신 음악에 담아 절절하게 쏟아냈습니다. 음악이 있었기에 신념을 굽히지 않았고 신념이 있었기에 음악에 모든 것을 바칠 수 있었습니다. 그야말로 진정한 음악가이자 예술가였습니다. 무엇보다 참으로 아름다운 한 인간이었습니다.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 그 사람다운 삶을 아름다운 음악으로 들려주는 아름다운 세상을 꿈꿉니다.

 

 

https://youtu.be/mqZ3UfpO4tA

차이코프스키 - 교향곡 6번 / 므라빈스키 유튜브 동영상

 

00:10 - I. Adagio. Allegro non troppo

17:44 - II. Allegro con grazia

25:50 - III. Allegro molto vivace

34:10 - IV. Finale. Adagio lamentoso. Andan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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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ningrad Philharmonic Orchestra / Evgeny Mravinsky

레닌그라드 필하모니 교향악단 / 예프게니 므라빈스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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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승찬 교수의 클래식 음악 이야기] 작은 것 부터 실천하는 세상에서 가장 쉬운 리더쉽[홍승찬 교수의 클래식 음악 이야기] 작은 것 부터 실천하는 세상에서 가장 쉬운 리더쉽

Posted at 2017.08.02 08:02 | Posted in 이건음악회 Talk Talk/홍승찬교수의 클래식 톡톡


 


예술의 전당 공연예술감독으로 있을 때 오페라 마술피리의 출연자 모두를 오디션으로 뽑자고 했습니다. 먼저 공연기획팀 직원들의 추천과 회의를 거쳐 지휘자와 연출자를 선정하고 그 두 사람과 함께 오디션 심사에 들어갔지만 감독인 저는 그저 지켜볼 뿐 연출자와 지휘자의 생각이 다를 때가 아니면 절대로 개입하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처음부터 끝까지 두 사람의 견해가 엇갈리는 경우가 없었고 감독이 개입할 일도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는 누구에게 물어봐도 최선이라 할 만한 것이었습니다. 당연한 일을 당연하지 않은 듯 새삼스럽게 떠올리는 것은 그때도 다들 말하길 전에는 없던 일이라 했고 지금껏 지켜보니 이후로도 없는 일인 듯 싶어서입니다. 이렇게 쉬운 일을 자꾸만 어렵게 만듭니다. 맡겨두면 될 일을 나서서 그르칩니다. 상식이 상식으로 통하지 않는 세상입니다.

 

출처 : http://www.loveandong.kr/guide/cul_02/play_view.php?lcode=4&idx=4532


학교 산학협력단 단장으로 있을 때 직원을 새로 뽑을 일이 있었습니다. 면접심사를 준비하면서 면접 받는 분들이 오래 기다리지 않도록 각자의 심사시간을 따로 정해 알리라고 했고 봉투에 소정의 교통비를 챙겨 지급하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결과는 심사가 끝나면 곧바로 통보하라는 말도 잊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모든 절차가 끝나고 얼마지 않아 면접심사에 지원했다가 뜻을 이루지 못한 한 응모자로부터 전화를 받았습니다. 혹시나 절차나 결과에 대한 유감이나 항의인가 싶어 순간 긴장했으나 뜻밖에도 감사의 인사를 받고 의아했습니다. 그는 비록 떨어졌지만 여러모로 존중하고 배려해줘서 고맙다고 했습니다. 지금껏 수많은 채용공고에 원서를 내고 면접을 봤지만 교통비를 챙겨주는 곳은 여기 말고 단 한 곳도 없었다고 했습니다. 전화를 끊고 한참을 멍하니 앉아서 우리가 함께 더불어 사는 세상이 어디서부터 무엇이 어떻게 잘못되었지를 곰곰이 생각해보았지만 도저히 알 수가 없었습니다. 그저 외롭고 답답하고 두렵기만 했습니다.

 

출처 : 아이클릭아트

 

의정부 국제음악극축제의 예술감독으로 있을 때 사무국 직원들에게 늘 입버릇처럼 하던 말이 있습니다. 축제를 찾는 관객들도 중요하고 의정부 시민들도 중요하지만 다른 누구보다 함께 일하는 우리 직원들이 가장 중요하기에 무엇보다 먼저 우리 모두가 신나서 함께 즐겁게 일할 수 있었으면 하는 것이 가장 큰 바람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되면 직원들 모두가 서로를 아끼고 도우며 열심히 일할 것이니 축제가 잘못될 까닭이 없을 것이라고 말입니다. 아울러 직원들에게 말하길 그래도 혹시 결과가 기대에 미치지 못하여 책임질 일이 생긴다면 그건 전적으로 감독이 감당할 일이고 그래서 감독을 두는 것이니 걱정하지 말라고도 했습니다. 그래서 감독을 그만둔 지금도 축제보다는 함께 일했던 직원들의 근황이 더 궁금하고 그들이 다 잘 되었으면 하는 마음에 조금이라도 도움을 주고자 늘 생각하고 있습니다. 감독이고 팀원이기 전에 이렇듯 서로를 위하는 마음이 사람 사는 세상의 마땅한 도리이기 때문이고 그걸 앞장 서서 지키고자 하는 것이 또한 책임지고 이끄는 자의 당연한 의무라고 생각하는 까닭입니다.

 

출처 : 아이클릭아트 

 

몸 담고 있는 학교의 예술경영전공을 전담하는 조교를 처음 뽑았을 때입니다. 그 조교를 불러 미리 당부했습니다. 더 좋은 자리가 있거나 혹시 사정이 있어 그만두게 되면 후임자는 반드시 전임자가 구해야 할 것이며 인수인계 또한 두 사람이 알아서 할 일이니 주임교수는 일체 관여하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아울러 인수인계를 할 때 후임자에게 또한 나중에 사임하게 되면 전임자가 했던 그대로 따라 해야 함을 주지시켜 이를 원칙으로 삼아 전통으로 이어가자고 했습니다. 그 이후 몇 번이나 조교가 바뀌는 동안 한번도 그 일에 관여하지 않았지만 언제나 그 일을 가장 잘 한다 싶은 적임자가 그 자리에 있었고 덕분에 학과 운영이 너무나 순조로웠습니다. 무슨 일이든 지금 하고 있는 사람이 그 일을 가장 잘고 있기 마련입니다. 처음부터 일에 관해 확고한 권한을 주고 그에 따른 책임을 주지시켜 스스로 알아서 해나가게 한다면 주어진 조건에서 최선을 만들어낼 것입니다.

 

출처 : 아이클릭아트 

 

"배를 만들고 싶다면 사람들에게 나무를 가져오게 하고 일감을 나눠주거나 지시를 하지 말라. 대신 그들에게 저 넓고 끝없이 펼쳐진 바다에 대한 동경을 키워줘라."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에 나오는 말입니다 그렇게 해서 어느 세월에 배가 만들어지냐고요? 까짓 것 늦어지면 어떻고 못 만들면 또 대수인가요! 그렇게 서로 마음이 맞아 함께 꿈을 키우고 모두가 있는 힘을 다한다면 그게 기쁨이고 보람이지요! 쯧쯧...철이 없어 세상 물정을 모른다고요? 그런 물정이라면 모르고 살렵니다. 솔직히 말해서 전엔 한 때 그런 줄만 알고 그리 살기도 했지만 이제사 그게 아닌 줄 알았습니다. 진작에 알았을 걸 그랬냐고요? 이제라도 깨달았으니 얼마나 다행인지요! 이렇게 죽는 날까지 철들지 않고 살렵니다. 생텍쥐베리는 "어린 왕자"에서 정말로 소중한 것은 눈에 잘 안보인다고 합니다. 세상에서 제일 힘든 일이 사람의 마음을 얻는 것이라는 말도 하죠. 늘 가까이 있는 사람이 제일 소중한데 그것을 깨닫지 못하니 그 마음도 얻지 못하는 겁니다. 마음을 줘야 얻습니다.

 

출처 : 아이클릭아트  

 

다그쳐서 되는 일보다 부추겨서 되는 일이 더 많습니다. 스스로도 아는 잘못은 나무랄 일이 아니죠. 때로는 모르는 척 덮어주고 찾아서 고치도록 기다리는 게 낫습니다. 재촉하면 조바심이 나고 질책하면 의욕마저 잃어 하던 일도 그르치기 마련입니다. 나무라기보다 추켜세우고 말을 앞세우기 전에 들어줘야 합니다. 그래야지 마음먹어도 잘 안되는 것은 참지를 못하고 믿지를 못해서입니다. 믿을 만하니 믿고 참을 만해서 참는 게 아니라 믿을 밖에 다른 도리가 없고 참는 것 보다 더 나은 수가 없어서입니다. 참아주니 고맙고 믿어주니 더 힘을 내는 겁니다. 그랬는데 그렇지 않다면 그럴 때까지 또 그래야 합니다. 사람 사는 세상은 마땅히 언제나 어디서나 그래야 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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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승찬 교수의 클래식 음악 이야기] 오페라 “돈 카를로”와 영화 “사도세자” 베르디의 오페라 아이다까지[홍승찬 교수의 클래식 음악 이야기] 오페라 “돈 카를로”와 영화 “사도세자” 베르디의 오페라 아이다까지

Posted at 2017.05.07 07:30 | Posted in 이건음악회 Talk Talk/홍승찬교수의 클래식 톡톡

 

 


 

출처 : 나무위키


2015년 개봉한 영화들 가운데 "사도세자" 이야기가 많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습니다. 사도세자라면 그 영화를 보지 못했어도 그 줄거리는 대충 짐작할 만큼 우리에겐 널리 알려진 인물입니다. 그런데 유럽의 역사에서도 그와 비슷한 인물이 있어 그들 또한 우리처럼 비운의 왕세자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16세기 초 무적 함대의 신화를 만들어 스페인의 전성 시대를 열었던 펠리페 2세의 아들 카를로스 황태자가 사도세자와 같은 운명이었습니다. 그 역시 정치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아버지에게 죽임을 당하는 비극의 주인공이었습니다. 사도세자가 뒤주에 갇혀 물 한모금 마시지 못하고 비참한 최후를 맞은 것처럼 카를로스 왕자는 성안에 감금되어 굶어죽었다고 합니다. 사도세자의 기막힌 사연이 소설로, 드라마로, 또 영화로 숱하게 만들어진 것처럼 카를로스 왕자의 안타까운 이야기 역시 여러 장르의 예술이 거듭 다루었던 주제였고 그 가운데는 오페라도 빠지지 않습니다. 베르디의 오페라 "돈 카를로"가 바로 비운의 왕자 카를로스의 이야기를 다룬 작품입니다. 독일의 문호 프리드리히 쉴러가 쓴 희곡 "스페인의 왕자, 돈 카를로스"를 바탕으로 만든 오페라입니다. 베르디를 좀 안다는 사람들 중에는 그가 남긴 오페라들 가운데 "돈 카를로"를 최고의 역작으로 꼽는 이들이 많습니다. 그만큼 심혈을 기울였다는 것이고 그럴 만한 까닭이 있었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출처 : 오페라 돈 카를로스

 

베르디가 작곡한 오페라들 중에는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를 다루고 있는 작품이 많은데 특히 아버지와 딸, 혹은 아버지와 아들의 경우가 더욱 두드러집니다. 대표작으로 꼽히는 "리골레토"의 주인공 리골레토는 애지중지 홀로 키운 외동딸 질다를 끝내 잃고 맙니다. "아이다"에서는 이집트 파라오와 그의 딸 암네리스, 에디오피아의 왕 아모나스로와 그의 딸 아이다가 서로 다른 부녀의 정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라 트라비아타"에 나오는 제르몽은 아들의 장래를 걱정하여 알프레도와 비올레타 사이를 갈라놓고 맙니다. 이처럼 베르디 오페라에서 부모와 자식 사이의 가슴 아픈 이야기가 유독 많은 것은 아무래도 그 자신이 결혼하고 얼마지 않아 어린 아들과 딸을 차례로 잃고 아내마저 세상을 떠나는 아픔을 견뎌야 했기에 당연한 일인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조금 더 자세히 들여다 보면 그의 오페라에 등장하는 부모의 사랑은 어딘가 모르게 죄다 일그러져 있습니다. 리골레토는 질다를 가두다시피 숨겨서 키웠지만 결국은 만토바 공작에게 순결을 짓밟히자 복수에 눈이 멀어 자신의 딸을 죽음으로 내몰았는가 하면 아이다의 아버지 아모나스로는 딸로 하여금 연인을 속여 적군의 비밀을 알아내도록 윽박지르는 것조차 서슴치 않습니다. 비올레타를 설득해서 알프레도를 떠나게 만든 제르몽 역시 겉으론 아들의 장래를 위한다지만 사실은 자신과 집안의 체면을 지키려는 생각이 앞섰던 것입니다.

 

출처 : 유튜브

오페라 "돈 카를로"는 베르디가 줄곧 다루었던 빗나가고 비뚤어진 부정의 결정판이라 할 수 있습니다. 아니 어쩌면 요즈음 한창 우리 사회의 문제로 떠오른 막장 드라마의 원조가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스페인 왕자 카를로(카를로스)는 아버지 펠리페 왕이 배필로 정해준 프랑스 공주 엘리자베타(엘리자베트)를 퐁텐블로 숲에서 처음 만나 사랑에 빠집니다. 그런데 두번째 왕비를 잃은 펠리페 2세는 어이없게도 이미 아들과 약혼한 엘리자베타와의 결혼을 발표합니다. 충격을 받은 왕자를 친구인 로드리고가 위로를 하지만 이제 어머니가 되어 가까이에 있는 엘리자베타를 향한 그의 마음은 걷잡을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더 기가 막히는 것은 왕의 정부 애볼리가 연인의 아들 카를로를 사랑한다는 설정입니다. 질투에 눈이 먼 애볼리의 간계로 펠리페는 아들과 왕비의 불륜을 의심하게 되고 이것이 결국 카를로를 죽음으로 몰고 가는 원인이 됩니다.

 


 

카를로의 친구 로드리고를 빼고 오페라에 등장하는 주요 배역들은 모두 실존 인물입니다. 그러나 펠리페왕이 아들의 약혼녀와 결혼했다는 것과 아들을 죽게 했다는 것을 빼면 오페라의 이야기와 역사적인 사실은 사뭇 다릅니다. 심지어 오페라에서는 카를로가 최후를 맞으려는 순간, 펠리페의 부왕이자 카를로의 할아버지인 카를 5세가 무덤에서 나와 손자를 데리고 가는 것으로 결말을 짓습니다. 이런 억지와 결함에도 불구하고 이 오페라가 최고의 걸작으로 꼽히는 까닭은 요소요소에서 빛을 발하는 음악의 힘이고 그렇게 되도록 심혈을 기울인 베르디의 열정입니다. 베르디가 어린 자식들과 부인을 잃고 실의에 빠졌을 때 소프라노 주세피나 스트레포니의 위로와 헌신으로 재기하여 성공할 수 있었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입니다. 그런데 베르디를 만나기 전 스트레포니와 다른 남자들 사이에 있었던 부적절한 관계 때문에 두 사람의 사랑에 숱한 질타와 비난이 쏟아졌고 심지어는 오랜 동거 끝에 뒤늦은 결혼을 결심했을 때도 반감과 반대가 잦아들지 않았습니다. 베르디의 가장 큰 상처는 그들의 결합을 그렇게 심하게, 또 끝까지 반대한 사람들 중에 자신의 부모가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그 갈등과 배신감이 얼마나 컸던지 그 사건 이후 부모와의 관계를 끊고 다시는 서로 보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는 법적인 관계까지 정리했다고 합니다. 이런 사연을 알고 보면 "돈 카를로"에 집념을 불태운 그의 마음을 짐작하고 헤아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우리에게 무엇보다 충격인 것은 위대한 음악가들 가운데 그 누구보다 선하고 고귀한 삶을 살았던 그가 천륜이라고 하는 부모자식의 인연을 저버렸다는 사실입니다. 정말로 알 수 없는 것이 사람의 마음인 듯싶습니다. 그래서 참으로 어려운 것이 누구보다 가까운 사이인 것 같습니다. 가까우니 잘 알고 아는 만큼 아끼는 마음에 잘 챙기고 보살펴 줄 것 같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가 더 많습니다. 기대가 큰 만큼 실망도 커서 오히려 서로에게 더 큰 상처를 남기기 마련입니다. 생텍쥐베리의 소설 "어린 왕자"에 나오는 말처럼 정말로 소중한 것은 바로 곁에 있는데 정작 우리가 그것을 보지 못하는 것은 아닌지 생각하게 됩니다. 당장 오늘부터라도 가장 가까운 이들부터 꼼꼼하게 살펴서 그 마음을 마음으로 따뜻하게 어루만져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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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승찬 교수의 클래식 음악 이야기] 메디치 가문에서 시작된 오페라와 발레의 역사. 프랑스와 이탈리아가 함께한 오페라.[홍승찬 교수의 클래식 음악 이야기] 메디치 가문에서 시작된 오페라와 발레의 역사. 프랑스와 이탈리아가 함께한 오페라.

Posted at 2016.11.10 11:54 | Posted in 이건음악회 Talk Talk/클래식 톡톡



메디치 가문이라면 지금도 재력가의 대명사로 불릴 만큼 막대한 부를 축적했을 뿐만 아니라 대대로 피렌체를 지배하면서 예술가들특히 보티첼리와 라파엘로미켈란젤로와 같은 르네상스 시대의 대표적인 미술가들을 후원하였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입니다지금도 메디치의 본산이었던 우피치 궁은 박물관으로 바뀌어 메디치 가문이 소장했던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대표적인 미술품들을 고스란히 간직한 채 사람들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이곳에 전시된 소장품들을 다 돌아보려면 하루가 모자라고 이틀도 부족할 만큼 방대할 뿐만 아니라 그 대부분이 르네상스 시대를 대표하는 걸작이라는 것이 놀라울 따름입니다. 그런데 그보다 더 놀라운 사실은 이 모두가 메디치라는 한 가문이 의뢰하고 소장한 미술품이란 것입니다.



이처럼 메디치라면 주로 회화나 조각과 같은 미술이나 건축의 애호가이자 후원자로 알려져 있지만 다른 예술 장르나 학문을 포함한 문화 전반에 걸쳐 두루 영향을 미쳤습니다. 그 가운데 특히 오페라와 발레의 경우 그 탄생부터가 메디치 가문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데 그것이 모두 프랑스 왕실과의 혼인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이 흥미롭습니다. 오페라가 피렌체에서 탄생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바르디 백작의 사랑방에 모였던 당대의 학자들과 예술가들이 문헌 속의 기록으로만 남은 그리스의 비극을 재현하고자 서로 협력하여 새롭게 만든 것이 오페라라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지만 현존하는 최초의 오페라가 메디치 가문의 후광을 업고 탄생했다는 사실은 그다지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1600 10프랑스 왕 앙리 4세는 메디치 가문의 딸 마리아 데 메디치를 신부로 맞아 결혼식을 올렸고 피렌체에서는 이를 축하하고 널리 알리기 위한 대규모 축제가 벌어졌습니다. 축제의 볼거리로 오페라를 만들기로 했고 여기에는 당시 피렌체를 대표할 만한 세 작곡가가 동원되었습니다. 결혼식이 거행된 다음날인 10 6일에는 에밀리오 데 카발리에리가 작곡한 ‘쥬노네와 미네르바의 경쟁이 팔라치오 베키오에서 벌어진 향연 가운데 공연되었고 다음날에는 피티 궁전에서 야코포 페리의 ‘에우리디체가 무대에 올랐습니다. 그리고 10 9줄리오 카치니의 ‘체팔로의 납치가 우피치 궁에서 그 모습을 드러내면서 피렌체 시민 모두가 오페라라는 새로운 공연예술을 알게 되었고 그 소문이 이탈리아 전역을 넘어 프랑스와 유럽으로 전파되었습니다.



발레의 종주국이라면 프랑스를 떠올리겠지만 그 원형을 수출한 나라는 이탈리아였습니다. 누구나 짐작하는 것과는 달리 발레의 탄생이 오페라보다 앞섰고 이 또한 메디치 가문과 프랑스 왕실의 결혼으로 말미암은 것입니다. 메디치 가문의 딸 카테리나가 프랑스의 왕실로 시집가면서 가져간 무수한 혼수품들 가운데 발레의 씨앗도 포함되었던 것입니다후에 카테리나의 남편은 앙리 2세가 되었고 아들인 앙리 3세의 치세에 기록으로 남은 최초의 발레를 만들도록 지시한 이가 바로 카테리나, 즉 카트린느였습니다.



앙리 3세의 모후였던 카트린느가 며느리인 왕후 루이즈의 여동생 마르게리트 드 로랭과 조아유 공작의 결혼식 피로연을 위해 만들었던 최초의 발레는 춤과 음악그리고 노래와 시낭송까지 결합한 형태였습니다. 그녀가 시집올 때 데려온 시종 중에 음악과 춤에 정통했던 발다사리오 다 벨지오조소 (프랑스 이름으로는 Bathasar de Beaujoyeulx)에게 공연을 맡겼습니다. 오늘날 라인의 코믹 발레(원제는 Ballet Comique de la Royne)로 불리고 있는 이 작품은 그리스 신화의 키르케 이야기를 소재로 삼았고 결국은 결국 지혜의 여신 아테나가 키르케를 물리치고 여왕 루이즈에게 찬사를 바치는 것으로 막을 내리게 됩니다



당연한 상상이겠지만 프랑스 궁중에서 싹튼 발레라는 새로운 예술은 당시 결혼식 피로연에서 공연되었던 오페라와 크게 다르지 않은 모습이었을 것입니다. 오늘날의 장르 구분으로 보자면 문학과 연극음악과 무용이 한 데 어우러졌던 것이 고대 그리스의 비극이었고 그것을 새롭게 재현하겠다는 것이 오페라였다면 그 안에 당연히 무용이 중요한 요소로 자리 잡고 있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후 이탈리아의 오페라가 노래와 음악 중심으로 발전해갔다면 프랑스의 발레는 노래 대신 시와 춤을 택했고 결국에는 춤으로 모든 것을 표현하고자 했던 것입니다. 영화 “왕의 춤을 보면 루이 14세가 출연하는 발레 공연에서 라신이 자신의 시를 스스로 낭송하는 모습이 재현되고 있습니다. 그 장면에서 왕은 온 몸에 황금 칠을 하고 태양의 신 아폴로를 춤추고 있고 라신은 그런 아폴로즉 프랑스의 국왕 을 찬양하는 시를 읊조리고 있어 태양 왕이라는 루이 14세의 별칭이 어떤 연유로 비롯되었는지를 짐작케 합니다.



루이 14세는 열세 살부터 몸이 불어 춤을 출 수 없을 때까지 수많은 발레에 직접 출연했습니다. 더불어 직업 무용수를 양성하기 위해 1661년 왕립 무용학교를 설립하였고 이 전통이 오늘날 파리 오페라극장의 발레단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작곡가 륄리를 교장에 임명했고 보샹으로 하여금 무용수들을 가르치고 훈련시키도록 했습니다. 보샹은 오늘날까지 발레의 기본동작으로 강조되고 있는 ‘다섯 가지 다리의 포지시옹을 창안하였고 륄리는 처음으로 여성을 발레 무대에 출연시켰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마임이 고안되어 시의 낭송 없이 발레의 동작만으로 이야기를 끌어나갈 수 있게 되면서 독립적인 무대예술로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인류의 역사를 뒤돌아보면 어느 국가나 민족이 크게 부흥하여 그 주위를 평정하고 위세를 떨쳤을 때안으로는 학문이나 예술을 크게 장려했을 뿐만 아니라 특히 지도적 위치에 있는 개인들이 앞장서서 학문과 예술의 융성을 도모코자 가진 능력과 재력을 희사했던 경우가 비일비재합니다르네상스 시대를 주도했던 피렌체에서는 메디치 가문과 바르디 백작 등이 예술과 학문을 장려하는 데 앞장섰는가 하면 이를 본받고자 했던 프랑스 왕실, 특히 부르봉 왕가의 전성기를 열었던 루이 14세 또한 주변에 당대 최고의 예술가들을 거느리면서 그들의 창작활동을 크게 장려했습니다



우리에게도 이에 못지 않게 자랑할 만한 위인들이 많았지만 우리 스스로 기억하여 본받으려 하지 않아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비교적 가까운 조선시대만 해도 박연을 총애하여 아악을 집대성케 했던 세종대왕이 있었고 판소리에 관한 한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다 바쳐 그 기틀을 만들고 다졌던 신재효의 역할과 기여 또한 바르디와 메디치에 결코 뒤지지 않았습니다. 더불어 궁중예식과 그에 필요한 춤의 양식인 정재를 창제하고 정리하여 후대에 남긴 소명세자의 공헌이야말로 발레를 체계화한 루이 14세에 견줄만한 치적임에 틀림없습니다. 21세기 대한민국의 르네상스를 이끌어가고 뒷받침할 우리의 메디치를 애타게 기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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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승찬 교수의 클래식 이야기] 삶의 반전, 삶을 휴식과도 같은 인터메초 이야기. 연극이나 오페라를 공연할 때 막과 막 사이에 가벼운 여흥.[홍승찬 교수의 클래식 이야기] 삶의 반전, 삶을 휴식과도 같은 인터메초 이야기. 연극이나 오페라를 공연할 때 막과 막 사이에 가벼운 여흥.

Posted at 2015.09.22 08:50 | Posted in 이건음악회 Talk Talk/홍승찬교수의 클래식 톡톡

 

 

사람들이 여럿 모여서 무엇인가를 하다가 불현듯 누군가가 “잠시 막간을 이용해서....”라는 말로 분위기를 바꾸는 경우가 왕왕 있습니다. 서로 말이 꼬여서 실마리가 풀리지 않을 때 그러기도 하고 서로 말이 없어 어색할 때도 이런 말로 긴장을 풀기도 하지요. 지나치게 열띤 분위기를 가라앉힐 때도 효과적입니다. 그리고 무엇인가가 막바지에 이르러 숨을 고르고 생각을 가다듬을 시간이 필요할 때야말로 잠시 막간을 이용해야 하는 바로 그 순간입니다.

 

 

오페라 카르멘의 한 장면

 

막간이라는 말은 당연히 막과 막 사이라는 뜻입니다. 지금은 막간에 그저 짧은 휴식시간이 주어질 뿐이지만 옛날에는 연극이나 오페라를 공연할 때 막과 막 사이에 가벼운 여흥이 있었습니다. 그러니 정말로 “막간을 이용해서...” 무엇인가가 있었던 셈이지요. 심지어는 막간에 짧은 촌극을 무대에 올리기도 했으니 그것이 바로 막간극, 즉 인터메초입니다. 흥미로운 것은 18세기 오페라 애호가들을 열광시켰던 오페라 부파가 바로 인터메초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지금도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모차르트의 “피가로의 결혼”과 로시니의 “세비야의 이발사”가 대표적인 작품이지요.

 

 

 

 

오페라 부파가 있기 전까지 유럽의 오페라는 모두 천편일률적이었습니다. 고대 그리스의 비극이나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영웅들의 무용담과 사랑 이야기를 이탈리아어로 된 노래로 그럴듯하게 펼쳐 보이는 것이지요. 발레나 여러 가지 볼거리를 넣다 보니 공연은 한없이 길어졌고 뻔한 이야기의 흐름도 느슨해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니 사람들도 점점 지루해할 수밖에 없었지요. 특히 이제 막 오페라 극장에 몰려들기 시작한 중산층과 시민계급들에게는 신화나 역사의 이야기나 이탈리아어 모두가 생소할 따름이었겠지요.

 

오페라. 세비야의 이발사

 

그래서 생각해낸 것이 막과 막 사이에 막간극을 넣자는 생각이었습니다. 오페라와는 달리 막간극은 그 시대의 보통 사람들이 주인공이었고 그들의 일상에서 벌어지는 소박하고 통속적인 이야기들을 빠르고 익살스럽게 풀어나갔습니다. 이야기는 장황한 레치타티보 대신 대사로 처리했고 아리아도 귀에 쏙 들어오는 선율을 얹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의 관심과 반응이 점점 커져간다 싶더니 결국은 오페라를 공연하는 동안은 시큰둥하다가 막간극을 할 때 사람들이 몰려드는 역전이 벌어지게 됩니다. 그러니 막간극을 따로 공연으로 만들어 무대에 올린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순서였을 것입니다. 그렇게 전에 없던 오페라가 태어나고 보니 기존의 오페라와 구별해서 불러야 했고 그래서 이전의 오페라를 “오페라 세리아”, 즉 진지한 오페라라고 부르고 새로 등장한 오페라를 “오페라 부파”, 즉 익살스러운 오페라라고 일컫게 된 것입니다. 한마디로 막간을 이용해서 새로운 역사가 탄생한 셈입니다.

 

 

오페라 '마님이 된 하녀' - 강남 대치동 삼성아트홀

 

그렇게 탄생한 오페라 부파의 효시가 된 작품으로 지금도 간혹 무대에 오르고 있는 페르골레지의 “마님이 된 하녀”라는 작품이 있습니다. 아마 제목만 보면 누구라도 이야기의 대강을 다 짐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부유한 독신남이 사는 집에 하녀로 들어간 주인공이 우여곡절 끝에 주인과 결혼하여 마님이 된다는 이야기지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질리지도 않고 좋아라하는 신데렐라 이야기입니다. 지금도 아마 티브이를 틀면 어느 채널에서는 이런 이야기를 드라마로 방영하고 있을 것입니다.

 

인터메초는 막간극이라는 뜻도 있지만 지금은 간주곡이라는 뜻으로 더 많이 알려져 있습니다. 특히 막과 막 사이가 있을 수 없는 단막 오페라의 경우 이야기의 흐름이 긴장의 극에 치달았을 때 역설적으로 아름다운 간주곡이 흐르면서 폭풍전야와도 같은 묘한 감흥을 이끌어내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런 간주곡들을 통 털어 아마도 가장 적절하고 아름다운 경우를 들라면 마스카니니의 오페라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의 간주곡이 아닌가 싶습니다.

 

마스카니 오페라-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Cavalleria Rusticana)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는 이탈리아어로 촌뜨기 기사라는 말입니다. 촌놈 주제에 분수도 모르고 기사라도 되는 양 잘난 척한다는 냉소적인 뜻이 담겨 있습니다. 시칠리아의 어느 시골에서 부활절 하루 동안 벌어지는 비극적인 이야기입니다. 새벽 어스름 녘에 군대에서 막 제대한 청년 투리두는 마부 알피오의 아내 로라와 밀회를 즐기고 나와서는 집으로 향하는 길에 사랑의 감정을 시칠리아의 노래인 시칠리아나의 선율에 실어 노래로 부릅니다. 로라는 전에 투리두의 연인이었으나 그가 없는 동안 부유한 마부 알피오와 결혼했고 제대한 뚜리두는 산투차와 약혼한 사이임에도 로라를 잊지 못해 그 주위를 맴돌지요. 부활절 아침이 밝아오자 마을사람들은 그 유명한 합창 “오렌지 꽃은 바람이 날리고”를 부르지만 밤사이에 투리두가 로라에게 간 것을 알아차린 산투차는 망설이고 주저하다 절박한 심정에 투리두의 어머니 루치아를 찾아가 아들의 비밀을 털어놓고 도움을 청합니다. 놀란 루치아는 기도를 하려고 성당으로 향하고 그 사이 투리두가 나타나자 산투차는 투리두에게 애원을 하며 매달립니다. 자신을 매몰차게 뿌리치고 나간 투리두가 심지어는 로라와 말다툼을 벌이는 자신을 심하게 몰아붙이자 더 이상 참을 수가 없게 된 산투차는 결국 로라의 남편 알피오에게 아내의 부정을 폭로하고 맙니다.

 

 

서울시 오페라단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 (노원종합예술문화회관)

 

바로 이 순간 너무나도 아름다운 간주곡의 선율이 물안개가 피어오르듯 공연장 안을 가득 채우게 됩니다. 앞으로 벌어질 일은 너무나 뻔하고 너무나 안타깝습니다. 무슨 수를 쓰더라도 돌이킬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 묵묵히 받아들일 수밖에 달리 방법이 없습니다. 그래서 이 아름다운 선율은 더욱 슬프고 애절한가 하면 허무하기까지 합니다. 침착하고 교활하기까지 한 알피오는 부활절 미사가 끝나고 사람들이 모여 술을 마시는 곳에 나타나 취기가 오른 투리두의 자존심을 건드려 그가 먼저 자신에게 결투를 청하도록 만듭니다. 누가 봐도 투리두는 알피오의 상대가 되지 않으니 말입니다. 뒤늦게 자신의 경솔함과 잘못을 깨달은 투리두는 어머니 루치아를 찾아가 마지막 포옹을 하며 산투차를 부탁합니다. 그리고는 피할 수 없는 결투에 나서 최후를 맞이하게 되지요.

 

[문화광장] 마스카니-오페라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 중 "간주곡'

 

오페라의 흐름 가운데 간주곡이 있고 막간극이 있는 것처럼 우리들 삶에도 늘 인터메초가 있습니다. 주마다 돌아오는 휴일이 그렇고 이제 곧 다가오는 여름휴가는 일 년 가운데 한번 주어지는 인터메초라고 할 수 있겠지요. 누군가는 오페라 부파가 그렇게 만들어졌듯이 그 시간을 이용해서 무엇인가 전에 없는 일을 준비하여 벌이고야 마는 사람이 있을 것이고 누군가는 간주곡이 그런 것처럼 지나간 시간을 조용히 돌아보며 앞으로 벌어질 일들을 맞이할 마음의 준비를 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어느 것이 정답일 수는 없겠지만 이 짧은 시간이 우리 삶에 있어 너무나도 중요하다는 사실은 틀림이 없는 듯합니다. 막간을 이용해서 오페라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의 간주곡을 들려드리겠습니다. 눈을 감고 여러분이 살아왔던 지난날들을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로 말미암아 벌어질 어떤 일들도 담담하게 맞이할 수 있도록 마음을 가라앉혀 평정을 찾으시길 바랍니다. 인터메초, 음악이 주는 참다운 휴식의 시간입니다.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 간주곡 Mascagni

2008년 3월 4일 예술의 전당 콘서트홀
지휘 이우근 / 서울내셔널심포니 오케스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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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카라츠카의 창시자 고바야시 이치조] 일본을 대표하는 무대예술 양식. 일본식 오페라 가부키에 대비되는 일본식 뮤지컬 다카라츠카[다카라츠카의 창시자 고바야시 이치조] 일본을 대표하는 무대예술 양식. 일본식 오페라 가부키에 대비되는 일본식 뮤지컬 다카라츠카

Posted at 2015.02.27 18:35 | Posted in 이건음악회 Talk Talk/홍승찬교수의 클래식 톡톡

 

 

 

 

일본을 대표하는 무대예술 양식이라면 당장 “가부키”를 떠올리게 됩니다. 말하자면 중국에 “경극”이 그런 것처럼 일본식 오페라가 가부키인 셈이지요. 일본식 오페라가 가부키라면 일본식 뮤지컬이라 불릴 만한 것이 있으니 그것이 바로 “다카라츠카”입니다. 가부키가 일본 안에서 자생적으로 만들어지고 가꾸어진 전통예술인 반면 다카라츠카는 서양의 뮤지컬을 가져와서 일본인의 정서에 맞게 정착시킨 무대예술입니다. 그리고 남성들만 출연하는 가부키와는 반대로 다카라츠카 무대에는 여성들만 등장합니다.

 

 

다카라즈카는 현재 한국에서도 많은 팬들을 확보하고 있는, 일본의 공연 장르입니다.

 

다카라츠카는 원래 일본 효고현에 위치한 휴양도시의 이름입니다. 오사카의 우메다와 다카라츠카를 잇는 철도를 완성한 한큐전철은 온천이 있는 작은 마을 다카라츠카에 사람들을 끌어들이기 위해 새롭고 기발한 관광상품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극장을 짓고 여성들만 출연하는 뮤지컬 레뷔를 무대에 올렸는데, 그것이 오늘날 다카라츠카라 불리는 무대예술의 시작입니다.

 

 

다카라즈카 제100기생 '첫 무대'

 

이 공연을 위해 1914년에 결성된 “다카라츠카 창가대”는 곧바로 “다카라츠카 소녀가극단 양성회”가 되었고 1919년에 다카라츠카 음악학교를 설립하면서 다시 “다카라츠카 소녀가극단”으로 이름을 바꾸었습니다. 학교의 설립으로 보다 지속적이고 전문적인 체제를 갖추게 된 다카라츠카는 1924년 도쿄에 전용 극장을 개관하면서 일본을 대표할 만한 무대예술로 자리잡기 시작했고 2년 뒤에는 전문잡지 “다카라츠카 그라프”를 창간하여 그 열기를 더욱 확산시켜나갔습니다.

 

 

다카라즈카 가극단 (宝塚歌劇団)

1914년 한큐 전철의 창업자 고바야시 이치조가 전철 승객을 유치하기 위해 결성되어 그 첫공연 이래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 받아 온 다카라즈카 가극단.

 

이러한 추세에 힘입어 1928년에는 첫 해외 나들이로 유럽공연을 감행했고 이듬해에는 미국공연을 시도함으로써 해외 무대에서의 가능성도 적극적으로 모색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1915년 다카라츠카 소녀가극단이 “다카라츠카 가극단”으로 이름을 바꾸면서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1930년 8월 다카라즈카 쓰키구미(月組)의 공연 'Parisette'(출처 : 위키백과)

 

지금까지 열거한 이 모든 일들이 15년이라는 길지 않은 시간 안에 이루어졌다는 것만도 놀라운 일인데, 그것이 전적으로 한 개인의 의지와 추진력에 힘입어 가능했다는 사실은 더욱 놀라운 일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다카라츠카의 창시자이자 절대적인 후원자로 오늘날까지 그 이름이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는 고바야시 이치조(小林一三, 1873-1957)는 다카라츠카를 홀로 구상하여 세상에 내놓았을 뿐만 아니라 그것이 일본 사람들의 사랑을 받으면서 지금까지 이어갈 수 있는 토대를 직접 만들고 지휘한 사람입니다. 한큐전철의 창립자이면서 일본 정계에도 커다란 영향력을 미쳤던 그는 특히 문화에 대한 안목과 식견이 남달라 이전에 아무도 생각해내지 못한 다카라츠카를 계획하고 실행에 옮겼을 뿐만 아니라 이후에 마련된 거의 모든 제도적, 물질적 장치를 손수 마련한 장본인입니다. 그 결과 그의 생전은 물론이고 지금까지도 다카라츠카는 한큐그룹이 제작과 운영은 물론이고 재정적 지원에 이르는 모든 부분을 책임지고 있어 지속적이고 안정적인 생존여건을 확보하고 있습니다.

 

 

 

다카라츠카의 창시자이자 고바야시 이치조(小林一三, 1873-1957)

 

태평양 전쟁으로 한 때 다카라츠카와 도쿄의 두 전용 극장이 폐쇄되고 공연이 중단되기도 했지만 종전 직후 다카라츠카 대극장이 다시 문을 열었습니다.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1955년에는 도쿄의 다카라츠카 극장이 다시 공연을 시작하면서 예전의 명성과 인기를 회복했지만 그로부터 불과 2년만에 창시자 이치조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이치조의 타계 이후 다시 국제 무대로의 진출을 다각적으로 모색하기 시작했고 1967년에는 마침내 본고장 뮤지컬을 그대로 가져와서 무대에 올리기도 했습니다. 한 때 시대의 변화에 재빠르게 적응하지 못해 고전을 면치 못한 적도 있었지만 만화 원작이 우리나라에도 잘 알려진 “베르사이유의 장미”나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와 같이 소설과 영화로 널리 알려진 소재들을 찾아 무대에 올리면서 그때마다 새로운 관심을 불러일으키며 여전한 인기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베르사이유의 장미(출처 : http://nyxity.com)

 

다카라츠카의 정신은 그들이 내세우는 표어 그대로 “아름답게, 맑게, 정직하게”입니다. 그런 맥락에서 그들은 주로 현실에서는 찾기 힘든 완전한 사랑을 무대를 통해 보여주고 있고 그것이 여성관객들로 하여금 환상을 불러일으키게 됩니다. 흔히 여성들만 무대에 등장한다는 사실 때문에 남성 관객들이 많을 것으로 생각하지만 사실은 소녀 팬들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여성들이 연기하는 완벽한 남성상을 동경하면서 그들이 펼치는 헌신적인 사랑에 매료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카라츠카 배우들은 무대를 떠나기 전에는 결혼을 할 수 없습니다. 결혼은 어디까지나 현실이고 다카라츠카가 보여주려는 것은 꿈과 환상이기 때문입니다. 결혼을 하게 되면 배우 스스로도 현실의 문제에 매달리게 될 것이고 그렇게 되면 상상 속에서나 가능한 낭만적인 이야기가 힘을 잃게 된다는 생각입니다.

 

다카라즈카 시절의 아마미 유키 from minorwaltz on Vimeo.

 

다카라츠카의 힘이라면 무엇보다 그 전통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거의 한 세기를 이어온 역사 속에서 그들은 나름대로의 전통을 만들고 또 지켜왔습니다. 그 전통에는 시대의 변화가 녹아 있지만 그 속에는 분명 흔들리지 않는 중심이 있습니다. 시대의 조류를 쫓아 다양한 소재들을 수용하면서도 늘 일본적인 무엇인가를 고집합니다. 시작부터가 서양의 뮤지컬을 모델로 삼은 것이지만 그렇다고 그것을 무작정 그대로 무대에 올리지는 않았습니다. 그래서 50년이 더 지나서야 본고장 뮤지컬을 그대로 무대에 올릴 수 있었고 해외 공연에서는 언제나 일본의 전통문화를 보여줄 수 있는 작품을 반드시 포함시킵니다.

 

 

다카라츠카 공식 홈페이지 메인 화면

 

그러나 이러한 역사와 전통이 지금까지도 유지될 수 있었던 이유는 다카라츠카의 대중성에서 찾아야 할 것입니다. 무턱대고 일본적인 냄새만을 고집한 것이 아니라 서구적인 주제와 소재들을 폭넓게 받아들이면서 그것을 다시 일본인들의 정서에 맞게 고쳐나갔습니다. 탭 댄스에서부터 탱고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춤이 펼쳐지지만 브로드웨이 뮤지컬과는 다른 그들만의 독특한 체취가 스며있어 그것이 서양 문물의 홍수속에서도 다카라츠카의 열광적인 팬들을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다카라츠카의 오늘이 있기까지 창시자 이치조의 역할과 공헌이 절대적이었지만 그가 없는 지금 다카라츠카를 지탱하고 있는 것은 다카라츠카의 열성 팬들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이들은 다카라츠카의 해외공연에까지 따라가서 열광적인 성원을 보냅니다. 다카라츠카는 관객들의 요구를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관객들은 이러한 다카라츠카를 그들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입니다.

 

다카라츠카의 창시자 고바야시 이치조는 “자립적인 여성”을 만들기 위해 다카라츠카 가극단을 만들었고 이것이 바로 다카라츠카의 근본 이념으로 살아 숨쉬고 있습니다. 단지 볼거리를 만들어 사람들을 끌어들이기 위한 수단으로 다카라츠카를 생각한 것이 아니라 이상적인 인물을 만들고 연기하는 과정을 통해 한 여성을 진정한 생활인, 예술인으로 거듭나게 한다는 것이 가장 근본적인 목적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단원들의 공동생활과 단체생활을 무엇보다 중요하게 생각하고 기숙사 생활을 통한 여성 공동체의 실현을 추구하고자 합니다. 이러한 공동체의 경험이 무대 위에서도 일체감을 만들게 되고 이것을 보는 관객들 또한 함께 그것을 느끼고 동참하게 되는 것입니다.

 

 

일본 애니메이션을 실체화 한 다라카츠카의 포스터 -은하영웅전설-

 

이치조의 이런 이념은 오랜 세월과 숱한 풍파를 겪으면서도 퇴색하지 않고 있습니다. 다카라츠카를 거쳐간 많은 사람들이 일본 사회 곳곳에서 ‘아름답고, 맑고, 정직한’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들 가운데 일부는 국회에 들어가 의정활동을 펼치고 있으며 또는 다른 방법으로 사회 속에 건강한 삶을 심고 있는 이들도 적지 않습니다. 한 사람의 남다른 생각이 이처럼 오래도록 여러 사람들의 가슴 속에 살아 숨 쉬는 경우를 찾기란 그리 쉽지가 않을 것입니다. 그것도 책 속에, 혹은 제도 속에 갇혀 누군가 꺼내주기를 기다리는 그런 모습이 아니라 언제나처럼 날마다 사람들과 함께 슬퍼하고 기뻐하는 가운데 벌어지는 일이기에 더욱 신선하고 신비롭기까지 합니다. 틀림없는 것은 오늘날 고바야시 이치조는 한큐전철의 창시자이기 앞서 다카라츠카의 창시자로 기억되고 있다는 것이고 그것이 바로 돈으로도 살 수 없는 예술의 생명이고 예술의 힘이라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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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레겐츠 오페라 축제] 대자연의 경관과 음악의 감동이 함께 어우러진 색다르고 뜻 깊은 여행을 생각하신다면 베르겐츠 오페라 페스티발을 추천합니다![브레겐츠 오페라 축제] 대자연의 경관과 음악의 감동이 함께 어우러진 색다르고 뜻 깊은 여행을 생각하신다면 베르겐츠 오페라 페스티발을 추천합니다!

Posted at 2013.11.19 10:29 | Posted in 이건음악회 Talk Talk/홍승찬교수의 클래식 톡톡





홍승찬 교수의 클래식 음악(52)
[홍승찬 교수의 재미있는 클래식음악 이야기]

 

 


브레겐츠 오페라 축제

 


혹시 대자연의 경관과 음악의 감동이 함께 어우러진 색다르고 뜻 깊은 여행을 생각하신다면 베르겐츠 오페라 페스티발을 추천합니다. 해마다 여름이면 유럽 각지에서 수많은 음악 축제들이 열리고 있고 저마다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고 있지만 베르겐츠 페스티발은 비교적 뒤늦게 시작하여 최근에야 널리 알려진 축제입니다. 그리고 사실 오스트리아의 휴양도시 브레겐츠는 해마다 열리는 오페라 축제가 아니었다면 지금도 우리에게 생소한 이름이었을 것입니다. 오스트리아와 독일은 물론 스위스까지 펼쳐진 드넓은 보덴 제’(See는 독일어로 호수를 뜻한다)를 끼고 있는 오스트리아의 아름다운 휴양도시이지만 비슷한 조건의 마을이나 도시들은 너무나 많아 브레겐츠를 특별히 기억할 이유가 따로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아마도 그들만의 특별한 무엇인가가 필요했을 것이고 그런 고민 끝에 세상에서 하나 뿐인 오페라 축제를 만들었을 것입니다. 1946년에 시작된 브레겐츠 페스티발은 호숫가에서 펼쳐지는 최초의 오페라 축제입니다. 이후 비슷한 시도들이 뒤를 이었지만 브레겐츠가 가장 먼저였고 그 후로도 꾸준히 변화와 발전을 모색하여 그 누구도 따를 수 없는 규모와 명성을 자랑하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호수에 큰 배를 띄워 갑판 위에서 공연을 하는 것이 축제의 시작이었지만 그것이 보덴 제를 찾는 관광객과 휴양객들에게 큰 호응을 얻자 1948년부터는 호수 위에 고정적인 무대를 세웠습니다. 그리고 1979년에 이르러 지금과 같은 첨단의 시설을 완성하였고 1980년에는 호숫가에 페스티벌 하우스를 따로 만들어서 해마다 7월 중순부터 한 달 동안 오페라 페스티발을 열고 있습니다.






사실 여름마다 야외에서 펼쳐지는 음악축제라면 이탈리아의 베로나를 가장 먼저 떠올리게 됩니다. 로마시대에 지어진 원형극장에서 해마다 여름이면 오페라 축제가 열립니다. 그러나 베르겐츠에서 경험한 토스카는 베로나 야외극장에서 베르디의 아이다를 봤을 때와는 전혀 다른 감동이 있었습니다. 베로나에서는 2만명이 넘는 사람이 모인 드넓은 원형극장의 구석 자리에서도 마치 바로 앞에서 보는 듯 착각할 정도로 소리가 너무나 또렷하게 들려 흠칫 놀랐었습니다. 베로나에서는 지금까지도 생생하게 살아 숨쉬는 고대 로마의 위대한 역사와 그것이 이룩한 위대한 업적에 감탄했다면 베르겐츠에서는 인간이 도저히 어찌 할 도리가 없는 자연의 섭리와 그것에 맞서도 끝내 어우러지고 마는 인간의 운명에 저절로 빨려드는 기분이었습니다. 세상에 하나 뿐인 소리의 향연을 베풀었던 베로나와는 달리 베르겐츠는 세상에 하나 뿐인 장관을 펼쳐보였습니다. 그들이 처음에 의도했던 그대로 세상에 하나 뿐인 가치를 만들어낸 것입니다.





성급한 호사가들은 브레겐츠 페스티발을 두고 잘츠부르크 페스티발, 바이로이트 페스티발과 함께 세계 3대 음악축제라고 말하기도 하지만 솔직히 유서 깊은 유럽의 다른 축제들에 비해 브레겐츠 페스티발에 대한 이미지는 썩 좋은 편이 아니었습니다. 말하자면 기발한 아이디어로 휴양도시 브레겐츠에 관광객들을 끌어들이자는 의도가 너무나 분명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심지어는 오락영화의 대명사라고 할 수 있는 ‘007 시리즈에까지 등장하는 것을 보고 콘텐츠보다 마케팅이 앞서는 현대 쇼 비즈니스의 전형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여름 처음으로 브레겐츠를 방문하여 남들보다 일찍 페스티발이 열리는 호숫가 무대를 찾았을 때도 별다른 감흥을 느낄 수가 없었습니다. 호텔에 여장을 풀고 시내를 한 바퀴 돌아보았지만 크게 눈길을 끄는 곳이 없었고 호텔에서 소개한 어느 레스토랑에 들러 이른 저녁 식사를 마쳤지만 그다지 기억에 남을 만한 맛은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얼른 다시 호텔로 돌아와 정장으로 갈아입고는 일찌감치 페스티발이 열리는 공연장으로 향했습니다.





그런데 별 다른 할 일이 없어 일찍 찾은 호반의 공연장에서 기대치 않은 경험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탁 트인 무대를 바라보는 넓은 객석에 홀로 앉아 커다란 무대와 어우러진 호수 너머 풍경을 바라보는 기분은 참으로 묘했습니다. 아무 것도 가릴 것이 없어 밖에서도 볼 수 있는 무대는 이미 공연 전의 호기심과 흥분을 자아내는 대상은 아니었지만 마치 오래 전부터 그것에 있었던 기념비적인 조형물인 것처럼 호수 위에 떠서 유유히 하늘을 이고 있었습니다. 이윽고 해가 저물면서 관객들도 하나 둘씩 객석을 채우기 시작했고 호수 저편 린다우에서 다가온 배가 천천히 다가와 마침내 기슭에 이르러 한 무리의 사람들을 내려놓자 조금 전까지의 호젓하고 적막한 공기는 흩어지듯 사방으로 날리는 것 같았습니다





저무는 해가 파란 하늘과 푸른 호수를 점점 더 붉게 물들일 즈음 새하얀 조명이 차례로 들어오면서 검게 드리우는 어둠의 장막을 새하얀 빛이 걷어버리는 순간은 마치 위대했던 한 시대가 가고 다른 시대가 오는 듯한 착각에 빠질 만큼 환상적이었습니다. 이윽고 펼쳐진 오페라는 이미 수 없이 보았던 푸치니의 토스카가 아니었습니다. 익숙한 스토리와 귀에 익은 음악은 온 데 간 데 없이 그저 인간을 둘러싼 대자연에 바치는 외침이고 몸짓일 뿐이었습니다. 오페라가 막바지에 이르러 죽음을 앞둔 주인공 카바로도시가 연인 토스카에게 마지막 편지를 쓰면서 별은 빛나건만을 부를 때 그의 시선은 객석이 아니라 드넓은 창공에서 반짝이는 별을 쳐다보고 있었고 관객들의 시선 역시 같은 곳을 향하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무대와 객석은 대자연의 품안에서 하나가 되었고 그렇게 이루어진 일체감은 오래도록 여운으로 남아 가시지 않았습니다. 푸치니의 오페라 토스카가운데 주인공 카바로도시가 부르는 별은 빛나건만을 들으시며 이 시간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Puccini - 별은빛나건만(Tosca - Pavarotti)



 

글 : 홍승찬 교수
편집 : 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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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아.오랫만에. 잊고지내던음악.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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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의 성인'이라고 불리는 베토벤의 생애와 작품-베토벤 16번, 작품번호 135번] 베토벤이 마지막 작품의 마지막 악장에 남긴 고뇌와 번민['음악의 성인'이라고 불리는 베토벤의 생애와 작품-베토벤 16번, 작품번호 135번] 베토벤이 마지막 작품의 마지막 악장에 남긴 고뇌와 번민

Posted at 2013.10.11 10:28 | Posted in 이건음악회 Talk Talk/홍승찬교수의 클래식 톡톡

 

 

 

 

홍승찬 교수의 클래식 음악(51)
[홍승찬 교수의 재미있는 클래식음악 이야기]

 

 

 

음악의 성인으로까지 칭송받는 베토벤의 마지막 작품은 현악 4중주 16, 작품번호 135번입니다. 베토벤은 거의 모든 장르의 음악에서 불멸의 업적을 남겼지만 특히 교향곡과 피아노 소나타, 그리고 현악 4중주에서 그가 쌓은 업적은 그 이후 지금까지 아무도 범접하지 못한 성역입니다. 그런데 인류 역사를 통 털어 가장 위대한 작곡가로 일컬어지는 베토벤이 삶의 끝자락에 이르러 남은 힘을 다하여 작곡한 최후의 대작인 현악 4중주 16번 마지막 악장에는 뜻 모를 말이 적혀 지금까지 수많은 사람들의 호기심만 자극한 채 아직도 의문으로 남아 있습니다. ‘고통스럽고 힘들게 내린 결심(Der Schwergefasste Entschluss)'이란 말에 이어 꼭 그래야만 하나(Muss es sein)?'라는 물음을 던진 다음에 뜸을 들이다가 그래야만 한다(Es muss sein)'라는 답을 적어 넣었습니다.

 

Beethoven, String Quart No.16 Op.135

 

베토벤 현악 4중주 16번

Ludwig van Beethoven

1770-1827

Hagen Quartet

Lukas Hagen, 1st violin

Rainer Schmidt, 2nd violin

Veronika Hagen, viola

Clemens Hagen, cello

2000.01.26

 

Hagen Quartet - Beethoven, String Quartet No.16 in F major

 

베토벤의 현악 4중주 중 마지막 작품일 뿐만 아니라 모든 장르를 통틀어 작곡가의 최후 작품이다(이후 작곡된 곡은 ‘대 푸가’를 대신한 현악 4중주 13번의 마지막 악장뿐이다). 1826년 봄, 이 작품을 이미 구상하고 있었던 베토벤은 1826년 7월에 착수해서 10월에 완성했다. 그가 사망하기 5개월 전이다. 1826년 베토벤의 상황은 좋지 않았다. 7월에는 빗나간 조카 카를이 권총으로 자살하려다 미수에 그쳤다. 9월에는 동생 요한의 권유로 그나이젠도르프로 가서 작곡을 했다. 경치 좋은 곳에서 산책도 하며 지냈지만 갖가지 병은 베토벤의 건강을 좀먹고 있었다. 수종이 생기고 식욕이 감퇴된 베토벤은 우울하게 지낼 때가 많아졌다. 그러다 빈으로 돌아올 때 베토벤은 폐렴에 걸렸다. 이 병이 결국 사망으로 이어졌다. 1827년 3월 26일 세상을 떠난 베토벤의 사인은 간경변이었다.

 

여러 가지 추측들 가운데 심지어 가정부에게 지급할 급여를 놓고 고민한 흔적이라는 주장은 지나친 감이 없지 않지만 매사에 까다롭고 철저했던 베토벤의 삶을 깊이 들여다보면 충분히 그러고도 남으리라는 것을 이해하게 됩니다. 그리고 바로 그런 점에서 이것은 단편적인 하나의 사건이라기보다 그가 인생의 막바지에 이르러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스스로에게 다시 한 번 던지는 최후의 질문이고, 아울러 마지막으로 얻은 해답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말하자면 평생에 걸쳐 그가 행한 모든 일이 다 끝없는 고뇌의 산물이었다는 것이고 언제나 최선을 다한 결과였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바로 그 확실한 증거를 마지막 작품의 마지막 악장에 스스로의 독백으로 남긴 것입니다.

 

 

아닌 게 아니라 하나의 작품을 완성하기까지 베토벤만큼 많은 스케치를 거치면서 고치고 또 고쳐 쓴 작곡가는 달리 없었습니다. 때문에 그 어떤 작곡가보다 많은 스케치를 남겼고 그것들을 통해 작품의 완성에 이르기까지 어떤 고민을 하였고 무엇을 어떻게 얼마나 수정하고 다듬었는지를 낱낱이 확인할 수 있습니다. 더불어 이를 통해 고뇌의 시간이 얼마나 길고 힘들었는지도 충분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이전까지 대부분의 작곡가들은 왕족이나 귀족들에게 고용되어 일정한 급여를 받으면서 그들이 필요로 하는 작품을 원하는 만큼 요구하는 시간에 만들어야 했지만 베토벤은 유별난 성격과 타협을 모르는 고집으로 말미암아 그럴 수도 없었고 그럴 생각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결국 그는 스스로가 선택한 최초의 프리랜서 작곡가가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니 고정적인 월급을 받는 대신 작품을 출판하거나 연주회를 열어 돈을 벌어야 했고 개인교습으로 학생들을 가르치고 수업료를 받아 생계를 해결해야 했습니다.

 

 

베토벤을 주인공으로 다룬 영화

 

생계를 위해 피아노를 가르친 학생들 가운데는 귀족들의 자녀가 많았고 특히 젊은 여성이 많았습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그들과 사랑의 감정이 싹트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가 아무리 뛰어난 작곡가라고 해도 귀족과 평민이라는 신분의 벽을 뛰어넘을 수는 없었고 그것이 내성적이고 자존심이 강한 베토벤에게는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주었고 그 때문에 그는 평생을 독신으로 살았습니다. 음악에 대한 그의 열정이 그랬던 것처럼 여인을 향한 그의 사랑도 매 순간 반드시 그래야만 했던 필연이었던 것입니다. 결국 그에게 있어 독신은 스스로의 선택이 아니라 운명의 장난이었던 셈입니다. 그가 죽고 발견된 유품들 가운데는 누군가를 불멸의 연인이라 부르며 억누를 수 없는 운명적인 사랑을 정열적으로 고백하고 있는 편지 세 통이 발견되었고 이로 말미암아 그 이후 지금까지 줄곧 그 주인공이 누구인지를 두고 추측이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베토벤의 삶과 음악을 다룬 수많은 영화들 가운데 불멸의 연인이 바로 그 대표적인 경우로 영화에서는 동생의 부인이 그 주인공이라는 파격적인 주장을 펼치고 있습니다. 그 때문에 동생이 죽자 그의 아들, 즉 조카인 카를의 양육권에 그토록 집착했다는 것이지요. 말하자면 카를이 바로 베토벤 자신의 아들이었다는 것입니다.

 

 

베토벤의 유일한 조카 칼 반 베토벤(Karl van Beethoven)

 

거듭된 사랑의 상처 때문인지 베토벤이 열망했던 이상적인 여인상은 한결같이 구원의 여성이었습니다. 그래서 그가 남긴 유일한 오페라이지만 다른 어떤 작품들보다 애착을 가졌던 피델리오에서 주인공 레오노라는 생명을 잃을지도 모르는 위험을 무릅쓰고 옥중에 갇힌 남편을 구하고자 남장을 하고 적진으로 숨어드는 여장부입니다. 말하자면 진정 사랑한다면 사랑하는 이를 위해 목숨까지 내놓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고 그런 사랑을 저버리고 돌아선다는 것은 그 어떤 경우에도 있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에게 있어 사랑은 음악과 마찬가지로 언제나 완전하고 변하지 않는 불멸의 존재였던 것입니다.

 

Borodin Quartet - Beethoven, String Quartet No.16 in F major

Ruben Aharonian, 1st violin

Andrei Abramenkov, 2nd violin

Igor Naidin, viola

Valentin Berlinsky, cello

2004.07

 

1악장: 알레그레토

밝고 간결하다. 초기작과 같은 명료함으로 다가온다. 베토벤의 긴장감보다는 음악을 즐기는 모차르트의 모습이 숨겨져 있기도 하다. 단편적인 선율에 의한 흐름이나 악상을 유기적으로 통일시키는 것은 역시 베토벤의 솜씨이다. 베토벤이 창조해 온 현악 4중주의 정수가 함축돼 있다. 첼로가 엄격한 서주를 제시하면 바이올린이 짧게 대답한다. 제1주제는 3개의 악기로 각기 연주되며 새로운 선율은 제1바이올린에 나타난다. 제2주제는 제2, 제1바이올린으로 연주되고 제시부 뒤 발전부로 이어진다. 재현부와 코다를 거쳐 조용히 끝난다.

2악장: 비바체

여기서는 분명한 베토벤의 성격이 드러난다. 뚜렷이 지시하지는 않지만 스케르초에 해당되는 악장이다. 3/4박자임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의 현기증 나는 속도와 예민한 리듬으로 약동하는 듯한 해방감을 안겨준다. 중간부는 제1바이올린이 기본적인 모티프를 연주한다. 영원히 계속될 것만 같은 음형이 반복된다.

 

3악장: 렌토 아사이 칸탄테 에 트란퀼로

경쟁하듯 질주하던 스케르초 다음에 느긋하고 조용하게 슬픔을 노래한다. 환상적인 변주곡 형식으로 정신적인 깊이와 우아한 종교적 정화를 보여준다. 그러나 마냥 눈물을 자아내는 슬픔이 아니라 어쩐지 동경과 평화로운 정서를 드리우고 있다. 슬픔을 노래하는 거장의 고즈넉한 숨결이 살아 있다.

4악장: 알레그로 그라베

‘괴로워하다가 간신히 굳힌 결심’에 두 가지 동기가 나온다. 비올라와 첼로가 ‘그래야만 하나’하고 물으면 바이올린이 왠지 부드럽게 반응한다. 다시 비올라와 첼로가 질문한다. 몇 번의 질문에 바이올린은 점차 답변을 하기 시작한다. 알레그로로 들어오면 명확하게 ‘그래야만 한다’고 대답하는 피날레가 시작된다. 알레그로는 경쾌하고 밝고 튀는 분위기로 바뀐다.

 

 

 

현악 4중주 16번의 마지막 4악장은 알레그로 그라베, 빠르고 장엄하게입니다. 비올라와 첼로가 그래야만 하는가?’라고 물으면 바이올린이 부드럽지만 망설이는 듯 머뭇거립니다. 다시 비올라와 첼로가 질문을 거듭하자 바이올린의 태도도 점점 분명해지면서 마지막 부분에 이르러 빠르고 경쾌하게 그래야만 한다는 확고한 대답을 던지게 됩니다. 이렇듯 치열했던 베토벤의 삶은 마지막 숨을 거두는 순간에 또 한 번의 묘한 여운을 던지며 우리의 마음을 어지럽힙니다. 전하는 말에 따르면 그가 남긴 마지막 말은 박수를 쳐라, 희극은 끝났다.’였다고 합니다. 어쩌면 삶의 무대에서 끝까지 최선을 다한 한 광대의 고독한 독백으로 들리기도 하지만 어쩌면 스스로의 의지대로 자유롭게 살고 싶어 처절한 몸부림을 쳤지만 인간에게 지워진 운명이라는 굴레를 끝내 벗어 던지지 못한 한 인간의 절규로 들리기도 합니다. 그리고 또 죽음의 문턱을 넘으면서까지 포기할 수 없는 자유와 사랑, 음악과 예술에 대한 열망을 그토록 처연하게 외쳤는지도 모릅니다. 오늘날 너무나도 쉽게 무엇인가를 선택했다가 그보다 더 쉽게 포기하면서 그렇게 지나쳐 버린 인연과 사연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고 잊어버리는 우리 모두에게 베토벤의 삶과 음악은 너무나 무겁고 부담스러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그가 남긴 음악이 있고 그것을 만든 그의 삶이 있었기에 참을 수 없이 가벼워진 우리의 존재와 자아가 아직도 이 땅을 굳건히 딛고 서서 비바람을 무릅쓰며 먼 하늘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베토벤의 현악 4중주 16번 마지막 악장 들으시며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고 또 그 해답을 찾아보는 시간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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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너무 잘보고 갑니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서 이 곡을 접하고 찾아봤는데 너무 훌륭한 포스팅에 베토벤의 무거움이 전달되서 가슴이 아프네요.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는 저에게 많은 위로가 됩니다. 감사합니다.
  2. 김에송
    베토벤의 마지막 작곡이 이 곡인 줄은 몰랐는데..

    베토벤의 피아노소나타와 교향곡, 그리고 현악 4중주는 정말 대단한 것 같아요.

    듣고싶어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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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을 위한 클래식 음악 초대장] 베르디와 바그너의 마지막 메시지, 바보들의 행진. 베르디와 바그너의 탄생 200주년을 맞이하여...[당신을 위한 클래식 음악 초대장] 베르디와 바그너의 마지막 메시지, 바보들의 행진. 베르디와 바그너의 탄생 200주년을 맞이하여...

Posted at 2013.09.11 08:33 | Posted in 이건음악회 Talk Talk/홍승찬교수의 클래식 톡톡

 

 

 

 

 

홍승찬 교수의 클래식 음악(50)
[홍승찬 교수의 재미있는 클래식음악 이야기]

 

 

 

 

 

 

 

 

오페라 역사를 통털어 가장 위대한 작곡가를 꼽으라면 대부분 베르디와 바그너를 떠올리게 됩니다. 그런데 이 두 사람은 공교롭게도 같은 해에 태어났는데, 그 해가 바로 1813년입니다. 그러니 올해는 다름 아니라 두 작곡가의 탄생 200주년이 되는 해이고 그래서 지구촌 곳곳에서 이 뜻 깊은 해를 기리는 행사와 공연들이 줄을 잇고 있습니다. 바로 얼마 전 우리나라 국립오페라단 또한 베르디의 팔스타프를 무대에 올렸고 서울시립오페라단은 베르디의 아이다를 공연하기도 했지요. 5월에는 서울국제음악제에서 바그너의 연작 오페라 반지의 두 번째 작품인 발키레를 선보였는데요 이처럼 바그너의 음악극보다는 베르디의 오페라를 볼 수 있는 기회가 더 많을 것 같습니다.

 

 

베르디의 "아이다" 공연 모습

그것은 아무래도 바그너와 비교한다면 베르디의 작품이 좀 더 우리의 삶과 가까운 이야기를 귀에 쏙 들어오는 음악으로 펼쳐놓기 때문이겠지요. 그와 반대로 바그너는 인간의 구원과 세계의 질서와 같은 보다 근본적이고 철학적인 문제를 파고들었고 지나치게 음악, 특히 가수들의 노래에 의존하는 이탈리아 오페라의 한계를 뛰어넘어 무대 위의 모든 요소들이 어느 하나에 치우치지 않고 완벽하게 결합하여 일체를 이루는 ‘Musikdrama', 즉 음악극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주창하였습니다. 작품세계 뿐만 아니라 삶에 대한 그들의 태도 또한 전혀 달라서 베르디가 늘 겸손하고 신중하며 주변 사람들을 배려하고 존중하는 삶을 살았던 것과는 반대로 바그너는 그의 꿈을 실현하고 뜻을 펼치기 위해서는 그 어떤 수단과 방법도 가리지 않을 정도로 독선적이고 자기중심적이었습니다. 그래서 베르디는 말년에 사재를 털어 은퇴하고 오갈 데 없는 음악가들을 위한 양로원을 지었던 반면 바그너는 바이에른의 루드비히 2세를 설득하여 그 자신의 작품만을 무대에 올릴 수 있는 전용극장 바이로이트축전극장을 세웠습니다.

 

베르디의 "팔스타프" 공연 모습

 

이처럼 같은 시대를 살았지만 이렇듯 상반된 삶과 꿈을 가졌던 두 사람이기에 그들이 남긴 어느 하나도 서로 닮은 꼴을 찾을 수 없을 것 같지만 엉뚱하게도 삶의 끝자락에 이르러 마지막 남은 힘을 다해 완성한 최후의 걸작들에서 묘한 만남이 이루어지는 것을 발견하곤 소스라치게 놀라게 됩니다. 바그너의 마지막 작품은 파르지팔이고 베르디의 경우는 팔스타프입니다. 작품의 이름이 주인공의 이름이라는 것과 그것이 모두 네 음절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을 공통점 말고는 아무리 들여다봐도 이 둘의 공통점은 나타나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전 작품들 보다 차이점만 더 두드러질 뿐입니다.

 

 

 

바그너의 작품만을 무대에 올릴 수 있는 전용극장 "바이로이트축전극장"

 

바그너는 초지일관 이 혼란스럽고 부조리한 세상을 구원할 존재가 누구인지를 물어왔고 마지막 작품에서 답을 찾았습니다. 탄호이저에서는 한 여인의 숭고한 헌신과 희생으로부터 구원의 빛을 보았으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사랑하는 연인을 위한 것이었고 4부작 음악극 반지에서는 두려움을 모르는 인간의 영웅이 무너져 가는 신들의 세계를 구원하리라 믿었지만 영웅 지그프리트는 결국 의심과 배신으로 말미암아 뜻을 이루지 못합니다. 그러나 마지막 작품에서 주인공 파르지팔은 마법사 클링조르의 간계에 넘어가 치명적인 상처를 입은 성배기사단의 왕 암포르타스를 치유하고 세상을 구원하게 됩니다. 현자가 예언하기를 연민으로 깨달음을 얻은 순수한 바보만이 암포르타스를 살릴 것이라 했으니 파르지팔이 곧 그였던 것입니다.

 

뮤지컬 '아이다' 中 'Elaborate lives' - 차지연 & 김준현

 

바그너와는 달리 베르디는 삶의 막바지에 이르러 전작들과는 전혀 다른 시도를 하였고 그것은 어처구니없게도 평생 그가 쌓아온 고귀하고 진지한 이미지와는 어울리지도 않을 뿐더러 시대에도 뒤떨어진 오페라 부파였습니다. 그리고 그의 평생 처음으로 다른 그 누구도 의식하지 않고 스스로의 만족을 위한 작품이라고 했고 심지어는 계약서에다 마지막 리허설까지 갔다 하더라도 자신이 결정하면 공연하지 않아도 된다는 조항을 넣기까지 했습니다. 세익스피어의 윈저의 유쾌한 아낙네들헨리 4”를 바탕으로 보이토가 쓴 대본에 곡을 붙인 팔스타프는 매력이라고는 어느 한 구석도 없는 속물입니다. 게다가 스스로는 누구보다 잘났다고 착각하며 있는 대로 잘난 척을 떠는 혐오스런 인물이지요. 한 때는 잘 나가는 기사였는지 모르지만 이제는 나이가 들어 배는 나오고 머리는 벗겨진 데다가 돈도 없으면서 날마다 술독에 빠져 누군가를 등칠 생각에만 골몰하고 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윈저의 돈 많은 부인 둘을 유혹해서 돈까지 뜯어낼 궁리를 하지만 결국은 오히려 그들과 그 주변 사람들에게 골탕을 먹고 망신을 당하기에 이릅니다. 그 과정에서 팔스타프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가식과 헛된 욕심까지 다 드러나게 되면서 마지막에는 모두가 화해하며 함께 노래를 부릅니다. 처음에는 세상만사 다 장난이고 남자들은 모두 광대라고 놀리더니 마지막에 가서는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은 바보일 따름라고 외칩니다.

 

 

 

 

 

 

 

 

독일 남부 뮌헨시 뮌헨오페라단 앞에서 28일(현지시간) 야외공연이 펼쳐졌다. 배우들이 조명을 비춘 대형 인형과 함께 공연을 하고 있다. 두 거인 인형 사이에 나란히 줄에 매달린 출연배우들의 모습이 이채롭다. 마치 작은 인형들을 엮어 놓은 듯이 보인다.이날 행사는 유명작곡가인 리하르트 바그너와 주세페 베르디 탄생 200주년을 맞아 열렸다. - 출처 : 일간스포츠 -

 

 

그렇습니다. 바그너는 순수한 바보가 세상을 구한다고 했고 베르디는 아무리 머리를 쓰고 잘난 척을 해도 우리는 누구나가 다 바보라고 말합니다. 스스로 바보인 줄 알면 그것이 바로 깨달음이고 우리 모두가 다 그렇게 깨닫게 된다면 그것이 바로 구원일 것입니다. 그래서 아마도 돌아가신 성철 스님이 당신이 낳은 단 한 점의 혈육이 출가한다 했을 때 불필이라는 법명을 주셨겠지요. 필요하지 않은 존재가 되라는 말씀이야말로 바보가 되라는 말씀이 아닐까요. 사람은 젊어서 세상을 바꾸려고 하고 결혼해서는 배우자를 고치려고 든다지요. 그러다 자식을 낳으면 한풀이라도 하려는 듯이 그마저 못살게 군답니다. 그렇게 지쳐서 삶이 다 꺼져갈 즈음에야 나 스스로가 바뀌어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데 그 때는 이미 늦은 겁니다. 철들자 죽음인 것이지요. 하루에 한 번은 가던 길을 멈추고 하늘을 봐야겠지요. 하루에 한 번은 까닭 없이 웃어야지요. 그래도 한 번은 누군가를 칭찬하고 한 번은 모르는 사람에게 말을 걸어볼 참입니다. 왜냐고요? 자꾸 왜냐고 묻지 마세요. 그냥 바보라서 그러려니 생각하세요.

 

 

 

 

 

 

 

글 : 홍승찬 교수
편집 : 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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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쉬운 오페라 아리아] 음치가 아니라면 누구나 쉽게 따라 부를 수 있는 오페라 아리아 도니제티의 오페라 “사랑의 묘약”[세상에서 가장 쉬운 오페라 아리아] 음치가 아니라면 누구나 쉽게 따라 부를 수 있는 오페라 아리아 도니제티의 오페라 “사랑의 묘약”

Posted at 2013.05.03 09:14 | Posted in 이건음악회 Talk Talk/홍승찬교수의 클래식 톡톡

 

 

 

 

 

 

 

홍승찬 교수의 클래식 음악(49)
[홍승찬 교수의 재미있는 클래식음악 이야기]

 

 

 

세상에서 가장 쉬운 오페라 아리아

 

 

 

도니제티

 

 

 

이제 곧 송년회 모임이 많아지는 연말. 분위기가 무르익으면 돌아가며 노래 한 곡조씩 하는 것이 피할 수 없는 운명이지만 늘 부르고 듣는 그 노래가 그 노래라 모두들 식상하기 마련입니다. 이 때 오페라 아리아 한 가락을 제대로 뽑을 수 있다면 사람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으며 그 모임의 주인공이 되는 것은 시간문제겠지요. 게다가 그 노래가 지루하거나 축 처지는 것이 아니라 밝고 가벼운 데다가 웃음까지 줄 수 있다면 이 보다 더 좋을 수는 없을 겁니다. 그런데 오페라 아리아라면 고도의 성악적 기교를 훈련받아야 하는 데다가 뜻도 모르고 발음도 어려운 외국어 가사까지 읊어야 하는 탓에 아무나 덤벼들 수 없다는 것이 우리가 아는 상식이지요. 그래서 오늘은 특별히 여러분에게 음치가 아니라면 누구나 쉽게 따라 부를 수 있는 오페라 아리아 한 곡을 소개할 생각입니다. 말하자면 세상에서 가장 쉽게 부를 수 있는 오페라 아리아인 셈이지요. 그 곡은 다름 아닌 도니제티의 오페라 사랑의 묘약에서 주인공 네모리노가 술에 취해 콧노래로 부르는 짧은 선율입니다.

 

 

Donizetti - 남몰래 흐르는 눈물 (사랑의묘약 / Pavarotti)

 

 

농장에서 일하는 주인공 네모리노는 농장주인인 아디나를 사랑하지만 수줍어서 차마 고백하지 못합니다. 아디나도 네모리노가 싫지 않지만 다가서지 못하는 그가 답답하기만 합니다. 마을에 군인들이 주둔하게 되고 그들의 지휘관인 벨코레가 아니다에게 구애를 하자 그때서야 다급해진 네모리노는 아디나에게 사랑을 고백하지만 아디나의 반응은 시큰둥합니다. 그 때 떠돌이 약장수 둘카마라가 마을에 들어와 사람들을 모아놓고는 만병통치약이라며 가짜약을 팔자 네모리노는 혹시 상대가 나를 사랑하게 되는 사랑의 묘약은 없는지 약장수에게 묻습니다. 둘카마라는 싸구려 포도주를 사랑의 묘약이라고 속여서 팔면서 하루가 지나야 약효가 나타난다고 말합니다. 도망갈 시간을 벌려는 속셈이지요. 싸꾸려 포도주를 잔뜩 마시고 기분이 좋아진 네모리노는 신이 나서 콧노래를 부르며 아디나에게 내일이면 모든 것이 달라질 것이라고 큰소리를 칩니다. 바로 이 때 부르는 콧노래가 바로 오늘 여러분에게 소개할 바로 세상에서 가장 쉬운 오페라 아리아입니다. 물론 가사도 없이 흥얼거리는 콧노래를 딱히 아리아라고 우길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굳이 아니라고 잡아 뗄 이유도 없습니다.

 

 

Gary Karr 오페라 아리아 10 도니제티 남 몰래 흐르는 눈물 사랑의 묘약 제2막

가에타노 도니제티(1797~1848)는, 19세기 전반에 도니젯티는 롯시니, 벨리니와 함께 이탈리아 오페라의 3거두의 한사람으로 활약한 작곡가입니다.

그는 50 여생을 통해 67편의 오페라를 썼는데, 그 중 몇 작품은 오늘에 와서 상연되고 있습니다.
1832년에 작곡된 오페라 “사랑의 묘약”은 도니젯티가 그의 나이 36세 때에 작곡한 것으로 “루치아”와 함께 그의 대표작으로 속합니다. 구슬픈 단조 가락과 전조의 묘미 덕분에 전곡 중 가장 인기가 높고, 베스트 아리아로 꼽힌 작품입니다.

내용은 이탈리아의 작은 마을에서 생긴 사랑 이야기입니다. 제 2막에서 부자가 된 네모리노가 아디나에게 사랑은 아직 변함이 없다고 말하자 아디나가 눈물을 흘리는데, 이를 본 네모리노가 부르는 사랑의 노래  “남몰래 흐르는 눈물”은 유명하여 많이 애창되고 있습니다.


 

 

 

 

Una furtiva lagrima negli occhi suoi spunto

One lonely tear steals down thy cheek,
Secretly here in the dark.
외로이 그대 빰에 흐르는 눈물,
어둠속에 남몰래 흐르네.

Quelle festose giovani invidiar sembro
Ah! but to me it seems to speak
It has much to tell...
아! 나에게만 무언가 말하는 듯 하네
할말이 아직 많이 남아있다고...

Che piu` cercando io vo?
Why then do you have to leave?
왜 그때 그대는 떠나지 않았나?

Che piu` cercando io vo?
Why then do I have to grieve?
왜 그때 난 그렇게 슬퍼했던가?

M'ama, si m'ama, lo vedo, lo vedo!
One lonely tear on thy cheek
Seems to say Don’t fly away...
외로이 그대 빰에 흐르는 눈물
떠나지 말라고 말하는 듯하네..

Un solo istante il palpiti del suo bel cor sentir
One lonely tear steals down thy cheek
Here as I kiss thee farewell,
외로이 그대 빰에 흐르는 눈물,
여기 나의 작별키스로 그대에게 남았네

i miei sospir confondere per poco a suoi sospir
Ah! but to me it seems to speak
It has much to tell...
아! 나에게만 무언가 말하는 듯 하네
할말이 아직 많이 남아있다고..

i palpiti, i palpiti sentir
O stay, my love, O stay my love, O stay!
아! 가지마오 내 사랑 가지마오 내사랑, 가지마오!

confondere i miei co' suoi sospir
Don’t fly away, O love, don’t fly away!
떠나가지마오, 그대 떠나가지 마오!

Cielo, si puo` morir di piu` non chiedo non chiedo
Give love a chance to survive,
O I beg thee to try to keep love alive! Ah!
사랑을 주오 살아남을 기회를,
아 나 그대에게 사랑이 꺼지지 않게 해주기를 비오! 아!

Cielo, si puo`si puo` morir di piu non chiedo
non chiedo
One lonely tear I can clearly see
외로운 눈물 한방울 난 또렷하게 볼수 있소

si puo` morir ... Ah si, morir... d'amor
Seems to reveal thy love for me!
나를 향한 그대의 사랑을 드러내는 것을 말이오!

 

 

갑자기 주둔지를 옮기라는 명령을 받은 벨코레가 황급히 청혼을 하자 아디나는 우쭐대는 네모리노를 골려주려는 생각으로 승낙을 합니다. 갑작스런 돌발상황에 다급해진 네모리노는 아디나에게 결혼날짜를 하루만 늦춰달라고 애원하지만 소용이 없습니다.

마을에선 아디나와 벨코레의 결혼을 축하하는 잔치가 벌어지고 둘카마라에게 달려간 네모리노는 당장 약효가 듣는 약을 달라고 하지만 이미 가진 돈을 약 사는 데 다 써버린 처지입니다. 이런 상황을 눈치 챈 벨코레는 귀찮은 연적을 치워버릴 생각으로 네모리에게 입대하면 당장 돈을 주겠다며 계약서를 내밀지요 달리 방법이 없는 네모리노는 입대 지원서를 쓰고 받은 돈으로 당장 약효가 듣는다는 가짜 약을 사서 단숨에 들이킵니다. 그 때 동네 처녀 자네타는 네모리노가 거액의 유산을 상속받게 되었다는 소문을 듣고 동네 처녀들에게 그 말을 퍼트립니다. 갑자기 동네 처녀들이 네모리노에게 달려들어 아양을 떨자 이 사실을 모르는 네모리노는 드디어 약효가 나타나는 줄 알고 무척이나 기뻐합니다.

 

 

  

 

 

멀리서 이를 지켜보며 수상하게 생각하던 아디나는 약장수 둘카마라를 졸라 그 동안의 사정을 듣고는 네모리노의 순수하고 맹목적인 사랑에 마음이 움직여 눈물을 흘립니다. 그 모습을 보고 부르는 네모리노의 그 유명한 아리가 바로 남몰래 흘리는 눈물이지요. "이제 아디나도 날 사랑하는 게 분명해. 저 눈물을 보면 알아. 아디나의 뛰는 가슴을 한 순간이라도 느껴볼 수만 있다면, 내 한숨을 그 숨결에 섞을 수만 있다면. 그때는 죽어도 좋아. 더는 바랄게 없어.” 벨코레에게 돈을 주고 입대 지원서를 되찾아 온 아디나는 네모리노에게 그 계약서를 돌려주며 서로의 사랑을 확인합니다. 그리고 마침내 떠돌이 약장수 둘카마라는 마을 사람 모두의 감사와 환호 속에 유유히 길을 떠납니다.

 

 

 

 

 

남몰래 흘리는 눈물은 마침내 사랑의 꿈이 이루어지는 순간의 벅찬 감격을 담은 노래지만 바로 전까지의 들뜨고 소란스러운 분위기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게 갑자기 바순의 낮게 가라앉은 선율이 서글프게 울리면서 엉뚱한 분위기로 이끌어 갑니다. 그래서 이 오페라의 대본을 쓴 펠리체 로마니는 이 장면에 이 아리아가 들어가면 극의 흥이 갑자기 깨진다며 도니체티를 말렸지만 작곡가는 끝내 고집을 꺾지 않았습니다. 로마니의 우려대로 1832년 밀라노 카노비아나 극장에서 이 오페라가 초연되었을 때 관객들은 이 아리아에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고 합니다. 한마디로 생뚱맞다는 것이었지요. 그러나 공연이 거듭될수록 관객들은 오페라와는 상관없이 점점 이 아리아의 아름다운 선율과 구슬픈 흐느낌에 마음을 빼앗겼고 마침내 사랑의 묘약을 대표하는 주제가일 뿐만 아니라 테너 아리아의 대명사로 자리매김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오늘 이 시간의 주제는 남몰래 흘리는 눈물이 아니라 네모리노의 콧노래입니다. 그리고 사실 그 콧노래야말로 오페라 역사상 누구보다 멍청하고 어리석은 주인공에게 그 무엇보다 잘 어울리는 주제가일 것입니다. 우리가 좋아하는 이야기 속에는 이렇듯 늘 남에게 속고 빼앗기면서도 아픈 줄도 모르고 좋아라 웃는 바보들이 나오기 마련입니다. 현실에선 언제나 똑똑하고 영악한 인간들이 득세할지라도 예술이 꿈꾸는 세상에서만큼은 그렇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겠지요. 그렇게 다친 마음을 위로받고 내일을 살아갈 힘을 얻는 것입니다. 엉터리 약장수에게 속아서 산 가짜 약을 진짜라고 굳게 믿고는 좋아서 어쩔 줄 몰라 부르는 콧노래를 우리 모두 함께 따라 부르며 바보로 사는 아름다운 마음을 진정으로 헤아렸으면 합니다.

 

 

 

 

글 : 홍승찬 교수
편집 : 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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