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회 이건음악회 아비 아비탈(Avi Avital) 만돌린 연주 앙상블 소개 1부. 바이올린(피호영, 김홍연, 태선이)27회 이건음악회 아비 아비탈(Avi Avital) 만돌린 연주 앙상블 소개 1부. 바이올린(피호영, 김홍연, 태선이)

Posted at 2016.10.06 14:01 | Posted in 이건음악회 Talk Talk/음악회 톡톡

 

안녕하세요.

이건음악회를 기대하고 있는 여러분께 작은 내용을 공유하고자 합니다.

다들 즐거운 가을의 선선한 기운 느끼고 계시나요?

 

 

이번 음악회는 여타 이건음악회와 조금은 다른 성격을 보여줄 것 같습니다.

바로 많은 협연자들 때문입니다.

이번 이건음악회는 기존 이건음악회와는 달리 매우 많은 국내 최고의 연주자들이 함께 하십니다.

 

 

따라서 이들 국내 협연자에 대해서도 간단히 여러분께 소개의 시간을 가져보려 합니다.

오늘은 그 첫번째 시간으로 바이올린 연주 음악가 분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려고 하는데요.

바이올리니스트 분들이 6분으로 가장 많아 파트를 1, 2로 나누어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그럼 오늘은 바이올린 파트1 으로 음악가 피호영 선생님, 김홍연 선생님, 태선이 선생님에 대해 간략해 소개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이번 27회 이건음악회 협연을 위해 여러분께 멋진 연주를 보여주실 분들입니다.

 

 

  피호영(Ho-Young Pi)_바이올리니스트 Violinist

․ 서울예술고등학교,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실기수석 졸업
․ 프랑스 정부 국비장학생으로 도불, 파리국립고등음악원 수석 졸업
․ 파리 에꼴 노르말 음악원 실내악 과정 수석 졸업, 스위스 베른국립음악원 졸업
․ 이화 경향 음악콩쿠르, 한국일보 음악콩쿠르, 중앙 음악콩쿠르 석권
․ 모차르트, 베토벤, 브람스, 프로코피예프, 그리그, 포레 등 소나타 전곡연주 진행중
․ 비르투오조 콰르텟, 성신 트리오 창단을 비롯해 한국페스티발앙상블, 한음챔버앙상블 등
  국내 정상의 실내악단과 활동
․ 서울시향, 부천시향 등 국내 유수 오케스트라 객원 악장 활동
․ 슈퍼월드오케스트라의 유일한 한국인 단원, 로린 마젤, 베르나르트 하이딩크, 주빈 메타 등
 
세계적인 지휘자와 연주
․ 스위스 베른심포니오케스트라, 라이프지히방송교향악단, 블라디보스톡필하모니아,
  KBS, 서울,부산,수원,대구,인천,전주,울산시향, 등과 협연
․ 독일 라이프치히 유로 음악제, 프랑스 퐁르브아 음악제, 플레인 음악제, 벨레바 음악제 초빙교수
․ 서울시립교향악단 수석,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 악장 역임
․ 한국음악협회 이사, 성신여자대학교 음악대학장 역임
․ 5.16 민족상 음악상, 중앙일보 선정 올해의 음악가상, 한국 실연자협회 클래식 부문 대상 수상
․ 현. DMZ연천국제음악제 조직위원,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 이사,
  성신여자대학교 음악대학 기악과 교수

 

바이올리니스트 피호영 선생님

 

우리나라 바이올린 계를 두 어깨에 짊어지고 있는 작은 거인이다.

바이올린 연주자가 할 수 있는 모든 영역을 빠짐없이 섭렵하느라 그 누구보다도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해마다 독주회와 협연무대만으로도 정신이 없을 텐데 다양한 실내악에다 오케스트라 활동까지 그의 손이 미치지 않는 곳이 없다. 게다가 2007년에 강남역에서 벌인 “길거리 연주” 해프닝은 세인들의 폭발적인 관심을 끌어 인터넷 포탈사이트 검색 1위에 오르기까지 했다. "오페라 아리아"와 “로망스”, “봄” 등 독특한 레퍼토리와 테마가 있는 독주회로 신선한 파장을 불러일으키더니 최근에는 브람스, 프로코피에프, 모차르트, 베토벤, 그리그, 포레,로 이어지는 바이올린 소나타 전곡 연주회로 누구보다도 학구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런 중에 국내의 거의 모든 오케스트라와 수없는 협연무대를 가졌고 특히 2004년 대한민국 국제 음악제의 개막공연에서 KBS 교향악단과 협연한 브람스 협주곡으로 “대한민국 대표선수”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스스로 “비르투오조” 콰르텟을 창단했는가 하면 한국페스티발 앙상블과 한음챔버 앙상블 등 국내 정상의 실내악단들과 다양한 작업을 계속하고 있고 그가 몸담고 있는 성신여대 교수들과의 “성신 트리오” 활동은 물론 후학을 양성하는 일에도 맡은 바 소임을 다하고 있다. 최근에는 해외 활동에도 많은 관심을 두어 프랑스 연주자들과의 다양한 실내악 무대를  시도하는 중이고 독일의 라이프치히 유로 음악제, 프랑스의 퐁르브아 음악제, 플레인 음악제, 벨레바 음악제의 초빙교수로 활약하고 있다.  

독주와 실내악 활동만으로도 누구보다 앞서 있지만  피호영의 오케스트라 사랑은 남다르게 각별하다. 서울대 재학시절 이미 서울시향의 수석으로 입단했고 유학을 마치고 귀국하자마자 코리언 심포니의 악장으로 부임하여 10년을 함께 했다. 독주자로 나선 이후에도 서울시향과 부천시향 등 국내 유수 오케스트라의 객원 악장으로 수없이 초빙되어 오케스트라 악장이라는 소임에 관한 한 독보적인 진가를 유감없이 발휘했고 마침내 세계 유명 오케스트라의 단원들을 모아 구성한 슈퍼월드오케스트라의 유일한 한국인 단원으로서 로린 마젤, 베르나르트 하이딩크, 주빈 메타 등의 세계적인 지휘자와 함께하는 기회를 갖기도 했다.   

약관 13세의 나이에 서울시향과 파가니니 협주곡을 협연하여 주목을 받기 시작한 피호영은 이화 경향 콩쿠르, 한국일보 콩쿠르, 중앙 콩쿠르를 차례로 석권하면서 벌써부터 차세대 선두주자로 나섰으며 서울예고와 서울대 음대를 실기수석으로 졸업하면서 프랑스 정부 국비장학생으로 도불하여 세계적인 여류 바이올리니스트겸 교수인 미셸 오클레 에게 사사, 파리 국립 고등음악원을 수석졸업하였고 파리 에꼴 노르말 음악원 실내악 과정 또한 수석 졸업하였다. 세계적인 교수인 이고르 오짐의 부름을 받아 스위스 베른국립음악원을 졸업하고 스위스 베른심포니와 협연하였다. 한국음악협회 이사, 성신여대 음대학장을 역임하였으며 현재 DMZ국제음악제 조직위원,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 이사, 성신여대 음대 기악과교수로 재직중이다. 중앙일보 선정 올해의 음악가, 한국 실연자협회 클래식 부문 대상 수상하였고, 일찍이 5.16 민족상 음악부분 수상자로 선정되는 영예를 안기도 하였다.

 

 

  김홍연_바이올리니스트 Violinist

. 예원, 서울예고, 서울대학교 졸업
. 독일 라이프찌히 국립음대 전문연주자과정(Diplom) 졸업
. 독일 라이프찌히 국립음대 최고연주자과정(Konzertexamen) 졸업
. 인천시립교향악단, 서울내셔널심포니오케스트라, 서울심포니오케스트라와 협연
. 대전 실내악축제. 부산 두레라움 페스티벌 참가
.
현재 국립강릉원주대학교, 동국대 음악원, 선화예중, 선화예고, 계원예고, 덕원예고, 인천예고,
 
부산예고 출강 및 콘쿠오레앙상블 악장, 서울심포니오케스트라 악장으로 활동

 

바이올리니스트 김홍연 선생님

 

바이올리니스트 김홍연은 예원학교와 서울예술고등학교, 서울대학교를 졸업한 후 도독하여 라이프찌히 국립음대에서 전문연주자과정(Diplom)과 최고연주자과정(Konzertexamen)을 졸업하였다. 

유학시절 독일 라이프찌히 국림음대 Kammermusiksaal(2007년)에서 독주회를 개최하여 좋은 평을 받았으며, 독일 Gohlis에서 듀오 앙상블 연주를 하였고, 독일 Max-Reger-Tage(Max-Reger Halle, 2008년) 초청연주, 독일 Mendelsshon Halle 모닝 콘서트 솔로 연주(2008년), 독일 Schumann Haus 실내악연주(2008년), 독일 라이프찌히 국림음대 Kammermusiksaal에서 Trio 리사이틀(2008년), 독일 라이프찌히 국립음대 Kammermusiksaal에서 독주회(2012년)를 개최하였다. 

귀국 후 국립경찰교향악단에서 악장으로 활동하며 군복무를 마쳤고, 서울시유스오케스트라, 서울프로아트오케스트라, 서울대학교페스티벌오케스트라, 유라시안필하모닉오케스트라, 서울내셔널심포니오케스트라 등에서 객원악장으로 활동하였다. 앙상블 활동에도 열정을 갖고, 2012년에 앙상블 콘쿠오레를 창단하여 대전실내악축제(2012,2013,2014,2015,2016년, 대전예술의전당), 부산 두레라움 페스티벌(2012,2014년, 부산영화의전당)에 참가 및 중국(북경, 상하이) 등에서 연주할동을 이어가며 악장으로서 팀을 이끌고 있다. 

2013년 예술의전당 IBK홀에서의 귀국독주회를 시작으로, 인천시립교향악단, 서울내셔널심포니오케스트라, 서울심포니오케스트라, 위뎀필하모니어즈오케스타라와의 협연으로 솔리스트로서의 활동도 이어나가고 있다. 현재, 동국대 음악원, 국립강릉원주대학교, 선화예중고, 덕원예고, 계원예고, 부산예고, 인천예고에 출강하여 후진양성에도 힘쓰고 있으며, 서울심포니오케스트라 악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태선이(Sunny Tae)_바이올리니스트 Violinist

예원학교졸업, 서울예고 재학중 도독
독일 바이마르 프란츠리스트 국립음대 최고연주자졸업
안드레아 포스타치니 국제콩쿨 1위 및 특별상
야샤 하이페츠 국제콩쿨3위, 카네티 국제콩쿨 3위
서울시향,인천시향, KBS교향악단 외 다수협연
베를린필하모니홀 초청독주회
제47회 베토벤 페스티벌 초청연주 (in Teplice)
독일5개도시, 이태리5개도시, 중국4개도시 순회 초청 연주
독일 대통령주최 베네피트 콘서트 솔리스트 선정
예후디 메뉴인 라이브 앤 뮤직나우 재단 솔리스트 선정
서울시향, 인천시향, KBS 교향악단, 바로크 합주단, 센다이 필하모닉, 루세 필하모닉, 루마니아 
국립교향악단 등 협연

 

바이올리니스트 태선이 선생님

 

등장부터 무대와 관객을 사로잡는 화려한 연주자”라는 평가를 받는 젊은 바이올리니스트 태선이는, 한국예술종합학교 예비학교, 예원학교, 서울예술고등학교를 거치며 실기우수자의 자리를 놓치지 않았던 영재출신 연주자다. 그녀는 독일로 유학, 베를린 한스아이슬러 음대와 바이마르 프란츠리스트 음대에서 석사과정과 최고연주자과정을 졸업했다. (사사: 구본주, 이선이 ,송재광, Stephan Picard, Friedemann Eichhorn)..

일찍이 금호재단에서 주최한 금호영재콘서트, 금호영아티스트콘서트 오디션에 발탁되어 두 차례의 독주회를 가졌으며, 국내 최고의 교향악단인 서울시립교향악단 협연자오디션에서 선발되며 국내무대에 성공적인 데뷔무대를 가졌다. 이화경향, 한국일보, 성정난파, 스트라드, 신인음악콩쿨 등 국내 유수의 콩쿨에서 두각을 나타냈으며 세계적인 바이올리니스트 기돈크레머가 심사위원장으로 있는 야샤하이페츠 국제콩쿨에서 3위로 한국인으로서는 유일하게 입상하였고, 카네티 국제콩쿨 3위에 이어 이태리에서 열린 안드레아 포스타치니 국제콩쿨에서 1위 및 특별상, 러시아 이폴리토프 이바노프 국제콩쿨에서 1위를 거머쥐며 세계적으로 실력을 입증 받았다.

이후에 인천시향, KBS교향악단, 서울바로크합주단, 북체코 필하모니, 리투아니아 국립교향악단, 로시니심포니오케스트라, 센다이심포니오케스트라, 루세필하모니커, 이비르투오지이탈리아니, 라이프찌히국립음대 오케스트라, 영유로클래식 오케스트라와 협연하며 활동하였다. 또한 한국 유나이티드 제약회사에서 문화공로상을 수상하였고, 독일 프란츠리스트재단에서는 그녀를 유망연주자로 선정하여 세기의 명기인 주세페 과다니니를 1년간 무상으로 임대해주었다. 

화려한 콩쿨이력과 함께 펼쳐온 그동안의 연주경력 또한 주목 할 만 하다. 베를린필하모니 캄머잘에서의 초청독주회를 비롯하여 이태리 4개 도시(페르모, 파브리아노, 몬자, 밀라노)에서 순회 독주회, 중국 4개 도시(정저우, 칭다오, 상해, 난징)에서는 협연자로서 성공적인 연주를 마쳤고, 특별히 독일 대통령 요아힘 가우크 주최 독일·이스라엘 문화교류사업에서 솔리스트로 선발되어 드레스덴필하모닉 음악감독인 미햐엘 잔덜링의 지휘로 대통령과 하원·상원의원들을 포함한 수많은 청중들 앞에서 5개 도시(베를린, 드레스덴, 바이마르, 코린, 바이로이트)를 순회협연하며 전석 매진과 기립박수와 함께 호평 받았으며, 각종 신문과 잡지에 이름을 알리는 등 연주는 BR-Klassik 라디오에서 실황으로 방송되기도 하였다. 

그 외에 바르나 국제음악제, 베토벤페스티벌 in Teplice, 오르비에또 섬머페스티벌, 젊은이의 음악제 등 여러 곳에서 초청되었으며, 독일지휘콩쿨 솔리스트선정, 예후디메뉴인 라이브뮤직나우 재단 연주자선정, 인천시 신진음악가 선정되는 등 놀라운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서울예술고등학교 재학시절 미국순회연주(카네기홀)에서는 수석바이올리니스트로서 활동하였으며, 독일 프란츠리스트 음대 정기연주회에서는 악장을 맡았고, 당시 연주는 녹화방송으로 독일지역에 방영되었으며 You tube에도 게시되어있다. 또한 세계적인 지휘자 사이먼래틀, 주빈메타, 다니엘바렌보임과 함께 세 차례 오케스트라 워크샵에 참여하여 베를린필하모니에서 연주를 가졌다.

 

27회 이건음악회에서는 이런 쟁쟁한 분들의 앙상블을 보실 수 있습니다.

기대되지 않으신가요?

전 벌써부터 가슴이 두근두근거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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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안실의 음악회] 평생에 가장 감동적인 음악. 소중하고 가까운 누군가가 영영 눈을 감거나 세상을 떠나게 되면 조촐하지만 뜻 깊은 음악회를 열어보는 것이 어떨까요?[영안실의 음악회] 평생에 가장 감동적인 음악. 소중하고 가까운 누군가가 영영 눈을 감거나 세상을 떠나게 되면 조촐하지만 뜻 깊은 음악회를 열어보는 것이 어떨까요?

Posted at 2012.06.26 12:05 | Posted in 이건음악회 Talk Talk/홍승찬교수의 클래식 톡톡

 

 

홍승찬 교수의 클래식 음악(28)
[홍승찬 교수의 재미있는 클래식음악 이야기] 영안실의 음악회

 

 


바이올린계의 작은 거인이라고 불리는 피호영

 

오늘은 좀 쑥스럽긴 하지만 제 자신이 직접 듣고 또 겪으면서 느끼고 깨달은 이야기를 들려드릴까 합니다. 몇 해 전인지 정확하게 기억나진 않지만 가수 장사익씨의 어머님이 돌아가셨을 때의 일입니다. 한 무대에 섰던 인연으로 서로 알고 지내던 바이올리니스트 피호영씨가 소식을 듣고는 문상을 갔다고 합니다. 습관대로 악기를 들고 영안실에 들어서자 조문을 받던 상주가 갑자기 덥석 손을 잡고는 난처한 주문을 하더라는 것입니다. 돌아가신 어머님이 평소 늘 바이올린 소리를 좋아하셨다면서 영전에서 한 곡조 켜달라고 졸랐던 것입니다. 혼자되신 어머님을 가까이 모시지 못하는 것이 늘 안타까웠던 차에 이런 부탁을 받고 보니 상주의 심정이 너무 가슴에 와 닿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 자리에서 바로 악기를 꺼내 타이스의 명상곡을 연주했고 그 순간 상주뿐만 아니라 다른 문상객들, 그리고 무엇보다 연주자 스스로가 가슴이 뭉클한 감동을 느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예전 70억짜리 스트리바리우스로 그는 거리의 악사가 되어 음악을 연주하였다.

 

그리고 얼마지 않아 저의 아버님이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경황이 없는 중에도 앞서 소개했던 사연이 머리 속에 또렷이 되살아났고 그와 마찬가지로 아버님 영전에 음악을 바쳐야겠다는 생각이 너무나도 간절해졌습니다. 그래서 경우가 아닌 줄 알면서도 악기를 들고 문상을 온 음악인들에게 간곡한 부탁을 드렸습니다. 그런데 뜻밖에도 흔쾌히 청을 들어주었고 예정에도 없는 음악회가 날마다 이어졌습니다. 주일이 사이에 끼어 어쩔 수 없이 4일장을 치렀는데, 저녁마다 모두 세 차례의 짧은 연주회가 열렸습니다. 문상객이 뜸해지는 밤늦은 시간, 힘든 시간을 도와주느라 늦게까지 분주했던 고마운 분들도 잠시 숨을 돌리고 음악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문상을 와서 잠시 소찬을 앞에 두고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조문객들도 음악을 듣느라 대화를 멈추었습니다. 그리고 잔잔한 선율이 영안실을 빠져 나와 복도를 지나 다른 영안실에도 들렸나봅니다. 무슨 일인가 싶어 소리가 나는 곳으로 하나 둘씩 모이기 시작했고 그렇게 사람들이 둘러 앉아 함께 음악을 들었습니다. 얼마지 않아 여기 저기 훌쩍이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고 모두들 눈시울을 붉히고 있었지만 얼굴에는 더 없이 해맑은 미소가 가득 번졌습니다. 그렇게 모두가 말없이 서로를 바라보며 슬픔을 나누었고 그로 말미암아 너나없이 크나큰 위로를 받았습니다.

 

 

바이올린 연주자 백주영(32·서울대 교수)

 

그 자리에 있었던 많은 분들이 지금까지도 그 일을 기억하며 두고두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평생에 그렇게 감동적인 음악을 듣지 못했다는 말씀도 있고 그 때 들었던 음악이 무엇이냐고 묻기도 합니다. 무엇보다 선뜻 어려운 청을 들어준 연주자들이 누군지 궁금해 하는 분들도 많습니다. 당시의 연주곡들을 다 기억하지는 못하지만 타이스의 명상곡이 있었다는 것만은 확실합니다. 다른 곡은 몰라도 그 곡은 제가 특별히 부탁해서 연주한 곡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고마운 마음에서라도 연주자들의 이름만큼은 절대 잊어버리지 않고 있습니다. 바이올리니스트 백주영씨와 임지연씨, 그리고 기타리스트 장승호씨가 바로 그 주인공들입니다. 그리고 다시 한 번 그분들에게 감사의 말씀을 전하고 싶습니다. 들려주신 그 음악이 그 자리에 있던 우리 모두에게 얼마나 큰 위로와 힘이 되었는지, 그래서 지금까지는 물론이고 앞으로도 고마운 마음을 절대 잊지 않겠다고 말입니다.

 

 

 

분명히 그 때 다짐을 했었습니다. 소중하고 가까운 누군가가 영영 눈을 감거나 혹은 그 누군가의 가족이 세상을 떠나게 되면 영안실을 지켜야 하는 날만큼 조촐하지만 뜻 깊은 음악회를 만들어주겠다고 말입니다. 그리고 생각했습니다. 주변뿐만 아니라 이 사회 구석구석까지 이런 생각이 번져간다면 우리 모두 음악이 갖는 참 뜻을 깨닫게 되고 더불어 죽음이 있어 더욱 절실해지는 삶의 의미를 경건하게 받아들이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참으로 격식을 따지는 듯싶지만 사실은 의식을 가볍게 생각하는 듯합니다. 겉치레가 아니라 시간과 여유를 두고 뜻을 새기며 마음을 나누는 그런 예식을 만들어야 합니다. 세상이 아무리 숨 가쁘게 돌아가도 어느 순간에는 잠시 걸음을 멈추고 뒤돌아볼 줄도 알아야겠지요. 그렇게 때로는 숨을 고르고 마음을 다스려야 숨이 턱에 차서 숨넘어가는 일이 없을 것입니다. 바로 그 때 음악이 다른 무엇보다 필요할 것입니다. 지금부터라도 음악을 가까이 두고 평생을 함께 하십시오. 그보다는 음악 하는 누군가를 찾아서 벗으로 삼으십시오. 그래서 그 친구로 말미암아 여유를 찾고 위로를 얻고 평화를 누리십시오. 여러분 모두에게 언제나 평화가 함께 하기를 기원합니다. 그런 소망과 함께 오늘은 타이스의 명상곡을 들으며 이 시간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Meditation from Thais (타이스의 명상곡)

violin Kang jae-seon (강재선) 姜在善, piano An min-ho, warm-hearted sound,healing

 

Yuna KIM _Meditation from Thais , 김연아 타이스의 명상곡

 

 

글 : 홍승찬 교수
편집 : 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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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승찬 교수의 재미있는 클래식음악 이야기] 바이올리니스트 김영욱이 바이올린을 연주하지 않는 까닭은? 자유로운 영혼을 논하기 전에 자유로움을 논해보자.[홍승찬 교수의 재미있는 클래식음악 이야기] 바이올리니스트 김영욱이 바이올린을 연주하지 않는 까닭은? 자유로운 영혼을 논하기 전에 자유로움을 논해보자.

Posted at 2012.04.16 11:28 | Posted in 이건음악회 Talk Talk/홍승찬교수의 클래식 톡톡

 

 

 

 

홍승찬 교수의 클래식 음악(11)
바이올리니스트 김영욱이 바이올린을 연주하지 않는 까닭은?

 

 



누구나에게 평생을 잊을 수 없는 어린 시절의 만남이 있고 추억이 있을 것입니다. 그것이 평생의 등불이 되기도 하고 그로부터 삶의 가치와 목표를 얻기도 합니다. 저에게는 초등학교 시절 경험했던 바이올리니스트 김영욱의 독주회가 그렇습니다. 이전에 한 번도 듣지 못했던 단아하고 담백한 소리에 영혼이 송두리째 흔들리는 전율을 느꼈습니다. 마구 쏟아내는 감정이 아니라 안으로 깊이 들이마셨다가 더 이상 참을 수 없을 때 흐느끼듯 뿜어져 나오는 꽉 찬 소리였습니다. 마치 찰지고 숙성된 반죽이 국수틀에서 나오는 듯한 소리였고 탱탱한 누에고치에서 윤기 흐르는 명주실이 뽑아져 나오는 듯한 소리였습니다. 태어나서 처음이자 지금까지 단 한 번 줄을 서서 기다렸다가 사인을 받았습니다. 늘 건강하시라는 말을 건냈고 피곤하지만 밝은 표정으로 고맙다는 대답을 들었습니다. 그 감동으로 바이올린을 배우기 시작했지만 일 년도 못되어 그만두었습니다. 연습을 게을리 한 탓이 크겠지만 단 한 번도 딱 맞는 음높이의 소리를 켜보지 못했고 그것이 견딜 수 없었습니다. 바이올린이라는 악기가 그렇게 섬세하고 어려운 악기라는 것을 그 때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연주자로서의 삶이 얼마나 고단한 것인지를, 그리고 우리가 듣는 음악이 그들이 감내한 인고의 세월에서 비롯된다는 사실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그 때 어렴풋이나마 음악가들을 곁에서 돕는 일을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그날 이후로 김영욱에 관한 글과 음반을 찾았습니다. 이승만 대통령의 주치의였던 김승현 박사의 육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고 음악을 사랑했던 어머니 이현경 여사의 영향으로 집안에 늘 당대의 음악가들이 드나들었다고 합니다. 위로 두 누님은 피아노를 쳤고 김영욱도 처음에는 피아노를 치다가 일곱 살에 바이올린을 시작했다고 합니다. 피아노가 치기 싫었고 크기가 작은 바이올린이 만만해 보였다고 합니다. 그리고 누구나 짐작할 수 있듯이 그때부터 놀라운 재능을 펼치기 시작합니다. 초등학교 육학년 때 내한했던 피아니스트 루돌프 제르킨을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얻었고 당시 커티스 음대 학장이었던 그의 초청으로 이듬해 미국으로 건너가 이반 갈라미언의 제자가 되었습니다. 당시 최고의 바이올린 지도자였던 갈라미언에게는 핑커스 주커만과 이차크 펄만, 그리고 우리나라의 정경화와 같은 쟁쟁한 제자들이 있었지만 누구보다 김영욱을 아꼈습니다. 타임지와의 인터뷰에서 그는 조심스럽게 개인적인 취향이라는 전제하에 제자들 중 김영욱을 가장 주목한다는 말을 했습니다. 그의 기대대로 김영욱은 곧 세계무대의 주목을 받았습니다. 함께 협연했던 뉴욕 필의 지휘자 레너드 번스타인은 나는 왠만해선 천재라는 말을 하지 않는다. 그러나 김영욱이야말로 진짜 천재다.”는 말까지 할 정도였습니다.

 

 

 <Conductor, Leonard Bernstein, 1918 – 1990>

 

 

그렇게 많은 연주활동을 하면서도 그가 녹음한 음반은 많지 않습니다. 자연스럽지 않고 인위적인 것을 싫어하는 김영욱의 성격 때문입니다. 거듭 연주해서 짜깁기 하는 것도 그렇고 기계로 잘못된 부분을 조작하는 것도 내키지 않는답니다. 독주보다는 실내악을 좋아해서 피아니스트 엠마누엘 엑스, 첼리스트 요요마와 더불어 엑스 김 마 트리오를 결성했는가 하면 보자르 트리오에서 활동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그의 연주를 들을 수 있는 녹음은 독주 음반보다 실내악 음반이 훨씬 더 많습니다. 그나마 지금은 일체의 연주활동을 중지하고 후학을 가르치는 일에만 전념하고 있어 더 이상 그의 음악을 무대에서 들을 수 있는 기회도 없을 것 같습니다. 한 때 김영욱이 독일의 테트몰트 음대에 교수로 초빙되었을 때 우연히 제 여동생이 그곳으로 유학을 갔습니다. 동생을 보러 가는 길에 그를 찾아가 만나볼까 망설였지만 결국 그러지 못했고 서울대 음대로 온다는 소식을 듣고서도 차일피일 용기를 내지 못했습니다. 누구보다 자유로운 영혼임을 알았기에 조금이라도 그를 어색하고 불편하게 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예술의전당 예술감독에 김영욱·홍승찬·김미진

그러다 기적같은 일이 벌어졌습니다. 예술의 전당 공연예술감독으로 부름을 받았던 것입니다. 그것이 기적이 아니라 함께 음악예술감독으로 취임하신 분이 그토록 오랜 세월 만나 뵙고 싶었던 김영욱 선생이었습니다. 제 방 바로 옆방에 김영욱 선생의 방이 있다는 말을 듣고 제 방보다 그 곳을 먼저 찾아가 보았습니다. 책상과 책장만 놓여있는 텅 빈 방이었지만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마치 결혼식을 기다리는 새신부의 심정으로 첫 만남을 기다렸습니다. 조촐한 취임식이 있던 날 오랫동안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던 초등학교 시절 추억을 말씀드렸고 김영욱 선생은 부끄러운 듯 고개를 돌리고 손사래를 치며 웃었습니다. 이후로 직책상 함께 하는 자리가 거듭되었고 예술의 전당을 떠나고도 여태껏 가끔씩 함께 식사를 합니다. 그러면서 음악을 듣고 느꼈던 그대로가 그의 모습임을 확인하게 되었고 그것이 또한 큰 기쁨으로 자리잡게 되었습니다. 꾸밈없는 음악만큼이나 소탈하고 욕심없는 성품이었고 맛깔스런 소리마냥 고상하고 섬세한 취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튀지 않고 은은한 색상이지만 흔하지 않은 질감을 가진 양복과 셔츠, 타이를 매지 않고 포켓에 꽂은 수건과 커프스 버튼과 같은 소품으로 포인트를 주는 감각은 아무도 흉내낼 수 없는 경지입니다. 스스로 음식 만들기를 좋아할 뿐 아니라 모든 종류의 음식을 가리지 않고 그 나름 즐기는 여유와 식사 자리에서는 가급적 일과 관련된 대화를 피하는 것까지 모두가 그의 음악만큼이나 특별하면서 친근합니다. 차가운 듯하지만 따뜻하고 부드러우면서 까칠한 점이 한없이 그를 높이 바라보게 만듭니다.

 

 

 

마음 같아선 늘 가까이서 자주 보고 싶지만 그의 일상을 조금도 방해하고 싶은 생각이 없습니다. 바이올린을 그 무엇보다 좋아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바이올린을 손에서 놓은 그 심정을 너무나 잘 이해하기 때문입니다. 누구보다 자유로운 영혼이기에 그가 바라는 그 모습 그대로 오래도록 자유롭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이 자유이기 때문입니다.

 

 

글 : 홍승찬 교수
편집 : 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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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Miz-Dupont
    제가 정말 좋아하는 연주자, 김영욱님에 관한 글을 읽고 정말 반가웠습니다. 국내 연주가의 공연으로는 선생님 걸 제일 많이 본 것 같아요. 예전에 선재아트센터에서 보자르 트리오의 일원으로 베토벤 피아노 트리오 공연하셨을 때가 기억나네요.. 요즘은 선생님의 연주를 들을 수 없어서 참 서운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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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승찬 교수의 재미있는 클래식음악 이야기] 음악으로 마음을 나누었던 러시아의 거장들... 사회주의 체제하에서 클레식을 사랑했던 이들의 이야기.[홍승찬 교수의 재미있는 클래식음악 이야기] 음악으로 마음을 나누었던 러시아의 거장들... 사회주의 체제하에서 클레식을 사랑했던 이들의 이야기.

Posted at 2012.03.30 07:30 | Posted in 이건음악회 Talk Talk/홍승찬교수의 클래식 톡톡

 

 

 

홍승찬 교수의 클래식 음악(7)
음악으로 마음을 나누었던 러시아의 거장들

 

 

 

 

클래식 음악에서 20세기는 확실히 러시아 연주자들의 시대였습니다. 악기별로 최고의 연주자들을 나열하다 보면 둘 중의 하나가 러시아 출신이고 그들이 남긴 업적과 후광은 21세기에 들어선 지금도 길게 드리워져 있습니다. 얼마 전 세상을 떠난 로스트로포비치는 20세기 내내 첼로의 제왕이었고 유리 바슈메트는 지금도 여전히 비올라의 지존입니다.

 

 

비올라의 지존이라 불리는 유리 바슈메트

 

그런가 하면 바로 지난 연말 내한했던 세르게이 나카리아코프는 벌써부터 세인들을 경악시키면서 트럼펫의 역사를 새롭게 쓰고 있습니다. 이런 불가사의한 현상을 두고 혹자는 사회주의 소비에트 체제에서나 가능했던 소수 정예의 선발과 가혹한 훈련 때문이라고도 하지만 비단 그것 뿐만은 아닐 것입니다.

 

첼로의 제왕 로스트로포비치

 

이제는 우리 곁을 떠나고 없는 소비에트 시절의 거장들을 떠올려 보면 연주뿐만 아니라 다른 여러 가지 면에서 참으로 특별한 기억을 남긴 이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죽기 바로 전 우리나라를 다녀갔던 전설적인 피아니스트 스비아토슬라프 리히테르는 어떤 연주회에서든 악보를 펼쳐놓고 연주한 것으로 유명합니다. 더욱이 그 악보를 바로 위에서 비추는 한줄기 조명 말고는 무대나 객석 할 것 없이 일체의 빛을 차단해야 했습니다. 연주회장 밖에서의 유별난 점도 많았는데, 대표적인 것이 고소공포증이었습니다. 당연히 비행기 여행을 기피할 수밖에 없었고 그 때문에 해외로 연주여행을 나갈 때도 육로와 해로를 이용했다고 합니다. 땅덩어리가 넓은 러시아를 기차나 자동차로 벗어나려면 꼬박 며칠이 걸리기 마련이었는데, 오지를 여행을 하다가 날이 저물면 리히테르는 가장 가까운 마을에 숙소를 정하고 예정에도 없는 연주회를 열어 그곳 주민들을 초청하곤 했습니다. 물론 마땅한 연주회장이 없는 경우가 더 많았지만 피아노가 있고 사람들이 앉을 수 있는 자리만 있다면 촛불을 켜고서라도 피아노를 쳤습니다.

 

 

시골 피아노 연주회라... 이런 느낌 아니었을까요?

 

언젠가 시베리아의 어느 외진 곳을 지나다가 밤을 맞은 리히테르는 늘 하던 대로 그곳 주민들을 위한 조촐한 연주회를 열었습니다. 그 자리에는 그 누구보다 리히테르의 음악에 넋을 잃어버린 한 소년이 있었습니다. 그날의 감동을 잊지 못한 그 소년은 음악가의 길을 걷게 되고 훗날 세계적인 바리톤 가수로 명성을 떨치게 되는데 그가 바로 우리나라에도 다녀간 바 있는 드미트리 흐보로브스키입니다.

 

 

유별난 점이 많았던 피아니스트 스비아토슬라프 리히테르

 

그러고 보면 소비에트 시절, 러시아의 거장들 가운데는 이렇듯 고국산천의 방방곡곡을 다니며 연주회를 열었던 음악가들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물론 사회주의 체제하에서 당국의 방침과 지시를 따라 그렇게 하기도 했겠지만 여러 가지 정황을 고려할 때 상당수의 연주자들은 스스로가 원했던 것같고 심지어는 다른 활동을 줄이거나 없는 시간을 쪼개서 방문연주회에 힘을 쏟았던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20세기 중반 다비드 오이스트라흐와 쌍벽을 이루었던 또 한 사람의 바이올리니스트 레오니드 코간이 바로 그 대표적인 인물이 아닌가 싶습니다.

 

 

매니아들 사이에서 전설적인 인물! 레오니드 코간

 

매니어들 사이에서 코간은 확실히 오이스트라흐와는 대조적이면서 그와는 전혀 다른 매력을 가진 거장으로 추앙받고 있지만 일반적으로 그는 오이스트라가 군림하던 시대를 살았던 또 한 사람의 바이올리니스트일 뿐입니다. 바로 그 오이스트라흐가 심사위원을 맡았던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에서 우승을 하며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던 코간이었지만 내성적인 성격과 한 사람의 확실한 선전도구를 필요로 했던 소비에트의 정책으로 말미암아 늘 오이스트라흐의 그늘에 가려야 했습니다. 주로 국내 무대에서 활동을 하며 후학들을 양성하는 데 힘을 쏟았던 코간도 간간이 있었던 해외 연주회에서의 놀라운 성과와 반응이 알려지기 시작하면서 점점 더 주목을 받기 시작했고 마침내 그의 존재를 세상에 알렸던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의 심사위원으로 위촉되기도 했지만 58세의 아까운 나이로 세상을 떠나고 맙니다. 비인에서의 연주회를 끝낸 지 불과 며칠 후, 또 다시 러시아의 어느 곳인가로 연주여행을 떠나기 위해 홀로 기차에 몸을 실은 코간은 끝내 그 기차에서 내리지 못한 채 숨을 거두고 말았습니다.

 

음악이라는 것을 자신의 부귀영화를 위해 쓴 것이 아니라

나라를 위해서 그리고 평범한 사람들을 위해 쓴 러시아의 거장들...

이들이 있기에 러시아의 클래식 음악이 더욱 세계적으로 알려지지 않았나... 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글 : 홍승찬 교수
편집 : 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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