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승찬 교수의 클래식 음악 이야기] 구레츠키 교향곡 3번 “슬픔의 노래”[홍승찬 교수의 클래식 음악 이야기] 구레츠키 교향곡 3번 “슬픔의 노래”

Posted at 2017.03.23 08:30 | Posted in 이건음악회 Talk Talk/클래식 톡톡



현대음악은 말 그대로 우리가 살고 있는 동시대에 만들어진 음악일 따름입니다. 그런데 대게는 20세기 이후 지금까지 수많은 작곡가들이 모색하여 시도하고 있는 새롭고 실험적인 음악들을 떠올리기 마련입니다. 베토벤 바이러스에서 등장해서 유명해진 존 케이지의 “433란 곡은 아시다시피 433초간 아무런 연주도 하지 않는 곡입니다



악기에서 나는 소리만이 음악이 아니라 청중들의 수군거리는 소리는 물론 침묵의 순간 흐르는 시간 그 자체도 음악이라는 것입니다. 그런가 하면 어떤 곡에서는 악기를 부수거나 완전히 해체하는 것이 음악이 되기도 합니다. 이처럼 너무나 실험적이고 전위적인 것을 현대음악이라고 생각하는 탓에 클래식 음악을 좋아하는 이들조차 현대음악에는 별로 관심이 없거나 심지어 거부감을 가지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 때문에 연주회를 통해 들을 기회가 많지 않을 뿐더러 음반으로 만들어지는 일은 더더욱 드뭅니다. 그런데 1991년 이런 통념과 편견을 깨는 역사적인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폴란드의 대표적인 현대음악 작곡가 헨릭 구레츠키(Henryk Gorecki)의 교향곡 3번을 녹음한 음반이 빌보드 차트 클래식 음악 분야에서 31주 연속 1위를 차지하는 놀라운 기록을 세운 것입니다. 이 음반은 순식간에 100만장이 넘는 판매고를 올리면서 현대음악으로선 도저히 상상도 할 수 없는 관심과 호응을 이끌어냈습니다.





폴란드를 대표하는 현대음악 작곡가인 구레츠키는 단순하면서 보편적인 설득력을 가질 수 있는 음악을 추구했고 이 작품 또한 그의 생각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습니다. “슬픔의 노래라는 부제가 붙은 이 곡은 오래 전부터 폴란드에 전해 내려오고 있는 카톨릭 교회의 성가와 민요의 가사와 선율을 그대로 가져다 쓰고 있습니다. 그리고 교향곡이라고 하지만 3개의 악장 모두 소프라노가 부르는 노래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런데 그 가사의 단어와 구절을 찬찬히 읽다 보면 이 작품의 매력은 음악보다 오히려 가사에 담긴 내용에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게 됩니다. 그리고 얼핏 구레츠키가 추구한 보편적인 설득력이 슬픔이라는 정서에 모아지면서 이것이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인 것이 아닌가 하는 짐작을 하게 됩니다.


Henryk Górecki


 

1악장의 가사는 폴란드의 수도원에 전해지고 있는 성십자가 탄식 기도문을 그대로 옮긴 것입니다.

 

나의 아들,

내 몸에서 태어난 사랑하는 아들아

너의 상처를 나에게 나누어 다오.

언제나 내 마음 속에 너를 품고 있었던,

진심으로 너를 돌보았던 어미에게

너의 목소리라도 들려주어 기쁘게 해다오.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어가는 모습을 지켜봐야 하는 어머니 마리아의 기막힌 심정이 절절히 녹아 있는 곡이죠. 세상의 어머니들이라면 가슴이 먹먹하게 듣게 되는 곡입니다.

 



다음 2악장은 2차 세계대전의 악명 높은 수용소 아우슈비츠에 갇혔던 18세의 유태인 소녀가 가스실로 끌려가기 전에 남아 있는 어머니를 위로하기 위해 벽에 쓴 낙서를 가사로 삼고 있습니다.

 

비록 내가 먼저 떠나가지만 엄마 울지 마세요.

고결하신 성처녀 아베 마리아여 저를 도와주소서.

 

죽음의 수용소 아우슈비츠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카토비체에서 공부를 하고 그곳 국립음악학교에서 학생을 가르쳤던 구레츠키는 아마도 이 역사의 비극적인 현장에서 커다란 충격과 슬픔을 느꼈던 것 같습니다.

 




마지막 악장은 폴란드의 또 다른 역사의 비극을 고스란히 담고 있습니다. 독일과 러시아, 오스트리아와 같은 강대국들로부터 끊임없이 침략을 당했던 폴란드는 숱한 전쟁에서 헤아릴 수도 없이 많은 젊은 목숨들이 희생당한 나라이기도 합니다. 3악장에선 전쟁에서 아들을 잃은 어머니의 절절한 슬픔을 들려주고 있습니다.

 

어디로 갔는가 내 사랑하는 아들은?

전란이 일어났을 때 내 아들은 잔인한 적에게 죽임을 당했겠지

, 너 몸쓸 인간아 가장 성스러운 신의 이름으로 나에게 말해다오,

왜 내 아들을 죽였는지

이제 다시는 아들의 보살핌을 받을 수 없으니

내가 울고 울어 내 늙은 눈에서 흐르는 눈물이 강을 만들어도

그들은 내 아들을 살리지 못하리라

 


그렇습니다. 국경을 넘고 인종을 초월해서 모든 인간의 마을을 움직이는 감정은 슬픔입니다. 그리고 그 슬픔 가운데 가장 으뜸이라면 누가 뭐래도 자식을 잃은 어머니의 슬픔일 것입니다. 그래서 이토록 많은 사람들이 이처럼 공감하여 마음을 주었던 것입니다.




작곡가 구레츠키는 어느 인터뷰에서 슬픔은 형벌이자 동시에 축복이라고 했습니다. 슬픔은 오리가 인생을 살아가며 결코 피할 수 없는 것이며 인생의 일부로서 숙명적으로 받아들여야 할 존재가 아닌가 합니다. 지나간 슬픔들, 그리고 앞으로 부딪혀야 할 또 많은 아픔과 슬픔들을 구레츠키의 슬픔의 노래로 그랬듯이 우리 또한 이겨내고 극복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한 걸음 더 나아가면 축복으로 받아들여지리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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