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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음악회 Talk Talk/홍승찬교수의 클래식 톡톡

[홍승찬 교수의 재미있는 클래식음악 이야기] 베토벤 바이러스에 대한 답변 - 지휘자를 높여서 부르는 이탈리아 말 ‘마에스트로’에서 가져온 우리말 이름!!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2. 6. 5.

 

 

홍승찬 교수의 클래식 음악(23)
베토벤 바이러스에 대한 답변

 

 


한 때 베토벤 바이러스라는 드라마가 인기를 끌었었지요. 그래서 여기저기서 많은 이야기들이 들렸고 더러는 드라마에 등장하는 오케스트라와 지휘자의 이야기가 실제와는 얼마나 가까운지를 묻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먼저 그 질문에 대한 답부터 드린다면 많은 부분 공감이 가는 이야기이고 작가가 직접 경험이 있거나 아니면 전문가의 충분한 자문을 얻어 만든 드라마라는 것입니다. 특별히 지휘자로 등장하는 강마에라는 인물에 관심들이 많은 것 같은데요, 이 참에 지휘자라는 직업에 대해서 이야기를 풀어볼까 합니다.

 

 

 

강마에라는 이름의 마에는 지휘자를 높여서 부르는 이탈리아 말 마에스트로에서 가져온 우리말 이름이겠지요. 같은 어원의 독일어로는 마이스터가 있고 영어의 매스터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느 분야의 경지에 이른 전문가이고 그렇기에 최고의 스승으로 여긴다는 존경의 뜻이 담겨 있는 말입니다. 그만큼 오케스트라를 지휘한다는 일이 어렵고도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흔히들 19세기를 피아니스트의 시대라 하고 20세기를 지휘자의 시대라고 합니다. 그리고 21세기에 와서는 지휘자의 시대가 저물어간다고들 말하지만 아직도 지휘자를 대신할 만한 그 무엇인가는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그만큼 20세기 클래식 음악에서 지휘자가 차지하는 위치와 비중은 대단했습니다. 물론 그 때만큼은 아니지만 지금도 지휘자에 대한 관심과 선망은 여전한 듯합니다.

 

 

 

 

지휘자의 역할이 독립적인 영역을 차지하게 된 것은 그리 오래지 않습니다. 19세기 전에는 관현악단의 책임자가 바이올린을 연주하면서 음악을 이끌기도 했고 바로크 시대에는 쳄발로 연주자가 지휘자의 역할을 하기도 했습니다. 물론 그 전에도 간혹 필요에 따라 지휘봉을 사용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지금과는 달리 지팡이처럼 긴 막대를 사용했고, 주로 그 끝으로 바닥을 두드려 시작과 끝을 알리는 용도로 사용했습니다. 기록에 따르면 루이14세 때 궁중음악가였던 장 밥티스트 륄리가 뾰족한 지휘봉 끝으로 자신의 발등을 찍는 바람에 파상풍에 걸려 세상을 떠났다고 합니다.

 

 

 장 밥티스트 륄리. 루이 14세의 총애를 한몸에 받은 궁정 음악가. 루이 14세가 발레에 흥미를 잃기 전까지는무곡 작곡과 연출을 맡았고, 이후에는 프랑스어 오페라의 기초를 쌓았다. 이탈리아 출신이다.

 

19세기 이후에서야 지금과 같은 모습의 지휘자가 등장하게 되는데, 작곡가들이 지휘자를 겸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멘델스존은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의 지휘자였고 구스타프 말러는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를 이끌기도 했습니다. 음악사에 등장할 만큼 중요한 인물 가운데 최초의 전업 지휘자는 한스 폰 뷜로우입니다. 리스트의 딸인 코지마와 결혼했고 한 때는 촉망받는 피아니스트였지만 바그너의 영향으로 전업 지휘자로 나섰고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초대 상임지휘자로 부임하였습니다. 이 악단은 1862년 벤야민 빌제가 만든 빌제 오케스트라로 출발했으나 형편없는 처우에 불만을 가진 단원들이 따로 오케스트라를 만들어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로 출범하였습니다. 당시는 지금과 달리 연주회 중에 식사를 대접하는 것이 관례였지만 이 악단은 음악에만 집중하자는 취지를 내세워 식사 없는 연주회를 시작했는데 사실은 당시의 재정 상태가 최악이었기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습니다. 지금은 최고의 시설을 자랑하는 전용 홀을 가지고 있어 모든 오케스트라들의 부러움을 사고 있지만 최초의 보금자리는 롤러 스케이트장을 개조해서 만든 공연장이었습니다. 뷜로우의 지휘로 베토벤의 교향곡 9번을 연주했을 당시에는 이런 일도 있었습니다. 청중들의 반응이 시큰둥 하자 지휘자는 출입문을 모두 닫으라고 지시를 했고 그렇게 청중들을 강제로 붙들어 둔 채로 처음부터 다시 전곡을 연주했다고 합니다.

 

 

 

 

아르트루 니키쉬를 거쳐 3대 상임지휘자로 부임한 빌헬름 푸르트뱅글러는 또 다른 일화를 남기고 있습니다. 당시만 해도 악장 사이에 박수를 치는 것이 그다지 큰 문제가 아니었지만 워낙 예민하고 신경질적이었던 푸르트뱅글러는 일체의 소음을 용납하지 않았고 이후 그것이 관행이 되어 지금에 이르렀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대가라지만 지휘자의 이런 독단적이고 일방적인 행동에 물의를 일으키기는커녕 새로운 전통으로 정착하기까지 했다는 것만 봐도 당시 지휘자의 위상이 어떠했는지를 짐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3대 상임지휘자로 부임한 빌헬름 푸르트뱅글러

 

음악의 다른 분야와는 달리 처음부터 지휘를 공부하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최초의 전업 지휘자 뷜로우는 피아니스트로 출발해서 지휘자가 되었고 이후 지금까지도 피아니스트 출신의 지휘자가 많은 편입니다. 바이올린이나 비올라를 연주하다가 지휘자로 나서는 경우도 흔한 편이지만 현악기 연주자에서 지휘자로 전향한 대표적인 경우라면 토스카니니와 쿠세비츠키를 꼽을 수 있을 것입니다. 토스카니니는 원래 오케스트라의 첼리스트였고 쿠세비츠키는 당대 최고 콘트라베이스 연주자였습니다. 지독한 근시였던 토스카니니는 늘 악보를 외어서 연주할 수밖에 없었는데 지휘자가 갑자기 입원하는 바람에 대신 지휘대에 오르게 되었고 그 연주의 성공으로 지휘자의 길을 걷게 되었습니다. 물론 지휘자가 된 다음에도 모든 연주를 암보로 소화할 수밖에 없었고 그것이 또 하나의 모범이 되어 이후로 악보를 외어서 연주하는 지휘자들이 등장하기 시작했습니다. 피아노와 현악기뿐만 아니라 관악기와 타악기 연주자들 중에도 지휘자로 나서는 경우가 있는데, 현재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상임지휘자 사이먼 래틀은 타악기 연주자였습니다. 테너 플라치도 도밍고나 바리톤 디트리히 피셔 디스카우처럼 성악가가 지휘자로 나서는 경우도 있고 드물게는 발레리노 출신의 지휘자도 찾을 수 있습니다.

 

 

예술의 전당에서 열린 김대진 지휘자의 수원시립교향악단 지휘 모습.

피아노를 치며 지휘하고 있다. /수원시립예술단 제공

 

베를린 필과 쌍벽으로 일컬어지는 빈 필은 창단부터 지금까지 상임지휘자를 두지 않는 전통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길지 않은 역사에도 세계적인 명 오케스트라와 어깨를 겨루고 있는 오르페오 챔버 오케스트라는 지휘자 없이 악장이 연주를 이끌어 가는 악단으로 유명합니다. 지휘자는 지휘봉으로 음악을 정확하게 표현하는 능력이 있어야겠지만 그 이전에 악보를 보고 작곡가의 의도를 정확하게 파악해서 나름대로 해석하는 능력이 우선일 겁니다. 하지만 오케스트라 단원들은 그보다 먼저 지휘자의 귀가 얼마나 정확한지를 알아보고 싶을 것입니다. 그래서 간혹 일부터 틀린 연주를 해서 지휘자의 반응을 살피기도 하는데 지적하지 않고 그냥 지나간다면 무시당할 밖에 도리가 없겠지요.

 

 

 

 

지휘자는 음악뿐만 아니라 다른 면에서도 뛰어난 능력을 가져야 합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오케스트라의 재정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나서야 하고 단원들과 자신의 관계는 물론이고 단원들 상호간의 관계와 오케스트라 외부와의 원만한 소통을 위해서도 노력해야 합니다. 그래서 요즈음은 스스로 상임 지휘자를 마다하고 객원지휘자로만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는 지휘자도 없지 않습니다. 한 악단에만 있게 되면 그 악단이 처한 모든 문제에 관여해야 됨은 물론이고 계속해서 새로운 작품을 연습해야 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자신이 장기로 삼는 몇 개의 연주곡만으로도 오래 버틸 수 있기 때문입니다.

 

 

글 : 홍승찬 교수
편집 : 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