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이건음악회 Talk Talk/홍승찬교수의 클래식 톡톡

[홍승찬 교수의 재미있는 클래식음악 이야기] 이루어질 수 없어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 - 브람스와 클라라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2. 6. 12.

 

 

홍승찬 교수의 클래식 음악(24)
이루어질 수 없어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 - 브람스와 클라라

 

 

슈만과 클라라

음악사를 통털어 가장 열렬하면서도 아름다운 순애보라면 대부분 슈만과 클라라의 이야기를 떠올리게 됩니다. 나이 차이는 많았지만 장래가 촉망되는 당대 최고의 작곡가와 최고의 여류 피아니스트의 결합이라면 그다지 반대할 이유가 없을 듯싶지만 클라라의 아버지이자 슈만의 스승이었던 비크는 그렇지가 않았습니다. 오히려 슈만을 너무나 잘 알았기에 불안정한 정서가 끝내 그의 삶을 파탄으로 이끌 것이라 예견했고, 그걸 알면서 누구보다 총명하고 아름다운 딸 클라라를 그에게 맡길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오히려 이런 이유 있는 반대를 비난하고 그 반대를 무릅쓰고 끝내 결혼에 이른 두 사람의 사랑을 무엇보다 아름답다고 합니다. 어쩌면 사랑의 결실보다는 결실에 이르기까지 온갖 시련을 이겨낸 두 사람의 의지를 칭송하는 것이고 바로 그런 절실한 마음을 담고 있는 슈만의 작품들을 사랑하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슈만과 브람스가 사랑한 뮤즈 <클라라>가 영화로 만들어졌다. 상상 이상으로 아름답다. 거장 음악가 세 사람의 러브스토리가 아침드라마처럼 삼각관계의 링 안에서 욕정과 시기가 들끓다가 파국으로 치닫는다면 얼마나 황당하고 쓸쓸했을까. 다행히도 사랑은 음악을 배반하지 않고 음악은 사랑을 모욕하지 않는다. 영화는 슈만과 클라라 결혼 이전의 시련은 담지 않고 결혼 이후부터 시작된다. 올망졸망 앙증맞은 자식들 키우는 음악가 잉꼬부부의 삶이 펼쳐진다.

 

장인이며 스승이었던 비크의 걱정대로 슈만은 끝내 정신분열을 일으켜 정신병원에서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게 됩니다. 그렇게 슈만과 클라라가 힘들었을 때, 그들을 지탱해준 힘이 되었던 사람이 바로 브람스였습니다. 슈만에게 인정받아 그의 도움으로 악단의 주목을 받게 된 브람스는 슈만을 스승으로 받들게 됩니다. 슈만의 집에 머물면서 그는 언제부터인지 모르게 스승의 부인 클라라에게 사랑의 감정을 품게 되지만 평생을 그저 마음에만 담아 둔 채 끝내 꺼내지는 않았습니다.

 

 

클라라의 아버지 비크 교수에게 피아노 교습을 받는 슈만의 모습을 재미있게 그린 그림

클라라가 11살 때 슈만을 처음 만나게 되었다.

 

요즘과 같은 찌든 세태에 모두들 설마하시겠지만 다른 사람이면 몰라도 브람스는 정말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마음 내키는 대로 사는 것이 마치 예술가의 특권인양 여겨졌던 낭만주의 시대 브람스는 정말이지 별종이었습니다. 경제적으로 무능한 아버지 대신 14살부터 함부르크 항만의 허름한 여인숙에서 피아노를 치면서 가족들의 생계를 꾸렸고 헝가리의 바이올리니스트 레메니의 반주자로 이후에는 당대를 풍미했던 거장 바이올리니스트 요아힘의 반주자로 음악경력을 이어갔습니다. 그렇게 사귄 요아힘과 평생 우정을 나누었고 슈만에게 브람스를 소개한 사람이 바로 요아힘이었습니다. 어머니가 죽고 계모가 들어와 동생들이 늘었지만 가족을 돌보는 브람스의 마음에는 변함이 없었습니다. 심지어는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다음에도 계모와 동생들을 끝까지 보살폈습니다. 무작정 믿고 전 재산을 맡긴 출판업자가 자신의 재산을 탕진해도 원망하는 법이 없었고 스스로는 검소하게 살면서 그렇게 남은 얼마 되지 않는 여유까지도 늘 누군가에게 베풀었습니다. 슈만이 그에게 빛을 주었듯이 그 또한 드보르작을 비롯한 많은 후배 작곡가들에게 길을 열어주었습니다. 그리고 그가 존경했던 스승의 부인이자 마음속으로 누구보다 깊이 사랑했던 클라라와 그 가족들을 죽을 때까지 보살피고 돌보았습니다.

 

 

한 여인을 사랑한 예술가 요하네스 브람스

 

브람스는 63번째 생일에 베이스 성부와 피아노를 위한 ‘4개의 엄숙한 노래를 완성했습니다. 구약성서와 신약성서에서 가져온 그 가사는 세속적인 모든 것들의 덧없음을 이야기하면서 근심과 고통에서 우리를 구해줄 구원자로서 죽음을 맞아들이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그러다가 고린토인들에게 보낸 첫 번째 편지에서 가사를 따온 마지막 노래에 이르러 그는 사랑의 힘을 열렬히 찬양하고 있는데, 그 무렵 병세가 점점 더 심각해져가고 있는 클라라에게 힘을 주고자 이 작품을 썼기 때문입니다. 브람스 자신의 말을 빌리자면 그녀와의 만남은 그에게 가장 큰 풍요와 가장 고귀한 만족을 가져다 준 생애 최고의 아름다운 경험이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에게 가장 소중한 존재가 그보다 한 발 앞서 세상을 떠나려고 하는 절박한 순간을 맞이했던 것입니다. 1896520, 마침내 클라라가 숨을 거두었습니다. 장례식에 참석해서 마지막 모습이라도 보고 싶었던 브람스는 프랑크푸르트를 향한 무모한 여행을 시도했지만 밤 기차를 놓쳐버렸습니다. 이 작은 소망마저도 이루지 못한 그는 클라라가 슈만과 나란히 묻혀 있는 본으로 향했고 이후 그의 병세는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악화되었습니다. 그해 여름 브람스는 병마와 싸우면서 오르간을 위한 ‘11개의 합창전주곡을 작곡했습니다. 그 마지막 곡인 판타지아에 그는 자신의 죽음을 예견이라도 하듯이 오 세상이여 나는 그대를 떠나야만 하네라는 제목을 붙였고 이듬해 봄, 클라라가 죽고 꼭 일년 만에 브람스도 세상을 떠났습니다.

 

 

 

브람스가 평생을 두고 가슴에 묻었던 고귀한 사랑 클라라의 죽음을 앞두고 그에게 위로와 용기를 주고자 작곡했던 ‘4개의 엄숙한 노래의 마지막 곡 아무리 그대들과 천사의 말로써 얘기한들의 가사는 이렇습니다.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 나는 꽹가리가 되고,

내가 예언하는 능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만한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난 아무 것도 아니요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어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투기하는 자가 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무례하게 행동하지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며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사랑은 언제까지 그치지 아니하나

예언도 그치고 방언도 그치고 지식도 그치리라.

우리가 부분적으로 알고 부분적으로 예언하니

온전한 것이 올 때는 부분적으로 하던 것이 그치리라.

내가 어렸을 때에는 말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깨닫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생각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다가

장성한 사람이 되어서는 어린 아이의 일을 버렸노라.

이제는 우리가 거울로 보는 것같이 희미하나

그때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요,

이제는 내가 부분적으로 아나

그때는 주께서 나를 아신 것같이 내가 온전히 알리라.

그런 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

 

 

최근 연주된 브람스-대학축전 서곡

 

■ 일시 : 2012년 3월 7일 수요일 14시
■ 장소 : 제주대학교 아라뮤즈홀
■ 주제 : 제주특별자치도립 오케스트라와 함께하는 오리엔테이션
■ 주최 : 제주대학교 기초교육원

■ 연주 : 제주특별자치도립 교향악단
■ 곡목 : 브람스-대학축전 서곡 / J.Brahms-Academic Festival Overture C mior Op.80
■ 지휘 : 정운선

 

 

글 : 홍승찬 교수
편집 : 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