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콘서트 관람 예절에 대한 안내 - 클래식 공연장 관람 매너, 에티켓클래식콘서트 관람 예절에 대한 안내 - 클래식 공연장 관람 매너, 에티켓

Posted at 2015.10.15 11:30 | Posted in 이건음악회 Talk Talk/클래식 톡톡




  클래식 콘서트홀에서의 에티켓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의견을 내고 있습니다. 정작 어떻게 해야하는지 의견이 분분한데요. 아래의 글은 런던 사우스뱅크 센터의 음악 담당 총괄인 길리안 무어씨가 기고한 글을 이건음악회에서 번역한 글입니다. 클래식 공연장에 자주 방문하시는 분들이나, 가끔 또는 방문 계획이 있으신 분들은 참고하시면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클래식 콘서트 에티켓: 새로운 규정

 

  콘서트 현장에서의 라이브 음악 청취는 많은 이들에게 삶의 큰 즐거움이자 기쁨이지만, 소수의 사람들에게는 클래식 음악을 관람할 때 지켜야 하는 에티켓과 예의, 의례가 숨막히는 스트레스의 원인이 되기도 합니다. 길리안 무어(Gillian Moore)는 런던 사우스뱅크 센터의(London Southbank Centre) 음악 담당 총괄입니다. 그녀가 책임을 맡고 있는 로얄 페스티벌 홀(Royal Festival Hall)의 불미스러운 사건으로 분개했던 그녀는 모두가 즐겁고 만족스러운 경험을 누릴 수 있도록 콘서트 홀에서의 에티켓을 새롭게 제시했습니다.


 

비교적 최근, 어느 저녁에 있었던 일이었다.


  필자는 로얄 페스티벌 홀 안에 언제나 앉는 좌석에 앉아 멋진 콘서트를 감상하던 중이었다.

세계에서 손 꼽히는 지휘자를 앞세운 오케스트라의 공연이 한창이었고, 관객 반응이 가장 좋았던 콘체르토가 연주 중이었다. 솔리스트 또한 특급 연주가로 참신함과 세련됨이 물씬 풍기는 연주를 선사했다. 사회 생활에 지장이 될 만큼 근무시간이 길고 불규칙한 필자의 직책이지만 그런 불만을 한 순간에 해소해주는 흔치 않은 매우 유쾌한 공연이었다.

 

  그날 저녁은 마침 런던 음악계에 이름을 대면 모두 알만한 절친과 나란히 앉아 공연을 관람하고 있었는데, 그녀 또한 필자와 마찬가지로 업무 차 참석한 자리였다. 그러나 업무의 책임과 부담도 잠시, 악장이 시작되자 우리는 콘서트 홀의 관중과 한 모습으로 마법과 같은 연주에 빠져들었다. 콘서트 중 기교가 두드러지거나 감성적 고찰이 깊이 묻어나는 구간에서 서로 만족스러움을 가득 머금은 미소와 눈빛만 잠시 교환했다.

 



말괄량이 여학생들 타박 받듯 굴욕적인 경험

 

  콘체르토의 화려한 종결부가 마무리되고 관중의 박수 갈채가 쏟아지려던 찰나, 뒤에 있던 여성분이 절친의 어깨를 쿡쿡 찌르며 불현듯이 따지고 들었다. “음악에 맞추어 위 아래로 머리를 흔들며 감상하시더라.. 콘서트까지 와서 교양 없이 머리를 위 아래로 흔들 거면 집에나 있지, 왜 나왔나?”

사회적으로나 전문인으로서 입지가 부족할 것이 없는 콘서트의 노장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둘은 말괄량이 여학생들인 마냥 타박을 받고 나니 자존심도 상하고, 화도 났다. 친구는 애써 앞만 바라보며 뻘쭘하게 눈만 깜박이었고 필자는 순간적인 판단을 내려야만 했다.

 

지난 몇 달간, 이와 유사한 크고 작은 해프닝을 여러 번 경험했다.


  음대 입시를 앞둔 똘망똘망한 A-level 학생들에게 연주곡에 대해 설명하던 중 겪었던 일도 있는데, 오케스트라가 무대에 오르기 시작했을 뿐, 객석의 웅성거림이 가라앉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나에게 그만하고 조용히 있으라는 성난 당부를 했던 적도 있다. 또 한번은 로얄 페스티벌 홀에서 멘델스존의 오라토리오 <엘리야>의 비공식 오픈 리허설 중 핸드폰을 꺼내 오라토리오 내용을 확인하던 중이었는데, 여러 자리 너머 있던 신사분이 팔을 뻗어 필자의 어깨를 두드리고 금방이라도 내려찍을 것만 같은 도끼눈으로 필자를 바라보던 적도 있다. 그런 일련의 경험을 통해 사소한 행동을 나무라는 행위가 클래식 음악을 관람하는 어떤 이의 마음에 멍을 남길 수도 있겠다는 고민을 하게 되었다.


 공연장의 가장 기본적인 에티켓은 휴대전화의 전원을 끄는 것! © Barry Diomede Alamy 



나무라는 것도 정도껏

 

  필자가 이 글을 쓰게 된 이유는 필자보다 더 심각했던 사건이 화두가 되어 쓰게 되었다.

얼마 전 사이몬 래틀 경과 함께하는 바비칸과 사우스뱅크 센터의 연합 교육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콘서트에 참여한 어린 여학생의 이야기인데, 콘서트의 끝 마무리에 박수로 답례하기 위해 무대 앞으로 올라선 사이몬 래틀 경의 사진을 촬영했다는 이유로 어느 관객이 큰 소리로 호통치며 어린 여학생을 안타깝게 울렸던 사건이 있었다. 물론 이러한 콘서트 홀에서 사진촬영이 금지된 것은 사실이지만, 12살의 어린 소녀가 무지에 의해 저지른 실수에 비해서는 너무나도 과격한 대응이었다. 이 소식을 전해들은 사이몬 래틀 경은 그 여학생에게 직접 편지를 쓰고 대신 사과까지 해야 했다. 하지만 그 여학생이 앞으로 콘서트를 다시 관람하러 올까 하는 의문이다.

 

  필자가 그런 직책을 받았을 때에는 모욕감을 꾹 참고 넘어가고는 했다. 하지만 절친에게 머리를 위 아래로 흔들며 교양 없다는 사건은 그렇게 하지 못했다. 숨을 깊이 들이쉬고 참으려 했으나 내쉬는 과정에서 그 동안 수년간 참아오며 혼자 되뇌이던 시나리오 속의 대꾸가 봇물처럼 터진 것이다.

부인, 우리가 부인의 감흥을 깨트렸다고 느끼신다면 유감이지만 지적하신 부분에 대해서는 전적으로 근거 없는 주장임을 말씀 드려야겠습니다. 동료와 저는 그저 음악을 즐기고 있었을 뿐입니다. 그리고 저희는 업무 차 이 콘서트에 온 것이고, 앞으로 또 다시 올 계획입니다. 하지만 행여나 콘서트 방문이 처음인 일반 관객이었다면, 부인의 그 한마디에 우리는 평생 콘서트를 멀리하게 되었을 겁입니다. 앞으로는 부인의 언행이 다른 관객에게 미칠 수 있는 영향에 대해 조금 더 숙고하실 것을 정중하게 요청 드리겠습니다”.

 


단순한 문제가 아니라서 여러 가지 생각을 품게 한다.

 

  어깨가 찔렸던 필자의 입장인지라, 반대로 어깨를 찌르는 쪽에 더 공감할 독자의 비율이 과연 어느 정도 될지 궁금할 수 밖에 없다. 추측이지만 아마 생각보다 높은 비율일 것 같다. 필자나 독자나 의견이 분분할 수 밖에 없는 것이, 복합적인 이슈이기 때문이다. 모차르트가 살아서 연주했을 때에도 종종 있었던 일이라 해도 필자는 음악 연주 중에 떠들어대는 관객은 정말 질색이다. 그리고 콘서트 홀에서 핸드폰 벨 소리가 울리면 인성을 시험 받는 것만큼 용서가 버겁다 (필자도 한번, 딱 한번 벨 소리가 아주 스펙터클 하게 울려 퍼지면서 무안을 샀던 적이 있다). 그리고 개인적 취향의 문제일 수도 있지만, 연주의 마지막 잔음이 가시기도 전에 부라보를 외치며 아는 척을 하는 관객은 필자에게 매우 잔인한 충동을 불러일으킨다. 참고로, 필자는 고개를 위 아래로 끄덕이며 음악을 듣는 행위에 대해서는 아무런 시비도 없다.

 

  프랑스의 철학자인 사르트르는 타인은 지옥이라는 말을 남겼다. 콘서트에 가는 것 역시 마찬가지로 타인과의 관계에서 깔끔하지 못하고 때로는 떠들썩해짐을 체험해야만 할 때가 있다. 하지만 바로 그게 콘서트의 묘미 아닌가? 집단적인 체험을 위해 익숙한 거실 소파와 소음차단 헤드폰을 뒤로하고 밖으로 나와 소음과 불편함을 감수하는 바로 그 이유. 필자는 라이브 콘서트를 들을 때, 관중을 이루는 수많은 사람들이 클라이맥스의 큰 소리든, 고요의 순간이든, 하나의 소리에 귀 기울이고 있다는 것을 체험할 때마다 전율을 느낀다.

 

  연구에 따르면, 클래식 콘서트를 꺼려하는 손꼽히는 이유로 지켜야 할 룰이 많을 것만 같아서라고 한다.

룰을 완화시키기 위한 다양한 시도가 있었는데, 그 중에는 OAE Night Shift와 같은 수상 프로젝트도 있고, 일부 오케스트라와 공연 공간에서는 친절한 가이드 프린트 물을 비치해 두기도 한다. 내용을 살펴보면 무엇을 기대하고 참석해야 할 지, 적절한 복장은 무엇인지, 박수를 해야 할 타이밍과 하지 말아야 할(박수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견이 분분하다) 타이밍 등의 유용한 정보가 안내되어있다.


 (하이든을 죽인 휴대전화 벨소리)




다음은 필자가 클래식 콘서트를 관람할 때 지켜야 할 규칙을 나름대로 정리한 것이다.

 

1.    편안한 좌석에 앉아 한두 시간 동안 방해 없이 아름다운 음악 소리에 집중해서 귀를 기울이는 즐거움을 누리는 경험을 사랑하세요.

2.    연주곡이 익숙하지 않다면, 콘서트를 오기 전에 인터넷을 통해 적절한 사전정보를 파악해 오거나, 콘서트 홀에 일찍 도착해 여유롭게 음료를 한잔 즐기며 콘서트 공연 프로그램을 구입해서 읽어보는 것. 더 많이 알려고 노력하는 만큼 더 많이 배우고 얻어갈 수 있습니다.

3.    공연 중에는 가능한 침묵하세요. 공연에 따라 고요의 순간이 잦을 수도 있답니다.

4.    핸드폰 전원이 꺼져 있는지 필히 확인하고, 재확인 하고 또 다시 체크하세요.

5.    음악 연주가 그치면 박수는 선택사항입니다. 악장 사이에는 박수를 치지 않는다는 규례도 있지만, 법은 아니랍니다.

6.    복장은 마음에 드는 것을 입으세요.

7.   주변 자리의 누군가가 위의 규칙을 어기더라도, 첫 콘서트를 관람하는 경험일 수도 있으니 친절하게 대해 주세요.

 

 

 


 무어씨의 글 처럼 클래식 공연장에서의 관람 경험은 이어폰으로 듣는 것과는 다른 감동을 선사합니다. 다만 그러한 감동에 방해가 되는 사람 또는 행동에 대해 어떻게 대처하는 가는 우리들의 선택일 것입니다. 다만, 규칙의 7번 처럼.. 누군가에게는 이번이 첫번째 공연일 수 있으므로, 친절하게 대해주는 것은 꼭 필요한 마음인 것 같습니다. ^^


 마지막으로, 본 글에 대한 의견들도 상당히 첨예한데요. 무어씨가 제시한 규칙 중, 5번과 6번이 많은 논쟁거리를 남기고 있습니다. 이건음악회 팬여러분들도 어떻게 생각하시는 의견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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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회 베를린 필하모닉 카메라타 실황 CD 제작 완료 및 배송안내26회 베를린 필하모닉 카메라타 실황 CD 제작 완료 및 배송안내

Posted at 2015.09.17 11:30 | Posted in 이건음악회 Talk Talk/음악회 톡톡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

26회 베를린 필하모닉 카메라타(Berlin Philharmonic Camerat)실황 CD 제작이 완료되었습니다.

 

개인마다 취향이 다르시겠지만, 저는 최근 음악회 CD 중 가장 듣기 즐거운 음반인 것 같습니다. 주변 분들에게 엄청 추천드리고 있습니다.

 

녹음 때 부터 신경써서, 마스터링과 CD 제작 까지 최선을 다해 제작하였습니다. 음악회 후기를 정성스럽게 남겨주신 분들께 9월16일에 배송을 드렸습니다. ^^  받아 보시고, 감상 후기 또는 CD에 대한 리뷰도 개인 블로그나, 이건음악회 블로그에 남겨 주세요.  남겨 주신 후기에는 또 좋은 소식으로 찾아뵐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공연 시간이 총 86분 이상이므로, CD 1장에 담을 수 없어 CD가 총 2장이 되었습니다. 감상하는 동안 지난 26회 이건음악회 연주자들의 모습이 떠올라 그 때의 감동이 다시 올라오는 기분이었습니다. 차에서도 듣고, 운동할 때도 듣고, 업무 쉬는시간에도 듣게 되네요. 이러한 감동을 여러분들과 또 나눌 수 있게되어 감사합니다.  

 

 

(CD 디자인)

 

 

 

(CD케이스 뒷면)

 

 

 (CD 아웃박스 앞면)

 

 

(CD 아웃박스 뒷면)

 

 

 

 

 

음악을 통한 감동을 나누고자 시작한 이건음악회. 그리고 그 26번째 음악회가 CD제작을 끝으로 마무리 되었습니다. 올 한해 큰 성원 보내주신 이건음악회 팬 여러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내년에는 더욱 열심히 준비하여 더 큰 감동으로 찾아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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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teamY
    감사합니다...그리고 수고하셨습니다.
  2. 비밀댓글입니다
  3. 행복달
    씨디 어제 받아서 오늘 들어보았습니다. 그날의 감동이 다시 되살아나서 너무 좋더라구요.
    후기 쓰고 다시 덧글 남기겠습니다~
  4. 율감독
    CD 너무 좋아요. 연주회때 느낌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것 같습니다. 그 때 객석에 앉아서 듣던 .. 음악회 현장 분위기가 새록새록 생각납니다. 곧 블로그에도 후기 남길게요^^ CD 감사합니다~
  5. 김지나
    고맙습니다.연주회를 추억할 수 있는 음반을 가질 수 있다는 건 멋진 행운이네요.영원히 잊지 못할 순간을 담아 주셨습니다.다시 한번 감사 말씀 올립니다.^^행복한 후기가 될 것으로 기대됩니다.~~
  6. 비밀댓글입니다
  7. 노환
    이번에는 광주공연이 없어서 직접가서 못들었지만
    시디 보내주셔서 현장 분위기를 음반으로나마 듣게 해주셔서 감사드려요 ^^
  8. 기다리고 기다리던 CD를 받았습니다~
    완전 감사~엄청 감사~감사 무한대입니다^^
  9. 비밀댓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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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사 최고의 기적,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의 비밀] 천곡이 넘는 음악을 작곡한 시냇물(Bach). 음악사의 가장 놀라운 기적 요한 세바스티안 바흐[음악사 최고의 기적,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의 비밀] 천곡이 넘는 음악을 작곡한 시냇물(Bach). 음악사의 가장 놀라운 기적 요한 세바스티안 바흐

Posted at 2015.04.28 13:50 | Posted in 이건음악회 Talk Talk/홍승찬교수의 클래식 톡톡

 

 

 

작곡가 바그너는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를 일컬어 음악사를 통 털어 가장 놀라운 기적이라 했습니다. 그만큼 그가 남긴 업적과 후대에 미친 영향이 크기에 아무도 그와 견줄 수 없다는 말이기도 하고 그것이 너무나 크고 높아 도저히 한 사람이 이루어낸 것이라고 믿기 힘들다는 뜻도 가지고 있습니다. 당장 그가 남긴 작품의 수와 양만 놓고 보더라도 이 말을 실감할 수 있습니다. 독일어로 ‘바흐(Bach)'는 ‘시냇물’이라는 뜻이 되기도 하는데, 이를 두고 베토벤은 “시냇물(Bach)이 아니라 바다(Meer)다.”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바흐협회(Bach Gesellschaft)가 그가 남긴 작품을 모아 60권으로 출판하기까지 46년이 걸렸고 그렇게 정리된 작품의 수만 헤아려도 천곡이 넘지만 버려지고 잊혀져서 찾을 수 없는 작품들이 얼마인지는 도저히 가늠할 수조차 없으니 실제로 그가 작곡한 작품의 수와 양을 추정한다면 실로 이것이야말로 기적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오늘날 현존하는 모든 종교음악들 가운데 최고로 일컬어지고 있는 마테수난곡은 작곡가 멘델스존에게 발견되어 세상에 알려졌고 그로 말미암아 바흐의 존재도 함께 사람들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지금껏 첼로를 위해 만들어진 모든 곡들 가운데 으뜸으로 꼽히는 첼로모음곡도 첼레스트 카잘스가 찾아내기 전에는 이 세상에 없는 것이나 다름이 없었습니다. 이처럼 또 우리가 모르는 채 어딘가에 묻혀 있을 바흐의 위대한 업적이 얼마나 더 많을 지를 생각하면 너무나도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새롭고 혁신적인 바흐의 마태 수난곡 -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연주

 

그의 기적이 더욱 놀라운 것은 작곡은 바흐에게 부여된 일상적인 업무 가운데 일부였을 뿐이라는 것입니다. 그는 오르간과 다른 악기를 연주하고 성가대와 악단을 지휘해야 했으며 그와 관련된 연습은 물론 행정도 맡아야 했습니다. 또한 그는 학생들도 가르쳐야 했는데 음악만이 아니라 라틴어까지도 그의 몫이었습니다. 이런 사정이니 작곡은 일터에서 집으로 돌아온 다음에야 가능했을 테고 날마다 촛불 아래서 밤을 지새워야 했을 것입니다. 그래서인지 50이 넘어 바흐는 백내장을 앓았고 수술의 후유증으로 실명을 했는가 하면 그로 말미암아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흥미로운 것은 같은 시대를 살며 함께 그 시대를 대표했던 헨델도 비슷한 시기에 백내장을 앓았다는 것이고 더욱 놀라운 것은 모두 존 테일러라는 영국 의사에게서 시술을 받고 그 후유증으로 실명을 했다는 것입니다.

 

 

요한 세바스티안 바흐

 

이토록 놀라운 바흐의 기적이 가능했던 까닭은 무엇일까요? 두 말할 필요도 없이 재능과 능력이 누구보다 뛰어났기 때문이라는 것이 먼저이고 아무와도 비교할 수 없는 근면과 성실 또한 빼놓을 수 없는 이유일 것입니다. 그렇다면 기적을 만든 재능과 능력은 어디서 온 것일까요? 그리고 초인적인 인내로 버틴 근면하고 성실한 삶은 무엇으로부터 비롯된 것일까요? 이번 시간에는 첫 번째 의문에 대한 답을 찾기로 하고 두 번째 질문에 대한 해답은 다음 시간에 밝혀보기로 하겠습니다.

 

기적과도 같은 바흐의 업적을 가능하게 한 재능의 뿌리는 그의 혈통에서 가장 먼저 찾을 수 있습니다. 그의 가문은 200여 년에 걸쳐 50명 이상의 음악가를 배출하였습니다. 이런 경우는 가업을 중시하던 당시의 상황을 감안하더라도 무척이나 드문 경우이기에 오늘날에도 학자들의 연구 대상으로 관심을 끌고 있습니다. 이 가계의 6대를 통틀어 음악가가가 아닌 사람을 찾는 것이 쉽지 않을 정도이니 놀랍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제과업자이면서 치터(Zither:현악기의 일종)를 연주했던 파이트 바흐 이후, 중부 독일의 튀링겐 지방에서 바흐 가문은 뿌리를 내렸습니다.

 

 

Zither - 출처 : Wikipedia

 

가족들은 모두 루터 정통파의 경건한 신자였습니다. 파이트 바흐의 장남이자 요한 세바스찬 바흐의 증조부인 요하네스는 바이마르 거리 악사로서 그 이름은 이웃 고장에까지 전해 졌습니다. 그의 장남인 요한은 바흐 가문 최초의 작곡가로서 알려져 있고, 3곡의 작품이 현존하고 있습니다. 요한의 동생 크리스토프가 바흐의 조부로서, 악사로 활약했으며, 동생인 하인리히의 칸타타 한 곡이 지금도 남아있습니다. 하인리히의 장남 요한 크리스토프는 교회의 오르간 연주자로서, 작곡가로서도 많은 작품을 남겼습니다. 그의 동생 미하엘도 음악가였으며, 그의 막내딸 마리아 바르바라는 훗날 요한 세바스찬 바흐의 첫 아내가 됩니다. 요한 세바스찬 바흐의 조부 크리스토프는 세 아들이 있었습니다. 장남 게오르크 크리스토프는 바흐 집안에서 처음으로 칸토르(교회 합창단장)라는 높은 지위에 올랐습니다. 그 동생 요한 크리스토프와 요한 암브로지우스는 일란성 쌍생아로서 모두 악사가 되었습니다. 이 암브로지우스의 막내아들이 요한 세바스찬 바흐입니다.

 

 

요한 제바스티안에게는 20명의 자녀가 있었는데, 첫 번째 부인 마리아 바르바라에게서 일곱을 낳았고 상처하고 재혼한 두 번째 부인 안나 막달레나에게서 13명을 얻었습니다. 그 가운데 절반을 어려서 잃었고 나머지 대부분이 음악가로 성장하였지만 그 중에서도 장남인 빌헬름 프리데만(1710~1784), 차남 카를 필립 에마누엘(1714~1788), 막내 요한 크리스티안(1735~1782)의 3명은 음악사에 찬란한 업적을 남겼습니다. 특히 에마누엘과 크리스티안은 전자가 '함부르크의 바흐', '베를린의 바흐', 후자가 '밀라노의 바흐', '런던의 바흐'로 일컬어질 정도로 전 유럽에서 활약하고 아버지 바흐가 집대성한 바로크음악의 업적을 하이든과 모차르트가 계승하여 고전주의 시대를 열 수 있도록 커다란 역할을 하였습니다.

 

 

함께 연주하는 바흐 가족의 모습 - 출처 : http://classroom.re.kr/ 

 

신약성서 마태복음을 열면 가장 먼저 아브라함에서 시작하여 예수까지 이어지는 길고 긴 족보를 하나도 빠짐없이 지루하게 늘어놓고 있습니다. 이처럼 하느님의 뜻조차 누대에 걸쳐 끊이지 않고 이어지며 전해지고 난 다음에야 마침내 이 땅에 이루어질 수 있었는데 하물며 사람의 일이야 달리 무슨 말을 하겠습니까? 우리가 앞선 세대로부터 물려받은 것들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 가운데 무엇을 잘 닦고 가다듬어 후손에게 물려줘야 할 것인지 생각하고 또 생각해야 할 때입니다. 그런 고민과 노력이 오랜 세월 거듭된 다음에야 우리도 바흐와 같은 기적을 낳을 수 있을 것입니다. 태양계 밖의 미지의 세계에 인류의 존재를 알리기 위해 우주 탐사선 보이저 2호에 실린 바흐의 음악들 가운데 한 곡이지요. 브란덴부르크 협주곡 2번의 1악장 들으면서 이 시간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Brandenburg Concerto NO 2 in F Major, BWV 1047

 

2012. 5. 24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The Great 3B series-Bach 2012"
브란덴부르크 협주곡 제2번 F장조 BWV 1047

리더ㅣ김 민
연주ㅣ서울바로크합주단
지휘&챔발로ㅣ조리 비니커
바이올린ㅣ윤경희, 김성혜
플루트ㅣ필립 베르놀드
오보에ㅣ이현옥, 김소연, 송영현
바순ㅣ김희성
트럼펫ㅣ알레스 크랜카, 성재창, 박기범
팀파니ㅣ박보형
챔발로ㅣ조리 비니커, 오주희

 

 

저작자 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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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김에송
    와.. 역시 바흐는 정말 대단하네요~

    바흐가 시냇물이 라는 뜻도 된다는건 처음 알았네요 ㅋㅋㅋ
  2. 심은선
    바흐의 시대의 음악 사조를 알아보다 이곳 까지 오게 되었어요. 재밌고 유익한 글 잘 보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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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4회 이건음악회 안내 - 시몬 디너스틴 초청 연주회(시모나 디너스테인)제24회 이건음악회 안내 - 시몬 디너스틴 초청 연주회(시모나 디너스테인)

Posted at 2013.09.05 10:47 | Posted in 이건음악회 Talk Talk/음악회 톡톡

 

 

 

안녕하십니까? 이건음악회 담당자 누군가에겐 행복입니다.

오랜만에 음악회 소식으로 인사드립니다.

 

벌써 여름이고, 여름이 지나면 가을이 오고... 가을이 오면 이건음악회..가 생각 나시지요?  ^^ 

사실 이건음악회는 항상 10월 말 경 진행하는데 작년에는 부득이하게 6월 말~ 7월 초에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올 해 2013년 제 24회 이건음악회는 예전과 다름 없이 10월 말에 진행 됩니다.

 

이번에는 어떤 연주자가 어떤 음악으로  이건음악회 팬들에게 감동을 선사할지..블로그나 유선으로나 많은 분들이 질문하셨는데요.. ^^ 많이 궁금하셨지요?

 

오늘 공개해 드립니다. ^^

 

 

제 24회 이건음악회에 연주자는 시몬 디너스틴(연주자 요청으로 시몬 디너스틴을 공식명칭으로 사용합니다. 영문 - Simone Dinnerstein)입니다.

 

시몬 디너스틴은1972년생 여성 음악가로 미국 줄리어드 음대를 졸업하고 미국을 기반으로 전세계적으로 활동하는  세계적인 피아니스트입니다.

 

 

 

 

 

 

 

간단한 약력

 

- 줄리아드 음악원에서 피터 제르킨, 맨해튼  음대에서 솔로몬  미코프스키에게서 사사.

- 2005년 미국 카네기홀 데뷔

- 2007년 빌보드 클래식컬 차트 1

- 20112amazone.com 클래식 부분 판매 1

- 학교,양로원,교도소 등 소외계층을 위해서 무료 공연  다수

 

 

주요 앨범으로는

 

 

 

Bach – Goldberg Variations 2007

 

 

 

The Berlin Concert  2008

 

 

 

Beethoven Complete Works for Piano & Cello 2009

 

 

 

A Strange Beauty 2011.01.

 

 

Something Almost Being Said 2012.01.

 

 

 

Night 2013.03.

 

 

 

 

다른 것은 몰라도, 싸이 덕분에 전국민이 알게된 빌보드 차트(클래식컬)에서 1등을 했다는 것 만으로도 얼마나 대단한 음악가인지 알 수 있겠지요? 대중적이지 않은 클래식음악, 그리고 바흐의 음악을 가지고 앨범판매 1등을 한 실력파 피아니스트, 시몬 디너스틴!

 

올 해 음악회가 벌써 부터 기대가 됩니다.  

 

 

[티켓 응모 페이지 링크]

 

(이번 음악회 일정과 이벤트 관련 내용은 추후 공개해드리겠습니다. 다만, 이건음악회 블로그를 자주 오시고, 댓글 자주 남기시는 분들에게는 ^^ 꼭 티켓을 드릴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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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유명현
    작년에 탈락해서 아쉬웠는데 올해는 꼭 참여할수 있었으면 좋겠어요^^그나저나 연주자님 참 고우시네요..감탄 중@.@
  3. 윤경화
    기대가 큽니다~~작년에 놓쳐서 아쉬웠는데, 올해는 꼭! 기회를 주세욤 ^_^
    • 2013.09.08 20:26 신고 [Edit/Del]
      안녕하세요? 윤경화선생님.
      아쉽게 지난 음악회를 놓치셨군요 ㅠㅠ 죄송합니다.
      이번 음악회는 꼭 함께 하실 수 있기를 기원하겠습니다.
      그리고 10월 초 티켓응모 기간을 갖을 예정이오니, 꼭 참여 부탁드립니다.
      올 해는 꼭 당첨되시길 기원드립니다.
  4. leonis
    이번에는 꼭 가고싶습니다~
  5. 올해도 광주에서 연주일정이 있나요?? 가슴이
    두근거리네요~~
    • 2013.09.08 20:25 신고 [Edit/Del]
      안녕하세요? Bluesky님
      다행스럽게도 올 해 24회 음악회도 광주 공연일정이 잡혔습니다. 10월 25일 금요일 밤에 광주시민분들을 찾아 뵙습니다. ^^ 10월 초에 티켓 신청 이벤트가 있을 예정이오니, 꼭 참여 해주세요 ^^ 감사합니다.
  6. 비밀댓글입니다
  7. 감사합니다.이건 음악회담당자님^^
    매년 다녀오며 느끼는 음악회의 높은 품격 만큼이나 ,담당자님의 세심한 배려 너~~무 감사합니다.
    올해에도 멋진 공연 꼭 함께 하겠습니다. 가을은 이건 음악회로부터 익어갑니다~~~수고하세요.
  8. 최정화
    작년 샤론캄 연주를 추억으로 간직하고 있어요. 올해도 기대됩니다~^^
  9. 달콤장이
    기대됩니다.꼭 갈수 있기를...
  10. 이동휘
    올해 열릴 이건음악회도 기대가 됩니다. 빨리 보고싶군요..
  11. 한은지
    우와~ 기대되네요. 연주가 어떨지 궁금한 피아니스트였는데 꼭 당첨되고 싶어요:)
  12. 몇달전부터 음반으로 듣고있습니다...정말 기대됩니다!
  13. 손 명철
    감사드리며...
  14. 최지헌
    저두 넘넘 기대됩니다. 응모할께요. 꼭 초대부탁드려요,
  15. 최지헌
    저두 넘넘 기대됩니다. 응모할께요. 꼭 초대부탁드려요,
  16. 김은자
    응모신청했습니다.꼭 당첨 부탁드립니다.
    올해도 감동을~~~
  17. 비밀댓글입니다
  18. 비밀댓글입니다
  19. 서옥석
    꼭 꼭 보고싶어요 초대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
  20. 비밀댓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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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반] 리차드 용재오닐 'solo'[음반] 리차드 용재오닐 'solo'

Posted at 2013.06.19 06:00 | Posted in 직장인 톡톡/심심타파!

리처드 용재 오닐은 유니버설/도이치 그라모폰 아티스트로서 지금까지 일곱방의 솔로 음반을 발매하여

누적으로 약 14만장의 판매기록을 세우고 있다고 합니다. '겨울여행' '미스테리오소' '노래' 는

플래티넘 상을 받았고, 2집 '눈물' 은 2006년 클래식과 인터내셔널 팝 두 분야에서 가장 많이

팔린 음반이기도 합니다. 음반뿐만 아니라 실내악 연주자로서도 많은 초정도 받고 있으며,

국내에 많이 알려진 실내악 앙상블 '디토' 의 음악 감독이며, 일일히 나열하기도 어렵게

많은 활동을 펼치고 있습니다. 음반안에 부크릿을 읽으면서 와~ 젊은 연주자가 정말 대단하다는

느낌이 와 닿습니다. 개인적으로도 지금까지 용재오닐의 음반을 몇장을 가지고 있는데요.

음반 모두 이지리스링 레퍼토리로 애청할 만한 음반이였습니다. 이 앨범은 좀 다릅니다.

한마디로 쉽지 않은 레퍼토리인데요.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 2번의 비올라 연주 버전을

비롯해 힌데미트 독주 비올라를 위한 소나타 Op. 25-1, 레거 무반주 비올라 모음곡 1번,

브리튼 독주 비올라를 위한 엘레지, 비외탕 독주 비올라를 위한 카프리치오, 카터 독주 비올라를

위한 '피그먼트 4'가 실렸습니다. 말 그대로 솔로를 위한 연주곡인데요. 이전의 리처드 용재 오닐의

음반과는 성격이 확연히 달라졌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어느 정도 대중의 인지도를 확인이 되었는지

자기가 연주하고 싶고, 보여주고 싶은 곡들(인기와 상관없이)이 담겨져 있는 것 같습니다.

저도 당연하게 이지 리스링의 연주들이 좋아하는데요. 이 음반은 약간 거리가 있습니다.

하긴 내놓는 음반마다 쉬운 곡들로만 채워져 있는 것도 위기를 가져 올 수도 있기도 하며, 내일을 위해

연주자로서의 고민을 담는 것도 필요하리라 느껴집니다. 물론 이것으로만 청중을 잡을 수도 없을 거라

생각이 되어 지는데요. 제 느낌에는 이 음반이 리처드 용재 오닐이라는 연주자로서의 고민을 담은

첫 음반으로 보여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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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차드 용재오닐 'solo'리차드 용재오닐 'solo'

Posted at 2013.04.09 17:07 | Posted in 직장인 톡톡/심심타파!

리처드 용재 오닐은 유니버설/도이치 그라모폰 아티스트로서 지금까지 일곱방의 솔로 음반을 발매하여

누적으로 약 14만장의 판매기록을 세우고 있다고 합니다. '겨울여행' '미스테리오소' '노래' 는

플래티넘 상을 받았고, 2집 '눈물' 은 2006년 클래식과 인터내셔널 팝 두 분야에서 가장 많이

팔린 음반이기도 합니다. 음반뿐만 아니라 실내악 연주자로서도 많은 초정도 받고 있으며,

국내에 많이 알려진 실내악 앙상블 '디토' 의 음악 감독이며, 일일히 나열하기도 어렵게

많은 활동을 펼치고 있습니다. 음반안에 부크릿을 읽으면서 와~ 젊은 연주자가 정말 대단하다는

느낌이 와 닿습니다. 개인적으로도 지금까지 용재오닐의 음반을 몇장을 가지고 있는데요.

음반 모두 이지리스링 레퍼토리로 애청할 만한 음반이였습니다. 이 앨범은 좀 다릅니다.

한마디로 쉽지 않은 레퍼토리인데요.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 2번의 비올라 연주 버전을

비롯해 힌데미트 독주 비올라를 위한 소나타 Op. 25-1, 레거 무반주 비올라 모음곡 1번,

브리튼 독주 비올라를 위한 엘레지, 비외탕 독주 비올라를 위한 카프리치오, 카터 독주 비올라를

위한 '피그먼트 4'가 실렸습니다. 말 그대로 솔로를 위한 연주곡인데요. 이전의 리처드 용재 오닐의

음반과는 성격이 확연히 달라졌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어느 정도 대중의 인지도를 확인이 되었는지

자기가 연주하고 싶고, 보여주고 싶은 곡들(인기와 상관없이)이 담겨져 있는 것 같습니다.

저도 당연하게 이지 리스링의 연주들이 좋아하는데요. 이 음반은 약간 거리가 있습니다.

하긴 내놓는 음반마다 쉬운 곡들로만 채워져 있는 것도 위기를 가져 올 수도 있기도 하며, 내일을 위해

연주자로서의 고민을 담는 것도 필요하리라 느껴집니다. 물론 이것으로만 청중을 잡을 수도 없을 거라

생각이 되어 지는데요. 제 느낌에는 이 음반이 리처드 용재 오닐이라는 연주자로서의 고민을 담은 

첫 음반으로 보여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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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라우디오 아바도, 카를로스 클라이버,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 이들의 공통점은? 춤을 추듯이 무대를 지휘하는 지휘자들...가장 예술적인 경지로 지휘를 끌어 올리다.클라우디오 아바도, 카를로스 클라이버,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 이들의 공통점은? 춤을 추듯이 무대를 지휘하는 지휘자들...가장 예술적인 경지로 지휘를 끌어 올리다.

Posted at 2013.01.07 08:36 | Posted in 이건음악회 Talk Talk/홍승찬교수의 클래식 톡톡

 

 

 

 

홍승찬 교수의 클래식 음악(41)
[홍승찬 교수의 재미있는 클래식음악 이야기]

 

 

 

많은 지휘자들의 지휘모습을 본 것은 아니지만, 제가 지금껏 본 바로 가장 에술적인 지휘동작을 보여준 이는 클라우디오 아바도였습니다.

 

 

 

 

 

음악의 흐름과 변화에 어쩌면 그렇게 적절히 부합하는 지휘동작을 만들어 내는지 경탄 그 자체였습니다. 마치 그의 섬세한 지휘동작 자체만으로 음악이 만들어지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였습니다. 의 지휘모습으로서 제가 본 것은, 베르디갈라로 꾸며진Silvesterkonzert 2000과 베르디의 레퀴엠실황공연 그리고 아르농쿠르지휘의 올해 빈신년음악회실황공연중계에 앞서 보여준, 왕년의 빈신년음악회 지휘자들의 특색있는 지휘모습들의 발췌부분이 다입니다만, 이것만으로도 그의 지휘동작의 특징을 파악하는데는 큰 무리가 없을 듯 합니다. 그 중 빈신년음악회의 발췌필름에서 보여지는 그의 모습이 가장 인상적이었는데(물론 인상적이었으까 발췌했겠지만요^^),

왈츠가 감미롭게 울려퍼지는 가운데, 만면에 웃음을 가득 띤 채, 마치 춤을 추는 듯 앞으로 나아가며, 왼팔을 액센트를 주어가며 들어올리는 지휘동작은 거의 환상(^^)이었습니다.

 

 

 

 

참고로 그 발췌필름에 나온 지휘자들 중 아바도말고 인상적인 지휘를 보여준 이는 카를로스 클라이버였습니다. 거의 쇼를 하듯(^^) 지휘를 하더군요. 늘씬한 몸매(?)멋진 검은 양복을 차려입고서, 지휘봉을 잡은 오른팔로써 위 아래로 커다란 원을 그리며 분위기를 잡은 후, 절정(?)의 순간에 지휘자뒤의 보호대(?)를 왼손으로 잡고, 오른팔에 쥐어진 지휘봉으로 허공을 향해 두 번 찌르더군요. 이 또한 음악의 흐름에 절묘하게 어울리는 지휘동작이었습니다. 저는 이 실황을 비디오로 녹화를 해두었는데, 이 두 지휘자의 지휘동작은 아마 수십번 본 듯 합니다(^^).

 

 

 

이러한 아바도나 클라이버의 예술적 지휘동작에 상반되는 모습을 보여주는 이는 엘리아후 인발입니다. BS-2에서 바그너의 마이스터징어 전주곡과 말러 교향곡 제5번을 그의 지휘로 방영한다는 예고를 보고, 예약녹화를 해 놓았는데, 녹화된 화면을 보면서 경악(^^)을 금치 못했습니다. 마이스터징어전주곡은 바그너의 수많은 오페라[악극]의 전주곡 중에서도 대단히 화려하고, 굴곡이 있으며, 장쾌한 폭발의 순간도 간직하고 있는 곡이서서 왠만한 지휘자들도 드라마틱하고 멋들어지게 지휘봉을 휘두를 수 있는 곡인데, 인발의 지휘법은 아주 간단했습니. 양팔을 좌우수평보다 약간 높게 들어올린 채, 규칙적으로 아래 위로 흔들기만 하더군요. 음악적 흐름과 변화에 전혀 상관없이. 조금 보다가 꺼버렸지요. 인발의 프랑크푸르트심포니는 아마 철저한 리허설이 필요하리라 봅니다. 지휘자의 지휘동작을 무시하고 앙상블을 만들어 내려면요(^^).

 

 

이스라엘 태생의 지휘자. 엘리아 후 인발

 

 

인상적인 지휘법의 소유자로서 빼놓을 수 없는 지휘자가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이지요. 얼마전 EBS에서 방영된 그의 베토벤심포니 5번과 7번의 연주를 보았는데, 파워넘치는 지휘동작이 매우 인상적이었습니. 그의 지휘동작의 특징은, 마치 자신의 밖에 있는 모든 것을 안으 긁어모으려는 듯한 지휘동작과 특이하게 지휘봉을 쥐는 모습이었습니다. 전자에 대해서는 오케스트라단원들의 개별역량을 총결집시켜 자신의 지휘동작을 통해 외부로 강하게 분출시키겠다는 의지의 발라고 해석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지휘봉의 끝을 손바닥에 밀착시켜 그 결과 지휘봉이 짧게 보이는 식의 그만의(확신은 할 수 없겠네) 지휘봉잡는 법은 전자의 동작을 효율적으로 하기위한 고육책(?)라고 봅니다. 제가 실제로 흉내내어 본 바로는 보통의 지휘봉잡는 법, 즉 엄지손가락과 검지손가락으로 지휘봉의 끝부분[둥근부분]을 잡는 방식보다는 카라얀식이 보다 원활하게 안으로 긁어 모으는 듯한 동작을 용이하게 할 수 있었습니다.

 

 

시대의 흐름을 읽은 선두자.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

 

 

음악의 상이함에 따라 180도 다른 지휘동작을 보여주는 이가 카를로마리아 줄리니입니다. 그가 연주회의 첫곡으로 모짜르트교향곡 제40번을 연주하는 것을 보고 느낀 것은, 참으로 재미없는, 단순한 지휘동작을 하는 지휘자이구나였습니다. 좌우의 팔을 수평에서 30도쯤 아래로 늘어뜨린 채 가볍게 음악에 맞추어 흔들어 주는 정도였습니. 그런데, 그 다음에 연주한 곡에서는 전혀 다른 양상을 보여줍니. 파야의 어느 곡이었다고 기억하는데, 카라얀 못지 않는 울트라파(^^), 얼굴에 힘줄이 돋을 정도로 역동적 지휘동작을 보여주는데, 절정의 부분에서는 아예 주먹을 불끈 쥐고 휘두르더군요. 이는 마지막곡인 베르디의 운명의 힘 서곡에서도 비슷한 패턴을 보여주었습니. 작품의 성격에 따라 지휘법도 달라야 한다는 것이 그의 지론인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줄리니를 보면서 자꾸 누구랑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누구인지 갈피를 못잡다가, 결국 미국의 민주당대통령후보였던 앨버트 고어가 그와 매우 흡사한 용모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마침내 발견하고야 말았습니다(^^).

 

 

장엄한 느림의 열정으로 대변되는 음악적으로나 인격적으로 가장 존경하는 지휘자

 

 

더운 여름에 가볍게 할 얘기가 뭐 없나 하던차에, 지휘자들의 지휘동작에 관하여 한 번 거론하여 보는 것도 재미있겠다 싶어서 써 보았습니다.

저는 별로 본 것이 없지만 번스타인과 뵘이 기억납니다. 번스타인은 여러분이 잘 알다시피 지휘대에서 뛰어 오르고 한다는데 그가 지휘한 베토벤 교향곡 5번과 6, 그리고 브람스 교향곡 제 2(모두 비엔나 필하모닉 연주)를 보았습니다. 모두 클라이막스에서 발을 굴리거나 팔을 크게 휘젓고 뛰어 오르더군요.5번 교향곡은 4악장 서두-그러니까 트럼본등의 금관악기들이 장 3도 화음을 울릴때-, 6번 교향곡은 4악장 폭풍우-팀파니의 연타가 시작될때-, 브람스 2번 교향곡은 투티가 포르테로 울릴때 그러더군요, 2번 교향곡은 코다부분이 더 가관이더군요. 땀을 뻘뻘 흘리면서 발을 굴리며 팔을 크게 휘젓는 모습이 아주 인상 깊었습니다.

근데 뵘은 별다른건 없어 보이던데 가끔 지휘봉을 희한하게 잡더군요. 제가 뵘의 추종자라 EBS에서 한 뵘 탄생 백주년 기념 다큐멘터리를 보았는데 그렇게 나오더군요.

 

 

 

전설의 명지휘자 카를로스 클라이버의 일대기를 다룬 'Carlos Kleiber - I am lost to the world'라는 제목의 DVD를 도서관에서 빌려다 봤습니다. 별로 길지도 않고, 그의 연주 장면이 많이 나오지도 않더군요. 그 주변 인물들이 클라이버를 추억하는데, 몇몇 회고담은 클라이버에게 그리 호의적이지조차 않았습니다. 그래서 흥미롭기도 했고, 조금은 실망스럽기도 했습니다.

하기사, 클라이버의 일대기를 다룬 영상물이 얼마나 풍부할 수 있으랴. 카라얀 정도라면 모를까, 평소에 실제 지휘보다 지휘를 취소한 횟수가 더 많은 사람, 리허설 때는 그 어떤 외부인의 관람도 금지한 사람, '이제 다시는 지휘 같은 거 안해'를 달고 다닌 사람에게, 그를 담은 비디오가 많을 리 만무할 것 입니다.

 

 

"Carlos Kleiber - I am lost to the world"

 

 

DVD는 정말이지 조악하기 짝이 없는 영상으로 시작합니다. 클라이버가 리허설 하는 장면으로 시작하는데요... 카메라가 그의 바로 앞 어딘가에 숨어 있는지, 그의 상반신이 꽉 차서 나오는데, 그는 카메라의 존재를 전혀 모르는 듯, 한껏 도취된 표정으로 음악을 만듭니다.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 정말로 그의 표정과 손짓과 몸짓으로 음악을 짜내는 것 같습니다. 거미가 거미줄 치듯, 그 몽환적인 표정과, 술취한 듯한 몸짓과, 연체동물의 유연성을 연상시키는 손짓으로, 음악을 지어내는 것 같습니다. 화질은 기함할 정도로 나쁘지만, 그 영상과 소리는 보는 이를 빨아들이기에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바이로이트 축제때, 트리스탄과 이졸데를 리허설 하는 장면이라고 합니다. 부엌에서 소리만 듣던 아내는 이게 무슨 음악이냐고 물었습니다. 트리스탄과 이졸데, 라고 했더니, , 이렇게 아름다운 곡이었어? 라고 저에게 묻더군요.도 똑같은 생각이었습니다.

각설하고, 드물게 카메라에 잡힌 클라이버의 리허설 장면은 대단히 변칙적이었습니다. 어떤 소리를 내달라는 주문과, 그에 대한 비유가, 연주자들이 과연 저 말을 이해할 수 있을까 싶게 생뚱맞은 경우가 많았습니다. 가령 똑같은 여성인데 앉은 자세를 바꾼다든지, 더 매력적으로 보이게 연주해 달라든지 할 때... 그런데, 그를 추억한 한 연주자의 말대로, "그런데, 그게 먹혔어요. 소리가 다르게 나는 거예요"였습니다.

 

 

 

그와 관련한 괴짜스러운 일화, 혹시 지어낸 얘기가 아닐까 싶게 황당한 에피소드는 더없이 많습니다. 그 중 가장 흔한 것중 하나는 카라얀이 - 혹은 다른 사람이었을 수도 있다 - 라고 했다는 말입니다. 비유하자면 클라이버는 쌀독에 쌀이 떨어져야만 지휘봉을 잡는다는 얘기... 그러나 이 DVD에 나온 한 사람은 그것을 다르게 말합니다. "클라이버는 결코 돈을 보고, 먹고 살기 위해 지휘한게 아닙니다. 그것을 전심전력해야 할 어떤 것, 자기의 모든 것을 걸어야 할 신성한 숙제로 봤습니다. 그랬기 때문에 모든 지휘가 그토록 힘들고 두려웠던 거지요."

부친 에리히 클라이버의 그늘로부터 벗어나려 한 그의 평생의 고투는, 심리학의 한 연구 과제로 써도 좋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깊고, 치열하고, 길어 보였습니다. 그가 연주로 넘어서고자 한 대상이 다름 아닌 아버지였다는 얘기도 나올 정도였으니까요. 그가 그 목표를 달성했다고 스스로 느꼈을지는 알 도리가 없습니다. 하지만 저 아버지가 조금만 더 아들을 이해하고, 지휘자가 되고자 한 그의 꿈을 허용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안타까움이 큽니다. 그랬더라면 우리도 훨씬 더 풍요로운 음악적 선물을 가질 수 있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이 듭니다.

 

 

 

집에 꽂힌 클라이버의 자취를 살펴 봅니다.

- 베토벤 5, 7(빈필)

- 베토벤 4(바이에른 방송교향악단)

- 베토벤 4, 7(로열콘서트헤보, DVD)

- 모차르트 36'린츠', 브람스 2(빈필, DVD)

- 브람스 4(빈필)

- 베토벤 코리올란 서곡/ 브람스 4(바이에른 방송교향악단, DVD)

- 빈필 신년음악회 89, 92(DVD)

- 드보르작 피아노협주곡 (리히터, 바이에른 방송교향악단)...

 

정말 몇 장 되지 않네요.. 레퍼토리의 폭은 더 좁습니다. 그래서 더 아쉽고, 그래서 더 강렬하게 느껴집니다.

클라이버가 타계했을 때, 영국의 논쟁적 음악평론가 노먼 르브레쉬트는 '지휘보다 지휘를 안해서 더 유명해진 지휘자'라는, 별로 친절하지 않은 - 아니 무례하고 싸가지 없는 - 부고 기사를 쓴 바가 있습니다 (클라이버 - 위대한 지휘자 아냐). 지휘자나 음악가에 대한 호오가 극단으로 갈리는 사람이어서 별로 신뢰하고 싶지는 않은 평론가였지만, 이 글을 보고서는 더욱 기분이 불쾌했었던 생각이 납니다.

그런데 올해 3월에, 크게 위안이 되는 기사를 하나 발견했습니다. 당대의 지휘자들이 뽑은 최고의 지휘자로 카를로스 클라이버가 꼽힌 것입니다. 클라이버가 결코 지휘를 안하거나 자주 취소해서 유명해진 지휘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이보다 더 정면으로 반박해준 증거도 달리 없을 것입니다. 르브레쉬트 씨에게 한 마디 돌려주고 싶습니다. 르브레쉬트 - "당신은 좋은 평론가 아냐."

 

 

 


독일의 베를린에서 태어났다. 부친은 당시 베를린 국립 오페라 극장의 음악 감독이었던 명지휘자 에리히 클라이버였다. 1935년 에리히가 푸르트벵글러의 '힌데미트 사건' 때에 푸르트벵글러를 지원하고 나치스에 항의하는 바람에 베를린을 떠나 카를로스(아들)와 함께 아르헨티나로 옮겼다. 부친은 아들이 음악가가 되는 일에 반대하였기 때문에 어려서부터 특별한 음악 교육은 시키지 않았으나, 1952년에 라프라타에서 데뷔하였다.

같은 해 부친과 함께 유럽에 되돌아갔고 부친의 권유로 스위스 연방공업대학에서 화학을 공부했지만, 1953년에 부친의 반대를 물리치고 뮌헨의 오페레타 극장인 겔트너 프라츠 극장의 무급 견습 지휘자가 되었다. 그리고 1954년 베를린 근교의 포츠담의 오페레타 극장의 지휘자로 영입되고, 여기서 본격적으로 지휘자로서 데뷔하였다. 1956년부터 1964년까지는 뒤셀도르프와 뒤스부르크를 본거지로 하는 라인 도이치 오페라의 지휘자로서 수많은 오페라의 경험을 쌓아 올려 차츰 지휘자로서 인정을 받게 되었다.

1964년부터 취리히 오페라 극장, 1966년부터 슈투트가르트의 뷔르템베르크 국립 오페라 극장의 지휘자로서 활약하였다. 이 슈투트가르트 시절에 카를로스 클라이버는 독일에서 뿐만 아니라 국제적으로 그 뛰어난 재능이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여기서는 특히 부친이 세계에서 초연한 바 있는 베르크의 [보체크]를 비롯하여 R. 슈트라우스, 바그너, 베르디, 비제, 베버의 오페라로 성공을 거두고, 1968년부터 뮌헨의 바이에른 국립 오페라 극장의 지휘 스태프의 한 사람으로 영입되었다.

뮌헨을 본거지로 하고 나서 그는 슈투트가르트 시절부터 평판이 높았던 베버의 [마탄의 사수](그의 데뷔 레코딩으로 선정되었다)R.슈트라우스의 [엘렉트라] [장미의 기사], 바그너의 [트리스탄과 이졸데], 비제의 [카르멘], 베르크의 [보체크] 등 뛰어난 연주에 의해 세계적으로 명성을 높였다. 1973년 드레스덴에서 녹음 한 최초의 레코드인 [마탄의 사수] 전곡(구라모폰)의 명연, 같은 해의 빈 국립 오페라 극장과 1974년 바이로이트 음악제 데뷔를 장식한 [트리스탄과 이졸데], 또한 같은 해에 런던의 코벤트가든 왕립 오페라 극장의 데뷔 공연인 R.슈트라우스의 [장미의 기사] 등의 대성공에 의해 현대의 가장 뛰어난 지휘자의 한 사람으로서 널리 인정되었다.

그 후에도 1976년의 밀라노 스칼라 오페라 극장의 오프닝을 장식한 베르디의 [오텔로], 스칼라 오페라 극장 개설 200주년 기념 공연의 [트리스탄과 이졸데](1978), 빈 국립 오페라 극장의 오프닝 연주를 한 [카르멘]과 시카고 교향악단을 지휘하여 미국 데뷔를 장식한 베토벤의 [교향곡 제5], 뮌헨과 스칼라 오페라 극장에서 베르디의 [라 트라비아타], 푸치니의 [라 보엠] , 카를로스 클라이버는 가는 곳마다 그리고 취급하는 작품의 모두가 청중을 매료하여 대성공을 거두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카를로스 클라이버는 아직 특정한 오페라 극장이나 오케스트라의 음악 감독 또는 상임 지휘에 취임한 일이 없다. 그의 역량과 명성을 생각하면 이상한 생각마저 드는데, 장래는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현시점에서의 그는 여러 가지 잡다한 일들이 수반되거나 활동이 다망한 지위로부터 일부러 피하고 있는 것처럼 생각된다. 또 연주회나 레코딩 등도 때로는 취소하는 일이 있다고 전해지는데, 그것도 일부에서 말하는 것처럼 그의 단순한 변덕이 아니며, 그의 연주에서 확실히 알 수 있는 바와 같이 철저한 완전주의자이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되는 것은 지나친 억측이 아닐 것이다.

하여간 그가 이제까지 녹음한 레코드의 양은 그의 명성에 비하면 아직도 적은 편이어서, 오페라에서는 [마탄의 사수], J.슈트라우스의 [박쥐], 베르디의 [라 트라비아타] 전곡(이상 그라모폰)이 있다. 리히테르와 협연한 드보르자크의 [피아노 협주곡](에인절), 빈 필하모니를 지휘한 베토벤의 [교향곡 제5] [교향곡 제7],슈베르트의 [교향곡 제3, 8], 브람스의 [교향곡 제4](이상 그라모폰)이 모두인데, 어느 것이나 극히 신선한 매력에 가득 찬 멋진 명연이다. 이러한 것들은 클라이버의 끝없는 저력으로서의 재능과 역량이 얼마나 무한한 것인가를 단적으로 말해 주는 것이라 하겠다.

오페라와 교향곡에서도 클라이버는 작품의 본질 및 그 근원적인 매력을 극히 강한 설득력으로 표현하고 있다. 이것은 매우 드문 재능이 아닐 수 없다. 특히 빈 필하모니와의 일련의 녹음에 있어서의 그의 유연하면서도 강인한 표현은 이제까지 아무도 해내지 못한 것이며, 이러한 것은 역시 [박쥐][라 트라비아타]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모두 클라이버의 추측할 수 없는 재능이 단적으로 나타난 명연이었다. 더욱 그는 최근 오스트리아의 국적을 취득했다고 한다.

명지휘자 에리히 클라이버를 아버지로 하여 베를린에서 태어났다. 에리히는 1935년 나찌스의 압력에 항의하여 할레 관현악단의 음악감독을 사임하고 전쟁 중에는 중남미로 본거지를 옮겼으나, 일가(一家)가 아르헨티나의 국적을 취득하게 되어 소년 칼도 카를로스라고 이름을 바꾸었다. 1950, 20세가 된 카를로스는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음악 공부를 시작했는데, 아버지의 맹렬한 반대로 일시 중단하고 쮜리히의 스위스 연방공업대학에 입학했다. 그러나 52년에는 뮌헨의 게르트너프라츠 극장에서 견습지휘자가 되었고, 54년에 포츠담의 오페레타 극장에서 지휘자로서 데뷔했다. 56년에는 뒤셀도르프의 독일 라인 가극장의 지휘자, 64년에는 쮜리히 가극장의 지휘자로 진출했다. 66년에는 시투트가르트의 베르텐베르크 국립극장과 계약을 맺어 여기서 많은 주목할만한 상연을 지휘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베버마탄의 사수, 바그너트리스탄과 이졸데, R.슈트라우스엘렉트라장미의 기사, 비제카르멘, 베르크보 쩩등이다. 현재 그는 어떤 가극장의 상임지휘자로도 취임하지 않는 방침으로 나가고 있는데, 이 수년간 베를린, 바이로이트, , 코벤트가든, 스칼라 등의 주요 가극장이나 콘서트 무대에서 활약을 계속하고 있다. 바이로이트 음악제에는 74년부터 76년까지 등장하여 트리스탄과 이졸데를 지휘했다. 또한 스칼라 극장에서는 7612월의 개막 상연의 오텔로, 78년 봄의 동 극장 200년 기념공연트리스탄과 이졸데를 지휘, 12빈 국립가극장의 오프닝에서도 카르멘을 지휘했다. 또한 이 해 1012일에는 시카고 교향악단에서 베토벤교향곡 제5을 지휘함으로써 미국 데뷔를 장식했다. 클라이버의 레코드는 그 경력과 명성에 비해 극히 적지만 그 모두가 개성적인 명연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명석한 연주와 훌륭한 리듬 다채로움과 자상함, 그리고 스코어의 심오한 해석 등은 언제나 신선한 감각을 작품에 부여하고 있다.

 

 


 

 

글 : 홍승찬 교수
편집 : 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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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김에송
    클라이버에 대해서는 워낙 유명한 지휘자라 알고는 잇었지만

    아버지와의 관계, 그리고 지휘를 한 날보다 취소한 날이 더 많다는 것은 몰랐네요 ㅋㅋ

    클래식은 알면알수록 재밌는것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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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휘의 거장. 마에스트로 카를로스 클라이버 (Carlos Kleiber | Karl Ludwig Kleiber) 그의 음악적 재능을 들여다 보다.지휘의 거장. 마에스트로 카를로스 클라이버 (Carlos Kleiber | Karl Ludwig Kleiber) 그의 음악적 재능을 들여다 보다.

Posted at 2012.12.17 09:49 | Posted in 이건음악회 Talk Talk/홍승찬교수의 클래식 톡톡

 

 

 

 

홍승찬 교수의 클래식 음악(40)
[홍승찬 교수의 재미있는 클래식음악 이야기]

 

 

 

출처 : 구글 이미지

 

카를로스 클라이버(이하 카를로스)193073일 베를린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당시 베를린 국립오페라의 음악감독 에리히 클라이버, 어머니는 유대계 미국인이었던 루스 구드리치였다. 클라이버 본인은 유대인이 아니었기 때문에 나치 치하에서도 활동할 수 있었다. 그러나 에리히 클라이버가 알반 베르크[보체크]를 초연한 이후 베르크의 [루루]가 나치에게 퇴폐음악으로 분류돼 금지되자, 에리히 클라이버는 베를린 국립 오페라 음악감독직을 사임하며 저항의 의사를 표시했다. 나치와 에리히 클라이버는 불편한 관계를 이어가고 있었다. 카를로스가 태어났을 때 이름은 카를 루드비히 클라이버였지만, 나치와 대립하고 있었던 에리히 클라이버가 1940년 아르헨티나에 망명했고, 스페인어권이었던 그곳에서 자연스럽게 카를로스로 개명했다.

 

 

출처 : 구글 이미지

 

 

피는 못 속인다 했던가. 카를로스의 음악적 재능은 어릴 적부터 뛰어났다. 9세 때 작곡을 하고 노래를 잘 했으며, 피아노와 팀파니를 연주했다. 아버지인 에리히는 카를로스의 재능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자신과 같은 길을 걸으면 고생할까봐 아들이 음악인의 길을 걷는 것을 차단하려 했다. 1950년부터 부에노스아이레스에 정식으로 음악을 배우기 시작한 결국 아버지 에리히 클라이버의 권유로 1952년부터 일단 스위스 취리히 연방 공대에 입학해서 화학을 전공했다. 1952년 라 플라타에서 지휘자로 데뷔 무대를 가졌고, 1953년에는 뮌헨 개르트너플라츠 극장에서 월급 없는 연습생 지휘자가 되어 지휘 경험을 쌓았다.

 

 

 

 

24세였던 1954년에는 포츠담에서 카를 밀뢰커의 오페레타 [가스파로네]를 지휘하면서 지휘자로서 데뷔했다. 이때 프로그램북에 실린 카를로스의 이름은 카를 켈러(Karl Keller)였다. 이날 무대에 서기까지는 아버지의 도움이 컸지만, 아버지의 후광을 얻어 지휘한다는 소리를 듣기 싫어서였을 것이다. 에리히는 여기에 대해서 잘 이해하고 있었던 것 같다. 당시 카를로스에게 보낸 에리히의 전보에는 행운을 빈다. 늙은 켈러로부터라고 씌어 있었다. 에리히는 아들에게 충고를 해주는 한편, 오페라극장 관계자에게 소개를 했고, 공공연하게 아들의 음악활동을 따끔하게 비판하기도 했다.

 

 

 

젊은 카를로스 클라이버

 

 

젊은 카를로스는 지휘자로서의 커리어 초창기부터 연주회 무대에 서는 것을 특별히 좋아하지 않았다. 연주회는 그를 소심하게 만들었다. 그는 매번 자신의 지휘에 도무지 만족하지 못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의 마음속에서 들을 수 있는 절대적인 완벽의 사운드, 그에 걸맞은 해석을 이루지 못하면 지휘대 위에 서는 의미가 없다고 그는 생각했을 것이다. 카를로스를 잘 아는 사람들은 이를 아버지 에리히 탓으로 돌린다. 위대한 지휘자를 아버지로 둔 것은 카를로스에게 매우 큰 부담이 됐다. 성격이 무정했던 에리히는 그 표현방식에 문제가 있었다. 좀 더 따스한 부성애를 발휘했다면 카를로스의 인생은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지휘의 모든 것을 아는 사람임에도 아들의 지휘에 대해 아버지다운 뒷바라지가 부족했고, 카를로스의 불안정한 성격은 그에 말미암은 바가 적지 않다. 카를로스의 인생에는 아버지의 그림자가 복잡하게 드리워져 있었다.

 

 

 

Carlos Kleiber -Beethoven symphony No.7, Op.92 : mov.4

 

 

 

이후 뒤셀도르프, 취리히, 슈투트가르트 등 오페라를 지휘하던 카를로스는 1968년부터는 바이에른 국립오페라를 자주 지휘하면서 명성을 확립했다. 1973년에는 빈 국립오페라에서 바그너 [트리스탄과 이졸데]를 지휘하며 데뷔했고, 19746월에는 런던 코벤트 가든 로열 오페라에서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장미의 기사], 7월에는 바이로이트 페스티벌에서 [트리스탄과 이졸데]로 각각 데뷔했다. 1978년에는 시카고 심포니 오케스트라를 지휘해 미국 무대에 데뷔했다. 이 당시 시카고 심포니를 지휘한 실황은 비정규반이지만 골든 멜로드람 레이블에서 발매된 4장으로 구성된 세트(GM 4.0043)에 수록돼 있다. 슈베르트 [교향곡 3], 버터워스의 [영국 목가] 1], 그리고 뜨거운 연주인 베토벤 [교향곡 5]이 담겨 있다. 이후에도 세계 유수의 오케스트라와 오페라 지휘대에 섰던 카를로스는 한 번도 음악감독직에 묶이지 않고 철저하게 프리랜서 지휘자를 고수했다.

 

 

 

 

 

1974년 베토벤 [교향곡 5] 녹음 이후 카를로스는 빈 필과 좋은 관계를 계속 유지했다. 그러나 198212, 카를로스는 베토벤 [교향곡 4] 리허설 도중 견해 차이로 단원과 대립, 정기연주회를 취소해버리고 만다. 그 뒤 6년간 공백 후 19883, 카를로스와 빈 필은 화해하고 다시 연주를 시작했다. 모차르트 [교향곡 36린츠’]와 브람스 [교향곡 2] 등 당시 연주곡은 연습량이 많았음에도 실수가 눈에 띄었지만, 명연주에 넣을 수 있는 수준이었다. 카를로스는 1989년과 1992년 신년음악회 때 빈 필과 만남을 가졌다

 

 

 

2011 Jecheon Intl Music & Film Festival : 마에스트로 - 카를로스 클라이버

 

 

 

카를로스는 단원들에게 음악 해석을 비유적인 표현을 사용해 자세히 설명하곤 했다. 아버지인 에리히 클라이버와 비슷한 점이었다. 리허설 전에는 반드시 작곡가의 자필 확보를 확인하고 다른 연주자의 녹음을 구해 연주 해석을 확인하고, 아버지 에리히가 사용한 총보를 연구하는 등 그 준비과정이 세심하고 철저했다. 이렇게 치밀한 리허설에 비해 실제로 연주할 때는 발레를 연상시키는 독특하고 우아한 지휘모습으로 청중들, 오케스트라 단원, 협연자들을 매료시켰다. 그 지휘에서는 아찔한 속도감, 살아있는 리듬감, 색채의 강렬함, 서정적인 아름다움 등이 느껴졌다. 분명 천재 지휘자의 모습이었다.

 

 

 

 

 

그 질주하는 젊음으로 인해 카를로스는 항상 새로운 시대를 선도하는 음악가로 인식됐다. 그러나 그는 제1바이올린과 제2바이올린을 좌우로 마주보게 배치하거나 악보에 수정을 하고 현악기의 보잉을 각 보면대마다 다르게 연주하는 등 제2차세계대전 이전의 방식을 응용했다. 이는 아버지 에리히의 강한 영향 아래 옛 지휘자들의 유파를 이어받았다고 봐도 될 것이다. 지휘자 파트보를 소유하고 그 내용을 적어 사용한 것도 브루노 발터 19세기 대지휘자들의 습성이었다.

 

 

 

 

클라이버는 단원들의 보잉을 모두 계산해서 적어 두었다. 다시 말해 청중들에게는 활을 올려 긋고 내리 긋는 것이 단원들의 자유처럼 보이기는 하지만 기실은 클라이버가 각각의 스트링 파트 보면대마다 서로 다른 보잉을 명시해 둔 것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안정되고 정확한 디테일을 끄집어내는 효과를 거둘 수 있었다. 시카고 심포니에 객원지휘하던 시절 시카고 심포니의 수석 첼리스트 였던 프랭크 밀러는 이에 강력히 반발해서 악보 사서들은 첼로 파트 악보를 그로부터 지켜야 했다고 한다. 걸핏하면 클라이버의 보잉 지시를 삭제하고 과거의 전통적인 방식을 적어놓곤 했기 때문이다. 클라이버는 이 사실을 알고 즉시 시카고를 떠났다고 한다. 그러나 시카고 심포니를 지휘한 모든 객원지휘자들 가운데 시카고 심포니의 악단원들이 가장 두려워하고 존경을 보냈다고 일컬어지는 사람은 카를로스 클라이버였다.

 

 

 

 

1970년 말부터 카를로스는 레퍼토리를 적게 유지하고 리허설 시간을 보통의 배 이상 잡아 연습했으며, 자신의 뜻에 거슬리면 연주를 취소하곤 했다. 이런 악취미가 오히려 카를로스의 희소성을 높이고 인기를 부추기는 역할을 했다. 카를로스의 공연은 늘 대체 지휘자를 마련해놓아야 하는 위험에도 불구하고 티켓은 항상 매진이었다. 몇 안 되는 녹음은 나오는 족족 명연으로 간주됐다. [장미의 기사]같은 곡은 음반 한 장만으로 만족 못해 해적반을 구하는 등 푸르트뱅글러와 비슷한 컬트 현상이 이어지고 있다. 카라얀 사후 베를린 필 단원들 중 다수가 후임 음악감독으로 카를로스를 원했지만, 그는 전혀 염두에도 두지 않았던 일이라 거절했다. 인터뷰를 싫어했던 카를로스는 좀처럼 매체에 자신의 의향을 얘기한 적이 없었다. 그러나 친했던 번스타인에게는 나는 정원에 있는 야채와 같이 햇빛을 받고, 성장하고, 마시고, 자고 싶을 뿐이다라고 불평했다고 한다.

 

 

 

 

 

카를로스의 신경과민은 유명했다. 지나치게 예민했던 그는 협연자를 잘 주도하지 못했다. 나아가 그는 오케스트라 단원들이 자신을 이해하지 못하고 따르지 않을까 봐 늘 두려워했던 것 같다. 특히 무대에 오르기 바로 전 그의 긴장상태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였다. 1970년대, 바이에른 국립오페라를 지휘해 [장미의 기사]를 연주할 때였다. 연주 직전 바이에른 국립오페라의 음악 감독이었던 볼프강 자발리쉬가 카를로스의 대기실을 찾았다. 두 사람은 정중한 인사를 하고 뜨거운 악수를 나누었다. 자발리쉬는 카를로스를 무대 앞까지 배웅해주었다. 그런데 막이 오를 즈음 카를로스는 거의 노이로제 상태가 됐다. 자발리쉬가 괜찮다고 격려하며 등을 떠밀어 억지로 무대 위로 내보냈다고 한다. 1970년대 말 클라이버는 어느 연주회에 앞서 구토까지 했다고 전해진다.

 

 

 

 

1980년대 후반부터 카를로스의 지휘는 뜸해졌다. 2~3년에 몇 번 정도의 페이스로 지속됐다. 바이에른 국립관현악단과 빈 필, 베를린 필 등 오케스트라도 한정됐다. 카를로스가 어떤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는 것만으로도 큰 뉴스가 됐고, 연주회 티켓을 구한다 하더라도 그가 지휘대에 설 것인가에 대해서 확실하지 않았지만 많은 팬들이 카를로스의 연주회를 기다렸다.

 

 

 

 

 

한 번은 베를린에서 한 번은 잉골슈타트(뮌헨에서 50킬로미터쯤 떨어진 작은 마을. 자동차 회사 아우디의 본사가 그곳에 있다, 이 때 클라이버는 개런티로 아우디 공장 견학과 승용차를 받았다 한다)에서, 한 번은 유고슬라비아에서, 그리고 빈에서 몇 번 지휘를 했다. 연주 횟수를 줄일수록 그가 벌어들이는 액수는 커져 갔다. 사람들은 카를로스 클라이버의 콘서트를 아주 희귀한 보석들과 동일시했다. 카를로스를 진정한 천재라고 평가한 카라얀은 이에 대해 냉장고가 빌 때에만 지휘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커리어 말기인 1998년과 1999년에 카를로스는 카나리아 제도와 사르데냐 섬에 나타났다. 둘 다 작렬하는 태양과 푸른 바다가 있는 전형적인 유럽 남쪽 지방의 섬이다. 1999년 초 바이에른 방송교향악단을 지휘한 사르데냐 섬의 주도 칼리아리에서의 콘서트를 마지막으로 사람들은 클라이버의 모습을 볼 수 없었다. 2004713, 카를로스는 발레리나였던 부인 스탄카 브레조바르가의 고향인 슬로베니아에서 투병 끝에 간암으로 사망했다. 부인을 잃은 지 1년만이어서 카를로스의 자살설이 제기되기도 했다.

 

 

 

 

 

카를로스 클라이버는 매우 특별한 존재다. 강력하게 몰아붙이는 힘과 깊이있는 해석력, 오케스트라를 자기 몸처럼 완벽하게 장악하는 데에서 오는 유연하고 다이내믹한 지휘력 등등 그의 존재는 매력 그 자체로 다가온다. 그 어떤 지휘자들보다도 강한 설득력을 지니고 있다는 것은 그의 가장 큰 무기 중의 하나이다. 비인필하모닉을 지휘할 때에는 유연하면서도 강인한 표현력으로 많은 사람들을 감동시켰다.

 

 

 

 

화려한 경력에 비한다면 그가 지금까지 레코딩한 음반의 수는 정말로 너무 적다. 하지만 일단 그가 손을 댄 레파토리들은 대부분 명반의 대열에 있는데, 이것은 그가 그만큼 완벽주의를 추구하는 지휘자 중의 한사람이라는 것을 말해준다. 가장 유명한 베버의 마탄의 사수를 위시해 베토벤의 교향곡 5번 등은 이 분야 레코딩사에 길이 빛날 걸작으로 평가받는다. 이외에도 슈트라우스의 박쥐’, 베르디의 라 트라비아타’, 스비아토슬라프 리히터와의 드보르자크의 피아노 협주곡’(Angel), 슈베르트의 교향곡 3번과 8, 브람스의 교향곡 4(DG) 등도 빼놓을 수 없는 걸작들이다.

 

 

 

 

 

 

 

 

 

노다메 칸타빌레 주제곡 - 베토벤 교향곡 7번 - 카를로스 클라이버 지휘 -

암스테르담 콘서트헤보 오케스트라

 

 

Beethoven Symphony no.7 Carlos Kleiber Amsterdam Concertgebouw Orchestra 1.avi

 

 

Beethoven Symphony no.7 Carlos Kleiber Amsterdam Concertgebouw Orchestra 2.avi

 

 

Beethoven Symphony no.7 Carlos Kleiber Amsterdam Concertgebouw Orchestra 3.avi

 

 

Beethoven Symphony no.7 Carlos Kleiber Amsterdam Concertgebouw Orchestra 4.avi

 

 

 

대 지휘자 에리히 클라이버의 아들이기도 한 카를로스 클라이버는 독일의 베를린에서 태어났다.

 

아버지인 에리히 클라이버는 워낙 대지휘자였던 관계로 1935년 푸르트벵글러의 힌데미트 사건당시 그가 푸르트벵글러를 지원하고 나서는 바람에 나치로부터 핍박을 받아야 했다. 결국 에리히 클라이버는 히틀러로부터 자유롭기 위해 베를린을 떠나 아들인 카를로스 클라이버와 함께 아르헨티나로 이민을 가야만 했다. 워낙 힘든 역정을 살아왔던 만큼 아버지는 아들 카를로스 클라이버가 지휘자가 되는 것에 탐탁해 하지 않았다. 그 때문에 아들이 음악공부를 하는 것조차 반대하는 입장이었다. 그럼에도 카를로스는 스스로의 노력으로 지휘법을 꾸준히 공부하고 많은 음악을 접해 결국 1952년 라프라타에서 음악인으로 데뷔하기에 이른다. 동년 그는 아버지와 함께 유럽으로 갔다. 끝까지 음악을 하는 것에 반대하던 아버지 때문에 결국 그는 아버지의 뜻을 따라 스위스 연방공업대학에서 화학을 공부하기에 이른다. 하지만 음악에 대한 미련은 계속 남아 결국 1953년 아버지의 반대를 물리치고 뮌헨의 오페레타 극장인 겔트너 프라츠 극장의 무급 견습 지휘자로 지휘 인생을 시작했다.

카를로스의 잠재력을 알아본 베를린 근교 포츠담의 오페레타 극장에선 1954년에 그를 지휘자로 영입하고, 이로 인해 그는 프로 지휘자로서 드디어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게 되었다. 이어서 그는 1956년부터 1964년까지 뒤셀도르프와 뒤스부르크를 중심으로 라인 도이치 오페라의 지휘자로 오페라를 주로 연주하며 많은 사람들을 감동시켰다.

 

이후부터 그는 여러 오케스트라를 거치며 명성을 다져나가기에 이른다. 1964년의 취리히 오페라 극장을 필두로 1966년의 슈투트가르트 뷔르템베르크 국립 오페라 극장 등에 이르기까지 주로 오페라 극장의 지휘자로서의 진가를 과시했다. 이미 이때부터 그의 이름은 뛰어난 재능을 지닌 오페라 전문 지휘자로서 세계적으로 그 명성을 다질 수 있었다. 현대음악의 명작으로 평가받는 알반 베르크의 보체크를 비롯하여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바그너, 베르디, 비제, 베버 등 여러 작품들을 연주해 많은 박수갈채를 받았다. 특히 보체크의 경우 아버지인 에리히 클라이버가 세계 초연한 작품이라 부자가 나란히 이 작품을 멋지게 지휘해 이 분야의 새로운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이러한 높은 평가와 인기 등으로 그는 1968년부터 저 유명한 뮌헨의 바이에른 국립 오페라 극장의 지휘자로 무대에 설 수 있는 영광까지 누리기에 이른다.

 

이후 카를로스 클라이버는 생애 명연 중의 하나로 평가받게 되는 위대한 작업을 하는데 그것이 바로 베버의 마탄의 사수이다.

 

1973년 드레스덴에서 녹음한 이 앨범은 현재까지도 이 작품 사상 최고의 명연으로 평가받고 있다. 더욱이 중요한 것은 이 작품은 카를로스 클라이버의 데뷔작이라는 점이다. 이 작품을 필두로 그의 파워풀하고 장악력있는 지휘봉은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엘렉트라’, ‘장미의 기사’, 바그너의 트리스탄과 이졸데’-1973년 빈 국립 오페라 극장과 1974년 바이로이트 음악제 데뷔를 장식-, 비제의 카르멘’, 베르크의 보체크등 여러 명작들을 날카롭게 해석해 연이어 주목을 받았다.

 

그 후에도 카를로스 클라이버는 1976년 밀라노 스칼라 오페라 극장에서 베르디의 오텔로로 오프닝을 장식해 열렬한 박수갈채를 받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1978년 스칼라 오페라 극장 개설 200주년 기념 공연에서 바그너의 트리스탄과 이졸데를 지휘해 감각적으로 깊이있는 연출을 하는 또다른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이외에도 빈 국립 오페라 극장의 오프닝 연주를 한 비제의 카르멘’, 시카고 교향악단과의 베토벤의 교향곡 제5’-이 작품은 그의 미국 데뷔작이기도 하다-, 뮌헨과 스칼라 오페라 극장에서의 베르디 라 트라비아타와 푸치니의 라 보엠등을 무리없이 지휘해 완벽한 지휘자로서 청중들에게 깊은 인상을 심어 주었다.

 

 

 

글 : 홍승찬 교수
편집 : 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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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토벤 7번의 4악장은 언제 들어도 감동적이죠..특히나 카를로스 클라이버의 베토벤은 명불허전입니다.
    좋은 블로그 재미있게 잘 보고 갑니다 ~
    제 블로그도 꼭 한 번 들러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좋은 하루 되십시오!

    http://gospel79.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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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영원한 겨울 나그네 피셔-디스카우] 독일 가곡의 전설이라 일컬어졌던 바리톤 디트리히 피셔-디스카우[우리들의 영원한 겨울 나그네 피셔-디스카우] 독일 가곡의 전설이라 일컬어졌던 바리톤 디트리히 피셔-디스카우

Posted at 2012.11.19 10:09 | Posted in 이건음악회 Talk Talk/홍승찬교수의 클래식 톡톡

 

 

 

홍승찬 교수의 클래식 음악(38)
[홍승찬 교수의 재미있는 클래식음악 이야기]

 

 

우리들의 영원한 겨울 나그네 피셔-디스카우

 

지난 518일 독일 가곡의 전설이라 일컬어졌던 바리톤 디트리히 피셔-디스카우가 86세를 일기로 영원히 우리 곁을 떠났습니다. 1951년 잘츠부르크 음악제에서 말러의 가곡 방황하는 젊은이의 노래를 불러 세계 음악계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던 그가 눈을 감은 날은 공교롭게도 말러가 세상을 떠난 날과 같아 혹자들은 말러의 영혼이 그를 불렀다는 말을 하기도 합니다. 말러 뿐만 아니라 지금까지 독일 가곡에 관한 한 그보다 더 넓은 레퍼토리를 소화한 성악가는 없었고 그보다 더 깊은 경지를 보여주었던 성악가도 없었습니다.

 

 

 

 

특히 슈베르트의 해석은 그 누구도 따를 수 없어 그 이전에는 물론 이후에도 아무도 넘볼 수 없는 업적을 쌓았습니다. 1964년 뉴욕의 카네기홀에서 그가 부른 슈베르트의 겨울 나그네를 듣고 정신을 잃고 쓰러진 여성들이 하나 둘이 아니었다고 하니 그의 노래가 가진 호소력이 얼마나 큰지 짐작이 가고도 남음이 있을 것입니다. 소프라노로서 독일 가곡의 최고로 평가받고 있는 엘리자베스 슈바르츠코프조차도 디스카우를 두고는 모든 것을 가지고 태어난 신과 같았다.“고 감탄하였습니다. 평생을 자중하며 절제했던 그 스스로도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너무나도 많은 것을 이루었다고 했을 정도이니 전설로 불리는 것도 당연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바리톤 디트리히 피셔-디스카우

출처 : 구글 이미지

 

 

그러나 그가 이렇듯 까마득한 업적을 이룬 것은 천부적인 재능보다 초인적인 노력에 힘입은 바가 훨씬 더 큽니다. 1925년 베를린에서 태어난 디스카우는 열여섯살부터 성악을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어려서부터 어머니로부터 피아노를 배웠고 고전문학자인 아버지가 아들의 재능을 발견하고 성악가의 길을 열어주었습니다. 2차 세계대전으로 말미암아 1943년 참전하게 된 그는 1945년 이탈리아에서 포로로 잡혀 수용소에 갇히는 신세가 되었지만 그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날마다 연습에 매달려 수용소 안에서 연주회를 열기까지 했습니다. 전쟁이 끝나고 1947년 베를린 음대에 들어가더니 얼마지 않아 다시 독일가곡으로 독창회를 가졌고 1948년 베를린 시립 오페라에 들어가 베르디의 돈 카를로의 로드리고 역을 맡아 오페라 무대에 데뷔했습니다. 그리고 그 이후부터 그의 믿을 수 없는 활약이 종횡무진 펼쳐집니다. 바이에른과 빈을 넘어 네델란드와 프랑스, 이탈리아를 거쳐 런던의 코벤트 가든과 뉴욕의 메트로폴리탄까지 무대를 넓혀 기존의 대표적인 오페라들은 물론 동시대 작곡가들의 신작 오페라까지 수많은 작품들을 섭렵하였습니다.

 

 

출처 : 구글 이미지

 

 

보통 성악가들은 오페라와 가곡, 혹은 종교음악 가운데 어느 하나에 주력하기 마련이고 그렇게 되면 나머지는 아무래도 뜸할 수밖에 없지요. 그런데 디스카우는 독일 가곡은 물론이고 오페라와 종교음악에 이르기까지 어느 하나도 다른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이 뛰어난 업적과 경지를 이루었습니다. 이렇듯 오페라 무대를 쉴 새 없이 누비는 동안에도 역사상 최초로 슈베르트 가곡 전곡을 녹음하였고 브람스와 독일레퀴엠과 바흐의 마태수난곡 등 대표적인 종교음악까지도 놓치지 않았습니다. 특히 1962년에는 2차 세계대전 때 나치 공습으로 파괴된 영국 런던의 코벤트리 성당 복원을 기념하여 초연된 벤저민 브리튼의 전쟁 레퀴엠에 독일을 대표하여 초청되는 뜻 깊은 일이 있었고 훗날 그는 "내 삶에서 가장 기념비적인 사건"이었노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신작과 초연에 대한 관심과 열의가 남달랐던 그는 1978년 오페라 무대를 떠나는 은퇴공연까지도 라이만의 신작 리어왕을 선택했습니다.

 

 

오페라 가수로 활동하던 디스카우

출처 : 구글 이미지

 

 

음악과 예술에 대한 디스카우의 끝없는 열정은 노래에만 머물지 않았습니다. 어려서부터 지휘에 관심이 있었던 그는 그토록 바쁜 일정 중에도 지휘공부를 게을리하지 않았고 1973년 마침내 오토 클렘페러를 대신하여 지휘봉을 잡는 기회를 가지게 됩니다. 그리고 성악가로서 은퇴를 선언한 1993년 이후 지휘자로서 무대에 서는 일이 많아졌습니다. 그림에도 재능이 있어 틈틈이 그린 그림들은 아마추어의 수준을 넘어섰고 저술에도 관심을 두어 19세기 독일 가곡에 대한 저서들을 출판하였습니다. 피아노 반주에도 일가견이 있어 반주자로 무대에 서기도 했는데 부인인 소프라노 율리아 바라디가 그의 어깨에 손을 얹고 노래하는 동안 돋보기를 쓰고 피아노를 치는 말년의 모습은 오래도록 사람들의 기억에 남을 것입니다. 이렇듯 너무나도 많은 분야에서 믿을 수 없을 만큼 엄청난 일들을 이루어냈으니 그의 삶에서 허투루 보낸 시간은 단 한 순간도 없었을 것입니다. 아닌게 아니라 그는 어느 인터뷰에서 연주회가 끝나고 동료들과 어울려 술자리를 가진 기억조차 없다고 했을 정도입니다.

 

 

자화상 옆에 선 피셔 디스카우

출처 : 구글 이미지

 

 

독일가곡에 관한 한 누구도 따를 수 없는 경지에 이르렀던 그였지만 무대에 오를 때마다 다른 성악가들이 부른 음반들을 전부 찾아서 듣고 또 들었다는 일화는 너무나도 유명하지요. 악보를 보기 전에 가사부터 한 음절씩 소리 내어 읽고 또 읽으며 그 뜻과 소리를 익혔을 뿐만 아니라 악보 또한 음표 하나 기호 하나 놓치지 않고 새기고 또 새겼습니다. 그렇게 정확하고 빈틈이 없으니 지휘자들마다 앞 다투어 그를 불렀고 작곡가들 또한 누구나 그에게 작품을 맡겨 무대에 올리려고 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평생을 함께 했던 반주자 제랄드 무어는 물론 외르크 데무스와 다니엘 바렌보임, 알프레드 브렌델과 스비아토슬라프 리히테르까지 당대의 최고 피아니스트들이 기꺼이 그의 반주자로 무대에 섰던 것이지요. 리히테르는 "가사에 대한 그의 태도가 까다로워서 결코 연습하기가 쉽지 않았다"고 했고, 바렌보임은 "그와 작업하면서 언어와 음악을 결합시키는 방법과 단어의 의미와 발음에 이르기까지 많은 걸 배웠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음악도 음악이지만 가사의 해석과 전달에 대한 남다른 노력과 업적으로 말미암아 그는 독일어의 품격을 한 단계 끌어올렸다는 극찬을 받기도 했으며 20세기 프랑스의 구조주의 철학자이자 비평가인 롤랑 바르트는 가사의 전달과 표현에 있어 그를 최고라고 일컫기도 했습니다.

 

 

 

슈베르트의 겨울 나그네

 

 

은퇴를 앞두고 무대에 올랐던 피셔-디스카우의 노년의 모습은 너무나도 감동적이었습니다. 언제나처럼 짧게 자른 단정한 머리칼은 어느덧 서리가 내려 백발이 되었지만 눈빛만큼은 전과 다름없이 맑고 깊었습니다. 30년도 넘었을 것 같이 낡고 빛바랜 연주복이 하나도 초라해 보이지 않을 만큼 절도 있고 기품 있는 인격은 움직임 하나 눈빛 하나로도 속속들이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가 부르는 노래는 시를 넘어 영혼의 맑고 깊은 울림이었습니다. 무엇인가를 소유하고자 날마다 허덕이는 우리와는 달리 스스로의 존재를 일깨우려 평생을 바친 수도자의 모습이었습니다. 살아 있는 동안 그가 수십 번도 더 불렀을 겨울 나그네처럼 그렇게 오래도록 우리 가슴 속에 살아 있을 것입니다.

 

 

 

글 : 홍승찬 교수
편집 : 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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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김에송
    방금 이 글을 읽으면서 클렘페러에 대해 검색해 보았는데

    디트리히 피셔-디스카우와 뭔가 많은 연관이있는것같네요...

    많이는 아닌가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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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회 이건음악회 이벤트] 이건음악회 공식 블로그를 방문하시고, 자신의 블로그에 음악회 후기를 올려 경품을 받자!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브라스 앙상블의 공연 후기 올리기.[23회 이건음악회 이벤트] 이건음악회 공식 블로그를 방문하시고, 자신의 블로그에 음악회 후기를 올려 경품을 받자!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브라스 앙상블의 공연 후기 올리기.

Posted at 2012.06.28 22:02 | Posted in 이건음악회 Talk Talk/음악회 톡톡

 

 

매력적인 클래식 음악을 듣기만 하시나요?
이제는 자신의 감정을 표현해 보세요!

| 클래식 음악 CD를 소장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

이건음악회 공식 블로그 Eagonblog(http://www.eagonblog.com)을 방문하셔서 음악회 후기를 남겨주시면 추첨을 통하여 "베23회 이건음악회 CD(베를린 필 하모닉 오케스트라 브라스 앙상블)"를 무료로 보내드립니다.

 

 


"이건음악회"는 전국적(부산, 고양, 서울, 인천, 광주)으로 펼쳐질 예정입니다.
특히 이번 이벤트는 이번 이건음악회의 클래식 공연을 보시고 그 느낌이나 사진등을 함게 올려주시면 됩니다.

응모방법은요~

첫째: 자신의 블로그카페등의 개인 홈페이지에 이건음악회에 대한 사진과 글을 포함한 후기를 남긴 후 해당 주소를 이건음악회 블로그의 이벤트 페이지에 댓글로 남깁니다.

이 때, 연락받으실 메일, 성함은 반드시 남겨주셔야 합니다.

공개적으로 남기시면 정보유출...

 

하지만 글은 비공개가 아닌 공개로 남겨주셔야 합니다.

 

따라서 eagonblog@gmail.com

으로 이름, 글 남긴 닉네임, 주소, 전화번호를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추첨 후 메일로 연락이 가고 메일로 연락이 간 후 답장이 없을 경우에는 다른사람에게 기회가 돌아갑니다. 주소나 전화번호 역시 메일로 연락이 갈 때 저희에게 알려주시면 됩니다.)

 

 

 

 

위와 같이 현재 페이지 하단의 댓글을 남기는 부분을 클릭해서 댓글을 남겨 주세요.
단, 후기가 적혀진 블로그의 해당 페이지 주소를 남겨주셔야 합니다.

그리고 eagonblog@gmail.com
로 반드시 이름, 뎃글 닉네임, 주소, 전화번호를 보내주셔야 합니다.

그래야 CD를 보내드려요.

 예] 재미있게 잘 보고 왔습니다. 후기 남겨요.

      블로그주소 : http://sinida.tistory.com/4691 

 


둘째, 이건음악회 블로그 이벤트 게시판에 직접 관람 후기를 남깁니다.
위처럼 블로그에 남기는 형식이 아니라 이벤트 페이지(지금 보고 계시는 페이지)에 직접 댓글로 관람 후기를 남겨 주시는 것이죠.

자신의 블로그가 없다면 두번째 방법을 추천해 드립니다.

단, 첫째와 마찬가지로 연락받으실 전화번호, 성함은 반드시  eagonblog@gmail.com
로 보내주셔야 합니다.

예] 제목 : 고양 아람누리 공연을 보고 왔습니다.
     내용 : 베를린 필하모닉 브라스 앙상블의 공연을 보았고... ㅇㅇㅇ를 보았으며... 무대의 분위기는 좋았습니다.
              연주의 순서는 ㅇㅇㅇ 했으며... 
              그 중 빠른 재즈의 곡이 가장 마음에 들었습니다.
              ......
              2013년에 있을 24회 공연이 벌써부터 기대가 되네요. 반드시 참석하고 싶어요~

 

 


일단 현재 이벤트는 | 첫번째 방식이 조금 더 선물을 받을 확율이 높겠죠?
사진에 동영상이나 다른 이팩트까지 걸어준다면 임팩트가 상당히 높을 테구요.

그렇다고해서 뎃글에 남겨준 소중한 글을 저희는 무시하지 않습니다.
하나하나 다 읽어봐요~ 후후~

여기서 잠깐!
응모 기간이 반드시 있어야 겠죠?
너무 길면 응모하고 기다리는 시간이 길잖아요~

이벤트 응모기간 : 2012년 6월28일 ~ 2012년 7월 12일 까지 입니다.


반드시 지켜주세요~

 

 

 

 

클래식 음악을 듣고 난 후 자신의 느낌을 여러 사람들과 공유할 수 있는 기회!
이건블로그가 그 기회의 장을 마련해 드립니다.
거기에 +@로 베를린 필하모닉 브라스 앙상블의 실황 CD를 무료로 소장할 수 있는 기회까지~

앞으로 펼쳐질 다양한 이벤트의 예고편이 되는 이번 이벤트에 여러분의 많은 참가 바랍니다.


 

Ps. 작성하신 글은 선정하여 이건 블로그에 게재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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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비밀댓글입니다
  3. 비밀댓글입니다
  4. 성윤정
    좀 늦은 후기네요.
    저는 지난 토요일 예당에서 저녁 7시 30분 공연을 관람했습니다.
    이건음악회의 명성은 오래전부터 이미 들어왔지만, 올해 처음으로 이벤트에 당첨(!!!)이 되어서
    즐거운 마음으로 다녀왔습니다. 베를린 필이라는 이름 하나만으로도 더욱 기대가 컸었구요.

    저도 여러 음악회는 많이 다니지만, 브라스만 들어본건 처음이었는데 이번에 그 매력에 완전히 빠졌습니다.
    관악기가 이렇게까지 부드러울수 있음에 감동받았습니다. 천상의 나팔소리 같나고나 할까요...
    이런 좋은 기회를 만들어준 이건그룹에 감사드려요~
    이벤트와 관계없이 꼭 인사를 드리고 싶었습니다.
    준비부터 진행까지 수고하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리고, 앞으로 이건 그룹이 더욱 번창하길 바랍니다.

    해마다 이건 음악회가 기다려집니다.!!!

  5. 안혜정
    7월 2일(월) 저녁 7시30분 광주문화예술회관에서 관람했습니다.
    광주 인근지역인 나주에 살다보니 문화공연 즐기려면 어려움이 있었지만 이건음악회 덕분에 더운 여름
    큰 선물 받은듯 합니다..감사합니다..
    광주일보 신문 읽다가 음악회 광고 본 후 광주에 있는 친구에게 맛난 저녁식사를 빌미로 얻은 티켓으로
    멋진 공연 관람했습니다..
    베를린 필하모닉은 워낙 유명한 연주단이고..이번 기회에 이건그룹에 대해서 알게 되었지요...
    다시 한 번 이건그룹에 감사 인사 드립니다...꾸벅!!
  6. 부산에서 감상했습니다. 좀 늦은 후기지만요..ㅠㅠ
    브라스 앙상블이라고 해서 쨍쨍거리는 소리를 생각했는데,마치 거대한 파이프오르간처럼 힘있고 부드러우면서도 단단한 소리를 즐기고 왔습니다. 이런 기회를 마련해주신 이건그룹, 정말 감사합니다. 앞으로 이런 기회가 더 많아졌으면 하구요, 내년의 음악회도 정말 기대됩니다.
    후기는 이벤트와 관계없이 쓴 것이지만 (그 좋은 기억을 잊기 싫어서요^^),
    몇년 후 초등학교 교사가 될텐데, 제가 만나게 될 아이에게 그때의 공연이야기를 들려주며, 또 CD를 틀어주며
    이건그룹의 예를 들어 노블레스 오블리주에 대해서 가르칠 수도 있겠죠?ㅎㅎ
    그리고 가보 타코비 씨의 손가락 튕기는 소리를 다시한번 CD로 듣고 싶기도 해서 제 블로그 주소 남깁니다.
    감사합니다, 이 블로그 자주 들릴게요!!얼른 내년이 왔으면 좋겠어요^^

    http://blog.naver.com/dreamer7227
  7. 비밀댓글입니다
  8. 작년에 이어 올해에도 역시 감격스런 연주회였습니다.
    이 고마움을 어찌 다 표현해야 할 지..
    [이건]의 따듯한 고집이, 마르고 거친 세상에
    뭉클한 가슴과 촉촉한 눈망울로 서로를 대할 수 있도록
    다독여주고 화해와 나눔을 가르치는,
    그러나 스스로를 자랑하지 아니하는,
    그러기에 우리에게 더욱 자랑스러운 기업으로 번영하기를 기원합니다.

    http://blog.naver.com/hwan2925
  9. Sohn Young Woo
    먼저 좋은 음악회를 참석할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지인의 소개로 지난 30일 예술의 전당 연주회에 참석하였습니다.
    브라스 앙상블의 잘 정제된 멜로디는 바쁜 일상으로 여유가 없던 우리 가족에게 작은 행복을 안겨주었습니다.
    잔잔하고 경쾌하다가도 아름다운 선율로 두시간 동안을 보내면서 아내와 여러번 눈웃음을 교환했습니다.
    특히, 앙콜에서 '아리랑'의 멋진 재해석은 꼭 다시 듣고 싶습니다.

    다시금 좋은 공연에 감사드리며 앞으로도 이건음악회의 팬이 되도록 하겠습니다.. :-)
  10. 비밀댓글입니다
  11. 김경채
    7월 3일 이건음악회, 아름다운밤 , 최고의 날 감상을 남겼습니다.
    인천에 이런 기업이 있다는게 자랑스럽고, 감사합니다.^^
    페이스북
    http://www.facebook.com/#!/photo.php?fbid=420757164653695&set=a.156674201061994.36229.100001582453863&type=1&theater
    010-8967-4092
  12. gotan
    누군가에겐.. 행복님~

    따뜻한 마음 정말 고맙게 받았습니다..
    지난 주 토욜... 한바탕 난리치고 1주일이 흘렀네요..벌써.. 흠~
    그래도 '누군가에겐.. 행복'님이 배려해주신 마음 덕분으로
    기분도 많이 추스렸어요.. 으쌰으쌰~!!
    그래요.. 내년엔 꼭 뵐 수 있길 다시 일구월심하겠습니당~ ^^*
    행복님.. 늘 행복하세요~ 안뇽~☆
  13. 김진수
    금관악기만으로 구성된 브라스 연주는 정말 훌륭했습니다
    세계최고의 연주를 들으며 관의 매력에 빠져들며
    또다른 음악의 장을 넓혔습니다
    이건 음악회... 여러 사람과 더불어 모두가 행복해지는
    아름답고 유익한 음악회로 오래 기억되라라 생각합니다
  14. 7월 10일 인천 공연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연주였습니다.
    공연을 위해 고생하신 모든 분들께 고마움을 전합니다.
    제 블로그에 공연 후기 올려놓았습니다.

    http://blog.naver.com/ldh6633/120163455988
  15. 김태선
    http://blog.naver.com/bigsun007/110142322270
    제23회 이건음악회 베를린필하모닉브라스앙상블 최고였습니다~!!
    이건그룹 땡큐~~
  16.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브라스 앙상블 공연의 감동~
    일주일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남아있는 여운~
    감사합니다.
    http://www.cyworld.com/why0271
  17. 정광호
    좀 늦은..사소한 욕심이 있는 후기입니다.
    2012년 40대 후반이 되어서야 우연이 접한 클래식 음악의 매력에 빠져 부산시향 공연을 겨우 몇 번 경험한 것이 전부였는데, 아는 사람은 다 아는 이건음악회의 명성은 전혀 모른채 베를린 필을 만날 수 있다는 소식에 공연관람 했습니다. 베를린 필이라는 이름 하나만으로 막연한 기대가 있었던 것도 사실이구요.
    공연 시작전 해설자님의 설명은 이제 막 입문한 초보자인 저에게는 기본적인 음악이해에 큰 도움을 받았구요, 베를린 필 단원들의 관객과의 소통도 여는 공연에서에서는 느낄 수없는 부분이었습니다. 특히 이름은 모르겠지만 호른 연주가가 기억에 많이 남구요..공연이 끝난 후 사인회 등 현장에서 여운을 더 즐기고 싶었지만, 집에 애들만 두고 온 지라 서둘러 귀가할 수 밖에 없어 아쉬운 마음이었습니다.
    향후 베를린 필을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있을 지 모르겠지만, 그 당시 감동의 여운은 아마 오랫동안 함께 할 듯 합니다. 오랜만에 아내와 함께 큰 감동의 시간을 허락해 주신 이건창호와 이건음악회 관계자 여러분께 감사를 드리며 혹시나 내년에도 이건음악회와 함께 할 수 있는 기회가 허락되길 빌어봅니다.
  18. 이건음악회 후기 날짜를 잘못 알고 있었어요.
    글을 쓰는데 시간이 오래 걸리는 편인데
    급히 쓴다고 하고 싶은 이야기를 다 쓰지 못하고 말았지만..
    이벤트에 참여하고 싶어서 블로그에 글을 올렸어요.
    http://blog.naver.com/amazondream/90147308051
    베를린 필 하모닉 공연 시디를 선물 받아서 못다한 이야기를 더 나눌수 있게 되면 좋겠어요 ^^
    다시한번 감동과 행복이 가득한 공연을 선물로 주신 이건창호와 이건음악회 관계자 분들께 감사 인사 드려요~
  19. 안녕하세요 지난 부산에서의 공연을 보고 이제서야 블로그에 정리해서 올렸습니다.
    블로그 주소는 http://marvelousj.tistory.com 입니다.
    아직도 그날의 즐거움이 생생히 기억나는군요^^
  20. 천병국
    지난 3일이죠?
    화요일 마지막 인천공연을 보았습니다.
    홍승찬평론가님의 설명부터 시작된 참으로 유쾌하고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특히 베를린 필하면, 빈 필, 뉴욕 필과 함께 세계 3대 필 오케스트라 가운데 하나라는 설명과 함께 우리나라에도 이런 유명한 필이 있다고 하시면서 그게 바로 조용필이다.라는 농담에 모두들 박장대소 했었지요.
    그렇게 시작된 공연은 이제 첫 곡인 헨델의 명곡연주는 왜 이 팀이 세계적인 팀인가를 확인시켜주는 연주였습니다.
    그들의 숨결과 연주와 이 모든 것이 정말 공연 내내 얼마나 감동적인지 눈물이 나올 지경이었습니다. 그러면서 한 가지 드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저들의 연주를 훌륭하게 만드는 것이 과연 무엇일까?”
    “저들의 테크닉이 훌륭해서?”
    “아니면 저들이 연주하는 음악이 훌륭해서?”
    “아니면 저들이 가지고 있는 악기가 비싼 악기라서?”
    그것은 아닐 것이라는 생각에 빠지면서 계속해서 그것이 무엇일까를 생각했습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저들의 연주를 훌륭하게 한 것일까?”
    그것은 바로 “하모니”였습니다.
    아무리 각 개인의 테크닉과 음악과 악기가 좋아도 서로 하모니를 이루지 못하면 그 음악은 훌륭할 수 없을 것입니다.
    바로 하모니가 저들의 음악을 훌륭하고 아름답게 만들어 주었다는 결론을 내리면서 한가지 깨달은게 있습니다.
    인생도 “하모니”구나.......
    얼마나 사랑하는 사람들과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느냐?
    우리가 살아가면서 누군가와 조화를 이루기 위해서는 많은 노력이 필요할 것입니다.
    겸손과 이해와 칭찬과 배려와 인내 등 많은 노력이 필요할 것입니다.

    연주회 내내 이토록 훌륭한 연주자들이 서로의 눈빛을 교환하면서 훌륭한 연주를 만들어가는 모습을 통해 나는 인생이라는 조금은 무겁지만 흥미로운 생각에 잠길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옆에서 함께 공연을 본 사랑하는 아내의 손을 꼭 잡아 주었습니다.

    아무쪼록 늦은 후기지만 이렇게나마 공연 후기를 남기게 되어 참 좋습니다.
    당첨 여부를 떠나 계속해서 이건음악회를 응원하겠습니다.^^감사합니다~!
  21. 6월 28일 부산에서 있었던 감동을 느낄수 있었던 이건음악회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브라스앙상블팀의 공연후기 남깁니다.
    http://blog.daum.net/kiris4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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