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정. 음악사에 등장하는 가장 열렬한 사랑의 이야기] 슈만과 클라라의 결혼이야기처럼 음악으로 사랑을 고백하고 음악으로 바칠 수 있는 결혼 선물...[헌정. 음악사에 등장하는 가장 열렬한 사랑의 이야기] 슈만과 클라라의 결혼이야기처럼 음악으로 사랑을 고백하고 음악으로 바칠 수 있는 결혼 선물...

Posted at 2013.03.04 10:09 | Posted in 이건음악회 Talk Talk/클래식 톡톡

 

 

 

 

 

 

 

 

홍승찬 교수의 클래식 음악(45)
[홍승찬 교수의 재미있는 클래식음악 이야기]

 

 

 

 

음악사에 등장하는 가장 열렬한 사랑의 이야기라면 슈만과 클라라가 만나서 결혼에 이르게 된 사연을 첫 손가락에 꼽을 수 있을 것입니다. 홀어머니의 간절한 기대를 뿌리치지 못하고 법대에 들어간 슈만은 끝내 음악을 버릴 수가 없어 당대의 피아노 교사인 프리드리히 비크의 문하에 들어가 가르침을 받게 됩니다. 그리고 마침내 어머니의 간곡한 만류에도 불구하고 법률가의 길을 포기하고 뒤늦게 음악가의 길로 나서게 됩니다. 다른 어떤 분야보다 조기교육이 절대적으로 요구되는 음악 분야에서 20대에 이르러서야 본격적인 수업을 시작했으니 스스로를 혹사하는 훈련을 거듭할 수밖에 없었고 결국은 손가락을 다쳐 피아니스트의 꿈을 접어야 했습니다. 도저히 헤어나기 힘든 절망 속에서도 그는 작곡가로서의 재능을 발견하여 날마다 갈고 닦는 한 편 음악잡지를 발간하며 평론가로서 자리를 잡아갔지만 이번에는 오직 그가 이 세상에 의지하고 있었던 유일한 버팀목이었던 어머니마저 세상을 떠나는 아픔을 겪으며 무너져야 했습니다. 그렇게 견디기 힘들었던 바로 그 무렵 운명적인 사랑이 찾아왔으니 그가 바로 스승인 비크의 딸 클라라였습니다.

 

 

 

 

클라라 비크는 슈만보다 9살 연하였지만, 당시 이미 그 명성이 자자했던 피아노 연주자였습니다. 타고난 재능도 남달리 뛰어났지만 5살부터 아버지의 체계적이고 집중적인 교육을 받은 결과 9살에 벌써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에서 연주자로 데뷔하였고, 이후 유럽 각지를 순회하며 당대를 대표하는 피아니스트로 인정받았습니다. 게다가 젊고 아름답기까지 했지요. 그런 클라라에 비교한다면 슈만은 이제 겨우 활동을 시작하는 풋내기에 지나지 않는 데다가 경제적인 기반조차 전혀 없는 노총각일 따름이었습니다. 그러니 클라라의 아버지 비크가 결혼을 반대한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었지요. 더구나 아내도 없이 홀로 애지중지 키워 어느 모로 보나 누구보다 뛰어난 면모를 갖추게 된 딸을 그렇게 시집보내고 싶은 아버지는 아무도 없을 겁니다. 그런데 그때까지 아버지의 말이라면 너무나도 고분고분 잘 따르던 딸이 사랑에 눈이 멀어 아버지의 뜻을 거역하고 나선 것이지요. 슈만과 클라라는 날마다 그를 조르고 애원했지만 비크의 마음은 요지부동이었고 결국은 서로의 마음에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주는 말도 서슴치 않게 되었습니다. 두 남녀는 너무나도 사랑하여 따로 떨어져 산다는 것은 생각조차 할 수 없었고 끝내 법에 호소하여 사랑을 쟁취하고자 했지요. 그리고 마침내 법원은 슈만과 클라라의 손을 들어주었습니다.

 

 

미르테의 꽃 from Privat_e on Vimeo.

 

 

드디어 1840912일 서른 살의 로베르트 슈만은 스물 한 살 생일을 불과 하루 앞둔 스무 살의 꽃다운 클라라 비크와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물론 클라라의 아버지 프리드리히 비크는 참석하지 않았고 두 사람을 아꼈던 몇몇 사람만이 자리를 지킨 조촐하고 소박한 식이었습니다. 그토록 갈망했던 결혼식 전날 슈만은 사랑하는 클라라에게 결혼 선물로 가곡집 미르테의 꽃을 헌정했습니다. 왕후장상이 바치는 그 어떤 금은보화인들 이 보다 더 감동적일 수 있을까요? 이 가곡집은 괴테 · 뤼케르트 · 바이런 · 번즈 · 하이네 · 모젠 · 무어 같은 위대한 시인들의 걸작 26개를 골라 곡을 붙인 것입니다. 미르테는 신부의 화관을 장식하는 향기가 짙은 꽃으로 천인화(天人花) 도금양(桃金孃) 등으로 번역되며 처녀의 순결을 상징하는 꽃입니다. 모두가 한결같이 주옥같이 아름다운 노래들이지만 뤼케르트의 시에 곡을 붙인 첫 번째 <헌정>과 모젠의 시에 곡을 붙인 세 번째 <호두나무>, 그리고 하이네의 시에 곡을 붙인 아홉 번째 <연꽃>이 특별히 더 많은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가운데 가장 열렬한 사랑을 담아 클라라에게 바친 노래라면 당연히 첫 번째 곡 <헌정>일 것입니다.

 

 

 

 

그대는 나의 영혼, 나의 심장이요

그대는 나의 기쁨, 나의 고통이며

그대는 내가 살아가는 나의 세계이자

그대는 내가 날아오르는 하늘.

 

그대는 나의 근심을 영원히 묻어버린 무덤,

그대는 나의 안식, 마음의 평화,

그대는 하늘이 내게 주신 사람

그대의 사랑이야말로 나를 가치 있게 만들고

그대의 시선으로 말미암아 내 마음이 맑고 밝아진다네

그대의 사랑이 나를 드높이니

그대는 나의 선한 영혼이요 나보다 더 나은 나 자신이여

 

 

 

지난 1026일 역대 최연소의 어린 나이로 세계 3대 피아노 콩쿠르라 일컬어지는 리즈 콩쿠르를 석권하여 세상을 놀라게 했던 젊은 피아니스트 김선욱의 결혼식이 있었습니다. 쌀쌀한 야외에서 펼쳐진 이 날 결혼식에서 신랑은 많은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장갑을 벗고 차가워진 손을 비비며 신부를 향한 사랑을 고백하였습니다. 먼저 사회자의 마이크를 빼앗아 뤼케르트의 시 <헌정>을 낭독하였고 이어서 피아노 앞으로 다가가 슈만의 가곡 <헌정>을 리스트가 피아노곡으로 편곡한 <헌정>을 너무나도 열렬하고 절실하게 연주하여 하객들의 마음을 뭉클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러면서 다들 깨달았습니다. 음악으로 사랑을 고백하고 음악으로 바칠 수 있는 결혼 선물로 이 곡 말고 달리 무엇이 있겠는지를 말입니다. 그로부터 2주가 지난 다음 제가 기획하고 해설하는 김선욱의 독주회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앙코르곡으로 결혼식에서 듣고 너무나 감동을 받았던 <헌정>을 연주해달라고 부탁을 했지요. 당연히 승낙할 줄 알았는데 뜻밖에도 부드럽지만 단호하게 거절하였습니다. 그 곡만큼은 그 자신이 누구보다 사랑하는 아내만을 위해 연주하고 싶었던 것이지요. 음악회가 끝나고 김선욱 부부와 함께 저녁식사를 했습니다. 너무나 애틋하게 서로를 보듬는 두 사람을 지켜보며 슈만과 클라라도 이들처럼 사랑했으리라 짐작을 했습니다.

 

 

슈만의 헌정 - 사랑하는 이에게 바치는 노래.

 

 

 

길고 지루한 소송 끝에 사랑을 쟁취한 1840년 한 해 동안 슈만은 무려 138곡의 가곡을 작곡하였습니다. 그가 남긴 가곡들 대부분이 이 짧은 시기에 만들어진 셈이지요. 정말 기적과도 같은 일입니다. 그래서 후대 사람들은 1840년을 가곡의 해라 불렀지만 사실 그것을 가능하게 한 힘은 바로 클라라를 향한 사랑이었으니 가곡의 해가 아니라 사랑의 해라고 부르는 것이 맞을지도 모릅니다. 그렇게 그들의 사랑은 14년을 한결같았습니다. 작곡가로서, 또 평론가로서 슈만의 업적과 명성도 나날이 드높아져 당대를 대표하기에 이르렀지만 슈만의 조울증도 그와 함께 깊어져 결국은 라인강에 몸을 던지기에 이르렀지요. 다행히 지나가는 어부에게 구조되어 목숨은 건졌지만 슈만의 정신병 증세는 돌이킬 수 없는 상태였습니다. 정신병원에 입원하여 치료를 받던 슈만은 2년 후 극도로 증세가 악화되면서 폐렴까지 겹쳐 길지 않은 삶을 마감하였습니다. 마지막으로 면회를 갔을 때 클라라는 음식을 삼키는 것도 어려운 슈만을 위해 와인을 손가락에 찍어 빨아 먹게 했습니다. 그런 클라라를 껴안고 그가 남긴 마지막 말은 나도 알아(Ich weiß)”였다고 합니다. 정신을 놓고 아무 것도 분간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도대체 무엇을 알았다는 것일까요? 아마도 사랑이었겠지요. 모든 것을 놓아버린 지경에서도 사랑만은 느낄 수 있었겠지요. 그런 지독하고 질긴 사랑이 오늘날까지도 살아남아 우리의 가슴을 먹먹하게 적셔주고 있습니다.

 

 

 

글 : 홍승찬 교수
편집 : 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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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라이벌, 쇼팽과 리스트] 한 시대를 대표하는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로서 경쟁심이 없지는 않았겠지만 그 보다는 같은 길을 걷는 동지로서 서로를 격려하는 마음이 더욱 크지 않았..[아름다운 라이벌, 쇼팽과 리스트] 한 시대를 대표하는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로서 경쟁심이 없지는 않았겠지만 그 보다는 같은 길을 걷는 동지로서 서로를 격려하는 마음이 더욱 크지 않았..

Posted at 2012.09.07 08:00 | Posted in 이건음악회 Talk Talk/홍승찬교수의 클래식 톡톡

 

 

 

 

홍승찬 교수의 클래식 음악(33)
[홍승찬 교수의 재미있는 클래식음악 이야기] 아름다운 라이벌, 쇼팽과 리스트

 

 

 

피아노의 시인 쇼팽


2010년은 낭만주의 시대의 대표적인 작곡가 쇼팽과 슈만의 탄생 100주년이 되는 해였습니다. 그래서 그 해는 두 작곡가의 삶과 음악을 새롭게 조명하는 다양한 시도들이 지구촌 곳곳에서 끊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두 사람의 삶을 들여다보면 각각 한 여인의 영향이 절대적이었음을 쉽게 발견하게 됩니다. 나이 차이와 장인의 극렬한 반대까지 극복하고 결실을 맺은 슈만과 클라라 비크의 사랑 이야기는 너무나도 유명합니다. 병약한 쇼팽을 보살핀 연상의 여인 조르주 상드와의 사랑도 잘 알려진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정작 쇼팽과 상드를 맺어준 사람이 리스트였다는 사실은 그다지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그리고 피아노에 관한 한 두 사람이 음악사를 통털어 가장 위대한 작곡가이자 연주자이기에 서로 숙명적인 라이벌이라는 점은 주목하면서도 쇼팽과 리스트가 단지 한 살 차이였고 파리에서 함께 활동하면서 서로 많은 영향을 주고받았다는 점에는 별 관심을 두지 않고 있습니다.

 

Chopin 12 Etude In E Major, Op.10  no 3 - 이별의노래

피아노; 프레디 캠프

 

 

삶이 너무나 버거웠던 독일 낭만 음악 최고의 지성 슈만

 

흔히들 19세기는 피아니스트의 시대라 하고 20세기를 일컬어 지휘자의 시대라고 합니다. 낭만주의 시대의 대표 악기는 단연 피아노였다. 한번에 여러 소리를 크고 작게 마음대로 낼 수 있는 피아노는 확실히 다른 악기에 비해 쓰임새가 많았습니다. 그래서 너나 할 것 없이 피아노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그러다 보니 피아노를 치려는 사람도 많았고 피아노를 위한 곡도 많이 만들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이름을 기억할 만큼 커다란 업적을 남긴 낭만주의 시대의 위대한 작곡가들은 거의가 다 그 시대를 대표하는 피아니스트였습니다. 그리고 그 가운데 특별히 피아니스트로서의 면모의 두드러졌던 작곡가라면 쇼팽과 리스트가 으뜸이었습니다. 이 두 사람의 공통점은 이것 말고도 무척이나 많습니다. 독일과 오스트리아가 음악의 중심지로 떠오르던 시대에 쇼팽의 조국 폴란드와 리스트가 태어난 헝가리는 모두 이들 나라 주변에 위치한 힘없고 서러운 나라들이었습니다. 그래서 폴란드와 헝가리에서는 이들 이전에 이 두 사람보다 이름을 떨쳤던 음악가가 없었고 그 이후에도 이들보다 더 큰 명성을 누린 작곡가가 없었습니다. 그 때문에 폴란드를 대표하는 바르샤바 음악원은 쇼팽 음악원으로 불리고 있고 헝가리를 대표하는 부다페스트 음악원은 리스트 음악원으로 불리고 있습니다. 그 시대에 도저히 따를 자가 없었다고 하는 바이올린의 대명사 파가니니의 연주에 결정적인 영향을 받았다는 것에서도 서로의 공통점을 찾을 수 있습니다. 파가니니에 자극을 받은 쇼팽은 연주자로서의 길을 결심하게 되었고 파가니니에게서 충격을 받은 리스트는 지나친 연습으로 손가락을 다쳤을 뿐만 아니라 파가니니 주제를 사용한 피아노 연습곡을 작곡하기까지 했습니다. 두 사람이 탄생한 시기도 거의 같아서 쇼팽이 리스트보다 겨우 한 해 먼저 세상에 나왔습니다. 그러나 30대의 마지막을 넘기지 못하고 세상을 떠난 쇼팽과는 달리 리스트는 그 시대로서는 드물게도 70을 훌쩍 넘겨서까지 그 삶을 이어갔습니다.

 

피아노; 발렌티나 리시차 Valentina Lisitsa

 

두 사람의 상반된 면면은 이것만이 아니다. 하나하나 따지다 보면 서로 닮은 점보다는 대조적인 모습들을 더 많이 발견하게 됩니다. 서로에게 각각 세 사람의 잊지 못할 연인이 있었다는 것은 공통점이지만 사랑의 사연을 들여다보면 너무나도 다른 두 사람의 성격이 드러나게 됩니다. 소극적이고 내성적이었던 쇼팽에 비해 리스트는 모든 일에 적극적이어서 지나치게 일을 벌이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쇼팽의 첫 사랑 콘스탄치아 글라도코프스카는 그저 마음 속의 연인이었을 뿐이었습니다. 바르샤바 음악원의 성악과 학생이었던 콘스탄치아는 쇼팽이 폴란드를 떠나면서 마련했던 고별 연주회에도 함께 출연했지만 그게 전부였습니다. 조국을 떠나서도 오랫동안 애틋한 사랑을 홀로 마음속에 품고 있었지만 그에게 남은 것은 콘스탄치아의 결혼 소식이 전부였다. 두 번째 사랑은 어릴 때 소꿉 친구였던 마리아 보젠스카를 다시 만나면서 뜨겁게 타오르게 됩니다. 두 사람은 서로 결혼을 원할 만큼 열렬한 사이가 되었지만 여자 집안의 반대로 끝내 사랑을 이루지 못했고 그 충격이 세 번째이자 마지막 사랑인 조르즈 상드를 의지하도록 만들었습니다. 상드에 대한 첫 인상은 좋지 않았지만 몸과 마음이 극도로 쇠약해진 쇼팽으로서는 누군가 이끌어 주고 보살펴 줄 사람이 필요했고 그런 점에서는 연상에다 남성적이었던 상드가 제 격이었던 것 같습니다. 두 사람의 관계는 꽤 오래 지속되었지만 끝까지 가지는 못했습니다. 상드의 보살핌을 받으면서 많은 걸작들을 만들었지만 서로의 갈등으로 마음을 다친 쇼팽은 상드와 헤어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프란츠 리스트(Franz Liszt)

 


Chopin Etude In C Minor Op.10 No.12-Revolution 

피아노;스비아토슬라프 리히터(Sviatoslav Richter, 1915-1997)

전설...이라는 말로 기억되는 20세기 최고의 피아니스트 중 한 사람...

 

리스트의 첫 사랑은 그가 피아노를 가르쳤던 고관 생에리크의 딸 카롤리느였습니다. 카롤리느의 아버지가 끝까지 반대하여 사랑을 이루지 못했지만 어린 나이에도 리스트는 스스로 그 충격을 벗어나려고 문학서적과 종교서적을 가까이 했고 이것이 훗날 그의 작품과 인생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리스트의 두 번째 사랑인 다구 백작부인과 세 번째 사랑인 비트겐시타인 백작부인은 처음부터 시작하지 말았어야 할 위험한 사랑이었습니다. 그러나 리스트는 그런 난관들을 아랑곳하지 않았습니다. 다구 백작부인과는 모든 것을 버리고 숨어사는 쪽을 택했고 비트겐시타인 백작부인과는 그들 앞에 놓인 난관들을 하나하나 극복하기 위해 있는 힘을 다했지만 그 어느 방법도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습니다. 세 번째이자 마지막이었던 비트겐시타인 백작부인과의 사랑을 세상의 축복 속에서 이루고 싶었던 소망이 끝내 이루어지지 않게 되자 리스트는 수도원으로 들어가 신앙생활에 매달렸고 이때부터 입게 된 검은 옷을 죽을 때가지 벗지 않았습니다. 리스트에 관한 일화는 너무나도 많습니다. 지금처럼 피아니스트가 옆모습을 객석으로 향하게 된 것이 리스트 때문이라고 하는데, 스스로 앞모습보다는 옆모습에 자신이 있어 그렇게 했고 그것을 다른 피아니스트들이 따라 해서 관행이 되어버렸다는 것입니다. 리스트와는 달리 쇼팽은 자신을 드러내거나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기보다 음악 자체의 아름다움을 그대로 전하는 데 더 많은 관심을 두었습니다. 리스트는 피아노곡 말고도 교향시와 성악곡, 심지어는 종교음악에까지 창작의 세계를 넓혀갔지만 쇼팽은 어디까지나 피아노를 벗어나지 않는 범위에서 음악의 순수함을 추구했습니다.

 

 

Chopin Etude In C Minor Op.10 No.4- 추격

피아노; 발렌티나 리시차 Valentina Lisitsa

에튀드 중에서 가장 난이도가 높은 빠른 곡입니다.

 

 

 

와젠키 공원은 18세기 폴란드 최후의 왕 Stanisław Augustus Poniatowski 에 의하여 만들어진  공원으로 바르샤바에서 가장 넓고 아름다운 공원이다. 넓은 공원안에는 많은 꽃들과 수목들이 우거져 있으며 작은 새들과 다람쥐들이 한가로이 노니는 모습을 볼 수 있는 시민들의 안식처로서 항상 많은 시민들이 평화롭게 산책하는 공원이다.

와젠키 공원입구엔 보리수나무 아래 쇼팽공원이 조경되어 있다. 매년 여름면 이 쇼팽공원에서  '쇼팽의 피아노 콘서트'가 열린다.   그것도 무료로 그래서 요즘엔 이 공연을 보기 위해 많은 관광객들이 찾는다고 한다

 

두 사람이 이렇게 음악이 다르고 생각이 달랐지만 서로의 세계를 존중하고 서로를 진정으로 위해주는 마음은 다르지 않았습니다. 한 시대를 대표하는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로서 경쟁심이 없지는 않았겠지만 그 보다는 같은 길을 걷는 동지로서 서로를 격려하는 마음이 더욱 컸습니다. 쇼팽의 음악세계를 높이 평가한 리스트는 명 피아니스트 칼크브레너에게 가르침을 받으려는 쇼팽을 만류했고 쇼팽은 이러한 리스트의 조언을 그대로 받아들였습니다. 실연의 아픔을 이기지 못하는 쇼팽을 위해 조르주 상드를 소개한 것도 다름 아닌 리스트였습니다. 서로가 한 길을 걸으면서 서로를 밀어내지 않고 서로의 다름을 이해하고 존중했던 두 사람의 관계는 갈등의 늪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우리에게는 오래 전에 있었던 남의 나라의 이야기는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피아노의 시인 쇼팽의 소품들 가운데 야상곡 9-2(다른 곡도 상관없습니다) 들으면서 이 시간 마치겠습니다.

 

 

  쇼팽 - noctorn(야상곡) Op.9 No.2 녹턴 2번

 

 

글 : 홍승찬 교수
편집 : 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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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승찬 교수의 재미있는 클래식음악 이야기] 이루어질 수 없어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 - 브람스와 클라라[홍승찬 교수의 재미있는 클래식음악 이야기] 이루어질 수 없어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 - 브람스와 클라라

Posted at 2012.06.12 11:09 | Posted in 이건음악회 Talk Talk/홍승찬교수의 클래식 톡톡

 

 

홍승찬 교수의 클래식 음악(24)
이루어질 수 없어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 - 브람스와 클라라

 

 

슈만과 클라라

음악사를 통털어 가장 열렬하면서도 아름다운 순애보라면 대부분 슈만과 클라라의 이야기를 떠올리게 됩니다. 나이 차이는 많았지만 장래가 촉망되는 당대 최고의 작곡가와 최고의 여류 피아니스트의 결합이라면 그다지 반대할 이유가 없을 듯싶지만 클라라의 아버지이자 슈만의 스승이었던 비크는 그렇지가 않았습니다. 오히려 슈만을 너무나 잘 알았기에 불안정한 정서가 끝내 그의 삶을 파탄으로 이끌 것이라 예견했고, 그걸 알면서 누구보다 총명하고 아름다운 딸 클라라를 그에게 맡길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오히려 이런 이유 있는 반대를 비난하고 그 반대를 무릅쓰고 끝내 결혼에 이른 두 사람의 사랑을 무엇보다 아름답다고 합니다. 어쩌면 사랑의 결실보다는 결실에 이르기까지 온갖 시련을 이겨낸 두 사람의 의지를 칭송하는 것이고 바로 그런 절실한 마음을 담고 있는 슈만의 작품들을 사랑하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슈만과 브람스가 사랑한 뮤즈 <클라라>가 영화로 만들어졌다. 상상 이상으로 아름답다. 거장 음악가 세 사람의 러브스토리가 아침드라마처럼 삼각관계의 링 안에서 욕정과 시기가 들끓다가 파국으로 치닫는다면 얼마나 황당하고 쓸쓸했을까. 다행히도 사랑은 음악을 배반하지 않고 음악은 사랑을 모욕하지 않는다. 영화는 슈만과 클라라 결혼 이전의 시련은 담지 않고 결혼 이후부터 시작된다. 올망졸망 앙증맞은 자식들 키우는 음악가 잉꼬부부의 삶이 펼쳐진다.

 

장인이며 스승이었던 비크의 걱정대로 슈만은 끝내 정신분열을 일으켜 정신병원에서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게 됩니다. 그렇게 슈만과 클라라가 힘들었을 때, 그들을 지탱해준 힘이 되었던 사람이 바로 브람스였습니다. 슈만에게 인정받아 그의 도움으로 악단의 주목을 받게 된 브람스는 슈만을 스승으로 받들게 됩니다. 슈만의 집에 머물면서 그는 언제부터인지 모르게 스승의 부인 클라라에게 사랑의 감정을 품게 되지만 평생을 그저 마음에만 담아 둔 채 끝내 꺼내지는 않았습니다.

 

 

클라라의 아버지 비크 교수에게 피아노 교습을 받는 슈만의 모습을 재미있게 그린 그림

클라라가 11살 때 슈만을 처음 만나게 되었다.

 

요즘과 같은 찌든 세태에 모두들 설마하시겠지만 다른 사람이면 몰라도 브람스는 정말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마음 내키는 대로 사는 것이 마치 예술가의 특권인양 여겨졌던 낭만주의 시대 브람스는 정말이지 별종이었습니다. 경제적으로 무능한 아버지 대신 14살부터 함부르크 항만의 허름한 여인숙에서 피아노를 치면서 가족들의 생계를 꾸렸고 헝가리의 바이올리니스트 레메니의 반주자로 이후에는 당대를 풍미했던 거장 바이올리니스트 요아힘의 반주자로 음악경력을 이어갔습니다. 그렇게 사귄 요아힘과 평생 우정을 나누었고 슈만에게 브람스를 소개한 사람이 바로 요아힘이었습니다. 어머니가 죽고 계모가 들어와 동생들이 늘었지만 가족을 돌보는 브람스의 마음에는 변함이 없었습니다. 심지어는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다음에도 계모와 동생들을 끝까지 보살폈습니다. 무작정 믿고 전 재산을 맡긴 출판업자가 자신의 재산을 탕진해도 원망하는 법이 없었고 스스로는 검소하게 살면서 그렇게 남은 얼마 되지 않는 여유까지도 늘 누군가에게 베풀었습니다. 슈만이 그에게 빛을 주었듯이 그 또한 드보르작을 비롯한 많은 후배 작곡가들에게 길을 열어주었습니다. 그리고 그가 존경했던 스승의 부인이자 마음속으로 누구보다 깊이 사랑했던 클라라와 그 가족들을 죽을 때까지 보살피고 돌보았습니다.

 

 

한 여인을 사랑한 예술가 요하네스 브람스

 

브람스는 63번째 생일에 베이스 성부와 피아노를 위한 ‘4개의 엄숙한 노래를 완성했습니다. 구약성서와 신약성서에서 가져온 그 가사는 세속적인 모든 것들의 덧없음을 이야기하면서 근심과 고통에서 우리를 구해줄 구원자로서 죽음을 맞아들이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그러다가 고린토인들에게 보낸 첫 번째 편지에서 가사를 따온 마지막 노래에 이르러 그는 사랑의 힘을 열렬히 찬양하고 있는데, 그 무렵 병세가 점점 더 심각해져가고 있는 클라라에게 힘을 주고자 이 작품을 썼기 때문입니다. 브람스 자신의 말을 빌리자면 그녀와의 만남은 그에게 가장 큰 풍요와 가장 고귀한 만족을 가져다 준 생애 최고의 아름다운 경험이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에게 가장 소중한 존재가 그보다 한 발 앞서 세상을 떠나려고 하는 절박한 순간을 맞이했던 것입니다. 1896520, 마침내 클라라가 숨을 거두었습니다. 장례식에 참석해서 마지막 모습이라도 보고 싶었던 브람스는 프랑크푸르트를 향한 무모한 여행을 시도했지만 밤 기차를 놓쳐버렸습니다. 이 작은 소망마저도 이루지 못한 그는 클라라가 슈만과 나란히 묻혀 있는 본으로 향했고 이후 그의 병세는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악화되었습니다. 그해 여름 브람스는 병마와 싸우면서 오르간을 위한 ‘11개의 합창전주곡을 작곡했습니다. 그 마지막 곡인 판타지아에 그는 자신의 죽음을 예견이라도 하듯이 오 세상이여 나는 그대를 떠나야만 하네라는 제목을 붙였고 이듬해 봄, 클라라가 죽고 꼭 일년 만에 브람스도 세상을 떠났습니다.

 

 

 

브람스가 평생을 두고 가슴에 묻었던 고귀한 사랑 클라라의 죽음을 앞두고 그에게 위로와 용기를 주고자 작곡했던 ‘4개의 엄숙한 노래의 마지막 곡 아무리 그대들과 천사의 말로써 얘기한들의 가사는 이렇습니다.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 나는 꽹가리가 되고,

내가 예언하는 능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만한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난 아무 것도 아니요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어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투기하는 자가 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무례하게 행동하지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며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사랑은 언제까지 그치지 아니하나

예언도 그치고 방언도 그치고 지식도 그치리라.

우리가 부분적으로 알고 부분적으로 예언하니

온전한 것이 올 때는 부분적으로 하던 것이 그치리라.

내가 어렸을 때에는 말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깨닫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생각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다가

장성한 사람이 되어서는 어린 아이의 일을 버렸노라.

이제는 우리가 거울로 보는 것같이 희미하나

그때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요,

이제는 내가 부분적으로 아나

그때는 주께서 나를 아신 것같이 내가 온전히 알리라.

그런 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

 

 

최근 연주된 브람스-대학축전 서곡

 

■ 일시 : 2012년 3월 7일 수요일 14시
■ 장소 : 제주대학교 아라뮤즈홀
■ 주제 : 제주특별자치도립 오케스트라와 함께하는 오리엔테이션
■ 주최 : 제주대학교 기초교육원

■ 연주 : 제주특별자치도립 교향악단
■ 곡목 : 브람스-대학축전 서곡 / J.Brahms-Academic Festival Overture C mior Op.80
■ 지휘 : 정운선

 

 

글 : 홍승찬 교수
편집 : 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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