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승찬 교수의 재미있는 클래식음악 이야기] 우리나라 음악계의 대표 리더쉽 - 음악에서 가장 중요한 덕목은 소통이다![홍승찬 교수의 재미있는 클래식음악 이야기] 우리나라 음악계의 대표 리더쉽 - 음악에서 가장 중요한 덕목은 소통이다!

Posted at 2012.04.17 07:30 | Posted in 이건음악회 Talk Talk/홍승찬교수의 클래식 톡톡

 

 

 

홍승찬 교수의 클래식 음악(12)
우리나라 음악계의 대표 리더쉽

 

 

 

음악계의 원로 낙촌 "이강숙" 선생님

오늘은 우리 모두의 본보기로 우러를 만한 음악계 원로 한 분의 삶의 발자취를 더듬어 볼까 합니다. 이 땅에 음악학의 씨앗을 뿌렸고 한국예술종합학교를 설립하여 초대 총장으로 재직하며 우리나라 최고의 예술교육기관으로 자리잡게 만든 장본인이죠. 낙촌 이강숙 선생입니다. 낙촌은 음악이 있는 마을이라는 뜻으로 선생의 호를 딴 합창단 음악이 있는 마을을 만들어 창단 후 지금까지 이강숙 선생이 단장으로 있으면서 우리나라 아마추어 음악활동의 본보기가 되고 있습니다.

 

아마추어 음악활동가들이 모인 합창단 "음악이 있는 마을"

 

금년은 서울대학교 작곡과에 음악이론 전공을 처음 개설한 지가 30주년이고 한국예술종합학교가 문을 열고 20주년을 맞이하는 해라 선생에겐 물론 우리 음악계와 예술계에 모두 뜻 깊은 해입니다. 경북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대에서 피아노를 전공하여 대학에서 교편을 잡으며 누구나 부러워할 만한 위치에 올랐지만 과감히 그 자리를 버리고 미국으로 건너가 우리나라에선 아무도 시도하지 않았던 음악학에 도전했죠. 미시간 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미국에서 교수로 있다가 1977년 서울대학교 작곡과 교수로 부임합니다. 그리고 4년 뒤 이론전공을 만들어 우리나라 최초의 음악학 전공과정을 열었죠. 수많은 저서와 논문, 평론으로 우리나라 음악계의 새로운 흐름을 이끌었고 특히 첫 저서 열린 음악의 세계에서 제시한 열린 음악의 개념은 지금까지도 음악계는 물론 우리 사회 구석까지 큰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KBS 교향악단

 

실천하는 학자이자 평론가로서 KBS 교향악단 초대 총감독을 맡기도 했지만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그의 큰 업적은 한국예술종합학교입니다. 국립극장 옆에 방 한 칸을 얻어 간판을 걸었지만 그것 말고 확실한 건 아무 것도 없었죠. 필요한 공간과 예산을 얻기 위해 정부 부처와 관계 기관을 문지방이 닳도록 드나들어야 했고 실체도 없는 학교에 오라며 최고의 교수와 예술가를 설득해야 했습니다. 방법은 오직 하나 진정으로 마음을 다해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것뿐이었죠. 스스로도 그것을 살인적인 인내라고 말했을 정도입니다. 기획예산처의 관계자들은 이강숙 총장이 나타나면 미리 자리를 피하기까지 했지만 아침 일찍 집 앞에서 기다리다 출근하는 담당자를 붙들고 사정하고 설득했는가 하면 당신같은 사람이 이런 중요한 자리에 있어서 우리나라 문화예술계가 발전하지 못한다며 소리치며 으름장을 놓기까지 했죠. 그렇게 예산을 따고 공간을 얻고 직원을 늘렸고 해마다 하나씩 음악원, 연극원, 영상원, 무용원, 미술원, 전통예술원까지 문을 열어 학교의 틀을 갖추었습니다.

 

 

소통을 무엇보다 중요하게 여겨서 나이 어린 직원에게도 반말로 대하지 않았고 무슨 일이든 명령이 아닌 설득으로 움직였습니다. 학습공간을 확보하지 못한 연극원 교수들이 항의하며 대책을 요구하자 그들과 대면하는 자리에서 눈을 감고 주기도문을 외었고 그 모습에서 진정성을 확인한 교수들은 학교의 입장을 받아들였습니다. 아무리 힘든 일도 정면으로 부딪혀 해결하고 이해 당사자 모두를 대화로 설득하고 이해를 구하는 총장을 두고 사람들은 민주적인 절차를 밟아 독재한다며 우스개 소리를 하기도 했죠. 리더로서 잠시라도 함께 일했던 교수와 직원들은 끝까지 대소사를 챙기며 신의를 다했습니다. 학교에 있다 문화부로 발령이 난 직원이 있으면 새로 소속된 부서의 장에게 전화를 걸고 따로 만나 식사를 하며 각별한 애정과 부탁의 말을 잊지 않았습니다. 심지어는 그 직원이 다른 부서로 옮겨 가면 다시 그 부서의 책임자에게 전과 마찬가지로 관심과 배려를 부탁했습니다. 그래서 직원들은 자기들끼리 총장을 부를 때 외삼촌이라 호칭하여 존경과 애정을 표했습니다. 사람들이 있는 자리에선 부하직원을 질책하지 않고 늘 칭찬하고 격려하지만 잘못을 바로 잡을 필요가 있다 싶을 땐 따로 불러 호되게 야단쳤죠. 학교를 만들며 사람들을 만나는 식사와 술자리가 많아지자 소주와 맥주를 섞는 폭탄주를 애용했는데 비용과 시간을 절약하기 위한 고육지책이었습니다. 그것이 널리 퍼지면서 심지어는 다른 대학 교수들까지 예종주라 부르며 즐기게 되었습니다.

 

 

이강숙 선생님의 첫 저서 "열린 음악의 세계"

 

8년을 몸담았던 학교를 떠나면서 이강숙 선생은 또 한 번 새로운 삶에 도전을 했습니다. 젊은 시절부터 간직했던 소설가의 꿈을 이루었죠. 뒤늦게 문단에 등단하였고 지금까지도 일체의 다른 활동을 사양하며 줄곧 집필에만 정진하여 이미 여러 편의 소설을 발표했고 머지않아 새로운 장편소설을 발표할 예정입니다. 공부 잘하는 수재가 어느 날 슈베르트의 가곡을 알게 되면서 음악의 마법에 걸려 집안의 극렬한 반대를 무릅쓰고 스스로 고난의 길에 기꺼이 몸과 마음을 던졌습니다. 누구보다 일찍 학교 연습실에 나와 다른 학생들에게 연습실을 내주지 않으려고 날마다 점심을 굶었고 그 때문에 폐결핵에 걸려 죽음의 문턱을 다녀오기도 했죠. 그리고 또 한 번 몸을 돌보지 않고 연구에만 몰두하다 말기 위암에 이르렀지만 의지와 집념으로 기적같이 일어나 한국예술종합학교를 만들었습니다. 이강숙 선생을 음악의 길로 이끌어 오늘의 보람과 업적이 있게 한 슈베르트의 연가곡 겨울나그네가운데 보리수를 들으며 이 시간 마치겠습니다.

 

 

 

글 : 홍승찬 교수
편집 : 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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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승찬 교수의 재미있는 클래식음악 이야기] 수고한 당신, ‘겨울여행’을 떠나라... 연광철과 마에스트로 정명훈이 함께 하는 슈베르트의 ‘겨울 나그네’를 들으며...[홍승찬 교수의 재미있는 클래식음악 이야기] 수고한 당신, ‘겨울여행’을 떠나라... 연광철과 마에스트로 정명훈이 함께 하는 슈베르트의 ‘겨울 나그네’를 들으며...

Posted at 2012.04.10 07:30 | Posted in 이건음악회 Talk Talk/홍승찬교수의 클래식 톡톡

 

 

홍승찬 교수의 클래식 음악(10)
수고한 당신, ‘겨울여행’을 떠나라

 

 

 

 

지난 2009년 음악계의 마지막 하이라이트는 아무래도 베이스 연광철과 마에스트로 정명훈이 함께 하는 슈베르트의 겨울 나그네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두 사람의 면면이나 비중을 따로 놓고 보더라도 예사롭지 않은데다가 모처럼 함께 하는 무대가 겨울 나그네라고 하니 각별한 기대와 관심이 모아질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성악가들은 말할 것도 없고 피아니스트들조차도 평생에 한번쯤은 꼭 목 놓아 불러보고 싶지만 그러지 못해 가슴 속에 묻어 두는 노래입니다. 그만큼 슬프고 아름답지만 그만큼 깊고 섬세합니다. 피아니스트가 무슨 노래를 부르냐고 하시겠지만 반주자의 역할이 가수만큼이나 중요하고 뚜렷한 것이 슈베르트 가곡의 본질이고 슈베르트 이후 슈만과 브람스를 거쳐 볼프와 시트라우스로 이어지는 독일 가곡의 특징이기도 합니다. 흔히들 슈베르트를 두고 가곡의 왕이라 일컫는 것도 어찌 보면 바로 이 작품 때문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물론 서른 한 살의 너무나도 짧은 생애 동안 600곡이 넘는 가곡을 남긴 것도 경이로운 일이지만 그 중에서도 겨울 나그네는 기적과도 같은 선물입니다.

 

 

[슈베르트 겨울 나그네]Die Winterreise - Einsamkeit, Die Post, Der greise Kopf, Die Krähe

 

 

겨울 나그네1827년 빌헬름 뮐러의 시에 곡을 붙여 완성한 연가곡입니다. 이 작품을 만든 해에 뮐러가 눈을 감았고 베토벤이 또한 세상을 등졌습니다. 그리고 일년 후 슈베르트는 베토벤 곁에 영원한 안식처를 얻었습니다. 연가곡이란 일련의 노래들이 하나의 이야기로 이어지는 것으로 이 또한 슈베르트 이후 시작된 독일 가곡의 특징입니다. 흔히들 슈베르트의 3대 가곡집이라고 해서 물방앗간의 아가씨겨울 나그네’, ‘백조의 노래를 꼽는데, 이 가운데 앞의 두 작품이 연가곡이고 백조의 노래는 슈베르트가 세상을 떠난 다음 유작 14곡을 모아 출판한 것입니다.물방앗간의 아가씨역시 빌헬름 뮐러의 시에 곡을 붙인 것으로 겨울 나그네와는 이야기가 서로 맞닿아 있기도 합니다. 청운의 꿈을 품고 길을 떠난 한 젊은이가 물방앗간집의 아가씨에게 마음을 뺏겨 그곳에 남아 견습공으로 일하게 됩니다. 멀리서 지켜보며 차마 말 못할 사랑을 홀로 키워가지만 정작 그 아가씨의 마음은 사냥꾼에게 온통 기울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하늘이 무너질 듯 절망한 젊은이는 연인의 곁에 머무는 것이 너무나 고통스러워 목숨보다 중요한 그의 사랑과 정든 물방앗간을 떠나려고 합니다.

 

Der Neugierige Schubert, 아름다운 물방앗간의 아가씨 Die schöne Müllerin,D.795, no.6.

 

 

 

겨울 나그네의 이야기는 마치 그 다음의 이야기를 이어가는 듯합니다. 하필이면 겨울에 그것도 캄캄한 밤에 눈 덮인 적막한 길을 나선 젊은이는 절망과 불안이 엇갈리는 착잡한 심정으로 입 밖에는 꺼내지도 못할 작별의 인사를 마음에만 새겨둡니다. 세차게 몰아치는 바람에 사정없이 나부끼는 깃발을 바라보며 마음의 동요는 더욱 심해지고 그의 심정에는 아랑곳없이 결혼준비에 들떠 있는 신부와 그 가족들에 대한 원망으로 격해지는 감정을 느끼게 됩니다. 그것도 잠시, 서글픈 마음에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이 뺨을 타고 흐르다가 지독한 추위로 얼어붙고 말지만 사랑의 뜨거운 감정은 좀체 식을 줄을 모릅니다. 사방을 분간할 수도 없는 어둠 속에서 눈 속에 묻혀 있을 사랑하는 이의 발자국을 찾습니다. 추위에 시린 손으로 사방을 더듬어 보지만 봄날의 추억은 오간 데 없고 추위와 절망으로 마음마저 얼어붙습니다. 어느덧 성문 앞에 이르자 변함없이 우물가에 버티고 선 보리수를 보고는 슬플 때나 기쁠 때나 마음을 나누고 의지했던 추억을 잠시 더듬어봅니다. 바람에 모자가 날라 가 버리지만 마음이 약해질까 돌아보지 않고 길을 재촉합니다. 이제는 돌이킬 수 없는 길임을 깨닫고는 눈물이 쏟아지지만 눈 위에 떨어진 뜨거운 눈물이 냇가로 흘러 사랑하는 이에게 전해졌으면 하는 부질없는 미련을 버리지 못합니다. 여기까지가 첫 번째곡 밤인사부터 여섯 번째 곡 넘쳐흐르는 눈물입니다.

 

 

얼어붙은 냇물을 건너고 적막한 어느 낯선 거리에 이르자 몸과 마음은 지칠 대로 지쳐 따뜻한 봄날 사랑하는 이를 지켜보던 아름다운 추억이 더욱 간절해집니다. 이윽고 깊은 골짜기에 접어들자 길은 보이지 않고 저 멀리 묘지에서 도깨비불만 번뜩입니다. 말라붙은 개울바닥을 따라 걸으며 어차피 물은 바다로 흐르고 슬픔은 무덤으로 이어진다면서 체념을 하게 됩니다. 폭풍이 몰아치자 이제 더는 걷지 못하고 숯 굽는 오두막을 찾아 잠시 쉬기로 합니다. 걸음을 멈추자 추위가 엄습해오고 세찬 바람은 피했지만 다친 상처가 더욱 고통스럽기만 합니다. 잠시 정신을 놓는가 싶으면 따뜻한 봄날에 연인과 함께 하는 꿈을 꾸지만 닭 울음소리에 단꿈은 깨고 참혹한 현실로 돌아오기를 거듭합니다. 지붕에서 우는 까마귀는 마치 자신을 비웃는 듯하지만 꿈이 현실이었으면 하는 바람이 너무나도 간절합니다. 폭풍이 멈추고 날이 개이자 사방은 더욱 적막하고 고독이 밀려들어 전보다 더 견디기가 힘듭니다.

 

Aufenthalt 나의 집 쉼터 -슈베르트 백조의 노래 중...

 

 

이렇게 열두 번째 곡 고독을 지나면 전반부가 끝이 나고 열세 번째 곡 우편마차부터 후반부에 들어서게 됩니다. 우편마차의 나팔소리에 잠시 들뜬 마음을 품게 됩니다. 혹시나 사랑하는 이의 소식을 들을 수 있을까 하는 어처구니없는 기대로 말입니다. 그러나 절대로 그럴 수 없는 현실을 깨닫고 절망은 더욱 깊어집니다. 서리가 내려 하얗게 변했던 머리카락이 햇빛을 받아 검게 되자 차라리 머리가 희어져 자신의 고달픈 여정과 인생도 빨리 끝나기를 바라게 됩니다. 죽음의 냄새를 맡은 까마귀가 나그네의 주변을 맴돌지만 지팡이에 몸을 기댄 나그네는 까마귀라도 끝까지 곁에 남았으면 합니다. 이제 마지막 희망까지 포기할 즈음 어느 마을에 당도하지만 늦은 밤 개 짖는 소리만 나그네를 맞이합니다. 이미 한낱 꿈마저 버린 나그네는 다시는 잠이 들어 헛된 꿈을 꾸지 못하게 개더러 계속 짖으라고 말합니다. 아침이 되어 다시 폭풍우가 몰아치지만 모든 것을 포기한 나그네는 아무 것도 두려울 것이 없습니다. 그리고는 마침내 몽롱한 환상 속에 스스로를 맡기지만 문득 길 위의 이정표를 발견하고는 갈 곳도 없고 돌이킬 수도 없는 스스로의 처지를 다시금 깨닫습니다. 길은 묘지로 나그네를 이끌지만 죽음을 앞둔 그에게는 그곳이 마치 여인숙인 듯 편안하기만 합니다. 거센 폭풍우는 나그네의 부질없는 마지막 오기를 자극하지만 날이 개이자 죽음의 문턱에 이른 나그네에게는 하늘의 태양마저 세 개로 보입니다. 마을 어귀에 늙고 지친 거리의 악사가 안간힘을 다해 손풍금을 돌리지만 돈을 놓는 접시는 텅 비어 있습니다. 그 악사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나그네는 점점 다가오는 죽음의 순간을 기다립니다.

 

 

 

모두 24곡으로 이루어진 이 작품의 독일어 제목 ‘Winterreise'을 우리말로 옮기면 겨울여행입니다. 일본사람들이 먼저 겨울 나그네로 번역했고 우리가 그대로 쓰고 있는 것이지요. 아마도 우리가 이름을 기억할 만큼 위대한 업적을 남긴 작곡가 가운데 슈베르트만큼 짧은 삶을 살다간 이는 없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만큼 마음이 여리고 순수했던 이도 달리 없었던 것 같습니다. 남달리 작은 키에 머리만 컸던 그는 지독한 근시에다 말까지 더듬었습니다. 그러니 재물이 그를 따랐을 까닭이 없고 사랑이 그의 편이었을 리가 없습니다. 평생을 누군가의 집에 얹혀살아야 했고 밤거리의 여인에게서 몹쓸 병을 얻기까지 했습니다. 그가 그토록 바랐던 작곡가로서의 성공도 그의 생전에는 그를 피해 다녔습니다. 열여섯 편이나 되는 그의 오페라는 한 번도 성공하지 못했고 심지어 무대에조차 오르지 못한 경우도 허다했습니다. 다름 아닌 그가 바로 물방앗간의 아가씨를 짝사랑한 청년이었고 그가 바로 겨울 나그네였던 것입니다. 그가 말하기를 내가 사랑의 노래를 원했을 때, 그 노래는 슬픔으로 바뀌었고, 내가 슬픈 노래를 원했을 때, 그 노래는 사랑으로 바뀌어있었다고 했습니다.

 

 

치열했던 시간을 잠시 멈추고 홀로 겨울 여행을 떠나는 것은 어떨까요. 지독하게 추웠던 어린 시절의 겨울과 순수했던 젊은 시절의 아름다운 사랑을 그리워하면서 말입니다. 그 옛날 가수 최희준의 노래처럼 인생은 어차피 나그네길이겠지요. 박목월 시인의 시처럼 구름에 달 가듯이 그렇게 가다가 술 익는 마을에 이르면 잠시 머물면 어떻습니까? 삶이 빡빡하니 늘 그럴 수는 없겠지만 한 해를 보내는 이쯤에서 잠시 훌훌 털고 떠나자는 것이지요. 19세기에는 감동적인 음악을 듣고 눈물을 흘리는 이가 교양인이고 지성인이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연주회 갈 때면 반드시 손수건을 챙겼다고 하지요. , 수고한 당신 슈베르트의 겨울 나그네와 함께 겨울여행을 떠나시지요. 눈물을 펑펑 흘리면서 말입니다.

 

 

 

내가 사랑의 노래를 원했을 때

그 노래는 슬픔으로 바뀌었고

내가 슬픈 노래를 원했을 때

그 노래는 사랑으로 바뀌어 있었다.

  

 

글 : 홍승찬 교수
편집 : 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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