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승찬 교수의 클래식 이야기] 조성진의 쇼팽 콩쿠르 우승에 열광하는 우리들의 자화상[홍승찬 교수의 클래식 이야기] 조성진의 쇼팽 콩쿠르 우승에 열광하는 우리들의 자화상

Posted at 2017.08.20 11:11 | Posted in 이건음악회 Talk Talk/홍승찬교수의 클래식 톡톡


2015년 우리나라 음악계에서 일어난 일들을 돌이켜 보면 피아니스트 조성진의 쇼팽 콩쿠르 우승이 가장 먼저, 그리고 가장 크게 떠오릅니다. 우승 그 자체로도 놀라운 쾌거였지만 주인공 조성진에게 쏟아진 사람들의 폭발적인 관심과 열광은 가히 신드롬이라 불릴 만큼 엄청난 것이었습니다. 콩쿠르 실황을 담은 음반은 나오자마자 품절이 되었고 이후 예정된 조성진의 연주회 티켓 또한 예매가 시작되기가 무섭게 매진되었습니다.

 

출처 :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Seong-Jin_Cho_20161116_03.png


그런데 조성진에게 환호하는 사람들이 주목하는 또 한 사람이 있습니다. 쇼팽 콩쿠르의 심사위원으로 참여하여 유독 조성진에게만 최저 점수를 준 필립 앙트르몽입니다. 물론 지탄의 대상이 되었고 여론의 질타를 받았습니다. '노망 아니냐'는 핀잔은 점잖은 편이고 원색적인 비난이 쏟아졌습니다. 더러는 그럴 줄 알았다면서 파리 고등 음악원에서 조성진이 사사중인 스승이 앙트르몽의 숙적이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라는 추측도 제기되었습니다.

 

출처 : https://www.youtube.com/watch?v=64LLbbY3m50


이제 여든이 넘어 무대에서 만날 일은 없지만 필립 앙트르몽은 한 때 프랑스를 대표하는 피아니스트로 1975년에는 내한 연주회를 가지기도 했습니다. 지휘자인 아버지와 피아니스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어려서 마르그리트 롱에게 배웠고 파리 음악원에 입학해서는 라흐마니노프의 친구였던 조르지 샤브샤바지에게 사사하며 러시아 음악에도 정통하게 되었습니다. 롱 티보 콩쿠르에서 우승하며 피아니스트로 명성을 떨치기 시작하였고 나중에는 지휘자로도 뛰어난 역량을 인정받았으며 지금도 프랑스 음악계의 원로로 커다란 영향력을 미치고 있습니다. 특히 프랑스 작곡가들의 작품 해석과 연주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어 드뷔시의 "영상"과 라벨의 피아노 협주곡", 그리고 생상스의 "동물의 사육제"를 녹음한 음반은 지금도 최고의 명반으로 꼽히고 있고 빈 챔버 오케스트라를 지휘하여 녹음한 차이코프스키의 "피렌체의 추억""현을 위한 세레나데" 역시 명연주로 일컬어지고 있습니다.

 

출처 : http://www.hottracks.co.kr/ht/record/detail/0886975534722


이렇게 능력있고 유명한 사람의 판단이니 무조건 따라야 한다는 말이 아닙니다. 다만 누군가 전문가로서 이름을 걸고 내놓는 평가와 점수라면 일단 존중해야 함이 마땅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에 대한 설명이 부족하고 미흡하여 납득할 수 없고 인정할 수 없다면 따로 더 묻거나 따질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야 할 텐데 그것이 바로 언론의 역할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런데 기대했던 언론의 인터뷰나 심층 취재도 없었고 이를 두고 갑론을박하는 토론의 장도 마련되지 않았습니다. 소수이긴 하지만 몇몇 네티즌들이 이런 세태를 한탄하며 예술의 기량을 가늠하는 콩쿠르에 절대적인 객관성과 잣대가 있을 수 없다는 반론을 내놓고 있습니다. 그들은 전에도 이런 저런 콩쿠르에서 유사한 일이 없지 않았는데 이번에만 유독 내 편이라는 입장에서 너무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지적을 하고 있습니다.

 

출처 : http://blog.koreadaily.com/view/myhome.html?fod_style=B&med_usrid=kws579&cid=909434&fod_no=4


쇼팽 콩쿠르만 하더라도 지난 1980년 이보 포글레비치가 결선에 오르지 못하자 당시 심사위원장이던 마르타 아르헤리치가 이에 항의하며 중도에 심사위원직을 사퇴하는 일이 있었으며 2005년 쇼팽 콩쿠르에서 형 동민과 함께 3위에 입상하여 주목을 받았던 임동혁은 바로 전에 있었던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에서 3위에 오르자 심사 결과에 불복하여 수상을 거부하기도 했습니다. 20세기 피아노의 전설이라 할 수 있는 아르투로 베네디티 미켈란젤리는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의 전신이었던 외젠 이자이 콩쿠르에 참가하여 겨우 7위에 입상했으나 당시 그 과정을 지켜보며 미켈란젤리에게 열광했던 청중들과 비평가들은 한결같이 심사 결과에 불만을 표시했습니다. 그리고 또 한 사람의 전설 스비아토슬라브 리히테르는 차이코프스키 콩쿠르가 열린 첫 해에 심사위원으로 참여하여 한 사람에게만 최고점을 주고 나머지 참가자들 모두에게 최저점을 주는 일까지도 서슴치 않았습니다.

 

조성진의 쾌거로 함께 주목을 받게 된 것은 필립 앙트르몽 뿐만이 아니었습니다. 조성진이라는 이름 앞에 늘 따라다니는 쇼팽 콩쿠르가 눈길을 사로잡은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쇼팽 콩쿠르를 수식한 "세계 3대 피아노 콩쿠르"라는 말까지 사람들의 뇌리에 깊이 박혀 움직일 수 없는 사실이 되어버렸습니다. 클래식 음악을 잘 모르는 사람들까지도 조성진을 알게 되고 찾게 된 것은 두 말할 필요도 없이 그가 우승한 쇼팽 콩쿠르의 높은 위상 때문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나라 피아니스트로는 처음으로 우승했다는 사실이 더욱 감격스러웠을 것입니다. 쇼팽 콩쿠르는 세계 무대를 꿈꾸는 피아니스트라면 누구나 한 번쯤 마음에 품을 만큼 권위있는 콩쿠르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그것은 그 콩쿠르의 역대 우승자와 입상자들의 활약과 명성이 두드러지기 때문입니다. 이런 점은 소위 3대 콩쿠르라며 함께 언급된 차이코프스키 콩쿠르와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도 마찬가지지만 쇼팽 콩쿠르와는 달리 이들 콩쿠르는 피아노 외의 다른 부문도 포함하고 있습니다.

 

출처 : https://ko.wikipedia.org/wiki/%EC%87%BC%ED%8C%BD_%EA%B5%AD%EC%A0%9C_%ED%94%BC%EC%95%84%EB%85%B8_%EC%BD%A9%EC%BF%A0%EB%A5%B4


여기서 묻고 싶은 것은 앞서 언급한 세 콩쿠르 말고 다른 콩쿠르들 가운데 이들에 견주어 손색이 없는 피아노 콩쿠르는 없는지, 그래서 4대도 아니고 꼭 3대라고 해야 하는 까닭이 있는지, 그리고 이렇게 꼭 3대니 10대니를 따져 나머지와 구분지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이고 기준은 무엇인지입니다. 분명한 사실은 다른 나라에 비해서 우리나라에서 유독 이런 식의 구분과 표현이 많다는 것입니다. 한 때는 "세계 3대 교향악단"이란 말이 자주 입에 오르내렸고 오래 전에는 "3대 교향곡"이니 "3대 협주곡"이란 말도 당연하게 받아들였습니다.

 

세상에 이렇듯 쉽게 나누어서 분명하게 구분지을 수 있는 일이 얼마나 될까요? 그리고 모두가 동의하거나 누구나 찬성할 수 있는 일은 또 얼마나 될까요? 호로비츠를 흠모하던 한 피아니스트가 영광스럽게도 그의 말년에 집에 초대되어 잠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기회를 가졌습니다. 이야기를 주고 받는 동안 누군가가 연주하는 피아노 소리가 라디오에서 흘러나오자 호로비츠는 '누군데 저 곡을 저렇게 엉망으로 치는지 모르겠다'며 얼굴을 찌푸렸다고 합니다. 그리고 얼마 뒤에 피아노 소리가 그치자 방송 진행자가 말하길 "지금 들으신 음악은 블라디미르 호로비츠의 연주였습니다."라고 했다는 겁니다.

 

출처 : https://www.youtube.com/watch?v=TWe-DnTMuhk


사람들의 눈과 귀가 온통 조성진에게 가 있는 동안 피아니스트 김선욱이 조용히 우리나라를 다녀갔습니다. 지금의 조성진처럼 갓 스물을 넘긴 나이에 리즈 콩쿠르 최연소 우승이라는 쾌거를 이루었고 그 사이에 꾸준한 노력으로 눈부신 성장을 거듭하더니 이번에 도이치 캄머 필과의 협연으로 들려준 슈만의 협주곡에서는 드디어 다른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는 그만의 당당하고 확고한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아직 서른이 채 되지 않은 나이에 벌써 스스로의 길을 찾아 흔들리지 않는 걸음을 옮기기 시작한 것입니다.


 ♪ 제 17회 쇼팽 국제 피아노 콩쿠르 우승자 갈라 콘서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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