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승찬 교수의 클래식 음악 이야기] 21세기 오페라의 흐름을 바꾼 소프라노 안나 네트렙코[홍승찬 교수의 클래식 음악 이야기] 21세기 오페라의 흐름을 바꾼 소프라노 안나 네트렙코

Posted at 2016.12.21 11:33 | Posted in 이건음악회 Talk Talk/홍승찬교수의 클래식 톡톡



지난 312, 우리나라 오페라 애호가들 그토록 기다렸던 소프라노 안나 네트렙코의 내한 연주회가 있었습니다. 마리아 칼라스 이후 안나 네트렙코만큼 주목받았던 소프라노가 있었나 싶습니다. 노래와 연기, 외모까지 모두 다 가졌으니 이 보다 더 좋을 순 없고 타고난 끼와 재능에다 재치와 순발력까지 갖추고도 그 의욕과 열정은 식을 줄을 모릅니다미모라면 일찍이 그 이름이 같은 안나 모포가 있었지만 노래와 연기, 무엇보다 성량이 전혀 비교할 바가 아니었고, 노래는 물론 연기만으로도 감동을 준 세기의 디바 마리아 칼라스는 평생 외모에 대한 컴플렉스를 극복하지 못했습니다. 출산을 하고 다시 나타난 지금은 불어난 몸매가 아쉽기도 하고 소리의 탄력도 예전만은 못하다고 하지만 여전히 안나 네트렙코는 이 시대를 대표하는 디바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안나 네트렙코의 존재가 지금처럼 지구촌 구석구석까지 알려진 것은 2000년대 초반 잘츠부르크 페스티발에 초청되어 도밍고가 발굴한 테너 롤란드 비야존과 몇차례 호흡을 맞추면서부터입니다. 도니제티의 "사랑의 묘약"에서 청순하지만 적극적인 성격의 시골처녀 아디나를 완벽하게 소화했고 베르디의 "트라비아타"에서는 무채색의 무대를 배경으로 새빨간 원피스를 입고 나와관능적이면서 가련하기까지 한 화류계 여인 비올레타의 강렬한 이미지를 전 세계에 각인시켰습니다.






서구의 언론들은 하나같이 팔방미인 소프라노의 출현을 반기면서 호들갑을 떨었고 "마린스키 극장에서 청소부로 일하던 한 소녀가 우연히 마에스트로 게르기에프의 눈에 띄어 일약 스타가 되었다"는 신데렐라 스토리를 만들어냈습니다. 마린스키 극장에서 청소 아르바이트를 한 것도 사실이고 게르기에프에게 발탁되어 오페라 무대에 선 것도 사실이지만 청소는 경제적인 이유 때문이 아니라 조금이라도 자주, 또 가까이서 오페라를 만드는 현장을 보고싶은 열망에서 택한 일이었고 게르기에프와 처음 호흡을 맞춘 "피가로의 결혼"의 수잔나 역은 1993년 글린카 콩쿠르에서 우승한 다음 해의 일이었습니다.




네트렙코에 열광하는 사람들은 크게 성공한 예술가들이 흔히 그런 것처럼 그 역시 어린 나이에 가수가 되려는 꿈을 품었고 피나는 노력으로 어려운 역경을 이겨내어 마침내 성공에 이르렀을 것이라 짐작하겠지만 정작 그는 누구나 부러워할 만한 환경에서 자랐습니다. 1971918일 흑해 연안의 러시아 도시 크라스노다르에서 지질학자인 아버지와 통신기술자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어려서부터 발레와 체조, 농구를 배워 수준급의 실력을 갖출 수 있었고 연극 "오셀로"를 본 이후로는 한 동안 연극 무대를 동경한 연기자 지망생이었습니다. 당연히 연극 학교에 들어가려 했지만 입학이 어려울 거라는 주변의 만류로 림스키코르사코프 음악 전문대로 방향을 틀었고 일년 만에 그 보다 더 높은 수준의 림스키코르사코프 콘서바토리에 편입했습니다. 연기자의 꿈을 접고 택한 성악가의 길에서 재능을 발견하여 오늘날에 이르렀지만 정작 그 자신은 가수가 되지 못했다면 화가가 되었을 것이라고 말하는가 하면 집안에 집시의 피가 흘러 언제나 지금과 다른 삶을 꿈꾸며 새로운 시도를 주저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아닌게 아니라 네트렙코는 데뷔 이후 지금까지 줄곧 새로운 영역과 역할에 끊임없이 도전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출산으로 잠시 공백기가 있었지만 이후 다시 나타나서는 전보다 한층 더 진지하고 성숙한 역할에 몰입하여 묵직하고 뭉클한 감동을 주고 있습니다. 특히 도니제티의 "안나 볼레나"에서 네트렙코는 헨리 8세에게 버림받는 비운의 여인 앤 볼린의 참담한 심정을 너무나도 잘 소화해서 최고의 열연으로 찬사를 받기도 했습니다.




네트렙코에 열광하는 세태를 비판하는 이들은 사람들이 빼어난 외모와 도발적인 무대 매너에 현혹되어 정작 부족한 기본기를 간과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그들의 말대로 도니제티의 "람메르무어의 루치아"와 같이 콜로라투라의 기교가 필요한 역할에서 칼라스와 그루베로바를 비교한다면 아쉬울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적어도 예술의 영역에서라면 누군가 한 사람이 모든 작품의 모든 역할을 다른 누구보다 잘한다는 건 있어서도 안되고 있을 수도 없는 일입니다. 더러는 그가 명품 광고에 자주 등장하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기기도 하고 동거와 결별, 결혼과 이혼에 이은 재혼까지 문제삼는 시각도 없지 않습니다. 말하자면 소위 말하는 유명 연예인들의 그렇고 그런 행각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이고 오페라 가수, 예술가의 품격에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러시아 사람들 중에는 그가 비인에서 살면서 오스트리아 국적을 취득한 사실에 분개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싫든 좋든 세상은 달라지고 있습니다. 인공 지능이 인류의 미래를 열어가는 시대입니다. 연예인과 예술가의 경계가 무너지고 있고 결혼이든 국적이든 개인의 선택을 두고 다른 누군가가 이렇고 저렇고 따지던 시대는 이미 아주 먼 옛날입니다. 네트렙코의 말대로 그 자신 변신을 거듭하다 무엇을 선택할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니 언니처럼 모델로 나설지도 모르는 일이고 연기자로 나서거나 그림을 그릴 수도 있습니다. 틀림 없는 사실은 세상 사람들이 뭐라 하든 네트렙코는 자신이 원하는 하루 하루의 삶을 마치 그날이 주어진 마지막 날인 것처럼 스스로를 던져 만들어갈 것이며 언제나 오늘과는 다른 내일을 꿈꾸며 살아가리라는 것입니다. 다만 그 가지를 사방으로 멀리 뻗을수록 줄기는 더욱 단단해져 그를 있게 한 러시아의 흙 속에 깊이 뿌리를 내릴 것입니다. 사회주의 소비에트 시절을 살면서 엘리트 교육의 혜택을 누렸으니 그 때를 결코 잊지는 못할 것입니다. 21세기의 카라얀을 꿈꾸는 러시아 음악계의 차르(황제) 게르기에프의 간택을 받았으니 그 또한 숙명입니다




라틴 혈통의 다정다감한 바리톤 가수 두 남자와 살다가 헤어져서 지금의 남편인 테너 유시프 에이바조프와 결혼한 것도 어쩌면 러시아어가 아니면 서로 통할 수 없는 그 무엇이 간절했는지도 모릅니다. 이미 생각보다 너무 먼 바다로 나왔으니 어느덧 지난 날이 그립고 살던 곳이 그립겠지만 누구든 한 번 시작한 시간의 항해는 돌이킬 수가 없습니다. 언제나 오늘과 다른 내일을 꿈꾸며 끊임없는 변화를 시도하는 것이 사람이지만 이미 시작된 변화를 멈출 수도, 돌이킬 수도 없는 것이 또한 사람의 운명입니다. 네트렙코가 오페라 무대에 등장한 이후 벌써 제 2, 3의 네트렙코가 그 뒤를 이으며 네트렙코의 아성을 위협하고 있는 현실 또한 그 누구도 멈추거나 돌이킬 수 없는 오페라의 흐름이고 네트렙코의 운명입니다. 소프라노 안나 네트렙고, 그는 소비에트가 길러 러시아가 자랑하는 21세기 오페라의 새로운 아이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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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영원한 겨울 나그네 피셔-디스카우] 독일 가곡의 전설이라 일컬어졌던 바리톤 디트리히 피셔-디스카우[우리들의 영원한 겨울 나그네 피셔-디스카우] 독일 가곡의 전설이라 일컬어졌던 바리톤 디트리히 피셔-디스카우

Posted at 2012.11.19 10:09 | Posted in 이건음악회 Talk Talk/홍승찬교수의 클래식 톡톡

 

 

 

홍승찬 교수의 클래식 음악(38)
[홍승찬 교수의 재미있는 클래식음악 이야기]

 

 

우리들의 영원한 겨울 나그네 피셔-디스카우

 

지난 518일 독일 가곡의 전설이라 일컬어졌던 바리톤 디트리히 피셔-디스카우가 86세를 일기로 영원히 우리 곁을 떠났습니다. 1951년 잘츠부르크 음악제에서 말러의 가곡 방황하는 젊은이의 노래를 불러 세계 음악계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던 그가 눈을 감은 날은 공교롭게도 말러가 세상을 떠난 날과 같아 혹자들은 말러의 영혼이 그를 불렀다는 말을 하기도 합니다. 말러 뿐만 아니라 지금까지 독일 가곡에 관한 한 그보다 더 넓은 레퍼토리를 소화한 성악가는 없었고 그보다 더 깊은 경지를 보여주었던 성악가도 없었습니다.

 

 

 

 

특히 슈베르트의 해석은 그 누구도 따를 수 없어 그 이전에는 물론 이후에도 아무도 넘볼 수 없는 업적을 쌓았습니다. 1964년 뉴욕의 카네기홀에서 그가 부른 슈베르트의 겨울 나그네를 듣고 정신을 잃고 쓰러진 여성들이 하나 둘이 아니었다고 하니 그의 노래가 가진 호소력이 얼마나 큰지 짐작이 가고도 남음이 있을 것입니다. 소프라노로서 독일 가곡의 최고로 평가받고 있는 엘리자베스 슈바르츠코프조차도 디스카우를 두고는 모든 것을 가지고 태어난 신과 같았다.“고 감탄하였습니다. 평생을 자중하며 절제했던 그 스스로도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너무나도 많은 것을 이루었다고 했을 정도이니 전설로 불리는 것도 당연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바리톤 디트리히 피셔-디스카우

출처 : 구글 이미지

 

 

그러나 그가 이렇듯 까마득한 업적을 이룬 것은 천부적인 재능보다 초인적인 노력에 힘입은 바가 훨씬 더 큽니다. 1925년 베를린에서 태어난 디스카우는 열여섯살부터 성악을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어려서부터 어머니로부터 피아노를 배웠고 고전문학자인 아버지가 아들의 재능을 발견하고 성악가의 길을 열어주었습니다. 2차 세계대전으로 말미암아 1943년 참전하게 된 그는 1945년 이탈리아에서 포로로 잡혀 수용소에 갇히는 신세가 되었지만 그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날마다 연습에 매달려 수용소 안에서 연주회를 열기까지 했습니다. 전쟁이 끝나고 1947년 베를린 음대에 들어가더니 얼마지 않아 다시 독일가곡으로 독창회를 가졌고 1948년 베를린 시립 오페라에 들어가 베르디의 돈 카를로의 로드리고 역을 맡아 오페라 무대에 데뷔했습니다. 그리고 그 이후부터 그의 믿을 수 없는 활약이 종횡무진 펼쳐집니다. 바이에른과 빈을 넘어 네델란드와 프랑스, 이탈리아를 거쳐 런던의 코벤트 가든과 뉴욕의 메트로폴리탄까지 무대를 넓혀 기존의 대표적인 오페라들은 물론 동시대 작곡가들의 신작 오페라까지 수많은 작품들을 섭렵하였습니다.

 

 

출처 : 구글 이미지

 

 

보통 성악가들은 오페라와 가곡, 혹은 종교음악 가운데 어느 하나에 주력하기 마련이고 그렇게 되면 나머지는 아무래도 뜸할 수밖에 없지요. 그런데 디스카우는 독일 가곡은 물론이고 오페라와 종교음악에 이르기까지 어느 하나도 다른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이 뛰어난 업적과 경지를 이루었습니다. 이렇듯 오페라 무대를 쉴 새 없이 누비는 동안에도 역사상 최초로 슈베르트 가곡 전곡을 녹음하였고 브람스와 독일레퀴엠과 바흐의 마태수난곡 등 대표적인 종교음악까지도 놓치지 않았습니다. 특히 1962년에는 2차 세계대전 때 나치 공습으로 파괴된 영국 런던의 코벤트리 성당 복원을 기념하여 초연된 벤저민 브리튼의 전쟁 레퀴엠에 독일을 대표하여 초청되는 뜻 깊은 일이 있었고 훗날 그는 "내 삶에서 가장 기념비적인 사건"이었노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신작과 초연에 대한 관심과 열의가 남달랐던 그는 1978년 오페라 무대를 떠나는 은퇴공연까지도 라이만의 신작 리어왕을 선택했습니다.

 

 

오페라 가수로 활동하던 디스카우

출처 : 구글 이미지

 

 

음악과 예술에 대한 디스카우의 끝없는 열정은 노래에만 머물지 않았습니다. 어려서부터 지휘에 관심이 있었던 그는 그토록 바쁜 일정 중에도 지휘공부를 게을리하지 않았고 1973년 마침내 오토 클렘페러를 대신하여 지휘봉을 잡는 기회를 가지게 됩니다. 그리고 성악가로서 은퇴를 선언한 1993년 이후 지휘자로서 무대에 서는 일이 많아졌습니다. 그림에도 재능이 있어 틈틈이 그린 그림들은 아마추어의 수준을 넘어섰고 저술에도 관심을 두어 19세기 독일 가곡에 대한 저서들을 출판하였습니다. 피아노 반주에도 일가견이 있어 반주자로 무대에 서기도 했는데 부인인 소프라노 율리아 바라디가 그의 어깨에 손을 얹고 노래하는 동안 돋보기를 쓰고 피아노를 치는 말년의 모습은 오래도록 사람들의 기억에 남을 것입니다. 이렇듯 너무나도 많은 분야에서 믿을 수 없을 만큼 엄청난 일들을 이루어냈으니 그의 삶에서 허투루 보낸 시간은 단 한 순간도 없었을 것입니다. 아닌게 아니라 그는 어느 인터뷰에서 연주회가 끝나고 동료들과 어울려 술자리를 가진 기억조차 없다고 했을 정도입니다.

 

 

자화상 옆에 선 피셔 디스카우

출처 : 구글 이미지

 

 

독일가곡에 관한 한 누구도 따를 수 없는 경지에 이르렀던 그였지만 무대에 오를 때마다 다른 성악가들이 부른 음반들을 전부 찾아서 듣고 또 들었다는 일화는 너무나도 유명하지요. 악보를 보기 전에 가사부터 한 음절씩 소리 내어 읽고 또 읽으며 그 뜻과 소리를 익혔을 뿐만 아니라 악보 또한 음표 하나 기호 하나 놓치지 않고 새기고 또 새겼습니다. 그렇게 정확하고 빈틈이 없으니 지휘자들마다 앞 다투어 그를 불렀고 작곡가들 또한 누구나 그에게 작품을 맡겨 무대에 올리려고 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평생을 함께 했던 반주자 제랄드 무어는 물론 외르크 데무스와 다니엘 바렌보임, 알프레드 브렌델과 스비아토슬라프 리히테르까지 당대의 최고 피아니스트들이 기꺼이 그의 반주자로 무대에 섰던 것이지요. 리히테르는 "가사에 대한 그의 태도가 까다로워서 결코 연습하기가 쉽지 않았다"고 했고, 바렌보임은 "그와 작업하면서 언어와 음악을 결합시키는 방법과 단어의 의미와 발음에 이르기까지 많은 걸 배웠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음악도 음악이지만 가사의 해석과 전달에 대한 남다른 노력과 업적으로 말미암아 그는 독일어의 품격을 한 단계 끌어올렸다는 극찬을 받기도 했으며 20세기 프랑스의 구조주의 철학자이자 비평가인 롤랑 바르트는 가사의 전달과 표현에 있어 그를 최고라고 일컫기도 했습니다.

 

 

 

슈베르트의 겨울 나그네

 

 

은퇴를 앞두고 무대에 올랐던 피셔-디스카우의 노년의 모습은 너무나도 감동적이었습니다. 언제나처럼 짧게 자른 단정한 머리칼은 어느덧 서리가 내려 백발이 되었지만 눈빛만큼은 전과 다름없이 맑고 깊었습니다. 30년도 넘었을 것 같이 낡고 빛바랜 연주복이 하나도 초라해 보이지 않을 만큼 절도 있고 기품 있는 인격은 움직임 하나 눈빛 하나로도 속속들이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가 부르는 노래는 시를 넘어 영혼의 맑고 깊은 울림이었습니다. 무엇인가를 소유하고자 날마다 허덕이는 우리와는 달리 스스로의 존재를 일깨우려 평생을 바친 수도자의 모습이었습니다. 살아 있는 동안 그가 수십 번도 더 불렀을 겨울 나그네처럼 그렇게 오래도록 우리 가슴 속에 살아 있을 것입니다.

 

 

 

글 : 홍승찬 교수
편집 : 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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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김에송
    방금 이 글을 읽으면서 클렘페러에 대해 검색해 보았는데

    디트리히 피셔-디스카우와 뭔가 많은 연관이있는것같네요...

    많이는 아닌가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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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얻고자 노래를 불렀고 사랑을 얻고자 노래를 버린 마리아 칼라스] 세계 최고의 소프라노. 불멸의 디바 마리아 칼라스[사랑을 얻고자 노래를 불렀고 사랑을 얻고자 노래를 버린 마리아 칼라스] 세계 최고의 소프라노. 불멸의 디바 마리아 칼라스

Posted at 2012.10.01 07:30 | Posted in 이건음악회 Talk Talk/홍승찬교수의 클래식 톡톡

 

 

 

 

 

 

홍승찬 교수의 클래식 음악(35)
[홍승찬 교수의 재미있는 클래식음악 이야기]

사랑을 얻고자 노래를 불렀고 사랑을 얻고자 노래를 버린 마리아 칼라스

 

 

 

불멸의 디바 마리아 칼라스

 

 

 

 

 

누군가 저에게 역사상 최고의 지휘자 한 사람을 말하라면 선뜻 대답할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최고의 피아니시스트가 누구인지 한 사람만 꼽으라고 해도 역시 말문이 막힐 것입니다. 어떻게 그 많은 거장들 가운데 오직 하나만을 골라 최고라고 하겠습니까? 그러나 최고의 소프라노 가수가 누구냐고 묻는다면 주저없이 마리아 칼라스를 꼽을 것입니다. 칼라스는 이전의 어떤 소프라노 가수와도 다르고 이후의 그 누구도 따를 수 없는 경지를 이루었습니다. 그래서 오페라 연출가이자 영화감독인 프랑코 제피렐리는 마리아 칼라스를 추억하며 음악에서 BBefore Christ가 아니라 Before Callas를 뜻한다고 했습니다. 전에는 같은 소프라노라고 해도 소리가 무겁고 어둡거나, 아니면 가볍고 밝은지에 따라 맡을 수 있는 오페라의 배역이 달랐지만 칼라스는 그 어느 것도 가리지 않고 다 소화할 수 있었고 심지어 메조 소프라노가 부르는 영역까지도 섭렵했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칼라스가 보여준 가장 큰 차이는 연기력이었고 노래와 연기를 하나로 결합시키는 놀라운 힘이었습니다. 그리하여 칼라스 이전의 오페라 가수들은 단지 노래를 부를 뿐이었다면 칼라스에 이르러 드디어 노래를 연기하는 소프라노의 탄생을 맞이하게 된 것입니다. 사람들은 칼라스만 들어서는 그 진정한 매력을 알 수 없다고 합니다. 다른 가수들의 노래를 먼저 듣고 칼라스가 부르는 같은 노래를 들어야 그 참 맛을 제대로 느낄 수 있다고 하지요. 그 만큼 그는 다른 누구와도 전혀 달랐고 그로 말미암아 어떤 소프라노도 가지 못했던 길을 홀로 걸어갔습니다.

 

 


 

그녀는 1938년 15살 때 아테네 가극장에서 데뷔하면서부터 스타가 되었다. 1952년 영국의 코벤트가든 왕립가극장에서 벨리니의 오페라 <노르마>의 주역을 맡아 대성공을 거두어 그녀의 황금 시대를 열었다. 아래에 소개하는 공연 장면은 1959년 파리에서 가진 베르디의 오페라 <일 트로바토레>의 4악장 가운데 한 장면이다.





 

 

 

그러나 역사를 바꾸어 놓은 이 불세출의 소프라노의 어린 시절은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것과 너무나도 달랐습니다. 마리아 칼라스는 1923122일 미국 뉴욕에서 그리스 이주민의 딸로 태어났습니다. 아들을 잃고 그 슬픔에서 벗어나고자 또 다시 아들을 원했던 부모의 간절한 소망을 저버렸기에 그 실망은 고스란히 죄 없이 태어난 새 생명에게로 돌아갔습니다. 또래보다 유난히 덩치가 크고 뚱뚱한데다가 지독한 근시로 두꺼운 안경까지 끼고 있었던 마리아는 늘 천덕꾸러기에다 외톨이었고 어머니의 사랑은 언제나 예쁘고 날씬한 언니의 차지였습니다. 덩치에 어울리게 목소리도 컸던 마리아가 오직 하나 사람들의 관심을 끌 수 있었던 것은 노래였습니다. 그걸 알게 되면서 칼라스는 다른 누구도 아닌 오직 어머니의 사랑을 얻고자 노래를 부르고 또 불렀습니다. 부유한 집에서 태어나 무대에서의 삶을 꿈꾸었으나 부모의 반대로 이루지 못했던 어머니는 뒤늦게 어린 딸의 재능을 발견하고 기대를 갖게 됩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그것은 딸의 행복을 위해서가 아니라 딸의 성공을 통한 대리만족이었습니다.

 

 

 

 

마리아 칼라스 (Maria Callas, 1923. 12. 2 ~ 1977. 9. 16.)

 

아버지의 약국이 경영난으로 문을 닫게 되자 이혼한 어머니는 두 딸을 데리고 그리스로 돌아갔고 마리아는 아테네 국립 음악원에 입학하여 성악을 공부하게 됩니다. 거기서 스페인의 성악가 엘비라 데 이달고를 만나 성악의 기초를 닦고 실력을 쌓아가지만 그리스의 정국이 혼란으로 치닫게 되자 1945년 아버지가 있는 미국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그해 겨울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의 오디션에 응모했지만 탈락하는 아픔을 겪게 되고 겨우 힘들게 맺은 출연계약마저 기획사가 도산하는 바람에 물거품이 되어버립니다. 그러나 같은 기획사 소속의 베이스 가수 레메니의 소개로 1947년 베로나의 아레나에서 라 지오콘다에 출연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어 유럽으로 돌아왔고 그것이 마리아 칼라스의 공식적인 데뷔 무대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바로 그 무렵 이탈리아의 부유한 사업가 지오반니 바티스타 메네기니를 만나게 되는데 그것이 칼라스의 인생에서 가장 큰 행운이었습니다. 진정으로 칼라스를 사랑했던 그는 스스로 매니저를 자처하면서 그의 모든 것을 칼라스에게 바쳤습니다. 두 사람은 동거를 거쳐 마침내 결혼에 이르렀고 메네기니의 헌신적인 사랑으로 말미암아 칼라스는 노래에만 전념하게 되어 역사상 최고의 소프라노로 등극하게 됩니다.

 

 

영원한 불멸의 디바 - 2007년, 스크린에 부활하다!


역사상 최고의 디바로 꼽히는 마리아 칼라스(화니 아르당 분)가 그녀의 공연 기획자 친구인 래리(제레미 아이언스 분)의 설득으로 은둔 생활을 접고 오페라 '카르멘'을 영화로 만들게 된다는 흥미로운 가상 이야기를 다루는 음악드라마.

 

 

 

라트라비아타, 슬픈 비극의 마지막 장면을 노래하는 마리아(1953년)

 

 

 

지난 날이여 안녕!을 노래하는 마리아(1953년 라 스칼라)

 

1956년 라 스칼라 - 라 트라비아타의 명연주(실황녹음)

 

 

 

Ah, perfido! - 1976년 3월 파리 엘리제 궁 극장에서 마지막 연주(실황)

 

 

 

영원히 살아 있는 마리아의 노래와 말을 들어보자!

1) Norma (studio, 1949)

2) Il Trovatore (Mexico City, 1950)
3) Puritani (Mexico City, 1951)
4) Macbeth (Milan, 1952)
5) La Traviata (studio, 1953)
6) Lucia di Lammermoor (Milan, 1954)
7) Andrea Chénier (Milan, 1955)
8) La Vestale (Milan, 1956)
9) Anna Bolena (Milan, 1957)
10) Medea (Dallas, 1958)
11) Il Pirata (New York, 1959)
12) Poliuto (Milan, 1960)
13) Samson et Dalila (studio, 1961)
14) Tosca (studio, 1965)

 

 

 

베로나에서 데뷔한 이후 대역으로 나선 벨리니의 오페라 청교도에서 엘비라를 열연하여 오페라의 여신이란 극찬을 받았고 마침내 세계 최고의 오페라 극장이라는 라 스칼라에서 베르디의 아이다를 불러 정상에 우뚝 섰습니다. 칼라스는 당대의 프리마 돈나 레나타 테발디를 대신하는 절호의 기회를 놓치지 않았고 이후 스칼라 극장과 멀어지게 된 테발디와는 늘 라이벌 관계로 일컬어지게 되었습니다. 테발디를 넘어 자신의 시대를 활짝 연 칼라스는 코벤트 가든과 메트로폴리탄을 비롯한 세계 정상의 오페라 극장을 하나씩 정복하면서 전성기를 구가합니다. 그리고 어느날 90킬로그램이 넘었던 체중을 28킬로그램이나 줄여서 사람들을 놀라게 했고 지나친 감량에도 불구하고 소리의 힘을 잃지 않아 또 다시 사람들을 놀라게 했습니다. 이렇듯 남달리 강한 의지를 가졌지만 동시에 지나치게 감정의 기복이 심했던 칼라스는 사소한 문제로 사람들과 부딪혀 쓸 데 없는 불화와 말썽을 일으키기도 하고 심지어는 돌연 출연을 취소하여 비난과 빈축을 사기고 했지만 그 때마다 메네기니가 나서 사태를 수습하고 전화위복의 계기를 마련했습니다.

 

 

 

 

그러나 메네기니의 이러한 헌신적인 사랑도 칼라스의 비극적인 운명을 바꿔놓지 못했습니다. 역사상 그 누구도 누리지 못했던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을 때 그리스의 선박왕 오나시스가 칼라스에게 접근했고 사랑에 눈이 먼 칼라스는 메네기니는 물론 오페라와 노래까지도 던져 버렸죠. 메네기니가 칼라스에게 그랬던 것처럼 칼라스 또한 자신의 모든 것을 오나시스에게 걸었지만 희대의 카사노바였던 오나시스의 관심은 이미 케네디 대통령의 부인인 재클린에게 가 있었고 케네디가 비명에 세상을 떠나자 끈질기고 노골적인 구애 끝에 마침내 세기의 결혼식을 올리게 됩니다. 재클린과 신혼여행을 가서도 칼라스에게 전화를 걸 만큼 비열했던 오나시스를 포기하지 못했던 칼라스는 자기에게 돌아와 달라고 애원했습니다. 그토록 원하던 아이를 가졌으나 오나시스의 변심으로 유산을 하였고 그 충격으로 자살까지 시도하였습니다. 겨우 몸과 마음을 추스려 영화 메데아에 출연하였고 줄리어드 음악원에서 학생들을 가르쳤지만 이미 허물어져버린 심신은 돌이킬 수가 없었습니다. 딸의 치료비를 마련하겠다는 당대의 테너 주세페 디 스테파노의 간절한 청을 거절하지 못하고 함께 나선 세계 순회공연은 칼라스를 아끼는 많은 사람들을 안타깝게 만들 만큼 초라하였습니다. 결국 이 무대를 끝으로 더 이상의 기력을 잃은 칼라스는 파리에서 은둔 생활을 하던 끝에 1977916일 약물과용과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테너 주세페 디 스테파노에게 기자들이 칼라스와 테발디를 비교해 달라고 하자 그는 칼라스는 여자이지만 테발디는 아니다라는 대답을 했다고 합니다. 어려서 소아마비를 앓았던 테발디는 딸을 업고 하루도 빠짐없이 먼 길을 치료받으러 다녔던 어머니의 극진한 사랑으로 이를 극복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태어나면서부터 미운 오리새끼였던 칼라스는 어머니의 사랑에 목말라 노래로 그 사랑을 얻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어쩐 일인지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란 테발디의 노래와 연기는 너무나 절제되어 있어 고상하기만 할 뿐입니다. 그와는 반대로 사랑에 굶주렸던 칼라스의 노래는 구구절절 사랑으로 넘쳐납니다. 이미 가진 사람은 절실하지가 않겠지요. 그래서 아마도 궁핍이 예술을 낳는다고 하는 것이겠지요. 가지지 못해 너무나 안타까운 마음이 애닲은 노래를 낳았을 겁니다. 그러고 보니 칼라스만이 부를 수 있다는 벨리니의 노르마는 배신당한 사랑의 아픔을 노래하고 있고 역시 누구도 따를 수 없다는 도니제티의 람메르무어의 루치아도 이루지 못한 사랑의 절망으로 미쳐버린 여인의 심정을 노래하고 있군요. 푸치니의 오페라 토스카가운데 토스카가 부르는 아리아 노래에 살고 사랑에 살고를 들으며 노래와 사랑이 삶의 전부였기에 사랑으로 노래를 부르고 노래로 사랑을 얻으려고 했던 한 여인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마리아 칼라스의 아베마리아

 

 

 

글 : 홍승찬 교수
편집 : 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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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주자의 패션감각] 많은 사람들 앞에 자신을 내보여야 하는 연주자들에게 연주복은 어떻게 발전되어 왔을까요?[연주자의 패션감각] 많은 사람들 앞에 자신을 내보여야 하는 연주자들에게 연주복은 어떻게 발전되어 왔을까요?

Posted at 2012.08.09 10:56 | Posted in 이건음악회 Talk Talk/홍승찬교수의 클래식 톡톡

 

 

 

 

홍승찬 교수의 클래식 음악(31)
[홍승찬 교수의 재미있는 클래식음악 이야기]  연주자의 패션감각

 

 

애국가의 작곡가 안익태 선생님의 연미복


옷이 날개라는 말이 있습니다. 과거에도 그랬지만 요즘처럼 외형을 중시하는 풍조에서는 더 더욱 그렇다는 생각이 듭니다. 더욱이 늘 많은 사람들 앞에 자신을 내보여야 하는 연주자들에게 연주복은 정말이지 큰 걱정거리가 아닐 수 없을 것입니다. 남성 연주자는 무조건 연미복이나 턱시도를 입어야 했던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것은 주로 여성 연주자들의 고민이었지만 세상이 달라지면서 남성 연주자들의 연주복도 엄격한 틀을 벗어나 각자의 취향과 개성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세기의 지휘자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

 

20세기의 거장 카라얀은 음반 산업의 중요성을 남보다 앞서 깨달았던 지휘자였습니다. 그리고 들려주는 음악 뿐 아니라 보여주는 모습의 중요성을 그 누구보다 잘 알았던 음악가이기도 합니다. 그는 음반뿐 아니라 영상물 제작에도 남다른 관심을 가졌고 그 덕에 지금도 그가 지휘하는 모습을 담은 영상물은 어디서나 쉽게 구할 수 있습니다. 녹화된 화면 속에서 검은 색 바지 위에 목까지 오는 검은 색 스웨터를 입고 눈을 감은 채 지휘하는 카라얀의 모습을 자주 보게 되는데요, 상체에 비해 짧고 왜소한 하체를 드러내지 않기 위해 그런 복장을 즐겼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때문에 가급적 전신이나 하반신을 드러내는 각도에서의 촬영은 피했다고 하지요.

 

 

세계 3대 첼리스트로 꼽히는 첼로의 거장, 미샤 마이스키

 

연주자들 가운데 파격적인 의상으로 주목을 끌었던 대표적인 인물을 찾으라면 아무래도 첼리스트 미샤 마이스키를 먼저 떠올리게 됩니다. 당대 최고의 실력과 더불어 그리스의 조각같이 수려한 용모로 여성 팬들의 인기를 독차지했던 그는 몸에 붙는 검은 색 바지 위에 소매와 품이 넉넉하고 잔주름이 잡힌 셔츠를 입고 무대에 등장하면 마치 신화 속의 인물이 나타난 듯 착각을 일으킬 정도였습니다. 공연의 후반부에는 다른 색상의 셔츠를 갈아입곤 하는데 그 의상이 모두 일본의 세계적인 디자이너 이세이 미야자케의 작품이라고 해서 더욱 음악 애호가들의 관심을 끌기도 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소프라노 조수미가 연주회마다 앙드레 김이 디자인한 연주복을 입고 무대에 오르고 있습니다. 전부터 유명 연주가들의 연주회마다 모습을 보이면서 음악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남다른 것으로 알려진 앙드레 김은 좋아하는 연주자들의 연주복을 만들어주기도 하는데, 최근에는 피아니스트 김선욱에게 선물한 특이한 연주복이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기도 했습니다. 생 텍쥐 베리의 소설 어린 왕자의 삽화에서 본 듯한 복장으로 무대에 등장한 김선욱의 표정과 몸짓은 잠시 겸연쩍고 쑥스러운 듯 어색해보였지만 곧 음악에 몰입하여 성숙하고 열정적인 연주를 펼쳐보였습니다.

 

 

자신만의 시각적 이미지가 확고한 지휘자 금난새

 

우리나라 연주자들 가운데 패션 감각에서 으뜸을 꼽으라면 지휘자 금난새를 가장 먼저 떠올리게 됩니다. 검정색이나 짙은 회색 계열의 색상에 겉으로 보기에는 일상적인 수트와 별 차이가 없어 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세부적인 디자인에서 단추와 재봉선에 이르기까지 섬세하게 다르면서 꼼꼼하게 마무리 한 특별한 의상입니다. 그리고 늘 초록색 계통의 타이에다 같은 색 계통의 소품으로 포인트를 줌으로써 자신만의 시각적 이미지를 확실하고 각인시키고 있는 점이야말로 실로 감탄스러울 정도입니다.

 

 

 

지금까지 무대에서 만난 연주자들 가운데 뛰어난 패션 감각으로 가장 뚜렷하고 오래도록 지워지지 않는 인상을 심어준 음악가라면 단연 피아니스트 장 이브 티보데를 꼽아야 할 것 같습니다. 언제인지 정확하게 기억할 수는 없지만 LG 아트 홀에서 들었던 그의 연주와 그 때 보았던 그의 모습은 절대로 잊을 수 없을 정도로 감동적이었고 파격적이었습니다. 눈부시게 밝은 금발과 하얀 피부에 흠잡을 데 없이 빼어난 용모부터가 여성 팬들을 매료시켰고 초인적인 기교에다 폭발적인 힘이 없으면 엄두도 낼 수 없는 리스트의 난곡들을 어루만지듯이, 혹은 노래하듯이 너무나도 부드럽고 편안하게 풀어헤치는 연주는 청중들의 넋을 송두리째 빼앗아버렸습니다. 그의 모습과 음악은 무척이나 섬세하여 부서지기 쉽지만 아무나 범접할 수 없는 고아한 품격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리스트가 작곡한 베르디의 오페라 리골레토의 주제에 의한 패러프레이즈에서 그는 어느 성악가가 부르는 노래보다 더 노래답고 더 아름다운 선율을 가슴이 멍들도록 흐느끼며 노래했습니다. 그의 타고난 감각과 뿌리칠 수 없는 매력은 그것이 전부가 아니었습니다. 몸매를 자연스럽게 감싸면서 어깨로부터 떨어지는 선이 부드러운 듯 빈틈이 없었던 검은 색 연미복은 눈부신 그의 외모를 더욱 더 돋보이게 했고 빳빳하게 풀을 먹인 하얀 드레스 셔츠에 빨간 색 나비 넥타이와 역시 빨간 바탕에 금박 실로 화려하게 수를 놓은 조끼는 너무나 파격적이었지만 너무나 아름다워 입을 다물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피아노 의자에 앉았을 때 살짝 올라간 바지 끝단 아래로 살짝 드러난 빨간 양말은 청중들의 탄성을 절로 자아내게 했습니다.

 

 

 

물론 눈에 보이는 복장이나 외모가 들리는 음악보다 중요할 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보이는 것 때문에 들리는 것이 달라질 수야 없겠지요. 그러나 들리는 것만큼 보이는 것도 좋다면, 그래서 보기에도, 듣기에도 다 좋은 연주회라면 듣기에만 좋은 연주회보다야 당연히 더 낫겠지요. 옷은 자신을 돋보이게 하는 수단이기 전에 상대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가 아닌가 싶습니다. 상대를 배려하고 존중해서 그런 마음을 보이고 싶다면 옷차림부터 신경을 쓰고 가다듬는 것이 우선이겠지요. 일상에서의 만남부터가 이렇다면 무대에 나서서 청중들을 대하는 예술가의 입장이야 더 말할 필요가 없을 것 같습니다.

 

글 : 홍승찬 교수
편집 : 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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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승찬 교수의 재미있는 클래식음악 이야기] 조수미의 추억. 항상 당당했던 그녀였기에... 그 용기와 배짱으로 다시 한번 세계를 놀라게 할 것입니다.[홍승찬 교수의 재미있는 클래식음악 이야기] 조수미의 추억. 항상 당당했던 그녀였기에... 그 용기와 배짱으로 다시 한번 세계를 놀라게 할 것입니다.

Posted at 2012.05.22 11:44 | Posted in 이건음악회 Talk Talk/홍승찬교수의 클래식 톡톡

 

 

홍승찬 교수의 클래식 음악(19)
조수미의 추억

 

 


 

30년 전 쯤의 어느 나른한 오후, 4동 대형 강의실에서 있었던 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음대, 미대 학생들이 함께 국민윤리를 듣는 시간이었지요. 뻔한 내용이라 듣는 학생들은 물론이고 강의하는 젊은 시간강사 선생님도 따분하기는 마찬가지였던 모양입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조는 학생들이 하나 둘씩 늘어나자 강단에 섰던 그 강사 선생님이 갑자기 책을 덮고 강의를 중단하더니 학생들을 향해 뜬금없는 제안을 했습니다. 어차피 강의를 계속해도 들을 사람도 없을 것 같으니 누군가 나와서 나머지 수업시간을 때워보라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지원자가 없다면 별 수 없이 강의로 남은 시간을 채울 수밖에 없다는 말을 덧붙였지요. 그 안에 있던 누구나 솔깃할 수밖에 없는 제안이었지만 누구도 자신이 없어 선뜻 나서질 못하고 있는데, 강의실 뒤에서 강단 앞으로 성큼 성큼 다가가는 누군가가 있었습니다. 그 여학생은 잠시도 주저함이 없이 피아노 앞에 앉더니 당시 우리 세대가 즐겨들었던 팝송을 비롯한 여러 장르의 수많은 노래들을 자신의 피아노 반주로 물 흐르는 듯 계속 이어서 불렀습니다. 남은 수업 시간이 꽤 길었을 텐데 순식간에 다 지나간 것처럼 느꼈던 것은 모두들 그의 노래에 넋이 나가 정신이 없었던 탓이었겠지요. 그 용감하고 당당했던 여학생의 이름은 조수경이었고, 지금은 세계 어디서나 그를 조수미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같은 음악대학이었지만 전공이 달라 서로 길게 말을 섞어 본 기억은 없습니다. 그러나 함께 여러 강의들을 들으면서 인상적이었던 것은 스스로 관심이나 흥미가 있는 과목을 들을 때의 태도와 그렇지 않은 수업에 임하는 자세가 하늘과 땅만큼이나 달랐다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싫고 좋고가 너무나 분명하고 스스로의 생각이나 느낌을 전혀 감추거나 숨기려 들지 않았던 것이지요. 조수미에 대한 학창시절의 기억은 그 정도가 전부인 셈입니다. 그리고 그에 대한 이후의 기억은 무대에서의 모습뿐이니 각별히 그를 아끼는 수많은 애호가들에 비하면 내세울 것도 없습니다. 다만 유학을 떠난 이후 처음으로 가졌던 내한 연주회의 인상적인 레퍼토리와 그것을 통해 보여주었던 엄청난 자신감과 여유만큼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그토록 고대했던 고국에서의 무대였을 텐데 어쩌면 그렇게 느긋할 수 있을까 싶었습니다. 당장에 듣기 좋은 베르디부터 부르고 금방 가슴에 와 닿는 푸치니도 연기하고 싶었을 텐데 롯시니와 도니제티, 벨리니를 가지고 무대에 나선 그의 용기와 배짱이 너무나 감탄스러웠습니다. 오페라 무대에 서려는 성악도라면 반드시 다져야 할 기초이면서 누구나 다 그냥 넘어가고 싶고 사실 대부분 하는 척만 하다가 슬쩍 지나쳐 버리고 마는 그 어렵고 힘든 과정들을 하나도 빠트리지 않고 다 섭렵하겠다는 의지의 표명이었겠지요. 그리고 그만큼 큰 그림을 그려놓고 하나씩 차근차근 이루어가겠다는 여유와 자신감이었을 것입니다. 부르는 사람의 입장에서 정말이지 지긋지긋하고 공포스러울 수밖에 없는 그 난곡들을 너무나 정확하고 완벽하면서 느긋하게까지 부르는 모습을 보면서 얼마나 많은 기대를 하고 또 얼마나 많은 가능성을 점쳤는지 모릅니다.

 

 

 

 

소프라노 조수미는 지금도 충분히 세계적이지만 그것만으로는 만족할 수 없을 만큼 가진 것이 많습니다. 전 세계를 통 털어 밤의 여왕을 제대로 소화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소프라노라는 것도 무척이나 자랑스럽지만 그것도 한 때로 족할 따름이지요. 단지 키가 작아서, 아니면 도저히 서양인으로 보일 수가 없는 외모 때문에 하고 싶은 배역을 잡을 수가 없다면 그에게 맞는 다른 가능성을 찾아야 할 것입니다. 오페라가 아니면 어떻습니까. 조수미가 잘 부를 수 있는 우리나라 노래를 잘 골라서 세계무대에 내놓고 함께 자랑하는 것도 좋겠지요. 이 참에 조수미를 염두에 두고 새로 노래를 만드는 건 어떨까요. 잘만 만든다면 작곡가까지 더불어 유명해질 수도 있을 겁니다.

 

 

 

슈베르트 아베 마리아 조수미

 

조수미를 발탁했던 대지휘자 카라얀이 좀 더 오래 살았더라면 그에게 지금보다 더 많은 기회가 주어졌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보다 이제는 우리 손으로 잘 다듬고 가꾸어서 다시 세계에 자랑해야 할 때가 아닌가 싶습니다. 조수미만이 유독 더 뛰어나다는 것이 아니라 그만이 가진 가능성을 충분히 살려서 우리 모두가 함께 보람과 긍지로 삼자는 것입니다.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는 오스트레일리아 출신의 프리마돈나 존 서덜랜드를 책임자로 불러들여 서로의 가능성과 기회를 최대한 살리는 방법을 택했고 이탈리아가 배출한 불세출의 테너 루치아노 파바로티는 로마 월드컵을 계기로 쓰리 테너공연을 성사시킴으로써 20세기 최고의 문화상품을 만들어낼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우리에게는 아직도 그런 사례가 없습니다. 그러자고 뜻을 모았던 윤이상 음악제가 슬그머니 통영 국제 음악제로 바뀌었고 그나마 음악제의 한 부분으로 시작한 국제 콩쿠르는 엉뚱하게 경남 국제 음악 콩쿠르가 되어버렸습니다.

 

 

조수미도 지금쯤은 많이 지쳐 있을 것입니다. 열심히 연습해서 노래만 잘하면 되는 줄 알았는데 그것만이 다가 아니라는 걸 뼈저리게 느끼고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물론 전에도 짐작했겠지만 이만큼 복잡하고 어려운 줄은 미처 몰랐을 것입니다. 그래서 힘들고 그래서 더 외롭겠지요. 그러니 어쩌면 이쯤에서 멈추고 편하게 누리려는 생각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사람들은 좋아라고 난리들이겠지만 무대와 객석에 불이 꺼지고 나면 조수미는 또 다시 홀로 남게 됩니다. 28년 전, 강단 앞으로 성큼 나섰던 그 용기와 배짱으로 다시 한번 세계를 놀라게 할 무엇인가를 해내기를 기다려봅니다. 첫 번째 내한연주에서 보여주었던 그 자신감으로 말입니다. 기다리지만 말고 응원을 해야겠지요. 응원보다는 함께 머리를 맞대고 방법을 찾아보는 것은 어떨까요?

 

 

 

조수미 - 나 가거든 [Jo Sumi - If I leave] MV 'The Lost Empire' 明成皇后 [HD]

 

조수미 - 나 가거든 [Jo Sumi - If I leave]
MV 'The Lost Empire' 明成皇后 [HD]

최소한 역사에 대해서 만큼은 깨어나야한다...
을미사변의 진실은 과연 무었인가?
아니 그 이전에 우리의 역사관과 교육은 어떠한가?

 

 

글 : 홍승찬 교수
편집 : 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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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chipchic
    어릴적 조수미씨 따라하다 목만 쉬어버린 기억이 나네요.. 맹장 수술로 입원 중이라는데 빠른 쾌유를 빕니다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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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나타, 포르테, 액센트의 차이는... 가격차이??? 일상에서 쓰이는 클래식 용어를 찾아서~소나타, 포르테, 액센트의 차이는... 가격차이??? 일상에서 쓰이는 클래식 용어를 찾아서~

Posted at 2011.10.09 19:25 | Posted in 이건음악회 Talk Talk/클래식 톡톡


일상 생활에서 우리는 의외로 많은 클래식 용어를 사용합니다.
세레나데, 소나타, 칸타타, 랩소디, 칸타빌레, 아다지오, 알레그레토, 피아니시모 등등...
의외로 이 중에서 우리가 들어본 용어들이 많이 있습니다.



소나타, 포르테, 엑센트... 바로 자동차 이름으로 쓰이고 있고요...
칸타타모 커피 브랜드 이름으로 쓰이고 있죠.

여하튼 어떤 뜻인지 잘 알듯 모를듯 한 이 용어들...



일단 가볍게 시작 하도록 하겠습니다.

소나타(Sonata)
여러 악장으로 이루어진 기악을 위한 독주곡 또는 실내악을 의미합니다.


 

베토벤의 달빛 소나타(월광 소나타)


 

칸타타(Cantata)
성악곡의 하나로 악기 반주가 동반되는 악곡의 형식이며 '노래한다'라는 뜻의 이탈리아어에서 유래하며 소나타와 반대되는 말로 쓰입니다.


그라시아스 합창단 2009 크리스마스 칸타타 어린이 율동(이제 곧 12월... 크리스마스죠. 아직 멀었나... ㅜㅜ)

아리아(Aria)
노래(air)라는 뜻으로 오라토리아, 오페라등 대규모 성악 작품에서 주인공의 독창 부분을 말합니다.

카덴차(Cadenza)
협주곡에서 오케스트라 연주가 멈추면서 독주자 혼자 기량을 선보이는 부분, 원래는 연주가가 즉흥적으로 해야 되나 작곡가가 써 넣는 경우가 많습니다.


Leo BROUWER: "Cadenza" from GISMONTIANA from GuitArt Intern. Group on Vimeo.

Leo BROUWER: "Cadenza" from GISMONTIANA



레퀴엠(Requiem)
라틴어 '안식(requies)'에서 유레한 말.
죽은 사람을 위한 미사에 연주되는 무겁고 침울한 예식 음악.
진혼곡이라고도 합니다.



미뉴에트(Minuet)
menu(작은) 이라는 말에서 유래.
우아한 3박자의 프랑스 춤곡으로 루이 14세가 베르사유 무도회에서 처음으로 추었다고 합니다.





비제_아를르의 여인_미뉴에트


스케르초(Scherzo)
고전주의 시대에는 미뉴에트 악장이 주로 사용되었다면, 이후 시대에는 스케르초가 미뉴에트를 대신하였습니다.

세레나데(Serenade)
소야곡(小夜曲)
저녁에 식사 후에 가볍게 모여서 듣는 짧은 여러개의 악장으로 이루어진 소규모의 관현악곡을 일컫습니다.





Schubert "Serenade"

디베르티멘토(Divertimento)

사교모임을 위해 야외에서 연주되는 여러 개의 악장으로 이루어진 소규모의 관현악곡, 세레나데와 형식이 비슷합니다.



서곡(Overture)
오페라, 발레 무대에서 막이 오르기 전에 오케스트라가 먼저 연주하는 음악.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 <베릴리아의 이발사>, <카르멘> 등...

랩소디(Rhapsody)
본 뜻은 서사시의 한 부분이라는 뜻이나 일정한 형식을 따르지 않는 자유분방한 환상곡을 가리킴.
민요등의 단순한 주제로 민속적 색채를 가진 것이 많습니다.
리스트의 <헝가리 광시곡>, 랄로의 <노르웨이 광시곡> 등이 있습니다.



Martha Argerich plays Brahms Rhapsody in B minor



벨 칸토(Bel Canto)
이탈리아어로 '아름다운 노래'라는 뜻 입니다.
가사 내용의 전달보다는 소리 자체의 아름다움이나 성악가의 기교를 발휘활 수 있도록 만들어진 노래입니다.



콜로라투라(Coloratura)
고음의 빠르고 기교적인 선율을 처리하는 소프라노의 한 종류, 또는 그 창법을 가리킵니다.

아직 클래식 용어를 모두 소개해 드린 것이 아닙니다.
앞으로도 보다 많은 클래식 용어를 찾아서 소개해 드리도록 노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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