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승찬 교수의 클래식 음악 이야기] 오스트리아 빈 필의 신년음악회[홍승찬 교수의 클래식 음악 이야기] 오스트리아 빈 필의 신년음악회

Posted at 2018.01.26 14:59 | Posted in 이건음악회 Talk Talk/홍승찬교수의 클래식 톡톡

 

우리나라 오케스트라 연주회에서 앙코르곡으로 가장 많이 연주되는 곡이 무엇일까요? 요한 슈트라우스 1세가 작곡한 라데츠키 행진곡입니다. 이 곡을 연주할 때면 음악이 흐르는 중간에 지휘자가 청중을 향해 돌아서서 지휘를 하고, 청중은 지휘자의 동작과 음악에 맞춰 박수를 치기 마련입니다. 아마 여러분도 연주회장에서 한번쯤 이런 경험을 하신 적이 있으실 지도 모르겠습니다.

 

출처 : https://www.youtube.com/watch?v=gFYnRqV4p4w


그렇다면 이 곡이 앙코르곡으로 널리 사랑받게 된 것은 언제부터일까요? 해마다 11일 정오에 빈 음악협회 대강당에서 열리는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신년음악회가 TV 전파를 타고 우리나라 안방에 소개되면서부터입니다. 빈 필은 신년음악회 때마다 이곡을 앙코르곡으로 연주합니다. 지휘자가 객석을 향해 지휘를 하고 청중들이 음악에 맞춰 박수를 치는 모습은 사실 빈 필에서 시작된 광경입니다. 이런 빈 필의 전통이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도 좋은 인상을 남겼던 것입니다.



하지만 라데츠키 행진곡이 만들어진 사연을 들여다보면, 우리도 빈 사람들처럼도 마냥 신나서 따라 하기에는 조금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습니다. 이 곡의 제목이 된 라데츠키는 오스트리아 영토였던 북부 이탈리아의 독립운동을 진압한 장군입니다. 18483, 부패한 메테르니히 전제정권을 타도하기 위해 시민혁명이 일어나자, 당시 정부의 편에 섰던 요한 슈트라우스는 정부군의 사기를 고취하기 위해 라데츠키의 이름을 붙여 이곡을 작곡했습니다. 이 때문에 그는 반혁명적인 작곡가로 낙인찍혀 한때 빈을 떠나 잠시 런던에서 살기도 했습니다. 오늘날에는 오스트리아 사람들의 씩씩한 기상을 드러내는 행진곡으로 사랑받고 있지만, 이탈리아 사람들에게는 달갑지 않은 곡임에 틀림없습니다. 일제강점기를 겪은 우리의 역사를 돌이켜 봐도 조금 찝찝한 마음이 드는 것은 사실입니다.

 

요한스트라우스(출처 :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Johann_Strauss_jr_anni_60.JPG)


사실 라데츠키 행진곡을 빼면 빈 필 신년음악회에서 자주 연주되는 곡들은 왈츠가 대부분입니다. 그렇다면 빈 필이, 아니 빈 사람들이 그토록 왈츠를 좋아하는 까닭은 무엇일까요? 8세기가 미뉴에트의 시대였다면 19세기는 왈츠의 시대였습니다. 왈츠는 오스트리아 농민들이 즐겨 추던 랜틀러에서 비롯되었다고 합니다.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에서 마리아와 대령이 무도회장 밖에서 추는 이 춤이 바로 랜틀러입니다. 왈츠의 유행은 마치 전염병처럼 온 유럽을 휩쓸었습니다. 왕족이나 귀족들 말고도 여유가 생긴 중산층과 시민계급이 무도회를 드나들었던 것도 이유였지만, 더 중요한 것은 남녀가 함께 추는 사교춤의 역사에서, 처음으로 본격적인 신체접촉이 가능했기 때문이라는 말도 있습니다. 또한 오스트리아의 재상 메테르니히가 의도적으로 왈츠의 열기를 고조시켰다는 설도 있습니다. 나폴레옹 이후 유럽의 질서를 재편하기 위해 오스트리아 빈에 모인 각국 대표들을 날마다 무도회에 초대해 왈츠에 빠져들게 함으로써, 자신이 의도한 대로 회의를 이끌어가려 했다는 겁니다.

 

출처 : http://www.dancearchives.net/2012/04/26/viennese-waltz-please-use-the-right-music-from-michael-herdlitzka/

 

미뉴에트가 그랬던 것처럼 왈츠 역시 춤곡으로 뿐만 아니라 기악곡으로 따로 작곡되어 오늘날까지 많은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쇼팽이 피아노 소품으로 작곡한 '강아지 왈츠'는 마치 장난을 치는 강아지의 재빠른 움직임을 묘사한 듯 경쾌합니다. 라벨이 작곡한 왈츠 "라 발스"는 장엄하면서도 풍자적인 느낌을 주는가 하면, 시벨리우스의 '슬픈 왈츠'처럼 흐느끼는 듯한 왈츠도 있습니다. 이처럼 왈츠는 너무나도 다양한 느낌과 감흥으로 오늘날까지도 우리들 가슴 속에 살아 숨 쉬고 있습니다.

 


왈츠로 몸살을 알았던 그 시절 유럽에서는 시골의 농부들조차 과년한 딸이 시집을 가지 못해 고민이라면 주저 없이 무도회를 열었습니다. 인근의 총각들을 다 불러들여 노처녀 딸과 만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하는 겁니다. 서로 길게 이야기를 나누지 않아도 손과 손을 맞잡고 음악이 이끄는 대로 춤을 추다보면 서로의 성격과 서로에 대한 마음을 느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여유 있는 집안에서 손님들을 부르는 자리라면 당연히 무도회가 빠질 수 없었습니다. 사람들을 초대해 먼저 다이닝룸에서 안주인이 마련한 만찬을 맛본 뒤, 식사가 끝나면 볼룸으로 자리를 옮겨 무도회를 벌였습니다. 사람들은 그렇게 너나없이 무도회를 즐겼습니다. 그러니 발레는 물론이고 오페라에서도 무도회 장면이 빠지지 않는 것입니다. 심지어 차이코프스키의 오페라 '예프게니 오네긴'에는 무도회 장면이 두 번이나 등장합니다.

사람들이 이토록 왈츠를 사랑했던 데에는 악보에 다 담을 수 없는 짜릿함도 한 몫 했습니다. 세 박자 가운데 두 번째 박자가 살짝 앞으로 당겨지는 느낌인데 한 번이라도 제대로 왈츠를 춰보면 몸으로 바로 그 느낌을 알 수 있을 겁니다. 하나, , , 이렇게 원을 그리면서 돌게 되면 당연히 시작은 당겨지고, 그 뒤는 쳐지기 마련이니 그렇게 흐르는 음악에 몸을 싣고 리듬을 타다 보면 나도 모르게 신이 나고 흥이 나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빈 필이 연주하는 왈츠의 리듬은 다른 나라, 다른 도시의 오케스트라의 그것과는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1941년 지휘자, 클레멘스 크라우스에 의해 시작되어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신년음악회는 빈에서 태어나 자랐거나, 빈에서 활동하고 널리 사랑받았던 작곡가들의 작품을 주로 연주합니다. 왈츠의 시대를 활짝 열어 '왈츠의 아버지'라 불리는 요한 슈트라우스 1세와, 그 아들들인 요한 슈트라우스 2, 요제프 슈트라우스, 에두아르트 슈트라우스, 그리고 요제프 라너와 칼 미하엘 치러 등의 작곡가들이 대표적이고 여기에 빈 필의 창립자였던 오토 니콜라이의 오페라 '윈저의 명랑한 아낙네들' 서곡이 포함되기도 합니다. 물론 그중에서도 가장 많이, 또 자주 그 작품이 연주되는 작곡가는 단연, '왈츠의 황제'로 불리는 요한 슈트라우스 2세입니다.

 

출처 : http://www.daeguoperahouse.org


그의 작품들 가운데서도 특히 왈츠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는 그의 아버지 요한 슈트라우스 1세가 작곡한 '라데츠키 행진곡'과 더불어 거의 해마다 거르지 않고 연주되는 곡입니다. 라데츠키 행진곡을 연주할 때 청중들이 박자에 맞춰 박수를 치는 것이 전통인 것처럼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 연주 직전, 지휘자와 빈 필 단원들이 청중들에게 새해인사를 건넨 다음 연주를 시작하는 것이 관례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많은 요한 슈트라우스의 주옥같은 왈츠 곡들 가운데 왜 하필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를 해마다 연주하는 것일까요? 1866, 오스트리아는 독일의 신흥강국, 프로이센과 전쟁을 치렀지만 치욕스럽게도 불과 7주 만에 대패하고 말았습니다. 한 때 프랑스와 더불어 유럽의 운명을 쥐락펴락 했던 오스트리아로서는 너무나도 충격적인 패배였기에 국민들의 수치심과 상실감 또한 클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렇듯 절망에 빠진 동포들의 상처를 달래고 사기를 북돋우고자 빈 남성합창단은 시민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고 있던 요한 슈트라우스 2세에게 작곡을 의뢰했고 그 결과, 합창으로 노래하는 왈츠,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가 탄생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기대와는 달리 18672월에 있었던 초연은 그다지 성공적이지 못했습니다. 그러자 같은 해 파리에서 열린 만국박람회에서 슈트라우스는 합창을 빼고 관현악으로만 연주하는 개정판을 선보였고 사람들의 반응은 열광적이었습니다. 그 때문에 이후로는 관현악으로 연주하는 개정판이 주로 연주되었고 날이 갈수록 그 호응과 명성은 높아만 갔습니다.

 


당시 이 곡의 인기가 얼마나 대단했던지 다음과 같은 일화가 전해지고 있습니다. 어느 날 요한 슈트라우스의 부인이 브람스를 만나 사인을 부탁하자 브람스는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의 몇 마디를 음표로 그린 다음, '불행하게도 브람스의 작품이 아님' 이란 말을 덧붙였다고 합니다. 이 곡은 브람스뿐 아니라 오스트리아 국민 모두의 마음에 깊이 새겨졌고, 오늘날에는 전 세계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이 곡은 빈 필의 신년음악회 중계를 통해 널리 알려졌지만 언제부터인가 새해벽두에 안방에서 TV로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를 들으며 벅차오르는 감동으로 한해를 시작하던 일상은 슬그머니 사라져버렸습니다. 방송이 온통 시청률과 그에 따른 광고수입에 매달리면서부터 빈 필의 신년음악회를 더 이상 볼 수가 없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빈 필의 신년음악회가 우리에게 안겨주는 위로와 희망의 메시지를 결코 잊을 수 없었던 누군가가 앞장 서 다른 방법을 찾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얼마 전부터 몇몇 영화상영관에 따로 빈 필의 신년음악회를 스크린으로 중계하기 시작하더니 지금은 전국으로 그 규모가 확산되고 있습니다.

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41년 시작된 빈 필의 신년음악회는, 윈치 않는 전쟁의 악몽으로 괴로워하던 오스트리아 국민들의 마음을 음악으로 위로해주었습니다. 그리고 전쟁이 끝나자 폐허 속에서 무너져 내린 사람들의 상처를 어루만지며 다시금 일어설 희망을 심어주었습니다. 신년음악회를 보고 있노라면 '음악이, 그리고 예술이 우리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이 바로 위로'라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됩니다. 새롭게 시작하는 올 한해 역시 여러분 모두 음악으로부터 위로를 받고, 또 음악으로 서로를 위로할 수 있기를 바라고 또 바랍니다.

 

출처 : http://classictong.com/artist/2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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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앙코르] 예술의 전당 음악당에서 있었던 피아니스트 예프게니 키신의 연주회[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앙코르] 예술의 전당 음악당에서 있었던 피아니스트 예프게니 키신의 연주회

Posted at 2012.08.01 07:30 | Posted in 이건음악회 Talk Talk/홍승찬교수의 클래식 톡톡

 

 

 

홍승찬 교수의 클래식 음악(29)
[홍승찬 교수의 재미있는 클래식음악 이야기]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앙코르

 

 

 


예술의 전당 음악당에서 있었던 피아니스트 예프게니 키신의 연주회는 지금까지도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고 앞으로도 두고두고 기억될 것 같습니다. 벌써부터 티켓이 매진되어 팬들의 기대와 성원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지만 연주회가 끝나고 앙코르곡만 10곡을 연주할 것이라고는 아무도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쇼팽의 녹턴으로 시작한 이날의 앙코르 순서는 마지막으로 연주한 모차르트의 터키 행진곡까지 모두 1시간 40여분이나 경과되었고 그 후로도 사인회가 한참이나 더 이어졌습니다. 1988년 오페라 사랑의 묘약에서 남몰래 흐르는 눈물을 불렀던 루치아노 파바로티가 무려 165번의 커튼콜을 받음으로써 이 부문 최고의 기록을 세웠지만 소요시간은 1시간 7분이었고 피아니스트 루돌프 제르킨이 베를린 데뷔 연주회에서 앙코르곡으로 연주했던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1시간 30분을 넘지 않았으니 키신이 이번 내한연주회에서 기록한 1시간 40여분의 앙코르 시간은 예사롭게 넘길 일이 아닌 듯합니다.

 

 

예술의전당 최고 관객동원 공연, 예프게니 키신

 

예술의전당 상반기 결산 관객현황 자료에 따르면 예프게니 키신 공연이 1위, 관객 2,391명이 관람한 2월27일 콘서트홀 공연 '리처드 용재오닐 바로크 콘서트'가 2위를 차지했다.(2009년)

 

물론 앙코르의 감동이 시간에 좌우되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말년에 뉴욕 필을 떠나 비인 필과 자주 호흡을 맞추었던 지휘자 레너드 번스타인은 비인에서 있었던 어느 연주회에서 앙코르곡으로 요한 슈트라우스의 왈츠를 연주했습니다. 박수와 환호 속에서 무대 앞으로 나온 그는 뜻밖에도 악장을 일으켜서 악단을 이끌게 하고 정작 자신은 지휘봉을 접고 청중과 함께 음악을 감상했습니다. 말하자면 왈츠는 당신네들 음악이니 당신들이 알아서 연주하라는 뜻이었고 단원들과 청중들은 노대가의 겸손한 자세에 존경의 박수를 바쳤습니다.

 

 레너드 번스타인,Leonard Bernstein (August 25, 1918 – October 14, 1990)

 

서거 직전 처음이자 마지막 내한연주회를 가졌던 스비아토슬라브 리히테르는 앙코르 아닌 앙코르 연주로 우리 청중들의 혼을 쏙 빼놓기도 했습니다. 청중들이 연주에 너무나도 몰입한 나머지 소품들로 이어진 후반부 순서가 미처 다 끝나기도 전에 박수와 환호가 끊어지지 않았고 리히테르는 어쩔 수 없이 들어갔다 나왔다가를 반복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이후 남은 소품 한 곡 한 곡이 끝날 때마다 같은 상황이 되풀이되었고 그래서 결국은 단 한 곡의 앙코르곡도 연주하지 않았으면서도 마치 여러 곡의 앙코르를 연주하는 것과 같은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졌던 것입니다. 우리 연주자들 가운데는 비올리스트 김상진과 피아니스트 강충모의 앙코르곡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습니다. 김상진은 어느 연주회의 앙코르 순서에서 활을 놓고 비올라만 들고 나와서는 마치 기타를 다루듯이 손가락으로 줄을 뜯어 멋진 연주를 들려주었고 강충모는 바흐 전곡 시리즈 가운데 한 연주회에서 대중가요의 선율을 바흐풍으로 직접 편곡하여 들려줌으로써 스스로의 또 다른 음악적 감각과 능력으로 청중들을 감동시키기도 했습니다.

 

 

스비아토슬라프 리히터, Sviatoslav Teofilovich Richter (1915~1997)

 

그러나 이 모든 앙코르들 가운데 가장 최고의 감동을 전해준 것을 꼽으라면 단연 바리톤 셰릴 밀른스의 내한 연주회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메트로폴리탄의 간판 가수였던 그는 은퇴를 기념하는 세계 순회공연을 마련하였고 그 일정 중에 우리나라를 방문하여 예술의 전당에서 독창회를 가졌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혼신의 힘을 다해 따뜻하고 편안한 분위기 속에서 연주회를 마친 이 거장에게 앙코르 순서는 너무나도 당연한 것이었지만 이어진 광경은 너무나도 뜻밖이었고 너무나도 감동적이었습니다.

 

 

Sherrill Milnes
쉐릴 밀른스

출생: 1935/01/10, Downers Grove, Illinois, America

 

키가 크고 체격이 잘 빠진 밀른스가 나타나기를 기대하며 박수를 그치지 않는 청중들 앞에 그와는 대조적으로 키가 작고 배가 나온 데다가 머리카락까지 빠져 볼품이 없는 반주자가 악보도 없이 빈손으로 당당하게 무대 앞으로 걸어 나오는 것이었습니다. 그의 뒤를 나타난 밀른스는 전과는 달리 허리를 굽히고 조심스럽게 걸어 나오면서 연신 거들먹거리는 반주자의 눈치를 살피면서 비위를 맞추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반주자의 손에 들려 있어야 할 악보가 그의 손에 들려 있었습니다. 그 때까지만 해도 설마 했던 일이 드디어 벌어졌습니다. 반주자가 노래를 하고 밀른스가 반주를 하는 광경이 펼쳐진 것입니다. 청중을 즐겁게 하려고 몸짓과 표정은 우스꽝스러웠지만 노래와 반주는 그 어느 하나도 흠잡을 데가 없이 훌륭하고 진지했습니다. 밀른스의 반주는 그 어느 피아니스트 못지않았고 반주자의 목소리는 그 어떤 테너 가수보다 아름다웠습니다. 이날 청중들은 음악에 감동하고 뜻하지 않은 해프닝에 더 없이 즐거워했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오랫동안 뭉클했던 마음이 사라지지 않는 것은 평생을 함께 동고동락한 음악동료이자 동지에 대한 감사와 존경을 이렇게 표현하고자 한 밀른스의 따뜻하고 넉넉한 마음 때문이었습니다.

 

 

 

글 : 홍승찬 교수
편집 : 신이다

 

 

 

 

 

  1. 상상을 뛰어넘는 앙코르 에피소드들이 클래식을 보다 친근하게 느끼게 합니다.
    쉐릴 밀른스의 앙코르를 영상으로라도 다시 볼 수 있으면 좋겠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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