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 역대음악회 소개] 13회 무지카 안티쿠야 쾰른[이건 역대음악회 소개] 13회 무지카 안티쿠야 쾰른

Posted at 2018.11.08 10:46 | Posted in 이건음악회 Talk Talk/클래식 톡톡

본 글은 이건 음악회의 역사를 되짚어 보는 시간으로,

해당포스트는 2002년에 있었던 이건음악회 13회 소개글입니다.




열세번째 이건음악회에서 모십니다.


올해는 독일의 무지카 안티쿠아 쾰른을 초청하였습니다.

이들은 바흐,헨델, 텔리만 등 17-18세기 바로크 음악에 대한 원전주의적 해석으로 정평이 나있습니다.

협연자인 카운터 테너 악셀쾰러는 헨델의 전문가로 이름이 높습니다.

특히 무지카야 안티쿠아 쾰른은 독일문화원이 주선한 평양 연주에 이어서 내한하게 되어 남북의 청중을 고루즐기는 쵲=초의 음악시절로 소중하게 기억될 것입니다.

자닌 6월 월드컵의 감격을 간직하고 계신 여러분들께 이번 무지카야 안티쿠아 쾰른의 연주가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히는 기회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감사합니다..


200210

이건가족을 대표하여 참역주 삼가

 

 

 

 



이건음악회와 함꼐 하는 뜻 깊은 가을로의 초대


라인하르트 괴벨이 이끄는 세계적 명성의 독일 바로크 앙상블 무지카 안티쿠아 쾰른이 동남아.중국투어의 마지막 공연을 북학과 남한에서 연이어 하게 된 것을 짐심으로 환영합니다. 한국에서많은 사랑을 받고있는 이 앙상블이 다시 한번 애호가들에게 음악을 들려ㅈ드릴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주신 박영주 회장님께 특히 감사의 말씀드립니다.

지난 12년간 세꼐적 수준의 음악가와 앙상블만을 선보여온 이건음악회를 주한 독일문화원이 처음으로 함꼐 기획하고 주최하게 된 것을 큰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라인하르트 괴벨이 이건음악회를 위해 특별히 구성한 프로그램에서는 한국에서 처음으로 독일의 대표적 카운터 테너인 악셀쾰러가 무지카 안티쿠아 쾰른과 함께 공연합니다.

무지카 안티쿠아 쾰른의 이번 남한과 북한에서의 공연이 우리가 추진하고 있는 남북한 문화 협력의 틀 안에서 한반도의 평화 공존에 기여할 것을 기대합니다. 서울, 인천, 대전, 부산, 그리고 평양애서의 성공적인 공연을 기원합니다,

2002 10

 

독일문화원장 우베슈멜터

Dr. Uwe Schmeler

Leiter Goethe-IInstitut Iner Nariones Seiul

 



무지카 안티쿠아쾰른 (Musiea antiqua Kola)


25년 이상, 라인하르트 괴벨이 이끄는  Musica Anyiqua Koln(이하’MAK’)은 각종 음악회와 음악축제에서 고음악을 주로 연주해 왔다. 특히 17,18세기 음악에 대한 원전주의적 해석 및 연주로 그 명성이 놓다. 1973년 라인하르트 괴벨과 쾰른 코서르바토리 출신의 학생들에 의해 결성된 MAK는 초기에 바로크 시대 실내 악고고가 종교음악을 연주하는데 심혈을 기울였다. 그들은 1979년 영국 런던의 퀸엘레자베스 홀과 네덜란드의 홀랜드 음악축제에서의 5회 연주로 국제 무대에 진출하였다. 현악과 관악 연주자를 증원한 후 10주년 행사부터 소규모 오케스트라급의 면모와 레파토리로 연주와 녹음을 하기에 이르렀다.

 

1981년 이래  MAK는 악장인 라인하르트 괴벨과 함께 정지적으로 미국 연주 여행을 하고 있다. 호주와 남미를 여러 차례 방문하였으며, “바흐 탄생300주년 긴념의 해 1985년에는 특별히 중국에서 여주회를 가졌다. MAK는 독일 북부 뤼벡시로부터 북스테후데상을 받았고, 지멘스로부터 상을 수상했으며, 1981년에는 도이치 포노아카데미로부터 올해의 아티스트에 선정되었다. 1952년 베스트팔렌주 siegen애서 태어난 괴벨은 정규 교육울 받은 후 쾰른 및 에센에서 음악 공부를 하였으며, Eduard Melkus Marie Leonhadr 지도 하에 수년동안 음악학을 연구 했는데 이로인해 고음악 레퍼터리에 대한 방대한 지식을 갖게 되었다, 또한 MAK가 독특하고 개성적이며 차별화된 연주와 녹음을 할 수 있는 초석이 되었다.

 

1978년 이래 MAK 괴벨은 Archiv Produktion 과 독점음반 발매 계약을 맺었다. 이로인해 흔치 않은 고음악 레퍼토리에 대한 발견과 그것을 현실화시키는 혁신적인 역할을 국제적으로 알려졌고많은 상을 수상하는 계기가 되었다. Grand Prix international du Disque Grammophon Award등 유수한 음반 녹음상을 수상하였으며, Heinichen Dresden Concerri  앨범은 세꼐적인 성공을 거두었다. 또한 소프라노 안느 소피 폰 오토와 합연한 헨텔의 성모 마리아 칸타타와 아리아도 대단한 찬사를 받았으며, 이후 샤콘느로 그래미상 후보에 오른적도 있다. 1999 7  MAK “Farinelli” 영화로 잘 알려진 벨기에 출신 감독Gerard Corbiau “Le Roi Danse” 의 영화음악을 제작하였다. 이 영화와 음악은 2000년 가을 프랑스와 벨기에에서, 2001 4월독일에서 큰 성공을 거두었고, 2001년 가을 Echo-Klassik상을 수상했다.

 

 

악셀쾰러 (Axel Kohler)

 

카운터 테너이자 음악감독인 악셀 쾰러는 슈바르젠베르그에서 태어났으며, 드레스덴의 칼 마리아 폰 베버 음악학교에서 바이올린 교수법과 성악을 공부 했다. 졸업과 동시에 할레에서 바리톤 가수로 데뷔하였으나, 2년 후에 마리안 퓌셔-쿱훼와 제시카캐시의 조언을 받아들여 카운터 테너로 바꿨다.

 

악셀쾰러는 크리스티안 클루티그의 후원 하에 할레의 헨델 페스티발에서 핸델의 작품 리날도의 에우스 타시오역(카운터 테너)으로 전문적인 데뷔를 했다. 그 이후로 그는 소사르메’, ‘쥴리오 세자르’, ‘오를란도’,

타메르라노’, ‘톨로메오의 즈역을 맡음으로써 국제적으로 헨델전문가로 알려지게 되었다.

 

그는 독일 뿐만아니라,미국, 영국, 이탈리아, 일본에서도 공연을 했으며, 현재는 연주자로서만이 아니라 음악 연출 및 감독으로서도 활동하고 있다. 유럽의 주요 음악도시에서 펼쳐지는 콘서트와 음악축제에서 공연되는 오페라 작품 연출에 대한 활동과 음반 녹음 작업을 병행하고 있다. 그오 함께 작업을 하는 지휘자들은 르네, 야콥스, 마르쿠스 크리드, 호워드 아르만, 이보르 볼튼, 헬무트 릴링 등이 있다.1999년에 그는 Kammersanger(궁정가수) 칭호를 받았고, 베를린 신문으로부터 비평가상을 수상하였다.

 

Orlando

 -

Orlando verfallt dem Washnsinn und der Reaserei, weil seine lide zu Angelica nicht erwidert wird. Er glaubt sic him Reic des Todes, indem er all die Gotter der Unterwelt und die Furien und Larven zu treffen glaubt, dort meint auch seinen Rivalen Medoro zu sehen und will ihn Strecke brigen


오를란도는 안젤리카에 대한 자신의 사랑이 보답받지 못했기 때문에 광포해지고 미쳐버린다. 그는 자신이 지하 세꼐의 모든 신들, 푸리아들 그리고 괴물들을 접하게 될 것이라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으며 자신이 죽음의 왕국에 있다고 믿는다. 거기서 그는 자신의 연적인 메도로를 보고 그를 죽이게 될것이라고 말한다.

 

Orlando

 -

Orlando versucht seine Angebetete Angelica zur liebe zu bewegen, indem er ihr leifenschaftlich vortragt, dass er fur sie in jeden Kampf ziehen wurde, um Ungeheuer und Drachen zu besiegen. Trophaen dieser Siege waren sein Geschenk der Liebe an sie….


오를란도는 자신의 애인 안젤리카를 위해서 괴물과 용들을 물리치기 위한 모든 싸움에 임할 것이라는 것을 그녀에게 정열적으로 연설하여 그녀를 사랑으로 감동시키려고 애를 쓴다. 이 승리의 트럼펫은 그녀에 대한 사랑을 선물이 될 것 이며,,,

Name __

Password __

Link (Your Website)

Comment

SECRET | 비밀글로 남기기

[홍승찬 교수의 클래식 음악 이야기] 다름을 존중하고 공존하고자 했던 바로크 음악의 정신[홍승찬 교수의 클래식 음악 이야기] 다름을 존중하고 공존하고자 했던 바로크 음악의 정신

Posted at 2017.12.08 10:16 | Posted in 이건음악회 Talk Talk/홍승찬교수의 클래식 톡톡


르네상스 시대 이후 새로운 예술의 흐름을 일컫는 "바로크"는 일그러진 진주라는 뜻의 포르투갈아에서 비롯되었다고 합니다. 잘못된 추론을 뜻하는 라틴어나 속임수를 뜻하는 이탈리아어에서 비롯되었다는 말도 있지만 그 어느 것이든 썩 좋은 뜻이 아님은 틀림없습니다. 원래는 그 시대 사람들이 당대의 건축물을 일컸던 말이 점점 같은 시대의 모든 예술을 아우르는 용어로 자리잡은 것입니다. 오늘날의 관점에서 보면 음악에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말이 아닌가 싶지만 당시 사람들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말 그대로 뭔가 이상하고 어색하게 느꼈던 것입니다. 그것은 마치 20세기에 새로운 음악이 나타났을 때 현대음악이라 부르며 낯설고 어렵게만 생각하던 것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17세기 사람들은 이전까지 음악이라면 주로 노래를 하거나 춤을 출 때 함께 하는 것으로 알았는데 악기로 연주하는 음악을 그저 가만히 앉아서 들어야 하는 것이 어색했던 모양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느렸다가 빨라지고 큰 소리가 갑자기 작아지는가 하면 다 함께 연주하는 부분과 몇몇이 따로 연주하는 부분, 여러 가락이 서로 얽혀서 들리는 음악과 한 선율만 뚜렷하게 들리는 음악을 나란히 이어놓는 것이 이상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사실은 이것이 바로 바르크 시대의 기악을 대표하는 협주곡, 즉 콘체르토 양식의 전형적이 모습입니다. 콘체르토는 경쟁하다, 대립하다는 뜻의 라틴어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이처럼 바로크 협주곡은 서로 대조적인 부분들을 교대로 등장시켜 음악의 흐름을 만드는 음악입니다. 처음엔 합주 협주곡, 즉 콘체르토 그로소라고 하여 악단의 모든 악기가 연주하는 부분과 그 가운데 몇몇 악기들만 따로 연주하는 부분이 번갈아가며 나타나는 모양새였지만 이후에 하나의 악기와 악단 전체가 서로 맞서는 솔로 콘체르토, 즉 독주 협주곡이 나타나기 시작하면서 무게의 중심이 점점 후자로 기울어지게 됩니다. 이러한 협주곡의 변천에 있어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 사람이 안토니오 비발디였고 그를 모방하고 연구하여 바로크 협주곡을 완성의 단계로 이끈 이가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입니다.

 

출처 : https://earlymusicmuse.com/baroquemusic/


안토니오 비발디는 1678년 이탈리아의 베네치아에서 태어나 일생의 대부분을 그곳에서 살았습니다. 대대로 뛰어난 바이올린 연주자를 배출한 집안에서 태어나 체계적인 음악교육을 받았지만 어려서 수도원에 들어갔고 커서는 성직자가 되었습니다. 사제가 되었으나 병약하여 미사를 집전하기조차 어려웠고 그 때문에 베테치아의 소녀들을 위한 고아원인 오스페달레 델라 피에타의 바이올린 교사로 부임하였고 나중에는 합주장, 합창장을 거쳐 원장의 직무를 수행하게 됩니다. 당시 고아원은 일요일마다 자선음악회를 열어 그 수익금으로 부족한 재원을 충당했기 때문에 비발디는 원생들로 이루어진 합주단과 합창단을 연습시켜야 했고 그들이 연주할 음악을 작곡해야 했는데 그가 남긴 500여곡에 이르는 협주곡들은 그로 말미암아 만들어진 것들입니다. 이처럼 누구보다 많은 협주곡을 작곡하기도 했지만 협주곡 양식을 다루는 비발디의 뛰어난 솜씨는 처음부터 두드러지게 돋보였습니다



특히 그 많은 협주곡 가운데 처음으로 출판한 "조화의 영감"12곡은 다양한 악기구성과 조합, 음악을 펼치는 여러가지 전개방식을 시도하고 있어 바로크 협주곡의 모범과도 같은 작품입니다. 그 가운데 1, 7, 10번은 네 대의 바이올린과 첼로를 앞세운 곡이고 4번은 네 대의 바이올린, 8번은 두 대의 바이올린을 위한 곡이며 2번과 11번은 두 대의 바이올린과 첼로, 그리고 나머지는 모두 독주 바이올린을 위한 곡들입니다. 또한 8번처럼 바이올린의 현란한 기교를 적절하게 펼쳐야 하는 곡이 있는가 하면 그다지 어렵지 않으면서 상큼하고 밝은 느낌이 두드러지는 10번이 있고, 6번의 경우는 바이올린을 배우는 사람이 처음으로 협주곡에 도전할 때 많이 선택할 정도로 쉽지만 아기자기한 곡입니다. "조화의 영감"은 당대는 물론 후대에까지 널리 영향을 미쳤습니다. 특히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는 이 중의 여섯 곡을 건반악기를 위한 협주곡으로 편곡했을 정도로 이 작품을 높이 평가하여 기꺼이 스스로의 음악 속에 받아들여 발전시켰고 그로 말미암아 바로크 협주곡 양식의 궁극에 도달할 수 있었습니다.

 

출처 : https://www.youtube.com/watch?v=OoFb_iMKu5s


음악사의 바로크 시대에 벌어진 양상은 마치 춘추전국 시대의 군웅할거를 보는 듯합니다. 나라마다 도시마다 뛰어난 음악가들이 있었고 그들의 음악은 남다른 모습으로 나름의 소리를 들려주었습니다. 때문에 같은 악기를 다르게 부르는 일도 있었는데 피아노의 전신 악기인 쳄발로가 그랬습니다. 이탈리아어로 쳄발로, 독일에서는 하프시코드, 프랑스 사람들은 클라브생이라 불렀던 겁니다. 먼저 이탈리아의 여러 지역과 도시들이 그렇게 경쟁하며 서로를 닮아갔고 그 때문에 나날이 변화하고 성장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따라서 보고 배웠던 프랑스와 독일이 또한 같으면서 다르기도 한 그들만의 음악을 만들어갔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그 물결은 헨델과 같은 작곡가와 더불어 섬나라 영국까지 들어가게 됩니다. 바로크라면 우리는 바흐와 헨델, 비발디를 떠올리지만 이들은 모두 바로크 시대의 끝자락에 걸친 인물들입니다. 말하자면 한 시대를 마무리하고 다음 시대를 열어준 셈이고 그 모든 것을 아우르는 마지막 대업을 완성한 이가 바로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입니다. 때문에 그가 세상을 떠난 1750년은 150년 바로크 시대의 마지막 해로 삼기도 합니다. 어떤 면에서 이 놀라운 그의 업적 또한 중국의 역사에 비견하자면 최초의 통일왕조를 세운 진시황을 떠올리게 됩니다. 그러나 힘으로 상대를 제압하여 말살한 시황제와는 달리 그는 스스로를 낮추어 상대를 받아들이고 배우면서 그 모든 것을 하나로 모아 후대에 남겼습니다.

 

출처 : https://www.youtube.com/watch?v=12EZZlr9DCY


비단 바흐뿐만 아니라 바로크 시대의 뛰어난 음악가들은 누구나 그랬습니다. 그래서 오늘날 우리가 누리고 있는 클래식 음악의 위대한 유산이 가능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나와 다른 남을 존중하고 받아들여 그것으로 전보다 나은 나를 새롭게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만든 음악 안에서도 전혀 다른 것들이 나란히 번갈아가며 나타나게 하여 서로가 겨루면서도 균형과 조화를 이루도록 하였습니다. 그것이 바로 바로크 협주곡의 원리이자 바로크 음악의 가치, 바로크 시대의 정신입니다. 비발디의 조화의 영감” 10번의 1악장 들으면서 누구나 나와 다른 차이를 차별하지 않고 서로를 존중하고 배려하여 모두가 균형과 조화를 이루며 평화를 누리는 세상을 꿈꾸시기 바랍니다.




Name __

Password __

Link (Your Website)

Comment

SECRET | 비밀글로 남기기

티스토리 툴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