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앙코르] 예술의 전당 음악당에서 있었던 피아니스트 예프게니 키신의 연주회[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앙코르] 예술의 전당 음악당에서 있었던 피아니스트 예프게니 키신의 연주회

Posted at 2012.08.01 07:30 | Posted in 이건음악회 Talk Talk/홍승찬교수의 클래식 톡톡

 

 

 

홍승찬 교수의 클래식 음악(29)
[홍승찬 교수의 재미있는 클래식음악 이야기]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앙코르

 

 

 


예술의 전당 음악당에서 있었던 피아니스트 예프게니 키신의 연주회는 지금까지도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고 앞으로도 두고두고 기억될 것 같습니다. 벌써부터 티켓이 매진되어 팬들의 기대와 성원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지만 연주회가 끝나고 앙코르곡만 10곡을 연주할 것이라고는 아무도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쇼팽의 녹턴으로 시작한 이날의 앙코르 순서는 마지막으로 연주한 모차르트의 터키 행진곡까지 모두 1시간 40여분이나 경과되었고 그 후로도 사인회가 한참이나 더 이어졌습니다. 1988년 오페라 사랑의 묘약에서 남몰래 흐르는 눈물을 불렀던 루치아노 파바로티가 무려 165번의 커튼콜을 받음으로써 이 부문 최고의 기록을 세웠지만 소요시간은 1시간 7분이었고 피아니스트 루돌프 제르킨이 베를린 데뷔 연주회에서 앙코르곡으로 연주했던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1시간 30분을 넘지 않았으니 키신이 이번 내한연주회에서 기록한 1시간 40여분의 앙코르 시간은 예사롭게 넘길 일이 아닌 듯합니다.

 

 

예술의전당 최고 관객동원 공연, 예프게니 키신

 

예술의전당 상반기 결산 관객현황 자료에 따르면 예프게니 키신 공연이 1위, 관객 2,391명이 관람한 2월27일 콘서트홀 공연 '리처드 용재오닐 바로크 콘서트'가 2위를 차지했다.(2009년)

 

물론 앙코르의 감동이 시간에 좌우되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말년에 뉴욕 필을 떠나 비인 필과 자주 호흡을 맞추었던 지휘자 레너드 번스타인은 비인에서 있었던 어느 연주회에서 앙코르곡으로 요한 슈트라우스의 왈츠를 연주했습니다. 박수와 환호 속에서 무대 앞으로 나온 그는 뜻밖에도 악장을 일으켜서 악단을 이끌게 하고 정작 자신은 지휘봉을 접고 청중과 함께 음악을 감상했습니다. 말하자면 왈츠는 당신네들 음악이니 당신들이 알아서 연주하라는 뜻이었고 단원들과 청중들은 노대가의 겸손한 자세에 존경의 박수를 바쳤습니다.

 

 레너드 번스타인,Leonard Bernstein (August 25, 1918 – October 14, 1990)

 

서거 직전 처음이자 마지막 내한연주회를 가졌던 스비아토슬라브 리히테르는 앙코르 아닌 앙코르 연주로 우리 청중들의 혼을 쏙 빼놓기도 했습니다. 청중들이 연주에 너무나도 몰입한 나머지 소품들로 이어진 후반부 순서가 미처 다 끝나기도 전에 박수와 환호가 끊어지지 않았고 리히테르는 어쩔 수 없이 들어갔다 나왔다가를 반복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이후 남은 소품 한 곡 한 곡이 끝날 때마다 같은 상황이 되풀이되었고 그래서 결국은 단 한 곡의 앙코르곡도 연주하지 않았으면서도 마치 여러 곡의 앙코르를 연주하는 것과 같은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졌던 것입니다. 우리 연주자들 가운데는 비올리스트 김상진과 피아니스트 강충모의 앙코르곡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습니다. 김상진은 어느 연주회의 앙코르 순서에서 활을 놓고 비올라만 들고 나와서는 마치 기타를 다루듯이 손가락으로 줄을 뜯어 멋진 연주를 들려주었고 강충모는 바흐 전곡 시리즈 가운데 한 연주회에서 대중가요의 선율을 바흐풍으로 직접 편곡하여 들려줌으로써 스스로의 또 다른 음악적 감각과 능력으로 청중들을 감동시키기도 했습니다.

 

 

스비아토슬라프 리히터, Sviatoslav Teofilovich Richter (1915~1997)

 

그러나 이 모든 앙코르들 가운데 가장 최고의 감동을 전해준 것을 꼽으라면 단연 바리톤 셰릴 밀른스의 내한 연주회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메트로폴리탄의 간판 가수였던 그는 은퇴를 기념하는 세계 순회공연을 마련하였고 그 일정 중에 우리나라를 방문하여 예술의 전당에서 독창회를 가졌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혼신의 힘을 다해 따뜻하고 편안한 분위기 속에서 연주회를 마친 이 거장에게 앙코르 순서는 너무나도 당연한 것이었지만 이어진 광경은 너무나도 뜻밖이었고 너무나도 감동적이었습니다.

 

 

Sherrill Milnes
쉐릴 밀른스

출생: 1935/01/10, Downers Grove, Illinois, America

 

키가 크고 체격이 잘 빠진 밀른스가 나타나기를 기대하며 박수를 그치지 않는 청중들 앞에 그와는 대조적으로 키가 작고 배가 나온 데다가 머리카락까지 빠져 볼품이 없는 반주자가 악보도 없이 빈손으로 당당하게 무대 앞으로 걸어 나오는 것이었습니다. 그의 뒤를 나타난 밀른스는 전과는 달리 허리를 굽히고 조심스럽게 걸어 나오면서 연신 거들먹거리는 반주자의 눈치를 살피면서 비위를 맞추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반주자의 손에 들려 있어야 할 악보가 그의 손에 들려 있었습니다. 그 때까지만 해도 설마 했던 일이 드디어 벌어졌습니다. 반주자가 노래를 하고 밀른스가 반주를 하는 광경이 펼쳐진 것입니다. 청중을 즐겁게 하려고 몸짓과 표정은 우스꽝스러웠지만 노래와 반주는 그 어느 하나도 흠잡을 데가 없이 훌륭하고 진지했습니다. 밀른스의 반주는 그 어느 피아니스트 못지않았고 반주자의 목소리는 그 어떤 테너 가수보다 아름다웠습니다. 이날 청중들은 음악에 감동하고 뜻하지 않은 해프닝에 더 없이 즐거워했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오랫동안 뭉클했던 마음이 사라지지 않는 것은 평생을 함께 동고동락한 음악동료이자 동지에 대한 감사와 존경을 이렇게 표현하고자 한 밀른스의 따뜻하고 넉넉한 마음 때문이었습니다.

 

 

 

글 : 홍승찬 교수
편집 : 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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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상상을 뛰어넘는 앙코르 에피소드들이 클래식을 보다 친근하게 느끼게 합니다.
    쉐릴 밀른스의 앙코르를 영상으로라도 다시 볼 수 있으면 좋겠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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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승찬 교수의 재미있는 클래식음악 이야기] 바이올리니스트 김영욱이 바이올린을 연주하지 않는 까닭은? 자유로운 영혼을 논하기 전에 자유로움을 논해보자.[홍승찬 교수의 재미있는 클래식음악 이야기] 바이올리니스트 김영욱이 바이올린을 연주하지 않는 까닭은? 자유로운 영혼을 논하기 전에 자유로움을 논해보자.

Posted at 2012.04.16 11:28 | Posted in 이건음악회 Talk Talk/홍승찬교수의 클래식 톡톡

 

 

 

 

홍승찬 교수의 클래식 음악(11)
바이올리니스트 김영욱이 바이올린을 연주하지 않는 까닭은?

 

 



누구나에게 평생을 잊을 수 없는 어린 시절의 만남이 있고 추억이 있을 것입니다. 그것이 평생의 등불이 되기도 하고 그로부터 삶의 가치와 목표를 얻기도 합니다. 저에게는 초등학교 시절 경험했던 바이올리니스트 김영욱의 독주회가 그렇습니다. 이전에 한 번도 듣지 못했던 단아하고 담백한 소리에 영혼이 송두리째 흔들리는 전율을 느꼈습니다. 마구 쏟아내는 감정이 아니라 안으로 깊이 들이마셨다가 더 이상 참을 수 없을 때 흐느끼듯 뿜어져 나오는 꽉 찬 소리였습니다. 마치 찰지고 숙성된 반죽이 국수틀에서 나오는 듯한 소리였고 탱탱한 누에고치에서 윤기 흐르는 명주실이 뽑아져 나오는 듯한 소리였습니다. 태어나서 처음이자 지금까지 단 한 번 줄을 서서 기다렸다가 사인을 받았습니다. 늘 건강하시라는 말을 건냈고 피곤하지만 밝은 표정으로 고맙다는 대답을 들었습니다. 그 감동으로 바이올린을 배우기 시작했지만 일 년도 못되어 그만두었습니다. 연습을 게을리 한 탓이 크겠지만 단 한 번도 딱 맞는 음높이의 소리를 켜보지 못했고 그것이 견딜 수 없었습니다. 바이올린이라는 악기가 그렇게 섬세하고 어려운 악기라는 것을 그 때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연주자로서의 삶이 얼마나 고단한 것인지를, 그리고 우리가 듣는 음악이 그들이 감내한 인고의 세월에서 비롯된다는 사실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그 때 어렴풋이나마 음악가들을 곁에서 돕는 일을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그날 이후로 김영욱에 관한 글과 음반을 찾았습니다. 이승만 대통령의 주치의였던 김승현 박사의 육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고 음악을 사랑했던 어머니 이현경 여사의 영향으로 집안에 늘 당대의 음악가들이 드나들었다고 합니다. 위로 두 누님은 피아노를 쳤고 김영욱도 처음에는 피아노를 치다가 일곱 살에 바이올린을 시작했다고 합니다. 피아노가 치기 싫었고 크기가 작은 바이올린이 만만해 보였다고 합니다. 그리고 누구나 짐작할 수 있듯이 그때부터 놀라운 재능을 펼치기 시작합니다. 초등학교 육학년 때 내한했던 피아니스트 루돌프 제르킨을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얻었고 당시 커티스 음대 학장이었던 그의 초청으로 이듬해 미국으로 건너가 이반 갈라미언의 제자가 되었습니다. 당시 최고의 바이올린 지도자였던 갈라미언에게는 핑커스 주커만과 이차크 펄만, 그리고 우리나라의 정경화와 같은 쟁쟁한 제자들이 있었지만 누구보다 김영욱을 아꼈습니다. 타임지와의 인터뷰에서 그는 조심스럽게 개인적인 취향이라는 전제하에 제자들 중 김영욱을 가장 주목한다는 말을 했습니다. 그의 기대대로 김영욱은 곧 세계무대의 주목을 받았습니다. 함께 협연했던 뉴욕 필의 지휘자 레너드 번스타인은 나는 왠만해선 천재라는 말을 하지 않는다. 그러나 김영욱이야말로 진짜 천재다.”는 말까지 할 정도였습니다.

 

 

 <Conductor, Leonard Bernstein, 1918 – 1990>

 

 

그렇게 많은 연주활동을 하면서도 그가 녹음한 음반은 많지 않습니다. 자연스럽지 않고 인위적인 것을 싫어하는 김영욱의 성격 때문입니다. 거듭 연주해서 짜깁기 하는 것도 그렇고 기계로 잘못된 부분을 조작하는 것도 내키지 않는답니다. 독주보다는 실내악을 좋아해서 피아니스트 엠마누엘 엑스, 첼리스트 요요마와 더불어 엑스 김 마 트리오를 결성했는가 하면 보자르 트리오에서 활동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그의 연주를 들을 수 있는 녹음은 독주 음반보다 실내악 음반이 훨씬 더 많습니다. 그나마 지금은 일체의 연주활동을 중지하고 후학을 가르치는 일에만 전념하고 있어 더 이상 그의 음악을 무대에서 들을 수 있는 기회도 없을 것 같습니다. 한 때 김영욱이 독일의 테트몰트 음대에 교수로 초빙되었을 때 우연히 제 여동생이 그곳으로 유학을 갔습니다. 동생을 보러 가는 길에 그를 찾아가 만나볼까 망설였지만 결국 그러지 못했고 서울대 음대로 온다는 소식을 듣고서도 차일피일 용기를 내지 못했습니다. 누구보다 자유로운 영혼임을 알았기에 조금이라도 그를 어색하고 불편하게 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예술의전당 예술감독에 김영욱·홍승찬·김미진

그러다 기적같은 일이 벌어졌습니다. 예술의 전당 공연예술감독으로 부름을 받았던 것입니다. 그것이 기적이 아니라 함께 음악예술감독으로 취임하신 분이 그토록 오랜 세월 만나 뵙고 싶었던 김영욱 선생이었습니다. 제 방 바로 옆방에 김영욱 선생의 방이 있다는 말을 듣고 제 방보다 그 곳을 먼저 찾아가 보았습니다. 책상과 책장만 놓여있는 텅 빈 방이었지만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마치 결혼식을 기다리는 새신부의 심정으로 첫 만남을 기다렸습니다. 조촐한 취임식이 있던 날 오랫동안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던 초등학교 시절 추억을 말씀드렸고 김영욱 선생은 부끄러운 듯 고개를 돌리고 손사래를 치며 웃었습니다. 이후로 직책상 함께 하는 자리가 거듭되었고 예술의 전당을 떠나고도 여태껏 가끔씩 함께 식사를 합니다. 그러면서 음악을 듣고 느꼈던 그대로가 그의 모습임을 확인하게 되었고 그것이 또한 큰 기쁨으로 자리잡게 되었습니다. 꾸밈없는 음악만큼이나 소탈하고 욕심없는 성품이었고 맛깔스런 소리마냥 고상하고 섬세한 취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튀지 않고 은은한 색상이지만 흔하지 않은 질감을 가진 양복과 셔츠, 타이를 매지 않고 포켓에 꽂은 수건과 커프스 버튼과 같은 소품으로 포인트를 주는 감각은 아무도 흉내낼 수 없는 경지입니다. 스스로 음식 만들기를 좋아할 뿐 아니라 모든 종류의 음식을 가리지 않고 그 나름 즐기는 여유와 식사 자리에서는 가급적 일과 관련된 대화를 피하는 것까지 모두가 그의 음악만큼이나 특별하면서 친근합니다. 차가운 듯하지만 따뜻하고 부드러우면서 까칠한 점이 한없이 그를 높이 바라보게 만듭니다.

 

 

 

마음 같아선 늘 가까이서 자주 보고 싶지만 그의 일상을 조금도 방해하고 싶은 생각이 없습니다. 바이올린을 그 무엇보다 좋아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바이올린을 손에서 놓은 그 심정을 너무나 잘 이해하기 때문입니다. 누구보다 자유로운 영혼이기에 그가 바라는 그 모습 그대로 오래도록 자유롭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이 자유이기 때문입니다.

 

 

글 : 홍승찬 교수
편집 : 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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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Miz-Dupont
    제가 정말 좋아하는 연주자, 김영욱님에 관한 글을 읽고 정말 반가웠습니다. 국내 연주가의 공연으로는 선생님 걸 제일 많이 본 것 같아요. 예전에 선재아트센터에서 보자르 트리오의 일원으로 베토벤 피아노 트리오 공연하셨을 때가 기억나네요.. 요즘은 선생님의 연주를 들을 수 없어서 참 서운해요..
  2. 정이레
    김영욱선생님이 궁금하던 차에 잘 읽었습니다. 글을 읽고 더욱 선생님을 존경하게 되네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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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승찬 교수의 재미있는 클래식음악 이야기] 지휘자의 리더쉽 / 카라얀과 번스타인의 리더십을 보면서...[홍승찬 교수의 재미있는 클래식음악 이야기] 지휘자의 리더쉽 / 카라얀과 번스타인의 리더십을 보면서...

Posted at 2012.04.03 07:30 | Posted in 이건음악회 Talk Talk/홍승찬교수의 클래식 톡톡

 

 

 

홍승찬 교수의 클래식 음악(8)
지휘자의 리더쉽

 

 

 


얼마 전 지휘자 레너드 번스타인이 피아니스트 백건우의 은인이었다는 사실이 백건우의 인터뷰 기사를 통해 보도되었습니다. 지금은 지휘콩쿠르로 바뀐 디미트리 미트로풀로스 콩쿠르에 참가한 열다섯 살 소년 백건우가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 3번을 혼자 연습하는 모습을 발코니 석에서 지켜보던 번스타인이 주최 측에 그를 도우라고 말해 줄리어드에 입학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정작 당사자는 그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는데 25년이나 지난 어느 날 백건우가 우연히 당시 콩쿠르의 조직위원장을 만나면서 알게 되었다고 하지요.

 

 

뉴욕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지휘자 레너드 번스타인

 

번스타인은 20세기 후반 뉴욕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를 이끌면서 베를린 필의 카라얀과 지휘계의 양대 산맥으로 군림했습니다. 두 사람 모두 매스컴을 적절히 활용하는 등 실력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면에서 두드러진 능력을 발휘했지만 그 스타일과 이미지는 상반된 것이 많았지요. 카라얀이 평생 사적으로 단원들과 식사자리 한번 가지지 않았던 독선적인 카리스마였다면 번스타인은 부드러운 이미지와 설득으로 오케스트라를 이끌었습니다. 카라얀이 베를린 필의 상임지휘자 요청이 있자 이를 거절하는 모험을 통해 종신 총감독의 지위를 얻어낸 승부사였다면 번스타인은 언제나 타협과 배려를 통해 모두의 만족을 이끌어내려 한 코디네이터였습니다.

 

베를린 필 하모닉 오케스트라 지휘자 카라얀

 

종신을 고집하다 단원들과의 불화로 끝내 사임에 이르렀던 카라얀과는 달리 번스타인은 적절한 시기에 주빈 메타에게 뉴욕 필을 물려주고 스스로 물러났습니다. 그리고 세계 유수의 여러 오케스트라를 돌아다니며 지휘했는데 특별히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긴밀한 관계를 유지했지요. 빈 필과의 한 연주회가 끝나고 열광적인 박수와 앙코르 요청이 있자 무대로 걸어 나온 그는 갑자기 악장을 일으켜 악단을 이끌게 하곤 자신은 무대 옆에 조용히 섰습니다. 시트라우스의 왈츠가 흘러나오자 조금 전까지 어리둥절했던 청중들은 그제서야 번스타인의 의도를 알고 전보다 더 열광적인 박수와 환호로 대답했습니다. 왈츠는 빈 사람들이 가장 잘 알고 잘 연주하는 음악이니 빈 필이 알아서 하라는 것이었지요. 번스타인의 성격이 그렇기도 하지만 다분히 보여주기 위한 제스추어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팔방미인 번스타인도 뉴욕 필의 단원들과는 별로였답니다. 말이 많다는 게 문제였습니다. 언어학을 전공하고 책까지 냈으니 짐작이 가는 일이지요. 연습시간이 끝나고도 잔소리가 이어지면 고참들은 악기를 챙겨 지위자 앞을 지나쳤다는군요. 이처럼 제 잘난 맛에 사는 예술가들을 어떻게든 이끌어 하나의 소리를 만들어야 하는 지휘자야 말로 리더중의 리더가 아닌가 싶습니다.

 

카라얀이 사임한 이후 베를린 필은 카를로스 클라이버와 클라우디오 아바도를 놓고 고민했습니다. 독일의 자랑인 만큼 다들 독일인 지휘자인 클라이버를 예상했지만 성격 좋고 배경 좋은 이탈리아의 아바도를 선택했습니다. 카라얀에게 물린 단원들이 클라이버의 고지식한 완벽주의를 감당하기 싫었겠지요. 가능한 한 적은 시간을 연습하고 많은 자유시간을 누리고 싶었을 겁니다. 완벽이 아니면 타협을 하지 않는 클라이버에게는 전혀 기대할 수 없었을겁니다. 음악 명문가 출신의 아바도에게는 후원하는 세력도 많아서 교향악단 운영에도 도움이 되리라 생각했겠지요. 그래서 일부에서는 아바도가 이탈리아 마피아의 지원을 받아 베를린 필에 입성했다는 이야기까지 있었습니다.

 

 

황제 카라얀의 후임. 클라우디오 아바도.

 

카라얀과 번스타인이 떠난 이후 지휘계에도 신유목시대가 왔습니다. 상임지휘자로 한 오케스트라를 도맡에 오래가기 보다 여러 오케스트라를 떠도는 지휘자가 많아졌죠. 잘하는 몇 개의 레퍼토리만 있으면 한참을 견딜 수 있고 단원들도 간섭을 덜 받으며 다양한 음악을 접할 수 있어 서로들 좋아합니다. 문제는 오케스트라의 개성이 희미해져 간다는 것입니다. 과거 유진 오먼디가 오랫동안 아끌었던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는 그들만의 소리가 있어 필라델피아 사운드, 혹은 유진 오먼디 사운드라 불리기도 했지만 지금은 점점 이런 전통이 사라져가고 있지요.

 

 

 "오먼디 = 필라델피아 사운드" 라는 공식을 만든 헝가리 태생의 미국의 지휘자 유진 오먼디

 

신유목시대의 대표적인 지휘자 유형이라면 로린 마젤이 먼저 떠오릅니다. 그가 지휘해야 할 오케스트라의 능력과 주어진 시간과 기타 여건들을 정확하게 판단하면 단원들에겐 그 안에서 가능한 만큼의 최선만을 요구합니다. 첫 만남과 연습, 마지막 리허설까지의 과정에서도 늘 유머와 칭찬을 잊지 않죠. 자신이 할애할 수 있는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싶으면 자신의 의중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잘 따르는 부지휘자를 보내 연습을 시키기도 합니다. 당연히 단원들이 가장 좋아하고 신이 나서 하게 되니까 좋은 결과가 있고 또 그런 모습을 보는 청중들도 즐거워하게 됩니다. 현실적이면서 얄미울 정도로 영리한 리더쉽이죠.

 

 

즐거움을 추구했던 영리한 지휘자. 로린 마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지휘자 두 분의 클래스를 비교하면 리더쉽의 상반된 두 가지 유형이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한 분은 먼저 지휘봉을 고르고 손으로 쥐는 법부터 가르치고 다른 한 분은 전혀 설명이나 준비없이 대뜸 오케스트라를 앞에 놓고 악보대로 소리 나게 해보라고 시킵니다. 쉽게 생각하거나 혹은 너무 긴장해서 실패하는 게 당연하죠. 그렇게 기부터 죽여 긴장시키는 겁니다. 수업에서까지 발휘되는 지휘자의 리더쉽입니다.

 

오케스트라 지휘자의 리더쉽을 살펴보았지만 여러분에게도 생소하지 않으리라 생각됩니다. 여러분은 과연 어떤 유형의 리더쉽을 발휘하고 계신지요? 그리고 그것이 과연 여러분의 조직에 어떻게 받아들여지고 어떤 결과를 가지고 올 것인지를 생각해야 할 것같습니다.

 

글 : 홍승찬 교수
편집 : 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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