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승찬교수의 클래식 이야기] 정원을 사랑한 윌리엄 월튼. 첼시 플라워 쇼와 윌리엄 월튼 그리고 모네의 정원 지베르니.[홍승찬교수의 클래식 이야기] 정원을 사랑한 윌리엄 월튼. 첼시 플라워 쇼와 윌리엄 월튼 그리고 모네의 정원 지베르니.

Posted at 2015.09.21 07:00 | Posted in 이건음악회 Talk Talk/홍승찬교수의 클래식 톡톡

 

 

나이가 들수록 꽃이 좋고 나무가 좋습니다. 그래서 언제부터인가 해마다 오월이면 첼시 플라워 쇼를 가리라 마음먹지만 이번에도 그냥 지나쳐 버리고 말았습니다.

 

 

정원과 꽃을 테마로 한 세계 최고의 축제인 영국 첼시 플라워 쇼

 

영국의 왕립원예협회에서 주관하는 첼시 플라워 쇼는 세계 최대의 정원 및 원예 박람회입니다. 해마다 오월 하순에 열리는데 올해는 5월 20일부터 24일까지 열렸습니다. 첼시라면 플라워 쇼 다음으로 윌리엄 월튼이 생각납니다. 그는 본 윌리엄스, 벤자민 브리튼과 더불어 20세기 영국을 대표하는 작곡가의 한 사람으로 꼽힙니다.

 

에드워드 엘가가 세상을 떠나자 사람들은 그를 제 2의 엘가라 불렀고 영국 국왕 조지 6세와 엘리자베스 2세의 대관식 음악을 그에게 맡겼습니다. 그리고 제 2차 세계대전 동안에는 영국국민들의 사기를 드높일 영화의 음악을 작곡하라며 병역을 면제받기도 하였습니다.

 

 

랭커셔주 올드엄 출생. 10세 때 옥스퍼드 그리스도교회의 칼리지에 들어갔으나 작곡은 거의 독학으로 익혔다. 1923년 잘츠부르크에서 열린 국제현대음악제에서 현악4중주곡으로 주목을 받고, 1924년 서곡 《포츠머스 포인트》로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하였다. 1929년 비올라협주곡 이후는 점차 낭만적·서정적인 작풍으로 전환하여 온건하면서도 독창적이며 기지에 넘치는 작품을 많이 남겼다.

 

월튼은 1902년 랭커셔주의 올드엄에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는 성가대 지휘자이자 성악교사였고 어머니도 성악가였습니다.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배웠지만 전문가의 수준은 아니었고 부모의 영향 탓인지 어려서부터 노래에 뛰어난 재능을 보여 옥스퍼드의 크라이스트 처치 성가대 학교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그로부터 6년후인 16살에 옥스퍼드 클라이스트 처치 칼리지에 입학하였고 날마다 대학 도서관에서 스트라빈스키와 드뷔시를 비롯한 동시대 작곡가들의 악보를 홀로 연구하며 작곡가의 꿈을 키웠습니다. 결국 그리스어와 대수학 시험을 통과하지 못해 학사학위를 따지는 못했지만 20대의 젊은 시절을 첼시에서 지내며 작곡가의 길에 뛰어들어 마침내 자리를 잡고 세상에 자신의 존재를 알리기 시작했습니다.

 

 

옥스퍼드 클라이스트 처치 칼리지

 

 

1923년 잘츠부르크에서 열린 국제현대음악제에 내놓은 현악4중주곡으로 음악계의 주목을 받았고 1926년 발표한 서곡 “포츠머스 포인트”로 널리 그 이름을 떨쳤지요. 그러나 첼시와 그의 이름을 함께 떠올리게 되는 것은 단지 그 때문만은 아닙니다. 작곡가로 성공의 가도를 달리던 1946년 이탈리아의 이스키아 섬에 들렀던 그는 그 풍광에 이끌려 당장 정원 설계사인 러셀 페이지를 영국에서 초빙하여 정원 조성을 구상하였습니다.

 

 

 

 

그리고 십년 후인 1956년 마침내 런던의 집을 팔고 이스키아로 이주하여 폴리오 언덕에 집을 지어 은매화를 뜻하는 “라 모르텔라 La Mortella”라고 불렀고 1948년에 결혼한 아르헨티나 출신의 아내 수잔나와 함께 남은 여생을 그곳에 머물며 드넓고 아름다운 정원을 가꾸었습니다.

 

1983년 월튼은 “라 모르텔라”의 저택에서 눈을 감았고 그의 아내 수잔나는 1992년 그들의 사랑과 삶을 고스란히 바친 부부의 보금자리를 사람들에게 공개하기로 결정하였습니다. 그로부터 12년이 흐른 2004년 “라 모르텔라는 미국 회사 “브릭스 앤드 스트래튼 Briggs & Stratton"으로부터 이탈리아에서 가장 아름다운 정원으로 선정되어 최우수상을 수상하였고 오늘날 이 세상에서 가장 독특하고 아름다운 정원들 가운데 하나로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이제 그곳에는 정원 뿐만 아니라 윌리엄 월튼을 기리는 기념관이 있어 그의 업적과 삶의 자취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해마다 이탈리아와 세계 각지의 음악학교가 주말마다 70회 이상의 음악회를 열고 하바드 대학교는 작곡가들을 위한 프로그램과 마스터클래스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한창 일할 나이에 치열한 삶의 현장을 벗어나 아름답고 고요한 낙원에 칩거한 탓인지 여든이 넘는 긴 생애 동안 그가 남긴 작품은 그다지 많지 않습니다. 그리고 오늘날 그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몇몇 걸작들 또한 젊은 시절에 내놓은 것들이 대부분입니다 제 1차 세계대전 이후 최고의 교향곡으로 꼽히는 교향곡 1번과 대지휘자 카라얀이 20세기 최고의 성악곡이라 일컬었던 오라토리오 “벨샤쟈의 향연”은 물론이고 비올라 협주곡과 바이올린 협주곡, 그리고 첼로 협주곡까지도 모두 이스키아로 이주하기 전에 작곡한 곡들입니다.

 

 

 

그의 작품이 많지 않은 것은 다른 작곡가들에 비해 작곡에 그 만큼 많은 노력과 시간을 들인 까닭도 있습니다. 교향곡 1번의 경우만 하더라도 2년이 지나도 완성하지 못해 초연에는 예정된 네 개의 악장 가운데 세 개의 악장만 연주되었고 다시 2년이 지난 다음에야 완전한 작품을 내놓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초서의 서사시를 바탕으로 만든 그의 오페라 “트로일루스와 크레씨다 Troilus and Cressida”는 무려 8년이나 결려 완성하였습니다.

 

Troilus & Cressida (Part 1) from Stanford Arts Institute on Vimeo.

 

게다가 그의 마지막이자 세 번째 교향곡은 오랜 시간을 끌었지만 결국 완성하지 못한 채 중단하고 말았지요. 생전에 그가 남긴 인터뷰에서 그는 날마다 아침 9시에서 오후 1시까지, 그리고 저녁 6시에서 8시까지 작곡에 전념한다고 했고 더러는 저녁 식사 이후에도 작업을 계속한다고 했으니 그에게 있어 창작은 끝을 알 수 없는 어둡고 긴 터널을 쉬지 않고 걷고 또 걸어야 하는 힘겹고 외로운 고행이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에게 “라 모르텔라”와 같은 낙원이 더욱 더 절실했는지도 모르지요.

 

 

고흐가 입원했다는 아를의 정신병원

 

고흐가 입원했다는 아를의 정신병원에는 이 세상의 모든 색을 펼쳐놓은 듯 온갖 꽃들이 피어있는 작고 아담한 정원이 있습니다. 전에는 정신병원이라면 그저 녹슨 쇠창살과 어두침침한 회색빛 콘크리트 건물이 제격이라 생각했지만 그게 아니라는 것을, 그래서는 안 된다는 것을 그때서야 깨달았습니다. 이 세상의 그 누구보다 마음이 너무 아파 제 정신으로 살 수 없는 그들에게 더욱 더 아름다운 꽃과 정원이 필요하다는 것을 말이지요. 정원이 아름다운 집이 좋은 집입니다. 공원이 아름다운 도시가 살기 좋은 도시입니다. 그런 곳에 아름다운 사람들이 깃들어 아름다운 마음을 나누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아룸다운 음악과 예술이 살아 숨쉬기 때문입니다. 내년에는 꼭 첼시 플라워 쇼를 다녀올 생각입니다. 오는 길에는 모네가 그토록 정성을 다해 가꾸었고 그의 그림보다 소중하게 여겼다는 지베르니 정원을 보고 올 참입니다.

 

 

모네의 정원 지베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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