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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음악회 Talk Talk/홍승찬교수의 클래식 톡톡

[홍승찬 교수의 재미있는 클래식음악 이야기] 세상을 떠난 영혼들을 위한 레퀴엠과 리타나이 - 모든 영혼이여, 평화 속에 잠들라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2. 4. 27.

 

 

 

홍승찬 교수의 클래식 음악(14)
 세상을 떠난 영혼들을 위한 레퀴엠과 리타나이

 

 



레퀴엠은 안식이라는 뜻의 라틴어입니다. 카톨릭 교회의 예배의식인 미사의 첫 순서를 인트로이트, 즉 입당송이라 하는데, 장례미사나 위령미사의 경우 입당송의 첫 구절이 레퀴엠 에테르남 도나 에이스 도미네로 시작하기 때문에 그 첫 단어를 따서 레퀴엠이라 부르게 된 것입니다. 입당송의 첫 구절을 우리말로 옮기면 주여 그들에게 영원한 안식을 주소서라는 뜻입니다. 카톨릭 교회로부터 서양음악의 역사가 시작된 이후 수많은 작곡가들이 미사를 위한 음악을 작곡했고 당연히 그 중에는 레퀴엠도 빠지지 않았습니다. 많은 걸작들 가운데 모차르트와 베르디, 포레의 레퀴엠을 으뜸으로 꼽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다른 작품들에 비해 뛰어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각각의 개성과 사연이 남다르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17917, 회색 옷을 입은 낯선 이가 불쑥 모차르트를 찾아와 작곡을 의뢰하는 편지를 전했는데, 거기에는 발신인도 없었고 자신이 누구인지 알려고도 하지 말라는 당부가 적혀 있었다고 합니다. 당시 모차르트는 건강이 몹시 좋지 않았던 데다가 다른 작품에 매달려야 하는 형편이라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처지였지만 제시한 거금을 뿌리치지 못하고 수락하고 말았습니다. 마감을 재촉하지 않는다는 조건이었지만 그는 레퀴엠에 점점 빠져들었고 아내 콘스탄체에게 이것이 마치 스스로를 위한 곡인 것 같다는 말까지 했다고 합니다. 이로 말미암아 지나치게 심신을 혹사한 그는 결국 끝을 보지 못한 채 그해 125일 세상을 떠났습니다.

 

 

나머지는 제자인 쥐스마이어가 완성을 했고 2년 뒤 처음으로 빛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또 한참이 지난 다음 마침내 레퀴엠을 위촉한 장본인이 발체크 백작으로 밝혀졌고 아내의 기일에 그 곡이 마치 자신의 작품인 양 발표할 심산이었다는 것도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영화속 모차르트의 죽음과 장례식 장면


 

베르디의 레퀴엠은 이탈리아의 문호 만초니를 기리기 위해 작곡되었습니다. 1873년 오페라 아이다의 공연을 준비하느라 여념이 없는 중에 그가 존경해마지 않았던 만초니의 서거 소식을 전해 들었고 그 즉시 만초니의 일주기를 위한 레퀴엠을 작곡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5년 전 롯시니가 세상을 떠났을 때도 레퀴엠을 바칠 생각으로 다른 작곡가들과의 공동작업을 제안했었지만 그 때는 연주자들의 사정으로 초연이 무산되었고 악보만이라도 완성하여 영전에 헌정하려 했으나 이 또한 이루지 못해 아쉬움으로 남았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혼자 그 일을 감당하기로 했고 마침내 일주기를 맞는 18745, 밀라노의 산 마르코 성당에서 그 자신이 직접 지휘대에 올라 110명의 오케스트라와 120명의 합창단을 이끌고 역사적인 초연을 성사시켰습니다.

 

 

종교적인 엄숙함보다 극적이고 역동적인 오페라에 가깝다는 베르디의 레퀴엠에 비해 포레의 레퀴엠은 정적이고 사색적이며 담담하기까지 합니다. 43세에 아버지를 여의고 레퀴엠을 작곡하기 시작했으나 곧이어 어머니마저 세상을 떠나게 되자 이 곡은 결국 부모를 위한 레퀴엠으로 완성되었습니다. 자신의 레퀴엠에 대한 세상의 평가를 알고 있었던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의 레퀴엠은 죽음의 두려움을 표현하고 있지 않다는 말을 들어왔다. 아니 오히려 죽음의 자장가라고 불리기까지 했다. 내가 죽음에 대해 느낀 것은 서글픈 스러짐이 아니라 행복한 구원이며, 영원한 행복으로의 도달인 것이다.”

 

 

 

아마도 얼마지 않아 천안함과 함께 조국의 바다 속으로 스러진 해군용사들을 추모하고 기리는 엄숙하고 경건한 의식이 있을 것입니다. 그 가운데 분명 음악이 있을 것이고 그렇다면 혹시 모차르트나 베르디, 혹은 포레의 레퀴엠이면 어떨까 싶습니다. 우리에게도 분명 비슷한 무엇인가가 있을 터이지만 이만큼 마음속에 깊이 와 닿는 것이 딱히 짚이지가 않는 까닭입니다. 지금부터라도 우리 가운데 누군가가 작정을 하고 만든다면 일주기를 맞는 내년에는 우리가 만든 우리의 레퀴엠으로 마음을 모아 숭고한 영혼들을 받들 수 있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의 아버지이고 형제이면서 아들이기도 한 그들이 잠든 바다를 찾아 꽃 한 송이 던지며 노래 부르고 싶습니다. 그렇게라도 캄캄한 바닷속이 외롭지 않도록 말입니다. 슈베르트의 리타나이들으면서 이 시간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독일의 바이에른 지방에서는 지금처럼 봄을 맞아 우리네 진달래꽃 같은 히스 꽃이 만발하면 마을 처녀들이 그 꽃을 꺽어 처녀로 죽은 이의 무덤에 뿌리며 노래와 춤으로 그 영혼을 달랬다고 하는데, 그것이 바로 리타나이라고 합니다. “모든 영혼이여, 평화 속에 잠들라고 시작하는 그 말 뜻 그대로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글 : 홍승찬 교수
편집 : 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