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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음악회 Talk Talk/홍승찬교수의 클래식 톡톡

[홍승찬 교수의 재미있는 클래식음악 이야기] 수고한 당신, ‘겨울여행’을 떠나라... 연광철과 마에스트로 정명훈이 함께 하는 슈베르트의 ‘겨울 나그네’를 들으며...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2. 4. 10.

 

 

홍승찬 교수의 클래식 음악(10)
수고한 당신, ‘겨울여행’을 떠나라

 

 

 

 

지난 2009년 음악계의 마지막 하이라이트는 아무래도 베이스 연광철과 마에스트로 정명훈이 함께 하는 슈베르트의 겨울 나그네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두 사람의 면면이나 비중을 따로 놓고 보더라도 예사롭지 않은데다가 모처럼 함께 하는 무대가 겨울 나그네라고 하니 각별한 기대와 관심이 모아질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성악가들은 말할 것도 없고 피아니스트들조차도 평생에 한번쯤은 꼭 목 놓아 불러보고 싶지만 그러지 못해 가슴 속에 묻어 두는 노래입니다. 그만큼 슬프고 아름답지만 그만큼 깊고 섬세합니다. 피아니스트가 무슨 노래를 부르냐고 하시겠지만 반주자의 역할이 가수만큼이나 중요하고 뚜렷한 것이 슈베르트 가곡의 본질이고 슈베르트 이후 슈만과 브람스를 거쳐 볼프와 시트라우스로 이어지는 독일 가곡의 특징이기도 합니다. 흔히들 슈베르트를 두고 가곡의 왕이라 일컫는 것도 어찌 보면 바로 이 작품 때문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물론 서른 한 살의 너무나도 짧은 생애 동안 600곡이 넘는 가곡을 남긴 것도 경이로운 일이지만 그 중에서도 겨울 나그네는 기적과도 같은 선물입니다.

 

 

[슈베르트 겨울 나그네]Die Winterreise - Einsamkeit, Die Post, Der greise Kopf, Die Krähe

 

 

겨울 나그네1827년 빌헬름 뮐러의 시에 곡을 붙여 완성한 연가곡입니다. 이 작품을 만든 해에 뮐러가 눈을 감았고 베토벤이 또한 세상을 등졌습니다. 그리고 일년 후 슈베르트는 베토벤 곁에 영원한 안식처를 얻었습니다. 연가곡이란 일련의 노래들이 하나의 이야기로 이어지는 것으로 이 또한 슈베르트 이후 시작된 독일 가곡의 특징입니다. 흔히들 슈베르트의 3대 가곡집이라고 해서 물방앗간의 아가씨겨울 나그네’, ‘백조의 노래를 꼽는데, 이 가운데 앞의 두 작품이 연가곡이고 백조의 노래는 슈베르트가 세상을 떠난 다음 유작 14곡을 모아 출판한 것입니다.물방앗간의 아가씨역시 빌헬름 뮐러의 시에 곡을 붙인 것으로 겨울 나그네와는 이야기가 서로 맞닿아 있기도 합니다. 청운의 꿈을 품고 길을 떠난 한 젊은이가 물방앗간집의 아가씨에게 마음을 뺏겨 그곳에 남아 견습공으로 일하게 됩니다. 멀리서 지켜보며 차마 말 못할 사랑을 홀로 키워가지만 정작 그 아가씨의 마음은 사냥꾼에게 온통 기울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하늘이 무너질 듯 절망한 젊은이는 연인의 곁에 머무는 것이 너무나 고통스러워 목숨보다 중요한 그의 사랑과 정든 물방앗간을 떠나려고 합니다.

 

Der Neugierige Schubert, 아름다운 물방앗간의 아가씨 Die schöne Müllerin,D.795, no.6.

 

 

 

겨울 나그네의 이야기는 마치 그 다음의 이야기를 이어가는 듯합니다. 하필이면 겨울에 그것도 캄캄한 밤에 눈 덮인 적막한 길을 나선 젊은이는 절망과 불안이 엇갈리는 착잡한 심정으로 입 밖에는 꺼내지도 못할 작별의 인사를 마음에만 새겨둡니다. 세차게 몰아치는 바람에 사정없이 나부끼는 깃발을 바라보며 마음의 동요는 더욱 심해지고 그의 심정에는 아랑곳없이 결혼준비에 들떠 있는 신부와 그 가족들에 대한 원망으로 격해지는 감정을 느끼게 됩니다. 그것도 잠시, 서글픈 마음에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이 뺨을 타고 흐르다가 지독한 추위로 얼어붙고 말지만 사랑의 뜨거운 감정은 좀체 식을 줄을 모릅니다. 사방을 분간할 수도 없는 어둠 속에서 눈 속에 묻혀 있을 사랑하는 이의 발자국을 찾습니다. 추위에 시린 손으로 사방을 더듬어 보지만 봄날의 추억은 오간 데 없고 추위와 절망으로 마음마저 얼어붙습니다. 어느덧 성문 앞에 이르자 변함없이 우물가에 버티고 선 보리수를 보고는 슬플 때나 기쁠 때나 마음을 나누고 의지했던 추억을 잠시 더듬어봅니다. 바람에 모자가 날라 가 버리지만 마음이 약해질까 돌아보지 않고 길을 재촉합니다. 이제는 돌이킬 수 없는 길임을 깨닫고는 눈물이 쏟아지지만 눈 위에 떨어진 뜨거운 눈물이 냇가로 흘러 사랑하는 이에게 전해졌으면 하는 부질없는 미련을 버리지 못합니다. 여기까지가 첫 번째곡 밤인사부터 여섯 번째 곡 넘쳐흐르는 눈물입니다.

 

 

얼어붙은 냇물을 건너고 적막한 어느 낯선 거리에 이르자 몸과 마음은 지칠 대로 지쳐 따뜻한 봄날 사랑하는 이를 지켜보던 아름다운 추억이 더욱 간절해집니다. 이윽고 깊은 골짜기에 접어들자 길은 보이지 않고 저 멀리 묘지에서 도깨비불만 번뜩입니다. 말라붙은 개울바닥을 따라 걸으며 어차피 물은 바다로 흐르고 슬픔은 무덤으로 이어진다면서 체념을 하게 됩니다. 폭풍이 몰아치자 이제 더는 걷지 못하고 숯 굽는 오두막을 찾아 잠시 쉬기로 합니다. 걸음을 멈추자 추위가 엄습해오고 세찬 바람은 피했지만 다친 상처가 더욱 고통스럽기만 합니다. 잠시 정신을 놓는가 싶으면 따뜻한 봄날에 연인과 함께 하는 꿈을 꾸지만 닭 울음소리에 단꿈은 깨고 참혹한 현실로 돌아오기를 거듭합니다. 지붕에서 우는 까마귀는 마치 자신을 비웃는 듯하지만 꿈이 현실이었으면 하는 바람이 너무나도 간절합니다. 폭풍이 멈추고 날이 개이자 사방은 더욱 적막하고 고독이 밀려들어 전보다 더 견디기가 힘듭니다.

 

Aufenthalt 나의 집 쉼터 -슈베르트 백조의 노래 중...

 

 

이렇게 열두 번째 곡 고독을 지나면 전반부가 끝이 나고 열세 번째 곡 우편마차부터 후반부에 들어서게 됩니다. 우편마차의 나팔소리에 잠시 들뜬 마음을 품게 됩니다. 혹시나 사랑하는 이의 소식을 들을 수 있을까 하는 어처구니없는 기대로 말입니다. 그러나 절대로 그럴 수 없는 현실을 깨닫고 절망은 더욱 깊어집니다. 서리가 내려 하얗게 변했던 머리카락이 햇빛을 받아 검게 되자 차라리 머리가 희어져 자신의 고달픈 여정과 인생도 빨리 끝나기를 바라게 됩니다. 죽음의 냄새를 맡은 까마귀가 나그네의 주변을 맴돌지만 지팡이에 몸을 기댄 나그네는 까마귀라도 끝까지 곁에 남았으면 합니다. 이제 마지막 희망까지 포기할 즈음 어느 마을에 당도하지만 늦은 밤 개 짖는 소리만 나그네를 맞이합니다. 이미 한낱 꿈마저 버린 나그네는 다시는 잠이 들어 헛된 꿈을 꾸지 못하게 개더러 계속 짖으라고 말합니다. 아침이 되어 다시 폭풍우가 몰아치지만 모든 것을 포기한 나그네는 아무 것도 두려울 것이 없습니다. 그리고는 마침내 몽롱한 환상 속에 스스로를 맡기지만 문득 길 위의 이정표를 발견하고는 갈 곳도 없고 돌이킬 수도 없는 스스로의 처지를 다시금 깨닫습니다. 길은 묘지로 나그네를 이끌지만 죽음을 앞둔 그에게는 그곳이 마치 여인숙인 듯 편안하기만 합니다. 거센 폭풍우는 나그네의 부질없는 마지막 오기를 자극하지만 날이 개이자 죽음의 문턱에 이른 나그네에게는 하늘의 태양마저 세 개로 보입니다. 마을 어귀에 늙고 지친 거리의 악사가 안간힘을 다해 손풍금을 돌리지만 돈을 놓는 접시는 텅 비어 있습니다. 그 악사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나그네는 점점 다가오는 죽음의 순간을 기다립니다.

 

 

 

모두 24곡으로 이루어진 이 작품의 독일어 제목 ‘Winterreise'을 우리말로 옮기면 겨울여행입니다. 일본사람들이 먼저 겨울 나그네로 번역했고 우리가 그대로 쓰고 있는 것이지요. 아마도 우리가 이름을 기억할 만큼 위대한 업적을 남긴 작곡가 가운데 슈베르트만큼 짧은 삶을 살다간 이는 없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만큼 마음이 여리고 순수했던 이도 달리 없었던 것 같습니다. 남달리 작은 키에 머리만 컸던 그는 지독한 근시에다 말까지 더듬었습니다. 그러니 재물이 그를 따랐을 까닭이 없고 사랑이 그의 편이었을 리가 없습니다. 평생을 누군가의 집에 얹혀살아야 했고 밤거리의 여인에게서 몹쓸 병을 얻기까지 했습니다. 그가 그토록 바랐던 작곡가로서의 성공도 그의 생전에는 그를 피해 다녔습니다. 열여섯 편이나 되는 그의 오페라는 한 번도 성공하지 못했고 심지어 무대에조차 오르지 못한 경우도 허다했습니다. 다름 아닌 그가 바로 물방앗간의 아가씨를 짝사랑한 청년이었고 그가 바로 겨울 나그네였던 것입니다. 그가 말하기를 내가 사랑의 노래를 원했을 때, 그 노래는 슬픔으로 바뀌었고, 내가 슬픈 노래를 원했을 때, 그 노래는 사랑으로 바뀌어있었다고 했습니다.

 

 

치열했던 시간을 잠시 멈추고 홀로 겨울 여행을 떠나는 것은 어떨까요. 지독하게 추웠던 어린 시절의 겨울과 순수했던 젊은 시절의 아름다운 사랑을 그리워하면서 말입니다. 그 옛날 가수 최희준의 노래처럼 인생은 어차피 나그네길이겠지요. 박목월 시인의 시처럼 구름에 달 가듯이 그렇게 가다가 술 익는 마을에 이르면 잠시 머물면 어떻습니까? 삶이 빡빡하니 늘 그럴 수는 없겠지만 한 해를 보내는 이쯤에서 잠시 훌훌 털고 떠나자는 것이지요. 19세기에는 감동적인 음악을 듣고 눈물을 흘리는 이가 교양인이고 지성인이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연주회 갈 때면 반드시 손수건을 챙겼다고 하지요. , 수고한 당신 슈베르트의 겨울 나그네와 함께 겨울여행을 떠나시지요. 눈물을 펑펑 흘리면서 말입니다.

 

 

 

내가 사랑의 노래를 원했을 때

그 노래는 슬픔으로 바뀌었고

내가 슬픈 노래를 원했을 때

그 노래는 사랑으로 바뀌어 있었다.

  

 

글 : 홍승찬 교수
편집 : 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