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승찬 교수의 클래식 음악(2) 아카펠라는 이렇게 시작되었다!
| ‘아카펠라’라고 하면 무반주 합창이나 중창이라는 것쯤은 누구나 다 알고 계실 겁니다.
관심이 있어 이 말을 사전에서 찾아보면 원래는 ‘아 카펠라 a capella', 즉 ’교회에 맞게’, 혹은 ‘교회 풍으로’라는 뜻인데 지금은 반주가 없이 부르는 중창이나 합창을 일컫는 말로 쓰이고 있다고 되어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말이 처음에는 ‘교회에 맞게’라는 뜻이었다가 ‘무반주 합창이나 중창’으로 바뀐 까닭이 무엇일까요? 결론부터 말하자면 아주 먼 옛날에는 교회에서 노래를 불러 신을 찬양하려면 반주가 없어야 한다고 생각을 했고, 실제로 또 오랫동안 그렇게 해왔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지금은 교회음악이 아니더라도 무반주로 부르는 합창이나 중창을 ‘아카펠라’로 부르게 되었고 오히려 교회에서는 반주를 사용하는 음악을 더 많이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왜? 초기 유럽의 크리스트교 교회에서는 왜 악기로 반주하는 것을 금지했을까요?
한 때 기독교가 로마제국의 핍박을 받을 무렵 로마인들이 기독교인들을 처형할 때 원형경기장에 맹수들을 풀어놓고 온갖 악기 소리로 흥을 돋우었기 때문이라는 말도 있고 그 후 이교도들에게 기독교를 포교하는 과정에서 이교도들의 종교의식과 기독교의 예배의식을 엄격하게 구분 지을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라는 말도 있습니다. 실제로 그 이유가 무엇이든 간에 중세의 신학자들이 기록으로 남겨 전하고 있는 교리상의 명분은 다음과 같습니다.
세상에는 세 가지 등급의 음악이 있는데, 가장 우위에 있는 것은 ‘무지카 문두스 musica mundus', 즉 천상의 음악으로 신의 섭리 그 자체라는 것입니다. 그 다음은 ‘무지카 휴마나 musica humana’, 즉 인간의 음악으로 신의 섭리가 인간 세상에 구현된 것이고 ‘무지카 인스트루멘탈리스 musica instrumentalis’, 즉 도구의 음악은 인간이 감각으로 느낄 수 있는 물리적 현상의 소리로 가장 낮은 등급의 음악이라는 것입니다. 정말이지 고귀하고 오묘한 신의 섭리와 그것이 구현된 자연의 조화는 미천한 인간의 감각으로는 도저히 알아차릴 수 없는 것이니 이 세상에서 사람이 보고 듣고 느껴서 알 수 있는 모든 것은 다 하찮은 것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 교리를 엄격하게 적용한다면 교회에서 인간의 목소리로 신을 찬양하는 것조차 불경스러운 일일진대 인간의 손으로 만든 악기를 사용한다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말하자면 모든 가치 있고 진실 된 본질은 인간의 감각으로는 도저히 느낄 수도 나타낼 수도 없다는 것이고, 인간 세상의 모든 것은 일장춘몽 헛것에 불과하니 지상에 살면서도 천국과 하느님만 생각하고 기도해야 한다는 것이겠지요. 이것은 예수님이 부활하셨을 때 손바닥의 상처를 보고서야 믿었던 제자 토마스를 나무라셨듯이 보지 않고 듣지 않고서도 믿을 수 있는 신앙이 중요하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이런 교리를 엄격하게 적용한다면 교회에서 인간의 목소리로 신을 찬양하는 것조차 불경스러운 일이었겠지요. 하물며 인간의 손으로 만든 악기를 사용한다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음악 해석의 변천
세월이 흐르면 모든 것이 다 변하기 마련이고 종교의 교리라고 해서 예외일 수는 없을 것입니다. 이 세 가지 음악에 대한 해석도 시간이 지나면서 많이 달라지게 됩니다. ‘천상의 음악’은 신의 섭리와 그것이 구현된 자연의 조화까지를 다 아우르는 개념이 되고 ‘인간의 음악’은 사람의 목소리로 들려주는 신의 섭리요 자연의 조화를 뜻하게 됩니다. 그리고 ‘도구의 음악’은 인간이 만든 도구, 즉 악기로 내는 소리인 만큼 여전히 따로 언급할 필요조차 없었을 것입니다. 결국 이런 변화를 거쳐 사람의 목소리로 신을 찬양하는 것에는 당위성이 부여되었지만 그 후로도 한참동안 악기로 연주하는 음악은 교회에 수용될 수가 없었습니다. 물론 지금은 가톨릭이나 개신교 모두 악기로 반주하는 성가나 찬송가를 사용하고 있지만 특정 교파 경우는 아직까지도 교회 안에서 노래로 찬양을 하거나 찬송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기도 합니다.
르네상스~ 아카펠라의 황금기!
반주 없이 노래하는 합창이나 중창은 르네상스 시대에 이르러 황금기를 맞이하게 됩니다. 교회 안에서 뿐만 아니라 교회 밖에서도 사람들이 삼삼오오 무리를 이루어 노래 부르기를 즐겼는데 이탈리아에서 유행했던 ‘마드리갈’이라는 양식이 가장 대표적일 것입니다. 그 무렵부터 악보 출판이 시작되어 그것이 또한 이런 음악을 널리 보급하는 데 큰 영향을 미치기도 했습니다. 그 덕분에 오늘날까지도 그 시대에 출판된 음악들의 상당수가 기록으로 남게 되어 지금도 합창단의 레퍼토리만큼은 바로크 시대를 앞질러 르네상스 시대부터 시작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르네상스 시대의 무반주 합창곡이 교회 밖에서 성행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놀라운 업적들은 교회 안에서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리고 수많은 작곡가들 가운데 한 사람을 꼽으라면 팔레스트리나를 가장 먼저 떠올리게 됩니다. 난세에 영웅이 난다고 했듯이 가톨릭교회가 안팎으로 도전을 받으면서 어려움에 처했을 때 홀로 소신을 꺾지 않고 위대한 걸작으로 교회음악의 권위를 지켰던 거장이었습니다. 요즈음과 같이 어려운 시기에 우리 사회에도 필요한 인물이 아닌가 싶습니다.
글 : 홍승찬 교수
편집 : 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