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곡가 바그너는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를 일컬어 음악사를 통 털어 가장 놀라운 기적이라 했습니다. 그만큼 그가 남긴 업적과 후대에 미친 영향이 크기에 아무도 그와 견줄 수 없다는 말이기도 하고 그것이 너무나 크고 높아 도저히 한 사람이 이루어낸 것이라고 믿기 힘들다는 뜻도 가지고 있습니다. 당장 그가 남긴 작품의 수와 양만 놓고 보더라도 이 말을 실감할 수 있습니다. 독일어로 ‘바흐(Bach)'는 ‘시냇물’이라는 뜻이 되기도 하는데, 이를 두고 베토벤은 “시냇물(Bach)이 아니라 바다(Meer)다.”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바흐협회(Bach Gesellschaft)가 그가 남긴 작품을 모아 60권으로 출판하기까지 46년이 걸렸고 그렇게 정리된 작품의 수만 헤아려도 천곡이 넘지만 버려지고 잊혀져서 찾을 수 없는 작품들이 얼마인지는 도저히 가늠할 수조차 없으니 실제로 그가 작곡한 작품의 수와 양을 추정한다면 실로 이것이야말로 기적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오늘날 현존하는 모든 종교음악들 가운데 최고로 일컬어지고 있는 마테수난곡은 작곡가 멘델스존에게 발견되어 세상에 알려졌고 그로 말미암아 바흐의 존재도 함께 사람들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지금껏 첼로를 위해 만들어진 모든 곡들 가운데 으뜸으로 꼽히는 첼로모음곡도 첼레스트 카잘스가 찾아내기 전에는 이 세상에 없는 것이나 다름이 없었습니다. 이처럼 또 우리가 모르는 채 어딘가에 묻혀 있을 바흐의 위대한 업적이 얼마나 더 많을 지를 생각하면 너무나도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새롭고 혁신적인 바흐의 마태 수난곡 -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연주
그의 기적이 더욱 놀라운 것은 작곡은 바흐에게 부여된 일상적인 업무 가운데 일부였을 뿐이라는 것입니다. 그는 오르간과 다른 악기를 연주하고 성가대와 악단을 지휘해야 했으며 그와 관련된 연습은 물론 행정도 맡아야 했습니다. 또한 그는 학생들도 가르쳐야 했는데 음악만이 아니라 라틴어까지도 그의 몫이었습니다. 이런 사정이니 작곡은 일터에서 집으로 돌아온 다음에야 가능했을 테고 날마다 촛불 아래서 밤을 지새워야 했을 것입니다. 그래서인지 50이 넘어 바흐는 백내장을 앓았고 수술의 후유증으로 실명을 했는가 하면 그로 말미암아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흥미로운 것은 같은 시대를 살며 함께 그 시대를 대표했던 헨델도 비슷한 시기에 백내장을 앓았다는 것이고 더욱 놀라운 것은 모두 존 테일러라는 영국 의사에게서 시술을 받고 그 후유증으로 실명을 했다는 것입니다.
요한 세바스티안 바흐
이토록 놀라운 바흐의 기적이 가능했던 까닭은 무엇일까요? 두 말할 필요도 없이 재능과 능력이 누구보다 뛰어났기 때문이라는 것이 먼저이고 아무와도 비교할 수 없는 근면과 성실 또한 빼놓을 수 없는 이유일 것입니다. 그렇다면 기적을 만든 재능과 능력은 어디서 온 것일까요? 그리고 초인적인 인내로 버틴 근면하고 성실한 삶은 무엇으로부터 비롯된 것일까요? 이번 시간에는 첫 번째 의문에 대한 답을 찾기로 하고 두 번째 질문에 대한 해답은 다음 시간에 밝혀보기로 하겠습니다.
기적과도 같은 바흐의 업적을 가능하게 한 재능의 뿌리는 그의 혈통에서 가장 먼저 찾을 수 있습니다. 그의 가문은 200여 년에 걸쳐 50명 이상의 음악가를 배출하였습니다. 이런 경우는 가업을 중시하던 당시의 상황을 감안하더라도 무척이나 드문 경우이기에 오늘날에도 학자들의 연구 대상으로 관심을 끌고 있습니다. 이 가계의 6대를 통틀어 음악가가가 아닌 사람을 찾는 것이 쉽지 않을 정도이니 놀랍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제과업자이면서 치터(Zither:현악기의 일종)를 연주했던 파이트 바흐 이후, 중부 독일의 튀링겐 지방에서 바흐 가문은 뿌리를 내렸습니다.
Zither - 출처 : Wikipedia
가족들은 모두 루터 정통파의 경건한 신자였습니다. 파이트 바흐의 장남이자 요한 세바스찬 바흐의 증조부인 요하네스는 바이마르 거리 악사로서 그 이름은 이웃 고장에까지 전해 졌습니다. 그의 장남인 요한은 바흐 가문 최초의 작곡가로서 알려져 있고, 3곡의 작품이 현존하고 있습니다. 요한의 동생 크리스토프가 바흐의 조부로서, 악사로 활약했으며, 동생인 하인리히의 칸타타 한 곡이 지금도 남아있습니다. 하인리히의 장남 요한 크리스토프는 교회의 오르간 연주자로서, 작곡가로서도 많은 작품을 남겼습니다. 그의 동생 미하엘도 음악가였으며, 그의 막내딸 마리아 바르바라는 훗날 요한 세바스찬 바흐의 첫 아내가 됩니다. 요한 세바스찬 바흐의 조부 크리스토프는 세 아들이 있었습니다. 장남 게오르크 크리스토프는 바흐 집안에서 처음으로 칸토르(교회 합창단장)라는 높은 지위에 올랐습니다. 그 동생 요한 크리스토프와 요한 암브로지우스는 일란성 쌍생아로서 모두 악사가 되었습니다. 이 암브로지우스의 막내아들이 요한 세바스찬 바흐입니다.
요한 제바스티안에게는 20명의 자녀가 있었는데, 첫 번째 부인 마리아 바르바라에게서 일곱을 낳았고 상처하고 재혼한 두 번째 부인 안나 막달레나에게서 13명을 얻었습니다. 그 가운데 절반을 어려서 잃었고 나머지 대부분이 음악가로 성장하였지만 그 중에서도 장남인 빌헬름 프리데만(1710~1784), 차남 카를 필립 에마누엘(1714~1788), 막내 요한 크리스티안(1735~1782)의 3명은 음악사에 찬란한 업적을 남겼습니다. 특히 에마누엘과 크리스티안은 전자가 '함부르크의 바흐', '베를린의 바흐', 후자가 '밀라노의 바흐', '런던의 바흐'로 일컬어질 정도로 전 유럽에서 활약하고 아버지 바흐가 집대성한 바로크음악의 업적을 하이든과 모차르트가 계승하여 고전주의 시대를 열 수 있도록 커다란 역할을 하였습니다.
함께 연주하는 바흐 가족의 모습 - 출처 : http://classroom.re.kr/
신약성서 마태복음을 열면 가장 먼저 아브라함에서 시작하여 예수까지 이어지는 길고 긴 족보를 하나도 빠짐없이 지루하게 늘어놓고 있습니다. 이처럼 하느님의 뜻조차 누대에 걸쳐 끊이지 않고 이어지며 전해지고 난 다음에야 마침내 이 땅에 이루어질 수 있었는데 하물며 사람의 일이야 달리 무슨 말을 하겠습니까? 우리가 앞선 세대로부터 물려받은 것들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 가운데 무엇을 잘 닦고 가다듬어 후손에게 물려줘야 할 것인지 생각하고 또 생각해야 할 때입니다. 그런 고민과 노력이 오랜 세월 거듭된 다음에야 우리도 바흐와 같은 기적을 낳을 수 있을 것입니다. 태양계 밖의 미지의 세계에 인류의 존재를 알리기 위해 우주 탐사선 보이저 2호에 실린 바흐의 음악들 가운데 한 곡이지요. 브란덴부르크 협주곡 2번의 1악장 들으면서 이 시간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Brandenburg Concerto NO 2 in F Major, BWV 1047
2012. 5. 24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The Great 3B series-Bach 2012"
브란덴부르크 협주곡 제2번 F장조 BWV 1047
리더ㅣ김 민
연주ㅣ서울바로크합주단
지휘&챔발로ㅣ조리 비니커
바이올린ㅣ윤경희, 김성혜
플루트ㅣ필립 베르놀드
오보에ㅣ이현옥, 김소연, 송영현
바순ㅣ김희성
트럼펫ㅣ알레스 크랜카, 성재창, 박기범
팀파니ㅣ박보형
챔발로ㅣ조리 비니커, 오주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