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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반] 도회적 감수성의 멋진 멜랑콜리 GERRY MULLIGAN - NIGHT LIGHTS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3. 7. 4.

 

 

아마도 바리톤 섹스폰이란 악기를 세상에 알리는데 지대한 공헌을 한 인물이 제리 멀리건이

아닐까 싶습니다. 섹스폰엔 여러 종류가 있지만, 재즈계에선 주로 테너와 알토, 그리고 소프라노 정도가

자주 쓰이고 있습니다. 말하자면 바리톤 주자는 그리 많지 않은 것이다.

테너보다 훨씬 음역이 낮은 이 악기는 자칫 잘못 들으면 트롬본하고 혼동하기 쉽습니다. 마치 테너가

트럼펫을 연상시키는 것처럼. 일단, 멀리건이 부는 이 악기의 매력에 빠지면 그 특유의 온화하고 풍부한 감성

에서 빠져나올수가 없습니다. 그를 결코 테크니션이라고 부를 수는 없겠지만, 음을 아름답게 부는 연주자란

 점을 부인할 수 없기 때문에 그는 무려 50여년간 재즈계 일선에서 활동할 수 있었습니다.

순수한 재즈 플레이어로서 이렇게 까지 장수를 누린 것은 아마도 흔지 않은데, 물론 그 사이 많은 골곡과

아픔을 겪었습니다.

1927년 뉴욕 출신인 멀리건은 원래 피아노를 전공했습니다. 물론 본 앨범에서도 그의 피아노 연주를 접할 수

있습니다. 그외 편곡을 공부했으며, 색스폰은 처음 알토로 시작했습니다. 이윽고, 시간이 흘러 바리톤을 잡할

을 때 그 악기는 그의 평생 반려자가 되었습니다.

멀리건은 연주자로서 화려하게 데뷔한 사람은 아니였습니다. 오히려 편곡능력이 좋아 클로드 톤힐 같은

악단의 단골 어렌지 노릇을 할 정도였으나, 1948년 같은 편곡자인 길 에반스를 만난 후 그의 소개로

마일즈 데이비스에 연결이 된 것이 큰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이들 세 사람의 만남은 50년대 초를

풍미했던 'cool jazz'의 서곡을 알리는 역사적인 세션 'birth of the cool' 앨범으로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이때부터 독자적인 세계를 확보하게 된 멀리건은 한국전의 특수로 로스앤젤레스가 흥청이는 틈을 타 웨스트

코스트에 교두보를 놓게 됩니다.

그리고, 쳇 베이커를 만나 전대미문의 '피아노리스 쿼텟' 을 조직하기에 이릅니다.

이 퀴텟은 리듬 세션에 피아노를 제외한 다음 드럼과 베이스를 놓고 두 명의 혼 주자가 프론트에 나서는

형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왜 피아노를 빼놓았는가 하는 질문에 그는 피아노라는 악기가 너무나 유능하기

때문에 혼 주자의 역활을 축소시킨다는 것입니다. 어쨌든 이 발상은 대단한 성공을 거두었고, 웨스트 코스트

재즈는 일약 세계적인 히트를 기록하게 됩니다.

이 음반은 비록 60년대 초반의 세션을 담고 있지만 세션에 참여한 멤버 대부분이 웨스트 코스트 일색의

재즈라는 점과 백인 특유의 멜로딕한 감성과 앙상블이 잘 살아 있다는 점에서 그의 최고작으로 평가를

받습니다.

특히, 짐 홀 같은 기타리스트의 무념무상한 플레이. 빌 크로우의 단정한 베이스. 아트 파머의 감성 풍부한 블

로잉등 멀리건의 색깔을 표현하는 데에 있어서 더없이 잘 어울리는 멤버들이 참여함으로써 도회적인

퇴폐미와 나른한 긴장감이 가득한 명연이 되었습니다. 아마 재즈를 그다지 진지하게 들어본 사람들도

선뜻 손을 댄 만한 친화력을 갖고 있습니다.

 

첫곡 'light lights' 는 멀리건의 잔잔한 피아노 솔로가 전면에 나선 후 바리톤 섹스폰으로 전환해서 유연하게

불어 젖히는 부분이 기막힌 곡입니다.

마치 고층 빌딩의 스카이 라운지에서 칵테일을 마시며 야경의 빌딩 숲을 바라보는 듯한 기분을 전해 주는,

말그대로 쾌작입니다.

'morning of the carnival' 은 영화 '흑인 올페'의 재즈로 편곡한 작품입니다. 바리톤 특유의 진한 필링이

전면에 흐르면서 너무나도 소박한 보사노바 리듬이 받치는 이 곡은 이국적인 정서가 충만합니다.

한편, 멀리건의 클래식ㅎ한 감성을 엿볼 수 있는 'prelude E minor'는 쇼팽의 피아노 곡을 편곡한 작품입니다.

정말이지 들으면 들을수록 쇼팽의 여성적인 감각과 멀리건의 풍부한 정서가 잘 맞물려 묘한 감칠맛을 주고

있습니다.

언제 들어도 릴렉스한 기분을 주는 이런 곡은 애인이나 친구의 선물로 보내면 딱 좋은 곡입니다.

이 앨범은 자켓의 표현대로 세련된 도회 취향을 타켓으로 삼고 있습니다. 재즈하면 그저 담배연기 자욱한

지하 카페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연주하는 이미지로만 갖고 있는 분이라면 세상에 이런 감각의 재즈가 있다

는 차원에서 꼭 들어보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그동안 굉장히 아끼는 음반중에 하나인데, 일본 발매 LP를 구하게 되었습니다.

아래 사진에서 보듯이 음반상태며 녹음도 상당히 우수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