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승찬 교수의 클래식 음악(48)
[홍승찬 교수의 재미있는 클래식음악 이야기]
빈티지 와인처럼 깊고 그윽한 향을 지닌 첼리스트 양성원?
부부동반으로 만나기에 부담스러운 첼리스트 양성원?
도전과 열정의 첼리스트 양성원
요즈음 우리나라에서는 어린 연주자들, 특히 여성 연주자들이 두각을 나타내는 경우가 많은데 첼리스트만큼은 예외라는 생각이 듭니다. 일단 연배 순으로 다섯 손가락만 펴서 꼽아 본다면 정명화와 장한나 사이에 조영창과 양성식, 송영훈이 차례로 들어갈 수 있으니 남성이 여성보다 많고 또 그들의 나이 또한 각각 50대와 40대, 30대를 대표하고 있습니다. 이들을 놓고 우열을 가리는 것은 어리석고 무의미한 일이지만 활동의 빈도만을 따진다면 양성원이 가장 두드러진 것이 사실입니다. 그만큼 꾸준하고 부지런하다는 것이지요. 연세대학교 교수이면서 현재 영국의 왕립음악원 객원교수로 나가 있는 첼리스트 양성원은 해마다 음반을 내는가 하면 국내외를 오가며 누구보다 왕성한 연주활동을 하고 있는 우리나라 첼로의 대표주자입니다. 우리나라 바이올린계의 대부라고 할 수 있는 양해협 선생의 아들이면서 현재 대구 가톨릭 대학 교수로 있는 바이올리니스트 양성식의 동생이기도 한 그는 어려서 프랑스에서 자라 그곳에서 공부했고 커서는 미국으로 건너 가 거장 야노스 슈타커에게 사사했습니다. 그리고 해외에서 두각을 나타내며 활동을 하던 중 때 마침 문을 연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로 국내에 들어와 지금껏 그 누구보다 많은 활동과 업적을 쌓아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첼리스트 양성원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드릴까 합니다.
첼리스트 양성원과 밥 먹는 일은 늘 즐겁습니다. 전화를 걸어서 상대편의 의견을 묻기는 하지만 결국은 그가 즐겨 찾는 식당으로 가서 그가 좋아하는 메뉴를 선택하고 거기에 딱 맞는 와인을 마시게 됩니다. 그러니 내가 먼저 무엇을 먹고 마실지 고민할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게다가 워낙 음식과 와인에 일가견이 있어 그의 선택은 언제나 감동입니다. 식사를 하면서 서로 주고받는 대화도 너무나 편안합니다. 심각한 이야기가 없기 때문입니다. 먹고 마시며 웃고 떠들 따름입니다. 그러다 음악 이야기를 나눌 때도 있고 간혹 이야기가 길어지면 서로 다른 입장이 드러날 때도 있지만 아무도 그걸 신경 쓰지 않습니다. 그는 그저 그의 말을 할 뿐이고 나는 그저 나의 말을 할 뿐이지 그것이 두 사람의 식사에 끼어들어 방해하지는 않습니다.
양성원과 함께 하는 연주회도 언제나 이런 식입니다. 기획하고 해설하는 입장에서 여러 가지 다른 의견을 내보기도 하지만 결국은 그가 원하는 곡들로 연주회를 만들게 됩니다. 그리고 그 결과 지금까지 다 한 번도 청중들의 기대와 호응을 저버린 적인 없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먼저 그의 의견을 물어 그가 하자는 대로 다 들어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한 번은 어느 특급호텔 개관을 축하하는 파티의 축하연주를 부탁받고 그에게 물었더니 느닷없이 베토벤의 소나타 전 악장을 다 연주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래도 이건 아니다 싶어 말리려다가 이번에도 그의 생각을 존중하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개관 축하연이 있던 날 해설자로 나서서는 하객들에게 이런 들뜬 분위기에서 이렇게 긴 곡을 들려 드리게 되어 송구스럽다는 말과 연주자의 고집을 꺾지 못해 죄송하다는 말을 하고 양해를 구했습니다. 그렇게 다들 한바탕 웃었지만 오직 양성원은 여느 때와 다름없이 진지한 자세로 열과 성을 다한 연주를 들려주었고 긴 시간 어쩔 수 없이 서서 들어야 했던 수많은 청중들은 예기치 않은 감동에 우뢰와 같은 박수와 환호를 멈추지 않았습니다.
융통성이라고는 하나도 없이 고지식한 양성원에게 식도락이 삶의 단 하나 뿐인 일탈이라면 일상에서 나머지 거의 모든 시간은 음악과 함께 하는 나날들입니다. 언젠가 그와 함께 하는 여름 캠프에서 하루의 일과가 모두 끝나고 참여한 다른 음악인들과 숙소에서 조촐한 술자리가 벌어졌을 때 그만 홀로 커다란 악기를 들고 나타났습니다. 그리고는 아무렇지도 않게 첼로를 품에 안은 채 오른손에는 술 잔을 들고 다른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는 동안 왼 손의 손가락들은 잠시도 쉬지 않고 첼로의 지판 위를 재빠르게 오르내리고 있었습니다. 누군가 이런 자리에서까지 그러냐고 핀잔 아닌 핀잔을 주었지만 그는 전혀 아랑곳하지 않았고 술자리가 끝날 때가지 악기를 내려놓지 않았습니다.
어느 연주회가 끝날 무렵 청중들 앞에서 그에게 느닷없는 질문을 던진 적이 있습니다. ‘와인과 음식, 첼로와 음악, 그리고 가족들, 당신 삶에서 이 세 가지 말고는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는데 이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이냐’고 말이지요. 그랬더니 음식보다는 음악이 중요하지만 음악과도 바꿀 수 없는 것이 가족이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래서 서울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연주회가 있어 양성원을 부르려면 가족과 함께 지낼 수 있는 숙소를 따로 마련해야 합니다. 다른 연주자들은 연주를 앞두면 일부러 가족과 떨어져 혼자 따로 지내기도 하는데 그는 오히려 어떤 경우에도 가족과 떨어지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쪽입니다. 심지어는 중요한 연주회에서 무대에 나서기까지 불과 5분이 남은 긴장된 순간에도 대기실에서 연주복을 입은 채로 아이들과 놀아주는 모습을 본 적도 있지요. 부인을 바로 보는 애틋한 눈길도 결혼식장에서나 지금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그런 까닭에 양성원은 절대로 부부동반해서 만나지 말아야 할 사람입니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첼리스트인 데다가 건장한 체격에 잘 생기기까지 했는데 부인과 자녀들을 자상하게 챙기는 모습이라니 생각만 해도 끔찍합니다. 게다가 프랑스와 미국에서 오래 살아서 우리말보다 영어를 더 잘하고 영어보다 프랑스어가 더 편할 정도니 혹시 정통 프랑스 식당에라도 가게 되서 유창한 프랑스어로 능숙하게 와인과 음식을 주문하는 모습이라도 본다면 여자라면 누구나 마음이 흔들리지 않을 수가 없겠지요. 그나마 너무나 다행인 것은 이렇게 사방팔방으로 잘난 남자가 도대체 꽉 막히고 고지식해서 가족과 음악, 그리고 음식과 와인 말고는 다른 어떤 것에도 관심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흐뭇한 것은 음악에 관한 한 그의 연주는 만날 때마다 들을 때마다 넓이가 더하고 깊이가 더해 점점 더 맛과 향이 짙어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어린 나이에 반짝하고 세상을 놀라게 했다가 제 풀에 꺾이고 마는 연주자들이 늘어가고 있는 세태에 지금보다는 내년을, 그리고 십년 후 이십 년 후를 틀림없이 기대할 수 있는 성실하고 미련한 연주자가 우리나라 대한민국에 있다는 사실에 오늘도 싱겁지만 흐뭇한 미소가 얼굴에 번집니다.
글 : 홍승찬 교수
편집 : 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