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승찬 교수의 클래식 음악(50)
[홍승찬 교수의 재미있는 클래식음악 이야기]
오페라 역사를 통털어 가장 위대한 작곡가를 꼽으라면 대부분 베르디와 바그너를 떠올리게 됩니다. 그런데 이 두 사람은 공교롭게도 같은 해에 태어났는데, 그 해가 바로 1813년입니다. 그러니 올해는 다름 아니라 두 작곡가의 탄생 200주년이 되는 해이고 그래서 지구촌 곳곳에서 이 뜻 깊은 해를 기리는 행사와 공연들이 줄을 잇고 있습니다. 바로 얼마 전 우리나라 국립오페라단 또한 베르디의 “팔스타프”를 무대에 올렸고 서울시립오페라단은 베르디의 “아이다”를 공연하기도 했지요. 5월에는 서울국제음악제에서 바그너의 연작 오페라 “반지”의 두 번째 작품인 ‘발키레’를 선보였는데요 이처럼 바그너의 음악극보다는 베르디의 오페라를 볼 수 있는 기회가 더 많을 것 같습니다.
베르디의 "아이다" 공연 모습
그것은 아무래도 바그너와 비교한다면 베르디의 작품이 좀 더 우리의 삶과 가까운 이야기를 귀에 쏙 들어오는 음악으로 펼쳐놓기 때문이겠지요. 그와 반대로 바그너는 인간의 구원과 세계의 질서와 같은 보다 근본적이고 철학적인 문제를 파고들었고 지나치게 음악, 특히 가수들의 노래에 의존하는 이탈리아 오페라의 한계를 뛰어넘어 무대 위의 모든 요소들이 어느 하나에 치우치지 않고 완벽하게 결합하여 일체를 이루는 ‘Musikdrama', 즉 음악극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주창하였습니다. 작품세계 뿐만 아니라 삶에 대한 그들의 태도 또한 전혀 달라서 베르디가 늘 겸손하고 신중하며 주변 사람들을 배려하고 존중하는 삶을 살았던 것과는 반대로 바그너는 그의 꿈을 실현하고 뜻을 펼치기 위해서는 그 어떤 수단과 방법도 가리지 않을 정도로 독선적이고 자기중심적이었습니다. 그래서 베르디는 말년에 사재를 털어 은퇴하고 오갈 데 없는 음악가들을 위한 양로원을 지었던 반면 바그너는 바이에른의 루드비히 2세를 설득하여 그 자신의 작품만을 무대에 올릴 수 있는 전용극장 바이로이트축전극장을 세웠습니다.
베르디의 "팔스타프" 공연 모습
이처럼 같은 시대를 살았지만 이렇듯 상반된 삶과 꿈을 가졌던 두 사람이기에 그들이 남긴 어느 하나도 서로 닮은 꼴을 찾을 수 없을 것 같지만 엉뚱하게도 삶의 끝자락에 이르러 마지막 남은 힘을 다해 완성한 최후의 걸작들에서 묘한 만남이 이루어지는 것을 발견하곤 소스라치게 놀라게 됩니다. 바그너의 마지막 작품은 “파르지팔”이고 베르디의 경우는 “팔스타프”입니다. 작품의 이름이 주인공의 이름이라는 것과 그것이 모두 네 음절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을 공통점 말고는 아무리 들여다봐도 이 둘의 공통점은 나타나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전 작품들 보다 차이점만 더 두드러질 뿐입니다.
바그너의 작품만을 무대에 올릴 수 있는 전용극장 "바이로이트축전극장"
바그너는 초지일관 이 혼란스럽고 부조리한 세상을 구원할 존재가 누구인지를 물어왔고 마지막 작품에서 답을 찾았습니다. “탄호이저”에서는 한 여인의 숭고한 헌신과 희생으로부터 구원의 빛을 보았으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사랑하는 연인을 위한 것이었고 4부작 음악극 “반지”에서는 ‘두려움을 모르는 인간의 영웅’이 무너져 가는 신들의 세계를 구원하리라 믿었지만 영웅 지그프리트는 결국 의심과 배신으로 말미암아 뜻을 이루지 못합니다. 그러나 마지막 작품에서 주인공 파르지팔은 마법사 클링조르의 간계에 넘어가 치명적인 상처를 입은 성배기사단의 왕 암포르타스를 치유하고 세상을 구원하게 됩니다. 현자가 예언하기를 ‘연민으로 깨달음을 얻은 순수한 바보’만이 암포르타스를 살릴 것이라 했으니 파르지팔이 곧 그였던 것입니다.
뮤지컬 '아이다' 中 'Elaborate lives' - 차지연 & 김준현
바그너와는 달리 베르디는 삶의 막바지에 이르러 전작들과는 전혀 다른 시도를 하였고 그것은 어처구니없게도 평생 그가 쌓아온 고귀하고 진지한 이미지와는 어울리지도 않을 뿐더러 시대에도 뒤떨어진 오페라 부파였습니다. 그리고 그의 평생 처음으로 다른 그 누구도 의식하지 않고 스스로의 만족을 위한 작품이라고 했고 심지어는 계약서에다 마지막 리허설까지 갔다 하더라도 자신이 결정하면 공연하지 않아도 된다는 조항을 넣기까지 했습니다. 세익스피어의 “윈저의 유쾌한 아낙네들”과 “헨리 4”를 바탕으로 보이토가 쓴 대본에 곡을 붙인 “팔스타프”는 매력이라고는 어느 한 구석도 없는 속물입니다. 게다가 스스로는 누구보다 잘났다고 착각하며 있는 대로 잘난 척을 떠는 혐오스런 인물이지요. 한 때는 잘 나가는 기사였는지 모르지만 이제는 나이가 들어 배는 나오고 머리는 벗겨진 데다가 돈도 없으면서 날마다 술독에 빠져 누군가를 등칠 생각에만 골몰하고 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윈저의 돈 많은 부인 둘을 유혹해서 돈까지 뜯어낼 궁리를 하지만 결국은 오히려 그들과 그 주변 사람들에게 골탕을 먹고 망신을 당하기에 이릅니다. 그 과정에서 팔스타프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가식과 헛된 욕심까지 다 드러나게 되면서 마지막에는 모두가 화해하며 함께 노래를 부릅니다. 처음에는 ‘세상만사 다 장난이고 남자들은 모두 광대’라고 놀리더니 마지막에 가서는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은 바보일 따름’라고 외칩니다.
독일 남부 뮌헨시 뮌헨오페라단 앞에서 28일(현지시간) 야외공연이 펼쳐졌다. 배우들이 조명을 비춘 대형 인형과 함께 공연을 하고 있다. 두 거인 인형 사이에 나란히 줄에 매달린 출연배우들의 모습이 이채롭다. 마치 작은 인형들을 엮어 놓은 듯이 보인다.이날 행사는 유명작곡가인 리하르트 바그너와 주세페 베르디 탄생 200주년을 맞아 열렸다. - 출처 : 일간스포츠 -
그렇습니다. 바그너는 순수한 바보가 세상을 구한다고 했고 베르디는 아무리 머리를 쓰고 잘난 척을 해도 우리는 누구나가 다 바보라고 말합니다. 스스로 바보인 줄 알면 그것이 바로 깨달음이고 우리 모두가 다 그렇게 깨닫게 된다면 그것이 바로 구원일 것입니다. 그래서 아마도 돌아가신 성철 스님이 당신이 낳은 단 한 점의 혈육이 출가한다 했을 때 ‘불필’이라는 법명을 주셨겠지요. 필요하지 않은 존재가 되라는 말씀이야말로 바보가 되라는 말씀이 아닐까요. 사람은 젊어서 세상을 바꾸려고 하고 결혼해서는 배우자를 고치려고 든다지요. 그러다 자식을 낳으면 한풀이라도 하려는 듯이 그마저 못살게 군답니다. 그렇게 지쳐서 삶이 다 꺼져갈 즈음에야 나 스스로가 바뀌어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데 그 때는 이미 늦은 겁니다. 철들자 죽음인 것이지요. 하루에 한 번은 가던 길을 멈추고 하늘을 봐야겠지요. 하루에 한 번은 까닭 없이 웃어야지요. 그래도 한 번은 누군가를 칭찬하고 한 번은 모르는 사람에게 말을 걸어볼 참입니다. 왜냐고요? 자꾸 왜냐고 묻지 마세요. 그냥 바보라서 그러려니 생각하세요.
글 : 홍승찬 교수
편집 : 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