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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음악회 Talk Talk/홍승찬교수의 클래식 톡톡

[세상에서 가장 역설적인 음악 ‘허밍 코러스’] 오페라 “나비부인”과 한마디의 대사. “명예롭게 살 수 없다면 명예롭게 죽으리라” 지치고 힘들 때마다 듣는 이노래.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3. 3. 18.

 

 

 

 

 

 

홍승찬 교수의 클래식 음악(46)
[홍승찬 교수의 재미있는 클래식음악 이야기]

 

 

세상에서 가장 역설적인 음악 허밍 코러스

 

 

 

 

 

오페라 나비부인은 이탈리아 오페라 작곡가 지아코모 푸치니의 대표작입니다. 푸치니는 베르디와 함께 19세기말 이탈리아 오페라의 황금기를 대표하는 양대 거장으로 꼽히는 인물이지요. 비단 이탈리아에서 뿐만 아니라 오늘날 전 세계의 오페라 극장들에서 가장 많이 공연되고 있는 작품들을 꼽으라면 아마도 이 두 작곡가의 작품들이 가장 많을 것입니다. 베르디의 오페라가 선이 굵은 편이라면 푸치니의 오페라는 매우 섬세하고 사실적입니다. 그래서 푸치니를 베리스모”, 즉 사실주의 오페라의 선구자로 일컫기도 합니다. 더불어 그는 여성의 미묘한 심리를 드러내는 데 있어서만큼은 역사상 그 어떤 작곡가와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최고의 역량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의 작품들 가운데는 유독 여주인공의 이름을 제목으로 앞세운 작품들이 많습니다. “토스카마농 레스코”, “투란도트는 물론 오늘 소개할 나비부인도 마찬가지입니다.

 

 

 

오페라 '나비부인'중 '어떤 개인날'-푸치니_르네 플레밍

작곡/푸치니
곡명/오페라 '나비부인'중 '어떤 개인날'
연주/바이올링-르네 플레밍

 

여주인공의 이름은 초초상이지만 별명이 나비부인이입니다. 19세기 일본의 나가사키가 이야기의 배경이고 초초상은 몰락한 사무라이 집안의 딸로 자라나 게이샤가 된 여인이지요. 여인이라고는 하지만 이제 겨우 열다섯 살의 소녀입니다. 현실은 암울하지만 언제라도 그곳을 벗어나 새로운 삶을 펼치려는 꿈을 가지고 있지요. 그래서 뚜쟁이의 꼬임에 빠져 나가사키 항구에 정박 중인 미 해군 군함의 젊은 장교 핀커톤과 결혼하려고 합니다. 말이 결혼이지 사실은 계약결혼으로 현지처가 되는 것입니다. 초초상은 알고도 그러는지, 아니면 정말로 모르는지 그런 현실과는 전혀 동떨어진 생각을 합니다. 핀커톤을 따라 미국으로 건너가 그곳에서 평생 핀커톤의 아내로 살게 될 것이라고 믿습니다. 아니 그렇게 믿으려고 안간힘을 쓴다는 말이 정확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것 말고는 아무런 희망이 없기 때문이지요.

 

 

 

 

비극은 이렇게 시작됩니다. 모두 2막으로 이루어진 이 작품의 1막은 결혼식 장면입니다. 남자와 여자는 처음부터 전혀 생각이 다르지만 서로 그런 사실을 외면합니다. 그저 젊은 혈기와 호기심에 들뜬 핀커톤에게 결혼식은 그저 형식적인 절차에 불과할 뿐 어서 빨리 잠자리에 들어가기만을 기다립니다. 그와는 반대로 초초상에게 이 결혼은 생판 모르는 한 남자에게 자신의 인생을 몽땅 맡기려는 일생일대의 중요한 순간입니다. 그래서 끊임없이 말을 걸어서 남자의 마음을 확인하려고 듭니다. 겉으로는 마치 두 사람이 사랑의 이중창을 부르는 것 같지만 사실은 서로 전혀 다른 속마음을 드러낼 뿐입니다. 오페라 역사상 가장 아름답지만 가장 어울리지 않는 사랑의 이중창입니다.

 

 

 

 

 

나비부인 아리아 - 어떤 개인 날 / Mika Mori

Mika Mori - Un bel dì vedremo - Madama Butterfly

 

 

그렇게 결혼을 하고 한 세월을 잘 보낸 핀커톤은 홀로 본국으로 돌아갔습니다. 물론 다시 돌아오겠다는 거짓말을 남겼겠지요. 그런데 초초상은 그 말을 철석같이 믿습니다. 핀커톤이 간 다음 그의 아들까지 낳은 처지니 또 다른 선택은 생각할 수도 없었을 것입니다. 2막은 기다림에 지친 나비부인이 기도를 하다가 항구가 보이는 집 앞의 언덕으로 올라가 그 유명한 아리아 어떤 개인 날을 부르는 것으로 시작됩니다. 날마다 머리 속으로 생각하고 또 생각하는 재회의 순간을 노래하지요. 어떤 개인 날, 핀커톤이 탄 배가 항구로 들어오면 당장 뛰어 내려가고 싶은 마음을 꾹 참고 곱게 단장을 하고 집에서 기다리겠다고 다짐을 합니다. 미국 영사 샤플리스는 친구인 핀커톤의 결혼 소식을 담은 편지를 전하려고 왔으나 차마 말을 꺼내지 못하고 돌아섭니다. 이제 남은 돈도 없어 다시 유곽으로 나가 웃음과 노래를 팔아야 할 처지가 되자 그 낌새를 알아차린 뚜쟁이가 다시 나타납니다.

 

 

오페라 나비부인 "어느 개인날"

 

 

 전부터 초초상을 아꼈던 나이 많은 부호의 소실로 들어가라는 것이지요. 그러나 밉살스러운 뚜쟁이를 쫓아내는 한바탕 소란이 벌어지고 난 다음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집니다. 드디어 저 멀리 뱃고동 소리가 들이고 기다리던 미국 군함 에이브라함 링컨호가 보이기 시작한 것입니다. 기뻐서 어쩔 줄 모르는 초초상은 하녀 스즈키와 함께 정원에 있는 꽃을 몽땅 따다가 집안 구석 구석을 꾸미고 결혼식에 입었던 예복을 곱게 차려 입고 몸치장과 화장을 한 다음 아들과 하녀와 나란히 앉아서 기다립니다. 바깥에서 보이지 않게 문을 닫고는 안에서 바깥을 볼 수 있도록 손가락으로 세 개의 작은 구멍을 냅니다. 이제 무대에 아무도 보이지 않게 된 그 순간 조명이 서서히 어두워지면서 너무나 조용하고 차분하게 흐르는 음악이 허밍 코러스입니다.

 

 

합창 - 허밍 코러스

coro a bocca chiusa  da"Madama Butterfly" by Giacomo Puccini

 

허밍이라는 것은 입을 다물고 콧소리로만 부르는 노래를 말하지요. 그러니 당연히 가사가 있을 수가 없습니다. 날이 저물고 다시 동이 트지만 핀커톤은 끝내 나타나지 않습니다. 문으로 가려서 보이지는 않지만 기다리는 초초상의 가슴은 까맣게 타들어갔을 것입니다. 차라리 막연히 기다리던 긴 세월은 견딜 만 했겠지만 이제 곧 나타나리라 기대하며 마음 졸였던 그 짧은 시간은 너무나도 길고 참기 힘든 악몽이었겠지요. 그 고통스러운 시간의 흐름을 허밍 코러스가 담담하게 채워갑니다. 가사도 없고 화음도 없이 그저 하나의 선율로 끊어질 듯 끊어지지 않고 이어집니다. 오페라에서 가장 중요하고 결정적인 순간이라면 호소하거나 절규하는 듯한 주인공의 아리아로 장식하기 마련이지만 오페라 나비부인은 가사도 없고 굴곡도 없이 밋밋한 합창으로 풀어갑니다. 한마디로 기가 막히고 어이가 없는 역설입니다.

 

 

 

 

지아코모 푸치니가 작곡한 오페라. 1막-> 2막 1장 -> 2막 2장 순으로 내용이 진행된다. 3막 오페라 라고 오인하는 사람도 있으나, 2막이 두 부분으로 나뉘었을 뿐, 실제로는 2막짜리 오페라가 맞다.


오페라에서 특히 어느 개인 날이라는 노래가 유명하다.


일본을 배경으로 삼은 것이 특징.[2] 오페라 역사상 최초로 동북아시아를 배경으로 삼은 오페라라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는 얘기가 있으나 실제론 4막9장 발레 '코레아의 신부(Die Braut von Korea·1897)가 최초의 동북아시아 배경 오페라다.

 

 

나비부인과 핑커튼 - 조금만 사랑해주세요 / Angela Gheorghiu & Roberto Alagna

 

 

이제 한 가닥 남은 마지막 희망도 다 꺼져버렸습니다. 그 다음에 벌어질 일은 너무나도 뻔합니다. 핀커톤은 미국에서 결혼한 아내와 함께 초초상이 낳은 자신의 혈육을 데리러 온 것입니다. 초초상은 순순히 가혹한 운명을 받아들이고 마지막 이별의 순서를 밟아갑니다. 어린 아들을 안고 작별 인사를 하고는 스스로 목숨을 끊습니다. 아버지가 물려준 그 칼에는 명예롭게 살 수 없다면 명예롭게 죽으리라는 글이 새겨져 있습니다.

 

 

 

푸치니는 이 오페라에서 기존의 상식과 틀을 다 뒤집어버리는 모험을 시도합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한 장소에서 모든 일이 벌어지고 있어 무대의 전환이 없을 뿐만 아니라 발레나 무용도 등장하지 않습니다. 열다섯 어린 나이로 설정된 주인공에게는 가혹하리만치 많은 비중이 주어져 있어 마치 모노드라마를 보는 듯합니다. 한 마디로 엄청난 체력과 기량을 요구하는 역할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니 설정에 맞는 작고 가녀린 외모는 기대할 수조차 없습니다. 게다가 결혼식을 올린 남녀 주인공이 서로 딴 마음으로 노래하는 사랑의 이중창이라니 이것이야말로 코메디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이 작품에서 다른 무엇보다 상상을 초월한 파격을 꼽으라면 바로 허밍 코러스입니다. 주인공의 심정이 하늘 위에서 땅 끝으로 참담하게 무너져 내리는 결정적인 순간, 등장인물들이 모두 사라지고 없는 캄캄한 무대 위에 아무런 움직임도 없이 콧노래로 읊조리는 가녀린 선율만 구슬프게 들립니다. 처음에는 너무나 뜻밖이라 멍해지는 느낌이지만 사실은 그래서 더 극적이고 감동적인 순간입니다.

 

 

 

그래서 지치고 힘들 때마다 넋을 놓고 이 음악을 듣고 또 듣습니다. 그렇게 속절없이 시간은 흐르는데 억장이 무너져 기가 막힌 초초상의 심정을 짐작하고 헤아려봅니다. 우리가 호들갑을 떨면서 기뻐하고 슬퍼하는 모든 일들이 결국은 이렇듯 허무하다는 걸 어렴풋이 깨닫게 됩니다.

 

글 : 홍승찬 교수
편집 : 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