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승찬 교수의 클래식 음악(17)
‘오 솔레 미오’는 민요가 아니다.
"오 솔레미 오"로 유명한 쏘렌토
이탈리아 민요 ‘오 나의 태양’이라면 아마도 모르는 이보다는 아는 이가 더 많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 오랜 세월 해마다 교과서에 실리기도 했거니와 성악가가 출연하는 크고 작은 무대에서 이 노래만큼 많이 불리고 또 많은 사람들로부터 사랑받는 노래도 없을 것입니다. 들어서 아는 정도가 아니라 선율을 따라 흥얼거릴 수 있는 이들도 많고 심지어는 이탈리아어로 된 원래의 제목 ‘오 솔레 미오’를 친숙하게 기억하는 이들도 적지 않지요. 전부터 이 노래는 세계인들의 애창곡이었지만 20세기 최고의 문화상품이라고 일컬어지는 ‘쓰리 테너’ 공연의 대미를 장식함으로써 마치 지구상의 모든 노래를 대표하는 듯한 위용을 떨치기도 했습니다.
모두들 이 노래를 이탈리아 민요로 알고 있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사전을 보면 민요란 ‘예로부터 민중 사이에 불려오던 전통적인 노래를 통틀어 이르는 말로 대게 특정한 작사자나 작곡자가 없이 민중 사이에 구전되어 내려오며 민중들의 사상, 생활, 감정을 담고 있다’고 정의되어 있지요. 그런데 ‘오 나의 태양’은 에두아르도 디 카푸아가 지오반니 카푸로의 시에 곡을 붙인 노래입니다. 이처럼 작곡가와 작사자가 분명하니 민요라 할 수가 없는 것이지요. 가사를 보면 마치 지중해의 맑은 하늘에 찬란하게 빛나는 태양을 노래하고 있는 듯 느껴지지만 사실은 흑해에 면한 우크라이나의 도시 오데사에서 만들어진 곡입니다. 떠돌이 바이올리니스트인 아버지를 따라 그곳까지 간 디 카푸아가 1898년 4월의 어느날 호텔방 창문으로 스며든 햇볕을 받으며 이 곡을 작곡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민요라면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구전되기 마련이지만 이 노래는 악보로 인쇄되어 세상에 널리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나폴리의 타볼라 로톤다 가요제에서는 2등에 그쳤지만 출판업자 비데리가 이 곡의 진가를 알아보고 악보로 내놓았던 것입니다.
루치아노 파바로티의 오 솔레 미오
비데리의 남다른 안목으로 세상에 빛을 보게 된 노래는 이것 말고도 많지만 가장 대표적인 곡이라면 ‘돌아오라 소렌토로’일 것입니다. 이 노래 역시 이탈리아 민요로 알려져 있지만 ‘오 나의 태양’과 같은 무렵에 데 쿠르티스 형제가 작사, 작곡한 나폴리의 노래입니다. 그리고 가사의 내용처럼 소렌토를 멀리 떠나는 연인을 이별하는 안타까운 심정에서 만들어진 곡이 아니라 소렌토를 방문한 이탈리아 총리를 환송하기 위한 목적에서 작곡된 노래입니다. 1902년 9월 15일 오랜 가뭄으로 재난을 맞은 바질리카타 지방을 순시하던 이탈리아 총리 자나르델리는 소렌토에 이르러 임페리얼 호텔에 묵게 됩니다. 이 호텔의 사장이자 소렌토의 시장이었던 트라몬타노는 총리에게 이 지역의 숙원사업인 우체국 건립을 간청하였고 여러 차례의 거절 끝에 겨우 승낙을 얻어내었다고 하지요. 그래서 혹시 총리의 마음이 바뀔까 싶어 급히 데 쿠르티스 형제를 불러 총리의 환심을 살 수 있는 노래를 만들도록 부탁했습니다. 형제는 바다가 보이는 호텔 발코니에 앉아 단숨에 노래를 만들었고 나폴리에서 소프라노 가수를 불러 총리가 호텔을 떠나는 순간 이 노래를 부르게 했습니다.
이 노래를 만든 데 쿠르티스 형제의 후손들에 따르면 이야기가 좀 달라집니다. 형인 잠바티스타 데 쿠르티스가 벌써 오래 전 트라몬타노에게 헌정하기 위해 동생인 에르네스토 데 쿠르티스와 함께 노래를 만들어 두었는데 마침 부탁이 있자 먼저 만들었던 곡을 고쳐서 완성했다는 것입니다. 그 후 나폴리에서 피에디그로타 가요제를 준비하고 있던 출판업자 비데리가 이 노래를 듣고 감탄하여 잠바티스타 데 쿠르티스에게 가사를 나폴리 방언으로 고쳐 가요제에 내놓도록 했고 이를 들은 청중들은 모두 넋을 잃을 정도로 열광했다고 하지요. 나폴리 사람들은 소렌토를 수리엔토라 했고, 그래서 노래의 후렴을 딴 제목도 ‘토르나 아 수리엔토’라 부르고 있습니다.
이렇듯 우리가 이탈리아 민요라고 잘못 알고 있는 거의 대부분은 이 무렵 나폴리에서 성행했던 여러 가요제에 입상하여 그곳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던 노래들입니다. ‘오 나의 태양’을 작곡한 디 카푸아는 ‘마리아 마리’를 작곡했고 ‘돌아오라 소렌토로’를 작곡한 데 쿠르티스는 ‘물망초’와 ‘너는 왜 울지 않고’를 작곡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그 유명한 ‘산타루치아’ 역시 19세 중반에 만들어진 나폴리의 노래, 즉 칸초네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꼭 이 무렵 나폴리에서 만들어진 노래들이 전 세계로 퍼져나가 알려지게 된 것일까요? 물론 다른 시대, 다른 지역에서 만들어진 노래보다 유독 더 아름답기도 하고 비데리와 같이 남다른 안목을 가진 출판업자가 있어 악보로 널리 알린 탓도 있겠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역할을 한 사람은 전설의 테너 엔리코 카루소였습니다. 나폴리에서 태어나 유럽에서 활동하다 뉴욕의 메트로폴리탄으로 건너간 그는 화려한 오페라 무대가 막을 내리고 나면 동포들이 즐겨찾는 소박하고 정겨운 이탈리아 식당을 찾아 그들과 함께 어울리면서 나폴리의 칸초네를 불렀습니다. 그렇게 동포들을 위로하고 또 스스로 향수를 달래기도 했겠지요. 그렇게 불렀던 그의 애창곡들은 처음으로 세상에 등장한 녹음기술 덕에 음반으로 만들어져 미국 전역으로, 또 세계로 퍼져나갔던 것입니다. 신화와도 같은 카루소의 명성과 더불어 말이지요.
소렌토는 나폴리만을 사이에두고 나폴리와 마주보고 있다. 철도로 약 한시간 거리.
이렇듯 ‘오 나의 태양’은 불멸의 가수 카루소와 함께 지금도 찬란하게 빛나고 있지만 정작 노래를 만든 디 카푸아는 1927년 빈민들을 위한 구호병원에서 쓸쓸하게 숨을 거두었습니다. 그 후로도 칸초네는 나폴리에서, 또 이탈리아 전역의 수많은 가요제를 통해 만들어지고 널리 사랑받았지만 지금은 어느덧 과거의 영광일 따름입니다. 여러분은 혹시 산레모 가요제를 기억하십니까? 아니면 질리오라 칭케티의 ‘나이도 어린데’라는 노래는 잊지 않으셨습니까? 통기타 가수들에게 열광하던 그 시절, 산레모 가요제를 통해 세상에 알려진 많은 노래들을 우리말로 옮겨 불렀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그 추억만이 아련할 뿐이고 칸초네라는 이름도 서먹할 따름입니다. 프랑스의 노래 샹송도 마찬가지겠지요. 카루소가 없었다면 ‘오 나의 태양’도 그렇게 힘없이 스러졌을 것이고 한 때지만 나폴리에서 만들어지고 사랑받았던 그 수많은 노래들이 흔적도 없이 지워졌을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도 주변을 다시 한번 살펴야겠지요. 그런데 노래를 찾아야할까요? 카루소를 찾아야할까요?
글 : 홍승찬 교수
편집 : 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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