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로마역사의 대표적인 4명의 황제들에 대해 알아볼께요.
엄청난 역사에 걸맞게 엄청나게 많은 황제들이 있지만,
우리가 다 알수는 없으니, 꼭 필요한 황제들만 알아보아요^^
첫번째
율리우스 카이사르
BC 60년 폼페이우스, 크라수스와 함께 제1회 3두 동명을 맺습니다.
BC59년에 공화정부로부터 로마 최고 관직인 콘술(집정관)에 취임.
갈리아 전쟁을 성공적으로 치륐으나 군대를 해산하고 로마로 돌아오라는 원로원의
결의가 나오자 BC49년1월, 그 유명한 "주사위는 던져졌다"라는 말과 함께 갈리아와
이탈리아의 국경인 루비콘강을 건너 로마를 향하여 진격,
한때 3두동맹의 결의자 폼페이우스를 격파, 그 후 로마를 다스리다
브루투스에 의해 죽임을 당한 통치자였습니다.
그는 위에서 '주사위는 던져졌다"라 처럼 많은 명언을 만들어 냈습니다.
"왔노라, 보았노라, 이겼노라"라는 명언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그는 대기만성형의 인물입니다. 청년기에는 수많은 도피생활로 목숨을 부지하였고,
40이 넘은 나이에 알렉산더대왕을 통해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며 눈물을 흘리기도 했지만,
꾸준한 자신에 대한 믿음과 노력으로 집정관에 올랐고 수많은 영토확장을 했으며,
화려한 언변으로 군대를 통솔하는 카리스마 넘치는 집정관이었습니다.
천년의 역사...로마의 초석을 다진 인물입니다.
두번째,
클레오파트라 7세
이집트의 왕 프톨레마이오스의 딸로 아버지 사후 18세에 남동생 프톨레마이오스 13세와 결혼하여
왕위에 오르게 됩니다. 21세에 로마의 카이사르와 만나 카이사리온이라는 아들을 낳았고 카이사르
사망이후 자신의 아들의 후계권을 안토니우스를 통해 보장받았으나,
악티움 해전에서 안토니우스는 패전, 뱀에게 물려 자살을 한 인물입니다.
이 여인은 팜브파탈의 대표인물로 중국의 양귀비와 같은 역사의 여인입니다.
클레오파트라는 자신이 카이사르(시져)를 유혹해 자신의 왕권을 인정받고 이집트를 다스렸다고
생각했지만, 실은 카이사르에 의해 철저히 이용당한 여인이기도 합니다.
이집트라는 나라의 정서상 다른나라 왕의 지배를 받는 것에 대한 강한 거부감을 알고서는
클레오파트라를 통해 이집트를 다스렸던 것이죠.
여인의 몸으로 이집트와 로마역사에 한 획을 그은 인물입니다.
세번째,
아우구스투스
서민 출신이나 어머니가 카이사르의 질녀로 아버지가 죽은 카이사르의 보호를 받았습니다.
카이사르의 암살 후 그의 유언을 통해 양자 및 후계자로 지목,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 옥타비아누스로 개,
원로회로부터 아우구스투스(존엄자)라는 칭호를 받고 황제가 됩니다.
그의 가장 큰 업적으로 41년간 통치기간 중 로마의 평화시대, 라틴문학의 황금시대를 연 황제입니다.
네번째,
네로
로마의 마지막 황제
아그리피나는 49년 숙부인 황제 클라우디우스 1세와 재혼하여 아들인 네로를 54년 황제의 자리에 앚힘
시와 음악을 좋아했던 네로는 스스로 대중 앞에서 공연을 즐겼으며, 전차경주와 검투사, 리라연주, 웅변 등의
경연에서 우승자가 되었고(당연한 것이겠죠? 황제가 '나가수'에 나가서 노래부르면 누가 일등이겠어요.ㅎㅎ)
아그리피나의 간섭이 심해지자 결국 어머니마저 살해, 스승인 세네카에게 자살을 강요.
점점 패륜아의 스팩을 쌓아갑니다. 점점 광기가 심해지자 반란군에 의해 스스로 교외별장에서 피신,
결국 31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합니다.
그의 성격적 특징은 대중의 인기에 대한 억누를 수 없는 욕망...이렇게 표현이 될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 네명의 중요인물들만 알고 있어도 로마역사의 큰 흐름을 알고 있는 것이 될 것이니, 꼭 기억해 주시길...
엄청난 역사에 걸맞게 엄청나게 많은 황제들이 있지만,
우리가 다 알수는 없으니, 꼭 필요한 황제들만 알아보아요^^
첫번째
율리우스 카이사르
BC 60년 폼페이우스, 크라수스와 함께 제1회 3두 동명을 맺습니다.
BC59년에 공화정부로부터 로마 최고 관직인 콘술(집정관)에 취임.
갈리아 전쟁을 성공적으로 치륐으나 군대를 해산하고 로마로 돌아오라는 원로원의
결의가 나오자 BC49년1월, 그 유명한 "주사위는 던져졌다"라는 말과 함께 갈리아와
이탈리아의 국경인 루비콘강을 건너 로마를 향하여 진격,
한때 3두동맹의 결의자 폼페이우스를 격파, 그 후 로마를 다스리다
브루투스에 의해 죽임을 당한 통치자였습니다.
그는 위에서 '주사위는 던져졌다"라 처럼 많은 명언을 만들어 냈습니다.
"왔노라, 보았노라, 이겼노라"라는 명언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그는 대기만성형의 인물입니다. 청년기에는 수많은 도피생활로 목숨을 부지하였고,
40이 넘은 나이에 알렉산더대왕을 통해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며 눈물을 흘리기도 했지만,
꾸준한 자신에 대한 믿음과 노력으로 집정관에 올랐고 수많은 영토확장을 했으며,
화려한 언변으로 군대를 통솔하는 카리스마 넘치는 집정관이었습니다.
천년의 역사...로마의 초석을 다진 인물입니다.
두번째,
클레오파트라 7세
이집트의 왕 프톨레마이오스의 딸로 아버지 사후 18세에 남동생 프톨레마이오스 13세와 결혼하여
왕위에 오르게 됩니다. 21세에 로마의 카이사르와 만나 카이사리온이라는 아들을 낳았고 카이사르
사망이후 자신의 아들의 후계권을 안토니우스를 통해 보장받았으나,
악티움 해전에서 안토니우스는 패전, 뱀에게 물려 자살을 한 인물입니다.
이 여인은 팜브파탈의 대표인물로 중국의 양귀비와 같은 역사의 여인입니다.
클레오파트라는 자신이 카이사르(시져)를 유혹해 자신의 왕권을 인정받고 이집트를 다스렸다고
생각했지만, 실은 카이사르에 의해 철저히 이용당한 여인이기도 합니다.
이집트라는 나라의 정서상 다른나라 왕의 지배를 받는 것에 대한 강한 거부감을 알고서는
클레오파트라를 통해 이집트를 다스렸던 것이죠.
여인의 몸으로 이집트와 로마역사에 한 획을 그은 인물입니다.
세번째,
아우구스투스
서민 출신이나 어머니가 카이사르의 질녀로 아버지가 죽은 카이사르의 보호를 받았습니다.
카이사르의 암살 후 그의 유언을 통해 양자 및 후계자로 지목,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 옥타비아누스로 개,
원로회로부터 아우구스투스(존엄자)라는 칭호를 받고 황제가 됩니다.
그의 가장 큰 업적으로 41년간 통치기간 중 로마의 평화시대, 라틴문학의 황금시대를 연 황제입니다.
네번째,
네로
로마의 마지막 황제
아그리피나는 49년 숙부인 황제 클라우디우스 1세와 재혼하여 아들인 네로를 54년 황제의 자리에 앚힘
시와 음악을 좋아했던 네로는 스스로 대중 앞에서 공연을 즐겼으며, 전차경주와 검투사, 리라연주, 웅변 등의
경연에서 우승자가 되었고(당연한 것이겠죠? 황제가 '나가수'에 나가서 노래부르면 누가 일등이겠어요.ㅎㅎ)
아그리피나의 간섭이 심해지자 결국 어머니마저 살해, 스승인 세네카에게 자살을 강요.
점점 패륜아의 스팩을 쌓아갑니다. 점점 광기가 심해지자 반란군에 의해 스스로 교외별장에서 피신,
결국 31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합니다.
그의 성격적 특징은 대중의 인기에 대한 억누를 수 없는 욕망...이렇게 표현이 될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 네명의 중요인물들만 알고 있어도 로마역사의 큰 흐름을 알고 있는 것이 될 것이니, 꼭 기억해 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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