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이건음악회 Talk Talk/클래식 톡톡

음악 감상에 관한 제안 클래식 음악에 대한 오해와 편견 / 음반 평론 / 음악가에 대한 기본적인 존중 / 연주의 선택 / 악기 배우기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2. 1. 15.

클래식 음악 감상에 관심을 갖고 첫 걸음을 내딛는 분들에게 비록 저의 사사로운 경험과 생각에 의한 것이지만 클래식 음악의 한없이 드넓은 세계에 들어가는 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 싶은 마음으로 드리는 글입니다. 이 아름답고 기쁜 여행에 부족하나마 길잡이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고 다른 애호가분들도 좋은 의견 나눠주시면 유익한 조언이 되리라고 생각합니다.


1. 클래식 음악에 대한 오해와 편견

클래식 음악은 기득권층을 위한 문화라든가 잘난 척하려는 사람이나 듣는 것이라는 편견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의외로 적지 않습니다. 그래서 클래식 음악을 정말 좋아하는 사람들을 색안경을 끼고 바라보거나 그 진심을 오해하는 일이 종종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클래식으로 불리는 음악이 창작 당시에는 일반 민중을 위한 것이기도 했으며 오랜 세월이 지나도록 그 아름다운 가치가 퇴색되지 않고 탁월한 예술성을 인정받았기에 클래식으로 명명된 것이라는 점을 생각한다면 그런 오해는 더 이상 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를 테면 클래식을 좋아한다는 것은 원더 걸스의 텔 미를 좋아한다는 것과 다를 것이 없습니다. 뭔가를 좋아하는 마음에 진짜가 어디 있고 가짜가 어디 있겠습니까.

한편, 클래식 음악이 대중 문화 전체에 비하면 그 규모가 극히 일부분에 지나지 않고 그것을 즐기는 데에도 팝보다는 좀 더 많은 시간과 공부 같은 노력이 필요하기 때문에 간혹 이질감을 느끼게 하는 요소도 없지 않습니다. 또 저마다 문화적 취향이 상이한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어울려 흥겨운 시간을 보내고자 할 적에는 상대적으로 보다 진지하고 무게가 느껴지는 클래식보다는 누구나 쉽고 가벼운 기분으로 즐길 수 있는 대중 가요가 상황에 훨씬 더 잘 어울리는 것이 분명합니다. 즉 우리가 어떤 음악을 좋아한다고, 즐긴다고 할 적에 그것이 공통의 관심사에 속하는가, 해당 상황이나 분위기에 적절하게 어울릴 수 있는 성격의 것인가 하는 문제를 염두에 둘 필요는 있는 것 같습니다.



2. 감상 레퍼토리의 선정과 작품에 대한 이해의 중요성

무엇을 들을 것인가 하는 것은 일반적으로 기본적인 레퍼토리로 널리 알려진 작품들을 중심으로 차근차근 섭렵하는 것도 좋고, 가령 라디오 방송 등을 통해 여러 곡들을 부담없이 두루 듣는 과정에서, 또는 광고나 드라마, 영화를 보다가 정말 우연하게 특별히 자기 마음에 와닿는 음악을 접하게 되었을 때 그걸 찾아서 듣는 것도 음악 감상에 자발적인 동기와 흥미를 부여하므로 아주 좋은 방법입니다. 다만, 만약 관련 자료를 찾아 공부하면서 노력해도 잘 이해되지 않고 마음에 와닿지도 않는다면 유명한 곡이라는 이유로 억지로 들으려고 할 것까지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고전을 이해하는 데는 다소의 공부가 필요한 게 사실이지만 음악 감상은 기본적으로 자기가 즐기기 위한 것이므로 마치 고생하며 풀어야 할 숙제 같은 것이 된다면 본래의 목적에 맞지 않습니다. 다만 무슨 일이든 시간이 걸리게 마련이므로 오랜 시간이 지나 다시 듣고 싶은 생각이 들 때 다시 들으면 됩니다. 물론 그렇게 하지 않아도 상관 없을 것입니다.

음악 감상에서 우선적인 중요성을 갖는 것이 작품 자체에 대한 이해입니다. 동일한 작품에 대해 워낙 많은 연주가 있다보니 요즘은 오히려 주객이 전도되는 듯한 인상을 받곤 합니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가장 중요한 것은 작품 그 자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많은 참고 서적을 통해 작곡가와 작품에 대한 해설을 접할 수 있습니다. 작곡 배경이나 관련된 일화, 당시 작곡가의 심경이나 처지, 동시대 및 오늘날 유명 인사의 평가, 악보를 토대로 한 작품 분석 등은 곡을 깊이 있게 감상하는 데 꼭 필요합니다. 다만, 일종의 설에 불과하거나 심지어는 전혀 근거가 없는 내용이 마치 사실인 것처럼 이야기되는 경우도 종종 있으므로 주의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밖에 오페라나 가곡, 종교 음악 같은 성악곡은 가사와 대본의 숙지가 필수적이며 표제 음악이나 음악극에 등장하는 이데 픽스라든가 라이트모티브처럼 등장 인물이나 정황을 상징하는 주제에 대한 폭넓은 이해는 음악을 듣는 즐거움을 배가시켜 줍니다. 그밖에도 소나타나 푸가 형식에서의 주제의 제시와 발전, 재현과 같은 곡의 구조적 이해, 가곡이나 종교 성악곡에 있어서 가사와 음악의 밀접한 연관성의 문제, 고전 시대 모음곡과 교향곡을 구성하는 춤곡의 유래와 형태, 기능 등 약간의 공부만 뒷받침된다면 음악 감상의 재미와 깊이를 더할 수 있게 하는 소재들이 참 많습니다.



3. 연주의 선택 - 음반 평론

대중 가요는 기본적으로, 특별한 이벤트가 아니라면, 적어도 '공식적'으로는 그 노래의 주인인 가수만 부르게 되어 있지만 클래식 음악은 다릅니다. 같은 곡을 두고 수십 년, 수백 년에 걸쳐 무수히 많은 음악가들이 연주해왔고 시중에 나와 있는 음반도 무척 많습니다. 그래서 처음 어떤 작품을 듣고자 하는 사람은 도대체 어떤 CD를 사야하는지 고민하게 됩니다.

논란이 있긴 하지만 그래도 음반을 선택하는 데에는 저명한 음악 평론지나 평론가의 추천만큼 신뢰할 만한 것이 없습니다. 높은 평가를 받고 많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음반들은 다 그럴 만한 이유가 충분히 있습니다. 절대로 괜히 그러한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그 근거가 되는 것은 해당 평론을 통해서 상세한 내용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특히 영국의 그라모폰이나 펭귄 가이드의 음반 평론가들은 음악학교 교수나 직업 연주자 출신으로서 그들의 평론은 학문적인 연구에 입각한 해박한 지식과 실제 연주 경험이 토대가 된 현실적인 판단력을 바탕으로 누구보다도 타당성을 갖춘 평가를 이끌어냅니다. 물론 그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다르기도 하고 간혹 같은 사람이 종전의 평가를 번복하는 일이 있기도 합니다. 가이드 북도 매년 업데이트 되면서 같은 음반에 대한 평가가 달라지기도 하는 것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자기가 원하는 연주를 찾겠다고 시중에 나와 있는 음반 전부를 들어볼 수도 없는 노릇이고 더군다나 지금 자신의 판단이 반드시 절대적인 것은 아니라는 걸 감안한다면 권위 있는 평론의 도움을 받는 것이 가장 현실적인 대안입니다. 물론 언제나 이에 의존해야 할 이유는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처음부터 연주 자체 - 누가 지휘했는지, 누가 연주했는지 - 에 크게 연연하지는 말라는 것을 일단 전제로 두고 싶습니다. 누가 연주하든 결국 바하는 바하이고 베토벤은 베토벤일 뿐입니다. 가디너가 연주했다고 베토벤의 음악이 헨델의 음악이 되는 것이 아니며 클렘페러가 연주했다고 바하의 음악이 브람스의 음악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물론 어떤 작품을 다른 음악가의 연주로 들을 때 그 작품에 대한 인상을 상당히 달리 받는 경우가 분명히 있습니다. 따라서 처음에는 아무리 명성이 높은 연주라도 연주자의 개성이 지나치게 두드러지거나 작위적으로 해석한 연주는 뒤로 미루는 선에서 음반 선별은 그치는 게 좋다고 생각됩니다. 오페라 DVD를 보고자 할 때에도 처음에는 현대적인 재해석에 의한 것보다 가급적 작곡가의 의도에 부합하는 연출로 공연된 것을 선택하는 게 작품 이해에 알맞습니다. 그리고 바로 이와 같은 일에 음반 평론을 참고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런 말을 하는 것은 곡 자체를 들어보기도 전에 무슨 음반을 사야할 지 고민부터 하는 것은 자기도 모르게 작품보다 연주에 더 큰 중요성을 둠으로써 작품과 연주 사이에 편향된 자세를 갖게 할 우려가 있기 때문입니다.



4. 음악가에 대한 기본적인 존중

작곡과 연주 활동은 음악가로서 타고난 재능과 오랜 시간을 통한 공부와 훈련으로 습득한 기능을 요하는 일입니다. 설령 아무리 음악이 마음에 안들어도 음악가의 능력에 대한 기본적인 인정조차 부정할 수 있는 건 아닙니다. 음반 매체와 정보 통신 기술의 발달로 레코드 100년 역사에 걸쳐 만들어진 수많은 연주 녹음들을 너무나 편하게 구해 들을 수 있는 시대가 되다보니 한편으로는 많은 훌륭한 음악가들의 연주를 쉽게 생각하는 경향이 없지 않은 것 같습니다. 카라얀은 지휘자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 원하는 게 있는 것과 그것을 아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입니다. 피아노 건반 하나 눌러본 적 없는 사람도 음악을 좋아하고 많이 들어왔다면 직업 음악가와 마찬가지로 음악이 어떤 식으로 들리기를 바라는 마음을 갖게 마련입니다. 그러나 직업 음악가가 애호가와 다른 점은 그들은 자기가 원하는 대로 음악을 만들 줄 안다는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음악가들이 평생 동안 배우고 훈련해 얻은 지적, 심미적, 신체적 능력이기 때문입니다.

칼 리히터는 음악 연주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프레이징이라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여기서 그는 프레이징 하나만 언급했을 뿐이지만 사실은 바로 이 프레이징이라고 하는 것에 음악 연주의 모든 것이 다 들어갑니다. 멜로디의 흐름, 개별 음의 길이와 연결, 악센트 등 아티큘레이션, 셈여림과 그 변화, 음색 등, 악보상에 명시적으로 드러나 있는 것과 그것만으로는 실제 연주에 불충분한 그 모든 것들이 여기에 해당됩니다. 그리고 이것을 자신의 의도대로 이끄는 건 음악을 이해하는 타고난 재능과 공부로써 가능해집니다. 비음악가가 음악을 듣고 즐기는 것과 자기가 좋아하는 대로 연주한다는 것은 전혀 별개의 문제입니다. 자기가 원하는 게 있다고 그렇게 들리도록 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게 결코 아닙니다. 결국 음악 애호가의 입장에서 어떤 연주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할지언정 음악가의 능력마저 부인하는 건 결코 온당한 처사가 아닙니다.

어떤 것을 비판하려면 철저하고 심도 있는 연구를 통한 정확하고 완전한 이해가 전제되어야 하는데 그렇지도 않으면서 오로지 부정적인 시각만을 가지고 트집잡는 경우가 가끔 있습니다. 그런 주장은 명확한 근거나 합리적인 설명이 제시되지 않으니 타당성이 없습니다. 한 마디로 전혀 말이 안되는 억지일 뿐이지요. 검증되지 않은 내용의 글이 인터넷을 통해 무분별하게 게시되고 읽히면서 잘못된 선입견을 조장하는 것도 문제입니다.

5. 적정 음반 수 - 경제성의 문제

음악을 많이 좋아하게 되면 다른 작품이나 연주에 대한 관심으로 자연히 많은 음반들을 사게 됩니다. 그리고 여러 다양한 음반들을 갖고 듣는 것은 자신의 음악 생활을 더욱 풍요롭게 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지나치게 많은 수의 음반을 갖는 것은 그리 권하고 싶지 않습니다. 사람이 살면서 좋아하는 것만 할 수는 없는 일입니다. 힘들어도 직장에 나가 일도 해야하고 학생은 공부도 해야합니다. 또 여가 시간을 음악 듣는 데만 쓰는 것도 아닙니다. 시간이 나면 음악 감상뿐 아니라 책도 읽고, 운동도 하고, 여행도 가고, 아는 사람 만나 얘기도 하고 어디 가서 맛있는 음식도 먹습니다. 따지고 보면 살면서 음악 듣는 데만 투자할 시간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만약 음악 듣는 데만 몰두하는 시간이 너무 많다면 균형잡힌 삶이라는 관점에서 그리 바람직하지는 않을지도 모릅니다. 결국 지나치게 많은 양의 음반은 경제성의 기준에서 봤을 때 별로 효율적이지 못합니다.

또 누구에게나 주어진 시간은 한정돼 있으니 갖고 있는 음반 수가 늘어가면 그 하나하나에 손이 가는 빈도는 낮아지게 마련입니다. 경제학을 빌어 말하자면, 음반 수가 늘다가 어느 순간이 되면 새로운 음반 하나를 추가해서 얻는 즐거움(효용)보다 그것을 잘 간수하는 데 드는 노력과 공간(비용)이 더 커지는 임계점을 지나치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많은 음반을 갖고 있다는 게 더 이상 즐거움이나 자랑거리가 아니라 오히려 짐이 되고 맙니다. '이사하다 깨지기라도 하면 어쩌나', '내가 없을 때 누가 잘못 만져서 망가지면 어떻게 하지', '밤중에 천장에 비가 새서 음반이 물에 젖기라도 하는 날이면...' 온갖 근심의 원인이 될 수도 있습니다.

같은 작품으로 너무 많은 음반을 구입하는 것도 되도록이면 권하고 싶지 않습니다. 지금 당장은 특정 작곡가, 특정 작품에 빠져서 같은 곡으로 여러 음반을 사기도 하지만 많은 시간이 흐르고나면 결국에는 다양한 해석의 가능성보다는 작품 그 자체가 가장 중요한 문제가 됩니다. 게다가 언제까지나 지금 내가 좋아하는 곡만 들을 것도 아니고 다른 작곡가, 다른 작품에 관심이 가게 되면 호기심에 구입한 그 많은 음반들은 자리만 차지하게 되는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아무리 좋아하는 작품이라도 한 곡당 음반 수가 다섯 종을 넘지 않게 하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저 개인적으로는 세 종을 넘지 않게끔 하려고 있습니다. 그 정도만 해도 다른 수많은 다양한 작품들 음반 한둘씩 갖추는 데에 적지 않은 비용이 계속 들어가기 때문입니다.

음악 감상에도 경제성이 중요합니다. 내가 원하는 음반 전부 다 갖고 있어서 나쁠 것은 없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앞서 말했듯이 누구든 음악 듣는 데 쓸 수 있는 시간과 돈, 음반을 보관하는 공간은 한정되어 있으니 그렇게 제한된 한도 안에서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보다 고르고 다양하게 음악을 듣는 것을 제안하고 싶습니다.



5-1. 음반을 삽시다.

앞에서 경제적인 음반 구입을 제안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인터넷을 통한 불법 음원의 유포와 그로 인한 음반 시장의 불황 및 음반사와 음악인들의 경제적인 손해가 큰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시장 경제의 핵심적인 원리 중 하나가 자원의 합리적인 분배입니다. 음반은 그냥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음악인들이 공부와 노력으로 습득한 실력으로 연주한 것을 음반사가 자본을 들여 녹음하고 제작한 것이며 음반 시장을 통해 유통됩니다. 그런데 이러한 정상적인 경로를 거치지 않고 불법적으로 복제된 음원을 쉽게 구할 수 있는 상황은 음악인과 음반사가 투자한 것에 대한 마땅한 보상이 제대로 회수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공연은 연주회장에 직접 가서 관람하는 게 최선이겠지만 현실적으로 (시간적으로든 금전적으로든) 항상 용이한 일은 아니기에 그 대안으로 삼도록 만들어진 것이 바로 CD와 DVD-Video입니다. 더 나아가 차세대 영상 매체로 최근 결정된 Blu-ray Disc로 새로운 타이틀들이 속속 출시되기 시작하면서 전세계 무대에서 열리는 공연들을 획기적으로 향상된 화질과 음질로 집에서도 편하게 감상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한편 우리나라가 유럽이나 일본에 비해 클래식 음악에 대한 저변이 튼튼하지 않은 현실을 감안한다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헤아릴 수 없이 다양한 종류의 음반들이 수입되고 판매되고 있다는 건 애호가 입장에서는 정말 다행스럽고 고마운 일입니다.

요즘에는 뭐가 필요하면 돈 안 들이고 왠만하면 인터넷에서 구하려는 분위기가 팽배하니 음반의 경우에도 정품을 구입하기보다는 인터넷에서 파일(아마도 대개는 불법)을 구하는 일이 많아졌습니다. 클래식 음반은 비록 가격이 좀 비싼 편이기는해도 충분히 돈들여 장만할 가치가 있는 물건입니다. 비록 기록 매체에 불과하지만 음반도 인간의 정신을 고양시키고 순화하는 역할을 하는데 돈 좀 쓰기에 아깝지 않습니다. 살다보면 다른 일에는 얼마나 많은 돈을 쓰는데요. 현실적으로 사치라고 여기는 사람도 있겠지만 사람은 빵만으로는 살 수 없는 정신적인 존재이고 누구나 각자의 여건 하에서 절약해 모은 돈으로 산 음반이 얼마나 소중한 추억과 의미를 지니게 되는지 모릅니다. 그렇게 갖게 된 좋아하는 음반을 소중히 간직하면서 마음이 갈 때마다 꺼내어 감상하고 다시 잘 꽂아두면서 벗처럼 늘 가까이 두는 뿌듯한 마음이 있습니다. 반면에 컴퓨터 파일은 눈에 보이는 것도 아니고 그런 애틋한 정이 들지 않지요. 게다가 파일은 잘못해서 지워지거나 망가질 수도 있기 때문에 오랫 동안 간직하면서 두고두고 감상할 만한 가치가 있는 예술 작품 소장용으로는 안전하지 못합니다. 공디스크에 구울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폼은 안 나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제작사에 따라 다르지만 정성스럽게 만들어진 북클릿은 인터넷은 물론 심지어 왠만한 클래식 서적 이상의 심도 있는 해설을 담고 있어서 작품을 이해하는 데 유익합니다.

비슷한 이유로 저는 고클 다운로드보다 음반을 직접 구입하는 게 더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좀 더 솔직히 말하자면, 고클이 여러 음원들을 가지고 상업적 이득을 취할 수 있는 정통적인 권한을 저작권자로부터 부여받은 것도 아닙니다. 저작권(또는 저작인접권)이 만료된 음원을 복제하는 것이 개인적인 차원이 아니라 이렇게 많은 회원들이 이용하는 사이트에서 조직적인 형태로 행해지다면 분명 음반 시장에서의 수요를 일부 잠식하는 효과를 발생시킬 것인데도 이윤 중 일부가 음반 시장이나 해당 음반사, 연주자들에게 돌아가는 것도 아닙니다. 다만 저작권법을 위반하는 사례를 피하고 있을 뿐이지요.

아시다시피 최근 영화 불법 파일이 큰 문제가 되었는데 시장 규모는 상대가 안 되겠지만 클래식 CD/DVD의 경우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EMI 음반 뒤에 보면 음반 불법 복제 같은 행위가 음반업계 종사자들의 생계를 위협하므로 삼가달라는 문구가 있더군요. 물론 자기가 모르는 남까지 신경쓸 생각은 없다고 하는 사람이라면 공허한 부르짖음에 불과하겠지만 어쨌든 아무렇지도 않게 해도 되는 행위는 아닌 것입니다. 모두가 다 인터넷으로 불법 복제 파일을 찾고 다운로드로 음악을 듣는다면 음반사 입장에서는 녹음/음반을 제작하는 데 들어간 비용을 적절히 보상받지 못할 것이고 그런 상황이 심각해진다면 어떤 사람이 돈들여 공연을 녹음하고 음반을 제작하려고 할까요. 지금의 소비 행태로 인한 결과가 결국엔 부메랑처럼 돌아올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6. 작품의 본질과 다양한 해석의 가능성

유명한 곡은 시중에서 구할 수 있는 음반이 수십 종에 이르기도 합니다. 그 많은 연주들은 자기 나름의 방식으로 해당 곡에 내재한 다양한 차원의 세계를 드러내고 작품에 대한 이해를 깊게 하는 역할을 합니다. 애호가의 입장에서 이것은 아주 쉬우면서도 재미있는 흥미거리가 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여러 연주들을 두고 너무 비교하는 데 골몰하는 것은 별로 권하고 싶지 않습니다. 물론 어떤 작품도 그것에 꼭 부합하는 단일한 해석이 존재하는 것은 아니며 다양한 해석의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습니다. 다만 그것이 작품 자체에 대한 초점을 잃게 하거나 특정 연주들 사이의 우열을 결정짓는 일로 이어져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연주든 대부분은 그 자체로서 충분한 가치를 지니고 있는 것입니다. 더군다나 그것이 음반화된 것이라면 어느 정도는 검증된 수준의 연주라고 봐도 무방합니다. 또 어떤 연주가 음악적으로 훌륭한가, 그렇지 않은가의 문제는 꼭 다른 연주와 비교해서 되는 게 아니라 그 연주만 놓고서도 그 자체로서 타당한 가치 판단을 내릴 수가 있을 것입니다. 이것은 철저한 작품 연구와 음악을 연주하는 일에 대한 지적인 이해로써 충분히 접근할 수 있는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불교에서는 분별심이 무명(어리석음)에서 비롯된다고 가르칩니다. 지식은 인간 사회에 꼭 필요한 것이지만 한편으로는 사람의 참된 지성의 기능을 가리기도 하는 측면이 있습니다. 사람이 뭔가를 안다고 할 적에 그는 다른 대상을 자기가 알고 있는 인식의 틀을 통해 봅니다. 그럴 때 그 대상을 100%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은 불가능해집니다. 그에게 정답은 이미 정해져 있습니다. 므라빈스키의 지휘로 차이코프스키의 교향곡을 사랑하게 된 사람이 다른 사람의 지휘로 된 차이코프스키 연주에서 실망감을 느꼈다면 그것이 과연 진정으로 본인을 위해 바람직한 일인가, 그는 도대체 무엇을 위해 음악을 들은 것인가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드보르작은, 한 일화에 따르면, 학생들에게 베토벤의 5번 교향곡에 대해 무릎을 꿇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가 꼭 토스카니니나 푸르트뱅글러나 클라이버같은 연주를 들어서 그런 말을 했으리라고는 생각되지 않습니다. 중소도시의 이름 모를 악단이 연주한 것이라도 베토벤 음악의 위대함을 깨닫기에 부족함이 없을 것입니다.

이것저것 서로 비교하고 따지면서 '이 부분은 누구보다 좋고 저 부분은 누구보다 나쁘다'는 식의 판단이 그 연주를 평가하는 타당한 방식일지 의문입니다. 그렇다고 뛰어난 부분만 서로 떼어내 붙인다면 따로 봤을 때에는 좋았지만 전체적으로는 통일성이나 일관성을 상실하게 하는 결과를 초래합니다. 여러 미녀들에게서 가장 예쁜 부분만 떼어내 합친다는 게 애초에 가능하지도 않지만 그렇게 한다고 해도 새로 합쳐진 모습은 우스꽝스러운 꼴이 되는 것과 마찬가지 이치입니다. 연주에 대한 평가는 부분적인 것에 대한 고려를 포함하더라도 결국은 통일성과 일관성이 유지되는 전체 맥락에 의한 것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여기에는 균형잡힌 시각에서 전체를 조망하는 능력이 필요합니다. 여러 연주를 듣는 것은 분명 작품의 본질을 낱낱이 파헤치고 새로운 모습을 발견하게 하는 유익한 경험이 됩니다. 그러나 다른 소중한 것을 망각하면서까지 그것에 지나치게 몰두하는 건 중심을 벗어난 일일지도 모릅니다.




7. 작품과 연주에 대한 평가

음악을 좋아하고 많이 들을수록 저마다 음악에 대한 나름의 생각과 가치관을 갖게 마련이고 이것은 개인의 취향이나 기호를 형성합니다. 이것은 또한 각자의 개성과도 상통하는 문제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작품과 연주에 대하여 내가 지금 판단하고 있는 게 반드시 가장 옳고 고정불변할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좋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음악을 듣는 경험이 쌓일수록, 시간이 흐를수록 작품과 연주에 대해 많은 것을 알게 되고 이해가 깊어지면서 기존의 생각이 수정되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음악과 연주에 포함되는 여러 다양한 가치들에 대해서 능히 고려할 수 있는 변수가 점점 늘어나게 되는 것도 전에는 몰랐던 것을 어느 순간 나도 모르게 깨닫도록 합니다.

간혹 어떤 작품이나 연주에 대해 다소 부당하게 낮은 평가를 내리는 경우를 보게 됩니다. 그리고 누구나 어떤 평가든 자유롭게 내릴 수 있다는 말로 자신의 주장을 정당화하며 반대 의견을 원천봉쇄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내가 어떤 대상에 대해 모든 것을 제대로 알고 있으며 정확한 판단을 내렸다고 생각하는 것은 대다수의 경우 오만일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위대한 예술은 마음은 연 이에게 죽을 때까지 새로운 모습을 드러내며 영감을 자극합니다. 마음을 닫아버린 이에게 그것은 더 이상 살아 있는 예술이 아니라 겉만 그럴 듯한 박제와 다를 것이 없습니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있듯이 지금 당장 성급한 결론을 내리기 전에 내가 모르는 것이 아직 남았을지도 모른다는 여지를 남기는 겸허한 자세가 필요합니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극단적인 상대주의를 경계할 필요가 있습니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여러 연주들을 놓고 서로 비교하면서 줄세우기를 하지 않고서는 못배기는 경향의 정반대편에 바로 이 극단적인 상대주의가 있습니다. 내가 좋으면 그만, 내가 싫으면 그만, 네 생각은 그저 네 생각일 뿐이라는 주장은 한편으로는 내가 모르는 것을 인정하지 않고 다른 사람의 고견을 듣지 않겠다는 고집일지도 모릅니다. 예술은 분명 상대적인 가치를 지니는 속성의 것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편타당하게 인정되어야만 하는 공통된 가치 또한 포함하고 있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고전이라고 불리는 그 모든 것들이 창작 이래 수십 년, 수 백년 동안 사상과 이념과 문화를 초월하여 수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지 못했을 것입니다. 어떤 대상에 대해서든 우리는 균형잡힌 시각을 견지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것은 단지 필요의 문제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예술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와 직결되는 문제이기도 합니다. 음악 예술의 보편성과 상대성은 그 영역의 상호 관계를 분명하게 규정지을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사이의 균형과 조화를 잃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8. 악기 배우기

어떤 악기든 하나 다룰 줄 아는 게 있으면 음악이라는 것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됩니다. 피아노나 바이올린처럼 꼭 비싼 악기가 아니라 문구점에서 파는 값싼 리코더라도 음악을 배우고 연주하는 데만큼은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음악을 연주한다는 것은 겉으로 보이는 것처럼 단지 테크닉 같은 신체적인 활동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음악을 연주한다는 게 어떤 것인가, 음악적이라는 게 무엇인가에 대한 지적인 이해를 수반합니다. 이것은 단지 많은 작품과 연주를 들어왔다고 저절로 알게 되는 것이 아니며 몸소 악기를 익히면서 연주해보는 경험을 통해 조금씩 알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남 앞에서 보이기 위한 것이 아니라면 꼭 뛰어난 테크닉을 마스터하지 않았더라도 모자라면 모자란 대로 그 안에서 나름대로 음악을 연주하는 즐거움을 누릴 수 있습니다.



9. 클래식 밖의 클래식

클래식 음악은 우리가 흔히 쓰는 말처럼 단지 유럽의 것만 지칭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고전이라는 말 그대로 어느 문화의 소산이든 시대와 문화의 차이를 넘어 인정받는 보편성을 지닌 예술이라면 우리나라의 훌륭한 전통 음악을 비롯하여 중국이나 인도, 아라비아, 미주 등 다른 문화권의 훌륭한 음악 등도 또 다른 클래식으로서 많은 관심을 가질 만한 가치가 있다고 봅니다. 범위를 이보다 더 확대한다면 장르의 선을 넘어 대중 음악도 지금은 인기가 많아 팝인 것이 앞으로 시대의 냉정한 평가를 거쳐 다음 세대에까지 전해지게 된다면 이 역시 클래식으로서 인정받는 날이 올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10. 글을 마치며

예술은 인간 정신의 가장 솔직하고 숭고하고 위대한 표현 형태의 하나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작가가 혼신을 다해 자기 영혼의 정수를 세련된 양식으로 조직화한 예술 작품을 통해 우리는 욕구와 필요로 가득 찬 일상 생활에서 어지럽게 흐트러진 정신을 맑게 하고 지치고 슬픈 마음을 달래며 아마도 천상에서나 누릴 수 있을 기쁨과 즐거움을 얻게 되는 감격스러운 경험을 하는 것 같습니다. 이렇게 가치 있는 문화 유산을 즐기는 데는 그것에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올바른 자세로 대하는 것이 마땅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글을 쓰다보니 불필요하게 너무 길어진 감이 있는데 저 스스로도 음악을 무척 좋아하여 늘 곁에 두어왔으면서도 예전에 참 잘못된 생각을 하던 때가 있었고 지금도 마찬가지일지도 모른다고 생각됩니다. 음반 시장에 대한 것은 잘 모르겠습니다만 과거에 비해 클래식 음악의 문화 자본은 매우 풍부해졌고 애호가들의 감상 양상도 깊이를 더하고 있다는 것을 실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많은 작품과 음반에 묻혀서 한편으로는 음악 감상의 순수성과 진실함을 잃고 있는 건 아닌가하는 생각도 듭니다. 아는 곡은 많고 들은 연주는 많지만 음악을 처음 듣기 시작하던 시절에 설레는 마음으로 음악을 듣고 진정으로 감동했던 경험은 왠지 점점 줄어드는 듯한 기분입니다. 풍요로운 음악 속에서 역설적으로 마음의 진정한 기쁨은 빈곤해지는 것을 느끼며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돌이켜보게 됩니다. 사사로운 의견에 불과하고 내용도 부족한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여기를 찾는 많은 분들이 음악을 통해, 예술을 통해 순수한 아름다움과 진실한 기쁨을 누리시기를 기원합니다.


출처 : 고 클래식(krichter님)

클래식의 문화 하나하나를 다가가는 것은 결코 쉽지만은 않습니다.
역사를 알아야되고...
그 역사에 따른 시대 상황을 알아야 하며...
그 시대 상황에 따른 작곡가 및 그 시대의 사람들의 마음까지 이해해야 하기 때문이죠.

하지만...
작곡가의 음악을 머리로만 이해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일단 즐기면서 마음으로 다가간다면...
가볍게 시작한다면

좋은 결과
좋은 음악을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