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이건음악회 Talk Talk/홍승찬교수의 클래식 톡톡

[홍승찬 교수의 클래식 음악 이야기] 재즈 음악의 탄생(뉴올리언스와 루이암스트롱...)

by 블로그신 2017. 11. 21.


루이 왕의 땅이라는 뜻의 루이지애나의 항구도시 뉴올리언즈는 새로운 오를레앙이라는 이름이 말해주고 있는 것처럼 프랑스 이민자들의 도시입니다. 이곳에 남부 농장으로 팔려갈 흑인 노예들이 들어오면서 흑인 인구의 비중이 급격히 늘어났고 자연스럽게 프랑스의 혈통과 흑인의 피가 섞이게 되었습니다. 크리올이라 불린 이들은 음악적인 재능이 뛰어나 악사로 생계를 꾸리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들이 재즈 음악 역사의 첫 장을 열게 됩니다

 

출처 : http://www.lifeinus.com/Travel/168/


이 세상에서의 삶이 말할 수 없이 고달팠던 흑인들은 노예 시절부터 늘 조물주의 부르심을 받아 요단강을 건너가는 그 순간을 기다리며 살았습니다. 그러니 장례식이 다른 어떤 의식들보다 중요할 수밖에 없었고 그로 말미암아 그들 나름의 독특하고 성대한 장례식 문화가 자리잡게 되었습니다. 그런 장례식의 볼거리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밴드를 앞세운 장례식 행렬로, 뉴올리언즈를 배경으로 한 헐리우드 영화에도 자주 등장합니다. 흑인들의 장례 행렬을 이끄는 밴드라면 당시 흑인들의 교회음악인 흑인영가를 연주했을 것입니다. 악보도 없을뿐더러 그것을 읽을 줄도 모르는 그들 사이에서는 트럼펫보다 좀 더 크고 부드러운 소리가 나는 코넷이 먼저 첫 소절을 연주하면 나머지 악기들이 적당히 알아서 따라가는 것이 나름의 방식이었습니다. 그런데 무더운 날씨에 묘지까지 이어지는 긴 장례식 행렬의 앞에 서서 무거운 악기를 연주하며 걸어가야 하는 악사들에게 느리고 단조로운 음악을 되풀이하는 일은 참으로 고역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던 중에 아마도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축 처지는 음악의 리듬을 살짝 비틀고 밋밋한 가락에도 곁가지를 솜씨 있게 덧붙이면서 처음과는 전혀 다른 흥겨운 음악으로 탈바꿈했을 것이고 그것이 사람들의 호응을 얻으면서 점점 더 많이, 또 널리 퍼져나가게 되었던 것입니다

 

출처 : https://www.jazzartsgroup.org/new-orleans-the-birthplace-of-jazz-by-byron-stripling/


이것이 바로 재즈 음악의 시작이었습니다. 재즈의 바탕이 된 음악이라면 흑인영가와 더불어 블루스와 랙타임을 들 수 있습니다. 랙타임은 선술집에서 주로 흑인 연주자들이 피아노로 연주하던 단조로운 2박자의 음악으로 우리 귀에 익숙한 영화 "스팅"의 주제 음악이 바로 그것입니다. 랙타임 연주자들은 센 박자 다음에 여린 박자가 나오기 마련인 원래 순서의 앞뒤를 바꾸는 싱코페이션, 즉 엇박자를 연주함으로써 리듬에 변화를 주었는데 이런 식의 변주가 재즈 음악에 영향을 주었습니다. 블루스는 백인들의 온갖 멸시를 견디며 고달픈 나날을 살아야 했던 흑인들의 탄식과 푸념을 담은 신세타령과도 같은 음악입니다




날마다 힘겨운 노동을 견디기 위해 햇살 따가운 들판에 서서 누군가 먼저 부르면 모두가 함께 따라 부르던 노동요의 가락은 저도 모르게 그들 입안에서 맴돌았을 겁니다. 고된 하루 일을 겨우 끝내고 오두막으로 돌아오면 몸은 지칠 대로 지쳐 가누기조차 힘든데 문득 울적하고 답답한 마음에 설움이라도 복받치면 입안에 맴돌던 가락에 한숨과 넋두리를 실어 흐느끼듯 읊조렸을 것이고 그것이 결국 블루스가 되었습니다. 블루스의 음계는 7개의 음으로 이루어진 서양 음악의 장음계에서 세번째와 일곱번째 음을 반음씩 내린 것으로 이 또한 재즈 음악에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이렇듯 전부터 있었던 흑인 음악의 여러 장르들을 받아들여 점점 그 모양새를 갖추게 된 재즈 음악은 주제로 선택하여 먼저 들려주는 기존 음악의 골격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 범위 안에서 즉흥적으로 변형시켜 연주하는 음악을 일컫게 됩니다. 뉴올리언즈 흑인들의 장례 행렬을 이끄는 밴드의 음악에서 시작된 재즈 음악은 점점 뉴올리언즈 사람들의 삶의 구석구석을 파고들더니 결국은 미시시피 강을 따라 미국 전역으로 퍼져나갔고 대서양을 건너 유럽과 전 세계로 널리 전파되었습니다.  

 


재즈 음악의 역사에서 처음으로 그 이름을 떨친 거장은 루이 암스트롱입니다. 당대에 그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뛰어난 트럼펫 연주자였으며 음악의 가락을 가사 없이 입으로 따라 부르는 스캣송을 널리 퍼뜨려 재즈 보컬의 전형으로 만든 장본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밴드의 악사들이 함께 연주하는 방식을 벗어나 하나의 악기가 따로 그 솜씨를 마음껏 펼치는 새로운 재즈의 연주방식을 처음으로 시도한 선구자이기도 합니다. 그는 뉴올리언즈에서 태어나고 자라, 그곳에서 활동하며 실력과 명성을 닦았습니다. 가정을 팽개친 아버지 대신 어머니와 함께 살았지만 살림은 말할 수 없이 궁핍했고 집안에는 늘 남자들이 드나들었습니다. 그 가운데 한 남자의 총을 들고 거리로 나선 소년 루이는 새해 첫날을 맞이하는 들뜬 분위기에 휩싸여 허공에다 마구 총을 쏘았고 그 때문에 소년원에 들어가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에게 소년원은 삶의 피난처이자 탈출구였습니다. 그곳 밴드에서 처음으로 코넷을 배울 수 있었고 그로 말미암아 음악가의 길에 접어들게 된 것입니다. 소년원을 나선 그는 살기 위해 무슨 일이든 닥치는 대로 해야 하는 절박한 형편임에도 악기만은 절대로 손에서 놓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코넷에서 트럼펫으로 악기를 바꾸면서 점점 더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고 마침내 음악가로 생계를 꾸려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출처 : https://www.amazon.com/Louis-Armstrong/e/B000APTKDS


이후 그의 삶은 재즈의 역사와 함께 흘러갑니다. 미시시피강을 오르내리는 증기선에의 밴드도 재즈 음악을 연주하였고 그렇게 강줄기를 따라 미시시피강 유역의 여러 도시에 전파되기 시작한 재즈 음악은 드디어 시카고에 상륙하였습니다. 그리고 뉴욕으로 전해지는가 싶더니 순식간에 바다 건너 유럽으로 건너갔고 파리와 베를린 같은 대도시들도 재즈의 열기에 몸살을 앓게 됩니다. 고향을 떠난 루이 암스트롱은 시카고에서는 킹 올리버 밴드와 호흡을 맞추었고 뉴욕에서는 프레처 헨더슨 악단에서 활동하였습니다. 그리고 재즈 음악에 대한 관심과 호응이 팽창하면서 활동 무대도 점점 넓어져 그의 음악은 라디오의 전파를 타고 전국 방방곡곡에 널리 알려졌고 음반과 영화를 통해 전 세계에 그 이름을 떨치면서 이후의 어떤 재즈 음악가도 이루지 못한 부와 명성을 누렸습니다.

 



지금껏 아무도 명확하게 밝혀내지 못했지만 재즈 음악의 탄생 시기는 대략 1900년 경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4반세기도 채 지나기 전에 재즈 음악은 미국 전역은 물론 전 세계로 퍼져나가 지구촌 사람들의 영혼을 흔들어놓고 맙니다. 그리고 마침내 흑인들만의 음악이 아닌 모든 인종을 아우르는 음악이 되었고 감히 어울릴 것 같지도 않은 클래식 음악의 영역에까지 그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이처럼 이전의 그 어떤 음악도 이루지 못한 기적과도 같은 일이 가능했던 까닭을 짐작해 보면 아마도 그 음악에 너무나도 고난한 삶의 흔적과 상처들이 고스란히 담겨 있어서가 아닌가 생각하게 됩니다. 그리고 용광로와도 같은 뉴올리언즈의 뜨거운 열기 속에서 너무나도 다른 여러 인종과 문화와 가치들이 하나로 녹아들어 음악으로 다시 태어났기에 오날날까지도 꺼지지 않는 불씨로 살아남아 새로 태어나는 세계의 거의 모든 음악에 그 영항을 미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