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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미술읽기_마르셀뒤샹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3. 2. 21.

현대미술과 일상

인생의 가장 큰 위기는 "내가 왜 살까?"라는 질문을 할 때라 합니다.

마치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나는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 삶의 지루함과 긴장감 속에서 문득 이런 생각이 떠 오릅니다.

이런 위기는 기회가 될 수도 있겠죠.

미술에서도 예술이라 당연하게 여기던 것들에 대해서 "예술이란 무엇일까?"라는 질문을 던질 때,

갑자기 엄청난 폭풍이 불어 올 때가 있습니다.

지금까지 예술이라 여기던 것들이 마구 흔들리게 되는 것입니다.

현대미술은 아마도 이런 질문에서 시작해야만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마르셀 뒤샹을 통하여

1990년에 노벨상을 수상한 옥타비오 파즈는 "현대미술은 마르셀 뒤샹과 파블로 피카소라는 두 극점 사이에서 진행돼왔다."라고 말하였습니다.

마르셀 뒤샹의 작품으로 현대 미술을 조금 엿보고자 합니다.

<마르셀 뒤샹, 샘, 1917년>

이 작품(?)을 보고 '이건 뭐야?' 하시는 분이 많을 겁니다. 아시는 분은 '아... 이거'하시는 분도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이 작품의 배경과 과정, 뒤샹이 하고 싶었던 의도를 안다면 현대미술을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을 것입니다.

마르셀 뒤샹이 1917년 뉴욕 앵데팡당전 운영위원이었는데 'R. MUTT'라는 가명으로 몰래 출품하였던 작품입니다.

'R. MUTT'란 이름도 변기회사 이름인 'Mott Works'를 살짝 바꾼 것으로 변기 그 자체를 작품으로 제출하였습니다.

참가비 6달러만 내면 질적 수준과 관계없이 누구나 작품을 내걸 수 있는 것이 이 전시의 특징이었기에 운영위원과 설치위원들은 대략 난감했었습니다.

이런 것을 전시하면 엄청난 비난이 쏟아질 염려도 있고, 설치한다 해도 어떻게 설치해야 놓아야 할지도 불분명 했었습니다.

결국 전시기간 내내 이 작품을 전시장 칸막이 뒤어 숨겨 놓는 식으로 전시(?)를 했었습니다.

전시가 끝나자 뒤샹은 <샘>을 왜 아무런 공개적 논의도 없이 전시장에서 배제했는지 <맹인>이라는 잡지를 통해 따졌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미술작품이란 작가가 직접 손으로 제작해야만 하는 것이 아니며,

중요한 것은 작가의 '선택'이라는 주장을 했습니다.

즉 예술은 나타난 결과물에 있지 않고 작가의 정신 속에 있는 것이고 예술가가 무엇인가를 선택했을 때 예술적 가치를 가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는 서구문명의 모순에 대한 비판이었던 것입니다.

서구문명(이성중심주의와 합리주의)이 제국주의 심화와 제1차 세계대전(1914년~1918년)으로 이어지는 상황에서 서구문명은 근본적인 모순을 안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충격을 주지 않는 작품은 그만한 가치가 없다."라고 말하였다.

그에게 예술은 본질적으로 인간의 언어로는 설명되지 않는 그런 것이었다.

결국 이런 예술에 대한 철학이 설치미술을 포함해 기성품을 동원하는 현대미술의 기반이 되었다.

사회의 고정관념과 상식에 반기를 들고 이에 대해 치열한 투쟁을 벌이는 것이며, 삶과 예술의 경계가 사라지는 것이다.

<샘>이란 작품의 제목이 말해 주듯, 그는 시대의 모순에 대해서 말하고 있던 것입니다.

다른 작품을 보면,

<미학오디세이2, 진중권, 휴머니스트>

이 작품도 대략 난감합니다. 장난도 아니고...

작품의 제목이 <L.H.O.O.Q.>입니다.

이 글자를 프랑스어 발음에 따라 '엘 아 쇼 오 퀴'로 읽으면, Elle a chaud au cul(그녀의 엉덩이가 뜨겁다) 라는 발음과 같아집니다.

진중권 교수는 이런 반예술적인 그의 철학에 대해 열린 개념을 말합니다.

인간 이성에 대한 낙관주의가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그 모순을 보게 된 역사적 배경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현대 미술이 우리에게도 낯선 것은 우리의 예술에 대한 정형화된 정의로 인한 것도 하나의 이유인 것입니다.

물론 뒤샹의 뛰어난 작품도 많습니다.

<계단을 내려오는 누드, 1912년>

제가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회화는 2차원의 평면에서 어느 한 순간만을 표현한다는 아쉬움(?)이 있었습니다.

사진기가 셔터스피드를 조절하는 것과 같이 그의 작품에서도 시간을 볼 수 있습니다.

심지어 계단을 내려오는 힘의 움직임, 운동도 볼 수 있습니다.

더 나아가 누드라는 객체의 외형은 해체되어 시간과 힘의 흐름에 따른 흔적만 남아 있습니다.

마치 '우리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라는 말을 하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겉으로 보이는 것의 해체는 그 본질을 보기 위한 하나의 과정을 수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이런 것이 아니더라도, 시대적 배경을 설명이 아니더라도, 작품의 과정이 아니더라도 이 작품은 그냥 맘에 듭니다.

 

현대미술 읽기

현대미술 작품을 보기 위해서 가장 필요한 것은 다른 사람 눈치보지 않는 것이 가장 중요하단 생각을 해 봅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지금 현재를 보는 또 다른 시각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전시소개

'미국미술 300년 Art Across America '이 전시중입니다.

장소 : 국립중앙박물관 기획전시실

기간 : 2013. 02. 05. ~ 05. 19.

시대 변화에 따른 미술의 변화를 볼 수 있는 것이 매력이라 생각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