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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가와 함께 가는 여행, 부산 근대건축 - 이건 건축기행 10번째 테마. EAGON + SA (부산) - 2편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2. 9. 28.


건축가와 함께 가는 여행, 부산 근대건축 - 이건 건축기행 10번째 테마. EAGON + SA (부산) -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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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day

                                                              대도시가 되기에는 부족한 평야.

그곳에 항만시설과 6,25 때 내려온 실향민들의 터를 만들기 위해

부산이 할 수 있었던 방법은 2가지였다…….

바다를 매우던…….산을 깎던…….

결국 두 가지를 다 할 수밖에 없던 곳이 부산이다.

우리가 둘러본 매축지 마을/ 감천동 문화마을은 그 대표적인 마을이다.

 

■ 매립지동네...

매축지 마을은 부산역에서 북쪽으로 약 1km 반경에 지어진

 매립지위에 만들어진 마을이다.

마을주민 대부분이 어업 혹은 부산역을 중심으로 하루벌이를 하던

 일용직 인부들이 살던

부산에서 가장 가난한 마을이다.

딱히 볼만한 것도 없이, 그저 625 동란 이후

 가난하고 어렵던 그 시절을 다시는 격지 않으리라는 다짐의 징표로 남겨둔것인냥

 개발이라는 단어자체가 무색하게 60년대의 진한 추억을 불러일으키는 동네다.

 

찾는이들이 많아서일까? 아내판이 이쁘다.

찾는이나, 거주민이나 둘 다 대하기에는 껄끄러울 수밖에 없는

개발의 논리에서 소외되고 배제된 설움의 삶과 세월의 앙금이 묻어있는 곳이었다.

 내 덩치로는 지나가기 힘들만큼 좁다. 그 좁은 통로안에 별게 다있다. 만물골목,,

그래도 그대로 두기엔 미안했던지

이곳저곳에 손길을준 흔적들이 나타난다,

닭과 병아리의 향연도 있고 , 나비도 있고,

이곳을 이해해주는 스타급 오빠와 추종자들도 있다.

저 할머니는 무슨생각을 하실까? 편하게 바라봐주길 바랄뿐이다.

뒤편에 아파트는 글쎄.. we have...니들은 뭐가 다있니? 

 

저 슈퍼 2층에 내방이있다면

나는 잠잘 때 마다 머리맏에 창을 열고

달빛을 받으며 이문세의‘별이 빛나는 밤에’를 들었을 것만 같다.

좁아서 열어두고, 낮아서 마주보고 작아서 함께했던...

어쩌면 이들이 더 많은 것을 가진자들 일지도 모른다.

 

■ 달동네...

Moon village

달동네를 표현좋은 요즘말로 moon village 라고도 불린다.

부산은 대한민국 최대의 달동네 타운이다.

하늘아래 저렇게나 많은 달동네가 할 만큼 많다.

달동네라 하기엔 좀 이쁘다, 구성이 그렇고 , 색감이 그러하다 ,

과하게 비유하면 부산의 산토리니 라고부른단다...

과하다기 보다 그리스의 산토리니섬보다 더 나은부분도

분명 있을 것이다, 뭔지는모르지만..ㅋ

처음 도착하면 모든 사람들이 저렇게 자리를 잡고 구경하기 여념이 없다. 꼭 섬을 바라보는거같다.

감천동 태극도 마을 그 설립배경은

다른 달동네의 발생 및 성장배경과는

조금 다른 면이 있다,

부산의 유명한 달동네는 대표적인 곳이 두어군데 있다

그중에 한곳이 부산의 수정동과 이곳 감천동이다.

두 지역의 배경은

수정동이 6,25 동란 피난민, 실향민중심으로 만들어진 곳이라면

 감천동 태극도 마을은 종교적인 집단거주지의 형태로 분류될 수 있겠다.

태극도 마을은 태극도 라는 종교집단이 1950년대에

이 지역 산을 개간하면서 집단종교인 생활단지의 모습으로 성장했다고 한다.

물론 가난한 살림에 어려운 국가경제로 인해

 그들이 지을 수 있는 집의 재료라고는

어판장에서 쓰는 생선을 담던 나무박스.

그리고 지전에 널린 돌, 흙뿐이었을 것이고

그걸로 유사한 형태의 박스형 집이라는 공간을 만들게 되었고,

공동화장실을 사용했으며 큰 소유욕 없이 안정적인

공용사이즈의 모듈화가 되어버린 동네가

만들어진 것이라고 한다.

세월이 지나고 떠나는 사람이 생기고 빈집을 사들여 증축을 하고,

종교의 색체가 옅어지기 시작하면서 많은 변화가 있었지만,

동네의 특성상 큰 불편함들 (화장실, 좁은 거리)의 문제는 좀처럼 해결되지 않는다.

부산시에서 학교와 건축가들을 대상으로 마을 살리기 프로젝트를 진행,

집의벽면에 색을 칠하고, 증개축으로 이어진 곳의 보수지원, 차도와 연결되는 동네길의정비,

슬럼화된 수직라인의 녹지화를 통해 작지만 조금씩 변화를 두어

지금은 한국의 산토리니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있었다.

 

더욱이 이 지역을 답사하면서 놀란점은

엄청난 경사면으로 인한 이동의 불편함.

좁고 협소한 공간으로 인한 개인적인 사유공간부족에도

거주민들의 너무나 밝고 해맑은 표정에 있었다.

아직도 대다수의 주민이 믿고 있다는 민간신앙과도 같은 태극도.

종교라는 의미가 갖는 가치중의 하나인 평안함과 긍정

이 두 가지 효과가 잘 드리워진 동네가 아닌가 싶었다.

<이 경로당을 이용하기위해 저 높은 계단을 내려오고 올라와야하는 노인분들...

경로당에 도착하면 정말 기쁘실것만 같다. >

 

이들이 우리에게 보여준 웃음은

높은 달동네와 낮은 소득수준이

절대적으로 초고층 펜트하우스의 생활과 고급외제차를 타는 부의 소득수준과는

비례하지 않음을 알게 해준 소중한 것이었고,

이들의 삶을 알게해주는 가치였다.

이곳의 웃음이 저 낮은동네의 저렴한 사상에 의해 퇴색되어가지 않길 바래본다.

그리고 또 하나 나에게, 우리에게 던진 물음은.

이곳에 계속 들어서려고 하는 상업적 수단들, 리모델링 이라는이름으로 변신해가는 많은 공간들이다.

 관광객이 의외로 많았다, 이들은 전부 무엇을 보고, 어떤 생각을 갖고 돌아갈는지?

50년을 넘게 살아온 거주민들에게 편한공간 이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

그것이 평평한 땅에 지어진 건축과 같은 의미를 갖게 하는 것이라면

그것이 여기서 무슨 의미가 있을지?

물론 위험한 것은  당연히 고쳐가면서 살아야 하겠지만.

 

이곳은 딱히 크게 넓어질 수도 넓힐 수도 높일 수도 없는 곳이기에…….

그리고 지금이대로의 모습 또한 너무나 아름답다.

무한 개발을 주도해온 한국에서 이곳만큼은 그냥

지금의 2% 더 발전된 상태에서 머물러 주었으면 하는

 개인적인 바램도 가져보았다.

5년 후 10년 후쯤에 우리 딸을 데리고 왔을 때

그때도 지금과 비슷했으면 좋겠다. 이곳에서의 기억이... 이기적인것일까?

저편한세상, 데쓰스테이츠. 푸르지옹등을만나지않기를 바래며…….

 

동네 자체가 경사가 심하다 보니 이정도 옹벽은 벽도 아니다.

< 동네가 유명해지도보니 아저씨들도 구경을 많이 온다, > 

<이상한 사직찍기에 열중하는 동네 바보형> 

 카메라의 기술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직찍 실력탓에...

실제로 보면 참 이쁘다. 산토리니와는 다른 한국적인 맛. 난 그렇다...

싼값에 하나사서 나도 살아보고싶다. 

 

■ 범어사  

돌아오는 길 마지막 여행지로 부산 경남 최대의사찰중에 하나인 범어사를 들러보았다.

종교의 내적인 부분을 칭찬했던 앞선 답사지 감천동이었는데

이곳은 옛 역사적 유적마저 홀라당 없애 버리고,

지금의 것으로 엄청난 입구 개보수를 진행하고 있었다.

문제는 흥분한 나머지 제대로 찍은 사진이 없다.

미련하다.

문제의 사진. - 200년묵은 오래된 골동품이라 삭 부수고 새로짓는

범어사 보제루...엄청시리 새건물로 겁나게 아름다울거같다.

 

원래의 것은 주변건물에 맞춰 더 작고 아담하고 멋스럽고

시간이 배여있다, but 지금은 그렇지 않다. new face.

2013년형 보제루가 coming soon 한단다...

 

 

불교건축에서 가람(사찰)의 공간배치는

불교를 설명하는 전부라고 봐도 무관하다.

고구려,백제,신라,통일신라,고려,조선  

불교건축의 양식이 달랐고 또 건물의 배치또한 변해왔다

하지만 그 종교의 본질은 같을터.

세속에 찌든 이들이 입구에서 가장 낮은 자세로 들어오기를 바라는 마음에

 입구의 문은 대부분 낮다.

자신의 죄를 스스로 뉘우치고 마음의 양심을 심판받는 

사천왕상을 언제나 거쳐야한다.

그리고 인간세상에서는 누릴수 없는

불로장생의 문을 지나.

극락왕생의 바다로 들어서는 천왕문앞에 다다르고

 드디어 본존불이 있는 대웅전을 맞이하게 되어

 해탈에 이른다.

아름다운 시나리오다.

< 공부하고싶음 들어가보자 - http://ehddu.tistory.com/167 >

이집트에 입호텝이 있었다면 한국에도 최고의 건축쟁이들이 존재했을터

존경스럽다.

범어사의 초가을 9월은 신선했다, 물과 바람은 시원했고 햇살은 따사로왔다.

 

실로 오랜만에 와본 범어사 뭔가 공사가 한참 진행중이었다...

잘 해주리라 믿고싶다.

 앞서 적산가옥 정난각의 개보수가 제대로 될것인지에대한 강한 의구심을 드러냈다

이러니 드러낼 수밖에 없었다.

이 기와집 사장님은 돈 많이 버시겠다.

1000년쯤 흐르면 문화재는 아니어도 마크는 지워지지 않을까?

 

 

돌아오는 길 부산에서의 짧은 1박2일을 생각해 보았다.

암울한 역사 & 전쟁의 최대 피혜자,수혜자가 되었던 곳,

좁은공간 넘쳐났던 인구 그로인해 자연을 개철할수 밖에 없었던 사람들.

바다를 매우고, 산을 깎아 자신의 터전을 만들어갔고.

국가경제를 위해 수많은 배가 드나들었으며.

 

2000년들어 대한민국에서 가장 가파른 외적 성장을 보인 해운대비치.

이런 모든 것들을 가능하게 했던 인구 350만 부산.

이 엄청난 에너지가 한곳에 응축된 곳 부산

 

 

부산역은 제2의 도시를 말해주듯 분주함으로 활기가 있었고,

자갈치와 광복동은 엄청난 관광인파로 꿈틀거렸고.

해운대는 젊은이의 열기로 뜨거웠고,

감천동은 오지에서 느끼기 힘든 따듯함을 선물했다.

해운대의 갈매기는 지치지 않았고,

위상은 자이언트 했다

역시 다이나믹 부산이었다.

 

 

                                "I love U 부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