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승찬 교수의 클래식 음악(31)
[홍승찬 교수의 재미있는 클래식음악 이야기] 연주자의 패션감각
애국가의 작곡가 안익태 선생님의 연미복
옷이 날개라는 말이 있습니다. 과거에도 그랬지만 요즘처럼 외형을 중시하는 풍조에서는 더 더욱 그렇다는 생각이 듭니다. 더욱이 늘 많은 사람들 앞에 자신을 내보여야 하는 연주자들에게 연주복은 정말이지 큰 걱정거리가 아닐 수 없을 것입니다. 남성 연주자는 무조건 연미복이나 턱시도를 입어야 했던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것은 주로 여성 연주자들의 고민이었지만 세상이 달라지면서 남성 연주자들의 연주복도 엄격한 틀을 벗어나 각자의 취향과 개성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세기의 지휘자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
20세기의 거장 카라얀은 음반 산업의 중요성을 남보다 앞서 깨달았던 지휘자였습니다. 그리고 들려주는 음악 뿐 아니라 보여주는 모습의 중요성을 그 누구보다 잘 알았던 음악가이기도 합니다. 그는 음반뿐 아니라 영상물 제작에도 남다른 관심을 가졌고 그 덕에 지금도 그가 지휘하는 모습을 담은 영상물은 어디서나 쉽게 구할 수 있습니다. 녹화된 화면 속에서 검은 색 바지 위에 목까지 오는 검은 색 스웨터를 입고 눈을 감은 채 지휘하는 카라얀의 모습을 자주 보게 되는데요, 상체에 비해 짧고 왜소한 하체를 드러내지 않기 위해 그런 복장을 즐겼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때문에 가급적 전신이나 하반신을 드러내는 각도에서의 촬영은 피했다고 하지요.
세계 3대 첼리스트로 꼽히는 첼로의 거장, 미샤 마이스키
연주자들 가운데 파격적인 의상으로 주목을 끌었던 대표적인 인물을 찾으라면 아무래도 첼리스트 미샤 마이스키를 먼저 떠올리게 됩니다. 당대 최고의 실력과 더불어 그리스의 조각같이 수려한 용모로 여성 팬들의 인기를 독차지했던 그는 몸에 붙는 검은 색 바지 위에 소매와 품이 넉넉하고 잔주름이 잡힌 셔츠를 입고 무대에 등장하면 마치 신화 속의 인물이 나타난 듯 착각을 일으킬 정도였습니다. 공연의 후반부에는 다른 색상의 셔츠를 갈아입곤 하는데 그 의상이 모두 일본의 세계적인 디자이너 이세이 미야자케의 작품이라고 해서 더욱 음악 애호가들의 관심을 끌기도 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소프라노 조수미가 연주회마다 앙드레 김이 디자인한 연주복을 입고 무대에 오르고 있습니다. 전부터 유명 연주가들의 연주회마다 모습을 보이면서 음악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남다른 것으로 알려진 앙드레 김은 좋아하는 연주자들의 연주복을 만들어주기도 하는데, 최근에는 피아니스트 김선욱에게 선물한 특이한 연주복이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기도 했습니다. 생 텍쥐 베리의 소설 ‘어린 왕자’의 삽화에서 본 듯한 복장으로 무대에 등장한 김선욱의 표정과 몸짓은 잠시 겸연쩍고 쑥스러운 듯 어색해보였지만 곧 음악에 몰입하여 성숙하고 열정적인 연주를 펼쳐보였습니다.
자신만의 시각적 이미지가 확고한 지휘자 금난새
우리나라 연주자들 가운데 패션 감각에서 으뜸을 꼽으라면 지휘자 금난새를 가장 먼저 떠올리게 됩니다. 검정색이나 짙은 회색 계열의 색상에 겉으로 보기에는 일상적인 수트와 별 차이가 없어 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세부적인 디자인에서 단추와 재봉선에 이르기까지 섬세하게 다르면서 꼼꼼하게 마무리 한 특별한 의상입니다. 그리고 늘 초록색 계통의 타이에다 같은 색 계통의 소품으로 포인트를 줌으로써 자신만의 시각적 이미지를 확실하고 각인시키고 있는 점이야말로 실로 감탄스러울 정도입니다.
지금까지 무대에서 만난 연주자들 가운데 뛰어난 패션 감각으로 가장 뚜렷하고 오래도록 지워지지 않는 인상을 심어준 음악가라면 단연 피아니스트 장 이브 티보데를 꼽아야 할 것 같습니다. 언제인지 정확하게 기억할 수는 없지만 LG 아트 홀에서 들었던 그의 연주와 그 때 보았던 그의 모습은 절대로 잊을 수 없을 정도로 감동적이었고 파격적이었습니다. 눈부시게 밝은 금발과 하얀 피부에 흠잡을 데 없이 빼어난 용모부터가 여성 팬들을 매료시켰고 초인적인 기교에다 폭발적인 힘이 없으면 엄두도 낼 수 없는 리스트의 난곡들을 어루만지듯이, 혹은 노래하듯이 너무나도 부드럽고 편안하게 풀어헤치는 연주는 청중들의 넋을 송두리째 빼앗아버렸습니다. 그의 모습과 음악은 무척이나 섬세하여 부서지기 쉽지만 아무나 범접할 수 없는 고아한 품격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리스트가 작곡한 “베르디의 오페라 ‘리골레토’의 주제에 의한 패러프레이즈”에서 그는 어느 성악가가 부르는 노래보다 더 노래답고 더 아름다운 선율을 가슴이 멍들도록 흐느끼며 노래했습니다. 그의 타고난 감각과 뿌리칠 수 없는 매력은 그것이 전부가 아니었습니다. 몸매를 자연스럽게 감싸면서 어깨로부터 떨어지는 선이 부드러운 듯 빈틈이 없었던 검은 색 연미복은 눈부신 그의 외모를 더욱 더 돋보이게 했고 빳빳하게 풀을 먹인 하얀 드레스 셔츠에 빨간 색 나비 넥타이와 역시 빨간 바탕에 금박 실로 화려하게 수를 놓은 조끼는 너무나 파격적이었지만 너무나 아름다워 입을 다물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피아노 의자에 앉았을 때 살짝 올라간 바지 끝단 아래로 살짝 드러난 빨간 양말은 청중들의 탄성을 절로 자아내게 했습니다.
물론 눈에 보이는 복장이나 외모가 들리는 음악보다 중요할 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보이는 것 때문에 들리는 것이 달라질 수야 없겠지요. 그러나 들리는 것만큼 보이는 것도 좋다면, 그래서 보기에도, 듣기에도 다 좋은 연주회라면 듣기에만 좋은 연주회보다야 당연히 더 낫겠지요. 옷은 자신을 돋보이게 하는 수단이기 전에 상대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가 아닌가 싶습니다. 상대를 배려하고 존중해서 그런 마음을 보이고 싶다면 옷차림부터 신경을 쓰고 가다듬는 것이 우선이겠지요. 일상에서의 만남부터가 이렇다면 무대에 나서서 청중들을 대하는 예술가의 입장이야 더 말할 필요가 없을 것 같습니다.
글 : 홍승찬 교수
편집 : 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