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승찬 교수의 클래식 음악 이야기] 오케스트라의 콘서트홀은 연주자의 악기와 같다[홍승찬 교수의 클래식 음악 이야기] 오케스트라의 콘서트홀은 연주자의 악기와 같다

Posted at 2017. 11. 23. 09:51 | Posted in 이건음악회 Talk Talk/홍승찬교수의 클래식 톡톡



연주자에게 악기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아무리 실력이 뛰어나도 악기가 나쁘면 좋은 소리가 나지 않아 좋은 음악을 들려줄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좋은 악기를 사려고 가진 돈을 다 쓰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빚을 내서 평생을 갚느라 허덕이는 경우도 많습니다.


출처 : https://nmbx.newmusicusa.org/whats-a-musician-worth/


연주자에게 악기만큼 중요한 것이 공연장입니다. 악기의 울림이 아무리 좋아도 그걸 공연장이 그대로 받아서 제대로 청중에게 전하지 못한다면 아무 소용이 없기 때문입니다. 공연장의 울림이 좋고 나쁘고의 차이는 혼자 연주할 때보다 여럿이 함께 연주할 때, 특히 여러 종류의 악기들이 어우러져 연주할 때 더 잘 드러나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오케스트라에게 있어 전용 콘서트홀은 악기보다 더 중요할 수도 있습니다.


출처 : https://en.wikipedia.org/wiki/London_Symphony_Orchestra


연주자가 좋은 악기를 사기 위해 집을 팔고 빚을 내는 것을 이해한다면 오케스트라가 좋은 콘서트홀을 갖기 위해 있는 힘을 다하고 목소리를 높이는 것 또한 당연하게 받아들여야 합니다. 콘서트홀을 가질 형편이 못되면 빌려 쓰는 것도 생각할 수 있지만 그 안에 늘 머물면서 필요할 때면 언제나 연습하고 연주할 수 있는 조건이 아니라면 콘서트홀의 조건에 적응한 최상의 음향을 만들고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출처 : http://tch15.medici.tv/en/concert_halls/mariinsky-3


공연장을 짓는 데 막대한 비용이 드는 까닭에 지금까지 우리나라 대다수 지방자치 단체들은 연주회 뿐만 아니라 오페라와 발레, 연극과 무용 뿐만 아니라 뮤지컬 공연까지 가능한 다목적 공연장을 만들어서 운영해왔습니다. 그런데 그 대부분이 공연의 어느 장르에도 딱 들어맞지 않아 공연의 완성도가 떨어질 뿐만 아니라 공연을 만들 수 있는 여건도 갖추지 못해 제대로 가동되고 활용되지 못하는 실정입니다. 말하자면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으려다 한 마리도 잡지 못하는 처지가 된 것입니다. 이에 몇몇 지방자치 단체들이 먼저 나서서 특정 장르에 적합한 공연장을 새로 짓거나 짓고자 노력중인데 그 가운데 대표적인 경우가 대구시민회관입니다. 오래 전 다목적 공연장으로 지어 낡고 낙후된 공연장을 연주회 전용 콘서트홀로 리모델링한 경우입니다. 오케스트라 연주에 적합한 음향조건을 갖춘 까닭에 이곳에 상주하여 전용홀로 쓰고 있는 대구시립교향악단의 역량이 나날이 발전하고 있는가 하면 시민들의 관심과 호응도 날마다 늘어나 연주회 마다 연일 매진을 이어가고 있다고 합니다.


출처 : http://www.daegucity.net/bbs/board.php?bo_table=B85&wr_id=1


대구가 이렇다면 다른 지자체라고 안될 까닭이 없고 서울이라면 더더욱 서둘러야 할 때가 아닌가 싶습니다. 이제 막 세계 무대의 문턱에 올라서려는 순간, 어느 때보다 어려운 시련을 겪고 있는 서울시향이 지금의 위기를 슬기롭게 극복하고 재도약의 발판으로 삼을 수 있는 계기가 전용 콘서트홀 건립이 아닌가 싶습니다. 오늘이 아니라도 언젠가는 반드시 해야 할 일이라면 비전이 필요하고 희망이 절실한 지금이야말로 놓치지 말아야 할 바로 그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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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바르트 그리그가 그린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콘서트홀 - 트롤드하우겐 Troldhaugen, Bergen, Norway, Edvard Grieg에드바르트 그리그가 그린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콘서트홀 - 트롤드하우겐 Troldhaugen, Bergen, Norway, Edvard Grieg

Posted at 2015. 8. 11. 09:01 | Posted in 이건음악회 Talk Talk/홍승찬교수의 클래식 톡톡

 

공연과 관련된 일을 하면서 세계 각지를 돌아다녔고 가는 곳마다 이름난 공연장들을 찾아다니다 보니 그 수를 일일이 헤아리기도 힘들 지경입니다. 가끔 누군가 그 가운데 기억에 남는 공연장을 물으면 한 나라나 도시를 대표할 만한 외관과 규모를 자랑하거나 그 기능이 두드러지게 뛰어난 경우를 언급하기도 하지만 그에 앞서 늘 먼저 떠오르는 공연장은 따로 마음속에 숨겨두고 깊이 간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몸과 마음이 힘들 때마다 그리그의 “페르귄트 모음곡”을 들으며 그곳에서의 감동을 되새기곤 합니다. 그렇게 선뜻 입에 올리지 못하는 것은 지금도 사람들이 많이 찾는 그곳이 더 이상은 세상 풍파에 시달리지 않았으면 하는 작은 소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Grieg Morning Mood(그리그 페그귄트 모음곡중 아침 분위기)

 

노르웨이의 작곡가 에드바르트 그리그가 세상을 벗어나 말년을 보낸 ‘트롤드하우겐’에 그를 기념하기 위해 따로 지은 콘서트홀이 바로 그곳입니다. 노르웨이를 대표하는 작곡가로 우리에게는 “피아노 협주곡 a단조”와 “페르귄트 모음곡”으로 잘 알려진 그리그는 1843년 베르겐에서 태어나 어려서부터 소프라노 가수였던 어머니에게 피아노를 배웠고 열다섯 살 때 독일로 건너가 라이프치히 음악원에서 공부를 하며 멘델스존, 슈만과도 교류를 하였습니다.

 

 

 

1892, Troldhaugen/Bergen/Norway / 출처 : 위키피디아 

 

다시 노르웨이로 돌아와서는 스칸디나비아와 노르웨이의 음악가들은 물론 다른 분야의 여러 예술가들과 함께 활발한 활동을 펼치며 민족주의적인 정체성을 확립하게 됩니다. 그후 음악가로서의 활동은 순조로웠고 노르웨이 정부로부터 평생 연금까지 받게 된 그리그는 1867년, 사촌인 니나 하게루프와 결혼을 올리는데 뛰어난 소프라노 가수였던 니나는 그리그의 삶 뿐만 아니라 음악세계에도 지대한 영항을 미쳤습니다.

 

 

출처 : http://www.maniadb.com/

 

그리그는 니나와 함께 연주여행을 다니며 아내를 위해 수 많은 가곡을 작곡했는데 니나를 만났던 차이코프스키는 “나는 지금까지 그만큼 박식하고 교양 있는 여성을 만난 적이 없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결혼 후 한층 더 평화로운 일상 속에서 창작에 몰두할 수 있었던 그리그는 1885년 드디어 베르겐 외곽에 피오르드 호수가 내려다 보이는 언덕에 집을 지어 살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1907년 눈을 감을 때까지 이곳이 그의 심신의 안식처이자 창작의 산실이었고 사랑의 보금자리이기도 했습니다. 니나는 결혼 후에는 내조에만 전념하여 그리그를 위해 헌신했고 남편의 노래 말고는 어떤 음악도 연주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Aase's Death (Edward Grieg)

 

베르겐에서 트렘을 타고 파라디스역에 내리면 너도밤나무가 우거진 가로수길을 따라 20분 정도 걸어서 ‘트롤하우겐’에 도착하게 됩니다. 영어로는 파라다이스라는 역의 이름은 아마도 이곳 ‘트롤하우겐’을 일컬어 그랬으리라 짐작할 만큼 아름다운 곳입니다. ‘트롤하우겐’도 그리그가 붙인 이름으로 숲의 요정 트롤이 사는 언덕이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그리그는 왜 자신의 집을 ‘트롤하우겐’이라고 했을까요? 트롤은 보는 사람에 따라 선인과 악인으로 변하는 숲속의 요정입니다. 그런 트롤이 유명해진 건 노르웨이의 문호 엔리크 입센의 희곡 ‘페르귄트’ 때문입니다.

 

 

트롤드 하우겐 / 출처 : Troldhaugen - Wikipedia

 

세상을 방랑하던 페르귄트가 자신의 잘못을 깨닫지 못하자 트롤이 그의 눈을 뽑아버리지요. 입센의 부탁으로 그의 희곡에 곡을 붙였던 그리그 또한 스스로 그 이야기에 몰입되었던 것입니다. 새로 지은 박물관을 지나면 그리그가 니나와 함께 살았던 집이 있고 호숫가에는 그리그가 작업실로 썼던 붉은 오두막이 있습니다. 문 하나와 창 하나를 가진 이 작은 오두막의 문을 열면 정면으로 호수가 보이는 창문 앞에 오선지가 펼쳐져 있는 책상과 의자가 놓여 있고 왼쪽 벽면으로는 업라이트 피아노와 흔들의자가, 오른쪽 벽면으로는 길게 누울 수 있는 소파가 놓여져 있어 마치 조금 전까지 그리그가 이곳에서 작곡을 했을 것 같은 착각에 빠지게 됩니다.

 

 

Grieg ,페르퀸트 모음곡 Op,46중에서 제3곡 아니트라의 춤

 

문제의 콘서트홀은 이 작은 오두막 위의 비스듬한 경사를 타고 앉아 있습니다. 노르웨이식의 목조건물로 지어진 이 건물의 외벽 나무는 아무 것도 칠하거나 입히지 않아 잿빛을 띠고 있고 보온을 위해 지붕을 덮고 있는 풀들의 초록색과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잘 어우러져 있습니다. 언덕의 경사를 그대로 살린 200여석의 객석은 무대를 아래로 내려다보게 되어 있는데 이 공연장의 감동은 바로 그랜드 피아노가 놓여 있는 좁은 무대 뒤로 만든 유리창이었습니다.

 

 

GRIEG museum

 

그 유리창 너머로 붉은 오두막이 보이고 또 그 뒤로 노을에 물든 호수와 하늘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 하늘이 점점 어두워지면서 오두막의 붉은 색깔도 검게 바뀌었고 무대 위에서 연주되는 그리그의 음악이 시선을 사로잡았던 아름다운 풍경을 대신하였습니다. 아니 그 잔상 위를 밤하늘의 별들처럼 아름답게 수놓았다는 말이 더 정확할 것입니다. 순간 눈앞에 보이는 바로 그 오두막에서 만들었을 음악을 무대 위로 옮겨서 들려준다는 발상이 놀랍기 보다는 당연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리그의 음악을 듣고 제대로 느끼기 위해 이 보다 더 좋은 곳이 있을까 싶기도 했습니다. 위대한 한 음악가의 삶과 음악이 자연과 어우러져 눈 앞에 펼쳐지고 귓가를 울리며 가슴으로 파고드는 이 놀라운 경험은 지금까지도 뭉클한 감동으로 남아 있습니다.

 

 

그리그-산왕의 궁전에서(Grieg-In the hall of mountain king)

 

다른 어떤 음악가와 예술가들보다 평탄하고 순조로운 삶을 살았던 그리그에게도 달리 비교할 수 없는 커다란 아픔이 있었습니다. 그에게는 두 가지 소원이 있었습니다. 조국의 독립과 안녕을 염원했고 그가 머물던 집 앞의 정원이 아이들의 웃음소리로 가득하기를 그 무엇보다 바랐다고 합니다. 노르웨이는 독립하였지만 하나 밖에 없는 딸 크리스티나는 살아서 돌아오지 않았고 하늘은 더 이상의 자녀도 허락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는 죽어서도 이곳을 떠나지 않으려 했고 그의 시신은 화장을 하여 그가 늘 낚시를 다니던 길목 바위틈에 니나와 함께 잠들어 있습니다.

 

 

Private Concerts | GRIEG museum

 

‘트롤하우겐’은 그리그의 삶은 물론이고 그가 작곡한 ‘페르귄트’ 모음곡의 이야기가 마치 지금인 듯 생생하게 살아있는 곳입니다. 몰락한 부농의 아들 페르는 홀어머니 오제를 떠나 온갖 몹쓸 짓에 휘말려 목숨을 잃을 처지였으나 농부의 딸 솔베이그의 구원을 받습니다. 솔베이그를 버리고 어머니를 찾아갔으나 오제는 세상을 떠나고 다시 방랑과 모험의 길로 나선 페르는 결국 삶의 막바지에 이르러 솔베이그에게로 돌아가 그녀의 품에 안겨 눈을 감습니다. 각각 네 곡씩 두 개의 모음곡으로 이루어진 “페르귄트 모음곡”의 마지막 곡이 바로 그 유명한 ‘솔베이그의 노래’입니다. 그리그가 작업실로 썼다는 붉은 오두막을 들여다 보면 마치 평생 물레를 돌리며 페르를 기다렸던 솔베이그의 오두막인 듯하여 더욱 눈에 밟혀 사라지지를 않습니다.

 

 

EdvardGrie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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