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승찬 교수의 클래식 음악 이야기] 다름을 존중하고 공존하고자 했던 바로크 음악의 정신
르네상스 시대 이후 새로운 예술의 흐름을 일컫는 "바로크"는 일그러진 진주라는 뜻의 포르투갈아에서 비롯되었다고 합니다. 잘못된 추론을 뜻하는 라틴어나 속임수를 뜻하는 이탈리아어에서 비롯되었다는 말도 있지만 그 어느 것이든 썩 좋은 뜻이 아님은 틀림없습니다. 원래는 그 시대 사람들이 당대의 건축물을 일컸던 말이 점점 같은 시대의 모든 예술을 아우르는 용어로 자리잡은 것입니다. 오늘날의 관점에서 보면 음악에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말이 아닌가 싶지만 당시 사람들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말 그대로 뭔가 이상하고 어색하게 느꼈던 것입니다. 그것은 마치 20세기에 새로운 음악이 나타났을 때 현대음악이라 부르며 낯설고 어렵게만 생각하던 것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17세기 사람들은 이전까지 음악이라면 주로 노래를 하거나 춤을 출 때 함께 하는 것으로 알았는데 악기로 연주하는 음악을 그저 가만히 앉아서 들어야 하는 것이 어색했던 모양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느렸다가 빨라지고 큰 소리가 갑자기 작아지는가 하면 다 함께 연주하는 부분과 몇몇이 따로 연주하는 부분, 여러 가락이 서로 얽혀서 들리는 음악과 한 선율만 뚜렷하게 들리는 음악을 나란히 이어놓는 것이 이상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사실은 이것이 바로 바르크 시대의 기악을 대표하는 협주곡, 즉 콘체르토 양식의 전형적이 모습입니다. 콘체르토는 경쟁하다, 대립하다는 뜻의 라틴어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이처럼 바로크 협주곡은 서로 대조적인 부분들을 교대로 등장시켜 음악의 흐름을 만드는 음악입니다. 처음엔 합주 협주곡, 즉 콘체르토 그로소라고 하여 악단의 모든 악기가 연주하는 부분과 그 가운데 몇몇 악기들만 따로 연주하는 부분이 번갈아가며 나타나는 모양새였지만 이후에 하나의 악기와 악단 전체가 서로 맞서는 솔로 콘체르토, 즉 독주 협주곡이 나타나기 시작하면서 무게의 중심이 점점 후자로 기울어지게 됩니다. 이러한 협주곡의 변천에 있어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 사람이 안토니오 비발디였고 그를 모방하고 연구하여 바로크 협주곡을 완성의 단계로 이끈 이가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입니다.
출처 : https://earlymusicmuse.com/baroquemusic/
안토니오 비발디는 1678년 이탈리아의 베네치아에서 태어나 일생의 대부분을 그곳에서 살았습니다. 대대로 뛰어난 바이올린 연주자를 배출한 집안에서 태어나 체계적인 음악교육을 받았지만 어려서 수도원에 들어갔고 커서는 성직자가 되었습니다. 사제가 되었으나 병약하여 미사를 집전하기조차 어려웠고 그 때문에 베테치아의 소녀들을 위한 고아원인 “오스페달레 델라 피에타”의 바이올린 교사로 부임하였고 나중에는 합주장, 합창장을 거쳐 원장의 직무를 수행하게 됩니다. 당시 고아원은 일요일마다 자선음악회를 열어 그 수익금으로 부족한 재원을 충당했기 때문에 비발디는 원생들로 이루어진 합주단과 합창단을 연습시켜야 했고 그들이 연주할 음악을 작곡해야 했는데 그가 남긴 500여곡에 이르는 협주곡들은 그로 말미암아 만들어진 것들입니다. 이처럼 누구보다 많은 협주곡을 작곡하기도 했지만 협주곡 양식을 다루는 비발디의 뛰어난 솜씨는 처음부터 두드러지게 돋보였습니다.
특히 그 많은 협주곡 가운데 처음으로 출판한 "조화의 영감"의 12곡은 다양한 악기구성과 조합, 음악을 펼치는 여러가지 전개방식을 시도하고 있어 바로크 협주곡의 모범과도 같은 작품입니다. 그 가운데 1번, 7번, 10번은 네 대의 바이올린과 첼로를 앞세운 곡이고 4번은 네 대의 바이올린, 8번은 두 대의 바이올린을 위한 곡이며 2번과 11번은 두 대의 바이올린과 첼로, 그리고 나머지는 모두 독주 바이올린을 위한 곡들입니다. 또한 8번처럼 바이올린의 현란한 기교를 적절하게 펼쳐야 하는 곡이 있는가 하면 그다지 어렵지 않으면서 상큼하고 밝은 느낌이 두드러지는 10번이 있고, 6번의 경우는 바이올린을 배우는 사람이 처음으로 협주곡에 도전할 때 많이 선택할 정도로 쉽지만 아기자기한 곡입니다. "조화의 영감"은 당대는 물론 후대에까지 널리 영향을 미쳤습니다. 특히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는 이 중의 여섯 곡을 건반악기를 위한 협주곡으로 편곡했을 정도로 이 작품을 높이 평가하여 기꺼이 스스로의 음악 속에 받아들여 발전시켰고 그로 말미암아 바로크 협주곡 양식의 궁극에 도달할 수 있었습니다.
출처 : https://www.youtube.com/watch?v=OoFb_iMKu5s
음악사의 바로크 시대에 벌어진 양상은 마치 춘추전국 시대의 군웅할거를 보는 듯합니다. 나라마다 도시마다 뛰어난 음악가들이 있었고 그들의 음악은 남다른 모습으로 나름의 소리를 들려주었습니다. 때문에 같은 악기를 다르게 부르는 일도 있었는데 피아노의 전신 악기인 쳄발로가 그랬습니다. 이탈리아어로 쳄발로, 독일에서는 하프시코드, 프랑스 사람들은 클라브생이라 불렀던 겁니다. 먼저 이탈리아의 여러 지역과 도시들이 그렇게 경쟁하며 서로를 닮아갔고 그 때문에 나날이 변화하고 성장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따라서 보고 배웠던 프랑스와 독일이 또한 같으면서 다르기도 한 그들만의 음악을 만들어갔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그 물결은 헨델과 같은 작곡가와 더불어 섬나라 영국까지 들어가게 됩니다. 바로크라면 우리는 바흐와 헨델, 비발디를 떠올리지만 이들은 모두 바로크 시대의 끝자락에 걸친 인물들입니다. 말하자면 한 시대를 마무리하고 다음 시대를 열어준 셈이고 그 모든 것을 아우르는 마지막 대업을 완성한 이가 바로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입니다. 때문에 그가 세상을 떠난 1750년은 150년 바로크 시대의 마지막 해로 삼기도 합니다. 어떤 면에서 이 놀라운 그의 업적 또한 중국의 역사에 비견하자면 최초의 통일왕조를 세운 진시황을 떠올리게 됩니다. 그러나 힘으로 상대를 제압하여 말살한 시황제와는 달리 그는 스스로를 낮추어 상대를 받아들이고 배우면서 그 모든 것을 하나로 모아 후대에 남겼습니다.
출처 : https://www.youtube.com/watch?v=12EZZlr9DCY
비단 바흐뿐만 아니라 바로크 시대의 뛰어난 음악가들은 누구나 그랬습니다. 그래서 오늘날 우리가 누리고 있는 클래식 음악의 위대한 유산이 가능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나와 다른 남을 존중하고 받아들여 그것으로 전보다 나은 나를 새롭게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만든 음악 안에서도 전혀 다른 것들이 나란히 번갈아가며 나타나게 하여 서로가 겨루면서도 균형과 조화를 이루도록 하였습니다. 그것이 바로 바로크 협주곡의 원리이자 바로크 음악의 가치, 바로크 시대의 정신입니다. 비발디의 “조화의 영감” 10번의 1악장 들으면서 누구나 나와 다른 차이를 차별하지 않고 서로를 존중하고 배려하여 모두가 균형과 조화를 이루며 평화를 누리는 세상을 꿈꾸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