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승찬 교수의 클래식 이야기] 록그룹 퀸이 부른 “보헤미안 랩소디”의 구절에서 찾을 수 있는 스페인의 민속 음악
“스카라무슈! 스카라무슈! 윌 유 두 더 판당고?
Scaramouche Scaramouche will you do the Fandango?”
록그룹 퀸이 부른 “보헤미안 랩소디”의 한 구절입니다. 판당고는 스페인의 민속 춤이자 민속 음악의 한 종류입니다. 어머니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아버지를 살해하고 사형 선고를 받은 한 흑인 소년의 유서를 바탕으로 썼다는 이 노래의 가사는 그 소년이 어머니에게 자신의 참담한 심정을 토로하는 흐름으로 이어지다 이 대목에 이르러 엉뚱한 이름이 느닷없이 등장합니다.
스카라무슈는 르네상스 시대 이탈리아에서 시작되어 유럽 각지로 진출하여 18세기까지 널리 사랑받았던 유랑극단 콤메디아 델라르테(Commedia dell'arte)의 등장인물로 이탈리아어 스카라무치아(Scaramuccia)를 프랑스어로 옮긴 것입니다. 17세기 프랑스에서 활동했던 나폴리 출신의 극단장 티베리오 피오릴로(1608~94)가 이 배역을 연기하여 크게 인기를 끌었고 이후 프랑스 연극에도 많은 영향을 미쳤습니다. 스카라무슈는 주로 허풍쟁이 수다쟁이 하인으로 나와 검은 옷에 망토를 두르고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르고 너스레를 떨어 사람들을 속이고 또 웃깁니다.
콤메디아 델라르테는 말 그대로는 기술(Arte)을 가진 사람들이 연기하는 연극, 또는 희극(Commedia)이라는 뜻으로 대강의 줄거리인 카노바치오를 바탕으로 숙련된 배우들의 즉흥 연기와 대사로 극을 꾸려갑니다. 때문에 이를 “코메디아 인프로비자(즉흥희극)”라 부르기도 했고 배우들이 가면을 쓰고 나온다고 해서 즉흥가면극이라 부르기도 했습니다. 배우들은 연기와 대사뿐만 아니라 노래와 춤은 물론 곡예까지 펼쳐보여야 했습니다. 무엇보다 배우들의 역할이 중요했기에 그들이 설정해가는 등장인물의 성격이 극의 중심으로 자리 잡았고 배역의 성격과 역할이 배역의 이름과 동일시되면서 최고의 연기자는 그가 맡은 배역의 이름을 별명으로 갖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유형화된 등장인물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배역이라면 잔니(Zanni)를 꼽을 수 있습니다. 롬바르디의 베르가모에서는 남자 하인 조반니를 줄여서 잔니라고 부르는데 아마도 거기서 가져온 이름인 듯싶습니다. 잔니는 약방의 감초처럼 아무 데나 끼어들어 온갖 농담과 갖은 술수를 늘어놓거나 멍청하고 아둔하여 속수무책으로 당하기 마련인데 아를레키노와 그 상대역인 페드로리노가 대표적이고, 스카라무슈, 풀치넬라, 스카피니도 있습니다. 이들 배역은 훗날 영국과 프랑스로 건너가 각각 할리퀸(Harlequin)과 피에로(Pierrot), 스카라무슈(Scaramouche), 펀치(Punch), 스카팽(Scapin)으로 불리며 유럽 연극의 주요 배역으로 자리잡았습니다. 이 밖에 욕심부리는 늙은이 판타로네와 허세부리는 겁쟁이 군인 카피타노, 만물박사 독토제, 그리고 바람잡이 하녀 콜롬비나 등이 콤메디아델라르테의 전형적인 등장인물입니다.
콤메디아델라르테는 어디든 가는 곳마다 인기를 끌었고 유럽 여러 나라의 연극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프랑스의 몰리에르와 영국의 벤 존슨, 그리고 윌리엄 세익스피어의 작품들 속에도 뚜렷한 흔적을 남겼고 유럽 여러나라의 인형극과 영국의 할러퀴네이드, 프랑스의 팬터마임은 물론 찰리 채플린 영화에서도 그 전통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콤메디아델라르테는 오늘날 세계의 여러 오페라 극장에서 만날 수 있는 명작 오페라 속에서 살아숨쉬고 있습니다.
콤메디아델라르테는 18세기에 새롭게 나타난 오페라 장르인 오페라 부파의 탄생과 성장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쳤습니다. 조금 과장해서 말한다면 거리에서 공연되는 콤메디아델라르테를 오페라 극장 안으로 옮겨 놓은 것이 오페라 부파라고 해도 될 만큼 배역의 설정이나 이야기의 전개가 비슷합니다. 게다가 이후로는 숫제 콤메디아델라르테를 소재로 삼거나 오페라 중에 콤메디아델라르테를 공연하는 작품도 없지 않아 서로 다른 두 장르의 연관성을 또 다른 면에서 다시 들여다 보게 됩니다.
모차르트의 오페라 “보석함”과 레온카발로의 오페라 “팔리아치”는 콤메디아델라르테를 공연하는 유랑극단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베를리오즈의 오페라 “벤베누토 첼리니”와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오페라 “낙소스 섬의 아리아드네”는 오페라 가운데 콤메디아델라르테의 공연이 펼쳐지는 경우입니다. 오페라는 아니지만 스트라빈스키의 발레 “풀치넬라”는 콤메디아델라르테를 발레로 고스란히 옮겨놓은 작품입니다.
레온카발로의 “팔리아치”는 마스카니의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와 더불어 이탈리아 “베리스모 오페라”의 대표작으로 꼽히고 있으며 두 작품 모두 길이가 짧아 하루 저녁에 함께 공연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베리스모 오페라”는 사실주의에 가까운 오페라로 기존의 오페라가 대부분 사람들의 고달픈 일상과는 동떨어진 이야기들을 다루고 있어 이를 벗어나 현실을 있는 그대로 다루고자 했던 19세기말 이탈리아 오페라의 새로운 흐름입니다.
“팔리아치(Pagliacci)”는 광대를 뜻하는 팔리아초(Pagliacco)의 복수형으로 콤메디아델라르테를 공연하는 유랑극단의 배우들을 일컫는 말입니다. 이야기는 어느 유랑극단에서 벌어진 치정살인으로 작곡가에 따르면 어린 시절 아버지에게서 들었던 실화라고 합니다. 곱사등이 토니오는 유랑극단의 단원으로 단장인 카니오의 아내 넷다를 짝사랑하여 덤벼들지만 상처를 입고 모욕을 당합니다. 공연하러 들른 마을의 청년 실비오와 밀회하는 넷다를 본 토니오는 카니오를 데려와 그 현장을 목격시키고 실비오를 놓친 카니오는 이성을 잃고 죽일 듯이 넷다를 다그치지만 공연 시간이 코앞이라 물러서고 맙니다. 광대의 옷을 입고 얼굴에 분칠을 하며 공연 준비를 하던 카니오는 그 상황에도 무대에 나가 사람들을 웃겨야 하는 자신의 처지가 너무나 서글퍼 목놓아 절규를 합니다. 이 때 부르는 카니오의 아리아가 그 유명한 “의상을 입어라” 입니다. 이제 막 축음기가 발명되어 음반이 나오기 시작했을 무렵 전설의 테너 카루소가 녹음하여 처음으로 백만장을 넘기는 판매 기록을 세웠던 곡이기도 합니다.
“...의상을 입어라. 그리고 얼굴에 분칠을 해라. 관객은 돈을 내고 왔으니 웃고 싶어한다. 알레키노가 콜롬비나를 빼앗아 가더라도, 웃어라. 광대여! 슬픔과 고통을 감추고...”
이 무슨 운명의 장난인지 연극의 이야기는 현실과 전혀 다르지 않습니다. 극중에서도 카니오와 넷다는 부부로 나오고 콜롬비나로 분한 넷다는 남편 팔리아초가 집을 비운 사이 광대 아를레키노를 불러들여 밀회를 즐기지만 하인 타데오로 나오는 토니오의 고자질로 들키고 맙니다. 아내를 추궁하던 팔리아초, 아니 카니오는 몰입한 나머지 현실과 극을 혼동하고 마침내 넷다를 칼로 찌릅니다. 객석에서 이를 지켜보던 실비오가 무대로 뛰어들자 그마저 칼로 찌르고 관객들을 향해 외칩니다.
“연극(희극)은 끝났습니다!
La commedia e finita!”
사실인지 아닌지 정확하게 밝혀지지 않았지만 베토벤은 죽음이 눈앞에 이르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연극(Comedia)이 끝났으니 친구들이여 박수를 쳐라!"고 외쳤다고 합니다. 운명에 맞서 자유와 불멸을 얻고자 그토록 치열한 삶을 살았던 그조차도 말입니다.
"온 세상이 한갓 무대일 지니, 모든 남녀는 한낱 배우일 따름이다.
(All the world's a stage, and all the men and women merely players.)"
셰익스피어의 희곡 '뜻대로 하세요(As you like it)'에 나오는 대사입니다.
도리스 데이의 노래 "케 세라 세라(Que sera sera)"의 후렴을 되뇌입니다.
“Que sera, sera! Whatever will be, will be! The future's not ours to see! Que sera, sera!"
그렇습니다. 누구라서 미래를 알겠습니까. 때가 되면 어차피 알게 될 일입니다. 그러니 지금은 당장 나에게 주어진 역할에 최선을 다하며 기다릴 뿐입니다. 그게 바로 너나없는 우리네 인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