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승찬 교수의 클래식 이야기]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공연장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공연장
바르셀로나라면 가우디를 가장 먼저 떠올리게 됩니다. 바르셀로나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성가족 성당)조차도 가우디 성당이라 불릴 정도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구엘 공원과 카사 밀라 등 이 아름다운 도시를 대표할 만한 건축물 대부분이 가우디의 작품인 데다가 거리를 밝히는 가로등에까지 그의 손길이 닿아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날 “가우디 투어”는 바로셀로나를 대표하는 관광 상품이 되었고 바르셀로나는 20세기 건축의 성지로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출처 : http://www.aerobusbcn.com/blog/en/only-happens-in-barcelona/barcelona-of-gaudi-a-museum-right-at-your-door/
그러나 조금 더 자세히 이 도시를 들여다 보면 건축의 성지라는 바르셀로나의 위상이 가우디 한 사람의 업적만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가우디와 같은 시대를 살았던 위대한 건축가들이 앞다투어 바르셀로나 곳곳에 기념비적인 건축물을 남겼고 그것들 또한 이 도시의 자랑이자 인류의 유산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그리고 그 가운데 가장 대표적 건축물이라면 무엇보다 먼저 도메네크 이 몬타네르가 설계한 산트 파우 병원과 카탈라냐 음악당을 꼽아야 할 것입니다.
출처 : https://www.palaumusica.cat/en/all-guided-tours_531011
루이스 도메네크 이 몬타네르 Lluis Domenech i Montaner(1850.12.21.~1923.12.27)는 스페인 카탈루냐 지방 고유의 건축기법과 아르누보 양식을 결합한 새로운 건축양식으로 바르셀로나의 르네상스를 이끌어간 인물입니다. 바르셀로나에서 태어난 그는 물리학과 자연과학을 공부하다 건축학으로 전공을 바꾸었습니다. 건축과 교수로 재직하며 설계는 물론 건축에 관한 에세이와 논문을 학술지와 신문에 발표하여 카탈루냐의 독자적인 건축법을 널리 알리고 인정받도록 힘썼습니다. 카탈루냐 민족의 건축을 소개하고 정의한 몬타네르의 글 “En busca d'una architectura nacional 민족적 건축의 연구"가 1878년 학술지 “La renaixenca”의 표지를 장식하면서 카탈루냐의 건축은 세계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고 안토니 가우디에 이르러 확고한 위상을 구축하게 됩니다.
출처 : https://es.wikipedia.org/wiki/La_Renaixensa
산트 파우 병원과 함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된 카탈라냐 음악당은 아마도 이 지구상에 지어진 모든 연주회장을 통털어 가장 아름다운 공연장이 아닌가 싶습니다. 음악궁전(Palace of Catalan Music)이란 원래의 이름이 무척이나 어울린다 싶을 만큼 너무나 화려하여 찬란하기까지 합니다. 벽면과 천장은 형형색색의 타일과 유리로 이어져 있고 기둥마다 다채로운 인물들의 조각상이 둘러있는가 하면 내부 곳곳은 꽃모양, 특히 장미 문양의 장식으로 꾸며져 있는데 이는 장미꽃이 예로부터 바로셀로나의 상징이기 때문입니다. 그물 모양의 철골 구조를 사용함으로써 열린 공간이라는 새로운 건축 개념을 실현하였고 유리, 대리석, 깨진 타일 조각을 붙이는 카탈루냐 모자이크 기법을 써서 천장과 창문을 만들어 사라져 가는 옛 전통에 생명을 불어넣었습니다.
이처럼 바르셀로나 음악당은 과거와 현재, 지역과 세계, 건축과 음악이라는 서로 다른 가치와 영역을 하나로 결합하는 기적을 이루어냄으로써 오늘날까지도 사람들로 하여금 찬탄을 자아내고 있습니다. 그러나 더욱 놀라운 것은 이 음악당이 카탈루냐의 합창단, 그것도 아마추어 합창단을 위해 지어졌다는 사실이고 더욱 더 감동적인 사실은 이 음악당을 세워 문을 열기까지 수 많은 예술가들의 수고와 땀은 물론 지역 주민 한 사람 한 사람의 뜻과 정성이 이 한 곳으로 오롯이 모였다는 것입니다.
출처 : https://barcelona.ticketbar.eu/en/attractions/palau-de-la-musica-catalana-/
그 결과 건축에 들어간 막대한 비용 가운데 부족한 부분을 바르셀로나 시민과 카탈루냐 주민들의 모금으로 충당할 수 있었고 카탈루냐를 대표하는 당대의 예술가와 장인이 모두 한자리에 모여 맡은 바 각자의 분야에서 그들의 재능을 마음껏 펼칠 수 있었습니다. 조각가로는 파우 가르갈로(Pau Gargallo)와 프란세스크 모도렐(Francesc Modollel), 미겔 블라이(Miguel Blay), 유세비 아라나우(Eusebi Aranau)가 참여했고 모자이크 예술가 루이스 브루(Lluis Bru)와 프란세스크 라바르타(Francesc Labarta), 마리오 마라지나오(Mario Maragilano)가 동참했으며 화가인 미겔 마소트(Miguel Massot)와 스테인드글라스 예술가 제로니 그라넬(Jeroni Granell)도 함께 했습니다. 이렇듯 카탈루냐 사람들 모두의 염원과 노고가 하나로 모아져 이루어진 일이기에 음악당 외벽 모서리에는 바르셀로나의 수호성인 산 조르디와 다양한 모습의 여러 사람들이 함께 조각되어 있는데 그것은 이곳이 지위의 고하와 빈부의 차이를 넘어 모든 카탈루냐인들을 위한 곳임을 나타내는 상징이라고 합니다.
카탈라냐 음악당은 오르페오 카탈라(Orfeo Catalá) 합창단을 위해 건립되었습니다. 이 합창단은 1888년의 바르셀로나 만국 박람회(Barcelona Universal Exhibition)를 즈음하여 활동을 시작하였고 카탈루냐의 민요와 전통음악을 연주함으로써 카탈루냐 민족의 정체성과 그들 문화의 독자적 가치를 널리 알리는 일에 모든 힘을 쏟았습니다. 그런 노력의 결실로 이 합창단은 영국과 독일을 비롯한 유럽의 여러 나라에서 그 시대에 맞는 가장 바람직한 합창단의 모범으로 인정받게 됩니다. 1891년에 공식 창단하여 10년이 넘도록 둥지를 틀지 못해 바르셀로나의 여기저기를 옮겨 다니던 중, 1904년 10월에 칼레 데 상 페레 메스 알토(Calle de Sant Pere Més Alto)에 부지를 구해서 건축가 도메네크 이 몬타네르에게 공연장의 설계를 맡겼습니다. 1905년에 공사를 시작하여 3년이 걸려 완공하였고 그해 바르셀로나 시는 이 공연장을 ‘올해의 최고 건물’로 선정하였습니다.
이런 까닭에 음악당 곳곳에서 합창단을 배려한 의도를 찾을 수 있습니다. 2층 콘서트홀 밖의 로비는 루이스 밀레트 홀이라 불리는데 지휘자 밀레트는 작곡가 아마데오 비베스와 함께 오르페오 카탈라 합창단을 창단하여 이끌었으며 숫제 이곳 음악당에서 살다시피 했다고 합니다. 콘서트홀 정면 왼쪽 기둥에는 카탈루냐 민요를 부활시킨 합창 지휘자 안셀름 클라베 Anselm Clave의 흉상이 있고 그 아래에 있는 소녀들의 조각상은 카탈루냐 민요 “오월의 꽃”을 노래하는 모습입니다, 오른쪽 기둥에는 바그너의 연작 오페라 “반지” 가운데 ‘발퀴레’에서 보탄의 전령 발퀴레들이 말을 타고 노래하고 있는 장면이 조각되어 있고 그 밑으로는 베토벤의 흉상이 있는데 그것은 아마도 그가 9번 교향곡 “합창”의 '환희의 송가'를 작곡하여 인류의 공존과 평화를 외쳤기 때문일 것입니다. 스테인드 글라스로 만들어진 돔 형태의 콘서트홀 천정은 중앙의 문양이 태양을 상징하고 있고 주변의 푸른빛은 하늘을 나타내고 있으며 그 바깥으로 여성 합창단원들의 얼굴이 둘러싸고 있습니다.
출처 : https://www.aspasios.com/blog/p4114/
바르셀로나 시민들 뿐만 아니라 카탈루냐 사람들이 자랑으로 삼는 건축물이라면 리세우 오페라 극장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1847년, 도니제티의 오페라 “안나 볼레나” 공연으로 문을 연 리세우 극장은 4000석의 객석을 가진 당시 유럽 최대 규모의 오페라 극장이었습니다. 두 차례의 화재와 정치적인 박해, 경영상의 난관까지 잘 견디며 버텨왔지만 1994년 1월 31일에 일어난 화재로 건물의 외벽과 사교클럽을 제외한 모든 공간이 몽땅 재로 변해버렸습니다. 이참에 기존의 비좁은 입지를 벗어나 교외의 넓은 부지에 새로운 극장을 짓자는 주장도 있었지만 원래의 자리에 이전의 형태 그대로 복원하자는 의견이 우세하여 5년의 공사 끝에 1999년 마침내 옛 모습 그대로 다시 문을 열었습니다. 이처럼 원래의 모습을 그대로 보존하겠다는 마음가짐과 그것을 실천에 옮겼다는 것도 충분히 긍지와 보람으로 삼을 만한 일입니다. 그러나 카탈루냐 사람들과 바르셀로나 시민들에게 이 극장이 보다 중요하고 특별한 의미를 갖는 것은 이 극장까지도 카탈루냐 음악당과 마찬가지로 그들 스스로 성금을 모아 완공했다는 사실입니다.
그렇습니다. 아름답기에 가슴이 뭉클한 세상의 모든 일들은 우리 모두가 서로를 품고자 하는 따뜻한 마음이 하나로 모아질 때 이루어집니다. 혼자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것이고 행여 하는가 싶어도 결코 오래가지 못합니다. 합창이 그렇고 음악이 그렇고 모든 예술이 다르지 않습니다. 건물이 그렇고 도시가 그렇고 나라가 또한 그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