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승찬 교수의 클래식 음악 이야기] 오페라로 보는 러시아의 역사(2018 러시아 월드컵 16강 화이팅!)
안녕하세요.
러시아 월드컵이 한창입니다.
이제 16강의 주인공도 모두 정해졌는데요...
아직 희망이 남아있는 만큼 대한민국과 독일전에서 한국을 열심히 응원해보려 합니다.
러시아 월드컵이 한창인 만큼 러시아와 오페라에 대해 한번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출처 : 네이버
오페라의 대본은 늘 이미 세상에 있는 어떤 이야기를 바탕으로 만들어지기 마련입니다. 신화나 전설, 혹은 역사적인 사건을 가져다가 직접 대본으로 꾸미기도 하지만 누군가가 쓴 소설이나 희곡과 같은 문학작품을 각색하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그래서 세익스피어와 괴테, 쉴러와 위고와 같은 대문호들의 작품을 오페라로도 만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페라 역사를 통털어 가장 많은 작품이 대본으로 선택된 문학가는 누구일까요? 뜻밖에도 러시아의 문호 푸시킨이 그 주인공입니다. 무려 16 작품이나 오페라로 만들어져 오늘날까지 무대에 오르고 있습니다. 이 정도라면 우리가 알만한 러시아 오페라들 가운데 절반을 훨씬 넘는 숫자이니 푸시킨을 빼고 러시아 오페라를 이야기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페라를 좋아한다는 분들까지도 그 사실을 잘 모르는 것은 러시아 밖에서 러시아 오페라가 공연되는 일이 많지 않은 까닭도 있지만 그 만큼 우리가 러시아의 문화, 러시아의 역사에 관심이 크지 않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알렉산드르 세르게예비치 푸시킨
출처 : https://bit.ly/1QwcwSf
일단 푸시킨의 작품으로 만든 오페라의 제목을 연대순으로 나열해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가장 먼저 글린카가 작곡한 “루슬란과 루드밀라(1842)”가 있고 다르고미쥐스키의 “루살카(1848)”와 무소르그스키의 “보리스 고두노프(1869)”가 그 다음입니다. 다르고미쥐스키가 다시 “석상 방문객(1869)”을 시작했으나 끝내지 못했고 “카프카즈의 포로(1874)”를 작곡한 퀴가 그 나머지를 완성합니다. 퀴는 이후 “흑사병 시대의 축제(1901)”와 “대위의 딸(1911)”을 작곡하였고 차이코프스키는 “예브게니 오네긴(1878)”과 “마제파(1883)”, “스페이드의 여왕(1890)”을 오페라로 만들었으며 나프라브니크는 “두브로브스키(1894)”를 작곡했습니다. 림스키 코르사코프가 “모차르트와 살리에리(1897)”와 “술탄 황제의 이야기(1900)”에 이어 “황금닭(1908)”을 내놓는 사이에 라흐마니노프가 “인색한 기사(1904)‘를 작곡했고 마지막으로 스트라빈스키가 푸시킨의 ”콜롬나의 작은 집“을 각색한 ”마브라(1922)“를 작곡했습니다.
이들 가운데 “보리스 고두노프”와 “마제파”는 역사적 인물을 다룬 작품입니다. 러시아 오페라가 다른 나라 오페라와 다른 또 하나의 특징이라면 역사적 사실과 인물을 다룬 오페라가 많다는 점입니다. 대표적인 작품이라면 보로딘의 “이고리 공”과 글린카의 “이반 수사닌”, 무소르그스키의 “보리스 고두노프”와 “호반시치나”, 그리고 차이코프스키의 “마제파”를 들 수 있습니다.
출처 : http://cbscc.co.kr/
오페라 “이고리 공”은 이고리 공(公)의 유목민 정벌과 활약상을 소재로 한 러시아의 중세 서사시 “이고리 원정기”를 바탕으로 만든 작품으로서 대본은 보로딘이 직접 썼습니다. 보로딘은 1869년 여름에 작곡을 시작했으나 1875년에야 겨우 발레음악 ‘폴로베츠 사람들의 춤 PolovtsianDances’을 완성하였습니다. 보로딘은 이 작품을 끝맺지 못했고 림스키 코르사코프와 글라주노프가 나머지를 완성하였습니다. 프롤로그와 4막으로 이루어진 이 작품은 1890년 11월 4일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마린스키극장에서 초연되었습니다. 20세기 초 파리에서 디아길레프의 러시아 발레단이 ‘폴로베츠 사람들의 춤’을 따로 발레 작품으로 만들어 공연하면서 크게 인기를 끌었습니다.
보리스 고두노프는 1552년 뱌젬 지역의 지주 표도르 이바노비치 고두노프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총명했던 보리스는 이반 4세의 총애를 받으면서 권력의 중심에 서게 되었고 1598년 매제인 표도르 1세가 죽자 황제가 되어 1605년까지 러시아를 다스렸습니다. 당시를 기록한 러시아의 사학자 카람신의 연구서를 읽은 푸시킨은 셰익스피어의 다른 작품들을 참고하여 희곡 “보리스 고두노프”를 완성하였습니다. 그러나 차르 니콜라이 1세의 금지령으로 이 작품은 푸시킨이 세상을 떠나고 30여 년이 지난 후에야 무대에 오를 수 있었고 1869년, 무소르그스키의 손을 거쳐 오페라로 탄생했습니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원작에 충실하여 무미건조할 수 밖에 없었던 이 작품을 상트페테르부르크 오페라 극장이 거부하자 어쩔 수 없이 드미트리와 마리나의 연애 이야기가 3막에 들어가게 됩니다. 이 오페라에서는 주인공 보리스 고두노프가 최후를 예감하며 홀로 고뇌를 되뇌이는 독백 장면이 압권입니다.
출처 : http://m.blog.daum.net/johnkchung/6826804
글린카가 1836년에 작곡한 “이반 수사닌”은 러시아어 대본으로 만든 최초의 오페라입니다. 실존 인물인 이반 수사닌은 1613년 미하일 1세가 황제로 즉위하여 로마노프 왕조를 열 수 있게 만든 영웅입니다. 그는 폴란드가 침공해왔을 때, 폴란드 군대를 숲 속으로 유인해 불을 질러 참패시켰지만 그 자신은 그 때문에 죽음을 당했습니다. 오늘날 그의 기념상이 있는 코스트로마는 러시아인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명소입니다. “이반 수사닌”의 발췌곡은 오케스트라 음악회에서 자주 연주되고 있고 그 가운데 폴란드군 사령관이 주최하는 무도회에서 나오는 폴로네이즈와 왈츠, 마주르카가 유명합니다.
출처 : https://bit.ly/2K8TS8y
“호반시치나”는 표트르 대제의 통치시대를 배경으로 호반스키의 반란과 진압을 다루고 있습니다. 젊은 차르 알렉세예비치 표도르(Alekseevich Fyodor)가 세상을 떠나자 동생 이반(Ivan)과 이복동생 페테르(Peter)가 함께 권좌를 나누지만 섭정으로 나선 표도르 대제의 누이 소피아(Sophia)가 실질적인 권력을 가지게 됩니다, 벼량 끝에 내몰린 페테르는 절치부심 끝에 소피아와의 권력 투쟁에서 승리하여 단독으로 제위에 오르니 그가 바로 러시아의 근대화를 이룩한 표트르 대제입니다. 그러나 소피아 공주를 비롯한 적대 세력들은 끊임없이 이합집산을 거듭하며 반전의 기회를 노립니다. 마침내 호반스키(Khovansky) 공을 따르는 모스크바 수비대 스트렐치(Streltsi)가 반란을 일으켰으나 반격에 나선 표트르의 군대에 진압되고 표토르의 교회개혁에 맞섰던 구교회의 지도자와 추종자들은 스스로 목숨을 끊는 순교를 선택합니다.
“마제파” 역시 표트르 대제 시대의 이야기입니다. 코사크 족이었던 마제파는 일찍이 폴란드와 네덜란드에서 교육을 받고 서유럽을 여행하면서 견문과 식견을 넓혔으며 우크라이나의 지도자가 된 다음에는 곳곳에 교회와 학교를 짓고 학문과 예술, 출판을 장려하였습니다. 폴란드와 스웨덴의 연합군이 우크라이나로 쳐들어오자 마제파는 러시아가 나서서 도와주리라 믿었지만 표트르의 군대는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1654년, 페레야슬라브 조약을 맺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서로를 지키고 보호해야 할 의무가 있었음에도 러시아가 신의를 저버린 것입니다. 중과부적의 처지라 그는 어쩔 수 없이 침략자들과 동맹을 맺었지만 뒤늦게 스웨덴과 전쟁을 벌여 승리를 거둔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에 대한 보복으로 코사크족들을 무차별 처형하였고 십자가에 묶은 시체를 드네프르 강에 흘려보냅니다. 쫓기던 마제파는 결국 비참한 최후를 맞이합니다.
출처 : http://www.hottracks.co.kr/ht/record/detail/0809478009894
“호반시치나”와 “마제파”는 모두 러시아 역사에 있어 가장 역동적이며 찬란했다고 하는 표트르 대제의 통치 시대를 배경으로 한 작품입니다. 그런데 묘하게도 두 작품은 모두 그 시대의 밝은 부분이 아니라 어두운 면면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말하자면 승자의 역사가 아니라 패자의 역사입니다. 그렇습니다. 빛이 밝을수록 그늘은 더욱 캄캄할 수밖에 없습니다. 누군가의 눈부신 성취와 업적 뒤에는 반드시 다른 누군가의 슬픔과 아픔이 있기 마련입니다. 좋은 일일수록 대가가 크고 희생을 치르지 않고는 아무 것도 이룰 수가 없습니다. 때로는 그 대가와 희생이 부당하고 가혹할 수도 있고 그래서 더욱 불편한 진실일 수 있습니다. 그래도 우리가 역사에서 얻을 수 있는 가장 큰 교훈은 바로 그 불편한 진실에 있는지도 모릅니다. 청마 유치환 선생은 그의 시에서 “운명은 피할 수 없음이 아니라 피할 수 있음에도 피하지 않음이 운명”이라고 했습니다. 오늘도 나의 운명을 마주합니다. 감추어진 우리의 아픈 역사를 돌아봅니다. 거기서부터 우리 모두 다 함께 앞으로 나아갈 길을 찾아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