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고전, 인간을 말하다]자유를 꿈꾸는 고독한 속물, 베토벤-2부-[서양고전, 인간을 말하다]자유를 꿈꾸는 고독한 속물, 베토벤-2부-

Posted at 2013.05.18 00:00 | Posted in 직장인 톡톡/심심타파!

자유를 꿈꾸는 고독한 속물 베토벤의 두번째 주제는 

 

자유

-평등한 세상이 올 것이다.-


왠지 베토벤과는 잘 어울리지 않는 주제처럼 들리기도 합니다.


천재와 자유, 왠지 자유란 천재들에게 허락된 영역처럼


여겨저서 그런지, 고개를 갸웃거리게 됩니다.


그거 아십니까? 베토벤의 곡은...

 모든 곡이 환희 승리


그의 인생은 몇가지로 요약을 해볼수 있습니다.

혈육에 대한 끔찍한 책임감

동생에 대한 끔찍한 사랑

동생의 죽음과 동생의 유언으로 동생가족에 대한 부탁을 받은 베토벤


그의 책임감과 의지를 엿볼수 있는 사건이 있습니다.


자유분방하고 조금은 심하게 사교성(?)이 좋은 재수씨로부터

5년의 송사를 통해 조카를 빼앗아옴니다.

조카를 재수로부터 철저하게 분리를 시킴니다.

외로운 조카는 자살을 시도하며 불안한 시절을 보내게 됩니다.


천재 베토벤에게도 이러한 가정사가 있었다는거


베토벤..왠지 평생 음악만 하다 한 평생을 마감한거 같지만...


아니죠? 왠지 이러한 면으로 조금은 친근감이 생기지 않나요?

베토벤의 32곡 피아노소나타는  신약선서와 같다고 합니다.

피아노 입학시험에서 베토벤의 피아노 곡은 반드시 들어가며

음악의 구성을 배움에 있어서 필수적이라고 합니다.


그럼 '구약성서'는 무엇일까요? 

'바하의 피아노소나타' 


참고로 알아두시기 바랍니다.

32곡의 마지막 바로 ‘운명’

아무것도 듣지 못하고 건강은 잃어가고

조카는 망나니...그 속에서 만들어낸...음악

피아니스트 김성훈씨 성신여대 교수

32번 1악장을 연주함

중간중간 청중들을 위한 위트있는 유머와

연주자와의 추억을 통해 청중들에게 연주자의

인간미를 느끼며 연주에 더욱 집중하게 해주었던 강연능력은 인상적이었습니다.

쉽게 할 일도 항상 어렵게...

연주자들의 고집에 영광이고 기쁨....


쉴러의 환희의 송가 - 자유를 은유적으로 표현한 것이라고 합니다.


프로이텐 오 프로이텐


프라이하이트 오~자유여


그 시절 이런한 단어를 사용했을때


잡히거나 출판금지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을때 베트벤 9인 심포니 연주시


프라이하이트로 바꾸어 부를 정도로 의미가 많은 곡이라고 합니다.




베토벤 그는,


이것을 30세부터...이것을 꿈꾸게 됩니다.


왜??천재가??


점심시절 본 대학의 청강생으로 계몽사상에 심취하였다고 합니다.


사람이 너무 원하는 일은 당장할 수 없습니다.


평생을 기다리고 참다 마지막 순간에나 가능하게 되는것,


그것이 인생이라는 것.


나폴레옹에게 자신의 이상실현에 기대를 했습니다.


그래서 3번 영웅을 최대의 작품으로 꼽았을 정도입니다.





나폴레옹을 말미암에 세상의 평등과 자유가 실현되기를 바랬던 것이죠.


나는 죽지만 이후의 삶은 그것이 실현이 될 것이다.


아픈 와중에도 그것을 완성하게 되는 힘이 되었다고 합니다.


초연은 베를린에서 열리게 되는데요.


당시에는 로시네 오페라가 유명하였는데요. 그 공연인 빈에서 열려


 공연포기하고 베를린에서 공연을 하게 되었던 것이죠.


일설에 따르면


들리지도 않는데도 지휘를 했다고 하죠?..불가능하다고 합니다.


지휘자가 따로 있었고. 초연시 공연장에 참석했다고 합니다.


그정도로 열정적이고 의지, 희망, 기대, 이상.


그것이 그를 감싸고 있었다고 합니다.


여기서 잠시 교수님의 곡 설명이 있겠습니다.


1악장 시작은 천천히


2악장 느림에 있어서 바꾸어 빠르게


3악장에 느림.


3장까지는 프롤로그라고 보셔도 됩니다.


4악장에 하이라이트.


가사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가혹했던 현실에 갈라놓았던 자들이여

신비로운 그대 자유

그 모든인간이...

그대의 부드러운 날개가...자유

자유는 꼭 반드시 꼭꼭 씹어서 소화시켜라

꿀꺽 삼키지 말아라

자유에 대한 목마름


영화의 한 장면...합창~~


너무나도 유명하죠.^^


여기서 잠시 자유에 대한 보충설명이 있었습니다.

 

그리스인 조르바의 작가


'카찬차키스'묘비에 적힌글,


나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나는 아무것도 두렵지 않다.

나는 자유다.

.

.

.

우리가 바라는 것이 있어서 두려운것이다.


바라는 것이 없다면 두려울 것이 없다.


모든 것에는 대가가 따른다.


그것이 고독...


자유로우나 고독한 속물...


끊임없이 이 땅에 없는 것을 갈구하고 쫒아갔던


토벤 음악...


예술이 사회에 줄수 있는 선물


교수님의 자유에 대한 보충설명도 이어집니다.


비틀즈...준레논...폴 메카트니

존레논...바보...바보라 좋다...철없음...

죽을때까지...자유...

음악~~ 이것이 자유다.


그리고 순수한 자유를 꿈꾸던 추억을 이야기해 주셨습니다.


강남역 2번출구...연주...구설수에 오른... 


70억짜리 악기에 관련된 이야기였습니다.

  악기상에게 빌린 악기로 연주를 하였고


만육천구백원을 벌었으며...


빵사먹고 헤어지려 했던 계획은 취소하고 간직하기로 했다던...

  

돈봉투의 돈 간직하면서...


서로 그 돈의 안부를 물어보며...


좋은 추억...철없는 연주자...를 회상한다고 하셨습니다.


베토벤의 바이올린 소나타 10곡...


베토벤이 마지막 다양한 악기를 다루는 작곡가...

그가 베토벤입니다.


그 이후 피아노가 대세가 되면서...피아노 곡만 작곡이 되게 됩니다.


피아노9번 크로이쳐 소나타...


당시 연주불능...왜??


너무 어려우니까!!


톨스토이 자기가 아는 가장 야한곡이다...라고 했다고 합니다.



다른악기간의 격렬한 싸움이 , 


격렬한 사랑행위처럼 느껴졌다고 하네요.


그렇게 느껴지시나요?^^


운명,자유


자유로운 사람은 스스로 모든 것을 다 해야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외로운 것이다...


자유로움은 고독을 수반한다는 이야기죠...


고독한 속물, 베토벤이 이번 글로 여러분에게 어떻게 다가갔는지 궁굼하네요.


자유를 위해 속물이 되어야 했고, 그래서 외로웠던...


베토벤...to be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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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고전, 인간을 말하다]자유를 꿈꾸는 고독한 속물, 베토벤[서양고전, 인간을 말하다]자유를 꿈꾸는 고독한 속물, 베토벤

Posted at 2013.05.08 09:50 | Posted in 직장인 톡톡/Smart 직장인


자유를 꿈꾸는 고독한 속물, 베토벤


서양고전, 인간을 말하다 3주차 강의는...


베토벤이었습니다.


타이틀은 자유를 꿈꾸는 고독한 속물,


베토벤





우리가 알고 있는 베토벤의 이미지는 아니지요?


저 역시도 그랬습니다.


베토벤하면 음악의 천재이지, 


속물...왠지 세속의 우리에게나 어울릴거 같은 표현...


강연자이신 홍승찬교수님(한국예술종합대학교 교수)의 의도가


잘 들어난 강연제목이 아닌가...싶습니다.


천재라 불리워진 베토벤의 생애를 음악이 아닌


인간으로써의 베토벤에 대한 이야기...


그 이야기를 잠시 여러분과 공유하고자 합니다.


강연은 종전의 서양고전 강연과 조금은 다른 방식이었습니다.


멋진 강연과 바이올린 소나타와 피아노 소나타가 들어있는...


좋은 음악회 한편을 멋지고 재밌고 감동이 있는 


설명을 들은 느낌이었습니다.




강연의 주요포인트를 짚어 드릴께요.


서두에 '피아니스트 김선욱'과의 베토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 것으로 


강연의 시작을 하셨습니다.


피아니스트 김선욱씨에게 교수님이 물어봤다고 합니다.


"소나타32곡중 어느것이 최고인가...?"


그의 대답은...오히려 "선생님은요?"


그 답을 찾을수 없다.


인생 역시 그러하다.


답을 찾을수 없다.


속물적인 베토벤...


열심히 산 흔적


그것이 바로 그의 음악인 것..


모든 곡이 최고의 작품이 된...


그 노력과 혼신의 힘...


그것은 베토벤의 인생의 고민에서 나온 것이다.


베토벤은 칸트와 헤겔과 같은 인물이다.


'바그너'는 이런 말을 했다고 합니다.


"업으로 음악을 하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베토벤이후에 교향곡은 쓸데없는 짓이다."


베토벤은 오페라를 만들지 못했다고 합니다.


왜 일까요??


그것은 강연을 통해 천천히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파트1


'운     명'


파트1의 제목은 '운명'


반 베토벤의 태생은


출생...반 베토벤...네달란드 태생으로


할아버지가 머리가 좋았다고 합니다.


포도주를 팔아서 부수입을 취할 정도로 여러가지고 


머리가 좋았다고 합니다.


시장의 흐름을 읽을줄 알았던 할아버지였죠.


할머니가 그것을 홀짝홀짝~~


할머니의 홀짝홀짝은 어떤 결과를 나았을까요?


음악의 흐름을 알고 독일로 이주하기로 합니다.


베토벤의 아버지...


아버지와는 반대로 알코홀릭에 무능한 사람이었습니다.


아마도 어머님의 영향은 아닐지...^^


아들의 재능을 알아본 베토벤의 아버지는


4세때부터 스파르타 음악교육 실시합니다.


아버지는 참 모진 아버지였습니다.


사기꾼, 베토벤을 음악 앵벌이를 시킬 정도였다고 하니...


그러한 힘든 시간이 베토벤에게 있어서 큰 원동력이 되는데요.


여기서 잠시 원동력에 대해서 언급을 하고 넘어 갈까요?


- 원 동 력 - 


그들의 재능과 열등감 원죄 낙인


'누구처럼 되야겠다' VS '누구처럼 되지 말아야겠다.'

 

과연 어느 것이 인간에게 더 큰 원동력을 제공할 것인가?


강연자 홍승찬교수님의 생각은 바로~~


'네가티브적 인간이 성공한다.'


인간은 자신의 컴플렉스를 극복하기 위한 인생을 사는 것은 아닐까...


저는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베토벤의 어머님은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요?


어머니는 바로 정신적 지주였습니다.


 그런 어머님의 급작스런 죽음으로 다시 한번 


베토벤의 인생의 무게감이 더해지게 됩니다.


바로...


모차르트 수하에서 공부를 할수 있는 기회를 놓게 됩니다.


어머님 사망후 소년가장의 역할을 해야하는 상황으로 내몰리게 됩니다. 


30대후반에 유서를 작성하고 죽으려고도 했습니다. 


역경과 콤플렉스...


출생이후 죽음까지 미친짓의 연속이었습니다.


그 대표적인 예 ‘운명’


C단조로 8개의 음으로 끝까지...


이리저리 돌려서 만든 음악..대단한 의지


실제 음악회에서는 듣기가 어렵다고 합니다.


왜??어렵다...??그리고 너무 유명하다..


그래서 조금만 실수하면 다 보인다.


심지어 초등학생에게마저도...


이러한 유머스런 이야기로 지루하지 않은 


베토벤 강연은 진행되었습니다.


어찌보면 '운명'은 작곡가의 입장에서는


경제적인 음악이 될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저런 음악을 왜 다른 작곡가는 못하는가?


베토벤에게 운명은 이러하다..


무언가 불길하다...늘 불길하다.


운명의 가혹함을 그 환경속에서도 희망을 찾는 메시지


끝내 승리를 거두리라~~


예전에 박세리 선수가 양말을 벗고 헤저드에서 그린위로 샷을 올리는


이미지와 묘하게 오버랩이 되지 않습니까??^^


(저는 그렇더라구요)




'운명'은 이렇게 탄생하게 된 것입니다.


단순한 음악적 영감으로 얻어진 그리고 완성된 음악이 아니라


베토벤의 인생이 고스란히 녹아들어가고 투영된 음악


그것이 '운명'인 것입니다.


전 앞으로 '베토벤의 운명'이 쉬이 들리지 않을거 같다...라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한 인간의 고뇌와 인생이 들어있는 음악...


좀 더 집중해서 그리고 진하게 듣게되고


더 깊고 넓은 감동을 느낄수 있겠구나...


왠지 제가 클래식에 한발 더 다가선 느낌이었습니다.


그럼 한번 운명을 들어보시면서 1부에 대한 글을 마칠까 합니다.





남은 2,3,4부도 기대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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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승찬 교수의 재미있는 클래식음악 이야기] 위기에서 빛을 발한 하이든의 유머 / 위기에 여유와 유머로 갈등을 극복하고 마음의 평정 찾는 법[홍승찬 교수의 재미있는 클래식음악 이야기] 위기에서 빛을 발한 하이든의 유머 / 위기에 여유와 유머로 갈등을 극복하고 마음의 평정 찾는 법

Posted at 2012.04.06 07:30 | Posted in 이건음악회 Talk Talk/홍승찬교수의 클래식 톡톡

 

 

 

홍승찬 교수의 클래식 음악(9)
위기에서 빛을 발한 하이든의 유머

 

 


 

2009년은 작곡가 요제프 하이든이 세상을 떠난 지 200년이 되는 해였습니다. 그래서 지구촌 곳곳에서 이를 기념하는 음악회가 열렸는데, 그 가운데 가장 먼저 사람들의 관심을 끈 연주회가 바로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신년 음악회였습니다. 해마다 요한 시트라우스의 왈츠나 폴카를 중심으로 무대를 꾸몄지만 2009년은 아무래도 하이든의 서거 200주년을 그냥 지나칠 수 없었나봅니다.

 

작곡가 요제프 하이든

 

다니엘 바렌보임이 지휘봉을 잡은 이번 연주회에서 빈 필은 고별이라는 이름으로 널리 알려진 하이든의 교향곡 454악장을 연주했는데, 이 곡의 배경을 모르고 연주실황을 보신 분이 있다면 아마도 어리둥절했을 거라 생각이 듭니다. 빠른 악장이 느려지면서 오케스트라 단원들이 하나 둘씩 차례로 악기를 들고 무대 뒤로 사라지더니 급기야 바이올린 연주자 두 사람만 남게 됩니다. 당황해서 지휘대를 내려와 단원들 사이를 드나들던 지휘자 바렌보임은 끝까지 남은 악장 곁에 나란히 앉아서 머리를 쓰다듬는 시늉까지 하며 비위를 맞추지만 그마저 끝내 자리를 뜨고 맙니다. 그렇게 어이없이 연주가 끝이 나지만 객석에 앉은 청중들은 시종 웃는 얼굴을 하고 있습니다. 혹시나 지휘자와 단원들 사이에 충돌이나 불화가 있었나 싶지만 사실은 모두 사전에 연출된 해프닝입니다. 지휘자의 연기 말고는 원래부터 이렇게 연주해야 하는 곡입니다.

 

 
하이든의 교향곡 45번 고별.

 

하이든 시대의 음악가들은 주로 왕족이나 귀족들에게 고용되어 그들의 성이나 저택에 머물면서 그들이 원하는 음악을 작곡하거나 연주했습니다. 하이든을 고용했던 에스테르하치 후작은 여름이면 자신의 집에서 멀리 떨어진 별궁에 기거하면서 더위를 피했는데 이 때는 하이든뿐만 아니라 하이든의 책임 하에 맡겨져 있었던 다른 악사들까지도 함께 가야 했습니다. 주인인 후작이야 당연히 가족들을 동반했겠지만 하이든과 다른 악사들은 그 기간 동안 가족들과 떨어져 생활해야 했으니 돌아갈 날만 손꼽아 기다려야 했습니다.

 

 

그런데 1772년 여름에는 무슨 일인지 예정되었던 두 달을 채우고도 한참이 지났지만 도대체 돌아갈 기색이 보이지 않았고 악사들의 불만은 턱밑에까지 차오르게 되었습니다. 물론 하이든은 조심스럽게 후작에게 이런 사정을 전했지만 후작은 오히려 다시 거론하지 말라는 명을 내릴 뿐이었습니다. 고심 끝에 하이든은 다른 방법으로 후작의 마음을 돌릴 생각을 하게 되었고 그래서 이 주 만에 서둘러 완성한 곡이 바로 고별 교향곡이었습니다. 마지막 악장에 이르자 악사들은 하나 둘씩 보면대 위의 촛불을 끄고 자리를 떠났고 마지막 남은 두 사람이 사라지면서 음악도 사라지게 됩니다. 그 때서야 하이든의 의도를 알아차린 후작은 당장 떠날 차비를 지시하였고 마침내 그들 모두 기다리는 가족에게로 돌아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말년에 하이든은 에스테르하치 후작 가문과의 계약이 끝나 자유를 얻게 됩니다. 후작에게 봉사하던 30여년 세월 동안 하이든의 업적과 명성은 바다 건너 영국에까지 전해졌고 잘로몬이라는 흥행사의 주선으로 영국을 방문한 하이든은 자신에게 열광하는 영국민들의 거국적인 환영에 놀라게 됩니다. 이를 계기고 말년의 교향곡들은 주로 영국에서의 연주회를 위해 작곡하였는데 그 가운데 놀람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교향곡 94번에 얽힌 일화에서도 하이든의 유머와 여유를 읽을 수 있습니다.

 

 

 

영국의 귀족들과 부호들이 비록 하이든에게 경의를 표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그의 음악을 십분 이해하고 경청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음악을 즐기기보다는 사교를 위해서, 혹은 남에게 과시하려는 생각에서 연주회장을 찾는 사람들은 그 때도 많았나봅니다. 게다가 푸짐한 만찬에다 디저트까지 먹었으니 음악을 들으면 졸음이 쏟아졌을 텐데 특히 화려한 의상과 값비싼 보석으로 치장한 귀부인들이 더했던 모양입니다. 흔히들 생각하는 예술가의 전형적인 모습이라면 모멸감을 이기지 못해 분통을 터뜨려야 마땅하겠지만 하이든은 이런 상황에서도 기지를 발휘하게 됩니다.

 

하이든 놀람교향곡 2악장

 

느린 2악장을 아주 조용하게 시작하다가 갑자기 팀파니가 가세한 모든 악기들이 동시에 커다란 소리를 내게 만든 것입니다. 당연히 객석에서 졸고 있던 수많은 청중들은 영문도 모른 채 기겁을 했을 터이지만 결국은 청중들이나 작곡자, 심지어는 오케스트라 단원들까지 웃지 않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영국에서 가지게 된 스스로의 위상이나 영향력을 조금이라도 의식했더라면 연주회가 아닌 다른 자리에서 불편한 심기를 드러낼 수도 있었고 점잖게 핀잔을 줄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이전에도 그랬던 것처럼 자신이 가장 잘 다룰 수 있고 누구와도 쉽게 소통할 수 있는 음악으로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은근히 빗대어서 전달했던 것입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자칫 심각해질 수도 있는 상황을 부드럽고 유쾌하게 만들었고 다른 누구와도 얼굴 붉힐 필요 없이 자신의 견해를 관철시킬 수 있었습니다. 참으로 놀라운 능력이면서 또한 존경할 만한 처신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리고 어쩌면 너무나도 어려웠던 어린 시절의 열악한 환경이, 그리고 또 하이든을 평생 괴롭혔던 부인의 잔소리가 그를 이처럼 단련시켰는지도 모릅니다.

 

 

누구보다 어려운 환경에서 자랐지만 스스로 역경을 이겼고, 그 시대 다른 누구보다 위대한 업적을 남겼지만 늘 성실과 겸손을 잊지 않았던 하이든은 예기치 않은 위기마다 여유와 유머로 갈등을 극복하고 마음의 평정을 되찾았습니다. 그 어느 때보다 어렵다고 하는 2009, 우리 모두 하이든의 넉넉한 여유를 배워야할 것 같습니다. 그렇게 여유가 생겼으면 여유로운 자만이 가질 수 있는 유머를 찾아서 갈고 또 다듬어야 할 것입니다.

 

 

 

글 : 홍승찬 교수
편집 : 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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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승찬 교수의 재미있는 클래식음악 이야기] 지휘자의 리더쉽 / 카라얀과 번스타인의 리더십을 보면서...[홍승찬 교수의 재미있는 클래식음악 이야기] 지휘자의 리더쉽 / 카라얀과 번스타인의 리더십을 보면서...

Posted at 2012.04.03 07:30 | Posted in 이건음악회 Talk Talk/홍승찬교수의 클래식 톡톡

 

 

 

홍승찬 교수의 클래식 음악(8)
지휘자의 리더쉽

 

 

 


얼마 전 지휘자 레너드 번스타인이 피아니스트 백건우의 은인이었다는 사실이 백건우의 인터뷰 기사를 통해 보도되었습니다. 지금은 지휘콩쿠르로 바뀐 디미트리 미트로풀로스 콩쿠르에 참가한 열다섯 살 소년 백건우가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 3번을 혼자 연습하는 모습을 발코니 석에서 지켜보던 번스타인이 주최 측에 그를 도우라고 말해 줄리어드에 입학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정작 당사자는 그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는데 25년이나 지난 어느 날 백건우가 우연히 당시 콩쿠르의 조직위원장을 만나면서 알게 되었다고 하지요.

 

 

뉴욕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지휘자 레너드 번스타인

 

번스타인은 20세기 후반 뉴욕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를 이끌면서 베를린 필의 카라얀과 지휘계의 양대 산맥으로 군림했습니다. 두 사람 모두 매스컴을 적절히 활용하는 등 실력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면에서 두드러진 능력을 발휘했지만 그 스타일과 이미지는 상반된 것이 많았지요. 카라얀이 평생 사적으로 단원들과 식사자리 한번 가지지 않았던 독선적인 카리스마였다면 번스타인은 부드러운 이미지와 설득으로 오케스트라를 이끌었습니다. 카라얀이 베를린 필의 상임지휘자 요청이 있자 이를 거절하는 모험을 통해 종신 총감독의 지위를 얻어낸 승부사였다면 번스타인은 언제나 타협과 배려를 통해 모두의 만족을 이끌어내려 한 코디네이터였습니다.

 

베를린 필 하모닉 오케스트라 지휘자 카라얀

 

종신을 고집하다 단원들과의 불화로 끝내 사임에 이르렀던 카라얀과는 달리 번스타인은 적절한 시기에 주빈 메타에게 뉴욕 필을 물려주고 스스로 물러났습니다. 그리고 세계 유수의 여러 오케스트라를 돌아다니며 지휘했는데 특별히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긴밀한 관계를 유지했지요. 빈 필과의 한 연주회가 끝나고 열광적인 박수와 앙코르 요청이 있자 무대로 걸어 나온 그는 갑자기 악장을 일으켜 악단을 이끌게 하곤 자신은 무대 옆에 조용히 섰습니다. 시트라우스의 왈츠가 흘러나오자 조금 전까지 어리둥절했던 청중들은 그제서야 번스타인의 의도를 알고 전보다 더 열광적인 박수와 환호로 대답했습니다. 왈츠는 빈 사람들이 가장 잘 알고 잘 연주하는 음악이니 빈 필이 알아서 하라는 것이었지요. 번스타인의 성격이 그렇기도 하지만 다분히 보여주기 위한 제스추어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팔방미인 번스타인도 뉴욕 필의 단원들과는 별로였답니다. 말이 많다는 게 문제였습니다. 언어학을 전공하고 책까지 냈으니 짐작이 가는 일이지요. 연습시간이 끝나고도 잔소리가 이어지면 고참들은 악기를 챙겨 지위자 앞을 지나쳤다는군요. 이처럼 제 잘난 맛에 사는 예술가들을 어떻게든 이끌어 하나의 소리를 만들어야 하는 지휘자야 말로 리더중의 리더가 아닌가 싶습니다.

 

카라얀이 사임한 이후 베를린 필은 카를로스 클라이버와 클라우디오 아바도를 놓고 고민했습니다. 독일의 자랑인 만큼 다들 독일인 지휘자인 클라이버를 예상했지만 성격 좋고 배경 좋은 이탈리아의 아바도를 선택했습니다. 카라얀에게 물린 단원들이 클라이버의 고지식한 완벽주의를 감당하기 싫었겠지요. 가능한 한 적은 시간을 연습하고 많은 자유시간을 누리고 싶었을 겁니다. 완벽이 아니면 타협을 하지 않는 클라이버에게는 전혀 기대할 수 없었을겁니다. 음악 명문가 출신의 아바도에게는 후원하는 세력도 많아서 교향악단 운영에도 도움이 되리라 생각했겠지요. 그래서 일부에서는 아바도가 이탈리아 마피아의 지원을 받아 베를린 필에 입성했다는 이야기까지 있었습니다.

 

 

황제 카라얀의 후임. 클라우디오 아바도.

 

카라얀과 번스타인이 떠난 이후 지휘계에도 신유목시대가 왔습니다. 상임지휘자로 한 오케스트라를 도맡에 오래가기 보다 여러 오케스트라를 떠도는 지휘자가 많아졌죠. 잘하는 몇 개의 레퍼토리만 있으면 한참을 견딜 수 있고 단원들도 간섭을 덜 받으며 다양한 음악을 접할 수 있어 서로들 좋아합니다. 문제는 오케스트라의 개성이 희미해져 간다는 것입니다. 과거 유진 오먼디가 오랫동안 아끌었던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는 그들만의 소리가 있어 필라델피아 사운드, 혹은 유진 오먼디 사운드라 불리기도 했지만 지금은 점점 이런 전통이 사라져가고 있지요.

 

 

 "오먼디 = 필라델피아 사운드" 라는 공식을 만든 헝가리 태생의 미국의 지휘자 유진 오먼디

 

신유목시대의 대표적인 지휘자 유형이라면 로린 마젤이 먼저 떠오릅니다. 그가 지휘해야 할 오케스트라의 능력과 주어진 시간과 기타 여건들을 정확하게 판단하면 단원들에겐 그 안에서 가능한 만큼의 최선만을 요구합니다. 첫 만남과 연습, 마지막 리허설까지의 과정에서도 늘 유머와 칭찬을 잊지 않죠. 자신이 할애할 수 있는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싶으면 자신의 의중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잘 따르는 부지휘자를 보내 연습을 시키기도 합니다. 당연히 단원들이 가장 좋아하고 신이 나서 하게 되니까 좋은 결과가 있고 또 그런 모습을 보는 청중들도 즐거워하게 됩니다. 현실적이면서 얄미울 정도로 영리한 리더쉽이죠.

 

 

즐거움을 추구했던 영리한 지휘자. 로린 마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지휘자 두 분의 클래스를 비교하면 리더쉽의 상반된 두 가지 유형이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한 분은 먼저 지휘봉을 고르고 손으로 쥐는 법부터 가르치고 다른 한 분은 전혀 설명이나 준비없이 대뜸 오케스트라를 앞에 놓고 악보대로 소리 나게 해보라고 시킵니다. 쉽게 생각하거나 혹은 너무 긴장해서 실패하는 게 당연하죠. 그렇게 기부터 죽여 긴장시키는 겁니다. 수업에서까지 발휘되는 지휘자의 리더쉽입니다.

 

오케스트라 지휘자의 리더쉽을 살펴보았지만 여러분에게도 생소하지 않으리라 생각됩니다. 여러분은 과연 어떤 유형의 리더쉽을 발휘하고 계신지요? 그리고 그것이 과연 여러분의 조직에 어떻게 받아들여지고 어떤 결과를 가지고 올 것인지를 생각해야 할 것같습니다.

 

글 : 홍승찬 교수
편집 : 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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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승찬 교수의 재미있는 클래식음악 이야기] 아카펠라는 이렇게 시작되었다. -아카펠라의 역사/유래-[홍승찬 교수의 재미있는 클래식음악 이야기] 아카펠라는 이렇게 시작되었다. -아카펠라의 역사/유래-

Posted at 2011.11.17 12:50 | Posted in 이건음악회 Talk Talk/홍승찬교수의 클래식 톡톡

홍승찬 교수의 클래식 음악(2) 아카펠라는 이렇게 시작되었다!


 

 

 



|아카펠라라고 하면 무반주 합창이나 중창이라는 것쯤은 누구나 다 알고 계실 겁니다.

관심이 있어 이 말을 사전에서 찾아보면 원래는 아 카펠라 a capella', 교회에 맞게’, 혹은 교회 풍으로라는 뜻인데 지금은 반주가 없이 부르는 중창이나 합창을 일컫는 말로 쓰이고 있다고 되어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말이 처음에는 교회에 맞게라는 뜻이었다가 무반주 합창이나 중창으로 바뀐 까닭이 무엇일까요? 결론부터 말하자면 아주 먼 옛날에는 교회에서 노래를 불러 신을 찬양하려면 반주가 없어야 한다고 생각을 했고, 실제로 또 오랫동안 그렇게 해왔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지금은 교회음악이 아니더라도 무반주로 부르는 합창이나 중창을 아카펠라로 부르게 되었고 오히려 교회에서는 반주를 사용하는 음악을 더 많이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아카펠라 이렇게 만들어졌다!

왜? 초기 유럽의 크리스트교 교회에서는 왜 악기로 반주하는 것을 금지했을까요?

한 때 기독교가 로마제국의 핍박을 받을 무렵 로마인들이 기독교인들을 처형할 때 원형경기장에 맹수들을 풀어놓고 온갖 악기 소리로 흥을 돋우었기 때문이라는 말도 있고 그 후 이교도들에게 기독교를 포교하는 과정에서 이교도들의 종교의식과 기독교의 예배의식을 엄격하게 구분 지을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라는 말도 있습니다. 실제로 그 이유가 무엇이든 간에 중세의 신학자들이 기록으로 남겨 전하고 있는 교리상의 명분은 다음과 같습니다.



세상에는 세 가지 등급의 음악이 있는데, 가장 우위에 있는 것은 무지카 문두스 musica mundus', 즉 천상의 음악으로 신의 섭리 그 자체라는 것입니다. 그 다음은 무지카 휴마나 musica humana’, 즉 인간의 음악으로 신의 섭리가 인간 세상에 구현된 것이고 무지카 인스트루멘탈리스 musica instrumentalis’, 즉 도구의 음악은 인간이 감각으로 느낄 수 있는 물리적 현상의 소리로 가장 낮은 등급의 음악이라는 것입니다. 정말이지 고귀하고 오묘한 신의 섭리와 그것이 구현된 자연의 조화는 미천한 인간의 감각으로는 도저히 알아차릴 수 없는 것이니 이 세상에서 사람이 보고 듣고 느껴서 알 수 있는 모든 것은 다 하찮은 것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 교리를 엄격하게 적용한다면 교회에서 인간의 목소리로 신을 찬양하는 것조차 불경스러운 일일진대 인간의 손으로 만든 악기를 사용한다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말하자면 모든 가치 있고 진실 된 본질은 인간의 감각으로는 도저히 느낄 수도 나타낼 수도 없다는 것이고, 인간 세상의 모든 것은 일장춘몽 헛것에 불과하니 지상에 살면서도 천국과 하느님만 생각하고 기도해야 한다는 것이겠지요. 이것은 예수님이 부활하셨을 때 손바닥의 상처를 보고서야 믿었던 제자 토마스를 나무라셨듯이 보지 않고 듣지 않고서도 믿을 수 있는 신앙이 중요하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이런 교리를 엄격하게 적용한다면 교회에서 인간의 목소리로 신을 찬양하는 것조차 불경스러운 일이었겠지요. 하물며 인간의 손으로 만든 악기를 사용한다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음악 해석의 변천

세월이 흐르면 모든 것이 다 변하기 마련이고 종교의 교리라고 해서 예외일 수는 없을 것입니다. 이 세 가지 음악에 대한 해석도 시간이 지나면서 많이 달라지게 됩니다. ‘천상의 음악은 신의 섭리와 그것이 구현된 자연의 조화까지를 다 아우르는 개념이 되고 인간의 음악은 사람의 목소리로 들려주는 신의 섭리요 자연의 조화를 뜻하게 됩니다. 그리고 도구의 음악은 인간이 만든 도구, 즉 악기로 내는 소리인 만큼 여전히 따로 언급할 필요조차 없었을 것입니다. 결국 이런 변화를 거쳐 사람의 목소리로 신을 찬양하는 것에는 당위성이 부여되었지만 그 후로도 한참동안 악기로 연주하는 음악은 교회에 수용될 수가 없었습니다. 물론 지금은 가톨릭이나 개신교 모두 악기로 반주하는 성가나 찬송가를 사용하고 있지만 특정 교파 경우는 아직까지도 교회 안에서 노래로 찬양을 하거나 찬송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기도 합니다.



르네상스~ 아카펠라의 황금기!

반주 없이 노래하는 합창이나 중창은 르네상스 시대에 이르러 황금기를 맞이하게 됩니다. 교회 안에서 뿐만 아니라 교회 밖에서도 사람들이 삼삼오오 무리를 이루어 노래 부르기를 즐겼는데 이탈리아에서 유행했던 마드리갈이라는 양식이 가장 대표적일 것입니다. 그 무렵부터 악보 출판이 시작되어 그것이 또한 이런 음악을 널리 보급하는 데 큰 영향을 미치기도 했습니다. 그 덕분에 오늘날까지도 그 시대에 출판된 음악들의 상당수가 기록으로 남게 되어 지금도 합창단의 레퍼토리만큼은 바로크 시대를 앞질러 르네상스 시대부터 시작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르네상스 시대의 무반주 합창곡이 교회 밖에서 성행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놀라운 업적들은 교회 안에서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리고 수많은 작곡가들 가운데 한 사람을 꼽으라면 팔레스트리나를 가장 먼저 떠올리게 됩니다. 난세에 영웅이 난다고 했듯이 가톨릭교회가 안팎으로 도전을 받으면서 어려움에 처했을 때 홀로 소신을 꺾지 않고 위대한 걸작으로 교회음악의 권위를 지켰던 거장이었습니다. 요즈음과 같이 어려운 시기에 우리 사회에도 필요한 인물이 아닌가 싶습니다.

팔레스트리나



글 : 홍승찬 교수
편집 : 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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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승찬 교수의 재미있는 클래식음악 이야기] 음악은 삼백년마다 새로 태어난다?[홍승찬 교수의 재미있는 클래식음악 이야기] 음악은 삼백년마다 새로 태어난다?

Posted at 2011.11.03 18:18 | Posted in 이건음악회 Talk Talk/홍승찬교수의 클래식 톡톡
| 음악이 300년마다 새롭게 태어난다는 사실 알고 계시나요?

 

 

 




| 인간의 역사가 늘 되풀이된다는 생각은 오래 전부터 있었습니다. 문명도 그러려니와 나라도 그렇고, 한 인간의 삶도 부침을 거듭하기 마련이라는 것이지요. 드물지만 그 가운데 어떤 일들은 일정한 시간을 두고 거듭 반복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는데요, 대표적으로 서양 음악의 역사가 그렇다고들 합니다. 음악의 기원을 따지자면 까마득한 원시시대로 거슬러 올라가야겠지만 기록으로 남은 음악의 역사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습니다. 왜냐면 보편적인 역사라는 것이 문자 기록이 있고난 다음부터인 것과 마찬가지로 음악의 역사를 제대로 언급하자면 음악의 기록, 즉 악보가 남아서 그것을 지금에 와서 고스란히 되살릴 수 있어야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보통 서양음악의 역사를 이야기할 때 그레고리오 성가를 먼저 언급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것은 악보로 남아서 오늘날에도 재현할 수 있는 가장 오래된 음악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교황 그레고리우스 1세가 그의 재위 14, 즉 서기 590년부터 604년 사이 동안 유럽 각지의 성가들을 집대성하여 편찬한 것이라고 하지만 그 작업의 방대함을 생각한다면 교황이 시작했지만 그의 사후에 한참이나 지나서 완성되었을 것입니다.

그레고리안 성가는 그레고리안 찬트(Gregorian chant)라고 하는데, 대 그레고리오 교황의 이름을 따서 붙인 성가 형태이다. 물론 교황께서 그레고리오 성가를 모두 직접 만드신 것은 아니고, 그분께서 당시의 성가들을 정리하도록 하셨기 때문에 그분의 이름을 기리기 위해서 붙인 이름이다.



그래서 그것이 온전한 모습을 갖추기 시작한 것을 백년쯤 뒤로 생각한다면 700년경이 되는 셈입니다. 그리고 약 삼백년쯤이 지나서 그레고리오 성가의 선율에다 다른 선율을 붙여서 동시에 부르는 일이 생기게 되었고 또 삼백년쯤이 지난 천 삼백년 경부터는 교회 밖에서 부르던 노래나 악기로 연주하던 춤곡들까지도 기록으로 남겼는가 하면 리듬이라는 것이 음악의 중요한 요소로 자리 잡게 됩니다. 그렇게 삼백년이 지난 1600년경 우리가 흔히 바로크 음악이라고 하는 이전에 없던 새로운 음악이 나타나기 시작했고 1900년에는 지금의 우리가 들어도 생소하기까지 한 현대음악이 탄생한 것이지요.
라틴어로 기록된 오래된 문헌을 보면 1300년경에 시작된 획기적인 새로운 음악을 아르스 노바신 예술이라 일컬었고 이전 300년 동안의 음악을 이와 구분하여 아르스 안티쿠아’, 구 예술이라고 불렀습니다. 우리가 나중에 바로크라 부르게 된 1600년경의 음악도 라틴어로 누오베 무지케’, 신 음악이라 했고 20세기의 현대음악은 영어로 뉴 뮤직이라 부르고 있으니 결국은 1300년경부터 300년마다 등장하는 새로운 음악들의 이름이 다 같은 뜻을 가지고 있는 셈입니다.

아르스 노바는 新 예술이었으며, 바로크는 新 음악이고, 현대음악은 New Music 이다.


| 묘한 것은 1300년대 이후 백오십년마다 또 다른 징후가 나타났다는 것인데, 1450년경에 르네상스 시대가 열렸고 1600년과 1900년 사이의 1750년경에는 고전주의 시대가 시작되었습니다. 이 가운데 우리가 특별히 주목해야 할 시기가 바로 1750년대 이후의 백오십년입니다. 그 백오십년 사이에 고전주의 시대와 낭만주의 시대가 이어지면서 지금 우리가 즐겨 듣는 클래식 음악의 명곡들 대부분이 만들어졌기 때문입니다.
클래식의 어원은 고대 로마시대의 계급을 가르키는 라틴어로 잘 정돈된, 품위있는, 영구적이며 모범적인이란 뜻을 지니고 있습니다. 이후 예술사에서 고전주의 시대를 일컫는 말로 클래식이 사용되다가 지금은 우리가 흔히 말하는 클래식 음악이라 하는 영역까지 아우르게 된 것입니다. 그렇게 된 까닭이라면 당장 그 말이 가지는 의미에서부터 찾을 수 있겠지만 고전주의 시대 이후의 음악이 클래식 음악의 대부분을 차지하게 된 것도 무관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이전까지 나라마다, 혹은 지역마다 조금씩 다른 방식으로 만들어지던 서양의 음악이 고전주의 시대 이후 점점 하나의 질서로 통일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통합이 가능하도록 새로운 질서의 기초를 확립한 사람이 바로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입니다. 그래서 그를 음악의 아버지라 부르는 것입니다.

음악의 아버지라 불리는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


| 1750
년은 다름 아닌 바흐가 세상을 떠난 해입니다. 한 시대의 종말과 한 시대의 시작을 한 작곡가가 생애에서 찾은 것입니다. 그래서 음악의 역사는 늘 위대한 작곡가의 전기로 채워져 있는 모양입니다. 어찌 보면 바흐는 바로크 시대에도 속하지 않고 고전주의 시대에도 속하지 않는 작곡가입니다. 속한다기 보다는 시대를 초월해서 존재했다는 말이 더 맞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베토벤의 위대한 업적도 마찬가지입니다. 바흐가 그랬던 것처럼 그 역시 고전주의 시대를 완성하여 낭만주의 시대를 열었습니다. 그래서 대게는 그를 고전주의 시대의 작곡가라 하지만 좀 안다는 사람들은 낭만주의 시대의 선구자로 그를 자리매김합니다. 그러나 그도 바흐와 마찬가지로 어느 한 시대가 아니라 두 시대를 다 포용했습니다.


글 : 홍승찬 교수
편집 : 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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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교수님 어제 계명아트센터에서 함께 있었던 최인규입니다.

    명쾌하고 즐거운 설명 갑사합니다.

    내년에 북구에서 뵙기를 희망하고 이건콘서트에서 다시 뵙기를 희망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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