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승찬 교수의 클래식 음악 이야기] 죽음에 앞서 깨달은 사랑의 참 뜻, 푸치니의 “투란도트”[홍승찬 교수의 클래식 음악 이야기] 죽음에 앞서 깨달은 사랑의 참 뜻, 푸치니의 “투란도트”

Posted at 2017.05.09 07:30 | Posted in 이건음악회 Talk Talk/홍승찬교수의 클래식 톡톡


 

오늘날 세계 주요 오페라 극장에서 공연하는 오페라들 가운데 절반 이상은 아마도 1800년대 이후 백여년 동안 이탈리아에서 만들어진 오페라일 것입니다. 롯시니에서 시작된 19세기 이탈리아 오페라의 르네상스는 벨리니와 도니제티를 거쳐 베르디에 이르러 그 절정에 이르렀고 푸치니가 그 마지막을 화려하게 장식했습니다. 그런 푸치니의 마지막 오페라가 "투란도트"였고 이 작품을 끝으로 이탈리아 오페라는 다시 긴 겨울잠에 들어가 지금까지도 깨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 작품을 쓰면서 그는 '이전에 작곡한 오페라들은 다 버려도 좋다'고 했을 정도로 애착을 가졌고 또 심혈을 기울였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끝내 완성하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나 그 나머지 작업은 다른 사람의 손을 빌려야 했습니다. "투란도트"는 푸치니의 이전 작품들과는 사뭇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대중적이고 통속적인 이야기에 감상적이고 진부한 음악이라는 전문가들의 비난을 의식했던지 현실에서 동떨어진 옛 이야기를 소재로 삼았는가 하면 공이나 실로폰과 같은 이국적인 악기와 불협화음에 원시적인 리듬까지 과감하게 사용하였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여성을 앞세웠던 전작들과는 달리 남자 주인공이 이야기를 이끌어가고 있습니다.

 

출처 : http://www.nyculturebeat.com/index.php?mid=Music&document_srl=3396918&search_target=tag&search_keyword=%EB%A9%94%ED%8A%B8%EC%98%A4%ED%8E%98%EB%9D%BC

 

 

중국의 아름다운 공주 투란도트는 할머니가 적군에게 유린당한 과거의 악몽을 떨치지 못해 남성을 혐오하고 결혼을 기피합니다. 그럼에도 구혼자들이 줄을 잇자 세 가지 수수께끼를 내서 그 답을 맞추면 결혼을 하고 아니면 목숨을 내놓아야 하는 조건을 내걸었고, 많은 이들이 도전하였으나 모두 실패하여 목숨을 잃고 맙니다. 이때 나라를 잃고 떠돌던 타타르의 왕자 티무르가 나타나 공주의 수수께끼를 풀었지만 얼음같은 공주의 마음은 왕자의 사랑을 거부합니다. 그러자 왕자는 다음날까지 공주가 자신의 이름을 알아내면 목숨을 내놓고 아니면 결혼해야 한다는 제안을 합니다. 궁지에 몰린 공주는 수소문 끝에 왕자의 시녀인 류를 잡아들여 모진 문초로 왕자의 이름을 알아내려 하지만 왕자를 몰래 짝사랑했던 류는 스스로 목숨을 끊어 왕자를 지킵니다. 왕자의 용기와 류의 사랑에 감복한 공주는 결국 마음을 열어 왕자를 받아들이고 마침내 두 사람은 결혼에 이르게 됩니다.

 

출처 : https://kr.pinterest.com/pin/407364728772437860/

 

 

이 대강의 줄거리는 중동에서 전해오는 "투란도흐트 Turandokht" 이야기에서 비롯된 것으로 루이 14세 때의 작가 들라크루아가 페르시아의 옛 이야기들을 모아서 펴낸 "천일일화"에 수록한 것을 베네치아의 극작가 카를로 고치가 희곡으로 만들었습니다. 이것을 독일의 프리드리히 실러가 다시 각색한 것이 이탈리아어로 번역되어 푸치니의 손에 들어갔던 것입니다. 원래의 이야기는 왕자가 수수께끼를 풀면 바로 공주와 결혼하는 것이었으나 푸치니의 고집으로 하룻밤의 시간이 더해지면서 거기에 류의 희생이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이를 두고 사람들은 밋밋하고 뻔한 줄거리를 보완하는 한편, 전작들에서 줄곧 이어져 사람들에게 너무나 익숙한 푸치니 오페라의 특징을 그대로 유지하려는 의도로 해석하기도 합니다.

 

 

 

아닌게 아니라 "토스카""라보엠", "나비부인"과 같은 푸치니의 대표작들은 한결같이 사랑에 모든 것을 걸지만 끝내 목숨을 잃는 여인들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습니다. 푸치니 자신의 여성편력 때문인지 오페라 역사를 통 털어 푸치니만큼 다양한 성격의 여성들을 작품 속에 다루면서 그만큼 감성적으로 또 섬세하게 그 심리를 잘 드러내어 전달한 이는 따로 없었습니다. 작품을 쓸 때마다 푸치니는 늘 누군가와 열애중이어서 그 상대의 성격이 작품 속 여주인공으로 그려지는 경우가 많았기에 "투란도트"의 초연을 지켜 본 청중들이라면 누구나 가엾은 류의 모습에서 바로 일년 전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푸치니 스캔들의 불쌍한 희생양을 떠올릴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푸치니의 부인 엘비라는 하녀 도리아 만프레디와 남편 사이의 불륜을 의심하여 못견딘 나머지 도리아에게 심한 욕설을 퍼붓고 집에서 내쫓았는가 하면 교회에까지 고발하고 망신을 주었습니다. 사람들의 따돌림을 견디다 못한 도리아는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가족들의 요청으로 부검을 한 결과 도리아가 처녀였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비난의 화살은 엘비라에게 쏟아졌습니다. 엘비라는 무고죄로 고소되어 유죄 판결을 받았으나 푸치니가 유족에게 금전적인 보상을 하여 처벌만은 면하게 됩니다. 이 일이 있고 얼마지 않아 "투란도트"를 보게 된 관객들이 왕자의 시녀 류에게서 푸치니의 하녀 도리아를 떠올리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두 인물 사이에는 너무나 다른 면면이 있어 그후로도 그 부분에 대한 의혹은 끊이지 않았습니다. 도리아와 푸치니는 서로 사랑하는 사이가 아니었는데 푸치니가 과연 그의 작품 속에 구태여 연인이 아닌 다른 인물을 투영하려 했을까 하는 의문이 있었고 투영한 게 사실이라면 그 까닭이 무엇인지에 대한 의문이 꼬리를 물었습니다. 죄책감 때문이라는 추측이 있고 도리아의 짝사랑, 혹은 두 사람 사이의 정신적인 사랑을 까닭으로 짐작하는 이들도 있었지만 그 어느 것도 분명하게 밝혀지진 않았습니다.

 

 

2008년 이탈리아의 파울로 벤베누토 감독이 영화 "푸치니의 여인"을 발표하면서 세상은 다시 한번 도리이의 비극에 주목하게 되었고 그 동안 감춰졌던 사건의 전모가 밝혀지면서 풀리지 않았던 의혹도 말끔하게 해소되었습니다. 벤베누토의 말에 따르면 영화 스탭 중의 한 사람이 푸치니가 살던 토레 델 라고의 집 근처의 식당에 들렀다가 푸치니의 사생아라는 사람이 그 식당에 자주 들렀다는 말을 들었고 결국 그의 자취를 추적하다 그의 딸, 즉 푸치니의 손녀인 나디아라는 여인을 만나게 되었다고 합니다. 나디아로부터 건네받은 40여통의 편지는 모두 푸치니가 나디아의 할머니 줄리아 만프레디에게 보낸 편지였고 그 편지를 몰래 전한 사람이 바로 줄리아의 사촌동생이자 푸치니의 하녀였던 도리아였던 것입니다. 줄리아는 푸치니가 살던 집과 호수를 사이에 두고 멀리 보이는 선술집을 혼자 꾸려갈 만큼 억척스러우면서도 늘 밝고 푸근한 여성이었다고 합니다. 줄리아와 사랑에 빠졌을 때 푸치니는 오페라 "서부의 아가씨"를 작곡하고 있었고 오페라에서 선술집을 운영하는 씩씩한 여주인공 미니는 당연히 줄리아를 모델로 삼아 만든 인물이었습니다. 그들 사이에서 남몰래 편지 심부름을 하던 도리아는 그들 사이의 비밀을 혼자 가슴 속에 묻은 채 스스로 목숨을 끊었던 것입니다.

 

 

 

푸치니는 이 착하고 가엾은 하녀의 어이없는 죽음에 커다란 충격을 받아 그 죄책감을 떨칠 수가 없었고 어떻게든 그 넋을 위로하고자 마지막 오페라의 주인공으로 무대에 세웠던 것입니다. 참으로 묘한 것은 푸치니의 운명 또한 여기까지였다는 사실입니다. 왕자의 비밀을 지키기 위해 류가 목숨을 끊는 장면까지 작곡을 한 다음 아들과 함께 벨기에까지 가서 진찰을 받은 결과 후두암 판정을 받고 수술을 받았으나 불과 며칠 후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대지휘자 토스카니니가 프랑코 알파노에게 마무리 작업을 맡겨 예정보다 1년 늦게 초연을 했지만 그 첫 공연에서 토스카니니는 류가 죽는 장면을 끝으로 음악을 멈추고는 객석을 향해 "친애하는 푸치니 선생은 여기까지 쓰시고 돌아가셨습니다."라는 말을 남기고는 그 자리를 떠났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이 오페라에서 정작 푸치니가 보여주고 싶었던 것은 왕자와 공주가 결혼해서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다는 결말이 아니었습니다. 서로의 뜨거운 사랑이 아니라 혼자만의 쓸쓸한 사랑일지라도 그 사랑을 위해서라면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주저 없이 기꺼이 바치고 흔적도 없이 사라질 수 있는 참 사랑의 희생과 헌신이었습니다. 어쩌면 스스로 그토록 많은 사랑을 했으면서도 이처럼 고귀한 사랑에는 결코 단 한번도 이르지 못했기에 더더욱 큰 아쉬움을 이렇게라도 토로하려 했는지 모르는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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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투르 토스카니니] 육체적인 결함으로 말미암아 예기치 않았던 기회를 잡을 수 있었고 그것을 계기로 누구도 넘볼 수 없는 경지를 이룬 기적을 이룬 음악가[아르투르 토스카니니] 육체적인 결함으로 말미암아 예기치 않았던 기회를 잡을 수 있었고 그것을 계기로 누구도 넘볼 수 없는 경지를 이룬 기적을 이룬 음악가

Posted at 2013.04.01 13:37 | Posted in 이건음악회 Talk Talk/홍승찬교수의 클래식 톡톡

 

 

 

 

 

 

홍승찬 교수의 클래식 음악(47)
[홍승찬 교수의 재미있는 클래식음악 이야기]

 

 

 

 

 

음악사를 통털어 신체적인 장애를 극복하고 위대한 업적을 남긴 거장들이라면 몇몇을 꼽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오히려 육체적인 결함으로 말미암아 예기치 않았던 기회를 잡을 수 있었고 그것을 계기로 누구도 넘볼 수 없는 경지를 이룬 기적을 이룬 음악가는 아르투르 토스카니니 단 한 사람 뿐입니다. 1886630일 토스카니니가 첼리스트로 몸담고 있던 로시 오페라단과 오케스트라는 브라질의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오페라 아이다를 공연할 예정이었습니다. 그러나 지휘자 레오폴도 밍게스가 단원들과 마찰을 일으키고 가수들까지 파업에 들어가자 급하게 다른 지휘자를 구했지만 그마저 막이 오르기 직전에 말다툼을 벌여 느닷없이 공연장을 떠나버렸습니다. 어쩔 수 없이 부지휘자 아리스티데 벤츄리가 지휘대에 올랐지만 그 마저도 청중들의 야유를 견디지 못하고 내려오고 말았지요. 이런 절망적인 상황에서 단원들이 지목한 마지막 희망이 첼리스트인 토스카니니였습니다. 지독한 근시 때문에 보면대에 놓인 악보를 읽을 수 없었던 그는 언제나 연주해야 할 곡을 몽땅 다 외우고 있었기에 그라면 혹시 하는 절박한 마음이었겠지요. 그렇게 스무살 밖에 안된 애송이 첼리스트는 가장 최악의 상황에서 생애 처음으로 지휘대에 오르는 위기에 처했지만 일막이 끝나자 청중들의 기립박수를 받는 기적을 이루어내었습니다. 그리고 아흔 살로 세상을 떠난 1957년까지 무려 70년을 지휘자로 살면서 감히 그 누구도 해내지 못한 숱한 업적을 쌓았고 아무도 따를 수 없는 경지를 이루었습니다. 오늘날 지휘자들이 너나없이 보면대 없이 지휘대에 오르는 모험을 감행하게 된 것은 그 옛날 토스카니니의 전설로부터 비롯된 일입니다. 카라얀조차도 초창기에 토스카니니와 흡사한 지휘 동작으로 토스카라얀이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는데 푸르트벵글러가 그토록 카라얀을 싫어했던 이유 중에는 이것도 들어있지 않은가 싶습니다.

 

 

 

 

Arturo Toscanini

"Overture Tannhauser" 1/2


 

 

20세기 후반의 음악계를 카라얀과 번스타인이라는 두 지휘자가 이끌었다면 20세기 전반은 토스카니니와 푸르트벵글러의 시대였습니다. 그리고 카라얀과 번스타인이 그랬던 것처럼 토스카니니와 푸르트벵글러도 거의 모든 면에서 대조적이었습니다. 토스카니니가 극복해야 했던 치명적인 장애는 근시만이 아니었지요. 저명한 고고학자인 아버지와 화가인 어머니 사이에서 남부러울 것 없었던 푸르트벵글러와는 달리 재봉사였던 토스카니니의 아버지는 경제적으로 무능력했을 뿐만 아니라 사생활까지 문란했습니다. 끼니조차 걸러야 했던 어린 시절을 회상하며 그는 어머니의 키스 한 번 제대로 받아본 기억이 없다고 했습니다. 가정교사로부터 체계적인 교육을 받으며 폭넓은 여행으로 견문까지 넓혔던 푸르트벵글러와는 달리 토스카니니는 누구나 받는 의무교육 말고 나머지 모두를 스스로의 힘으로 해결해야 했습니다. 그 결과 푸르트벵글러의 음악이 학구적이고 분석적이라면 토스카니니의 음악은 직관적이고 열정적이었습니다. 그리고 푸르트벵글러가 젊은 나이에 베를린 필에 입성하여 평생을 그들과 더불어 왕국을 건설했던 반면 토스카니니는 유럽과 미국을 오가며 늘 투쟁하고 개척하였습니다. 푸르트벵글러는 나치와 타협하면서 왕국을 지켰지만 토스카니니는 무솔리니 정권이 파시스트 당가를 연주하라고 요구하자 이런 곡은 음악도 아니다며 거부하였고 나치의 유태인 박해를 비난하며 독일에서의 연주도 거부하였습니다.

 

 

 

 

그가 치열한 투쟁으로 이루어낸 업적은 예술가의 양심을 지키는 것만은 아니었습니다. 브라질에서의 기적 같은 데뷔무대 이후 토리노의 오페라 극장에서 본격적인 지휘자의 길을 걷기 시작한 그는 1898년부터 10년 동안 밀라노의 라 스칼라 오페라 극장을 이끌면서 이탈리아 오페라의 새로운 역사를 써내려갔습니다. 너무나도 권위적이고 보수적이었던 라 스칼라 무대에 처음으로 그 시대 서민들의 삶을 사실적으로 그린 베리스모 오페라를 올렸는가 하면 바그너와 차이코프스키, 베를리오즈와 같은 다른 나라 작곡가들의 작품도 공연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이 기간 동안 토스카니니가 세계 초연한 작품들만도 레온카발로의 팔리아치와 조르다노의 몽유병 여인”, 푸치니의 라 보엠서부의 아가씨”, “투란도트등 음악사의 기념비적인 걸작들이 즐비합니다.

 

 

 

 

 

그는 또한 오페라 극장의 구시대적인 전통도 바꾸려했습니다. 여성들이 모자를 쓰고 관람하는 것을 금지했고 오페라 끝에 발레를 무대에 올리는 관습도 폐지했습니다. 무대의 막도 위아래로 움직이지 않고 좌우에서 가운데로 여닫을 수 있는 방식으로 바꾸었고 이야기의 흐름이 끊어지지 않도록 공연 도중의 앙코르도 없애려고 했습니다. 그 시대에는 아리아가 끝나고 청중들이 앙코르를 외치면 그 곡을 다시 부르는 것이 관례였습니다. 한번은 시칠리아의 팔레르모에서 공연할 때 토스카니니가 청중들의 앙코르 요청을 무시하자 그곳 사람들이 토스카니니에게 달려드는 아찔한 사건을 겪기도 했지요. 다행히 토스카니니의 용기를 높이 산 마피아의 두목이 말리고 나서는 바람에 봉변을 모면했지만 타협을 모르는 토스카니니의 고집에는 라 스칼라도 등을 돌리고 맙니다. 1908년 뉴욕의 메트로폴리탄에서 그를 불렀지만 거기서도 그의 집념과 열정은 사람들을 지치게 만들었습니다. 오케스트라 단원들과 오페라 가수들을 끊임없이 다그쳤고 완벽한 무대를 위해 예산과 현실을 무시한 요구를 했습니다. 결국 1920년 다시 라 스칼라로 돌아왔지만 이번에는 파시스트 정권과 정면으로 부딪혔습니다. 19264월 푸치니가 미완성으로 남긴 마지막 오페라 투란도트를 그의 제자 프랑코 알파노가 완성하여 라 스칼라에서 초연하던 날, 지휘를 맡은 토스카니니는 후반부에 이르러 갑자기 연주를 중단하고 청중들에게 말했습니다. “위대한 작곡가는 여기서 펜을 놓았습니다.” 객석에는 독재자 무솔리니가 앉아 있었지만 아랑곳하지 않았던 것이지요. 모름지기 음악은 작곡가가 의도한 그대로여야 하고 그것은 악보에 그려진 것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라는 그의 고집은 그를 또 다시 타향으로 내몰았습니다.

 

 

 

 

1926년부터 뉴욕 필을 맡은 토스카니니는 1930년 유럽 투어를 시도해서 커다란 성공을 거두었고 그해와 그 다음해 바이로이트에 초청되어 그 자신은 독일인이 아닌 사람으로는 최초로 바이로이트에서 지휘한 지휘자가 되었고, 뉴욕 필은 비독일 오케스트라로 바이로이트에서 연주한 최초의 오케스트라라는 기록을 남겼습니다. 그리고 1934년부터 1937년까지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에서 지휘봉을 잡았고 1936년에는 이스라엘 필의 전신인 팔레스타인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역사적인 창단 연주회를 지휘하기도 했습니다. 193670세를 바라보는 토스카니니가 뉴욕 필을 떠나자 사람들은 이제 그가 은퇴를 하는 것으로 짐작했습니다. 그러나 1937년 미국의 NBC 방송은 오직 한 사람 토스카니니만을 위한 전대미문의 NBC 심포니를 창단하여 그에게 맡겼고 그들의 연주를 전파에 실어 미국 전역에 내보냈습니다. 195488세의 토스카니니가 바그너의 탄호이저를 지휘하던 중 처음으로 지휘봉이 멈추는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잠시 후 의식을 되찾은 그는 끝까지 무사히 연주를 마쳤지만 그 후로 다시는 무대에 서지 않았습니다.

 

 

 

 

 

 

 

누구보다 성실하고 정열적이었던 그는 평생을 네 시간 이상 자지 않았지만 단 한 번도 누구에게 아픈 기색을 보인 적이 없었고 80이 넘어서도 늘 두 계단을 한 번에 올라가곤 했습니다. 연습을 하다 성에 차지 않으면 물건을 던지는 버릇이 있었고 어느 날 시계를 바닥에 던져 산산조각이 나자 누군가 싸구려 시계와 고급시계를 함께 선물하면서 연습용연주용이라는 쪽지를 함께 넣어두었다는 일화도 있지요. 말년에는 그 스스로도 지쳤는지 나는 분명 노인이다. 그런데 어찌하여 신은 17세 소년의 피를 주어 나를 괴롭히는 것일까.”라며 탄식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토록 치열하게 살았던 토스카니니는 일생 동안 53명 이상의 작곡가가 남긴 117곡 이상의 오페라와 175명 이상의 작곡가가 남긴 480곡 이상의 관현악곡을 정복하였습니다.

 

 

 

 

 

글 : 홍승찬 교수
편집 : 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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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멋진... 지휘자네요...^^
  2. 노피나라
    잘 읽었습니다. 고맙습니다.
  3. 김에송
    와... 토스카니니에 대한 일화는 익히 알고있었지만 이정도로 열정이 가득한 사람인줄은 몰랐네요..

    저는 토스카니니가 참 좋더라구요..

    푸르트뱅글러에겐 미안하지만..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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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역설적인 음악 ‘허밍 코러스’] 오페라 “나비부인”과 한마디의 대사. “명예롭게 살 수 없다면 명예롭게 죽으리라” 지치고 힘들 때마다 듣는 이노래.[세상에서 가장 역설적인 음악 ‘허밍 코러스’] 오페라 “나비부인”과 한마디의 대사. “명예롭게 살 수 없다면 명예롭게 죽으리라” 지치고 힘들 때마다 듣는 이노래.

Posted at 2013.03.18 07:30 | Posted in 이건음악회 Talk Talk/홍승찬교수의 클래식 톡톡

 

 

 

 

 

 

홍승찬 교수의 클래식 음악(46)
[홍승찬 교수의 재미있는 클래식음악 이야기]

 

 

세상에서 가장 역설적인 음악 허밍 코러스

 

 

 

 

 

오페라 나비부인은 이탈리아 오페라 작곡가 지아코모 푸치니의 대표작입니다. 푸치니는 베르디와 함께 19세기말 이탈리아 오페라의 황금기를 대표하는 양대 거장으로 꼽히는 인물이지요. 비단 이탈리아에서 뿐만 아니라 오늘날 전 세계의 오페라 극장들에서 가장 많이 공연되고 있는 작품들을 꼽으라면 아마도 이 두 작곡가의 작품들이 가장 많을 것입니다. 베르디의 오페라가 선이 굵은 편이라면 푸치니의 오페라는 매우 섬세하고 사실적입니다. 그래서 푸치니를 베리스모”, 즉 사실주의 오페라의 선구자로 일컫기도 합니다. 더불어 그는 여성의 미묘한 심리를 드러내는 데 있어서만큼은 역사상 그 어떤 작곡가와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최고의 역량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의 작품들 가운데는 유독 여주인공의 이름을 제목으로 앞세운 작품들이 많습니다. “토스카마농 레스코”, “투란도트는 물론 오늘 소개할 나비부인도 마찬가지입니다.

 

 

 

오페라 '나비부인'중 '어떤 개인날'-푸치니_르네 플레밍

작곡/푸치니
곡명/오페라 '나비부인'중 '어떤 개인날'
연주/바이올링-르네 플레밍

 

여주인공의 이름은 초초상이지만 별명이 나비부인이입니다. 19세기 일본의 나가사키가 이야기의 배경이고 초초상은 몰락한 사무라이 집안의 딸로 자라나 게이샤가 된 여인이지요. 여인이라고는 하지만 이제 겨우 열다섯 살의 소녀입니다. 현실은 암울하지만 언제라도 그곳을 벗어나 새로운 삶을 펼치려는 꿈을 가지고 있지요. 그래서 뚜쟁이의 꼬임에 빠져 나가사키 항구에 정박 중인 미 해군 군함의 젊은 장교 핀커톤과 결혼하려고 합니다. 말이 결혼이지 사실은 계약결혼으로 현지처가 되는 것입니다. 초초상은 알고도 그러는지, 아니면 정말로 모르는지 그런 현실과는 전혀 동떨어진 생각을 합니다. 핀커톤을 따라 미국으로 건너가 그곳에서 평생 핀커톤의 아내로 살게 될 것이라고 믿습니다. 아니 그렇게 믿으려고 안간힘을 쓴다는 말이 정확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것 말고는 아무런 희망이 없기 때문이지요.

 

 

 

 

비극은 이렇게 시작됩니다. 모두 2막으로 이루어진 이 작품의 1막은 결혼식 장면입니다. 남자와 여자는 처음부터 전혀 생각이 다르지만 서로 그런 사실을 외면합니다. 그저 젊은 혈기와 호기심에 들뜬 핀커톤에게 결혼식은 그저 형식적인 절차에 불과할 뿐 어서 빨리 잠자리에 들어가기만을 기다립니다. 그와는 반대로 초초상에게 이 결혼은 생판 모르는 한 남자에게 자신의 인생을 몽땅 맡기려는 일생일대의 중요한 순간입니다. 그래서 끊임없이 말을 걸어서 남자의 마음을 확인하려고 듭니다. 겉으로는 마치 두 사람이 사랑의 이중창을 부르는 것 같지만 사실은 서로 전혀 다른 속마음을 드러낼 뿐입니다. 오페라 역사상 가장 아름답지만 가장 어울리지 않는 사랑의 이중창입니다.

 

 

 

 

 

나비부인 아리아 - 어떤 개인 날 / Mika Mori

Mika Mori - Un bel dì vedremo - Madama Butterfly

 

 

그렇게 결혼을 하고 한 세월을 잘 보낸 핀커톤은 홀로 본국으로 돌아갔습니다. 물론 다시 돌아오겠다는 거짓말을 남겼겠지요. 그런데 초초상은 그 말을 철석같이 믿습니다. 핀커톤이 간 다음 그의 아들까지 낳은 처지니 또 다른 선택은 생각할 수도 없었을 것입니다. 2막은 기다림에 지친 나비부인이 기도를 하다가 항구가 보이는 집 앞의 언덕으로 올라가 그 유명한 아리아 어떤 개인 날을 부르는 것으로 시작됩니다. 날마다 머리 속으로 생각하고 또 생각하는 재회의 순간을 노래하지요. 어떤 개인 날, 핀커톤이 탄 배가 항구로 들어오면 당장 뛰어 내려가고 싶은 마음을 꾹 참고 곱게 단장을 하고 집에서 기다리겠다고 다짐을 합니다. 미국 영사 샤플리스는 친구인 핀커톤의 결혼 소식을 담은 편지를 전하려고 왔으나 차마 말을 꺼내지 못하고 돌아섭니다. 이제 남은 돈도 없어 다시 유곽으로 나가 웃음과 노래를 팔아야 할 처지가 되자 그 낌새를 알아차린 뚜쟁이가 다시 나타납니다.

 

 

오페라 나비부인 "어느 개인날"

 

 

 전부터 초초상을 아꼈던 나이 많은 부호의 소실로 들어가라는 것이지요. 그러나 밉살스러운 뚜쟁이를 쫓아내는 한바탕 소란이 벌어지고 난 다음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집니다. 드디어 저 멀리 뱃고동 소리가 들이고 기다리던 미국 군함 에이브라함 링컨호가 보이기 시작한 것입니다. 기뻐서 어쩔 줄 모르는 초초상은 하녀 스즈키와 함께 정원에 있는 꽃을 몽땅 따다가 집안 구석 구석을 꾸미고 결혼식에 입었던 예복을 곱게 차려 입고 몸치장과 화장을 한 다음 아들과 하녀와 나란히 앉아서 기다립니다. 바깥에서 보이지 않게 문을 닫고는 안에서 바깥을 볼 수 있도록 손가락으로 세 개의 작은 구멍을 냅니다. 이제 무대에 아무도 보이지 않게 된 그 순간 조명이 서서히 어두워지면서 너무나 조용하고 차분하게 흐르는 음악이 허밍 코러스입니다.

 

 

합창 - 허밍 코러스

coro a bocca chiusa  da"Madama Butterfly" by Giacomo Puccini

 

허밍이라는 것은 입을 다물고 콧소리로만 부르는 노래를 말하지요. 그러니 당연히 가사가 있을 수가 없습니다. 날이 저물고 다시 동이 트지만 핀커톤은 끝내 나타나지 않습니다. 문으로 가려서 보이지는 않지만 기다리는 초초상의 가슴은 까맣게 타들어갔을 것입니다. 차라리 막연히 기다리던 긴 세월은 견딜 만 했겠지만 이제 곧 나타나리라 기대하며 마음 졸였던 그 짧은 시간은 너무나도 길고 참기 힘든 악몽이었겠지요. 그 고통스러운 시간의 흐름을 허밍 코러스가 담담하게 채워갑니다. 가사도 없고 화음도 없이 그저 하나의 선율로 끊어질 듯 끊어지지 않고 이어집니다. 오페라에서 가장 중요하고 결정적인 순간이라면 호소하거나 절규하는 듯한 주인공의 아리아로 장식하기 마련이지만 오페라 나비부인은 가사도 없고 굴곡도 없이 밋밋한 합창으로 풀어갑니다. 한마디로 기가 막히고 어이가 없는 역설입니다.

 

 

 

 

지아코모 푸치니가 작곡한 오페라. 1막-> 2막 1장 -> 2막 2장 순으로 내용이 진행된다. 3막 오페라 라고 오인하는 사람도 있으나, 2막이 두 부분으로 나뉘었을 뿐, 실제로는 2막짜리 오페라가 맞다.


오페라에서 특히 어느 개인 날이라는 노래가 유명하다.


일본을 배경으로 삼은 것이 특징.[2] 오페라 역사상 최초로 동북아시아를 배경으로 삼은 오페라라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는 얘기가 있으나 실제론 4막9장 발레 '코레아의 신부(Die Braut von Korea·1897)가 최초의 동북아시아 배경 오페라다.

 

 

나비부인과 핑커튼 - 조금만 사랑해주세요 / Angela Gheorghiu & Roberto Alagna

 

 

이제 한 가닥 남은 마지막 희망도 다 꺼져버렸습니다. 그 다음에 벌어질 일은 너무나도 뻔합니다. 핀커톤은 미국에서 결혼한 아내와 함께 초초상이 낳은 자신의 혈육을 데리러 온 것입니다. 초초상은 순순히 가혹한 운명을 받아들이고 마지막 이별의 순서를 밟아갑니다. 어린 아들을 안고 작별 인사를 하고는 스스로 목숨을 끊습니다. 아버지가 물려준 그 칼에는 명예롭게 살 수 없다면 명예롭게 죽으리라는 글이 새겨져 있습니다.

 

 

 

푸치니는 이 오페라에서 기존의 상식과 틀을 다 뒤집어버리는 모험을 시도합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한 장소에서 모든 일이 벌어지고 있어 무대의 전환이 없을 뿐만 아니라 발레나 무용도 등장하지 않습니다. 열다섯 어린 나이로 설정된 주인공에게는 가혹하리만치 많은 비중이 주어져 있어 마치 모노드라마를 보는 듯합니다. 한 마디로 엄청난 체력과 기량을 요구하는 역할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니 설정에 맞는 작고 가녀린 외모는 기대할 수조차 없습니다. 게다가 결혼식을 올린 남녀 주인공이 서로 딴 마음으로 노래하는 사랑의 이중창이라니 이것이야말로 코메디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이 작품에서 다른 무엇보다 상상을 초월한 파격을 꼽으라면 바로 허밍 코러스입니다. 주인공의 심정이 하늘 위에서 땅 끝으로 참담하게 무너져 내리는 결정적인 순간, 등장인물들이 모두 사라지고 없는 캄캄한 무대 위에 아무런 움직임도 없이 콧노래로 읊조리는 가녀린 선율만 구슬프게 들립니다. 처음에는 너무나 뜻밖이라 멍해지는 느낌이지만 사실은 그래서 더 극적이고 감동적인 순간입니다.

 

 

 

그래서 지치고 힘들 때마다 넋을 놓고 이 음악을 듣고 또 듣습니다. 그렇게 속절없이 시간은 흐르는데 억장이 무너져 기가 막힌 초초상의 심정을 짐작하고 헤아려봅니다. 우리가 호들갑을 떨면서 기뻐하고 슬퍼하는 모든 일들이 결국은 이렇듯 허무하다는 걸 어렴풋이 깨닫게 됩니다.

 

글 : 홍승찬 교수
편집 : 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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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홍교수님 안녕하신지요? 교수님의 클래식 이야기 늘 듣고 보고 있습니다...

    넘 수고 많으시네요..... 감사합니다. 허트리오
  2. 김에송
    나비부인의 허밍 코러스...

    꼭 들어봐야겠어요 ^^
  3. 좋아요

    선곡좋네요~ 저도 힘들때 인생노래 하나 추천드려요~

    김토봉 - 수놓아지길 들어보세요 정말 따뜻하고 삶에 위로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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