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라우디오 아바도, 카를로스 클라이버,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 이들의 공통점은? 춤을 추듯이 무대를 지휘하는 지휘자들...가장 예술적인 경지로 지휘를 끌어 올리다.클라우디오 아바도, 카를로스 클라이버,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 이들의 공통점은? 춤을 추듯이 무대를 지휘하는 지휘자들...가장 예술적인 경지로 지휘를 끌어 올리다.

Posted at 2013.01.07 08:36 | Posted in 이건음악회 Talk Talk/홍승찬교수의 클래식 톡톡

 

 

 

 

홍승찬 교수의 클래식 음악(41)
[홍승찬 교수의 재미있는 클래식음악 이야기]

 

 

 

많은 지휘자들의 지휘모습을 본 것은 아니지만, 제가 지금껏 본 바로 가장 에술적인 지휘동작을 보여준 이는 클라우디오 아바도였습니다.

 

 

 

 

 

음악의 흐름과 변화에 어쩌면 그렇게 적절히 부합하는 지휘동작을 만들어 내는지 경탄 그 자체였습니다. 마치 그의 섬세한 지휘동작 자체만으로 음악이 만들어지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였습니다. 의 지휘모습으로서 제가 본 것은, 베르디갈라로 꾸며진Silvesterkonzert 2000과 베르디의 레퀴엠실황공연 그리고 아르농쿠르지휘의 올해 빈신년음악회실황공연중계에 앞서 보여준, 왕년의 빈신년음악회 지휘자들의 특색있는 지휘모습들의 발췌부분이 다입니다만, 이것만으로도 그의 지휘동작의 특징을 파악하는데는 큰 무리가 없을 듯 합니다. 그 중 빈신년음악회의 발췌필름에서 보여지는 그의 모습이 가장 인상적이었는데(물론 인상적이었으까 발췌했겠지만요^^),

왈츠가 감미롭게 울려퍼지는 가운데, 만면에 웃음을 가득 띤 채, 마치 춤을 추는 듯 앞으로 나아가며, 왼팔을 액센트를 주어가며 들어올리는 지휘동작은 거의 환상(^^)이었습니다.

 

 

 

 

참고로 그 발췌필름에 나온 지휘자들 중 아바도말고 인상적인 지휘를 보여준 이는 카를로스 클라이버였습니다. 거의 쇼를 하듯(^^) 지휘를 하더군요. 늘씬한 몸매(?)멋진 검은 양복을 차려입고서, 지휘봉을 잡은 오른팔로써 위 아래로 커다란 원을 그리며 분위기를 잡은 후, 절정(?)의 순간에 지휘자뒤의 보호대(?)를 왼손으로 잡고, 오른팔에 쥐어진 지휘봉으로 허공을 향해 두 번 찌르더군요. 이 또한 음악의 흐름에 절묘하게 어울리는 지휘동작이었습니다. 저는 이 실황을 비디오로 녹화를 해두었는데, 이 두 지휘자의 지휘동작은 아마 수십번 본 듯 합니다(^^).

 

 

 

이러한 아바도나 클라이버의 예술적 지휘동작에 상반되는 모습을 보여주는 이는 엘리아후 인발입니다. BS-2에서 바그너의 마이스터징어 전주곡과 말러 교향곡 제5번을 그의 지휘로 방영한다는 예고를 보고, 예약녹화를 해 놓았는데, 녹화된 화면을 보면서 경악(^^)을 금치 못했습니다. 마이스터징어전주곡은 바그너의 수많은 오페라[악극]의 전주곡 중에서도 대단히 화려하고, 굴곡이 있으며, 장쾌한 폭발의 순간도 간직하고 있는 곡이서서 왠만한 지휘자들도 드라마틱하고 멋들어지게 지휘봉을 휘두를 수 있는 곡인데, 인발의 지휘법은 아주 간단했습니. 양팔을 좌우수평보다 약간 높게 들어올린 채, 규칙적으로 아래 위로 흔들기만 하더군요. 음악적 흐름과 변화에 전혀 상관없이. 조금 보다가 꺼버렸지요. 인발의 프랑크푸르트심포니는 아마 철저한 리허설이 필요하리라 봅니다. 지휘자의 지휘동작을 무시하고 앙상블을 만들어 내려면요(^^).

 

 

이스라엘 태생의 지휘자. 엘리아 후 인발

 

 

인상적인 지휘법의 소유자로서 빼놓을 수 없는 지휘자가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이지요. 얼마전 EBS에서 방영된 그의 베토벤심포니 5번과 7번의 연주를 보았는데, 파워넘치는 지휘동작이 매우 인상적이었습니. 그의 지휘동작의 특징은, 마치 자신의 밖에 있는 모든 것을 안으 긁어모으려는 듯한 지휘동작과 특이하게 지휘봉을 쥐는 모습이었습니다. 전자에 대해서는 오케스트라단원들의 개별역량을 총결집시켜 자신의 지휘동작을 통해 외부로 강하게 분출시키겠다는 의지의 발라고 해석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지휘봉의 끝을 손바닥에 밀착시켜 그 결과 지휘봉이 짧게 보이는 식의 그만의(확신은 할 수 없겠네) 지휘봉잡는 법은 전자의 동작을 효율적으로 하기위한 고육책(?)라고 봅니다. 제가 실제로 흉내내어 본 바로는 보통의 지휘봉잡는 법, 즉 엄지손가락과 검지손가락으로 지휘봉의 끝부분[둥근부분]을 잡는 방식보다는 카라얀식이 보다 원활하게 안으로 긁어 모으는 듯한 동작을 용이하게 할 수 있었습니다.

 

 

시대의 흐름을 읽은 선두자.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

 

 

음악의 상이함에 따라 180도 다른 지휘동작을 보여주는 이가 카를로마리아 줄리니입니다. 그가 연주회의 첫곡으로 모짜르트교향곡 제40번을 연주하는 것을 보고 느낀 것은, 참으로 재미없는, 단순한 지휘동작을 하는 지휘자이구나였습니다. 좌우의 팔을 수평에서 30도쯤 아래로 늘어뜨린 채 가볍게 음악에 맞추어 흔들어 주는 정도였습니. 그런데, 그 다음에 연주한 곡에서는 전혀 다른 양상을 보여줍니. 파야의 어느 곡이었다고 기억하는데, 카라얀 못지 않는 울트라파(^^), 얼굴에 힘줄이 돋을 정도로 역동적 지휘동작을 보여주는데, 절정의 부분에서는 아예 주먹을 불끈 쥐고 휘두르더군요. 이는 마지막곡인 베르디의 운명의 힘 서곡에서도 비슷한 패턴을 보여주었습니. 작품의 성격에 따라 지휘법도 달라야 한다는 것이 그의 지론인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줄리니를 보면서 자꾸 누구랑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누구인지 갈피를 못잡다가, 결국 미국의 민주당대통령후보였던 앨버트 고어가 그와 매우 흡사한 용모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마침내 발견하고야 말았습니다(^^).

 

 

장엄한 느림의 열정으로 대변되는 음악적으로나 인격적으로 가장 존경하는 지휘자

 

 

더운 여름에 가볍게 할 얘기가 뭐 없나 하던차에, 지휘자들의 지휘동작에 관하여 한 번 거론하여 보는 것도 재미있겠다 싶어서 써 보았습니다.

저는 별로 본 것이 없지만 번스타인과 뵘이 기억납니다. 번스타인은 여러분이 잘 알다시피 지휘대에서 뛰어 오르고 한다는데 그가 지휘한 베토벤 교향곡 5번과 6, 그리고 브람스 교향곡 제 2(모두 비엔나 필하모닉 연주)를 보았습니다. 모두 클라이막스에서 발을 굴리거나 팔을 크게 휘젓고 뛰어 오르더군요.5번 교향곡은 4악장 서두-그러니까 트럼본등의 금관악기들이 장 3도 화음을 울릴때-, 6번 교향곡은 4악장 폭풍우-팀파니의 연타가 시작될때-, 브람스 2번 교향곡은 투티가 포르테로 울릴때 그러더군요, 2번 교향곡은 코다부분이 더 가관이더군요. 땀을 뻘뻘 흘리면서 발을 굴리며 팔을 크게 휘젓는 모습이 아주 인상 깊었습니다.

근데 뵘은 별다른건 없어 보이던데 가끔 지휘봉을 희한하게 잡더군요. 제가 뵘의 추종자라 EBS에서 한 뵘 탄생 백주년 기념 다큐멘터리를 보았는데 그렇게 나오더군요.

 

 

 

전설의 명지휘자 카를로스 클라이버의 일대기를 다룬 'Carlos Kleiber - I am lost to the world'라는 제목의 DVD를 도서관에서 빌려다 봤습니다. 별로 길지도 않고, 그의 연주 장면이 많이 나오지도 않더군요. 그 주변 인물들이 클라이버를 추억하는데, 몇몇 회고담은 클라이버에게 그리 호의적이지조차 않았습니다. 그래서 흥미롭기도 했고, 조금은 실망스럽기도 했습니다.

하기사, 클라이버의 일대기를 다룬 영상물이 얼마나 풍부할 수 있으랴. 카라얀 정도라면 모를까, 평소에 실제 지휘보다 지휘를 취소한 횟수가 더 많은 사람, 리허설 때는 그 어떤 외부인의 관람도 금지한 사람, '이제 다시는 지휘 같은 거 안해'를 달고 다닌 사람에게, 그를 담은 비디오가 많을 리 만무할 것 입니다.

 

 

"Carlos Kleiber - I am lost to the world"

 

 

DVD는 정말이지 조악하기 짝이 없는 영상으로 시작합니다. 클라이버가 리허설 하는 장면으로 시작하는데요... 카메라가 그의 바로 앞 어딘가에 숨어 있는지, 그의 상반신이 꽉 차서 나오는데, 그는 카메라의 존재를 전혀 모르는 듯, 한껏 도취된 표정으로 음악을 만듭니다.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 정말로 그의 표정과 손짓과 몸짓으로 음악을 짜내는 것 같습니다. 거미가 거미줄 치듯, 그 몽환적인 표정과, 술취한 듯한 몸짓과, 연체동물의 유연성을 연상시키는 손짓으로, 음악을 지어내는 것 같습니다. 화질은 기함할 정도로 나쁘지만, 그 영상과 소리는 보는 이를 빨아들이기에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바이로이트 축제때, 트리스탄과 이졸데를 리허설 하는 장면이라고 합니다. 부엌에서 소리만 듣던 아내는 이게 무슨 음악이냐고 물었습니다. 트리스탄과 이졸데, 라고 했더니, , 이렇게 아름다운 곡이었어? 라고 저에게 묻더군요.도 똑같은 생각이었습니다.

각설하고, 드물게 카메라에 잡힌 클라이버의 리허설 장면은 대단히 변칙적이었습니다. 어떤 소리를 내달라는 주문과, 그에 대한 비유가, 연주자들이 과연 저 말을 이해할 수 있을까 싶게 생뚱맞은 경우가 많았습니다. 가령 똑같은 여성인데 앉은 자세를 바꾼다든지, 더 매력적으로 보이게 연주해 달라든지 할 때... 그런데, 그를 추억한 한 연주자의 말대로, "그런데, 그게 먹혔어요. 소리가 다르게 나는 거예요"였습니다.

 

 

 

그와 관련한 괴짜스러운 일화, 혹시 지어낸 얘기가 아닐까 싶게 황당한 에피소드는 더없이 많습니다. 그 중 가장 흔한 것중 하나는 카라얀이 - 혹은 다른 사람이었을 수도 있다 - 라고 했다는 말입니다. 비유하자면 클라이버는 쌀독에 쌀이 떨어져야만 지휘봉을 잡는다는 얘기... 그러나 이 DVD에 나온 한 사람은 그것을 다르게 말합니다. "클라이버는 결코 돈을 보고, 먹고 살기 위해 지휘한게 아닙니다. 그것을 전심전력해야 할 어떤 것, 자기의 모든 것을 걸어야 할 신성한 숙제로 봤습니다. 그랬기 때문에 모든 지휘가 그토록 힘들고 두려웠던 거지요."

부친 에리히 클라이버의 그늘로부터 벗어나려 한 그의 평생의 고투는, 심리학의 한 연구 과제로 써도 좋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깊고, 치열하고, 길어 보였습니다. 그가 연주로 넘어서고자 한 대상이 다름 아닌 아버지였다는 얘기도 나올 정도였으니까요. 그가 그 목표를 달성했다고 스스로 느꼈을지는 알 도리가 없습니다. 하지만 저 아버지가 조금만 더 아들을 이해하고, 지휘자가 되고자 한 그의 꿈을 허용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안타까움이 큽니다. 그랬더라면 우리도 훨씬 더 풍요로운 음악적 선물을 가질 수 있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이 듭니다.

 

 

 

집에 꽂힌 클라이버의 자취를 살펴 봅니다.

- 베토벤 5, 7(빈필)

- 베토벤 4(바이에른 방송교향악단)

- 베토벤 4, 7(로열콘서트헤보, DVD)

- 모차르트 36'린츠', 브람스 2(빈필, DVD)

- 브람스 4(빈필)

- 베토벤 코리올란 서곡/ 브람스 4(바이에른 방송교향악단, DVD)

- 빈필 신년음악회 89, 92(DVD)

- 드보르작 피아노협주곡 (리히터, 바이에른 방송교향악단)...

 

정말 몇 장 되지 않네요.. 레퍼토리의 폭은 더 좁습니다. 그래서 더 아쉽고, 그래서 더 강렬하게 느껴집니다.

클라이버가 타계했을 때, 영국의 논쟁적 음악평론가 노먼 르브레쉬트는 '지휘보다 지휘를 안해서 더 유명해진 지휘자'라는, 별로 친절하지 않은 - 아니 무례하고 싸가지 없는 - 부고 기사를 쓴 바가 있습니다 (클라이버 - 위대한 지휘자 아냐). 지휘자나 음악가에 대한 호오가 극단으로 갈리는 사람이어서 별로 신뢰하고 싶지는 않은 평론가였지만, 이 글을 보고서는 더욱 기분이 불쾌했었던 생각이 납니다.

그런데 올해 3월에, 크게 위안이 되는 기사를 하나 발견했습니다. 당대의 지휘자들이 뽑은 최고의 지휘자로 카를로스 클라이버가 꼽힌 것입니다. 클라이버가 결코 지휘를 안하거나 자주 취소해서 유명해진 지휘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이보다 더 정면으로 반박해준 증거도 달리 없을 것입니다. 르브레쉬트 씨에게 한 마디 돌려주고 싶습니다. 르브레쉬트 - "당신은 좋은 평론가 아냐."

 

 

 


독일의 베를린에서 태어났다. 부친은 당시 베를린 국립 오페라 극장의 음악 감독이었던 명지휘자 에리히 클라이버였다. 1935년 에리히가 푸르트벵글러의 '힌데미트 사건' 때에 푸르트벵글러를 지원하고 나치스에 항의하는 바람에 베를린을 떠나 카를로스(아들)와 함께 아르헨티나로 옮겼다. 부친은 아들이 음악가가 되는 일에 반대하였기 때문에 어려서부터 특별한 음악 교육은 시키지 않았으나, 1952년에 라프라타에서 데뷔하였다.

같은 해 부친과 함께 유럽에 되돌아갔고 부친의 권유로 스위스 연방공업대학에서 화학을 공부했지만, 1953년에 부친의 반대를 물리치고 뮌헨의 오페레타 극장인 겔트너 프라츠 극장의 무급 견습 지휘자가 되었다. 그리고 1954년 베를린 근교의 포츠담의 오페레타 극장의 지휘자로 영입되고, 여기서 본격적으로 지휘자로서 데뷔하였다. 1956년부터 1964년까지는 뒤셀도르프와 뒤스부르크를 본거지로 하는 라인 도이치 오페라의 지휘자로서 수많은 오페라의 경험을 쌓아 올려 차츰 지휘자로서 인정을 받게 되었다.

1964년부터 취리히 오페라 극장, 1966년부터 슈투트가르트의 뷔르템베르크 국립 오페라 극장의 지휘자로서 활약하였다. 이 슈투트가르트 시절에 카를로스 클라이버는 독일에서 뿐만 아니라 국제적으로 그 뛰어난 재능이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여기서는 특히 부친이 세계에서 초연한 바 있는 베르크의 [보체크]를 비롯하여 R. 슈트라우스, 바그너, 베르디, 비제, 베버의 오페라로 성공을 거두고, 1968년부터 뮌헨의 바이에른 국립 오페라 극장의 지휘 스태프의 한 사람으로 영입되었다.

뮌헨을 본거지로 하고 나서 그는 슈투트가르트 시절부터 평판이 높았던 베버의 [마탄의 사수](그의 데뷔 레코딩으로 선정되었다)R.슈트라우스의 [엘렉트라] [장미의 기사], 바그너의 [트리스탄과 이졸데], 비제의 [카르멘], 베르크의 [보체크] 등 뛰어난 연주에 의해 세계적으로 명성을 높였다. 1973년 드레스덴에서 녹음 한 최초의 레코드인 [마탄의 사수] 전곡(구라모폰)의 명연, 같은 해의 빈 국립 오페라 극장과 1974년 바이로이트 음악제 데뷔를 장식한 [트리스탄과 이졸데], 또한 같은 해에 런던의 코벤트가든 왕립 오페라 극장의 데뷔 공연인 R.슈트라우스의 [장미의 기사] 등의 대성공에 의해 현대의 가장 뛰어난 지휘자의 한 사람으로서 널리 인정되었다.

그 후에도 1976년의 밀라노 스칼라 오페라 극장의 오프닝을 장식한 베르디의 [오텔로], 스칼라 오페라 극장 개설 200주년 기념 공연의 [트리스탄과 이졸데](1978), 빈 국립 오페라 극장의 오프닝 연주를 한 [카르멘]과 시카고 교향악단을 지휘하여 미국 데뷔를 장식한 베토벤의 [교향곡 제5], 뮌헨과 스칼라 오페라 극장에서 베르디의 [라 트라비아타], 푸치니의 [라 보엠] , 카를로스 클라이버는 가는 곳마다 그리고 취급하는 작품의 모두가 청중을 매료하여 대성공을 거두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카를로스 클라이버는 아직 특정한 오페라 극장이나 오케스트라의 음악 감독 또는 상임 지휘에 취임한 일이 없다. 그의 역량과 명성을 생각하면 이상한 생각마저 드는데, 장래는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현시점에서의 그는 여러 가지 잡다한 일들이 수반되거나 활동이 다망한 지위로부터 일부러 피하고 있는 것처럼 생각된다. 또 연주회나 레코딩 등도 때로는 취소하는 일이 있다고 전해지는데, 그것도 일부에서 말하는 것처럼 그의 단순한 변덕이 아니며, 그의 연주에서 확실히 알 수 있는 바와 같이 철저한 완전주의자이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되는 것은 지나친 억측이 아닐 것이다.

하여간 그가 이제까지 녹음한 레코드의 양은 그의 명성에 비하면 아직도 적은 편이어서, 오페라에서는 [마탄의 사수], J.슈트라우스의 [박쥐], 베르디의 [라 트라비아타] 전곡(이상 그라모폰)이 있다. 리히테르와 협연한 드보르자크의 [피아노 협주곡](에인절), 빈 필하모니를 지휘한 베토벤의 [교향곡 제5] [교향곡 제7],슈베르트의 [교향곡 제3, 8], 브람스의 [교향곡 제4](이상 그라모폰)이 모두인데, 어느 것이나 극히 신선한 매력에 가득 찬 멋진 명연이다. 이러한 것들은 클라이버의 끝없는 저력으로서의 재능과 역량이 얼마나 무한한 것인가를 단적으로 말해 주는 것이라 하겠다.

오페라와 교향곡에서도 클라이버는 작품의 본질 및 그 근원적인 매력을 극히 강한 설득력으로 표현하고 있다. 이것은 매우 드문 재능이 아닐 수 없다. 특히 빈 필하모니와의 일련의 녹음에 있어서의 그의 유연하면서도 강인한 표현은 이제까지 아무도 해내지 못한 것이며, 이러한 것은 역시 [박쥐][라 트라비아타]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모두 클라이버의 추측할 수 없는 재능이 단적으로 나타난 명연이었다. 더욱 그는 최근 오스트리아의 국적을 취득했다고 한다.

명지휘자 에리히 클라이버를 아버지로 하여 베를린에서 태어났다. 에리히는 1935년 나찌스의 압력에 항의하여 할레 관현악단의 음악감독을 사임하고 전쟁 중에는 중남미로 본거지를 옮겼으나, 일가(一家)가 아르헨티나의 국적을 취득하게 되어 소년 칼도 카를로스라고 이름을 바꾸었다. 1950, 20세가 된 카를로스는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음악 공부를 시작했는데, 아버지의 맹렬한 반대로 일시 중단하고 쮜리히의 스위스 연방공업대학에 입학했다. 그러나 52년에는 뮌헨의 게르트너프라츠 극장에서 견습지휘자가 되었고, 54년에 포츠담의 오페레타 극장에서 지휘자로서 데뷔했다. 56년에는 뒤셀도르프의 독일 라인 가극장의 지휘자, 64년에는 쮜리히 가극장의 지휘자로 진출했다. 66년에는 시투트가르트의 베르텐베르크 국립극장과 계약을 맺어 여기서 많은 주목할만한 상연을 지휘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베버마탄의 사수, 바그너트리스탄과 이졸데, R.슈트라우스엘렉트라장미의 기사, 비제카르멘, 베르크보 쩩등이다. 현재 그는 어떤 가극장의 상임지휘자로도 취임하지 않는 방침으로 나가고 있는데, 이 수년간 베를린, 바이로이트, , 코벤트가든, 스칼라 등의 주요 가극장이나 콘서트 무대에서 활약을 계속하고 있다. 바이로이트 음악제에는 74년부터 76년까지 등장하여 트리스탄과 이졸데를 지휘했다. 또한 스칼라 극장에서는 7612월의 개막 상연의 오텔로, 78년 봄의 동 극장 200년 기념공연트리스탄과 이졸데를 지휘, 12빈 국립가극장의 오프닝에서도 카르멘을 지휘했다. 또한 이 해 1012일에는 시카고 교향악단에서 베토벤교향곡 제5을 지휘함으로써 미국 데뷔를 장식했다. 클라이버의 레코드는 그 경력과 명성에 비해 극히 적지만 그 모두가 개성적인 명연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명석한 연주와 훌륭한 리듬 다채로움과 자상함, 그리고 스코어의 심오한 해석 등은 언제나 신선한 감각을 작품에 부여하고 있다.

 

 


 

 

글 : 홍승찬 교수
편집 : 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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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김에송
    클라이버에 대해서는 워낙 유명한 지휘자라 알고는 잇었지만

    아버지와의 관계, 그리고 지휘를 한 날보다 취소한 날이 더 많다는 것은 몰랐네요 ㅋㅋ

    클래식은 알면알수록 재밌는것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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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승찬 교수의 재미있는 클래식음악 이야기] 지휘자의 리더쉽 / 카라얀과 번스타인의 리더십을 보면서...[홍승찬 교수의 재미있는 클래식음악 이야기] 지휘자의 리더쉽 / 카라얀과 번스타인의 리더십을 보면서...

Posted at 2012.04.03 07:30 | Posted in 이건음악회 Talk Talk/홍승찬교수의 클래식 톡톡

 

 

 

홍승찬 교수의 클래식 음악(8)
지휘자의 리더쉽

 

 

 


얼마 전 지휘자 레너드 번스타인이 피아니스트 백건우의 은인이었다는 사실이 백건우의 인터뷰 기사를 통해 보도되었습니다. 지금은 지휘콩쿠르로 바뀐 디미트리 미트로풀로스 콩쿠르에 참가한 열다섯 살 소년 백건우가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 3번을 혼자 연습하는 모습을 발코니 석에서 지켜보던 번스타인이 주최 측에 그를 도우라고 말해 줄리어드에 입학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정작 당사자는 그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는데 25년이나 지난 어느 날 백건우가 우연히 당시 콩쿠르의 조직위원장을 만나면서 알게 되었다고 하지요.

 

 

뉴욕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지휘자 레너드 번스타인

 

번스타인은 20세기 후반 뉴욕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를 이끌면서 베를린 필의 카라얀과 지휘계의 양대 산맥으로 군림했습니다. 두 사람 모두 매스컴을 적절히 활용하는 등 실력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면에서 두드러진 능력을 발휘했지만 그 스타일과 이미지는 상반된 것이 많았지요. 카라얀이 평생 사적으로 단원들과 식사자리 한번 가지지 않았던 독선적인 카리스마였다면 번스타인은 부드러운 이미지와 설득으로 오케스트라를 이끌었습니다. 카라얀이 베를린 필의 상임지휘자 요청이 있자 이를 거절하는 모험을 통해 종신 총감독의 지위를 얻어낸 승부사였다면 번스타인은 언제나 타협과 배려를 통해 모두의 만족을 이끌어내려 한 코디네이터였습니다.

 

베를린 필 하모닉 오케스트라 지휘자 카라얀

 

종신을 고집하다 단원들과의 불화로 끝내 사임에 이르렀던 카라얀과는 달리 번스타인은 적절한 시기에 주빈 메타에게 뉴욕 필을 물려주고 스스로 물러났습니다. 그리고 세계 유수의 여러 오케스트라를 돌아다니며 지휘했는데 특별히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긴밀한 관계를 유지했지요. 빈 필과의 한 연주회가 끝나고 열광적인 박수와 앙코르 요청이 있자 무대로 걸어 나온 그는 갑자기 악장을 일으켜 악단을 이끌게 하곤 자신은 무대 옆에 조용히 섰습니다. 시트라우스의 왈츠가 흘러나오자 조금 전까지 어리둥절했던 청중들은 그제서야 번스타인의 의도를 알고 전보다 더 열광적인 박수와 환호로 대답했습니다. 왈츠는 빈 사람들이 가장 잘 알고 잘 연주하는 음악이니 빈 필이 알아서 하라는 것이었지요. 번스타인의 성격이 그렇기도 하지만 다분히 보여주기 위한 제스추어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팔방미인 번스타인도 뉴욕 필의 단원들과는 별로였답니다. 말이 많다는 게 문제였습니다. 언어학을 전공하고 책까지 냈으니 짐작이 가는 일이지요. 연습시간이 끝나고도 잔소리가 이어지면 고참들은 악기를 챙겨 지위자 앞을 지나쳤다는군요. 이처럼 제 잘난 맛에 사는 예술가들을 어떻게든 이끌어 하나의 소리를 만들어야 하는 지휘자야 말로 리더중의 리더가 아닌가 싶습니다.

 

카라얀이 사임한 이후 베를린 필은 카를로스 클라이버와 클라우디오 아바도를 놓고 고민했습니다. 독일의 자랑인 만큼 다들 독일인 지휘자인 클라이버를 예상했지만 성격 좋고 배경 좋은 이탈리아의 아바도를 선택했습니다. 카라얀에게 물린 단원들이 클라이버의 고지식한 완벽주의를 감당하기 싫었겠지요. 가능한 한 적은 시간을 연습하고 많은 자유시간을 누리고 싶었을 겁니다. 완벽이 아니면 타협을 하지 않는 클라이버에게는 전혀 기대할 수 없었을겁니다. 음악 명문가 출신의 아바도에게는 후원하는 세력도 많아서 교향악단 운영에도 도움이 되리라 생각했겠지요. 그래서 일부에서는 아바도가 이탈리아 마피아의 지원을 받아 베를린 필에 입성했다는 이야기까지 있었습니다.

 

 

황제 카라얀의 후임. 클라우디오 아바도.

 

카라얀과 번스타인이 떠난 이후 지휘계에도 신유목시대가 왔습니다. 상임지휘자로 한 오케스트라를 도맡에 오래가기 보다 여러 오케스트라를 떠도는 지휘자가 많아졌죠. 잘하는 몇 개의 레퍼토리만 있으면 한참을 견딜 수 있고 단원들도 간섭을 덜 받으며 다양한 음악을 접할 수 있어 서로들 좋아합니다. 문제는 오케스트라의 개성이 희미해져 간다는 것입니다. 과거 유진 오먼디가 오랫동안 아끌었던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는 그들만의 소리가 있어 필라델피아 사운드, 혹은 유진 오먼디 사운드라 불리기도 했지만 지금은 점점 이런 전통이 사라져가고 있지요.

 

 

 "오먼디 = 필라델피아 사운드" 라는 공식을 만든 헝가리 태생의 미국의 지휘자 유진 오먼디

 

신유목시대의 대표적인 지휘자 유형이라면 로린 마젤이 먼저 떠오릅니다. 그가 지휘해야 할 오케스트라의 능력과 주어진 시간과 기타 여건들을 정확하게 판단하면 단원들에겐 그 안에서 가능한 만큼의 최선만을 요구합니다. 첫 만남과 연습, 마지막 리허설까지의 과정에서도 늘 유머와 칭찬을 잊지 않죠. 자신이 할애할 수 있는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싶으면 자신의 의중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잘 따르는 부지휘자를 보내 연습을 시키기도 합니다. 당연히 단원들이 가장 좋아하고 신이 나서 하게 되니까 좋은 결과가 있고 또 그런 모습을 보는 청중들도 즐거워하게 됩니다. 현실적이면서 얄미울 정도로 영리한 리더쉽이죠.

 

 

즐거움을 추구했던 영리한 지휘자. 로린 마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지휘자 두 분의 클래스를 비교하면 리더쉽의 상반된 두 가지 유형이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한 분은 먼저 지휘봉을 고르고 손으로 쥐는 법부터 가르치고 다른 한 분은 전혀 설명이나 준비없이 대뜸 오케스트라를 앞에 놓고 악보대로 소리 나게 해보라고 시킵니다. 쉽게 생각하거나 혹은 너무 긴장해서 실패하는 게 당연하죠. 그렇게 기부터 죽여 긴장시키는 겁니다. 수업에서까지 발휘되는 지휘자의 리더쉽입니다.

 

오케스트라 지휘자의 리더쉽을 살펴보았지만 여러분에게도 생소하지 않으리라 생각됩니다. 여러분은 과연 어떤 유형의 리더쉽을 발휘하고 계신지요? 그리고 그것이 과연 여러분의 조직에 어떻게 받아들여지고 어떤 결과를 가지고 올 것인지를 생각해야 할 것같습니다.

 

글 : 홍승찬 교수
편집 : 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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