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웨스트사이드 스토리”가 전하는 2013년 신년 메시지] “로미오와 줄리엣”이라는 고전을 당시의 뉴욕으로 배경을 옮겨 새롭게 해석하는 시도 어떠세요?[뮤지컬 “웨스트사이드 스토리”가 전하는 2013년 신년 메시지] “로미오와 줄리엣”이라는 고전을 당시의 뉴욕으로 배경을 옮겨 새롭게 해석하는 시도 어떠세요?

Posted at 2013.02.18 09:33 | Posted in 이건음악회 Talk Talk/홍승찬교수의 클래식 톡톡

 

 

 

 

 

 

홍승찬 교수의 클래식 음악(44)
[홍승찬 교수의 재미있는 클래식음악 이야기]

 

 

뮤지컬 웨스트사이드 스토리가 전하는 2013년 신년 메시지

 

 

 

 

2012년의 시작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한해가 다 저물고 새해도 2달이 지나가려 합니다.

삶이 점점 더 팍팍해져서 그런지 뒤돌아볼 겨를도 없이 앞만 보고 달려왔나 봅니다. 지금으로부터 반세기 전 바다 건너 멀리서 벌어진 수많은 일들이 오늘날 우리네 삶을 송두리째 바꿔놓았는데도 잠시 바쁜 걸음을 멈추고 그 시절을 되새겨 볼 여유조차 없었나 봅니다. 50년 전인 1962, 헐리웃을 훌쩍 넘어 전 세계 젊은이들의 우상이었던 시대의 반항아 제임스 딘이 자동차 사고로 죽었고 세기의 연인 마릴린 먼로도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들은 갑작스런 죽음으로 오히려 더 많은 사랑을 받았고 그로 말미암아 바야흐로 대중예술의 시대를 열어놓았습니다. 같은 해 비틀즈는 2년간의 시행착오를 거쳐서 마침내 새로운 출발을 선언했습니다. 그리고 바로 그해 비틀즈와 함께 브리티쉬 록의 신화를 써내려간 롤링 스톤즈의 역사가 시작되었죠. 그리고 브로드웨이를 뿌리째 흔들어놓았던 뮤지컬 웨스트사이드 스토리가 드디어 1961년 영화로 만들어져서 미국 전역은 물론 지구촌 곳곳에 배급되어 아메리칸 드림의 충격을 전파하기 시작한 것도 바로 이듬해인 1962년부터였습니다.

 

 

 

 

 

웨스트사이드 스토리는 거의 모든 면에서 이전의 뮤지컬을 송두리째 뒤집어놓았습니다.로미오와 줄리엣이라는 고전을 당시의 뉴욕으로 배경을 옮겨 새롭게 해석하는 시도도 전에 없던 일이었고 주로 노래와 연기로 이끌어 가던 북 뮤지컬의 전통을 벗어나 춤을 가장 먼저 앞세운 것도 처음이었습니다. 이 작품을 처음으로 생각했고 안무와 연출까지 도맡았던 제롬 로빈스는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뿐만 아니라 왕과 나”, “피터팬”, “지붕 위의 바이올린과 같은 뮤지컬의 안무를 맡기도 했지만, 현대무용과 발레 안무가로도 그 못지않은 업적과 명성을 쌓은 인물입니다. 그 탁월한 능력으로 이미 1949년 미국 발레의 초석을 놓았던 조지 발란신이 그를 뉴욕시립발레단의 공동 예술감독으로 임명했을 정도였지요. 로빈스와 의기투합하여 대본을 맡았던 아서 로렌츠는 희곡과 뮤지컬 대본뿐만 아니라 연출자로 토니상을 수상했는가 하면 히치콕의 영화 터닝 포인트의 시나리오를 써서 골든 글로브 상을 받았을 만큼 발군이었고 작사를 맡은 스티븐 손드하임은 당시는 무명이었지만 이후 그의 작업이 바로 브로드웨이 뮤지컬의 역사라고 할 만큼 전설적인 인물입니다.

 

 

 

 

 

그러나 이 작품에 참여한 주도적 인물들 가운데 가장 큰 관심을 불러일으켰고 또 논란의 중심에 있었던 사람은 작곡을 맡은 레너드 번스타인이었습니다. 뉴욕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지휘자로서, 또 클래식 음악 작곡가로서 미국의 자존심을 대표하고 있는 그가 대중들을 위한 쇼비지니스의 세계에 뛰어든 셈이었으니까요. 말하자면 작업에 참여한 인물들 모두가 당대의 최고들이었지만 오히려 이 때문에 제작자들이 선뜻 나서지를 않았습니다. 그 면면들이 너무나도 개성이 강했고 작품의 성격 또한 전에 없이 실험적이었기에 제작비 부담이 컸고 또 그만큼 위험도 크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뮤지컬의 연극적인 요소가 강조되던 때에 춤을 앞세운 것도 부담스러웠지만, 레너드 번스타인이 추구하는 클래식 음악이 뮤지컬과는 전혀 맞지 않는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였던 것이지요. 결국 투자자를 얻지 못한 채 작업에 들어가야 했고 때문에 리허설에 들어가기 두 달 전에 제작자가 그만두는 사태까지 벌어졌지만 이때 손드하임이 유능한 젊은 제작자 해롤드 프린스를 영입함으로써 위기를 넘기게 됩니다. 우여곡절 끝에 막이 올라가자 이번에는 작품에 대한 서로 상반된 평가가 맞서면서 브로드웨이가 발칵 뒤집어집니다. 그러나 호평이든 혹평이든 이 작품이 이전에는 한 번도 없었던 완전히 새로운 시도임을 부인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지요. 춤으로 시작하여 춤으로 끝나는 것부터도 그렇고 뮤지컬이라면 지금도 헤피엔딩이 당연한 것임에도 비극적인 결말을 시도한 것도 논란을 피할 수 없는 부분이었습니다. 그것도 너무나 고전적인 로미오와 줄리엣을 가져다가 당시 미국 사회가 안고 있는 가장 민감한 갈등을 드러내고 비판했다는 것이 파격이고 충격이었던 것이지요. 게다가 손드하임은 거리의 젊은이들이 쓰는 언어를 그대로 가사에 사용함으로써 작품의 메시지를 더욱 생생하게 전달했고 번스타인의 음악이 그 가사에 영원한 생명을 불어넣었지요. 단순하고 아름다운 선율을 풍부한 오케스트라 사운드와 현대음악 기법에 녹여낸 번스타인의 음악이야말로 이후로도 비교될 만한 작업이 없을 정도로 압권이었습니다.

 

 

 

 

로미오와 줄리엣과는 달리 웨스트사이드 스토리는 지고지순한 남녀의 사랑에 앞서 사회적 갈등을 부각시킨 작품입니다. 이민의 역사가 거듭되어 온 미국, 특히 뉴욕에서는 늘 되풀이되어온 일이지만 당시는 푸에르토리코 이민자들이 빈민가를 형성하며 사회적인 갈등을 빚고 있었습니다. 줄리엣에 해당하는 마리아는 바로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며 미국으로 온 푸에르토리코 이민자의 딸로 옷 가게 점원으로 일합니다. 반면 로미오에 해당하는 토니는 폴란드계 이민자의 아들로 리프와 함께 제트파를 만든 장본인입니다. 서유럽 이주민들에 이어 미국으로 들어온 동유럽 이주민들이 이제 막 하층 계급을 형성하여 겨우 자리를 잡고 있을 무렵 푸에르토리코 이주민들이 밀려들어오면서 그들의 일자리를 위협하게 된 것입니다.

 

 

 

1961년 영화 버전을 Mark Seliger 에 의해 새롭게 만들고있습니다.

출처 : http://www.vanityfair.com/culture/features/2009/03/west-side-story-portfolio200903?slide=2#globalNav

 

 

폴란드계의 제트파는 푸에르토리코 출신의 샤크파와 구역을 놓고 서로 대립합니다. 제트파의 두목 리프는 샤크파의 세력이 점점 커지자 지금은 무리에서 빠진 토니가 다시 합류하기를 바랍니다. 체육관 댄스파티에서 제트파와 샤크파가 만나 긴장감은 고조되는데 그곳에서 토니는 제트파의 두목 베르나르도의 여동생 마리아를 만나 사랑에 빠집니다. 사소한 갈등 끝에 제트파와 샤크파가 결투를 벌이기로 한 날 마리아의 간청으로 이들의 싸움을 말리러 온 토니는 베르나르도가 친구인 리프를 죽이자 순간 싸움에 휩쓸려 베르나르도를 찌르고 맙니다. 토니가 오빠를 죽였다는 말을 들은 마리아는 크게 충격을 받고 슬픔에 빠지지만 사랑으로 그를 용서하고 함께 그곳을 떠나기로 합니다. 마리아의 마음을 전하러 제트파에 간 아니타는 제트파 일당에게 능욕을 당하자 분노로 이성을 잃고 토니에게 샤크파의 치노가 마리아를 죽였다는 거짓말을 합니다. 모든 희망이 사라진 토니는 거리로 뛰쳐나와 자신도 죽여달라며 치노를 찾는데 살아있는 마리아를 발견하고 다가서려는 순간 치노가 쏜 총에 맞아 마리아의 품에 안겨 숨을 거둡니다.

 

 

 

 

영화로 이 뮤지컬을 본 사람들은 마리아 역을 맡은 나탈리 우드가 토니의 시신을 안고 절규하는 마지막 모습을 잊지 못할 것입니다. 그리고 토니와 마리아가 함께 부르는 사랑의 이중창 투나잇 Tonight'과 마리아를 처음 본 순간 사랑을 느끼게 된 토니가 부르는 노래 마리아 Maria'도 너무나 아름답지요.

 

 

토니와 마리아가 함께부르는 "Tonight"

 

 

 

토니가 부르는 노래 "Maria"

 

 

그리고 댄스파티에서 푸에토리코 처녀들이 아메리칸 드림의 실상과 허상을 비꼬는 듯 주고 받는 아메리카 America'도 빼놓을 수 없는 명곡입니다. 그러나 사실 이 작품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가장 분명하게 담고 있는 노래는 바로 토니와 마리아가 함께 부르는 섬웨어 Somewhere'일 것입니다.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America"

 

 

There's a place for us

Somewhere a place for us

Peace and quiet and open air

Wait for us somewhere

There's a time for us

Someday a time for us

Time together with time spare

Time to learn, time to care

Someday!

Somewhere!

we'll find a new way of living

We'll find a way of forgiving

Somewhere...

There's a place for us

A time and place for us

Hold my hand and we're halfway there

Hold my hand I'll take you there

Somehow!

Someday!

Somewhere!

 

 

 

토니와 마리아가 함께 부르는 섬웨어 Somewhere'

 

 

 

우리를 위한 곳

어딘가 우리를 위한 곳이 있을거야

평화롭고 고요하고 활짝 열린 그곳이

어딘가에서 우리를 기다리겠지

우리를 위한 시간

언젠가는 우리를 위한 시간이 있을거야

우리가 함께 지내면서

서로를 이해하고 서로를 아껴줄 수 있는 시간이

언젠가!

어딘가에서!

우리는 새로운 삶의 방식을 찾고

용서하는 방법을 알게 될거야

어딘가에서는...

우리를 위한 곳

우리를 위한 시간

내 손을 잡으면 이미 그곳으로 가고 있을거야

내 손을 잡으면 내가 그곳으로 데려다 줄게

어떻게든!

언젠가는!

어딘가에는!

 

 

 

 

한 해가 저물고 새해가 밝았습니다. 모두들 해묵은 마음의 찌꺼기는 다 버리고 가벼운 마음으로 다가오는 2013년을 보내시기 바랍니다. 서로를 용서하고 위로하는 넉넉한 마음으로 모두가 함께 껴안을 수 있는 그런 한 해이기를 바랍니다. 언젠가 어딘가가 아니라 바로 지금 우리 마음에서 사랑과 평화를 찾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모두의 평화를 빕니다.

 

 

글 : 홍승찬 교수
편집 : 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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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잘보고 갑니다! 뮤지컬 안본지 오래됬는데..ㅎㅎ 생각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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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곡가 진은숙의 숨은 매력, 진정한 힘] 천재적인 능력? 누구보다 노력했던 그녀. 솔직하고 무모하기까지 한 그녀의 열정과 자신감을 들여다보자.[작곡가 진은숙의 숨은 매력, 진정한 힘] 천재적인 능력? 누구보다 노력했던 그녀. 솔직하고 무모하기까지 한 그녀의 열정과 자신감을 들여다보자.

Posted at 2013.02.05 16:41 | Posted in 이건음악회 Talk Talk/홍승찬교수의 클래식 톡톡

 

 

 

 

홍승찬 교수의 클래식 음악(43)
[홍승찬 교수의 재미있는 클래식음악 이야기]

 

 

 

작곡가 진은숙의 숨은 매력, 진정한 힘

 

지난 달 2, 작곡가 진은숙이 호암상을 받았습니다. 언제인지 정확하게 생각이 나지 않지만 호암상 수상자 후보를 추천하라기에 작곡가 진은숙을 추천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 때 수상하지 못해 아쉬웠기에 이번 수상소식이 더욱 반가웠습니다. 2004년 음악계의 노벨상이라는 그라베마이어 작곡상을 수상했을 때나 2005년 작곡가가 살아서 받을 수 있는 최고의 영예라고 하는 아르놀트 쇤베르크 음악상을 받았을 때도 이만큼 기쁘지는 않았습니다. 서울음대에 재학하던 시절에 벌써 국제 작곡 콩쿠르를 석권했고 이듬 해 독일로 유학간 이후 지금까지 꾸준히 세계무대에서 그 역량을 인정받으며 이런 저런 쾌거를 거두었지만 유독 우리나라에서는 그 만한 평가를 받지 못해 안타까웠기 때문입니다. 그러다 2007년 대원음악상의 작곡상을 수상했을 때도 무척이나 흐뭇했지만 대상이었으면 더 좋았을 걸 하는 아쉬움이 있었습니다. 이렇듯 그가 우리들 가운데 자리 잡고 인정받는 것에 의미를 부여하는 까닭은 그 무엇에도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그의 삶을 존중하고 동경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업적을 이루기까지 천부적인 재능과 노력이야 두 말할 필요도 없겠지만 오늘의 그를 있게 한 또 다른 힘이라면 솔직하고 무모하기까지 한 그의 열정과 자신감이 아닌가 싶습니다.

 

 

 

 

전공은 달랐지만 음악대학 4년을 함께 보내면서 가까이서 늘 그를 지켜보았고 또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그 때는 잘 몰라서 그런가 보다 하며 지나갔지만 이제 와 돌이켜 보면 학교 수업에서 배울 수 없는 많은 것들을 밥 먹고 술 마시며 나누었던 이런 저런 이야기로부터 얻었고 그렇게 수없이 많은 밤을 고민으로 지새웠습니다. 전공과 관련된 모든 수업에서 홀로 두드러졌던 그를 부러워하는 이들도 많았고 더러는 시기하는 이들도 있었습니다. 공포의 시창청음 시간, 선생님이 피아노로 치는 바흐의 첼로 모음곡 프렐류드를 딱 한 번 듣고 오선지에 고스란히 옮겨 적은 이는 진은숙 밖에 없었습니다. 남들은 2년을 꼬박 그 수업을 들었지만 그는 그날 이후 다시는 나타날 필요가 없었지요.

 

 

 

 

나중에야 알았지만 그의 이런 남다른 능력은 절대로 타고난 것만이 아니었습니다. 교회에 다니며 피아노를 알게 되었지만 어려운 집안 형편에 독학으로 공부할 수밖에 없었고 선생님의 권유로 작곡 공부를 시작한 다음에도 악보 살 돈이 없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늘 악보를 빌려다 베껴야 했고 유독 좋아했던 차이코프스키의 교향곡 비창은 수백 번이나 베끼고 또 베꼈습니다. 여고시절 음악 감상실을 홀로 차지하고 앉아서는 날마다 밤늦게까지 음악을 듣는 바람에 그곳을 관리하던 교감 선생님으로부터 열쇠를 넘겨받는 특혜 아닌 특혜를 누렸고 당시의 LP 음반은 잡음이 나서 더 이상 틀 수 없을 정도로 혹사당했다고 하지요.

 

 

 

 

피아노도 누구보다 뛰어나 피아노 전공 학생들보다 반주자로 더 인기가 많았습니다. 처음 보는 곡도 바로 반주가 가능했고 심지어 곡의 핵심을 파악하고 풀어서 가르치고 이끌기까지 했으니까요. 언젠가 연습실에서 독일 가곡에 대해 서로 이야기를 나누다가 그의 반주로 슈베르트의 가곡 몇 곡을 부른 적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서로 약속하기를 나중에 함께 슈베르트의 겨울 나그네로 독창회를 열자고 했었지요. 언젠가 우연히 그를 만나 그 때의 약속을 상기시켰지만 그는 전혀 기억하지 못했습니다. 예전에도 그랬듯이 지금도 여전히 솔직하고 담백했습니다. 그리고 바로 이런 모습이야말로 그의 진정한 매력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에게 있어 지난 일은 지나가면 그저 그만이지 애써 돌아볼 까닭이 없는 것이고 그의 시선은 항상 앞을 바라보며 다가올 무엇인가를 열심히 찾을 따름입니다. 그래서 그런 그의 눈에는 남들이 보지 못하는 무엇인가가 나타나고 보이는 것이지요.

 

 

 

 

언제나 그는 다른 사람들의 시선이나 오해는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의 생각을 거침없이 토로했고 또 행동으로 보여주었습니다. 누가 뭐래도 나는 나였고 너는 너였습니다. 싫으면 싫다고 했고 좋으면 좋다고 했지요. 남과 달라서 불편한 것도 없었고 나와 다른 남을 설득하거나 밀어내려 들지도 않았습니다. 그것이 누구에게는 잘난 척으로 여겨졌고 또 누구에게는 이기적이고 독단적으로 받아들여지기도 했지지요. 그래도 그는 늘 씩씩했습니다. 모습도 한결같았지요. 키가 작아 언제나 높은 구두를 신었고 긴 생머리를 휘날리며 고개를 꼿꼿이 치켜들고 곳곳을 활보하고 다녔습니다. 누구에게나 스스럼없이 말을 걸었고 어떤 만남이나 대화도 망설이거나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스스로 하고 싶은 일과 반드시 해야 할 일은 미친 듯이 열심히 했습니다.

 

 

 

 

그 때는 생각이 짧고 어리석었습니다. 그래서 그런 그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지요. 뛰어난 재능과 노력은 인정했지만 지나치게 솔직하고 너무나 자유로운 그의 생각과 말과 행동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이제 나이가 들고 조금이나마 철이 들고 보니 전에는 몰랐던 것을 깨닫게 됩니다. 다들 소통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면서 도대체 소통이 안 된다고 난리들입니다. 그런데 사실은 서로 달라서 그런 것이 아니라 서로에게 정직하지 못하고 스스로 자유롭지 못해서 서로가 다른 것을 이해하고 존중하지 못해서 그렇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지요. 우리가 그렇게 대단한 것처럼 떠받드는 문화라는 것도 결국은 소통의 결과입니다. 서로를 속속들이 알아서 다른 것은 존중하고 같은 것은 공유하는 것이지요. 예술을 문화의 상징이나 표상으로 여기는 것은 예술이야말로 존중과 공유의 절정이자 극치이기 때문입니다. 존중하고 공유하면 공감하여 감동하게 되는데 이것이야말로 예술이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바입니다. 그러니 정직하지 않고 자유롭지 못한 예술가가 어떻게 사람들과 소통하고 공감하여 감동을 줄 수 있단 말입니까.

 

 

 

오래 전에, 그것도 겨우 4년을 함께 학교 다닌 인연으로 누군가를 두고 이러쿵저러쿵 할 수 있는 것은 그 사람이 언제나 앞과 뒤가 전혀 다르지 않았고 스스로 늘 거리낌이 없었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그리고 꽤 많은 시간이 흐른 지금에 와서도 옛 모습을 생생하게 기억하는 것은 그 때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당당하고 자유롭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작곡가 진은숙을 누구보다 높이 평가합니다. 그 자신이 그런 것처럼 그의 작품도 거짓 없이 치열하며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정신으로 끊임없이 무엇인가를 찾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아마도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상임지휘자 사이먼 래틀은 차세대 세계 음악계를 이끌 다섯 명의 작곡가들 가운데 하나로 그를 꼽았을 것입니다. 그런 평가와 업적을 운운하기 이전에 그를 생각하면 그냥 기분이 좋습니다. 생각 같아선 지금이라도 당장 밥 한 끼 같이 하며 술잔을 권하고 싶지만 연락해서 따로 날을 잡고 싶지는 않습니다. 오다가다 서로 보게 되면 혹시나 모를까 일부러 그럴 일은 아닌 까닭이지요. 멀리서 지켜보는 것만으로 이렇게 뿌듯하고 흐뭇한데 그가 누리고 있는 자유를 손톱만큼도 건드리고 싶지 않은 까닭입니다.

 

 

 

 

글 : 홍승찬 교수
편집 : 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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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김에송
    작곡가 진은숙에 대해서는 많이 들어보았지만

    이렇게 자세하게 얘기를 듣기는 처음이네요.

    정말 대단하신 분이군요. 언젠가 진은숙작곡가님의 곡을 꼭 들어볼거에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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