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승찬 교수의 클래식 이야기] 스트라빈스키의 “봄의 제전” - 태초에 리듬이 있었다?[홍승찬 교수의 클래식 이야기] 스트라빈스키의 “봄의 제전” - 태초에 리듬이 있었다?

Posted at 2017.10.25 07:38 | Posted in 이건음악회 Talk Talk/홍승찬교수의 클래식 톡톡

 

미국 프로 야구 메이저 리그 경기에서는 투수가 마운드에 오를 때나 타자가 타석에 들어설 때면 그 선수만의 음악을 틀어줍니다. 대게는 해당 선수의 취향이나 이미지에 맞는 음악을 고르기 마련인데, 힙합이나 록 음악, 혹은 라틴 음악과 댄스 음악에 이르기까지 그 종류가 참으로 다양하지만 지금껏 클래식 음악을 쓰는 경우는 없었습니다. 그런데 피츠버그의 지역 언론 피츠버그 포스트 가제트의 클래식 음악 전문 칼럼니스트 리즈 블룸은 야구보다 더 클래식한 것이 어디 있겠는가?”라는 칼럼을 통해 피츠버그 파이어리츠 선수들의 등장 음악으로 어울릴 만한 클래식 음악을 제안하면서 우리나라에서 건너가 맹활약을 펼치고 있는 강정호 선수에게는 스트라빈스키의 발레음악 "봄의 제전"을 추천했다고 합니다.

  

니진스키가 안무한 <봄의 제전> 발레 장면(출처 : http://blog.daum.net/spdjcj/2524)

 

1913년 파리의 샹젤리제 극장에서 디아길레프의 러시아 발레단이 초연한 발레 "봄의 제전"은 막이 열리고 얼마지 않아 객석이 술렁이고 야유가 쏟아지며 더러는 도중에 나갔는가 하면 심지어는 관객들 사이에 언쟁과 폭력이 벌어져 경찰까지 나서야 했던 희대의 화제작이었습니다. 봄을 맞이한 원시부족의 젊은이들이 남녀가 서로 어울리는가 싶더니 짝을 찾는 약탈이 벌어지고 뒤이어 등장한 원로들은 그들 가운데 순결한 처녀를 골라 봄의 신에게 제물로 바친다는 설정부터가 파격인데다가 갈등과 반전도 없이 그것이 이야기의 전부라는 것도 전에 없는 사건이었습니다. 막이 오르자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는 듯 나른하고 몽롱한 파곳 소리에 이어 갑자기 오케스트라의 모든 악기들이 선율도 화성도 팽개치고 마치 태고의 전사들이 결전을 앞두고 흥분하여 방패를 두들기며 발을 구르는 듯 도발적이고 충동적인 리듬을 거듭 반복하는데 이것이야말로 당시로서는 충격 그 자체였을 것입니다. 게다가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안짱 다리로 걷다가 제자리에서 뜀박질까지 하는 부족 처녀들의 군무는 우아한 발레는 고사하고 아무리 봐도 도저히 춤이라고 할 수 없는 기괴한 몸짓이었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공연을 준비한 당사자들은 이런 파장을 예상했을 뿐만 아니라 그것을 계기로 주목을 받으리라 기대했다는 사실입니다. 소동이 벌어지자 디아길레프는 객석의 조명을 켰다가 다시 끄기를 반복하며 관객들을 진정시키려 했다지만 오히려 그 때문에 더 큰 소란이 벌어졌는데 알고보니 그것이야말로 디아길레프가 의도했던 치밀한 각본이었다는 정황과 주장이 제기되기도 했습니다. 말하자면 그야말로 오늘날 성행하고 있는 '노이즈 마케팅'의 원조였던 셈입니다.

 

출처 : https://brunch.co.kr/@yoonballet/36

 

"봄의 제전"은 발레뿐만 아니라 음악에 대한 기존의 통념들을 뒤집으며 새로운 방향으로 나가는 계기를 마련하게 됩니다. 태초의 음악이 그랬던 것처럼 리듬이 음악의 가장 중요한 요소로 등장하면서 선율과 화성이 한 걸음씩 뒤로 물러나게 되었고 기존의 규칙적인 박자에서 벗어난 다양한 리듬들이 시도되고 수용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로 말미암아 이고르 스트라빈스키는 "원시주의"라 일컬어진 새로운 음악의 선구자로 떠올랐고 한 옥타브 안의 12 반음을 빠짐없이 사용한다는 "12음 기법"의 창시자 아르놀트 쇤베르크와 더불어 20세기 현대음악의 가장 중요한 창시자로 인정받게 되었습니다.

 

이고르 스트라빈스키(출처 : http://www.gaeksuk.com/atl/view.asp?a_id=1111)

 

비단 음악이나 발레 뿐만 아니라 당시 유럽이 처한 상황은 거의 모든 영역에서 파국으로 치닫는 중이었고 더 이상 타협이나 절충으로 늦추거나 돌이킬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음악에서 쇤베르크의 선택은 기존의 질서를 거부하고 새 질서를 만드는 것이었고 스트라빈스키의 대안은 지금까지에 연연하지 말고 처음으로 돌아가자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스트라빈스키의 이런 생각은 내면에 잠재된 천성이나 본능도 아닐 뿐더러 자라면서 다져진 신념이나 철학도 아니었습니다. 시대를 앞서갔다고는 하나 사실은 시대의 흐름을 먼저 읽고 그 길목을 지키고자 했던 것입니다. 전작인 "불새""페트루슈카"에서는 러시아의 설화와 민속음악을 바탕으로 "민족주의"를 표방했는가 하면 1차 세계대전으로 대규모 공연이 어렵게 되자 고전주의 시대 이전의 실내악을 되살리는 "신고전주의"를 내세웠고 2차 세계대전을 피해 미국으로 건너가서는 "12음 기법"을 활용하는 작품을 내놓았습니다. 그에게 있어 창작은 그의 삶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일 뿐만 아니라 삶에 대한 태도이자 삶의 방편이기도 했습니다. 집에서 작업할 때도 그는 마치 직장인처럼 날마다 같은 시간에 작업실로 들어갔다가 같은 시간에 나오는 습관을 지켰으며 기존의 다른 음악에서 무엇인가를 가져다 쓰는 일에 조금도 주저함이 없었습니다. 표절과 인용에 관한 한 음악사를 통털어 헨델과 쌍벽을 이루는 경지라고 하지만 서로가 살았던 시대가 다르고 표절에 대한 인식이 후대로 갈수록 엄격해졌음을 감안하면 스트라빈스키가 단연 한수 위가 아니었나 생각됩니다.

 

 

1882년 상트 페테르스부르크에서 러시아를 대표한다고 할 만큼 뛰어난 베이스 가수였던 페드로 스트라빈스키의 아들로 태어난 이고르는 아버지의 뜻을 따라 법대에 진학했지만 타고난 피는 속일 수 없어 학교는 다니는 둥 마는 둥 음악에만 온통 한눈을 팔았습니다. 그러다 당대를 대표하는 러시아 작곡가이자 명교수였던 림스키코르사코프의 눈에 든 그는 스승의 무조건적인 사랑과 가르침을 받아 나날이 성장했고 마침내 20세기 발레의 모든 것을 누구보다 앞장서서 개척했던 제작자이자 흥행사 디아길레프의 인정을 받기에 이릅니다. 그리고 디아길레프의 러시아 발레단과 함께 파리를 정복하고 세계를 이끌어가게 됩니다. 마치 아버지라도 되는 듯이 스트라빈스키를 끔찍이 아꼈던 림스키코르사코프였건만 그토록 작곡가가 되고 싶었던 디아길레프에게는 간절한 꿈을 접도록 냉정하게 충고했다고 하니 이건 또 무슨 운명의 장난인지 모를 일입니다.

 

러시아의 작곡가 니콜라이 안드레예비치 림스키코르사코프(출처 : http://blog.daum.net/2102023/2)

 

"봄의 제전"의 기적은 우연히 만들어진 것이 아닙니다. 창의적인 아이디어와 그것을 음악으로 만들어낼 능력을 가졌던 스트라빈스키가 있었고 그에게 재능의 씨앗을 심어준 아버지가 있었습니다. 마침 같은 시대에 그의 재능을 알아보고 키워준 림스키코르사코가 있었는가 하면 역시 그의 가능성을 인정하여 마음껏 그 능력을 펼칠 기회를 준 디아길레프도 있었습니다. 게다가 디아길레프의 발레단에는 그 시대를 대표할 만한 예술가들이 다 모여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그들은 모두가 하나같이 무모했습니다. 무어라 설명할 순 없지만 강렬하게 그들을 이끄는 본능을 믿고 따랐습니다. 그것은 지성에 길들여져 오래도록 숨죽이고 있었던 야성이었습니다. 야성을 깨워 지성을 마주하니 이 모든 것이 조화를 이루어 균형을 찾았습니다. 리즈 볼룸이 강정호의 등장음악으로 "봄의 제전"을 추천한 까닭을 짐작해 봅니다. 메이저 리그에 주눅들지 말고 야구의 기본과 스스로의 본능에 충실하라는 말이겠지요. 그리고 스트라빈스키가 저 혼자 이국 땅 파리를 정복하지 않았듯이 그 나머지는 동료들의 능력과 도움을 믿고 의지하라는 것이겠지요. 꿈보다 해몽이었나요? 음악이든 야구든 사람 사는 게 어디 다를 리가 있을까요? 힘들수록 복잡할수록 근본을 찾아 초심으로 돌아가야겠지요. 혼자가 아니라 함께 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겠지요. 몰라서가 아니라 알면서도 그러질 못하니 그게 또한 사람이겠지요. 그러니 날마다 기억을 하고 또 다짐을 해야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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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웨스트사이드 스토리”가 전하는 2013년 신년 메시지] “로미오와 줄리엣”이라는 고전을 당시의 뉴욕으로 배경을 옮겨 새롭게 해석하는 시도 어떠세요?[뮤지컬 “웨스트사이드 스토리”가 전하는 2013년 신년 메시지] “로미오와 줄리엣”이라는 고전을 당시의 뉴욕으로 배경을 옮겨 새롭게 해석하는 시도 어떠세요?

Posted at 2013.02.18 09:33 | Posted in 이건음악회 Talk Talk/홍승찬교수의 클래식 톡톡

 

 

 

 

 

 

홍승찬 교수의 클래식 음악(44)
[홍승찬 교수의 재미있는 클래식음악 이야기]

 

 

뮤지컬 웨스트사이드 스토리가 전하는 2013년 신년 메시지

 

 

 

 

2012년의 시작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한해가 다 저물고 새해도 2달이 지나가려 합니다.

삶이 점점 더 팍팍해져서 그런지 뒤돌아볼 겨를도 없이 앞만 보고 달려왔나 봅니다. 지금으로부터 반세기 전 바다 건너 멀리서 벌어진 수많은 일들이 오늘날 우리네 삶을 송두리째 바꿔놓았는데도 잠시 바쁜 걸음을 멈추고 그 시절을 되새겨 볼 여유조차 없었나 봅니다. 50년 전인 1962, 헐리웃을 훌쩍 넘어 전 세계 젊은이들의 우상이었던 시대의 반항아 제임스 딘이 자동차 사고로 죽었고 세기의 연인 마릴린 먼로도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들은 갑작스런 죽음으로 오히려 더 많은 사랑을 받았고 그로 말미암아 바야흐로 대중예술의 시대를 열어놓았습니다. 같은 해 비틀즈는 2년간의 시행착오를 거쳐서 마침내 새로운 출발을 선언했습니다. 그리고 바로 그해 비틀즈와 함께 브리티쉬 록의 신화를 써내려간 롤링 스톤즈의 역사가 시작되었죠. 그리고 브로드웨이를 뿌리째 흔들어놓았던 뮤지컬 웨스트사이드 스토리가 드디어 1961년 영화로 만들어져서 미국 전역은 물론 지구촌 곳곳에 배급되어 아메리칸 드림의 충격을 전파하기 시작한 것도 바로 이듬해인 1962년부터였습니다.

 

 

 

 

 

웨스트사이드 스토리는 거의 모든 면에서 이전의 뮤지컬을 송두리째 뒤집어놓았습니다.로미오와 줄리엣이라는 고전을 당시의 뉴욕으로 배경을 옮겨 새롭게 해석하는 시도도 전에 없던 일이었고 주로 노래와 연기로 이끌어 가던 북 뮤지컬의 전통을 벗어나 춤을 가장 먼저 앞세운 것도 처음이었습니다. 이 작품을 처음으로 생각했고 안무와 연출까지 도맡았던 제롬 로빈스는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뿐만 아니라 왕과 나”, “피터팬”, “지붕 위의 바이올린과 같은 뮤지컬의 안무를 맡기도 했지만, 현대무용과 발레 안무가로도 그 못지않은 업적과 명성을 쌓은 인물입니다. 그 탁월한 능력으로 이미 1949년 미국 발레의 초석을 놓았던 조지 발란신이 그를 뉴욕시립발레단의 공동 예술감독으로 임명했을 정도였지요. 로빈스와 의기투합하여 대본을 맡았던 아서 로렌츠는 희곡과 뮤지컬 대본뿐만 아니라 연출자로 토니상을 수상했는가 하면 히치콕의 영화 터닝 포인트의 시나리오를 써서 골든 글로브 상을 받았을 만큼 발군이었고 작사를 맡은 스티븐 손드하임은 당시는 무명이었지만 이후 그의 작업이 바로 브로드웨이 뮤지컬의 역사라고 할 만큼 전설적인 인물입니다.

 

 

 

 

 

그러나 이 작품에 참여한 주도적 인물들 가운데 가장 큰 관심을 불러일으켰고 또 논란의 중심에 있었던 사람은 작곡을 맡은 레너드 번스타인이었습니다. 뉴욕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지휘자로서, 또 클래식 음악 작곡가로서 미국의 자존심을 대표하고 있는 그가 대중들을 위한 쇼비지니스의 세계에 뛰어든 셈이었으니까요. 말하자면 작업에 참여한 인물들 모두가 당대의 최고들이었지만 오히려 이 때문에 제작자들이 선뜻 나서지를 않았습니다. 그 면면들이 너무나도 개성이 강했고 작품의 성격 또한 전에 없이 실험적이었기에 제작비 부담이 컸고 또 그만큼 위험도 크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뮤지컬의 연극적인 요소가 강조되던 때에 춤을 앞세운 것도 부담스러웠지만, 레너드 번스타인이 추구하는 클래식 음악이 뮤지컬과는 전혀 맞지 않는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였던 것이지요. 결국 투자자를 얻지 못한 채 작업에 들어가야 했고 때문에 리허설에 들어가기 두 달 전에 제작자가 그만두는 사태까지 벌어졌지만 이때 손드하임이 유능한 젊은 제작자 해롤드 프린스를 영입함으로써 위기를 넘기게 됩니다. 우여곡절 끝에 막이 올라가자 이번에는 작품에 대한 서로 상반된 평가가 맞서면서 브로드웨이가 발칵 뒤집어집니다. 그러나 호평이든 혹평이든 이 작품이 이전에는 한 번도 없었던 완전히 새로운 시도임을 부인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지요. 춤으로 시작하여 춤으로 끝나는 것부터도 그렇고 뮤지컬이라면 지금도 헤피엔딩이 당연한 것임에도 비극적인 결말을 시도한 것도 논란을 피할 수 없는 부분이었습니다. 그것도 너무나 고전적인 로미오와 줄리엣을 가져다가 당시 미국 사회가 안고 있는 가장 민감한 갈등을 드러내고 비판했다는 것이 파격이고 충격이었던 것이지요. 게다가 손드하임은 거리의 젊은이들이 쓰는 언어를 그대로 가사에 사용함으로써 작품의 메시지를 더욱 생생하게 전달했고 번스타인의 음악이 그 가사에 영원한 생명을 불어넣었지요. 단순하고 아름다운 선율을 풍부한 오케스트라 사운드와 현대음악 기법에 녹여낸 번스타인의 음악이야말로 이후로도 비교될 만한 작업이 없을 정도로 압권이었습니다.

 

 

 

 

로미오와 줄리엣과는 달리 웨스트사이드 스토리는 지고지순한 남녀의 사랑에 앞서 사회적 갈등을 부각시킨 작품입니다. 이민의 역사가 거듭되어 온 미국, 특히 뉴욕에서는 늘 되풀이되어온 일이지만 당시는 푸에르토리코 이민자들이 빈민가를 형성하며 사회적인 갈등을 빚고 있었습니다. 줄리엣에 해당하는 마리아는 바로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며 미국으로 온 푸에르토리코 이민자의 딸로 옷 가게 점원으로 일합니다. 반면 로미오에 해당하는 토니는 폴란드계 이민자의 아들로 리프와 함께 제트파를 만든 장본인입니다. 서유럽 이주민들에 이어 미국으로 들어온 동유럽 이주민들이 이제 막 하층 계급을 형성하여 겨우 자리를 잡고 있을 무렵 푸에르토리코 이주민들이 밀려들어오면서 그들의 일자리를 위협하게 된 것입니다.

 

 

 

1961년 영화 버전을 Mark Seliger 에 의해 새롭게 만들고있습니다.

출처 : http://www.vanityfair.com/culture/features/2009/03/west-side-story-portfolio200903?slide=2#globalNav

 

 

폴란드계의 제트파는 푸에르토리코 출신의 샤크파와 구역을 놓고 서로 대립합니다. 제트파의 두목 리프는 샤크파의 세력이 점점 커지자 지금은 무리에서 빠진 토니가 다시 합류하기를 바랍니다. 체육관 댄스파티에서 제트파와 샤크파가 만나 긴장감은 고조되는데 그곳에서 토니는 제트파의 두목 베르나르도의 여동생 마리아를 만나 사랑에 빠집니다. 사소한 갈등 끝에 제트파와 샤크파가 결투를 벌이기로 한 날 마리아의 간청으로 이들의 싸움을 말리러 온 토니는 베르나르도가 친구인 리프를 죽이자 순간 싸움에 휩쓸려 베르나르도를 찌르고 맙니다. 토니가 오빠를 죽였다는 말을 들은 마리아는 크게 충격을 받고 슬픔에 빠지지만 사랑으로 그를 용서하고 함께 그곳을 떠나기로 합니다. 마리아의 마음을 전하러 제트파에 간 아니타는 제트파 일당에게 능욕을 당하자 분노로 이성을 잃고 토니에게 샤크파의 치노가 마리아를 죽였다는 거짓말을 합니다. 모든 희망이 사라진 토니는 거리로 뛰쳐나와 자신도 죽여달라며 치노를 찾는데 살아있는 마리아를 발견하고 다가서려는 순간 치노가 쏜 총에 맞아 마리아의 품에 안겨 숨을 거둡니다.

 

 

 

 

영화로 이 뮤지컬을 본 사람들은 마리아 역을 맡은 나탈리 우드가 토니의 시신을 안고 절규하는 마지막 모습을 잊지 못할 것입니다. 그리고 토니와 마리아가 함께 부르는 사랑의 이중창 투나잇 Tonight'과 마리아를 처음 본 순간 사랑을 느끼게 된 토니가 부르는 노래 마리아 Maria'도 너무나 아름답지요.

 

 

토니와 마리아가 함께부르는 "Tonight"

 

 

 

토니가 부르는 노래 "Maria"

 

 

그리고 댄스파티에서 푸에토리코 처녀들이 아메리칸 드림의 실상과 허상을 비꼬는 듯 주고 받는 아메리카 America'도 빼놓을 수 없는 명곡입니다. 그러나 사실 이 작품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가장 분명하게 담고 있는 노래는 바로 토니와 마리아가 함께 부르는 섬웨어 Somewhere'일 것입니다.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America"

 

 

There's a place for us

Somewhere a place for us

Peace and quiet and open air

Wait for us somewhere

There's a time for us

Someday a time for us

Time together with time spare

Time to learn, time to care

Someday!

Somewhere!

we'll find a new way of living

We'll find a way of forgiving

Somewhere...

There's a place for us

A time and place for us

Hold my hand and we're halfway there

Hold my hand I'll take you there

Somehow!

Someday!

Somewhere!

 

 

 

토니와 마리아가 함께 부르는 섬웨어 Somewhere'

 

 

 

우리를 위한 곳

어딘가 우리를 위한 곳이 있을거야

평화롭고 고요하고 활짝 열린 그곳이

어딘가에서 우리를 기다리겠지

우리를 위한 시간

언젠가는 우리를 위한 시간이 있을거야

우리가 함께 지내면서

서로를 이해하고 서로를 아껴줄 수 있는 시간이

언젠가!

어딘가에서!

우리는 새로운 삶의 방식을 찾고

용서하는 방법을 알게 될거야

어딘가에서는...

우리를 위한 곳

우리를 위한 시간

내 손을 잡으면 이미 그곳으로 가고 있을거야

내 손을 잡으면 내가 그곳으로 데려다 줄게

어떻게든!

언젠가는!

어딘가에는!

 

 

 

 

한 해가 저물고 새해가 밝았습니다. 모두들 해묵은 마음의 찌꺼기는 다 버리고 가벼운 마음으로 다가오는 2013년을 보내시기 바랍니다. 서로를 용서하고 위로하는 넉넉한 마음으로 모두가 함께 껴안을 수 있는 그런 한 해이기를 바랍니다. 언젠가 어딘가가 아니라 바로 지금 우리 마음에서 사랑과 평화를 찾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모두의 평화를 빕니다.

 

 

글 : 홍승찬 교수
편집 : 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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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잘보고 갑니다! 뮤지컬 안본지 오래됬는데..ㅎㅎ 생각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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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곡가 진은숙의 숨은 매력, 진정한 힘] 천재적인 능력? 누구보다 노력했던 그녀. 솔직하고 무모하기까지 한 그녀의 열정과 자신감을 들여다보자.[작곡가 진은숙의 숨은 매력, 진정한 힘] 천재적인 능력? 누구보다 노력했던 그녀. 솔직하고 무모하기까지 한 그녀의 열정과 자신감을 들여다보자.

Posted at 2013.02.05 16:41 | Posted in 이건음악회 Talk Talk/홍승찬교수의 클래식 톡톡

 

 

 

 

홍승찬 교수의 클래식 음악(43)
[홍승찬 교수의 재미있는 클래식음악 이야기]

 

 

 

작곡가 진은숙의 숨은 매력, 진정한 힘

 

지난 달 2, 작곡가 진은숙이 호암상을 받았습니다. 언제인지 정확하게 생각이 나지 않지만 호암상 수상자 후보를 추천하라기에 작곡가 진은숙을 추천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 때 수상하지 못해 아쉬웠기에 이번 수상소식이 더욱 반가웠습니다. 2004년 음악계의 노벨상이라는 그라베마이어 작곡상을 수상했을 때나 2005년 작곡가가 살아서 받을 수 있는 최고의 영예라고 하는 아르놀트 쇤베르크 음악상을 받았을 때도 이만큼 기쁘지는 않았습니다. 서울음대에 재학하던 시절에 벌써 국제 작곡 콩쿠르를 석권했고 이듬 해 독일로 유학간 이후 지금까지 꾸준히 세계무대에서 그 역량을 인정받으며 이런 저런 쾌거를 거두었지만 유독 우리나라에서는 그 만한 평가를 받지 못해 안타까웠기 때문입니다. 그러다 2007년 대원음악상의 작곡상을 수상했을 때도 무척이나 흐뭇했지만 대상이었으면 더 좋았을 걸 하는 아쉬움이 있었습니다. 이렇듯 그가 우리들 가운데 자리 잡고 인정받는 것에 의미를 부여하는 까닭은 그 무엇에도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그의 삶을 존중하고 동경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업적을 이루기까지 천부적인 재능과 노력이야 두 말할 필요도 없겠지만 오늘의 그를 있게 한 또 다른 힘이라면 솔직하고 무모하기까지 한 그의 열정과 자신감이 아닌가 싶습니다.

 

 

 

 

전공은 달랐지만 음악대학 4년을 함께 보내면서 가까이서 늘 그를 지켜보았고 또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그 때는 잘 몰라서 그런가 보다 하며 지나갔지만 이제 와 돌이켜 보면 학교 수업에서 배울 수 없는 많은 것들을 밥 먹고 술 마시며 나누었던 이런 저런 이야기로부터 얻었고 그렇게 수없이 많은 밤을 고민으로 지새웠습니다. 전공과 관련된 모든 수업에서 홀로 두드러졌던 그를 부러워하는 이들도 많았고 더러는 시기하는 이들도 있었습니다. 공포의 시창청음 시간, 선생님이 피아노로 치는 바흐의 첼로 모음곡 프렐류드를 딱 한 번 듣고 오선지에 고스란히 옮겨 적은 이는 진은숙 밖에 없었습니다. 남들은 2년을 꼬박 그 수업을 들었지만 그는 그날 이후 다시는 나타날 필요가 없었지요.

 

 

 

 

나중에야 알았지만 그의 이런 남다른 능력은 절대로 타고난 것만이 아니었습니다. 교회에 다니며 피아노를 알게 되었지만 어려운 집안 형편에 독학으로 공부할 수밖에 없었고 선생님의 권유로 작곡 공부를 시작한 다음에도 악보 살 돈이 없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늘 악보를 빌려다 베껴야 했고 유독 좋아했던 차이코프스키의 교향곡 비창은 수백 번이나 베끼고 또 베꼈습니다. 여고시절 음악 감상실을 홀로 차지하고 앉아서는 날마다 밤늦게까지 음악을 듣는 바람에 그곳을 관리하던 교감 선생님으로부터 열쇠를 넘겨받는 특혜 아닌 특혜를 누렸고 당시의 LP 음반은 잡음이 나서 더 이상 틀 수 없을 정도로 혹사당했다고 하지요.

 

 

 

 

피아노도 누구보다 뛰어나 피아노 전공 학생들보다 반주자로 더 인기가 많았습니다. 처음 보는 곡도 바로 반주가 가능했고 심지어 곡의 핵심을 파악하고 풀어서 가르치고 이끌기까지 했으니까요. 언젠가 연습실에서 독일 가곡에 대해 서로 이야기를 나누다가 그의 반주로 슈베르트의 가곡 몇 곡을 부른 적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서로 약속하기를 나중에 함께 슈베르트의 겨울 나그네로 독창회를 열자고 했었지요. 언젠가 우연히 그를 만나 그 때의 약속을 상기시켰지만 그는 전혀 기억하지 못했습니다. 예전에도 그랬듯이 지금도 여전히 솔직하고 담백했습니다. 그리고 바로 이런 모습이야말로 그의 진정한 매력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에게 있어 지난 일은 지나가면 그저 그만이지 애써 돌아볼 까닭이 없는 것이고 그의 시선은 항상 앞을 바라보며 다가올 무엇인가를 열심히 찾을 따름입니다. 그래서 그런 그의 눈에는 남들이 보지 못하는 무엇인가가 나타나고 보이는 것이지요.

 

 

 

 

언제나 그는 다른 사람들의 시선이나 오해는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의 생각을 거침없이 토로했고 또 행동으로 보여주었습니다. 누가 뭐래도 나는 나였고 너는 너였습니다. 싫으면 싫다고 했고 좋으면 좋다고 했지요. 남과 달라서 불편한 것도 없었고 나와 다른 남을 설득하거나 밀어내려 들지도 않았습니다. 그것이 누구에게는 잘난 척으로 여겨졌고 또 누구에게는 이기적이고 독단적으로 받아들여지기도 했지지요. 그래도 그는 늘 씩씩했습니다. 모습도 한결같았지요. 키가 작아 언제나 높은 구두를 신었고 긴 생머리를 휘날리며 고개를 꼿꼿이 치켜들고 곳곳을 활보하고 다녔습니다. 누구에게나 스스럼없이 말을 걸었고 어떤 만남이나 대화도 망설이거나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스스로 하고 싶은 일과 반드시 해야 할 일은 미친 듯이 열심히 했습니다.

 

 

 

 

그 때는 생각이 짧고 어리석었습니다. 그래서 그런 그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지요. 뛰어난 재능과 노력은 인정했지만 지나치게 솔직하고 너무나 자유로운 그의 생각과 말과 행동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이제 나이가 들고 조금이나마 철이 들고 보니 전에는 몰랐던 것을 깨닫게 됩니다. 다들 소통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면서 도대체 소통이 안 된다고 난리들입니다. 그런데 사실은 서로 달라서 그런 것이 아니라 서로에게 정직하지 못하고 스스로 자유롭지 못해서 서로가 다른 것을 이해하고 존중하지 못해서 그렇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지요. 우리가 그렇게 대단한 것처럼 떠받드는 문화라는 것도 결국은 소통의 결과입니다. 서로를 속속들이 알아서 다른 것은 존중하고 같은 것은 공유하는 것이지요. 예술을 문화의 상징이나 표상으로 여기는 것은 예술이야말로 존중과 공유의 절정이자 극치이기 때문입니다. 존중하고 공유하면 공감하여 감동하게 되는데 이것이야말로 예술이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바입니다. 그러니 정직하지 않고 자유롭지 못한 예술가가 어떻게 사람들과 소통하고 공감하여 감동을 줄 수 있단 말입니까.

 

 

 

오래 전에, 그것도 겨우 4년을 함께 학교 다닌 인연으로 누군가를 두고 이러쿵저러쿵 할 수 있는 것은 그 사람이 언제나 앞과 뒤가 전혀 다르지 않았고 스스로 늘 거리낌이 없었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그리고 꽤 많은 시간이 흐른 지금에 와서도 옛 모습을 생생하게 기억하는 것은 그 때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당당하고 자유롭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작곡가 진은숙을 누구보다 높이 평가합니다. 그 자신이 그런 것처럼 그의 작품도 거짓 없이 치열하며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정신으로 끊임없이 무엇인가를 찾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아마도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상임지휘자 사이먼 래틀은 차세대 세계 음악계를 이끌 다섯 명의 작곡가들 가운데 하나로 그를 꼽았을 것입니다. 그런 평가와 업적을 운운하기 이전에 그를 생각하면 그냥 기분이 좋습니다. 생각 같아선 지금이라도 당장 밥 한 끼 같이 하며 술잔을 권하고 싶지만 연락해서 따로 날을 잡고 싶지는 않습니다. 오다가다 서로 보게 되면 혹시나 모를까 일부러 그럴 일은 아닌 까닭이지요. 멀리서 지켜보는 것만으로 이렇게 뿌듯하고 흐뭇한데 그가 누리고 있는 자유를 손톱만큼도 건드리고 싶지 않은 까닭입니다.

 

 

 

 

글 : 홍승찬 교수
편집 : 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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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김에송
    작곡가 진은숙에 대해서는 많이 들어보았지만

    이렇게 자세하게 얘기를 듣기는 처음이네요.

    정말 대단하신 분이군요. 언젠가 진은숙작곡가님의 곡을 꼭 들어볼거에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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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페라 세비야의 이발사의 작곡가 로시니] 누구라도 깜짝 놀랄만한 로시니의 세 가지 비밀.[오페라 세비야의 이발사의 작곡가 로시니] 누구라도 깜짝 놀랄만한 로시니의 세 가지 비밀.

Posted at 2013.01.21 10:01 | Posted in 이건음악회 Talk Talk/홍승찬교수의 클래식 톡톡

 

 

 

 

 

홍승찬 교수의 클래식 음악(42)
[홍승찬 교수의 재미있는 클래식음악 이야기]

 

 

 

 

 

로시니의 세 가지 비밀

 

오늘날 로시니는 오페라 세비야의 이발사의 작곡가 정도로 알려져 있습니다. 젊은 시절 꽤 많은 오페라를 작곡하여 인기를 끌고 치부도 했지만 시대를 초월하여 살아남을 만한 작품은 별로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지요. 그리고 일찌감치 작곡가의 길을 접고 남은 생애는 음식을 탐닉하며 살았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말하자면 예술이나 고귀한 가치보다는 현실에 안주하여 적당히 즐기는 삶을 살았다는 말이지요. 그러나 정작 그의 삶과 음악을 조금만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당대의 그 누구보다 치열한 삶을 살면서 큰 업적을 쌓았으며 음식 또한 그저 즐기는 차원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래서 지금부터 그의 삶에서 특별히 주목할 만한 세 가지 비밀을 밝혀 숨겨진 그의 진면목을 알려드릴까 합니다.

 

 

38곡의 오페라를 비롯하여 칸타타•피아노곡•관현악곡•가곡•실내악곡•성악곡 등 여러 방면을 많이 작곡했다. 이탈리아오페라의 전통을 계승•발전시킨 이탈리아 고전오페라의 최후의 작곡가라 할 수 있다.

 

그의 진가를 알 수 있는 비밀이라면 무엇보다 먼저 로시니는 베토벤과 같은 시대를 살면서 베토벤보다 훨씬 더 유명하고 더 많은 사람들의 관심과 사랑을 받았다는 사실입니다. 베토벤조차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에 그가 그토록 심혈을 기울여 작곡한 교향곡 9합창의 초연을 비인이 아닌 다른 도시에서 하려고 생각했을 정도였지요. 당시 비인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로시니의 오페라에 열광하고 있었기 때문에 도저히 그들의 발길을 연주회장으로 돌릴 자신이 없었던 것입니다. 1792년 트럼펫 연주자인 아버지와 소프라노 가수였던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로시니는 체계적인 음악교육을 받지 못했음에도 열두 살에 이미 현악사중주를 작곡할 정도로 음악적인 재능이 뛰어났습니다. 볼로냐 음악원에 입학했던 열네 살에는 최초의 오페라 도메트리오와 폴리비오를 작곡하여 사람들을 놀라게 하더니 열여덟 살에 결혼 어음으로 베네치아에서 데뷔를 했고 스무 살도 되기 전에 벌써 이탈리아 최고의 오페라 작곡가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와 그의 오페라는 비인과 파리를 거쳐 런던까지도 휩쓸어버렸지요. 사람들은 희극적이고 통속적인 오페라 부파에 열광했지만 스물네 살에 세비야의 이발사를 작곡한 이후로는 대중들의 기대와는 달리 비극적이며 보다 심각한 오페라 세리아에 전념을 했고 파리에 정착한 이후로는 프랑스어로 된 오페라만 작곡하더니 삼십대 중반에 접어든 1829년에 빌헬름 텔을 마지막으로 더 이상 오페라를 내놓지 않았습니다. 그 때까지 그가 작곡한 오페라는 모두 서른여덟 편에 이르러 70을 넘긴 베르디가 평생을 쉬지 않고 쓴 오페라와 맞먹는 숫자입니다.

 

 

서울시오페라단(단장 박세원)이 오페라 부파의 걸작으로 손꼽히는 로시니의

<세빌리아의 이발사>를 세종문화회관 엠씨어터 무대에 올렸다.

 

 

로시니에 관한 두 번째 놀라운 사실은 그의 이름을 붙인 요리 경연대회가 있다는 것입니다. 심지어 그의 이름을 딴 프랑스 요리가 있는가 하면 당연히 요리책에서도 그의 이름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가 작곡을 그만 둔 이후 미식가로서 음식점을 찾아다니며 유유자적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사실은 음식에 있어서도 오페라만큼이나 꽤나 전문적이고 창의적인 식견을 가지고 있었기에 단순히 즐기는 차원을 벗어나 그것을 발휘하여 새로운 음식까지도 개발했던 것입니다. 특히나 송로버섯을 좋아해서 그가 파리를 떠나 볼로냐로 간 것도 그곳이 송로버섯 산지로 유명하기 때문이라는 말이 있는가 하면 그곳에서 송로버섯을 찾는 돼지를 키우기 위해 작곡을 그만두었다는 말이 있을 정도입니다. 더 심하게는 로시니가 평생 세 번을 울었는데 심혈을 기울여 작곡한 세비야의 이발사의 초연이 관객들의 난동으로 엉망이 되었을 때와 파가니니의 바이올린 연주를 듣고 감동했을 때에 울었고 마지막으로 센 강으로 뱃놀이를 가면서 가져간 송로버섯을 채운 칠면조 요리를 물에 빠트렸을 때 울었다는 우스개말도 있습니다. 프랑스 요리에서 알라 로시니는 모두 송로버섯을 사용한 요리들로 로시니의 단골 요리사들이 로시니의 조언을 듣고 개발한 메뉴라고 합니다. 특히 프랑스 요리 가운데서도 가장 고급스러운 요리로 꼽히고 있는 투르네도 로시니 스테이크는 거위간에 송로버섯을 곁들인 스테이크로 로시니와 당대 최고의 요리사 앙토넹 카렘이 함께 개발한 요리입니다.

 

 

사진출처 : http://blog.daum.net/waiire/15860805

 

 

이렇듯 오페라와 요리에서 모두 당대를 대표할 만한 업적을 쌓았던 로시니의 마지막 비밀은 삼십대 중반에 작곡을 중단한 이후 다시는 펜을 들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사실 오페라를 더 이상 작곡하지 않았던 것이지 다른 종류의 음악은 간간이 작곡을 했고 파리를 떠나 볼로냐에 가서는 후학들을 양성하는 일에 힘을 기울였다는 것입니다. 쉰 살이 되던 해에 그의 대표작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스타바트 마테르슬픔의 성모를 작곡했고 볼로냐에서 건강을 회복하고 다시 파리에 정착한 1855년부터 하나 둘씩 소품들을 작곡하여 1868년 세상을 떠나기 직전에 노년의 과오라는 제목의 소품집을 내놓기도 했습니다. 거기에 포함된 소품들의 제목 가운데는 역시 엔초비’, ‘피클’, ‘말린 돼지고기’, ‘건포도와 같은 음식 이름들이 큰 몫을 차지하고 있지만 프랑스의 7월 혁명으로 야기된 사회의 참상을 고발하는 약탈바리케이트같은 작품은 물론 기계문명에 대한 비판을 담은 즐거운 기차여행의 재미있는 묘사와 같은 작품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로시니 - 스타바르 마테르 中 아멘 - 정명훈, 라디오 프랑스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로시니에겐 또 하나의 비밀이 있습니다. 직업 음악가로서 로시니의 첫 출발은 작곡가가 아니라 성악가였습니다. 십대의 어린 나이에 가족들의 생계를 위해 노래를 불러야 했지만 지나친 혹사로 목소리를 다쳤고 어쩔 수 없이 반주자로 일하다가 지휘자가 되었고 그 경험과 기반을 바탕으로 작곡가로 성공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노래에 관한 그의 안목과 식견은 누구보다 뛰어나서 가수들을 훈련시키는 그의 능력만큼은 아무도 따를 수가 없었다고 합니다. 그로 말미암아 그의 오페라는 가수들로 하여금 이전에는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어려운 기교를 요구할 수 있었고 그것을 바탕으로 벨리니 도니제티와 함께 새로운 이탈리아 오페라의 황금기를 열 수 있었습니다. 그 결과 오늘날 전 세계의 오페라 극장은 19세기 백년 동안의 이탈리아 오페라, 즉 로시니, 벨리니, 도니제티와 그들을 계승한 베르디 푸치니의 오페라가 지배하게 된 것입니다.

 

 

세빌리아의 이발사 서곡-로시니

 

 

 

글 : 홍승찬 교수
편집 : 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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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아이렌
    쉽게 접할 수 없는 좋은 정보네요 ^^

  2.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유익한 글이네요.^^
    작년에 세빌리아의 이발사 뮤지컬을 봐서 그런지 더욱 관심이 가는군요.
  3. 비밀댓글입니다
  4. 김에송
    세빌리아의 이발사는 많이 들어는 봤지만 직접 본적은없네요.

    오페라라고는 도니제티의 사랑의묘약이나 베르디,푸치니를 많이 보고 듣게 되는데

    앞으로 많이 들어봐야겠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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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가는 무엇으로 사는가?] 음악가가 추구하는 삶이란 무엇일까요? 삶의 의미와 보람은 어디서 얻을 수 있을까요?[음악가는 무엇으로 사는가?] 음악가가 추구하는 삶이란 무엇일까요? 삶의 의미와 보람은 어디서 얻을 수 있을까요?

Posted at 2012.08.23 15:35 | Posted in 이건음악회 Talk Talk/홍승찬교수의 클래식 톡톡

 

 

홍승찬 교수의 클래식 음악(32)
[홍승찬 교수의 재미있는 클래식음악 이야기] 음악가는 무엇으로 사는가?

 


일본의 작곡가 미요시 아키라가 우리나라를 다녀 간 적이 있었습니다. 그를 위한 환영만찬이 있다는 연락을 받았고 전부터 그의 명성과 덕망을 알고 있었던 터라 흔쾌히 초대에 응했습니다.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미리 그에 관한 정보를 알아보기까지 했습니다. 일본이 세계에 자랑하는 대표적인 작곡가의 한 사람이라는 정도는 이미 알고 있었지만 그가 동경예대 교수이면서 동경도 문화예술회관 관장이고 그 밖에 몇몇 중요한 직함을 더 가지고 있다는 사실은 그 때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만찬 당일 서로들 명함을 주고받는 기회를 가지게 되자 엉뚱한 호기심이 발동하기 시작했습니다. 전부터 여러 번 경험한 바대로라면 그 역시 일본 사람이니 명함을 마치 자신의 분신인 양 소중하게 생각할 테고, 그렇다면 과연 그의 명함에는 어떤 직함이 박혀 있을지가 궁금해지기 시작한 것입니다. 아니면 그가 가진 모든 직함을 다 넣은 명함일지도 모른다는 데까지 생각이 미칠 즈음, 불쑥 그가 내민 명함은 전혀 예상 밖의 것이었습니다. 그냥 하얀 종이 위에 또박 또박 한자 정자로 쓴 검정 글씨는 단 두 줄, ‘일본예술원 정회원’, ‘미요시 아키라가 전부였습니다.

 

 

일본 도쿄 출신으로, 현대음악가 이케노우치 도모지로에게 피아노를 배운 미요시 아키라.

 

그 순간 잠시 머리가 멍해졌지만 곧 설명을 따로 듣지 않아도 여러 가지를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먼저 명함 주인의 단아한 인품을 읽을 수 있었고 일본 예술원의 높은 위상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적어도 그에게 있어서만큼은 동경예대 교수나 동경도 문화예술회관 관장보다 예술원 회원이라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한 자리라는 것을 충분히 알 수 있었습니다. 더불어 그가 추구하는 가치가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실질적인 영향력보다는 상징적인 대표성을 우선하고 있었고 기능이나 역할보다는 명예에서 비롯된 권위를 자랑스럽게 생각했던 것입니다. 무엇보다 다른 누구도 아닌 그의 선배이자 동료이며 그가 존경해 마지않는 다른 예술가들의 인정을 받아서 주어진 자리이기에 소중하고 감격스러웠을 것입니다.

 

 

 

일본 예술원(출처 : doopedia)

 

우리나라에도 예술원이 있습니다. 예술원 회원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어느 누구를 막론하고 각각의 분야에서 우리나라를 대표하고도 남을 만한 업적과 위상을 갖추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들 대부분은 예술원을 잘 모릅니다. 심지어는 예술계에 종사하는 사람들조차 누가 예술원 회원인지도 알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모른다기보다는 관심이 없다는 말이 더 정확한지도 모르겠습니다. 예술에 대한 무관심이 아니라 명예와 권위에 대한 무감각이고 그로부터 비롯되어야 할 대표성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나라에서 예술계를 대표할 만한 또 다른 기구라면 문화예술위원회가 있습니다. 비유하자면 의회 제도에서 상원과 하원이 각각 예술원과 문화예술위원회에 해당하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물론 예술원과는 달리 실질적인 기능과 역할이 중요하고 그로부터 비롯된 영향력도 크지만 과연 그에 상응할 만한 권위와 대표성을 가지고 있는지는 의문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한국예술원] 현직 배우, 감독에게 배우는 도심형 예술학교(출처 : 씨네21)

한국예술원(KAI, Korea Arts Institute)은 1996년 설립된 국내 최초의 사립 영화 교육기관인 네오영화아카데미가 전신이다. 지난 15년 동안 영화아카데미로는 국내 최대인 1000여명의 졸업생을 배출했으며, 이러한 많은 졸업생은 우리나라 영화계에 촘촘히 그 영역을 차지하고 있다. 또한 2010년 전주대학교 외 3개의 학교를 운영하고 있는 학교법인 신동아학원의 경영 참여로 예술원의 내실과 경영이 더욱 더 탄탄해지고 투명해졌다.

 

그래서 여러해 전 한국문화예술진흥원을 대신하여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처음 출범할 당시 초대 위원장이었던 김병익 선생에게 우리 문화계, 예술계가 지향해야 할 가치와 철학을 담은 문화예술헌장을 만들어달라고 말씀드린 적이 있었습니다. 지원금을 나눠주는 것보다 그것이 더 중요하다고 했고 선생도 전적으로 동의한 바 있었습니다. 그러나 한참이 지난 지금까지도 헌장이 만들어졌다거나 앞으로 만들 거라는 소식은 들리지 않습니다. 오히려 문화예술위원회가 출범한 이후 지금까지도 갈등과 분열이 거듭되어 잡음이 끊이지 않고 있을 뿐입니다. 이것이 다 우리 문화예술인들이, 우리 국민 모두가 마땅히 함께 추구해야 할 가치를 찾아서 서로 합의하고 널리 천명하지 못한 때문인데도 거기까지는 미처 마음이 닿지 않는 모양입니다. 지금 우리에게 절실하게 필요한 것은 당장의 돈이 아니라 가치와 철학, 명예와 권위라고 한다면 너무나 철없고 태평한 타령일까요? 갑자기 초등학교 시절 그토록 지긋지긋하게 외우고 또 외웠던 국민교육헌장이 머릿속에 또렷이 되살아납니다. 그때는 무슨 뜻인지도 모르고 억지로 머릿속에 구겨 넣느라 치를 떨었었지만 지금에 와서 뒤늦게 그 뜻을 하나하나 새겨보니 틀린 말이 하나 없다는 생각이 들면서 가슴 속 깊이 싸한 느낌이 밀려옵니다.

 

 

三善 晃:練習曲242b はずむ指 演奏:武田 真理

미요시 피아노 연습곡 242b번

 

그러고 보니 누구더러 어떻다고 나무랄 일이 아니라 나부터가 삶의 방향을 잃고 방황하고 있는지 살펴볼 일입니다. 남들 따라서 허겁지겁 사느라고 결국은 진정한 나의 삶을 잃어버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음악가는 음악으로 평생을 살고 음악에서 삶의 의미와 보람을 찾는 것이 당연하겠지요. 우리 주변에도 분명히 미요시 아키라와 같은 생각으로 음악가가 있고 예술가가 있을 텐데 그들이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요?

 

2008入賞者記念 上總 藍/三善 晃:波のアラベスク 

<바다의 일기> 중 '파도의 아라베스크'

 

 

글 : 홍승찬 교수
편집 : 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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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사나이”를 기억하십니까?] 대한민국의 건장한 남자라면 누구나 감당해야 하는 국방의 의무를 통해 간직하게될 평생의 추억...[“진짜 사나이”를 기억하십니까?] 대한민국의 건장한 남자라면 누구나 감당해야 하는 국방의 의무를 통해 간직하게될 평생의 추억...

Posted at 2012.08.03 07:30 | Posted in 이건음악회 Talk Talk/홍승찬교수의 클래식 톡톡

 

 

 

홍승찬 교수의 클래식 음악(30)
[홍승찬 교수의 재미있는 클래식음악 이야기] “진짜 사나이”를 기억하십니까?

 


대한민국의 건장한 남자라면 누구나 감당해야 하는 국방의 의무, 이 신성한 의무를 마치고 난 사람들은 누구나 다 가슴 속 깊이 지워지지 않는 추억을 평생 간직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것이 무슨 훈장이나 되는 것처럼 틈만 나면 꺼내놓고 자랑하지 못해 안달입니다. 물론 있는 그대로를 내놓을 리가 없습니다. 적당하게 다듬기도 하고 조금은 부풀리기도 합니다. 이렇게 자랑삼아 떠벌리는 이야기는 이처럼 제 각각이지만 목이 터져라 부르고 또 불렀던 군가만은 그럴 수가 없습니다. 그 숱한 군가들 가운데 우리 국민 누구나가 알고 또 부를 수 있는 대표 군가가 바로 진짜 사나이입니다. 군대를 가려면 한참이나 기다려야 하는 청소년들은 물론이고 병역과는 상관도 없는 여자들까지 다 아는 노래입니다. 우리가 흔히 하는 우스개 소리로 진짜 사나이를 모르면 간첩이라고 해야겠지요.

 

 

그들이 있기에 국민이 다리 쭉~ 펴고 잠을 잘 수 있습니다.

 

[진짜사나이 가사]

사나이로 태어나서 할일도 많다만
너와나 나라지키는 영광에 살았다
전투와 전투속에 맺어진 전우야
산봉우리에 해뜨고 해가 질적에
부모형제 나를믿고 단잠을 이룬다

입으로만 큰소리쳐 사나이라드냐
너와나 겨레지키는 결심에 살았다
훈련과 훈련속에 맺어진 전우야
국군용사의 자랑을 가슴에 안고
내고향에 돌아갈땐 농군의 용사다

겉으로만 잘난체해 사나이라드냐
너와나 진짜사나이 명예에 살았다
멋있는 군복입고 휴가간 전우야
새로운 나라 세우는 형제들에게
새로워진 우리생활 알리고 오리라

 

 

 

그런데 도대체 이 노래를 작곡한 사람은 누구일까요?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아서 별로 아는 사람이 없지만 작곡가 이흥렬 선생이 곡을 만들었습니다. 이흥렬 선생은 일제 강점기를 지나 해방 이후까지 우리 음악계를 이끌어 간 선구자이며 꽃구름 속에바우고개를 비롯한 많은 가곡들을 남긴 국민 작곡가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 모두의 가슴 속에 남아서 지워지지 않는 소박하고 아름다운 노래 섬 집 아기를 남기신 분이기도 하지요. 음악을 좀 안다는 사람이라면 이흥렬을 모를 리가 없고 그의 대표곡들도 손꼽아 헤아릴 수 있겠지만 그가 진짜 사나이를 작곡했다는 사실을 알고 또 기억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작곡가 이흥렬을 모르는 분이라 해도 아마 섬집 아기진짜 사나이가 모두 한 작곡가의 머리와 가슴에서 나왔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1909년 07월 17일 대한민국 원산에서 출생하셔서 1980년 11월 17일 세상을 떠남

 

믿어지지 않는 사실은 또 있습니다. 선생이 이 땅에 오신 날이 717일이고 떠나신 날이 1117일인데 자녀들이 모두 17일에 태어났다는 것입니다. 더욱 흥미로운 것은 17이라는 숫자와의 별난 인연이 다음 대에 이르러 엉뚱하게 나타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작곡가로서 선생 못지않은 업적을 쌓아가고 있는 차남 이영조는 슬하에 남매를 두었고 이들의 생일은 17이라는 숫자와는 전혀 무관하다고 합니다. 그런데 각자가 결혼하여 집안에 들인 배우자의 생일이 모두 17일이라는 것입니다. 우연이라 하기에는 정말 너무나도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고 이흥렬 박사님의 노래는 정겨운 가사들이 많다.

 

그러나 선생의 집안과 그 내력을 들여다보면서 정말이지 경이롭고 우러러 보이는 것은 3대를 이어 가업을 지키고 굳건하게 이어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의 아들 이영조와 이영수가 이미 작곡가로서 우리 음악계를 이끌어가고 있고 이영조의 아들 이철주가 또 그 뒤를 따르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3대에 걸쳐 한 길을 걷고 있는 집안도 무척 드물지만 특별히 작곡가라는 업을 3대까지 이어가고 있는 예로는 이흥렬 선생의 집안이 유일한 경우가 아닌가 싶습니다.

 

 

이흥렬 선생님의 가족사진

 

아브라함이 이삭을 낳고 이삭이 야곱을 낳고로 시작하는 신약성서 마태복음 1장은 언제 읽어도 가슴이 뭉클합니다. 얼핏 보기에는 아브라함에서 비롯하여 예수까지 이어지는 한 집안의 족보를 그저 나열한 것에 불과하지만 그 속에는 이렇듯 단절 없이 대를 물리면서 완성해간 말씀과 믿음의 역사가 숨어 있는 셈이고 그 우여곡절이야말로 기적이고 희망이며 또한 보람이자 긍지인 것입니다. 무엇인가를 지키고 이어간다는 것은 이처럼 중요한 일이지만 그만큼 어렵고 힘든 일이기도 합니다. 중요하다면 해야 하는 것이 마땅하겠지만 힘든 일이라면 피하고 보자는 것이 우리네 심사라는 것쯤은 누구나 아는 사실입니다. 그것이 물질적인 풍요를 가져다주는 일이라면 몰라도 그렇지 않은 다음에는 아무도 나서질 않는 것이 지금의 세태입니다. 뜻하는 바가 있어 아비가 자신의 업을 물리려 해도 아들이 이를 따르지 않고 혹시 아들이 아비의 뜻을 받들려고 해도 어미가 이를 가만 두지 않습니다. 이렇다 보니 전통이란 걸 세울 수가 없고 신뢰라는 걸 찾을 수가 없습니다. 무릇 모든 것이 가정에서 비롯되거늘 가정에서 찾을 수 없는 것이 사회에서 보일 리가 없습니다.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갈등과 대립을 벗어나지 못하는 것도 따지고 보면 서로에 대한 신뢰가 없기 때문이고 이를 뒷받침할 만한 전통이 없기 때문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요즈음 무대에서 살겠다고 고집하는 여식이 무척이나 고민스럽습니다. 혹시나 그럴까 싶어 함께 공연 보는 재미까지도 포기했었는데 대학 입시를 코앞에 둔 지금에 와서 요지부동의 결심을 굳히고야 말았습니다. 성악가이셨던 엄친 또한 노래를 하겠다는 아들을 끝내 말리셨습다. 그래서 전혀 딴 길을 걷는 줄 알았는데 지금에 와서 보니 결국은 음악과 그 주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렇듯 스스로의 사연이 있기에 망설임 없이 대를 이어가는 집안이 예사롭게 보이질 않습니다. 하물며 그것이 한 세대를 넘고 또 한 세대를 더한 대물림이라면 축복과 기적 없이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가족들이 모여 음악을 즐겼던 이건 가족음악회.

클레식 음악이라는 주제 아래 많은 사람들이 모인 뜻깊은 시간이었습니다.

부모와 자식이 함께 즐길 수 있는 시간은 곧 축복의 시간입니다.

 

작곡가 이흥렬 선생이 이 땅에 오신 지 올해로 꼭 100년이 되었습니다. 2009년을 시작하면서 지금까지도 여기저기 가는 곳마다 하이든의 서거 200주년이라며 난리들이고 멘델스존이 태어난 지 200년이 되었다고 법석들입니다. 게다가 헨델이 세상을 떠난 지 250년이 되었다면서 이것 또한 그냥은 지나치기 힘든 모양입니다. 그런데 정작 이 땅에서 태어나 우리 곁에서 살다 간 작곡가 이흥렬 선생의 탄생 100주년이 바로 올해라는 사실을 기억하는 이들은 얼마나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선생은 이미 우리 곁을 떠나셨지만 그 아들이, 또 그 손자가 선생의 뒤를 따르고 있습니다. 바라건대 손자의 아들이, 그리고 그 아들의 아들, 손자의 손자까지도 선생의 뒤를 이어갔으면 합니다. 그래서 또 한 100년이 지나고 다시 200년이 더 지났을 즈음에 그 집안의 누군가가 탄생 200주년이라고, 아니면 서거 200주년이라고 지구촌이 온통 호들갑을 떨었으면 소원이 없겠습니다.

 

 

글 : 홍승찬 교수
편집 : 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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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가나다
    http://clarnltls.blog.me/120191329296

    여자 국방의무내용입니다.

    현실적인 대안도 있고 명분도 있습니다.

    보고 객관적인 판단으로 덧글 달아주세요

    퍼가시면 감사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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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영하 귀국피아노 독주회] 이건블로거가 간다~ no.1[전영하 귀국피아노 독주회] 이건블로거가 간다~ no.1

Posted at 2011.10.10 16:14 | Posted in 이건음악회 Talk Talk/클래식 톡톡



이번엔 이건블로거들이 찾아가는 작은 클래식의 한부분을 포스팅하려합니다.
클래식하면 떠오르는 어려운이미지와 무언가 격식을 갖춘 특정인들의 음악이라는 선입견을 없에기 위해
우리에게 가장 친숙한 피아노를 선택하여,
이건블로거들이 찾아갔습니다.

자그럼  피아노연주의 세계로 출발할까요~~

                                                 

날씨가 화창한 일요일 오후 우리는 여의도의 영산아트홀에서 만나기로 약속을 했고
간만에 차를 두고 버스를 타고 여의도 '국회의사당역' 에 내려 소통의 오류 님을 만났
습니다. 



가끔 차를 두고 다니는 것도 조금은 귀찮기는 하지만,걸으면서 서울을 느끼는 또다른 즐거움이 있더군요 

여유롭게 천천히 걸어서 영산아트홀을 찾아가는 길에 '누군가에겐 행복' 님의 다급한 전화가 옵니다
3시30분이아닌.....3시라고~~!!!!!
이미 늦었기에 여유있게 걸어서 영산아트홀에 도착했습니다...ㅡㅡ







뒤늦게 표를 받고, 인터미션시간을 기다리며~ 한컷

아 이번에 독주회를 여신 전영하님의 프로필을 간단하게 소개드리겠습니다.


이번독주회에서는 B.BARTOK(1881~1945), F.Schubert(1797~1828), R.Schumann(1810~1856) 의 곡을
연주하셨는데 실력이 대단하십니다~~




간단하게나마 프로그램에 대한 note를 정리해 보았습니다.

B.Bartok                                               Improvisationen uber ungarische Bauernlieder

벨라 바르톡은 스트라빈스키와 쇤베르크 다음으로 가장 영향력있는 20세기 작곡가이다.
그는 젊은 세대에서 전통의 범위 안에서 새로운 표현 수법의 가능함과 음악적 아이디어가 무수한 방식으로
재형성되고 재창조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그는 피아노를 위해 작곡하는 것을 즐겨했는데, 아마도 피아노가 동시에 선율적, 화성적, 타악기적인
악기가 될 수 있기 때문인 듯하다.
8개의  <헝가리 민요에 의한 즉흥곡>은 원래 민요를 거의 그대로 음악작품으로 옮겨놓은
과거의 기법으로부터 탈피했음을 보여준다. 여기에서 작곡가는 노래들을 기본 주제처럼 다루는데,
그 자신이 이들 선율을 기초하여 만든 자료를 토대로 즉흥연주 하고 있다.

F.Schubert                                          Klaviersonate A-Dur, D.664 

이 곡은 슈베르트가 위대한 세 명의 선배 음악가로부터의 영향에서 이탈하려고 고뇌하는 시기에 완성된 작품이며, 슈베르트가 자주 여행하던 북부 오스트리아의  슈타이어에 살고 있던 쇼베피네 콜러라는 
소프라노 가수이면서, 피아니스트였던 여인을 위해서 작곡하였다.
총 3개의 악장으로 구성이 되어 있는데 1악정은 알레그로 모데라토 A장조, 4/4박자이면서
아름다운 서정적인 노래가 제1주제로 첫 부분에 제시된다.
2악장은 안단테 D장조, 2/4박자로 75마디의 짧은 구성으로 되어 있는데 단순한 3부형식을 사용한
느린 악장이다. b단조 화음을 앞꾸밈음으로 하여 D장조 으뜸화음을 유도하는 엘레강트한 울림의 화성
속에서 청초한 주제를 제시하면서 제1부가 시작한다. 3악장은 알레그로 A장조, 6/8박자이며
소나타 형식으로 되어 있지만, 악상과 전개 형태로 보아 론도 형식적인 요소로 볼 수 있다.

R.Schumann                                       Sinfonische Etuden, Op.13  


슈만의 피아노작품 가운데 최고의 명곡에 속할 뿐만 아니라 변주고의 역사에 있어서도 획기적인
인기를 차지하고 있는 걸작이다.
1834년에 작곡되어 1837년 빈의 하슬링거사에서 출판되었다, 초판에는 주제와 12개의 연습곡 형태를 취하고 있는데, 1852년의 재판에서는 [변주곡 형식의 연습곡 Etudes en forme de variations] 라는
표제가 붙여져 초판의 [제2번]과 [제9번]이 빠졌다.
다시 1893년에 브람스의 감수로 출판된 전집에서는 슈만이 이 곡을 위해 작곡하면서 발표하지 않았던 5곡의
연습곡도 유작으로서 추가를 하였다. 거기에 따르면 전체는 12개의 연습곡으로 되어 있으며,
그가운데 9곡이 주제의 변주를 이루고 있다. 피날레는 일견 새로운 주제에 의한 판타지와 같은 것으로
가장 빛나는 것이며 장려한 것에 속한다. 슈만의 초판의 주에서 이곡의 주제에 대해
[어느 아마추어의 작곡에 의한 것]이라고 썻으며 이 아마추어는 폰 프리켄과 한때 사랑에 빠졌다.
이곡은 스텐데일 베넷 (영국의 작곡가 겸 피아니스트)에게 헌정되었다.


역시나 피아노에 조예가 깊지 않아...... 슈베르트의 곡만 귀에 익었다는.....

우리는 이렇게 즐겁게 피아노 독주를 감상했고~ 첫 소소한 클레식 이건블러거출동을 마쳤습니다~
아 영산아트홀은 아래의 장소에 있답니다~ 혹 나중에 참조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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