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승찬 교수의 클래식 음악 이야기] 오페라 “돈 카를로”와 영화 “사도세자” 베르디의 오페라 아이다까지[홍승찬 교수의 클래식 음악 이야기] 오페라 “돈 카를로”와 영화 “사도세자” 베르디의 오페라 아이다까지

Posted at 2017.05.07 07:30 | Posted in 이건음악회 Talk Talk/홍승찬교수의 클래식 톡톡

 

 


 

출처 : 나무위키


2015년 개봉한 영화들 가운데 "사도세자" 이야기가 많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습니다. 사도세자라면 그 영화를 보지 못했어도 그 줄거리는 대충 짐작할 만큼 우리에겐 널리 알려진 인물입니다. 그런데 유럽의 역사에서도 그와 비슷한 인물이 있어 그들 또한 우리처럼 비운의 왕세자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16세기 초 무적 함대의 신화를 만들어 스페인의 전성 시대를 열었던 펠리페 2세의 아들 카를로스 황태자가 사도세자와 같은 운명이었습니다. 그 역시 정치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아버지에게 죽임을 당하는 비극의 주인공이었습니다. 사도세자가 뒤주에 갇혀 물 한모금 마시지 못하고 비참한 최후를 맞은 것처럼 카를로스 왕자는 성안에 감금되어 굶어죽었다고 합니다. 사도세자의 기막힌 사연이 소설로, 드라마로, 또 영화로 숱하게 만들어진 것처럼 카를로스 왕자의 안타까운 이야기 역시 여러 장르의 예술이 거듭 다루었던 주제였고 그 가운데는 오페라도 빠지지 않습니다. 베르디의 오페라 "돈 카를로"가 바로 비운의 왕자 카를로스의 이야기를 다룬 작품입니다. 독일의 문호 프리드리히 쉴러가 쓴 희곡 "스페인의 왕자, 돈 카를로스"를 바탕으로 만든 오페라입니다. 베르디를 좀 안다는 사람들 중에는 그가 남긴 오페라들 가운데 "돈 카를로"를 최고의 역작으로 꼽는 이들이 많습니다. 그만큼 심혈을 기울였다는 것이고 그럴 만한 까닭이 있었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출처 : 오페라 돈 카를로스

 

베르디가 작곡한 오페라들 중에는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를 다루고 있는 작품이 많은데 특히 아버지와 딸, 혹은 아버지와 아들의 경우가 더욱 두드러집니다. 대표작으로 꼽히는 "리골레토"의 주인공 리골레토는 애지중지 홀로 키운 외동딸 질다를 끝내 잃고 맙니다. "아이다"에서는 이집트 파라오와 그의 딸 암네리스, 에디오피아의 왕 아모나스로와 그의 딸 아이다가 서로 다른 부녀의 정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라 트라비아타"에 나오는 제르몽은 아들의 장래를 걱정하여 알프레도와 비올레타 사이를 갈라놓고 맙니다. 이처럼 베르디 오페라에서 부모와 자식 사이의 가슴 아픈 이야기가 유독 많은 것은 아무래도 그 자신이 결혼하고 얼마지 않아 어린 아들과 딸을 차례로 잃고 아내마저 세상을 떠나는 아픔을 견뎌야 했기에 당연한 일인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조금 더 자세히 들여다 보면 그의 오페라에 등장하는 부모의 사랑은 어딘가 모르게 죄다 일그러져 있습니다. 리골레토는 질다를 가두다시피 숨겨서 키웠지만 결국은 만토바 공작에게 순결을 짓밟히자 복수에 눈이 멀어 자신의 딸을 죽음으로 내몰았는가 하면 아이다의 아버지 아모나스로는 딸로 하여금 연인을 속여 적군의 비밀을 알아내도록 윽박지르는 것조차 서슴치 않습니다. 비올레타를 설득해서 알프레도를 떠나게 만든 제르몽 역시 겉으론 아들의 장래를 위한다지만 사실은 자신과 집안의 체면을 지키려는 생각이 앞섰던 것입니다.

 

출처 : 유튜브

오페라 "돈 카를로"는 베르디가 줄곧 다루었던 빗나가고 비뚤어진 부정의 결정판이라 할 수 있습니다. 아니 어쩌면 요즈음 한창 우리 사회의 문제로 떠오른 막장 드라마의 원조가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스페인 왕자 카를로(카를로스)는 아버지 펠리페 왕이 배필로 정해준 프랑스 공주 엘리자베타(엘리자베트)를 퐁텐블로 숲에서 처음 만나 사랑에 빠집니다. 그런데 두번째 왕비를 잃은 펠리페 2세는 어이없게도 이미 아들과 약혼한 엘리자베타와의 결혼을 발표합니다. 충격을 받은 왕자를 친구인 로드리고가 위로를 하지만 이제 어머니가 되어 가까이에 있는 엘리자베타를 향한 그의 마음은 걷잡을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더 기가 막히는 것은 왕의 정부 애볼리가 연인의 아들 카를로를 사랑한다는 설정입니다. 질투에 눈이 먼 애볼리의 간계로 펠리페는 아들과 왕비의 불륜을 의심하게 되고 이것이 결국 카를로를 죽음으로 몰고 가는 원인이 됩니다.

 


 

카를로의 친구 로드리고를 빼고 오페라에 등장하는 주요 배역들은 모두 실존 인물입니다. 그러나 펠리페왕이 아들의 약혼녀와 결혼했다는 것과 아들을 죽게 했다는 것을 빼면 오페라의 이야기와 역사적인 사실은 사뭇 다릅니다. 심지어 오페라에서는 카를로가 최후를 맞으려는 순간, 펠리페의 부왕이자 카를로의 할아버지인 카를 5세가 무덤에서 나와 손자를 데리고 가는 것으로 결말을 짓습니다. 이런 억지와 결함에도 불구하고 이 오페라가 최고의 걸작으로 꼽히는 까닭은 요소요소에서 빛을 발하는 음악의 힘이고 그렇게 되도록 심혈을 기울인 베르디의 열정입니다. 베르디가 어린 자식들과 부인을 잃고 실의에 빠졌을 때 소프라노 주세피나 스트레포니의 위로와 헌신으로 재기하여 성공할 수 있었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입니다. 그런데 베르디를 만나기 전 스트레포니와 다른 남자들 사이에 있었던 부적절한 관계 때문에 두 사람의 사랑에 숱한 질타와 비난이 쏟아졌고 심지어는 오랜 동거 끝에 뒤늦은 결혼을 결심했을 때도 반감과 반대가 잦아들지 않았습니다. 베르디의 가장 큰 상처는 그들의 결합을 그렇게 심하게, 또 끝까지 반대한 사람들 중에 자신의 부모가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그 갈등과 배신감이 얼마나 컸던지 그 사건 이후 부모와의 관계를 끊고 다시는 서로 보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는 법적인 관계까지 정리했다고 합니다. 이런 사연을 알고 보면 "돈 카를로"에 집념을 불태운 그의 마음을 짐작하고 헤아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우리에게 무엇보다 충격인 것은 위대한 음악가들 가운데 그 누구보다 선하고 고귀한 삶을 살았던 그가 천륜이라고 하는 부모자식의 인연을 저버렸다는 사실입니다. 정말로 알 수 없는 것이 사람의 마음인 듯싶습니다. 그래서 참으로 어려운 것이 누구보다 가까운 사이인 것 같습니다. 가까우니 잘 알고 아는 만큼 아끼는 마음에 잘 챙기고 보살펴 줄 것 같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가 더 많습니다. 기대가 큰 만큼 실망도 커서 오히려 서로에게 더 큰 상처를 남기기 마련입니다. 생텍쥐베리의 소설 "어린 왕자"에 나오는 말처럼 정말로 소중한 것은 바로 곁에 있는데 정작 우리가 그것을 보지 못하는 것은 아닌지 생각하게 됩니다. 당장 오늘부터라도 가장 가까운 이들부터 꼼꼼하게 살펴서 그 마음을 마음으로 따뜻하게 어루만져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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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승찬 교수의 클래식 음악 이야기] 뮤지컬 아이다와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까지... 거장 베르디의 “운명”[홍승찬 교수의 클래식 음악 이야기] 뮤지컬 아이다와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까지... 거장 베르디의 “운명”

Posted at 2017.04.18 18:30 | Posted in 이건음악회 Talk Talk/홍승찬교수의 클래식 톡톡


죽어서는 물론이고 살아서도 베르디만큼 명성과 인기를 누렸던 작곡가는 없었습니다. 그 때나 지금이나 그는 오페라 작곡가의 대명사입니다. 사람들은 이런 베르디의 삶을 두고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누구나 부러워하고 우러러볼 만한 그의 삶에 드리운 어두운 그림자를 눈치 채지 못합니다. 어쩌면 알고도 애써 외면하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의 오페라를 두고는 사람이 살면서 겪을 수 있는 모든 유형의 비극이 다 들어있다고 하면서 정작 그 자신이 겪으며 감당해야 했던 비극에는 그다지 관심을 두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가 그의 작품을 통해 다루고자 했고, 또 다루었던 그 많은 비극들이 결국은 그 자신의 삶과 무관하지 않음을 주목하지 않습니다.



출처 : http://www.cdandl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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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디의 이름을 세상에 알린 출세작은 나부코였습니다. 이탈리아 독립운동의 열망이 바빌론의 지배에서 벗어나려는 이스라엘인들의 처지에 투영되어 열광적인 호응을 얻었고 오페라에 나오는 히브리 노예들의 합창은 이탈리아의 국가인 것처럼 널리 불려졌습니다. 이후에도 롬바르디아인에르나니등 애국심을 고취시키는 작품을 잇달아 발표하면서 이탈리아 인들은 Viva Verdi!(베르디 만세)라는 구호를 외치며 베르디를 이탈리아 독립운동의 상징으로 떠받들었습니다. 이는 그 자신에 대한 동포들의 감사와 애정 때문이기도 했지만 이탈리아 독립운동을 이끌었던 이탈리아의 엠마누엘레 왕(Vittorio Emmanule Re Di Italia)의 앞 글자를 모으면 Verdi가 되었기에 이를 드러나지 않게 외치려는 까닭도 있었습니다. 그가 이처럼 성공을 거두게 되자 독립에 대한 염원을 작품에 담고자 한 베르디의 선택이 무엇보다 흥행을 염두에 둔 것으로 여기는 이들도 많지만 그 자신의 삶에서 오히려 더 설득력 있는 이유를 찾을 수 있습니다. 베르디가 태어났을 때 그의 고향은 프랑스에 속해있었고 그리고 얼마지 않아 나폴레옹 군대에 쫓긴 오스트리아군이 그의 집까지 유린하면서 그 또한 어머니와 함깨 숨어 지내야 했습니다. 게다가 그토록 열망했던 밀라노 음악원 입학이 좌절된 것도 단지 그의 나이가 많다는 이유 뿐만 아니라 밀라노에서 그는 엄연히 외국 여권을 소지한 외국인이라는 점이 불리하게 작용한 때문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니 그가 다른 나라의 지배와 간섭을 받지 않는 하나의 나라 이탈리아를 염원했던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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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에게 닥친 두 번째 비극은 너무나도 절망적이어서 그 누구라도 극복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어려서부터 그의 재능을 알아보고는 그가 성장하여 성공할 수 있도록 돌봐주었던 부호 바레치의 딸 마르게리타와 결혼하여 남매를 두고 행복한 가정을 꾸렸지만 두 아이와 아내까지 차례로 잃어야 하는 비극이 닥쳤던 것입니다. 이후 소프라노 가수 주세피나 스트레포니를 만나 위로를 얻고 도움을 받아 재기할 수 있었지만 그토록 참담한 아픔과 슬픔이라면 그 누구라도 벗어날 수 없었을 것이고 특히 베르디와 같이 다정다감하고 섬세한 성격의 사람에게는 살아 있는 한 떨칠 수 없는 악몽이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가 오페라에서 다룬 그 수많은 비극적인 운명에는 언제나 혈육, 특히 부모와 자식 사이의 가슴 아픈 일들이 빠지지 않았던 것입니다. “리골레토의 주인공 곱사등이 리골레토는 아내도 없이 애지중지 홀로 키운 외동딸을 자신의 잘못으로 죽게 만들었고 트로바토레에서는 집시 여인 아주체나가 자신이 낳은 아들과 기른 아들 모두를 스스로의 손으로 죽이고 마는 운명을 마주하게 됩니다. 그리고 돈 카를로의 펠리페 왕 또한 아들을 죽음으로 내몰아야 하는 운명을 벗어나지 못합니다. “운명의 힘은 이와는 반대로 자식으로 말미암아 아비가 죽게 되면서 주인공 모두가 파멸에 이르는 가혹한 운명을 다루고 있습니다.


 소프라노 가수 주세피나 스트레포니

출처 : 위키피디아


그에게 닥친 세 번째 비극은 두 번째 아내 주세피나 스트레포니였습니다. 당대의 소프라노였던 주세피나는 두 아이와 아내마저 잃고 자살까지 생각했던 베르디를 다시 일으켜 세웠습니다. 그렇게 두 사람은 사랑하는 사이가 되었지만 사람들은 그 사랑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주세피나는 이미 유부남인 테너 모리아니와의 사이에서 자식까지 두었으니 두 사람의 관계도 적절하지 않다는 것이었습니다. 심지어는 두 사람의 보금자리에 욕설과 돌멩이가 날아들었고 베르디는 결국 고향에서 떨어진 산타가타에 농장을 마련하였고 그제서야 사람들의 따가운 눈총을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늘 이루고자 했던 그의 소박한 소망인 농부의 꿈을 이루었고 그토록 원했던 잠시의 평화를 누릴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두 사람이 함께 살며 서로를 의지한 지 12년이 지난 다음에야 결혼실을 올리고 누구에게나 떳떳한 부부로 맺어질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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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베르디의 오페라 가운데 가장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트라비아타는 두 사람의 가슴 아픈 사랑이 빚어낸 결실입니다. 그 자신이 베르디의 앞날을 가로막고 있다고 생각한 스트레포니는 파리로 떠났고 그 뒤를 따라간 베르디는 아무도 의식하지 않아도 되는 자유로운 도시에서 두 사람의 사랑에만 모든 것을 쏟을 수 있었습니다. 두 사람은 함께 듀마의 소설 카멜리아의 여인을 연극으로 만든 공연을 관람하였고 신분의 차이로 이루어질 수 없었던 극중의 남녀 주인공이 마치 두 사람인 듯 여긴 베르디가 당장에 오페라로 만들기로 결심을 했던 것입니다. 그러고 보면 트라비아타뿐만 아니라 베르디의 오페라에 나오는 남녀 주인공들의 사랑은 하나같이 이러저러한 이유로 이루어질 수 없는 안타까운 사랑입니다. 그러고 보니 아이다의 두 남녀 주인공이야말로 개선장군과 노예라는 신분으로 보나 적대국인 이집트의 장군과 에디오피아의 공주라는 처지를 생각한다 해도 절대로 이루어질 수 없는 처지입니다. 이 작품에도 아버지와 딸이 기구한 운명으로 다시 만나고 이집트에 정복당한 에디오피아 사람들의 처지는 바빌론에 끌려온 이스라엘 사람들이나 다름이 없고 오스트리아의 통치에서 벗어나려는 이탈리아 사람들과도 마찬가지 입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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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erdi Opera Aida

출처 : wikiwand


이후 베르디는 내놓는 작품마다 성공을 거두었고 누구에게나 존경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당시로는 드물게도 아흔에 가까운 천수를 누리기까지 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오래 살면서 결국은 그의 운명과도 같았던 평생의 반려 스트레포니를 먼저 보내야했습니다. 그 안타까움이야말로 그의 삶에 드리워진 마지막 결정타였고 이제는 더 이상 걷어버리고 싶지 않은 검은 장막이었을 것입니다. 그 장막 속에 그의 모든 슬픔과 기쁨을 묻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고향인 부세토 근교의 산타가타에 마련한 농장에 칩거하였습니다. 통일 이탈리아의 첫 번째 국회의원으로 추대되어 잠시 권좌의 단 맛도 보았지만 재차 추대되었을 땐 정중히 사양하였습니다. 성공한 자신과는 달리 불우한 처지의 동료 음악가들의 노후를 위해 사재를 털어 양로원을 지었습니다. “휴식의 집이라 이름붙인 이 양로원을 두고 그는 자신이 남긴 가장 뛰어난 작품이라 말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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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누구나 견디기 힘든 슬픔과 참을 수 없는 아픔을 겪기 마련입니다. 시간이 지나면 어떻게든 이겨내기 마련이라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는 걸 우리는 잘 압니다. 그래야 하니 그렇다는 말이고 그랬으면 하고 바라는 마음인 것이지요. 그래서 그저 그런 척하려니 남들보다 더 열심히 살면서 속으로만 힘겨워하는 것입니다. 누구나 다 그렇다는 것이 아니라 더러 그렇다는 것이고 베르디가 특별히 더 그랬다는 것입니다. 그의 영혼이 하늘나라로 갔다면 스트레포니와 함께 있을까요? 아니면 마르게리타와 두 아이를 보살피고 있을까요? 그 선택이 두려워 아직도 이승을 떠돌고 있다면 산타가타 농장에서 흙이라도 만지고 있을까요? 아니면 휴식의 집에 깃들어 차라리 오갈 데 없어 그곳에 머무르는 동료들을 부러워하고 있을까요? 오페라 운명의 힘에서 여주인공 레오노라가 부르는 아리아 주여, 제게 평화를 주소서를 들으시겠습니다. 레오노라는 사랑을 반대하는 아버지를 사고로 죽게 하고 멀리 집을 떠나 연인과도 헤어졌지만 복수를 하려는 오빠의 집념에 쫓겨 수도원을 찾습니다. 이 노래는 날마다 은둔과 고행으로 속죄하지만 끝내 마음의 평화를 얻지 못한 레오노라의 간절한 기도입니다. “신곡에서 단테는 살아서 지옥을 건넌 자만이 죽어서 천국에 든다고 했습니다. 죽음 없는 부활이 없고 지옥 없는 천국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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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레겐츠 오페라 축제] 대자연의 경관과 음악의 감동이 함께 어우러진 색다르고 뜻 깊은 여행을 생각하신다면 베르겐츠 오페라 페스티발을 추천합니다![브레겐츠 오페라 축제] 대자연의 경관과 음악의 감동이 함께 어우러진 색다르고 뜻 깊은 여행을 생각하신다면 베르겐츠 오페라 페스티발을 추천합니다!

Posted at 2013.11.19 10:29 | Posted in 이건음악회 Talk Talk/홍승찬교수의 클래식 톡톡





홍승찬 교수의 클래식 음악(52)
[홍승찬 교수의 재미있는 클래식음악 이야기]

 

 


브레겐츠 오페라 축제

 


혹시 대자연의 경관과 음악의 감동이 함께 어우러진 색다르고 뜻 깊은 여행을 생각하신다면 베르겐츠 오페라 페스티발을 추천합니다. 해마다 여름이면 유럽 각지에서 수많은 음악 축제들이 열리고 있고 저마다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고 있지만 베르겐츠 페스티발은 비교적 뒤늦게 시작하여 최근에야 널리 알려진 축제입니다. 그리고 사실 오스트리아의 휴양도시 브레겐츠는 해마다 열리는 오페라 축제가 아니었다면 지금도 우리에게 생소한 이름이었을 것입니다. 오스트리아와 독일은 물론 스위스까지 펼쳐진 드넓은 보덴 제’(See는 독일어로 호수를 뜻한다)를 끼고 있는 오스트리아의 아름다운 휴양도시이지만 비슷한 조건의 마을이나 도시들은 너무나 많아 브레겐츠를 특별히 기억할 이유가 따로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아마도 그들만의 특별한 무엇인가가 필요했을 것이고 그런 고민 끝에 세상에서 하나 뿐인 오페라 축제를 만들었을 것입니다. 1946년에 시작된 브레겐츠 페스티발은 호숫가에서 펼쳐지는 최초의 오페라 축제입니다. 이후 비슷한 시도들이 뒤를 이었지만 브레겐츠가 가장 먼저였고 그 후로도 꾸준히 변화와 발전을 모색하여 그 누구도 따를 수 없는 규모와 명성을 자랑하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호수에 큰 배를 띄워 갑판 위에서 공연을 하는 것이 축제의 시작이었지만 그것이 보덴 제를 찾는 관광객과 휴양객들에게 큰 호응을 얻자 1948년부터는 호수 위에 고정적인 무대를 세웠습니다. 그리고 1979년에 이르러 지금과 같은 첨단의 시설을 완성하였고 1980년에는 호숫가에 페스티벌 하우스를 따로 만들어서 해마다 7월 중순부터 한 달 동안 오페라 페스티발을 열고 있습니다.






사실 여름마다 야외에서 펼쳐지는 음악축제라면 이탈리아의 베로나를 가장 먼저 떠올리게 됩니다. 로마시대에 지어진 원형극장에서 해마다 여름이면 오페라 축제가 열립니다. 그러나 베르겐츠에서 경험한 토스카는 베로나 야외극장에서 베르디의 아이다를 봤을 때와는 전혀 다른 감동이 있었습니다. 베로나에서는 2만명이 넘는 사람이 모인 드넓은 원형극장의 구석 자리에서도 마치 바로 앞에서 보는 듯 착각할 정도로 소리가 너무나 또렷하게 들려 흠칫 놀랐었습니다. 베로나에서는 지금까지도 생생하게 살아 숨쉬는 고대 로마의 위대한 역사와 그것이 이룩한 위대한 업적에 감탄했다면 베르겐츠에서는 인간이 도저히 어찌 할 도리가 없는 자연의 섭리와 그것에 맞서도 끝내 어우러지고 마는 인간의 운명에 저절로 빨려드는 기분이었습니다. 세상에 하나 뿐인 소리의 향연을 베풀었던 베로나와는 달리 베르겐츠는 세상에 하나 뿐인 장관을 펼쳐보였습니다. 그들이 처음에 의도했던 그대로 세상에 하나 뿐인 가치를 만들어낸 것입니다.





성급한 호사가들은 브레겐츠 페스티발을 두고 잘츠부르크 페스티발, 바이로이트 페스티발과 함께 세계 3대 음악축제라고 말하기도 하지만 솔직히 유서 깊은 유럽의 다른 축제들에 비해 브레겐츠 페스티발에 대한 이미지는 썩 좋은 편이 아니었습니다. 말하자면 기발한 아이디어로 휴양도시 브레겐츠에 관광객들을 끌어들이자는 의도가 너무나 분명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심지어는 오락영화의 대명사라고 할 수 있는 ‘007 시리즈에까지 등장하는 것을 보고 콘텐츠보다 마케팅이 앞서는 현대 쇼 비즈니스의 전형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여름 처음으로 브레겐츠를 방문하여 남들보다 일찍 페스티발이 열리는 호숫가 무대를 찾았을 때도 별다른 감흥을 느낄 수가 없었습니다. 호텔에 여장을 풀고 시내를 한 바퀴 돌아보았지만 크게 눈길을 끄는 곳이 없었고 호텔에서 소개한 어느 레스토랑에 들러 이른 저녁 식사를 마쳤지만 그다지 기억에 남을 만한 맛은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얼른 다시 호텔로 돌아와 정장으로 갈아입고는 일찌감치 페스티발이 열리는 공연장으로 향했습니다.





그런데 별 다른 할 일이 없어 일찍 찾은 호반의 공연장에서 기대치 않은 경험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탁 트인 무대를 바라보는 넓은 객석에 홀로 앉아 커다란 무대와 어우러진 호수 너머 풍경을 바라보는 기분은 참으로 묘했습니다. 아무 것도 가릴 것이 없어 밖에서도 볼 수 있는 무대는 이미 공연 전의 호기심과 흥분을 자아내는 대상은 아니었지만 마치 오래 전부터 그것에 있었던 기념비적인 조형물인 것처럼 호수 위에 떠서 유유히 하늘을 이고 있었습니다. 이윽고 해가 저물면서 관객들도 하나 둘씩 객석을 채우기 시작했고 호수 저편 린다우에서 다가온 배가 천천히 다가와 마침내 기슭에 이르러 한 무리의 사람들을 내려놓자 조금 전까지의 호젓하고 적막한 공기는 흩어지듯 사방으로 날리는 것 같았습니다





저무는 해가 파란 하늘과 푸른 호수를 점점 더 붉게 물들일 즈음 새하얀 조명이 차례로 들어오면서 검게 드리우는 어둠의 장막을 새하얀 빛이 걷어버리는 순간은 마치 위대했던 한 시대가 가고 다른 시대가 오는 듯한 착각에 빠질 만큼 환상적이었습니다. 이윽고 펼쳐진 오페라는 이미 수 없이 보았던 푸치니의 토스카가 아니었습니다. 익숙한 스토리와 귀에 익은 음악은 온 데 간 데 없이 그저 인간을 둘러싼 대자연에 바치는 외침이고 몸짓일 뿐이었습니다. 오페라가 막바지에 이르러 죽음을 앞둔 주인공 카바로도시가 연인 토스카에게 마지막 편지를 쓰면서 별은 빛나건만을 부를 때 그의 시선은 객석이 아니라 드넓은 창공에서 반짝이는 별을 쳐다보고 있었고 관객들의 시선 역시 같은 곳을 향하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무대와 객석은 대자연의 품안에서 하나가 되었고 그렇게 이루어진 일체감은 오래도록 여운으로 남아 가시지 않았습니다. 푸치니의 오페라 토스카가운데 주인공 카바로도시가 부르는 별은 빛나건만을 들으시며 이 시간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Puccini - 별은빛나건만(Tosca - Pavarotti)



 

글 : 홍승찬 교수
편집 : 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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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아.오랫만에. 잊고지내던음악.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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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의 성인'이라고 불리는 베토벤의 생애와 작품-베토벤 16번, 작품번호 135번] 베토벤이 마지막 작품의 마지막 악장에 남긴 고뇌와 번민['음악의 성인'이라고 불리는 베토벤의 생애와 작품-베토벤 16번, 작품번호 135번] 베토벤이 마지막 작품의 마지막 악장에 남긴 고뇌와 번민

Posted at 2013.10.11 10:28 | Posted in 이건음악회 Talk Talk/홍승찬교수의 클래식 톡톡

 

 

 

 

홍승찬 교수의 클래식 음악(51)
[홍승찬 교수의 재미있는 클래식음악 이야기]

 

 

 

음악의 성인으로까지 칭송받는 베토벤의 마지막 작품은 현악 4중주 16, 작품번호 135번입니다. 베토벤은 거의 모든 장르의 음악에서 불멸의 업적을 남겼지만 특히 교향곡과 피아노 소나타, 그리고 현악 4중주에서 그가 쌓은 업적은 그 이후 지금까지 아무도 범접하지 못한 성역입니다. 그런데 인류 역사를 통 털어 가장 위대한 작곡가로 일컬어지는 베토벤이 삶의 끝자락에 이르러 남은 힘을 다하여 작곡한 최후의 대작인 현악 4중주 16번 마지막 악장에는 뜻 모를 말이 적혀 지금까지 수많은 사람들의 호기심만 자극한 채 아직도 의문으로 남아 있습니다. ‘고통스럽고 힘들게 내린 결심(Der Schwergefasste Entschluss)'이란 말에 이어 꼭 그래야만 하나(Muss es sein)?'라는 물음을 던진 다음에 뜸을 들이다가 그래야만 한다(Es muss sein)'라는 답을 적어 넣었습니다.

 

Beethoven, String Quart No.16 Op.135

 

베토벤 현악 4중주 16번

Ludwig van Beethoven

1770-1827

Hagen Quartet

Lukas Hagen, 1st violin

Rainer Schmidt, 2nd violin

Veronika Hagen, viola

Clemens Hagen, cello

2000.01.26

 

Hagen Quartet - Beethoven, String Quartet No.16 in F major

 

베토벤의 현악 4중주 중 마지막 작품일 뿐만 아니라 모든 장르를 통틀어 작곡가의 최후 작품이다(이후 작곡된 곡은 ‘대 푸가’를 대신한 현악 4중주 13번의 마지막 악장뿐이다). 1826년 봄, 이 작품을 이미 구상하고 있었던 베토벤은 1826년 7월에 착수해서 10월에 완성했다. 그가 사망하기 5개월 전이다. 1826년 베토벤의 상황은 좋지 않았다. 7월에는 빗나간 조카 카를이 권총으로 자살하려다 미수에 그쳤다. 9월에는 동생 요한의 권유로 그나이젠도르프로 가서 작곡을 했다. 경치 좋은 곳에서 산책도 하며 지냈지만 갖가지 병은 베토벤의 건강을 좀먹고 있었다. 수종이 생기고 식욕이 감퇴된 베토벤은 우울하게 지낼 때가 많아졌다. 그러다 빈으로 돌아올 때 베토벤은 폐렴에 걸렸다. 이 병이 결국 사망으로 이어졌다. 1827년 3월 26일 세상을 떠난 베토벤의 사인은 간경변이었다.

 

여러 가지 추측들 가운데 심지어 가정부에게 지급할 급여를 놓고 고민한 흔적이라는 주장은 지나친 감이 없지 않지만 매사에 까다롭고 철저했던 베토벤의 삶을 깊이 들여다보면 충분히 그러고도 남으리라는 것을 이해하게 됩니다. 그리고 바로 그런 점에서 이것은 단편적인 하나의 사건이라기보다 그가 인생의 막바지에 이르러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스스로에게 다시 한 번 던지는 최후의 질문이고, 아울러 마지막으로 얻은 해답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말하자면 평생에 걸쳐 그가 행한 모든 일이 다 끝없는 고뇌의 산물이었다는 것이고 언제나 최선을 다한 결과였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바로 그 확실한 증거를 마지막 작품의 마지막 악장에 스스로의 독백으로 남긴 것입니다.

 

 

아닌 게 아니라 하나의 작품을 완성하기까지 베토벤만큼 많은 스케치를 거치면서 고치고 또 고쳐 쓴 작곡가는 달리 없었습니다. 때문에 그 어떤 작곡가보다 많은 스케치를 남겼고 그것들을 통해 작품의 완성에 이르기까지 어떤 고민을 하였고 무엇을 어떻게 얼마나 수정하고 다듬었는지를 낱낱이 확인할 수 있습니다. 더불어 이를 통해 고뇌의 시간이 얼마나 길고 힘들었는지도 충분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이전까지 대부분의 작곡가들은 왕족이나 귀족들에게 고용되어 일정한 급여를 받으면서 그들이 필요로 하는 작품을 원하는 만큼 요구하는 시간에 만들어야 했지만 베토벤은 유별난 성격과 타협을 모르는 고집으로 말미암아 그럴 수도 없었고 그럴 생각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결국 그는 스스로가 선택한 최초의 프리랜서 작곡가가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니 고정적인 월급을 받는 대신 작품을 출판하거나 연주회를 열어 돈을 벌어야 했고 개인교습으로 학생들을 가르치고 수업료를 받아 생계를 해결해야 했습니다.

 

 

베토벤을 주인공으로 다룬 영화

 

생계를 위해 피아노를 가르친 학생들 가운데는 귀족들의 자녀가 많았고 특히 젊은 여성이 많았습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그들과 사랑의 감정이 싹트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가 아무리 뛰어난 작곡가라고 해도 귀족과 평민이라는 신분의 벽을 뛰어넘을 수는 없었고 그것이 내성적이고 자존심이 강한 베토벤에게는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주었고 그 때문에 그는 평생을 독신으로 살았습니다. 음악에 대한 그의 열정이 그랬던 것처럼 여인을 향한 그의 사랑도 매 순간 반드시 그래야만 했던 필연이었던 것입니다. 결국 그에게 있어 독신은 스스로의 선택이 아니라 운명의 장난이었던 셈입니다. 그가 죽고 발견된 유품들 가운데는 누군가를 불멸의 연인이라 부르며 억누를 수 없는 운명적인 사랑을 정열적으로 고백하고 있는 편지 세 통이 발견되었고 이로 말미암아 그 이후 지금까지 줄곧 그 주인공이 누구인지를 두고 추측이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베토벤의 삶과 음악을 다룬 수많은 영화들 가운데 불멸의 연인이 바로 그 대표적인 경우로 영화에서는 동생의 부인이 그 주인공이라는 파격적인 주장을 펼치고 있습니다. 그 때문에 동생이 죽자 그의 아들, 즉 조카인 카를의 양육권에 그토록 집착했다는 것이지요. 말하자면 카를이 바로 베토벤 자신의 아들이었다는 것입니다.

 

 

베토벤의 유일한 조카 칼 반 베토벤(Karl van Beethoven)

 

거듭된 사랑의 상처 때문인지 베토벤이 열망했던 이상적인 여인상은 한결같이 구원의 여성이었습니다. 그래서 그가 남긴 유일한 오페라이지만 다른 어떤 작품들보다 애착을 가졌던 피델리오에서 주인공 레오노라는 생명을 잃을지도 모르는 위험을 무릅쓰고 옥중에 갇힌 남편을 구하고자 남장을 하고 적진으로 숨어드는 여장부입니다. 말하자면 진정 사랑한다면 사랑하는 이를 위해 목숨까지 내놓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고 그런 사랑을 저버리고 돌아선다는 것은 그 어떤 경우에도 있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에게 있어 사랑은 음악과 마찬가지로 언제나 완전하고 변하지 않는 불멸의 존재였던 것입니다.

 

Borodin Quartet - Beethoven, String Quartet No.16 in F major

Ruben Aharonian, 1st violin

Andrei Abramenkov, 2nd violin

Igor Naidin, viola

Valentin Berlinsky, cello

2004.07

 

1악장: 알레그레토

밝고 간결하다. 초기작과 같은 명료함으로 다가온다. 베토벤의 긴장감보다는 음악을 즐기는 모차르트의 모습이 숨겨져 있기도 하다. 단편적인 선율에 의한 흐름이나 악상을 유기적으로 통일시키는 것은 역시 베토벤의 솜씨이다. 베토벤이 창조해 온 현악 4중주의 정수가 함축돼 있다. 첼로가 엄격한 서주를 제시하면 바이올린이 짧게 대답한다. 제1주제는 3개의 악기로 각기 연주되며 새로운 선율은 제1바이올린에 나타난다. 제2주제는 제2, 제1바이올린으로 연주되고 제시부 뒤 발전부로 이어진다. 재현부와 코다를 거쳐 조용히 끝난다.

2악장: 비바체

여기서는 분명한 베토벤의 성격이 드러난다. 뚜렷이 지시하지는 않지만 스케르초에 해당되는 악장이다. 3/4박자임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의 현기증 나는 속도와 예민한 리듬으로 약동하는 듯한 해방감을 안겨준다. 중간부는 제1바이올린이 기본적인 모티프를 연주한다. 영원히 계속될 것만 같은 음형이 반복된다.

 

3악장: 렌토 아사이 칸탄테 에 트란퀼로

경쟁하듯 질주하던 스케르초 다음에 느긋하고 조용하게 슬픔을 노래한다. 환상적인 변주곡 형식으로 정신적인 깊이와 우아한 종교적 정화를 보여준다. 그러나 마냥 눈물을 자아내는 슬픔이 아니라 어쩐지 동경과 평화로운 정서를 드리우고 있다. 슬픔을 노래하는 거장의 고즈넉한 숨결이 살아 있다.

4악장: 알레그로 그라베

‘괴로워하다가 간신히 굳힌 결심’에 두 가지 동기가 나온다. 비올라와 첼로가 ‘그래야만 하나’하고 물으면 바이올린이 왠지 부드럽게 반응한다. 다시 비올라와 첼로가 질문한다. 몇 번의 질문에 바이올린은 점차 답변을 하기 시작한다. 알레그로로 들어오면 명확하게 ‘그래야만 한다’고 대답하는 피날레가 시작된다. 알레그로는 경쾌하고 밝고 튀는 분위기로 바뀐다.

 

 

 

현악 4중주 16번의 마지막 4악장은 알레그로 그라베, 빠르고 장엄하게입니다. 비올라와 첼로가 그래야만 하는가?’라고 물으면 바이올린이 부드럽지만 망설이는 듯 머뭇거립니다. 다시 비올라와 첼로가 질문을 거듭하자 바이올린의 태도도 점점 분명해지면서 마지막 부분에 이르러 빠르고 경쾌하게 그래야만 한다는 확고한 대답을 던지게 됩니다. 이렇듯 치열했던 베토벤의 삶은 마지막 숨을 거두는 순간에 또 한 번의 묘한 여운을 던지며 우리의 마음을 어지럽힙니다. 전하는 말에 따르면 그가 남긴 마지막 말은 박수를 쳐라, 희극은 끝났다.’였다고 합니다. 어쩌면 삶의 무대에서 끝까지 최선을 다한 한 광대의 고독한 독백으로 들리기도 하지만 어쩌면 스스로의 의지대로 자유롭게 살고 싶어 처절한 몸부림을 쳤지만 인간에게 지워진 운명이라는 굴레를 끝내 벗어 던지지 못한 한 인간의 절규로 들리기도 합니다. 그리고 또 죽음의 문턱을 넘으면서까지 포기할 수 없는 자유와 사랑, 음악과 예술에 대한 열망을 그토록 처연하게 외쳤는지도 모릅니다. 오늘날 너무나도 쉽게 무엇인가를 선택했다가 그보다 더 쉽게 포기하면서 그렇게 지나쳐 버린 인연과 사연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고 잊어버리는 우리 모두에게 베토벤의 삶과 음악은 너무나 무겁고 부담스러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그가 남긴 음악이 있고 그것을 만든 그의 삶이 있었기에 참을 수 없이 가벼워진 우리의 존재와 자아가 아직도 이 땅을 굳건히 딛고 서서 비바람을 무릅쓰며 먼 하늘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베토벤의 현악 4중주 16번 마지막 악장 들으시며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고 또 그 해답을 찾아보는 시간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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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너무 잘보고 갑니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서 이 곡을 접하고 찾아봤는데 너무 훌륭한 포스팅에 베토벤의 무거움이 전달되서 가슴이 아프네요.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는 저에게 많은 위로가 됩니다. 감사합니다.
  2. 김에송
    베토벤의 마지막 작곡이 이 곡인 줄은 몰랐는데..

    베토벤의 피아노소나타와 교향곡, 그리고 현악 4중주는 정말 대단한 것 같아요.

    듣고싶어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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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을 위한 클래식 음악 초대장] 베르디와 바그너의 마지막 메시지, 바보들의 행진. 베르디와 바그너의 탄생 200주년을 맞이하여...[당신을 위한 클래식 음악 초대장] 베르디와 바그너의 마지막 메시지, 바보들의 행진. 베르디와 바그너의 탄생 200주년을 맞이하여...

Posted at 2013.09.11 08:33 | Posted in 이건음악회 Talk Talk/홍승찬교수의 클래식 톡톡

 

 

 

 

 

홍승찬 교수의 클래식 음악(50)
[홍승찬 교수의 재미있는 클래식음악 이야기]

 

 

 

 

 

 

 

 

오페라 역사를 통털어 가장 위대한 작곡가를 꼽으라면 대부분 베르디와 바그너를 떠올리게 됩니다. 그런데 이 두 사람은 공교롭게도 같은 해에 태어났는데, 그 해가 바로 1813년입니다. 그러니 올해는 다름 아니라 두 작곡가의 탄생 200주년이 되는 해이고 그래서 지구촌 곳곳에서 이 뜻 깊은 해를 기리는 행사와 공연들이 줄을 잇고 있습니다. 바로 얼마 전 우리나라 국립오페라단 또한 베르디의 팔스타프를 무대에 올렸고 서울시립오페라단은 베르디의 아이다를 공연하기도 했지요. 5월에는 서울국제음악제에서 바그너의 연작 오페라 반지의 두 번째 작품인 발키레를 선보였는데요 이처럼 바그너의 음악극보다는 베르디의 오페라를 볼 수 있는 기회가 더 많을 것 같습니다.

 

 

베르디의 "아이다" 공연 모습

그것은 아무래도 바그너와 비교한다면 베르디의 작품이 좀 더 우리의 삶과 가까운 이야기를 귀에 쏙 들어오는 음악으로 펼쳐놓기 때문이겠지요. 그와 반대로 바그너는 인간의 구원과 세계의 질서와 같은 보다 근본적이고 철학적인 문제를 파고들었고 지나치게 음악, 특히 가수들의 노래에 의존하는 이탈리아 오페라의 한계를 뛰어넘어 무대 위의 모든 요소들이 어느 하나에 치우치지 않고 완벽하게 결합하여 일체를 이루는 ‘Musikdrama', 즉 음악극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주창하였습니다. 작품세계 뿐만 아니라 삶에 대한 그들의 태도 또한 전혀 달라서 베르디가 늘 겸손하고 신중하며 주변 사람들을 배려하고 존중하는 삶을 살았던 것과는 반대로 바그너는 그의 꿈을 실현하고 뜻을 펼치기 위해서는 그 어떤 수단과 방법도 가리지 않을 정도로 독선적이고 자기중심적이었습니다. 그래서 베르디는 말년에 사재를 털어 은퇴하고 오갈 데 없는 음악가들을 위한 양로원을 지었던 반면 바그너는 바이에른의 루드비히 2세를 설득하여 그 자신의 작품만을 무대에 올릴 수 있는 전용극장 바이로이트축전극장을 세웠습니다.

 

베르디의 "팔스타프" 공연 모습

 

이처럼 같은 시대를 살았지만 이렇듯 상반된 삶과 꿈을 가졌던 두 사람이기에 그들이 남긴 어느 하나도 서로 닮은 꼴을 찾을 수 없을 것 같지만 엉뚱하게도 삶의 끝자락에 이르러 마지막 남은 힘을 다해 완성한 최후의 걸작들에서 묘한 만남이 이루어지는 것을 발견하곤 소스라치게 놀라게 됩니다. 바그너의 마지막 작품은 파르지팔이고 베르디의 경우는 팔스타프입니다. 작품의 이름이 주인공의 이름이라는 것과 그것이 모두 네 음절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을 공통점 말고는 아무리 들여다봐도 이 둘의 공통점은 나타나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전 작품들 보다 차이점만 더 두드러질 뿐입니다.

 

 

 

바그너의 작품만을 무대에 올릴 수 있는 전용극장 "바이로이트축전극장"

 

바그너는 초지일관 이 혼란스럽고 부조리한 세상을 구원할 존재가 누구인지를 물어왔고 마지막 작품에서 답을 찾았습니다. 탄호이저에서는 한 여인의 숭고한 헌신과 희생으로부터 구원의 빛을 보았으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사랑하는 연인을 위한 것이었고 4부작 음악극 반지에서는 두려움을 모르는 인간의 영웅이 무너져 가는 신들의 세계를 구원하리라 믿었지만 영웅 지그프리트는 결국 의심과 배신으로 말미암아 뜻을 이루지 못합니다. 그러나 마지막 작품에서 주인공 파르지팔은 마법사 클링조르의 간계에 넘어가 치명적인 상처를 입은 성배기사단의 왕 암포르타스를 치유하고 세상을 구원하게 됩니다. 현자가 예언하기를 연민으로 깨달음을 얻은 순수한 바보만이 암포르타스를 살릴 것이라 했으니 파르지팔이 곧 그였던 것입니다.

 

뮤지컬 '아이다' 中 'Elaborate lives' - 차지연 & 김준현

 

바그너와는 달리 베르디는 삶의 막바지에 이르러 전작들과는 전혀 다른 시도를 하였고 그것은 어처구니없게도 평생 그가 쌓아온 고귀하고 진지한 이미지와는 어울리지도 않을 뿐더러 시대에도 뒤떨어진 오페라 부파였습니다. 그리고 그의 평생 처음으로 다른 그 누구도 의식하지 않고 스스로의 만족을 위한 작품이라고 했고 심지어는 계약서에다 마지막 리허설까지 갔다 하더라도 자신이 결정하면 공연하지 않아도 된다는 조항을 넣기까지 했습니다. 세익스피어의 윈저의 유쾌한 아낙네들헨리 4”를 바탕으로 보이토가 쓴 대본에 곡을 붙인 팔스타프는 매력이라고는 어느 한 구석도 없는 속물입니다. 게다가 스스로는 누구보다 잘났다고 착각하며 있는 대로 잘난 척을 떠는 혐오스런 인물이지요. 한 때는 잘 나가는 기사였는지 모르지만 이제는 나이가 들어 배는 나오고 머리는 벗겨진 데다가 돈도 없으면서 날마다 술독에 빠져 누군가를 등칠 생각에만 골몰하고 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윈저의 돈 많은 부인 둘을 유혹해서 돈까지 뜯어낼 궁리를 하지만 결국은 오히려 그들과 그 주변 사람들에게 골탕을 먹고 망신을 당하기에 이릅니다. 그 과정에서 팔스타프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가식과 헛된 욕심까지 다 드러나게 되면서 마지막에는 모두가 화해하며 함께 노래를 부릅니다. 처음에는 세상만사 다 장난이고 남자들은 모두 광대라고 놀리더니 마지막에 가서는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은 바보일 따름라고 외칩니다.

 

 

 

 

 

 

 

 

독일 남부 뮌헨시 뮌헨오페라단 앞에서 28일(현지시간) 야외공연이 펼쳐졌다. 배우들이 조명을 비춘 대형 인형과 함께 공연을 하고 있다. 두 거인 인형 사이에 나란히 줄에 매달린 출연배우들의 모습이 이채롭다. 마치 작은 인형들을 엮어 놓은 듯이 보인다.이날 행사는 유명작곡가인 리하르트 바그너와 주세페 베르디 탄생 200주년을 맞아 열렸다. - 출처 : 일간스포츠 -

 

 

그렇습니다. 바그너는 순수한 바보가 세상을 구한다고 했고 베르디는 아무리 머리를 쓰고 잘난 척을 해도 우리는 누구나가 다 바보라고 말합니다. 스스로 바보인 줄 알면 그것이 바로 깨달음이고 우리 모두가 다 그렇게 깨닫게 된다면 그것이 바로 구원일 것입니다. 그래서 아마도 돌아가신 성철 스님이 당신이 낳은 단 한 점의 혈육이 출가한다 했을 때 불필이라는 법명을 주셨겠지요. 필요하지 않은 존재가 되라는 말씀이야말로 바보가 되라는 말씀이 아닐까요. 사람은 젊어서 세상을 바꾸려고 하고 결혼해서는 배우자를 고치려고 든다지요. 그러다 자식을 낳으면 한풀이라도 하려는 듯이 그마저 못살게 군답니다. 그렇게 지쳐서 삶이 다 꺼져갈 즈음에야 나 스스로가 바뀌어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데 그 때는 이미 늦은 겁니다. 철들자 죽음인 것이지요. 하루에 한 번은 가던 길을 멈추고 하늘을 봐야겠지요. 하루에 한 번은 까닭 없이 웃어야지요. 그래도 한 번은 누군가를 칭찬하고 한 번은 모르는 사람에게 말을 걸어볼 참입니다. 왜냐고요? 자꾸 왜냐고 묻지 마세요. 그냥 바보라서 그러려니 생각하세요.

 

 

 

 

 

 

 

글 : 홍승찬 교수
편집 : 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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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얻고자 노래를 불렀고 사랑을 얻고자 노래를 버린 마리아 칼라스] 세계 최고의 소프라노. 불멸의 디바 마리아 칼라스[사랑을 얻고자 노래를 불렀고 사랑을 얻고자 노래를 버린 마리아 칼라스] 세계 최고의 소프라노. 불멸의 디바 마리아 칼라스

Posted at 2012.10.01 07:30 | Posted in 이건음악회 Talk Talk/홍승찬교수의 클래식 톡톡

 

 

 

 

 

 

홍승찬 교수의 클래식 음악(35)
[홍승찬 교수의 재미있는 클래식음악 이야기]

사랑을 얻고자 노래를 불렀고 사랑을 얻고자 노래를 버린 마리아 칼라스

 

 

 

불멸의 디바 마리아 칼라스

 

 

 

 

 

누군가 저에게 역사상 최고의 지휘자 한 사람을 말하라면 선뜻 대답할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최고의 피아니시스트가 누구인지 한 사람만 꼽으라고 해도 역시 말문이 막힐 것입니다. 어떻게 그 많은 거장들 가운데 오직 하나만을 골라 최고라고 하겠습니까? 그러나 최고의 소프라노 가수가 누구냐고 묻는다면 주저없이 마리아 칼라스를 꼽을 것입니다. 칼라스는 이전의 어떤 소프라노 가수와도 다르고 이후의 그 누구도 따를 수 없는 경지를 이루었습니다. 그래서 오페라 연출가이자 영화감독인 프랑코 제피렐리는 마리아 칼라스를 추억하며 음악에서 BBefore Christ가 아니라 Before Callas를 뜻한다고 했습니다. 전에는 같은 소프라노라고 해도 소리가 무겁고 어둡거나, 아니면 가볍고 밝은지에 따라 맡을 수 있는 오페라의 배역이 달랐지만 칼라스는 그 어느 것도 가리지 않고 다 소화할 수 있었고 심지어 메조 소프라노가 부르는 영역까지도 섭렵했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칼라스가 보여준 가장 큰 차이는 연기력이었고 노래와 연기를 하나로 결합시키는 놀라운 힘이었습니다. 그리하여 칼라스 이전의 오페라 가수들은 단지 노래를 부를 뿐이었다면 칼라스에 이르러 드디어 노래를 연기하는 소프라노의 탄생을 맞이하게 된 것입니다. 사람들은 칼라스만 들어서는 그 진정한 매력을 알 수 없다고 합니다. 다른 가수들의 노래를 먼저 듣고 칼라스가 부르는 같은 노래를 들어야 그 참 맛을 제대로 느낄 수 있다고 하지요. 그 만큼 그는 다른 누구와도 전혀 달랐고 그로 말미암아 어떤 소프라노도 가지 못했던 길을 홀로 걸어갔습니다.

 

 


 

그녀는 1938년 15살 때 아테네 가극장에서 데뷔하면서부터 스타가 되었다. 1952년 영국의 코벤트가든 왕립가극장에서 벨리니의 오페라 <노르마>의 주역을 맡아 대성공을 거두어 그녀의 황금 시대를 열었다. 아래에 소개하는 공연 장면은 1959년 파리에서 가진 베르디의 오페라 <일 트로바토레>의 4악장 가운데 한 장면이다.





 

 

 

그러나 역사를 바꾸어 놓은 이 불세출의 소프라노의 어린 시절은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것과 너무나도 달랐습니다. 마리아 칼라스는 1923122일 미국 뉴욕에서 그리스 이주민의 딸로 태어났습니다. 아들을 잃고 그 슬픔에서 벗어나고자 또 다시 아들을 원했던 부모의 간절한 소망을 저버렸기에 그 실망은 고스란히 죄 없이 태어난 새 생명에게로 돌아갔습니다. 또래보다 유난히 덩치가 크고 뚱뚱한데다가 지독한 근시로 두꺼운 안경까지 끼고 있었던 마리아는 늘 천덕꾸러기에다 외톨이었고 어머니의 사랑은 언제나 예쁘고 날씬한 언니의 차지였습니다. 덩치에 어울리게 목소리도 컸던 마리아가 오직 하나 사람들의 관심을 끌 수 있었던 것은 노래였습니다. 그걸 알게 되면서 칼라스는 다른 누구도 아닌 오직 어머니의 사랑을 얻고자 노래를 부르고 또 불렀습니다. 부유한 집에서 태어나 무대에서의 삶을 꿈꾸었으나 부모의 반대로 이루지 못했던 어머니는 뒤늦게 어린 딸의 재능을 발견하고 기대를 갖게 됩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그것은 딸의 행복을 위해서가 아니라 딸의 성공을 통한 대리만족이었습니다.

 

 

 

 

마리아 칼라스 (Maria Callas, 1923. 12. 2 ~ 1977. 9. 16.)

 

아버지의 약국이 경영난으로 문을 닫게 되자 이혼한 어머니는 두 딸을 데리고 그리스로 돌아갔고 마리아는 아테네 국립 음악원에 입학하여 성악을 공부하게 됩니다. 거기서 스페인의 성악가 엘비라 데 이달고를 만나 성악의 기초를 닦고 실력을 쌓아가지만 그리스의 정국이 혼란으로 치닫게 되자 1945년 아버지가 있는 미국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그해 겨울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의 오디션에 응모했지만 탈락하는 아픔을 겪게 되고 겨우 힘들게 맺은 출연계약마저 기획사가 도산하는 바람에 물거품이 되어버립니다. 그러나 같은 기획사 소속의 베이스 가수 레메니의 소개로 1947년 베로나의 아레나에서 라 지오콘다에 출연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어 유럽으로 돌아왔고 그것이 마리아 칼라스의 공식적인 데뷔 무대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바로 그 무렵 이탈리아의 부유한 사업가 지오반니 바티스타 메네기니를 만나게 되는데 그것이 칼라스의 인생에서 가장 큰 행운이었습니다. 진정으로 칼라스를 사랑했던 그는 스스로 매니저를 자처하면서 그의 모든 것을 칼라스에게 바쳤습니다. 두 사람은 동거를 거쳐 마침내 결혼에 이르렀고 메네기니의 헌신적인 사랑으로 말미암아 칼라스는 노래에만 전념하게 되어 역사상 최고의 소프라노로 등극하게 됩니다.

 

 

영원한 불멸의 디바 - 2007년, 스크린에 부활하다!


역사상 최고의 디바로 꼽히는 마리아 칼라스(화니 아르당 분)가 그녀의 공연 기획자 친구인 래리(제레미 아이언스 분)의 설득으로 은둔 생활을 접고 오페라 '카르멘'을 영화로 만들게 된다는 흥미로운 가상 이야기를 다루는 음악드라마.

 

 

 

라트라비아타, 슬픈 비극의 마지막 장면을 노래하는 마리아(1953년)

 

 

 

지난 날이여 안녕!을 노래하는 마리아(1953년 라 스칼라)

 

1956년 라 스칼라 - 라 트라비아타의 명연주(실황녹음)

 

 

 

Ah, perfido! - 1976년 3월 파리 엘리제 궁 극장에서 마지막 연주(실황)

 

 

 

영원히 살아 있는 마리아의 노래와 말을 들어보자!

1) Norma (studio, 1949)

2) Il Trovatore (Mexico City, 1950)
3) Puritani (Mexico City, 1951)
4) Macbeth (Milan, 1952)
5) La Traviata (studio, 1953)
6) Lucia di Lammermoor (Milan, 1954)
7) Andrea Chénier (Milan, 1955)
8) La Vestale (Milan, 1956)
9) Anna Bolena (Milan, 1957)
10) Medea (Dallas, 1958)
11) Il Pirata (New York, 1959)
12) Poliuto (Milan, 1960)
13) Samson et Dalila (studio, 1961)
14) Tosca (studio, 1965)

 

 

 

베로나에서 데뷔한 이후 대역으로 나선 벨리니의 오페라 청교도에서 엘비라를 열연하여 오페라의 여신이란 극찬을 받았고 마침내 세계 최고의 오페라 극장이라는 라 스칼라에서 베르디의 아이다를 불러 정상에 우뚝 섰습니다. 칼라스는 당대의 프리마 돈나 레나타 테발디를 대신하는 절호의 기회를 놓치지 않았고 이후 스칼라 극장과 멀어지게 된 테발디와는 늘 라이벌 관계로 일컬어지게 되었습니다. 테발디를 넘어 자신의 시대를 활짝 연 칼라스는 코벤트 가든과 메트로폴리탄을 비롯한 세계 정상의 오페라 극장을 하나씩 정복하면서 전성기를 구가합니다. 그리고 어느날 90킬로그램이 넘었던 체중을 28킬로그램이나 줄여서 사람들을 놀라게 했고 지나친 감량에도 불구하고 소리의 힘을 잃지 않아 또 다시 사람들을 놀라게 했습니다. 이렇듯 남달리 강한 의지를 가졌지만 동시에 지나치게 감정의 기복이 심했던 칼라스는 사소한 문제로 사람들과 부딪혀 쓸 데 없는 불화와 말썽을 일으키기도 하고 심지어는 돌연 출연을 취소하여 비난과 빈축을 사기고 했지만 그 때마다 메네기니가 나서 사태를 수습하고 전화위복의 계기를 마련했습니다.

 

 

 

 

그러나 메네기니의 이러한 헌신적인 사랑도 칼라스의 비극적인 운명을 바꿔놓지 못했습니다. 역사상 그 누구도 누리지 못했던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을 때 그리스의 선박왕 오나시스가 칼라스에게 접근했고 사랑에 눈이 먼 칼라스는 메네기니는 물론 오페라와 노래까지도 던져 버렸죠. 메네기니가 칼라스에게 그랬던 것처럼 칼라스 또한 자신의 모든 것을 오나시스에게 걸었지만 희대의 카사노바였던 오나시스의 관심은 이미 케네디 대통령의 부인인 재클린에게 가 있었고 케네디가 비명에 세상을 떠나자 끈질기고 노골적인 구애 끝에 마침내 세기의 결혼식을 올리게 됩니다. 재클린과 신혼여행을 가서도 칼라스에게 전화를 걸 만큼 비열했던 오나시스를 포기하지 못했던 칼라스는 자기에게 돌아와 달라고 애원했습니다. 그토록 원하던 아이를 가졌으나 오나시스의 변심으로 유산을 하였고 그 충격으로 자살까지 시도하였습니다. 겨우 몸과 마음을 추스려 영화 메데아에 출연하였고 줄리어드 음악원에서 학생들을 가르쳤지만 이미 허물어져버린 심신은 돌이킬 수가 없었습니다. 딸의 치료비를 마련하겠다는 당대의 테너 주세페 디 스테파노의 간절한 청을 거절하지 못하고 함께 나선 세계 순회공연은 칼라스를 아끼는 많은 사람들을 안타깝게 만들 만큼 초라하였습니다. 결국 이 무대를 끝으로 더 이상의 기력을 잃은 칼라스는 파리에서 은둔 생활을 하던 끝에 1977916일 약물과용과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테너 주세페 디 스테파노에게 기자들이 칼라스와 테발디를 비교해 달라고 하자 그는 칼라스는 여자이지만 테발디는 아니다라는 대답을 했다고 합니다. 어려서 소아마비를 앓았던 테발디는 딸을 업고 하루도 빠짐없이 먼 길을 치료받으러 다녔던 어머니의 극진한 사랑으로 이를 극복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태어나면서부터 미운 오리새끼였던 칼라스는 어머니의 사랑에 목말라 노래로 그 사랑을 얻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어쩐 일인지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란 테발디의 노래와 연기는 너무나 절제되어 있어 고상하기만 할 뿐입니다. 그와는 반대로 사랑에 굶주렸던 칼라스의 노래는 구구절절 사랑으로 넘쳐납니다. 이미 가진 사람은 절실하지가 않겠지요. 그래서 아마도 궁핍이 예술을 낳는다고 하는 것이겠지요. 가지지 못해 너무나 안타까운 마음이 애닲은 노래를 낳았을 겁니다. 그러고 보니 칼라스만이 부를 수 있다는 벨리니의 노르마는 배신당한 사랑의 아픔을 노래하고 있고 역시 누구도 따를 수 없다는 도니제티의 람메르무어의 루치아도 이루지 못한 사랑의 절망으로 미쳐버린 여인의 심정을 노래하고 있군요. 푸치니의 오페라 토스카가운데 토스카가 부르는 아리아 노래에 살고 사랑에 살고를 들으며 노래와 사랑이 삶의 전부였기에 사랑으로 노래를 부르고 노래로 사랑을 얻으려고 했던 한 여인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마리아 칼라스의 아베마리아

 

 

 

글 : 홍승찬 교수
편집 : 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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