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승찬 교수의 클래식 음악 이야기] 땅을 딛고 서서 하늘을 우러러본 위대한 3B 음악가들(바흐, 베토벤, 브람스)[홍승찬 교수의 클래식 음악 이야기] 땅을 딛고 서서 하늘을 우러러본 위대한 3B 음악가들(바흐, 베토벤, 브람스)

Posted at 2017.06.04 19:03 | Posted in 이건음악회 Talk Talk/홍승찬교수의 클래식 톡톡


음악사를 통 털어 가장 위대한 업적을 쌓은 세 사람의 독일 출신 작곡가라면 아무래도 바흐, 베토벤, 브람스가 아닌가 싶습니다. 공교롭게도 이들 세 사람 이름의 성이 모두 알파벳 B로 시작하는 까닭에 '3B'라 부르기도 합니다. 최초의 전업 지휘자였던 한스 폰 뷜로우가 처음 이 말을 썼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독일 출신의 작곡가라는 것 말고도 참 많은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래서 그들의 놀라운 능력과 업적이 무엇으로부터 비롯되었는지 깨닫고 고개를 끄덕이게 될 뿐만 아니라 우리 스스로의 삶을 돌아보며 과연 어떻게 살아야할지 가늠하는 잣대로 삼게 됩니다.

 

이미지 출처 : 나무위키

 

먼저 그들의 어린 시절을 살펴보면 하나같이 다 일찍 독립해서 스스로의 삶을 스스로 꾸려나갔다는 공통점을 찾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런 어려움을 헤쳐 나가는 과정을 통해 음악가, 예술가 이전에 한 사람의 생활인으로서 스스로에게 맡겨진 책임과 의무를 다했다는 것입니다. 그 결과 그들은 그 어떤 난관과 역경에도 굴하지 않는 의지와 집념, 근면과 성실로 불멸의 위대한 업적을 남길 수 있었습니다.

 

이미지 출처 : https://www.genie.co.kr/magazine/subMain?ctid=8&mgz_seq=3522

 

대대로 음악가를 배출한 집안에서 태어난 바흐는 어려서 부모를 차례로 여의고 큰 형 집에 얹혀살았습니다. 그러나 빠듯한 살림에 조카들이 늘어나자 따로 나가 살 수밖에 없었고, 그때부터 죽을 때까지 생계형 음악가의 길을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일찍 사촌인 마리아 바르바라와 결혼해서 열 세 자녀를 낳았고 부인을 사별한 후 재혼한 안나 막달레나와의 사이에서 일곱 자녀를 두었습니다. 무려 스물이나 되는 자녀들을 누구보다 잘 양육하고 교육하였기에 장남 빌헬름 프레데만과 차남 카를 필립 엠마누엘, 그리고 막내인 요한 크리스찬이 모두 한 시대를 대표하는 음악가로 음악사에 길이 그 이름이 빛나고 있습니다. 그가 마지막으로 대학도시 라이프치히에 정착하게 된 것도 성장한 자녀들의 교육을 염두에 둔 결정이었습니다.

 

이미지출처 : http://www.christianitytoday.com/history/people/musiciansartistsandwriters/johann-sebastian-bach.html

 

베토벤 역시 음악가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처음 음악가의 길을 개척하여 크게 성공하였던 할아버지와 달리 아버지는 무능하고 심약했던 탓에 알콜 중독자로 살면서 가족들뿐만 아니라 주위 사람들까지 괴롭히며 살았습니다. 그런 까닭에 삼형제의 장남으로 태어난 베토벤은 형제들을 감싸고 돌봤던 어머니가 일찍 세상을 떠난 다음부터는 그 자신은 물론 두 동생까지 돌봐야했고 죽는 날까지 그 책임을 다하느라 고달픈 삶을 살아야 했습니다. 말년에는 심신이 다 고갈되어 도저히 하루도 더 버틸 수 없는 지경이었는데도 형제들을 통 털어 유일한 혈육으로 남은 철부지 조카 카를의 앞날을 걱정하고 준비하느라 마지막 남은 힘까지 다 바쳤습니다. 스스로에게 엄격하고 지나치리만큼 절약했지만 그렇게 모은 돈은 고스란히 철부지 조카에게 유산으로 남겨졌습니다.

 

이미지 출처 : https://www.lifesitenews.com/opinion/the-problem-with-the-beethoven-argument

 

브람스의 아버지 또한 음악가였습니다. 콘트라베이스와 호른을 연주했으며 어린 브람스에게 음악의 기초를 가르쳤습니다. 경제적으로 무능한 아버지 대신 14살부터 함부르크 항만의 허름한 여인숙에서 피아노를 치면서 가족들의 생계를 꾸렸으며 헝가리의 바이올리니스트 레메니의 반주자로 발탁되었고 이후에는 당대를 풍미했던 거장 바이올리니스트 요아힘의 반주자로 음악경력을 이어갔습니다. 그렇게 사귄 요아힘과 평생 우정을 나누었고 슈만에게 브람스를 소개한 사람이 바로 요아힘이었습니다. 어머니가 죽고 계모가 들어와 동생들이 늘었지만 가족을 돌보는 브람스의 마음에는 변함이 없었습니다. 심지어는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다음에도 계모와 이복동생들까지 보살폈습니다. 무작정 믿고 전 재산을 맡긴 출판업자가 자신의 재산을 탕진해도 원망하는 법이 없었고 스스로는 검소하게 살면서 그렇게 남은 얼마 되지 않는 여유까지도 늘 누군가에게 베풀었습니다. 슈만이 그에게 빛을 주었듯이 그 또한 드보르작을 비롯한 많은 후배 작곡가들에게 길을 열어주었습니다. 그리고 그가 존경했던 스승의 부인이자 마음속으로 누구보다 깊이 사랑했던 클라라와 그 가족들을 죽을 때까지 돌보았습니다.

 

이미지 출처 : http://www.thefamouspeople.com/profiles/johannes-brahms-395.php

 

후대에 귀감이 되는 예술가라면 누구나 그렇듯이 이들 세 작곡가 역시 모두 고귀하고 숭고한 가치와 신념을 가졌고 음악으로 그것을 구현하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이들의 삶에서 진정 놀라운 것은 그들의 두 눈은 언제까지나 저 높은 곳의 별을 바라보며 두 손을 뻗어 끝내 닿으려 했으면서도 두 발은 늘 꿋꿋하게 땅을 딛고 서서 그들을 향해 몰아치는 세찬 바람을 조금도 피하지 않고 기꺼이 맞으며 이겨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술가라면 곧 몽상가를 떠올리기 마련입니다. 현실보다는 이상을 꿈꾸는 것이 예술이며 이상으로 현실을 이끄는 것이 예술가의 사명이라 믿습니다. 그와는 반대로 현실과 동떨어진 이상을 외치는 것은 공허한 메아리라고 생각하여 현실을 파고들어 그것을 있는 그대로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깨닫도록 하는 것이 예술이라 생각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예술가가 아닌 보통 사람들도 살다 보면 늘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고민과 갈등을 겪습니다. 현실은 이상을 용납하지 않고 이상은 현실을 무시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앞서 언급했던 세 작곡가는 현실과 이상이라는 서로 상반된 두 세상을 다 아우르는 기적을 이루었습니다. 아니 오히려 현실에서 이상을 찾았고 이상으로 현실을 구했습니다. 이상이 있었기에 현실을 포기하지 않았고 현실이 거칠수록 이상은 더 높아만 갔습니다. 남다른 재능이 축복이자 저주인 것처럼 우리에게 닥치는 고난 또한 장벽이면서 또한 선물이기도 합니다. 고난을 이겨내느라 단련된 힘으로 누구보다 하늘 높이 날아오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바흐와 베토벤, 브람스는 남다른 재능을 책임이라 생각하여 세상을 향한 축복으로 만들었고 그들에게 닥친 현실 또한 당연한 의무로 받아들여 위대한 선물을 우리에게 남겼습니다.


저작자 표시
신고

Name __

Password __

Link (Your Website)

Comment

SECRET | 비밀글로 남기기

[홍승찬 교수의 클래식 이야기]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은 계절 가을! 클래식 음악과 고전 음악으로 떠나는 기차여행.[홍승찬 교수의 클래식 이야기]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은 계절 가을! 클래식 음악과 고전 음악으로 떠나는 기차여행.

Posted at 2015.10.13 09:15 | Posted in 이건음악회 Talk Talk/홍승찬교수의 클래식 톡톡


가을입니다.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은 계절이지요. 한가위 명절에 고향을 향했던 들뜬 마음이 채 가라앉기도 전에 뜬금없이 또 다른 여행을 꿈꾸게 됩니다. 비행기나 배를 타고 바다 건너 멀리 떠나는 여행도 있고 자동차로 가까운 곳을 찬찬히 둘러보는 여행도 있겠지만 여행이라면 아무래도 기차를 가장 먼저 떠올리기 마런입니다. 이제는 거의 사라지고 없지만 스크린이나 책에서 만나는 증기기관차의 하얀 연기와 기적 소리는 언제든지 우리를 낭만과 환상 속으로 빠져들게 하지요.





기차는 영화나 소설뿐만 아니라 음악에도 흔적을 남겼습니다. 체코의 작곡가 드보르작은 기차를 너무나 좋아한 나머지 프라하 역 근처에 집을 구해놓고는 수시로 역으로 나가 기차를 관찰했고 심지어는 창작에 몰두하다가도 기차 소리만 들리면 뛰쳐나갔다고 합니다. 수업 중에도 학생을 시켜 역으로 드나드는 기차를 확인하게 했는데 기적 소리만으로도 기관차의 종류와 고유번호까지도 식별할 정도였으니 가히 그 관심과 애정이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이 가고도 남을 지경입니다. 





그리고 평생을 그토록 원했던 프라하 음악원의 교수 자리를 박차고 미국으로 건너간 것도 하루가 다르게 신대륙의 지도를 바꾸어놓을 만큼 눈부시게 급성장하고 있던 미국 철도산업의 현장을 자신의 눈으로 직접 목격하려는 마음이 무엇보다 앞섰기 때문이라고 하지요 아닌게 아니라 미국에 있는 동안 시간이 날 때마다 기차를 타고 뉴욕을 벗어나 여행을 다녔고 그의 대표작인 교향곡 “신세계로부터”에 그 흔적을 고스란히 남겼습니다. 1악장에서 느린 서주가 끝나면 음악이 점점 빨라지면서 마치 기관차가 역에서 출발하는 모습을 연상하게 되는데 그에게 있어 이 교향곡은 기차를 타고 신대륙으로 떠나는 여행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Antonín Dvořák (출처 : 위키피디아)


기차를 좋아해서 그 마음을 음악으로 남긴 작곡가라면 프랑스 작곡가 오네게르가 단연 으뜸일 것입니다. 20세기 초 에릭 사티의 영향을 받은 여섯명의 젊은 프랑스 작곡가들은 사람들의 삶에서 멀어져 가는 현대음악의 흐름을 다시 사람들 가까이로 돌려놓고자 의기투합했는데 이들이 “프랑스 6인조”입니다. 홍일점인 타유페르르를 비롯하여 미요와 풀랑, 뒤레, 오리크, 그리고 오네게르가 바로 그들로 그들은 길지 않고 복잡하지 않은 음악으로 우리 주변의 친근하고 일상적인 것들을 담아내려고 했습니다. 누구보다 기차를 좋아했던 오네게르는 당시 파리와 리옹 사이를 오갔던 특급열차의 이름과 모습을 그대로 음악에 옮겨놓았는데 그것이 바로 “기관차 퍼시픽 231”입니다. 당시로서는 획기적이라고 할 수 있는 120km 의 빠른 속도로 철로를 질주했던 이 열차는 당연히 기차 매니어 오네게르의 마음을 사로잡았고 오네게르는 그 늠름하고 날쌘 모습을 음악으로 묘사하고자 했던 것입니다.



Pacific 231G (출처 : 위키미디아)


오네게르는 기차를 향한 그의 열정과 이 곡을 작곡하게 된 의도를 다음과 같이 말하였습니다. "나는 늘 기관차를 뜨겁게 사랑하였다. 나에게 기관차는 살아있는 것이나 다름없으며 다른 이들이 여자나 말을 사랑하듯 그렇게 나는 기관차를 사랑하였다. 이 곡에서 내가 그리고자 했던 것은 단지 기관차의 소리만이 아니다. 그것은 눈으로 들어오는 인상과 몸으로 느끼는 희열을 음악적으로 꾸미고 옮기려고 의도한 것이다." 곡의 제목이자 열차의 이름인 퍼시픽 231에서 231은 기관차 바퀴의 배열을 나타낸 것으로 맨 앞의 작은 바퀴 두 쌍과 이어지는 큰 바퀴 세 쌍, 그리고 뒷 부분의 작은 바퀴 한 쌍을 숫자로 표시한 것입니다. 그는 6분여의 짧은 음악 안에 그는 기적을 울리며 출발을 준비하는 기관차의 모습에서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하여 거침없이 질주하다가 마침내 종착역에 이르러 속력을 줄이고 멈추기까지의 여정을 그려내고 있습니다.


Honegger - Pacific 231



음악사에서 기차와 얽힌 사연이 늘 이렇듯 신나고 두근거리는 것만은 아닙니다. 낭만주의 시대를 대표하는 독일의 작곡가이자 스승인 슈만의 부인 클라라와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으로 너무나도 잘 알려진 브람스의 마지막 삶의 여정과 사랑의 불꽃은 그들 사이를 이어주었던 마지막 기차를 놓치면서 서서히 꺼져들게 됩니다. 멀리서 늘 보살피고 돌보면서도 차마 가까이 갈 수 없었던 클라라가 끝내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은 아마도 홀로 힘들게 병마와 싸우던 브람스에게 돌이킬 수 없는 엄청난 충격이었을 것입니다. 평생을 마음 속에 간직하며 사랑했던 여인의 마지막 모습이라도 보고 싶었던 그는 억지로라도 몸을 추슬러 밤기차를 타고 프랑크푸르트로 가려는 무모한 시도를 감행했으나 안타깝게도 역에 도착했을 때 그 열차는 떠나고 없었습니다. 차가운 밤공기에 몸을 다치고 마지막 희망마저 사라지면서 마음까지 무너져버린 브람스는 더 이상 일어날 수 없었는 지경에 이르렀고 마침내 클라라가 떠난 이듬해 그 뒤를 따르게 됩니다.





이 가을 여러분은 무엇을 꿈꾸고 있습니까? 그리운 이가 있어 무작정 달려가고 싶은가요? 그렇듯 마음을 흔들어 놓을 만한 무엇인가를 마음에 품고 있나요? 기차가 아니고 여행이 아니더라도 우리에겐 먹고 사는 것 말고 무엇인가 마음을 송두리째 흔들어 놓을 만큼 소중한 것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나날이 따분하고 지루해서 무기력할 때, 또는 견딜 수 없이 힘들고 지칠 때, 그 존재만으로 위로를 받고 힘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기차로 떠나는 여행을 갈망하게 되는 이 가을 여러분에게 기차 대신 음악으로 떠나는 여행을 권해봅니다.


 

Dvorak - Symphony No.9 in E minor Op.95 "New World"

(교향곡 9번 E단조 작품95 "신세계로부터") - 네오필하모닉오케스트라(지휘 홍성택)


저작자 표시
신고

Name __

Password __

Link (Your Website)

Comment

SECRET | 비밀글로 남기기

[홍승찬 교수의 재미있는 클래식음악 이야기] 이루어질 수 없어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 - 브람스와 클라라[홍승찬 교수의 재미있는 클래식음악 이야기] 이루어질 수 없어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 - 브람스와 클라라

Posted at 2012.06.12 11:09 | Posted in 이건음악회 Talk Talk/홍승찬교수의 클래식 톡톡

 

 

홍승찬 교수의 클래식 음악(24)
이루어질 수 없어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 - 브람스와 클라라

 

 

슈만과 클라라

음악사를 통털어 가장 열렬하면서도 아름다운 순애보라면 대부분 슈만과 클라라의 이야기를 떠올리게 됩니다. 나이 차이는 많았지만 장래가 촉망되는 당대 최고의 작곡가와 최고의 여류 피아니스트의 결합이라면 그다지 반대할 이유가 없을 듯싶지만 클라라의 아버지이자 슈만의 스승이었던 비크는 그렇지가 않았습니다. 오히려 슈만을 너무나 잘 알았기에 불안정한 정서가 끝내 그의 삶을 파탄으로 이끌 것이라 예견했고, 그걸 알면서 누구보다 총명하고 아름다운 딸 클라라를 그에게 맡길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오히려 이런 이유 있는 반대를 비난하고 그 반대를 무릅쓰고 끝내 결혼에 이른 두 사람의 사랑을 무엇보다 아름답다고 합니다. 어쩌면 사랑의 결실보다는 결실에 이르기까지 온갖 시련을 이겨낸 두 사람의 의지를 칭송하는 것이고 바로 그런 절실한 마음을 담고 있는 슈만의 작품들을 사랑하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슈만과 브람스가 사랑한 뮤즈 <클라라>가 영화로 만들어졌다. 상상 이상으로 아름답다. 거장 음악가 세 사람의 러브스토리가 아침드라마처럼 삼각관계의 링 안에서 욕정과 시기가 들끓다가 파국으로 치닫는다면 얼마나 황당하고 쓸쓸했을까. 다행히도 사랑은 음악을 배반하지 않고 음악은 사랑을 모욕하지 않는다. 영화는 슈만과 클라라 결혼 이전의 시련은 담지 않고 결혼 이후부터 시작된다. 올망졸망 앙증맞은 자식들 키우는 음악가 잉꼬부부의 삶이 펼쳐진다.

 

장인이며 스승이었던 비크의 걱정대로 슈만은 끝내 정신분열을 일으켜 정신병원에서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게 됩니다. 그렇게 슈만과 클라라가 힘들었을 때, 그들을 지탱해준 힘이 되었던 사람이 바로 브람스였습니다. 슈만에게 인정받아 그의 도움으로 악단의 주목을 받게 된 브람스는 슈만을 스승으로 받들게 됩니다. 슈만의 집에 머물면서 그는 언제부터인지 모르게 스승의 부인 클라라에게 사랑의 감정을 품게 되지만 평생을 그저 마음에만 담아 둔 채 끝내 꺼내지는 않았습니다.

 

 

클라라의 아버지 비크 교수에게 피아노 교습을 받는 슈만의 모습을 재미있게 그린 그림

클라라가 11살 때 슈만을 처음 만나게 되었다.

 

요즘과 같은 찌든 세태에 모두들 설마하시겠지만 다른 사람이면 몰라도 브람스는 정말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마음 내키는 대로 사는 것이 마치 예술가의 특권인양 여겨졌던 낭만주의 시대 브람스는 정말이지 별종이었습니다. 경제적으로 무능한 아버지 대신 14살부터 함부르크 항만의 허름한 여인숙에서 피아노를 치면서 가족들의 생계를 꾸렸고 헝가리의 바이올리니스트 레메니의 반주자로 이후에는 당대를 풍미했던 거장 바이올리니스트 요아힘의 반주자로 음악경력을 이어갔습니다. 그렇게 사귄 요아힘과 평생 우정을 나누었고 슈만에게 브람스를 소개한 사람이 바로 요아힘이었습니다. 어머니가 죽고 계모가 들어와 동생들이 늘었지만 가족을 돌보는 브람스의 마음에는 변함이 없었습니다. 심지어는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다음에도 계모와 동생들을 끝까지 보살폈습니다. 무작정 믿고 전 재산을 맡긴 출판업자가 자신의 재산을 탕진해도 원망하는 법이 없었고 스스로는 검소하게 살면서 그렇게 남은 얼마 되지 않는 여유까지도 늘 누군가에게 베풀었습니다. 슈만이 그에게 빛을 주었듯이 그 또한 드보르작을 비롯한 많은 후배 작곡가들에게 길을 열어주었습니다. 그리고 그가 존경했던 스승의 부인이자 마음속으로 누구보다 깊이 사랑했던 클라라와 그 가족들을 죽을 때까지 보살피고 돌보았습니다.

 

 

한 여인을 사랑한 예술가 요하네스 브람스

 

브람스는 63번째 생일에 베이스 성부와 피아노를 위한 ‘4개의 엄숙한 노래를 완성했습니다. 구약성서와 신약성서에서 가져온 그 가사는 세속적인 모든 것들의 덧없음을 이야기하면서 근심과 고통에서 우리를 구해줄 구원자로서 죽음을 맞아들이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그러다가 고린토인들에게 보낸 첫 번째 편지에서 가사를 따온 마지막 노래에 이르러 그는 사랑의 힘을 열렬히 찬양하고 있는데, 그 무렵 병세가 점점 더 심각해져가고 있는 클라라에게 힘을 주고자 이 작품을 썼기 때문입니다. 브람스 자신의 말을 빌리자면 그녀와의 만남은 그에게 가장 큰 풍요와 가장 고귀한 만족을 가져다 준 생애 최고의 아름다운 경험이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에게 가장 소중한 존재가 그보다 한 발 앞서 세상을 떠나려고 하는 절박한 순간을 맞이했던 것입니다. 1896520, 마침내 클라라가 숨을 거두었습니다. 장례식에 참석해서 마지막 모습이라도 보고 싶었던 브람스는 프랑크푸르트를 향한 무모한 여행을 시도했지만 밤 기차를 놓쳐버렸습니다. 이 작은 소망마저도 이루지 못한 그는 클라라가 슈만과 나란히 묻혀 있는 본으로 향했고 이후 그의 병세는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악화되었습니다. 그해 여름 브람스는 병마와 싸우면서 오르간을 위한 ‘11개의 합창전주곡을 작곡했습니다. 그 마지막 곡인 판타지아에 그는 자신의 죽음을 예견이라도 하듯이 오 세상이여 나는 그대를 떠나야만 하네라는 제목을 붙였고 이듬해 봄, 클라라가 죽고 꼭 일년 만에 브람스도 세상을 떠났습니다.

 

 

 

브람스가 평생을 두고 가슴에 묻었던 고귀한 사랑 클라라의 죽음을 앞두고 그에게 위로와 용기를 주고자 작곡했던 ‘4개의 엄숙한 노래의 마지막 곡 아무리 그대들과 천사의 말로써 얘기한들의 가사는 이렇습니다.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 나는 꽹가리가 되고,

내가 예언하는 능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만한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난 아무 것도 아니요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어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투기하는 자가 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무례하게 행동하지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며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사랑은 언제까지 그치지 아니하나

예언도 그치고 방언도 그치고 지식도 그치리라.

우리가 부분적으로 알고 부분적으로 예언하니

온전한 것이 올 때는 부분적으로 하던 것이 그치리라.

내가 어렸을 때에는 말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깨닫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생각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다가

장성한 사람이 되어서는 어린 아이의 일을 버렸노라.

이제는 우리가 거울로 보는 것같이 희미하나

그때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요,

이제는 내가 부분적으로 아나

그때는 주께서 나를 아신 것같이 내가 온전히 알리라.

그런 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

 

 

최근 연주된 브람스-대학축전 서곡

 

■ 일시 : 2012년 3월 7일 수요일 14시
■ 장소 : 제주대학교 아라뮤즈홀
■ 주제 : 제주특별자치도립 오케스트라와 함께하는 오리엔테이션
■ 주최 : 제주대학교 기초교육원

■ 연주 : 제주특별자치도립 교향악단
■ 곡목 : 브람스-대학축전 서곡 / J.Brahms-Academic Festival Overture C mior Op.80
■ 지휘 : 정운선

 

 

글 : 홍승찬 교수
편집 : 신이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동일 조건 변경 허락
신고

Name __

Password __

Link (Your Website)

Comment

SECRET | 비밀글로 남기기

[홍승찬 교수의 재미있는 클래식음악 이야기] 베를린 필 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지휘자 카라얀의 교훈[홍승찬 교수의 재미있는 클래식음악 이야기] 베를린 필 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지휘자 카라얀의 교훈

Posted at 2012.06.01 11:47 | Posted in 이건음악회 Talk Talk/홍승찬교수의 클래식 톡톡

 

 

 

 

홍승찬 교수의 클래식 음악(22)
지휘자 카라얀의 교훈

 

 


흔히들 19세를 피아니스트의 시대라고 하고 20세기를 지휘자의 시대라고 합니다. 슈만과 브람스, 쇼팽과 리스트에 이르기까지 이름을 들어 기억할 만한 19세기의 대표적인 작곡가들은 대부분 당대 최고의 피아니스트였고 그 시대 청중들의 관심과 애정을 한 몸에 받았습니다. 그러나 20세기가 도래하면서 상황은 달라졌습니다. 오케스트라가 점점 커지면서 지휘자의 역할이 중요해졌고 사람들의 관심도 지휘자에게로 모아지게 되었습니다. 20세기를 통털어 가장 위대한 지휘자 한 사람을 말하라면 쉽지 않겠지만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지휘자라면 단연 카라얀을 첫 손가락에 꼽아야 할 것입니다. 카라얀은 늘 새로운 관심과 변신으로 20세기 클래식 음악의 판도를 바꾸어놓았고 그 때문에 숱한 찬사와 더불어 그에 못지 않은 비난을 받기도 했습니다. 오케스트라의 양대 산맥으로 일컬어지는 베를린 필과 빈 필, 오페라 극장의 쌍벽이라 할 수 있는 스칼라 극장과 빈 국립 가극장을 혼자 움켜쥐었고 고향 잘츠부르크에서 열리는 세계 최고의 음악 축제인 잘츠부르크 음악제까지 지배했던 그는 오케스트라의 제왕이었을 뿐만 아니라 전 세계 클래식 음악계의 대부와도 같은 존재였습니다. 카라얀이 세상을 떠나면서 지휘자가 군림하던 시대도 막을 내렸고 지금은 그 어떤 오케스트라도 독재자를 받아들이지 않고 있습니다.

 

 

지휘봉 하나로 세계 음악계를 지배했던 황제 카라얀

 

카라얀의 신화가 가능했던 가장 큰 원인은 다른 무엇보다 그의 음악적인 능력에서 찾아야겠지만 그것만이 다는 아니었고 어떤 면에서는 사업가적인 감각과 경영자적인 리더쉽이 더 두드러져 보이는 것도 사실입니다. 누구보다 변화의 흐름을 감지하고 그에 대응하여 변신하는 능력이 탁월했던 카라얀은 중요한 시기마다 승부사의 기질을 유감없이 발휘하여 결단과 모험을 감행했고 그때마다 그 자신은 물론 클래식 음악의 흐름까지도 송두리째 바꾸어 놓았습니다. 푸르트뱅글러가 세상을 떠나자 단원들의 투표 결과, 그토록 원하던 베를린 필의 상임지휘자 자리를 제안 받았지만 그는 이를 거절하고 오히려 종신 지휘자를 요구하는 승부수를 던졌습니다. 결국 이를 관철시킴으로써 카라얀은 이후 30년이 넘는 긴 세월 베를린 필 뿐만 아니라 세계의 음악계를 지배하는 제왕으로 군림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 카라얀에게도 컴플렉스가 있었으니... 바로 짧은 키!

 

요트와 승마는 물론 스포츠카 운전과 비행기 조종까지 즐겼을 만큼 속도와 경쟁을 좋아했던 그는 절대 절명의 위기를 오히려 일생일대의 호기로 반전시킬 만큼 위기관리 능력이 뛰어났는가 하면 순간을 포착하는 순발력 또한 타의 추종을 불허했습니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나자 나치에 협력했다는 이유로 한 때 연주활동이 금지되는 시련에 부딪혔지만 이 때 찾아온 음반사 EMI의 프로듀서 월터 래그의 제안을 받아들여 누구보다 먼저, 그리고 적극적으로 음반작업에 뛰어들었습니다. 푸르트벵글러를 비롯한 그 시대 대다수의 지휘자와 연주자들이 음반작업에 회의적이거나 부정적이었던 상황을 생각하면 그의 선택이 얼마나 모험적인지를 가늠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는 래그가 음반 녹음을 위해 만든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를 지휘하여 음반을 내놓기 시작했고 활동에 대한 제재가 풀린 다음에도 음반에 대한 관심과 노력을 더욱 키워나갔습니다. 나중에 도이치 그라모폰과의 작업이 많아지면서 EMI와의 사이에서 묘한 입장에 놓이기도 했지만 끝내 어느 한 쪽과의 독점 계약을 피함으로써 항상 더 좋은 조건을 선택할 수 있는 유리한 입장을 누리기도 했습니다.

 

 

 

특별 주문 제작한 911 터보 RS.

911 turbo 중에 RS형은 카라얀만을 위해 단 한대만 만들어졌다고 합니다.

 

사진출처 : 구글

 

중요한 시기마다 그의 선택이 모두 성공적인 것은 아니었지만 스스로의 선택을 후회하거나 변명하지 않는 자신감 또한 그의 남다른 장점이기도 합니다. 한 때 나치당에 입당한 전력이 평생 그를 괴롭혔지만 그 스스로는 아헨 가극장의 음악감독으로 부임하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며 다시 당시로 돌아가서 같은 기회가 주어진다면 그보다 더한 일이라도 했을 것이라는 말까지도 했을 정도입니다. 1980년 소니의 회장 아키오 모리타를 만나 새로운 디지털 시대의 가능성을 감지한 카라얀은 오페라 마술피리를 최초로 디지털로 녹음했고 이듬해 415일 잘츠부르크 부활절 음악제에서 카라얀은 모리타, 그리고 필립스의 간부들과 함께 새로 출시하게 되는 CD의 규격을 발표하게 됩니다. 잘 알려진 대로 시디를 개발한 필립스와 소니는 카라얀에게 한 장에 담게 되는 녹음의 분량이 어느 정도가 적당할지에 대한 의견을 물었습니다. 베토벤 교향곡 9합창을 두 장의 엘피에 나누어 담아야 하는 것이 늘 불만이었던 그는 합창교향곡을 한 장에 담을 수 있는 정도를 제안해서 결국 74분으로 정해졌다고 하지요. 카라얀은 이엠아이와 그라모폰을 오가며 수많은 음반을 냈습니다. 에스피와 레이저디스크까지 포함하면 그의 생전에 판매한 그의 음반만도 11500만장이 넘습니다.

 

 

 

음악을 CD로... 새로운 디지털 시대의 가능성을 이끈 카라얀

 

1989년 여류 클라리네티스트 자비네 마이어의 입단 문제로 불거진 단원들과의 불화로 끝내 베를린 필을 사임하게 된 카라얀은 그해 잘츠부르크 인근의 별장에서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어떤 경우에도 단원들과 사적으로 만나 함께 식사를 하지 않았던 카라얀은 어쩌면 그런 지나친 자기 관리로 말미암아 화를 키웠을지도 모릅니다. 작은 키와 짧은 하체에 대한 콤플렉스 때문에 연주를 녹화한 영상물에서 허리 아래를 찍지 못하도록 할 만큼 스스로의 이미지 관리에도 철저했던 그였지만 모든 면에서 완벽할 수는 없었나 봅니다.

 

드보르자크 5번 3악장베를릴 필 카라얀

 

 

글 : 홍승찬 교수
편집 : 신이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동일 조건 변경 허락
신고
  1. 카라얀 광팬
    이건 아닌듯 해요 카라얀키가 177인데 작다는건 아니지않나요? 카라얀이 원래 지휘동작이 클뿐 이거를 키가 작다고 하는건 아니지 않나요? 지휘자키가 180안팎인데 키가 작다면 165 정도는 되야 작다고 하는게 옳지않을까요?
  2. 카라얀광팬
    카라얀의 키가 작아보인다는건 아마도 1980년대의 카라얀이남긴 영상물이 많아서 이면서 동시에 연미복대신 입은 공연복?이 키가 작아보이는 착시현상을 가져온것이기 때문이거나 1976년 척추수술로 인한게 아닐까요? 제가 카라얀 광팬으로서 이건 아니라고 생각 합니다.
    정 못밑으시면 카라얀의 1971년에찍은 베토벤교향곡 3번의 3악장을 보시면 될꺼에요
    • 2013.11.13 13:43 신고 [Edit/Del]
      카라얀 광팬님 안녕하세요.

      카라얀의 키라고 하면...
      최근 한 여권이 발견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카라얀의 키가 173cm 라고 적힌 여권입니다.

      하지만, 여러 사람들의 이야기나 책들로 보았을 때에는 160cm초/중반으로 카라얀의 키를 이야기 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차후 정확한 자료가 있으면 함께 링크하도록 하겠습니다.

      즐거운 하루 되세요. ^^
  3. 카라얀 광팬
    블로그신님 안녕하세요.
    저도 그여권에 대하여 압니다. 저희나라에 1984년 카라얀이 내한공연을 왔을때라고 아는데 이미
    그의 나이는 76세 입니다. 그렇다면 사람이 나이가 들면 키가 줄어드는게 정상적이죠. 177이라는것에 매우 신빙성이 갑니다. 그가 50대 60대의 젊을때 키가 177이라는것이고 늙어서 173이라면 줄어든것이니 맞는것 같군요.
    173이라는 여권의 키는 신체검사를 통해 잰것일 것이니 확실 한것입니다. 제가 언급하것은 카라얀의 80년대
    옷때문입니다. 연미복과 달리 키가 작아보이는 착시현상이므로 우리나라에서 들리는 이야기가 착시현상에 의한 추측의 의견이고 저희나라의 책으로는 신빙성이 매우 떨어 집니다. 그건 카라얀의 비서라든지 일가친척과 가족만이 알겟지만 아마 그책들도 카라얀의 모습이나 사진들로만 입각한 추측일것입니다. 저의 전체적인 의견과 더불어 님의 생각이 듣고 싶습니다.

Name __

Password __

Link (Your Website)

Comment

SECRET | 비밀글로 남기기

[홍승찬 교수의 재미있는 클래식음악 이야기] 오디오가 만들어낸 크라이슬러의 소품들 / 한장의 CD에 들어간 음악의 길이는 누가 정한 것일까?[홍승찬 교수의 재미있는 클래식음악 이야기] 오디오가 만들어낸 크라이슬러의 소품들 / 한장의 CD에 들어간 음악의 길이는 누가 정한 것일까?

Posted at 2012.03.27 14:31 | Posted in 이건음악회 Talk Talk/홍승찬교수의 클래식 톡톡


 

 


홍승찬 교수의 클래식 음악(6)
오디오가 만들어낸 크라이슬러의 소품들

 

 

작곡가 브람스는 베토벤을 무척 존경했다고 합니다. 베토벤 이후 작곡가들은 대부분 베토벤의 영향에서 벗어날 수 없었지만 브람스에게 있어 베토벤은 우상과도 같은 존재였습니다. 물론 베토벤이 남긴 모든 작품들을 좋아했지만 그 중에서도 교향곡 9번 합창을 가장 좋아했다고 하지요.

 

 

그런데 그토록 좋아했던 이 교향곡을 브람스는 평생 딱 두 번 들을 기회가 있었다고 합니다. 그것도 한 번은 그가 살았던 비인에서 꽤나 떨어진 곳에서 이 작품을 연주한다는 소식을 듣고 마차를 타고 거기까지 찾아갔는데, 궂은 날씨에 고생한 탓에 몸져눕기 까지 했다는군요. 음악의 본고장이라는 비인에서 활동했던 가장 성공한 음악가가 평생 동안 이 명곡을 단 두 번만 들을 수 있었다는 사실이 놀랍지 않습니까?



 


베토벤 교향곡 9번 합창 4악장 '환희의 송가'



그러고 보면 클래식 음악이 지금처럼 홀대를 받게 된 것도 어쩌면 우리가 너무나 쉽게 접할 수 있게 된 때문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이제는 음반을 사러 나갈 필요도 없이 집에서 인터넷으로 원하는 음악을 찾아서 마음대로 들을 수 있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어느덧 전자제품을 취급하는 전문상점들이 모여 있는 곳을 가 보면 오디오 전문상점들이 하나 둘씩 줄어서 얼마지 않아 자취도 사라질까 걱정입니다. 오래 전 전축이 귀하고 음반을 구하기도 쉽지 않았던 시절, 음악 감상실이라는 곳이 있어 하루 종일 자리를 잡고 앉아서는 듣고 싶은 음악을 신청해서 들어야 했던 때도 있었는데 말입니다.


 


에디슨이 발명한 축음기는 아마도 악보의 발명 이후 음악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사건일 것입니다. 소리를 어디엔가 가두어 두었다가 듣고 싶을 때 아무 때나 다시 꺼내서 들을 수 있다는 것은 전에는 상상도 하지 못할 일이었고 그 때문에 많은 것이 바뀔 수밖에 없었습니다. 처음에는 금속으로 만든 원통형의 디스크에 소리를 저장하다가 이후 PVC로 된 원반형으로 바뀌면서 음질도 좋아지고 보관도 편리해졌지만 한 장에 담을 수 있는 길이가 고작 5분을 넘지 못한다는 한계가 문제였습니다. 그래서 짧은 소품이나 노래말고는 음반에 담기가 힘들었는데요, 당연히 유명한 오페라 가수들이 여러모로 유리했겠지요. 전설적인 테너 카루소나 베이스 샬리아핀이 지금도 당대에 누렸던 명성을 유지하고 있는 것도 녹음기술과 음반 산업의 힘이 아닌가 싶습니다.

 

음반 산업이 만든 또 한 사람의 스타라면 크라이슬러를 빼놓을 수 없을 것입니다. 물론 그 시대를 대표하는 바이올리니스트 한 사람으로 그의 연주가 빼어났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그가 작곡한 주옥같은 바이올린 소품들이 음반을 통해 세상에 널리 알려졌기 때문일 것입니다. ‘아름다운 로즈마린이나 사랑의 슬픔’, ‘사랑의 기쁨과 같은 그의 대표곡들은 지금도 바이올린 소품의 대명사로 널리 사랑받고 있는데, 특이하게도 모두 5분을 넘지 않는 길이로 만들어졌다는 것이지요.

 

 

이쯤 되면 짐작하셨겠지만 크라이슬러의 바이올린 소품들은 음반사로부터 의뢰를 받고 작곡되었기 때문에 각각이 음반 한 장에 수록될 수 있는 길이로 만들어진 것입니다. 말하자면 기술의 한계가 오히려 명작을 탄생시킨 계기가 된 셈인 것이지요. 그리고 언제나 그랬듯이 예술은 그 시대의 상황과 요구에 부응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입증한 셈입니다.





기술의 발달은 LP 시대를 열어 5분의 한계를 한 시간으로 늘렸습니다. 그러더니 결국은 CD가 발명되면서 완벽한 소리의 재현과 영구적인 보존, 그리고 저장시간의 무한정 확장이라는 세 가지 숙제를 다 해결해버렸습니다. 그러자 이번에는 전과는 반대로 행복한 고민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한 장의 음반에 무한정의 음원을 수록한다면 결국은 남는 것이 없는 장사를 해야 된다는 계산이 나오겠지요. 그러니 도대체 어느 정도의 분량을 한 장의 음반에 담아야 할지를 결정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클래식 음악 분야의 대표적인 음반사인 도이치 그라모폰은 대지휘자 카라얀에게 자문을 구했다고 합니다. 그러자 카라얀은 대뜸 베토벤의 합창 교향곡을 한 장에 다 담을 수 있는 분량이면 좋겠다는 대답을 했다는군요. 이미 베토벤 교향곡 전곡을 수도 없이 녹음했던 그로서는 늘 다른 교향곡보다 길이가 긴 마지막 9번을 한 장의 음반에 다 담지 못하는 것이 아쉬웠던 모양입니다. 물론 카라얀에게만 자문을 구해서 결정하지는 않았겠지만 이후 CD 한 장에 수록되는 음악의 전체 분량은 대체로 70분에서 몇 분을 더하는 정도를 벗어나지 않고 있는데, 그것이 바로 카라얀이 말한 베토벤의 교향곡 9번의 연주시간과 일치하고 있습니다.




언제는 음반의 한계가 음악의 길이를 결정하더니 어느덧 시절이 변해서 음악의 길이가 음반의 한계를 결정하게 될 줄은 누군들 알았겠습니까? 브람스가 세상을 떠나고 100년을 좀 더 지났지만 변해도 너무 많은 것들이 변한 것 같습니다. 누군가 그랬다지요? 세상에 변하지 않는 유일한 것은 모든 것이 변한다는 사실 뿐이라고 말입니다.


 

글 : 홍승찬 교수
편집 : 신이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동일 조건 변경 허락
신고

Name __

Password __

Link (Your Website)

Comment

SECRET | 비밀글로 남기기

[홍승찬 교수의 재미있는 클래식음악 이야기] 음악사의 불가사의한 아홉수 - 교향곡 9번의 저주! ㅇㅇㅇ의 마지막 교향곡에 붙은 번호 ‘9’는 아무도 넘을 수 없는 마법의 숫자였다.[홍승찬 교수의 재미있는 클래식음악 이야기] 음악사의 불가사의한 아홉수 - 교향곡 9번의 저주! ㅇㅇㅇ의 마지막 교향곡에 붙은 번호 ‘9’는 아무도 넘을 수 없는 마법의 숫자였다.

Posted at 2012.03.09 15:00 | Posted in 이건음악회 Talk Talk/홍승찬교수의 클래식 톡톡

 

 



홍승찬 교수의 클래식 음악(4)
음악사의 불가사의한 아홉수

 1. 저주일까? 교향곡 9번이라는 9수... 





교향곡의 아버지라 불리는 하이든은 백곡이 넘는 교향곡을 썼습니다. 삼십대에 요절한 모차르트도 41곡이나 되는 교향곡을 남겼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뒤를 이었던 베토벤이 작곡한 교향곡은 고작 아홉 곡에 불과합니다. 모차르트보다 훨씬 오래 살았는데도 말입니다. 그러나 베토벤이 죽고 한참 동안 아홉 곡이 넘는 교향곡을 남긴 작곡가는 서양음악사에 등장하지 않습니다. 소위 낭만주의 시대라고 하는 19세기 내내 베토벤의 마지막 교향곡에 붙은 번호 ‘9’는 아무도 넘을 수 없는 마법의 숫자였습니다. 슈베르트는 불멸의 대작이라고 하는 8번 미완성 교향곡과 스케치만 남긴 7번까지를 포함해서 모두 아홉 곡을 작곡했고 슈만과 브람스가 각각 네 곡을, 멘델스존은 다섯 곡을 남겼습니다.


베토벤 교향곡 제9번 합창 中 환희의 송가

베토벤을 너무나도 존경했던 브람스는 베토벤이 교향곡을 통해 이룩했던 눈부신 업적이 너무나도 부담스러워 마흔이 넘을 때까지 교향곡을 내놓지 못했습니다. 용기를 내서 오래 전부터 구상했던 최초의 교향곡을 처음 세상에 내놓았을 때, 이 곡을 지휘했던 지휘자 한스 폰 뷜로우는 베토벤의 교향곡 10과도 같다는 말로 격찬을 했고 브람스는 이 말을 듣고 무척이나 기뻐했다고 합니다. 누구와도 다른 독창성이 생명이라고 할 수 있는 예술가를 두고 다른 예술가의 창작세계를 그대로 따르고 있다는 말을 칭찬으로 한 것도 그렇지만 이 말을 듣고 불쾌하기는커녕 오히려 기뻐했다는 것을 보면 베토벤이 교향곡에서 쌓은 업적이 얼마나 대단한지 짐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교향곡으로 유명한 또 다른 작곡가 브루크너는 마치 9번을 넘지 못하는 숙명을 피하기라도 하려는 듯이 그의 교향곡 번호를 0번에서 시작하고 있습니다. 어느 모로 보나 베토벤의 교향곡 9번의 영향이 너무나도 강하게 느껴지는 이 곡을 두고 작곡가 자신은 교향곡 0, 전혀 통용될 수 없는 것이며 단순한 시작이라는 말로 애써 그 의미를 부정하려고 했지만 그 역시 9번의 벽을 넘지는 못했습니다. 아홉 번째인 8번을 무사히 넘기고 열 번째인 9번에 도전했지만 끝내 완성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던 것입니다.



 2. 저주를 극복한 작곡가들의 방법... 그 해결책은?




후기 낭만주의 시대 최고의 교향곡 작곡가로 꼽히는 말러는 다른 방법을 찾았습니다. 병약하게 태어나서 어려서는 형제들의 죽음을 겪었고 결혼해서는 사랑하는 자녀들을 잃어야 했던 그는 평생 죽음의 공포를 벗어나지 못했고 그것이 그의 작품세계의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기도 합니다. 마침내 아홉 번째 교향곡에 이르자 그는 9번의 벽을 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갖게 되었고 결국은 교향곡이라는 이름 대신 대지의 노래라는 제목을 붙이기로 하였습니다. 이후 교향곡 9번을 작곡하였고 베토벤 이후 누구도 시도하지 못했던 두 자리 숫자가 붙은 교향곡에 착수하였습니다. 그러나 9번에 걸린 주문은 말러도 피해갈 수 없었던 모양입니다. 브루크너가 열 번째인 9번에서 주저앉았던 것처럼 말러도 10번을 완성하지 못하고 눈을 감고 말았습니다.



베토벤의 위대한 유산은 그가 손댄 모든 장르에 골고루 뻗쳐 있습니다. 사람들은 바흐의 평균율 클라비어곡집을 피아니스트의 구약성서라고 하고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를 신약성서라고 일컫고 있습니다. 그가 남긴 피아노 협주곡 다섯 곡과 바이올린 협주곡은 이 장르의 새로운 이정표를 제시하였고 실내악, 특히 현악사중주에서 그가 남긴 결실은 그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교향곡에서의 업적이야말로 감히 누구도 넘볼 수 없는 금단의 영역인 것입니다. 그중에서도 마지막 교향곡 9합창은 여러 가지 특별한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브람스는 물론 브루크너의 교향곡도 베토벤 9번에서 출발하고 있고, 기악곡인 교향곡에 성악, 즉 가사가 있는 노래를 넣겠다는 발상은 말러에게 결정적인 영향을 주게 됩니다. 이처럼 음악적인 면에서도 그렇지만 더욱 중요한 이 곡의 의미는 마지막 악장에서 노래로 들려주는 쉴러의 시에 담겨 있습니다. 지금은 Freude, 즉 환희의 송가로 불리고 있지만 원래는 Freiheit, 즉 자유의 송가입니다. 자유라는 말이 당시로서는 혁명적인 사상이기에 검열을 피해 가사를 바꾼 것입니다. 베토벤은 진정으로 믿었습니다. 결코 멀지 않은 미래에 우리들 인간 모두가 스스로의 자유 의지로 평등한 가운데 서로 의지하며 살게 될 날이 반드시 올 것이라고 믿었고, 또 그렇게 되기를 누구보다 갈망했습니다. 그 염원이 너무나도 컸기에 교향곡에 합창을, 노래를, 가사를 넣어 부르짖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를 악성, 즉 음악의 성인으로 부르게 된 것입니다.

 


글 : 홍승찬 교수
편집 : 신이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동일 조건 변경 허락
신고

Name __

Password __

Link (Your Website)

Comment

SECRET | 비밀글로 남기기

[클래식 감상 길잡이] 클래식 음악을 어렵게 생각하지 말고 쉽게 접근해 보자. 클래식 음악 감상/접근/듣는법 유명 클래식 음악 소개[클래식 감상 길잡이] 클래식 음악을 어렵게 생각하지 말고 쉽게 접근해 보자. 클래식 음악 감상/접근/듣는법 유명 클래식 음악 소개

Posted at 2012.02.04 10:52 | Posted in 이건음악회 Talk Talk/클래식 톡톡


영화나 TV드라마에서 혹은 CF에서 간간히 들려오는 클래식의 선율, 길을 가다 저만치 레코드 가게에서 들려오는 아름다운 클래식 선율, 이런것들에 이끌려 클래식을 들어보려고 하면, 막상 어디서부터 들어야할지 난감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레코드 안내 서적은 많지만 변변한 클래식 감상을 위한 책은 거의 없는 현실에 클래식에 입문하려는 많은 사람들의 고민이 바로 여기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나름대로의 올바른 클래식 감상을 위한 가이드를 시작하려고 합니다.

텍스트는 음악사로 유명한 Huge M. Miller라는 음악학자의 "Introduction to Music"(부제: A Guide To Good Listening)이라는 책으로 아주 체계적이고, 수동적인 음악감상이 아니라 지각적이고 인식적인 음악감상의 길잡이로서 아주 좋은 텍스트입니다. 클래식을 본격적으로 들으시려고 하시는 분들에게 있어서는 많은 유익함을 제공해 줄 것입니다.



일단 밀러교수가 추천한 25곡의 기본 작품을 먼저 들어보세요. 아무런 선입관없이 그냥 편한한 마음으로 들어보세요. 이번 강좌에 계속해서 나오게 되는 아주 기본적인 곡들입니다. 바로크 시대부터 현대곡까지 그리고 기악곡에서 성악곡까지 아주 골고루 안배가 되어있습니다.

 

1. 바하. Cantata No. 140: 눈 뜨라고 부르는 소리 있도다!




2. 바하. Passacaglia and Fugue in C Minor(오르간)

3. 바하. 관현악조곡 3번 D장조.

4. 바르톡. 현악 4중주 5번

5. 베토벤. 교향곡 5번 C단조.




6. 비제. 카르멘(오페라)

7. 브라암스. 교향곡 3번 F장조.

8. 쇼팽. 피아노 소나타 2번 B flat 단조.



9. 코플란드. Music for the Theatre(관현악곡)

10. 드뷔쉬. 목신의 오후 전주곡(교향시)

11. 헨델. 메시아(오라토리오-할렐루야)




12. 힌데미트. 피아노 소나타 3번

13. 하이든. 현악 4중주 E flat 장조 작품 33-2

14. 멘델스죤. 바이얼린 협주곡 E 단조

15. 모차르트. 돈 지오반니(오페라)

16. 모차르트. 교향곡 40번 G 단조. K.550




17. 팔레스트리나. Missa Brevis (장엄미사, 아카펠라 합창)

18. 푸치니. 라보엠(오페라)

19. 라벨. 볼레로(관현악곡)




20. 슈베르트. Die Winterreise(겨울여행. 연가곡집)

21. 슈만. 환상소품집(피아노 독주곡)

22. R.슈트라우스. 틸 오이렌슈피겔(교향시)

23. 스트라빈스키. 페트루시카(발레조곡, 관현악)

24. 차이콥스키. 호두까끼인형(발레조곡, 관현악)




25. 바그너. 트리스탄과 이졸데(오페라)



클래식 음악은 대중적인 음악이 참 많은편 입니다.
유명한 작곡가의 음악은 CF나 드라마 영화에서 많이 쓰였기 때문에 귀에도 익숙하죠.
어렵게만 생각하지 말고 한곡 두곡 듣다보면 어느세 클래식의 문외한이라고 생각했던 내 자신도
클래식이 편안하게 다가오지 않을까요?

저작자 표시 비영리 동일 조건 변경 허락
신고

Name __

Password __

Link (Your Website)

Comment

SECRET | 비밀글로 남기기

[전영하 귀국피아노 독주회] 이건블로거가 간다~ no.1[전영하 귀국피아노 독주회] 이건블로거가 간다~ no.1

Posted at 2011.10.10 16:14 | Posted in 이건음악회 Talk Talk/클래식 톡톡



이번엔 이건블로거들이 찾아가는 작은 클래식의 한부분을 포스팅하려합니다.
클래식하면 떠오르는 어려운이미지와 무언가 격식을 갖춘 특정인들의 음악이라는 선입견을 없에기 위해
우리에게 가장 친숙한 피아노를 선택하여,
이건블로거들이 찾아갔습니다.

자그럼  피아노연주의 세계로 출발할까요~~

                                                 

날씨가 화창한 일요일 오후 우리는 여의도의 영산아트홀에서 만나기로 약속을 했고
간만에 차를 두고 버스를 타고 여의도 '국회의사당역' 에 내려 소통의 오류 님을 만났
습니다. 



가끔 차를 두고 다니는 것도 조금은 귀찮기는 하지만,걸으면서 서울을 느끼는 또다른 즐거움이 있더군요 

여유롭게 천천히 걸어서 영산아트홀을 찾아가는 길에 '누군가에겐 행복' 님의 다급한 전화가 옵니다
3시30분이아닌.....3시라고~~!!!!!
이미 늦었기에 여유있게 걸어서 영산아트홀에 도착했습니다...ㅡㅡ







뒤늦게 표를 받고, 인터미션시간을 기다리며~ 한컷

아 이번에 독주회를 여신 전영하님의 프로필을 간단하게 소개드리겠습니다.


이번독주회에서는 B.BARTOK(1881~1945), F.Schubert(1797~1828), R.Schumann(1810~1856) 의 곡을
연주하셨는데 실력이 대단하십니다~~




간단하게나마 프로그램에 대한 note를 정리해 보았습니다.

B.Bartok                                               Improvisationen uber ungarische Bauernlieder

벨라 바르톡은 스트라빈스키와 쇤베르크 다음으로 가장 영향력있는 20세기 작곡가이다.
그는 젊은 세대에서 전통의 범위 안에서 새로운 표현 수법의 가능함과 음악적 아이디어가 무수한 방식으로
재형성되고 재창조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그는 피아노를 위해 작곡하는 것을 즐겨했는데, 아마도 피아노가 동시에 선율적, 화성적, 타악기적인
악기가 될 수 있기 때문인 듯하다.
8개의  <헝가리 민요에 의한 즉흥곡>은 원래 민요를 거의 그대로 음악작품으로 옮겨놓은
과거의 기법으로부터 탈피했음을 보여준다. 여기에서 작곡가는 노래들을 기본 주제처럼 다루는데,
그 자신이 이들 선율을 기초하여 만든 자료를 토대로 즉흥연주 하고 있다.

F.Schubert                                          Klaviersonate A-Dur, D.664 

이 곡은 슈베르트가 위대한 세 명의 선배 음악가로부터의 영향에서 이탈하려고 고뇌하는 시기에 완성된 작품이며, 슈베르트가 자주 여행하던 북부 오스트리아의  슈타이어에 살고 있던 쇼베피네 콜러라는 
소프라노 가수이면서, 피아니스트였던 여인을 위해서 작곡하였다.
총 3개의 악장으로 구성이 되어 있는데 1악정은 알레그로 모데라토 A장조, 4/4박자이면서
아름다운 서정적인 노래가 제1주제로 첫 부분에 제시된다.
2악장은 안단테 D장조, 2/4박자로 75마디의 짧은 구성으로 되어 있는데 단순한 3부형식을 사용한
느린 악장이다. b단조 화음을 앞꾸밈음으로 하여 D장조 으뜸화음을 유도하는 엘레강트한 울림의 화성
속에서 청초한 주제를 제시하면서 제1부가 시작한다. 3악장은 알레그로 A장조, 6/8박자이며
소나타 형식으로 되어 있지만, 악상과 전개 형태로 보아 론도 형식적인 요소로 볼 수 있다.

R.Schumann                                       Sinfonische Etuden, Op.13  


슈만의 피아노작품 가운데 최고의 명곡에 속할 뿐만 아니라 변주고의 역사에 있어서도 획기적인
인기를 차지하고 있는 걸작이다.
1834년에 작곡되어 1837년 빈의 하슬링거사에서 출판되었다, 초판에는 주제와 12개의 연습곡 형태를 취하고 있는데, 1852년의 재판에서는 [변주곡 형식의 연습곡 Etudes en forme de variations] 라는
표제가 붙여져 초판의 [제2번]과 [제9번]이 빠졌다.
다시 1893년에 브람스의 감수로 출판된 전집에서는 슈만이 이 곡을 위해 작곡하면서 발표하지 않았던 5곡의
연습곡도 유작으로서 추가를 하였다. 거기에 따르면 전체는 12개의 연습곡으로 되어 있으며,
그가운데 9곡이 주제의 변주를 이루고 있다. 피날레는 일견 새로운 주제에 의한 판타지와 같은 것으로
가장 빛나는 것이며 장려한 것에 속한다. 슈만의 초판의 주에서 이곡의 주제에 대해
[어느 아마추어의 작곡에 의한 것]이라고 썻으며 이 아마추어는 폰 프리켄과 한때 사랑에 빠졌다.
이곡은 스텐데일 베넷 (영국의 작곡가 겸 피아니스트)에게 헌정되었다.


역시나 피아노에 조예가 깊지 않아...... 슈베르트의 곡만 귀에 익었다는.....

우리는 이렇게 즐겁게 피아노 독주를 감상했고~ 첫 소소한 클레식 이건블러거출동을 마쳤습니다~
아 영산아트홀은 아래의 장소에 있답니다~ 혹 나중에 참조하세요~

 




 

신고
이 장소를 Daum지도에서 확인해보세요.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여의동 | 영산아트홀(CCMM빌딩)
도움말 Daum 지도

Name __

Password __

Link (Your Website)

Comment

SECRET | 비밀글로 남기기

클래식 음악이 어떤 종류의 음악인가??클래식 음악이 어떤 종류의 음악인가??

Posted at 2011.09.10 18:58 | Posted in 이건음악회 Talk Talk/클래식 톡톡

클래식 음악에 관해 잘 모르시는 분들... 많죠?
특히... 클래식 음악은 고요하고... 조용하며... 졸린 분위기의 음악으로 알고 계신 분이 많은데요...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웅장하고... 화려한 클래식 음악들도 많아요!

 

나탈리 드세이의 봄의 소리 왈츠(작곡 : 요한 스트라우스 2세)


 



클래식 음악(Classical music)이란...
두 가지의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먼저 클래식 시대, 즉 하이든, 모짜르트, 베토벤이 활동했던 고전 시대(Classical Period)의 음악을 말할 수 있고, 두번째로는 대중음악(popular music)에 상반되는 개념으로서의 음악입니다.
우리는 흔히 후자의 개념으로서 클래식 음악을 이야기하지요.



서양음악사를 대략 살펴보면 주요한 3시기가 있습니다.
바로크, 고전, 낭만시대가 그것입니다.
우리가 흔히 클래식음악이라 일컫는 대부분의 음악들은 여기에 속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 이후로 후기낭만에서 근대음악에 이르기까지 물론 클래식 음악에 속합니다. 하지만 통상 현대음악은 따로 현대음악...이라 불리워지는 경우가 많죠. 근래에 작곡된 시끄럽지 않은 클래식풍의 음악들은...클래식음악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세미클래식이나 뉴에이지 같은 이름으로 불리는 것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고려청자는 고려시대에 만들어진 것만 말하는 것이지 후대에 그와 같게 만들었다고 해서 고려청자가 될 수 없는 것처럼 말이지요.다시 이야기하면 클래식 음악은 한정된 유산입니다.



우리가 티비에서 사극물을 볼때 다 그 시대에 맞춰 고증을 하고 의복이나 장신구까지 그 시대적 특성을 살려 연출해내는 것을 봅니다. 음악도 각 시대별 특성이 있답니다. 그러므로 감상이나 연주에 앞서 그 시대의 특성을 알고 한다면 훨씬 더 유익하겠지요. 나중에 음악을 많이 듣다보면, 말씀드린대로, 한정된 유산인데다가 그 시대별 특성이 분명해서 모르는 곡을 들어도 대충.... 누구 곡인것 같다, 혹은 어느 시대의 곡이다..이런 것쯤은 쉽게 알 수 있게 되지요.

주요 3시대에 대해서만 간략히 언급하겠습니다.

1. 바로크 시대

- 대표적인 음악가 : 바흐, 헨델, 비발디
- 이 전 시대 음악은 모노포니(단성음악)가 주를 이루었는데, 이 때에는 폴리포니(다성음악)이 성행합니다. 기악곡이 발달했고, 건반악기로는 하프시코드(=쳄발로)가 주름잡고 있었어요. 바흐의 대부분의 건반악기곡은 하프시코드와 오르간용이지요. 
오라토리오 등이 많이 작곡되었습니다. 건축과 미술 양식에서 로코코(공주풍)양식이 유행하면서 음악도 화려하고 장식음이 발달했습니다.



2. 고전시대

- 대표적인 음악가 : 하이든, 모짜르트, 베토벤
- 산업혁명등 시민계급이 성장하면서 서민들도 예술을 향유하고자 하는 의식과 환경이 갖추어지게 되지요. 고딕양식이  유행하면서 음악도 선명하고 균형있고 절제된 '형식미'를 추구하게 됩니다. 그 산물로 고전시대의 꽃이라 할 수 있는 '소나타형식'이 만들어졌고, 많은 소나타 작품들이 창작되었습니다. 특히 이탈리아의 크리스토포리가 피아노를 발명하여 건반악기의 혁명을 이룩합니다. 오르간이나 쳄발로가 아닌 피아노를 위한 소나타와 협주곡등이 작곡되었습니다.
특히, 베토벤은 후기로 갈수록 기존의 형식을 탈피하는 실험적인 다양한 형태의 작곡기법을 사용하여, 낭만시대를 여는 선구자의 역할을 하였고, 고전과 낭만을 이어주는 다리역할을 했습니다.



3. 낭만시대
- 대표적인 음악가 : 쇼팽, 슈만, 리스트, 슈베르트, 멘델스존, 브람스 등등
- 유행도 바뀌듯 딱딱한 형식에 지친 사람들은 보다 자유롭고 로맨틱하고 듣기에 좋은 음악을 선호하게 됩니다.
그리고, 큰 크기의 그랜드 피아노가 아닌 가정용 업라이트 피아노가 개발되어 가정에 보급되면서, 여자들도 피아노를 배울 수 있게 되자, 많은 낭만적 소품(짧은 곡)들이 작곡되었습니다. 수요에 따른 공급이죠...
그리고, 영화같은데서 보면 사람들이 집에서 파티같은 걸 열어서 연주를 하고 모두 부채를 살살 흔들며 감상하고...그런 장면 보신 적 있으신가요? 이 시대에는 그러한 사교적 모임도 성행하여 소규모의 연주곡...'살롱음악'이 발달하게 됩니다. 녹턴(야상곡), 왈츠, 즉흥곡, 모멘트 뮤직(악흥의 한때), 반주와 노래처럼 만들어졌으나 악기를 위한 '무언가(Song without words)',  또..이야기가 있는 연가곡집들....

출처 : 네이버

달콤하고 아름다운 그런 음악들이 낭만시대에 많이 작곡되었습니다.
민족적 색채가 강한 국민악파(그리그, 시벨리우스, 스메타나) 등도 있고, 드뷔시나 라벨의 인상주의 또 러시아 5인조 등 여러 사조들이 있었고, 그들의 음악 또한 클래식 음악으로 분류됩니다.
후기 낭만파에서 현대로 라흐마니노프, 프로코피에프, 바르톡 등등 너무나 유명한 음악가들도 있어요.

저작자 표시 비영리 동일 조건 변경 허락
신고

Name __

Password __

Link (Your Website)

Comment

SECRET | 비밀글로 남기기